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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바냐:3장/ 하나님께 두손을 높이 들고 승리의 함성을 소리높여 환호하여라
    말씀 나눔방 2023. 8. 13. 19:34

    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우리 하늘 소리 선교회를 사랑해 주시는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 그리고 봉사자님들과

    사역자님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여러분들과 이 구약 성경 39권의 말씀 가운데 마지막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소선지서 12권의 성경 말씀 가운데  9번째인 스바냐 성경 말씀으로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 스바냐 선지자는 이 구약 시대에 강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한 대언자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대한 얘기를 쭉 하고 있는데요. 단순하게 두 가지 문제인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과 그리고 그 심판 가운데서도 소수의 남은 자들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계시로 말씀 하고 있습니다.

     

    이 스바냐 성경 말씀은 예수님이 오시기 약  630년경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 주전 630년경은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와 하박국 선지자와 동시대 였던것 같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는 일이 여러분들 언제 있었습니까?

    기원전 606년에 이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선민 이스라엘 남왕국 유다가 포로로 잡

    혀가는 일이 발생되었는데요. 바로 이 스바냐 선지서를 기록한 약 24년 전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B.C 586년에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하여 전적인 멸망을 당하는데

    그 멸망당하기 44년 전에 이 말씀이 기록되어 졌던 것입니다.

    사역 장소는 물론 남왕국 유다의 영토와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 전반에 있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대한 메시지인 것입니다.

     

    바로 이 스바냐  성경 말씀을 기록한  목적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그 십자가 형벌을

    통해서 우리를 자비와 은혜 가운데서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장차 진노의 날 큰 날 가운데 있을 심판에

    우리가 들어가지 않게 하시기 위한 것을 미리 스바냐 신언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으로 알려주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스바냐 선지자의  성경 말씀은 요시야의 통치 초기에 스바냐 선지자는 자신들에게 그 고통을 가하는

    하나님의 그 특별히 구별된 그런 갈대아 사람들을 통한 하나님의 전적인 심판이 임박했음을 경고하기

    위한 것은  주의 날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예표의 말씀인 것입니다.

     

    일차적으로는 선민 이스라엘을 향한 갈대아인들을 통한 하나님의 크신 심판을 통하여 마지막 때인

    7년 환란의 때 지금 여러분 마지막 7년 가운데 전반부 3년 반의 시대가 지나고 후반부 3년 반의 시대인

    7년 환란의 때 가운데 지금 자리하고 있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바로 이 교회들과 성도들을 향한 메시지의

    선포인 것입니다.  마지막 때 7년 환란기 중에서도 특별히 3년 후반기 때에 살고 있는 자들 천년 후까지

    이어질  바로 그때 나타나는 주의 날 여호와의 큰 날 진노의 날에 바로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와 자비로 선민

    이스라엘을 포함한 우리 영적 이스라엘인들인 모두가 회복될 것을 예언의 말씀으로 계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바냐서 1장 14절에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까웠으니 그날이 가까이 매우 급하게 다가오고 있다.

    2장 3절의 후반부 말씀에서도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너희가 숨겨질지도 모르니 이 너희가 숨겨질지도 모른다

    라는 얘기를 통해서 스바냐 선지자의 이름의 뜻을 이렇게 암시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스바냐서 1장 2절에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완전히 없애버리리라.

    여호와의 선포이다. 사람은 물론 짐승은 물론 다 없애버리며 하늘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

    그리고 걸림돌들을 악인들과 함께 없애버리리라 라는 이 말씀을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서

    이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얼마나 선민 이스라엘인 남왕국 유다의 백성들이 무서워했을까요?

    예 말할 수 없이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1장 1절에 히스기야의 현손인 스바냐 선지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다 라는 말씀을 통해서

    스바냐의 “냐” 라는 것이 바로 여호와의 축약형인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신성한 이름인 여호와 이름

    대신에 “야” 라는 이름을 부름으로 말미암아 친근감과 거리감이 있는 상태에서 이렇게 나타난 것이 "야'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스바냐 이름의 뜻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 숨기셨다. 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배로

    여기셨다 존귀하게 여기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스바냐서 2장 3절 하반절에 보면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너희가 숨겨질지도 모른다 라는 얘기를

    통해서 여호와께서 숨기신다. 여호와께서 존귀하게 보배로 여기신다 라는 말씀을 통하여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완전히 없애버리시겠다 라는 스바냐서 1장 2절의 말씀에 따른 1장 14절에 여호와의

    큰 날 2장 3절에 진노의 날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  자신의 보배로운 자들이 된 자들 존귀하게 된 자들을 보배처럼 숨기실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스바냐 선지자의 이름의 뜻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노의 날에 하나님의 크신 날에 여호와의 큰 날과 진노의 날에 특별히 마지막 7년 환란의 때인

    특별히 마지막 후반부 3년 반 때에 천년 왕국이 도래하게 될 그 주의 날을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서 특별히

    강조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러한 분노의 날에 여호와의 크신 날에 진노의 날에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안에 숨겨진 보배로 감추어진 자가 될 것이다 라는 얘기가 스바냐서 2장 3절에 그 이름의 뜻에 걸맞는 해석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 여호와를 너희가 추구하라. 3장 초반에는 그분의 판결을 준행한 너희 곧 이 땅에 모든 온유한 이들아 하나님의 생명을 갈망하는 자들아 여호와를 추구하여라. 제발 여호와를 추구하여라.

    물론 추구하기 전에 2장 1절에서는 너희가 함께 모여라 먼저 모여야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너희가 모인 다음에 여호와를 추구하여라. 의를 추구하고 온유를 추구하여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소유하라는 얘기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자들로 만들어지기를 갈망하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끝에 하반절에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너희가 혹시 숨겨질지도 모른다 라고 말하는 이 히스기야왕의

    혈통을 가진 왕의 핏줄인 히스기야의 현손인 스바냐선지자에게 임한 말씀인 것입니다.

     

    이 스바냐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의 후손인  왕가의 핏줄을 가진 왕가의 후손으로 왕손이었습니다.

    그의 조상 가운데 특별히 요시야 라는 선한 왕도 있었다 라는 것을 통해서 이가 바로 오실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이렇게 크신 하나님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형벌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갈망을 가진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원 안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소유받기를 원한다

    라는 의미에서 이 스바냐 라는 이름이 주어졌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당시가 기원전 630년경에 하박국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 때에 그가 이 유다의 영토인 예루살렘 수도에서

    남왕국 유다 백성들을 향해서 사역을 한 그는 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멸망당하기 한 44년 전에 바로 기원전 586년에는 멸망을 당하였고 그전에 기원전 606년에는 바벨론 제국의 느브갓네살 왕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갔던 그 시기에 이 스바냐 선지자가 활동했던 사역자인 것입니다.

     

    이때 당시에 바로 스바냐서 1장 2절의 말씀을 통해서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들을 완전히 없애버릴 것이다 라는

    이 말씀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래서 2장 1절에서는 그러기 때문에 너희는 함께 모여서 바로 3절에서는 그 모인 너희들은 여호와를 추구하여라.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너희가 생명을 보존받기 위해서 숨겨질지도 모른다 라는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 할수 없는 두려움에 처해 있을 바로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서 3장 16절에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날에 사람들의 큰 날이죠 여호와의 큰날 진노의 날이죠 심판의 날이죠 그날에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말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시온아 내 손을 축 늘어뜨리지 마라 라고 얘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내 손을 이렇게 늘어뜨리지 말고 의기소침한 가운데 하나님의

    엄위하신 스바냐 선지자를 통한 심판의 말씀을 듣고 공포와 두려움에 떨 것이 아니라 너희는 그러한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 앞에 손을 드는 삶을 살라 라고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 당시에 스바냐 선지자 때 선민 이스라엘 특별히 남왕국 유다 백성들은 바로 영적으로 너무나  마비가

    되었고 도덕적인 어떤 그러한 상태가 아주 무감각하였고 그들의 우상을 숭배하는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그 당시에 남왕국 유다의 백성들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낮은 백성들부터 높은 고관과 왕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들이  하나님 앞에 올바른 청결치 못하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온갖 부조리와 강포가 성읍에 차고 피흘리는 죄의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서

    그러한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의 간담이 서늘해지고 모두가 슬프고 좌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때 당시에 이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의 말씀을 듣고 그들이

    두려움에 떨었을 때 그때 당시의 상황은 바로 히스기야 왕의 아들이었던 므낫세가 왕이 되어 정치를 한

    그때부터 유대 백성들이 심각한 종교적인 어떤 영적인 부패를 가지고 왔으며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지 아니하는 도덕적인 말할 수 없는 극심한 부패에 빠져 있었던 그러한 때였던 것입니다.

     

    스바냐 선지자 때로 돌아가면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원한 주인이시요

    참 아버지시요 남편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거짓 남편인 우상들을 섬기고

     쫓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마음을 극도로 슬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태양신을 숭배하고, 성전 안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놓고 숭배하는

    일까지 벌여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말씀이 스바냐 선지자가 활동하기 약 11년 전인 기원전 641년에 므낫세 왕이 죽고

    그 아들 암몬이 왕위를 계승하지만 그 부패함이 여전히 똑같이 극도로 부패되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이 하나님의 크신 진노의 심판을 가지고 오실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암몬왕을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암살을 당하게 합니다. 그리고 8살 난 그의 아들 요시야가 왕이 되는데요.

    요시야왕이 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바른 삶을 살기 위하여 이 남왕국 유다를 개혁하려고 몹시 애를 쓰고 각고의 마음으로 노력을 하지만 이미 정해진 하나님의 심판은 바꿀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스바냐 선지자와 그리고 하박국 그리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등장하여서 유대와

    그리고 예루살렘 성에 내려질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게 되는 것이 바로 1장 2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완전히 없애버릴 것이다 여호와의 선포이다.얼마나 무섭습니까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바로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문지방을 뛰어넘는 모든 이들도 폭력과 속임수로 제 주인의 집을 채우는

    모든 이들도 벌하리라  9절에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바로 선민 이스라엘을 때리고 고통스럽게 한 이방인들까지도 하나님께서 함께 벌하신다는 내용이 나오고 1장 14절에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까웠다 그날이 가까이 매우 급하게 다가오고 있는데 너희가 어떻게 할 것이냐 함께 모여서 바로 이 선포가 있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추구하라 하라 라는 스바냐서 2장3절 말씀을 하십니다.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너희가 혹시 생명을 보존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너희가 숨겨질지도 모른다. 이것이 스바냐 이름의 뜻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스바냐 선지자를 통하여 선민 이스라엘 곧 남왕국 유다와 그리고 세상 나라들

    가운데 등장한 열국들 특별히 갈대아인들 그다음에 열국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과 그리고 이방인들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로마서 11장 22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또한 엄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두 가지를 우리가 알지 못하면 왜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왜 그 선민 이스라엘을 때리시고 징계하시고 고통을 주기 위하여 열국들을 수단과 도구로

    사용하여서 그들을 이렇게 아프게 하는지 징계를 하는지 잘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보복하시고 진노하시고 복수하시는 바로 나훔서 1장 2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질투하시는 하나님 복수하시는 하나님 죄에 대해서는 진노 가운데 보복하시는 그러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선제적으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그리고 이스라엘을 심판하셔서 징계 하신것과 마찬가지로

    세상 나라들인 그 선민 이스라엘을 혹독하게 다뤘던 열국들을 하나님께서 징벌하시는 내용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때 마찬가지로 열국을 구원하신다 라는 것을 이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서

    계시해 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셔서 인자하시고 은혜로운 분이시지만 한편으로는 엄격하신

    공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이 세상 모두를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을 포함한 열국들 세상 나라들 가운데 등장한 모든 세상 민족들을 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또한 구원하실 때도 전 만인을 위한 세상 모두를 향한 우주적으로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겠다는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이 이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요나 선지자가 여호와 하나님께 그렇게 반대하고 거절한 삶을 살았고, 예수님 당시에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특혜  자신들만 편애 할 것이라는 그러한 선민 사상으로 인하여 예수님께 버림받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과 더불어 세상 민족들 세상 나라들에 대한 열국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방법에 따른 특별한 순서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전서 4장 17절에 보면 때가 이르러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집 선민 이스라엘 남왕국 유다로부터 심판이

    시작됩니다.  이 심판이 먼저 우리에게 시작된다면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세상 사람들의

    마지막은 어떠하겠습니까 라고 이러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징계하는 심판은 바로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그 당시에 북왕국 이스라엘과 그리고 남왕국

    유다로부터 시작된 심판이 그때 북왕국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남왕국 유다를 심판하는 일로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에게 심판을 베푸시고 집행하심을 통하여 이러한 일들이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 멈추지 않고 진행되고 수행된다 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집인 바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선민 이스라엘로 부터

    먼저 행하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적인 행정의 방법의 순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방법과 순서들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왕국에서 바로 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고  이 그리스도의 통치에 거역 하는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실 분명한

    명분과 근거를 갖게 되는 것이 이러한 순서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을 세우기 위한 것이며, 이런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모든 자들과 믿는 자들 모두가 함께 엄중한 심판을 모두 공의로운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임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이들이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믿는 이들이 받는 것보다

    더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은연 중에 암시하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에는 특별한 순서가 있다 라는 것을

    베드로전서 4장 17절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서에도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먼저는 바로 갈데아인들에게 고통을 받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그 갈데아인들을 통하여 선민 이스라엘을 때리시고 징계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심판받고, 그다음으로 바로 선민 이스라엘을 때린 열국 갈데아인들에게 심판이 차후에

    전해지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갈대아인들이 나타나고 바벨론 제국이 나타나고, 메대페르시아 제국이 나타나고,

    그리고 헬라제국 그리고 로마제국 이렇게 그 당시 때마다 나타나고 등장하고 있는 열국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세상 나라의 역사들 가운데 하나님의  이 의로운 심판이 이렇게 행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여호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을 심판하십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그 다음에 남왕국 유다를 바벨론 제국 느브갓네살 왕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가게 하고 멸망받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 말미아마 그 후에 나타날 인간 정부 전체를 멸망시키기 위해 오시는 그리스도께서 이 열국들을

    얼마나 극심하게 심판하시고 그들을 패배케 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은연 중에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심판은 먼저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인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스라엘을 향해서 혹독하게 다루고 흩어지게 하고 큰 고통을 가한 열국들에게 하나님께서

    차후에 심판하시겠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판은 먼저 하나님의 집인 이스라엘을 향해서 선제적으로 먼저

    펼쳐지지만 구원에 대한 문제는 먼저 이방인들을 향해 있다 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먼저 심판이 가해지고 그다음에 세상 열국들, 세상 나라들을 향해서

    펼쳐지고 있는 반면에 하나님의 구원은 이방인들에게 먼저 구원이 펼쳐지고 그다음에 마지막 부분에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펼쳐진다 라는 얘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은혜의 시대요, 비밀의 시대요, 교회의 시대인 바로 이 7년 대 환란의 때의 후반부 3년 반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는 지금 이때의 수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이 구원을 받은 이러한 이방인들을 통해서 때가 차게 되면은 로마서 11장 11절에

    무슨 일이 벌어지냐 하면은 선민 이스라엘이 전적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일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의 커다란 계획에 의해서 하나님의 안배에 따른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심판을 하나님의 집인 선민 이스라엘에게 향하고 하나님의 구원은 선민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먼저 펼쳐 보임으로 말미암아 바로 하나님의 안배에 따른 선택 안에 있는 하나님 자신의 경륜

    가운데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질투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먼저 이르렀다고 얘기하고 로마서 11장 25절에서는 나는 여러분이 이 비밀에

    대해서 모르기를 원치 않습니다.이 비밀은 곧 이방인의 수가 다 차기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부가 마음이

    굳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26절에도 똑같이 말씀이 써 있어요. 오늘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다음에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이방인들이 수가 다 차면 그제서야 그 때가 이방인들의 수가 다 차게

    된 다음에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11: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라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 믿는 이방인의 수가 다 차는 것은 바로 이방인들의 때가 차는 것과는 조금은 다른 것이죠.

    이방인들의 때가 차는 것은 이방인의 권세 기간이 끝나는 것이지만 여기에 로마서 11장 25절에는

    이방인의 수가 다 차기까지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수가 다 차기까지는 하나님의 선택

    안에 있는 그분의 경륜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불신케 함으로 말미암아 질투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온전한 구원을 위한

    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 바로 이방인의 수가 다 차기까지라는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에 따른 심판은 먼저 이스라엘을 향해서 펼쳐지고 그다음에 세상 민족과 세상 나라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펼쳐지지만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바로 이스라엘이 아닌 세상 나라들인 열국들,

    이방인들에게 먼저 펼쳐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안배와 선택과 경륜에 따른 부름은 취소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들인 열국들, 이방 민족들인 우리들보다 위치적인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 스라엘을 더욱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로마서 11장 29절 말씀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과 부름은 취소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예수님께서 바로 이 유대인들을 버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게

    됨으로 말미암아 마치 둘째 아들이 첫아들이되고 맏아들은 마치 버림받은 자처럼 그렇게 인식을 하고 있는데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위치적인 면에서는 선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특별히 정말 택정함 받은 사랑하시는 백성들이라는 것을 여러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배와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의 선택에 따른 부분이 선민 이스라엘을 향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가 차면 로마서11장25절을 보면 이 비밀은 곧 이방인의 수가 다 차면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바로 구원이 이방인을 향하는 시대인 지금의 시대 교회의 시대, 은혜 시대, 비밀의 시대인 지금은

    이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는 이방인의 수가 다 차게 되면

    바로그때에는 구원이 이스라엘을 향한 전적인 구원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선민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세상 나라들 전체를 열국과 세상 만인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이

    우주적으로 이루어진다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비밀입니까?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우주적인데

    하나님의 심판은 선민 이스라엘을 향해서 먼저 펼쳐지고 하나님의 구원은 이방인들에게 펼쳐진 다음에

    선민 이스라엘을 향해서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마지막 그 시대쯤에 하나님께서 전적인 구원을 베풀므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를 세상 나라들과 선민 이스라엘인 모두를 구원하시는 우주적인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구원을 우리가 엿볼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바냐의 이 중심 사상은 바로 이스라엘과 이 세상 나라들을 대표한 이 열국들, 세상 모든 민족들을

    심판하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심판하 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바로 로마서 11장 22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랑과 은혜와 인자가 풍부하신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엄격하시고 나훔서 1장 2절을 통해서 계시하고 있는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시요 복수하시는 분이시요. 진노 가운데 보복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하나님께서는 아울러 더 나아가 열국 모두를 극심하게 심판하신다 라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바로 여호와의 구원에 대한 얘기가 3장 9절부터 20절까지 특별히 14절부터 17절까지 놀라운 얘기가

    이렇게 기록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스바냐:3:9 그 때에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 그들로 다 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섬기게 하리니

    3:10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하수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드릴찌라

    3:11 그 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 때에 내가 너희 중에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를 제하여 너로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니라

    3:12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의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찌라

    3: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

    3:14 〔기뻐하며 부를 노래〕 시온의 딸아 노래할찌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찌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3:15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3: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3:18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너의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3: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3: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찌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14절에 보면 노래라는 것을 환호라고 표현하고 있고 크게 외친다 라는 것을 함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노래하라고 얘기합니까? 왜 기쁨으로 환호하여라 라고 얘기합니까? 여러분 뭔가 이유가 있어야 기쁨으로

    노래하고 환호하는 일이 있고요. 승리의 함성을 크게 외치는 일이 있지요.

     

    여러분 삶을 살면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렇게 크게 기뻐하고 노래하고

    승리의 함성을 외치는 크게 외치는 승리의 함성을 외친 적이 여러분들 있었습니까?

    가만히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여러분 생애에 말할 수 없는 이 크게 노래하고 크게 외치는 이 승리의 함성과

    기쁨의 환호가 있었던 적이 있는지 한번 가만히 살펴보세요.

    물론 크고 작은 일들은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경제적인 어떤 어려움으로부터 이렇게 벗어나는 것도 조그마한 구원의 방법이죠.

    질병으로부터 우리가  벗어나는 것도 작은 구원이고요 인간관계를 통해서 나에게 다가오는 여러 가지

    이 매듭처럼 풀려지지 아니하는 그런 복잡다단한 그러한 바로 부모와 자식 간에 또는 형제간의 어떤 지인들

    간이나 직장 동료들 간의  인간관계에 모든 잘못 설정된 것으로부터 해결을 받는 것도 조그마한 구원의

    방법의 부분인 것입니다.

     

    이러할 때 좌절하고 낙심 가운데 있었던 우리가 이러한 조그마한 구원의 손길들을 통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왜 기뻐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손을 느려뜨리지 말고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환호하고 기쁨으로 노래를 하고 큰 소리를 외치는 이러한 승리의 함성을 펼쳐내져야

    되는 것은 16절에 말씀하신 그날에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말하리라. 두려워하지 마라 시온아 이렇게 이유를

    알게 되면은 환호하고 승리의 함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손을 세상 아래 땅 아래를 향해서 늘어뜨린 자에게는 이러한 환호하고 승리의 함성을 지를

    수 있는 삶의 모양과 태도와 상태가 아닌 것입니다.   손을 축 늘어뜨리는 자들은 환호할 수 없고

    승리의 함성을 내지를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손을 축 늘어뜨리지 말라 라고 얘기한 것은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장 15절에 보면 우리가 손을 축 늘어뜨리지 말고 용기 백배하여 정말 두 손을 하늘을 향해서 마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왜 나에게 부르짖느냐 니가 가지고 있는 지팡이를 저 홍해 바다를 향해서 이렇게

    내밀어라 라고 했을 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홍해 바다가 쫙 갈라져서 모세를 포함한 여호와의 군대인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라는 땅에서 구출 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두 손을 높이 들고 기쁨으로

    환호를 하고 노래를 하고 승리의 함성을 외칠 수 있는 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심판을

    거두었기  때문이라고 15절에  이렇게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가 너희에 대한 심판을 거두었고 내 원수들을 쫓아내버렸다.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있다 우리의 왕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재앙을 다시 보지 않는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말하고 시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내 손을 축 늘어뜨지 말고

    대신 두 손을 양손을 높이 올리라는 얘기입니다.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손을 늘어뜨리지 말고 두 손을 번쩍 하나님을 향해서

    올려드린 가운데 정말 환호 가운데, 노래 가운데, 기쁨으로 환호하고 승리의 함성을 크게 외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어저께 그리스도의 기원과 출생에 대해서 말씀드렸죠.

    왜 우리가 두 손을 늘어뜨리지 말고 두 손을 높이 올려드린 채 환호하여야 하냐면 미가서 5장 2절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족속 중에 가장 적을 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내게서 나올 것이 아니냐 상고에부터 그의 근본은 태초에부터 이니라 라고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분의 우리를 향한 구원은 영원 안에서부터 예비되어 있었고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고자 세상에 성육신하신 이 기원은 영원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만세전에 영원 안에 세상이 창조되기도 이전에

    바로 만물이 존재하기도 전에 바로 하나님의 안배에 따른 하나님의 계획의 경륜에 따라서 바로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인성을 가지시고  동정녀 마리아 몸에 잉태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인성을 가지고

    오심으로 말미암아 베들레헴에서 사람으로 태어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기원과 출생인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기 위한, 우리를 해방시켜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용서를 위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일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기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가지고 오기 위한 일 때문에 주님께서 바로 그리스도의 기원이 영원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나서 1장 17절 말씀이죠.

    예 그리고 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라는 하박국 선지서 2장 4절 말씀 통해서 바로 이러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신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춰 있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해방되어져서 최종 완성된 그 삼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삼일 하나님께서 해방되어져서 최종 완성된 주의 영, 삼일 하나님의 영으로 부어지신 분이 바로

    다름 아닌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나님께 범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십자가에

    형벌을 대신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 생명과

    본성과 품성은 우리에게 대치해 주시고, 그리고 우리가 소유한 세상의 모든 나쁜 죄에 속한 그런 독소들은 다

    처리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대신 죽음을 당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형벌을 대신 당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우리를 대치시켜주시기 위하여 십자가 형벌이라는 죽으심을 통하여 죗값을 지불하셨던 것입니다. 완벽하게 골고다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우리 죗값을 넘칠

    정도로 지불하심으로 말미암아 죄의 짐이 풀리고 하나님께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은 우리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옛 창조 안에 속해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처리되고  해결받게 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아들들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14절에 크게 노래하고 환호하고 승리의 함성 크게 외치는 일을 해야 된다 라는

    얘기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벌을 마다하지 않고 친히 담당하셔서 죗값을 모두 지불하신 이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바로 우리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이인 예수님만을 너희가 바라보라 라고 15절에 있죠.

     

    여호와가 너희에 대한 심판을 거두었고 내 원수를 쫓아내버리지 않았느냐 라고 바로 로마서 8장 33절과

    34절에 사단이 끊임없이 우리를 참소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죗값을 완전히

    지불하여주시고 하나님의 형벌을 우리 대신 담당하심으로 말미암아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절대 사탄은 송사할 수도 없고 우리를 변개시킬 수 없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라고

    사탄이 우리를 끝없이 참소할지라도 죄의 능력이 무력화되고 사망의 권세가 완전히 무효화됨으로 말미암아

    사단과는 이제 관계가 없는 자들이 되었음을 바로 로마서 8장 33절과 34절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그리고 이 두 번째는 바로 15절의 하반부죠

    먼저는 여호와가 너희에 대한 심판을 거뒀다. 내 원수들을 쫓아 내었다.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있다. 그 쫓아내신 그분이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이신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함께 있다 라는 것입니다. 예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부활을 통하여 부활 안에서 그 복잡한 과정을 통하여

    최종 완성된 그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 보혜사 바로 하나님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우리 가운데 임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하나가 되신 것입니다.

     

    주님 안에 우리가 있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뻐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손을 느려뜨리지

    말고 하늘을 향해 우리의 만왕이 되신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향해 손을 들고 손뼉을 치며

    노래하며 환호하고 승리의 함성을 큰 소리로 외치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14절의 말씀 너희가 노래할지어다 기쁨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크게 외칠지어다

    노래하고 외친다 라는 것은 환호하고 승리의 함성을 외친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감격을 여러분들이 왜 안 누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주님과 나는 하나입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있습니다.

    바로 부활을 통하여 주님과 부활을 통하여 예수님 안에 계셨던 그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신 삼일 하나님께서

    최종 완성된 그 영을 통하여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 말미암아 바로 우리가 믿는 순간에 그분을 영접하는

    순간에 삭개오처럼 바로 믿고 영접하여 기쁨으로 나무에서 급히 내려와서 기쁨으로 영접했을 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도 또한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후손이었다 라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후손인 삭개오가 기쁨으로 자기 자신을 영접했을 때 자기 자신의 그 품안에 이 인성을

    가지고 오심으로 말미암아 영원으로부터 시간 안으로 오신 이유는 바로 사람이 되시기 위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늘들로부터 땅으로 내려오신 사건은 성육신하기 위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신성으로부터 인성안으로 오신 것은 인성을 가진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호세아서 11장 4절에 기록된

    사람의 줄들이 되어 주시고, 사랑의 끈들이 되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바로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품으실 수가 있었고 사람은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붙잡을 수 있게 함으로 말미암아,

    삭개오인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 꽉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도록 하여 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성육신하셔서 2천년 전에 베들레헴 생명의 떡집에서 태어나셔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전체적인 중심 사상의 주제는 구원하시는 하나님 그냥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영원 안에서부터 사람의 시간 안으로 들어오신 것은 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사람의 줄들이 되어 주시고, 인성 안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끈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신성으로부터 인성 안으로 오셔서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바로 품에 안기고 그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꽉

    달라붙음으로 말미암아 삭개오처럼 이 집에 구원이 임하였다. 이도 또한 아브라함의 잃어버린 후손이 아니냐 라고 선포한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 부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 안에 들어가 감 춰 계셨던 그 삼일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영 하나님께서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최종 완성된 그 영이 우리 안에 내주하여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하고 즐겁게 노래하고 환호하고 승리의 함성을 크게 외칠 수가 있게된다라는 것입니다.

     

    이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였기 때문에 그렇고 미가서 5장 2절과

    5:2 〔베들레헴에서 다스릴 자가 나오리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요나서 1장 17절과 1:17 〔요나의 기도〕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하박국서 2장 4절 말씀 통해서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죄가 용서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크신 진노의 심판이 거두어졌기 때문에  15절 상반 절이죠.

     

    여호와가 너에 대한 심판을 거두었기 때문에 내 원수를 쫓아내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크게 기뻐하고

    노래하는 환호와 승리의 함성을 외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너희 가운데 있게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 나는 바로 이 부활을 통하여 최종 완성된 그 삼일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함께 하나가 되어서

    내 안에 주님께서 계시고 주님 안에 내가 있는 것입니다.

    이 일 때문에 우리가 기뻐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손을 늘어뜨리지 말고 두손을 높이 들고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찬양하라는 이유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그분이 특별히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 가운데 있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새롭게 하고 영화롭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이 새 하늘과 새 땅 안에 도래할

    새 예루살렘 성으로 건축하기 위해서 지금 일하시는 분이 우리 속에 함께 내주하시고 임재하고 계시니

    너희는 기죽지 말고 정말 힘을 내어 두 팔을 벌려 하늘을 향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성육신 하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향해서 감사하고 기뻐하라는 얘기입니다.

     

    의기소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쁨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 안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와 하나 되어서

    함께 계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 그 분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예 최종적으로 완성된 그 삼일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내주하시는 삼일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을 베푸시는

    강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뻐하고 환호하고 노래하고 큰 함성을 지르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 구원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라는 너희 한가운데 계시는 주 너희 하나님은 능하신 분이시니 그분께서 구원하시고 라는

    이 구원은 영혼에 대한 구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구원인 것입니다.

     

    영과 혼과 육에 대한 전적인 인간의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주 넓은 의미에서의 구원은 옛 피조물인 우리를 새 피조물로 새롭게 하여 주시고 옛 사람은 새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고 옛 창조 안에 있는 우리를 새 창조 영역 안에 있게 함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 아래 있는

    우리들을 바로 생명과 성령님의 법 아래 로마서 8장 2절 말씀이죠 있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영과 혼과

    육에 대한 모든 전반적인 인간 존재의 전체적인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구원이 좁게는 죄의 문제를 해결 받는 영혼의 문제가 있다면 넓게는 더 나아가서 육체의 삶까지도 포함한

    내 삶 속에서의 모든 것들이 구원받는 바로 건짐을 받는 해방되어지는 자유함을 얻는 이러한 넓은 의미에서의

    구원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주실 때 먼저 유월절 어린 양을 통해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의 결과물인 죄의 능력을 무력화시키고 사망의 권세를 무효화시키기 위해서 유월절 어린 양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전적으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주신다 라는 이것도 바로 넓은 의미에서의

    구원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10가지 재앙들이 애굽 나라에 있었죠.

    그때 애굽의 백성들은 다 10가지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의 심판의 손길을 피할 수 없었지만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이 10가지 재앙들을 능히 피할 수가 있게 된 것도 바로 구원의 사건인 것입니다.

     

    예 10가지 재앙으로부터 건져냄을 받은 거 어둠 가운데 있었을 때 빛 가운데로 속하는 것 질병 가운데

    있었을 때 고침을 받는 사건 그렇죠 뱀에 물려서 죽게 됐을 때 청동뱀을 높이 걸어놓고 누구든지 이 청동뱀을

    바라보는 자들은 살리라. 이렇게 죄의 독소로부터 고침 받는 사건도 구원인 것입니다.

    가난에서 구원받는 것도 여러분 구원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 35절, 36절을 보면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애서 나올 때 금은 폐물과 모든 물품들을

    다 그 10가지 재앙들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전능한 힘이 선민 이스라엘과 함께하고 있는 것을 본

    애굽 사람들이 두려운 마음을 갖고 금과 은과 패물과 온갖 물품들을 건네줌으로 말미암아 가난에서 그들이

    해방되어질 수가 있었던 것도 구원인 것입니다.

     

    예 우리가 죄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 우리가 끊을 수 없는 담배를 끊는다거나 술을 끊는다거나 하는

    이런 것들로부터 이 단절되게 하는 것도 일종의 구원에 대한 사건인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과의 불편했던 관계가 좋은 관계로 바뀌어지는 그런 상황이 펼쳐지는 것도 일종의 구원의

    사건인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받는 것도 구원의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의 크고 작은 말할 수 없이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기도의 응답들도 일종의 구원 사건인 것입니다.

     

    바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그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영의 그 최종 완성된 그 영을 통해서  우리의 영 안에 함께 계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삶 속에서 전반적으로

    함께 하나 되어 움직이시는 하나님이 늘 우리를 향해서 구원의 손길을 경험하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사망에서 죄로부터 무슨 질병으로부터, 어떤 모든 그러한 죄의 독소로부터 우리를 건지시는

    것이라고 고린도후서 1장 10절에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1: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과거에 2천년 전에 우리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의 형벌을 마다하지 않고 죽음을 경험하심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법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생명과 성령님의 법으로 옮기게 하신 죄의 능력을 무력화시키고 사망의 권세를 무효화시키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2천년 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건지신 하나님은  오늘날도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멈추지 않고 우리를 건지시고 해방시키고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질병에서 때로는 가난에서, 때로는 저주에서, 때로는 죄에서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셔서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 우리를 끌어 올리셔서 반석에 올려놓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그때부터 기름을

    발라주시고 포도주를 주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기운으로 소생 받은 우리가 주님을 향해서 올라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 최종 완성된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신 그리스도의 역할인 것입니다.

     

    예 우리들의 매일의 삶이 그러함으로 말미암아 간섭하시고 우리의 환경 가운데서 늘 함께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 때 우리는 기뻐하고 노래함을 나타내는 환호하고그리고 승리의 함성을 크게 외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러한 방법으로 구원하셔서 우리를 예수님과 같은 사람으로 만들려는  이 아버지의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는  사랑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쫓아가는 사랑 전적인 책임과 의무를 다하시고 바로 우리라는 존재가 온전하고도 완전히 구원받을 때까지 쉼없이 구원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교정하시고 교화하시고 때리시고 심지어는 얍복강가에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만들기 위해서 생명의 근원  그 자체를  나타내는  그 환도뼈를 때려서 불구자로 만들어 가면서까지 우리를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의 그러한 구원하시는 일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환호하고 승리의 함성을 외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고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 라는 것이 17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내 가운데 계신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신 강하신 분이라. 그분께서 이러한 첫 번째 15절에

    3:15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너희는 네 손을 축 늘여뜨리지 말고 기쁨 가운데 큰 소리로

    노래하며 환호를 하고 승리의 함성을 외치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출애굽기 17장 8절부터 16절까지 말씀입니다.

    17:8 〔아말렉과 싸우다〕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17: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17: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17: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7: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1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17:15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나의 기〕

    17:16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여기 보면 아말렉을 패배시킨 장면이 나오는데요. 예 이집트에서 그들이 유월절 어린양을 통해서 구원을 받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죽음의 바다인 홍해 바다를 바로 전적인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에 의하여 구원받게

    하신 다음에 바로 광야의 삶이 시작될 때 광야에서 첫 번째 마주친 대적자가 바로 아멜렉 족속이었던 것입니다.

    이 아말렉 족속은 어떤 자입니까? 야곱의 쌍둥이 형인 에서의 후손인 것입니다.

    아멜렉이 쌍둥이 형인 에서의 후손으로서 에서의 동생인 야곱의 후손인 열두 지파들을 상대하려고

    처음 찾아온 자들이 그들을 가나안 땅에 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 아말렉 족속입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에 육의 문제를 떠나 이제 혼적인 몸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선민 이스라엘을 향해서

    옛사람의 총체인 육체의 예표인 아말렉이 바로 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싸움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광야에 있는 이 선민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사단과 하나가 된 세상을 벗어난 바로 육체를 벗어난

    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한 혼의 삶을 살고 있는 당시에 선민 이스라엘을 향해서 육체를 상징하고 있는

    아멜렉 족속이 영을 상징하고 있는 이 가나안 땅에 바로 들어가서 이 생명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육체와 영의 다툼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아멜렉과 선민 이스라엘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육체는 야곱으로 상징되고 있는 우리들의 거듭난 존재와 매우 가까운 것입니다.

    야곱의 후손이 열두 지파이지만 이 열두 지파는 여호와의 군대로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신 그리스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가 바로 야곱으로 상징되는 이 우리의 거듭난 존재와 매우 가까운 것이 육체를 상징하고 있는

    아멜렉 족속이기 때문에 우리의 거듭난 존재와 가장 가까운 육이 다가와서 우리를 육의 사람으로 이렇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가 큰 힘을 가지고 먼저 태어났고, 그다음에 힘이 좀 없는 야곱이

    태어난 것은 육체가 첫 사람 곧 옛 사람에 속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 바로 야곱은 거듭날 수밖에 없는 육체에 속한 자였지만 이스라엘이라는 사람은 바로 거듭난 자의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이러한 것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육체를 상징하고 있는 아멜렉 족속은 바로 거듭날 수 있는 이 이스라엘 자손이 젖과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인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가나안 땅은 좋은 땅이죠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의 양식이 되는 식물과 동물이 있는 곳입니다.

     

    피를 상징하고 있는 동물을 통해서 구속을 받을 수 있고, 생명의 풍성한 공급의 양식을 통하여 우리의 영을

    새롭게 조성할 수 있는 좋은 땅임으로 말미암아 그 가는 길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자 막아 선자인 첫 번째

    원수가 신명기 25장 17절, 18절에 기록된 것처럼 육체를 상징하고 있는 아멜렉 족속인 것입니다.

     

    이 아멜렉 족속은 우리의 모든 거듭난 자들의 원수의 대장, 우두머리, 첫 번째 마주치는 가장 강한 자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와 이 죄와 세상과 사단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어떻게든지 믿는 자들, 거듭난 자들을 통해서 싸움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거냐하면 아멜렉족속으로 상징되고 있는 육체를 통해서 갈라디아서 5장 17절 말씀이에요.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와서 바로 우리가 육체와 손잡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혼은 영의 말을  섬기고 순종해야 되는 청지기의 입장이고, 바로 육체는 바로 혼의 종이고 혼의 노예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를 담는 그릇이 혼이고 혼을 담는 그릇이 영인데, 영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존귀한 보배 그릇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육체가 바로 이 죄라는 것을 통하여 바로 혼의 문제를 간섭하기 위해서 곧

    배반하기 위하여 육체는 혼의 종이기 때문에 바로 혼의 말을 온전히 순종하여야 되고, 또 청지기로 나타나고 있는 혼은 영의 말을 순종해야 되는 것이 혼의 입장인 것입니다.

     

    영은 나 자신이라는 존재의 주인입니다.

    자신의 주인의 그릇 안에 바로 영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영을 담는 하나님을 담는 것이 또 내 영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주인의 주인은 여호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시고 나라는 존재의 주인은 영이고, 나라는 존재의 영의

    주인의 말을 들어야 되는 것이 혼인 청지기의 입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혼이 종과 노예로 이렇게 표현되고 있는 몸에게 얘기할 때, 일사불란하게 유기적으로 하나가 되면,

    이 온몸이 정말 나라는 존재가 온전히 이렇게 활성화되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세상은 육체를 통하여 우리를 붙잡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적으로 죄는 육체 가운데 우리에게 임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혼이 제대로 올바른 명령을 하지

    못하도록 무기력하게 하기 위해서 사단은 육체를 통하여 우리의 혼을 무기력하게 시켜서, 우리의 영에게

    영향을 미치게 함으로 말미암아, 영이 참 주인으로서 온전한 활동을 하지 못하고 하는 것이 아멜렉 족속으로

    상징되고 표현되고 있는 바로 육체라는 것입니다.

     

    육체는 아멜렉인 것입니다.

    아멜렉이 하나님의 백성인 거듭 날 자들인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고 그들을 가로막고자 하는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신 그리스도 안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좌절시키려는 것입니다.

    이 목적 때문에 아멜렉이 첫 번째로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육체를 상징하고 있는 아멜렉이라는

    이 사단이 사람의 육체를 통해서 죄를 침투 시킴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육체를 부추겨서 우리 자신인 혼과,

    그리고 혼의 참 주인인 영과 맞서서 싸우게 하는 일을 도모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급기야 좋은 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누리지 못하도록 완전한 누림 안으로, 완전한 생명 안으로, 완전한 하나님의 생명 사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사단의 육체를 통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손을 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나오는데요

    17: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17: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17: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7: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1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17:15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나의 기〕

    17:16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모세가 손을 들고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여호수아는 그 싸움에서 이기고 산꼭대기에서

    손을 든 모세가 하늘들에서 중보기도 하시는 승천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데,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도와 한마음 한 뜻이 되어서 손을 내리게 되면 패배하는 모습을 우리가 이 출애굽기 17장 8절부터

    16절 사이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내주하시는 우리를 위해서 대신 싸워주시는 영을 뜻하고 있습니다.

    육체와 맞서 싸우시는 그리스도의 예표가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또 다른 이름인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예수님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것입니다.

     

    여호수아 곧 예수님은 내주하시는 부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영, 하나님께서 최종 완성된 영의 부어짐을 통하여 내주하시는 영이 되시므로 육체와 맞서 싸우시는

    그리스도 자신이 여호수아입니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인 것입니다.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보혜사 하나님의 영, 성령님, 똑같은 그리스도 안에 모든 분이 다 계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포함되고 있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로마서 8장 9절, 10절, 11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래서 이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광야에서 애굽에서 주었던 100가지 만가지 음식들과 음료가 아니라,

    바로 이 광야에서는 하늘에서 새벽 이슬과 함께 떨어지는 만나와 반석에서 터쳐나온 생수의 공급만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특별한 안배 속에서 왜? 애굽에서 주는 모든 것들은 생명의 양식과

    생명의 음료가 아닌 사망의 양식이고 사망의 음료라는 것을 하나님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모세를 통해서 내가 하수가에서 물을 퍼 담아서 땅바닥에 흘려내버려라 했을 때 나일강에서 떠온 하수물이 피가 되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물이 피로 되는 것을 통하여 바로 생명이 아닌 사망과 죽음을 가져오는 것이 애굽에서의 모든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과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시는 생명의 음료만을 먹고 마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힘을 가지고 소생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이 영적인

    싸움 곧 육체를 상징하게 되는 아멜렉과의 싸움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안배 속에서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여기서 손을 드는 장면이 나오죠. 여호수아가 대신 싸워줌으로 말미암아 그 육체를

    상징하고 있는 아멜렉의 모든 족속들을 다 패배시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 우리가 바로 이 생명 공급이신 여기 스바냐서 보면은 여호와께서 너희에 대한 심판을 거두었고

    3장 15절 말씀에 내 원수를 쫓아내버렸다.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 하나님이 네 가운데 있으니 라는

    이러한 생명 공급이신 그리스도만을 먹고 그리스도만을 마심으로 말미암아 중보 기도하시는 바로

    여호수아로 나타나고 있는 내주하시는 영이신 육체와 맞서 싸우시는 그리스도를 먹고 마심으로 말미암아

    바로 우리가 중보 기도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기도하며 싸우시는 영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육체를 이김으로

    말미암아 죽음에 넘겨지지 않고 죄의 능력을 무력화시키고 사망의 권세를 무효화시킬 수 있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보 기도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싸울 때만이 우리가 육체를 온전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17장 12절에 모세의 손이 무거워지자 어떻게 했어요?

    이 모세의 손이 하늘을 향해 올려 졌을때는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시는 그리스도이시지만 손이 무거워져서

    손이 내려 졌을때는 스바냐서3장16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의 손을 축 늘어뜨리지 말라 라고 하셨는데

    이 바로 모세의 손이 무거워져 내려 진 모세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와 자꾸 가까워지기를 원해서 육체가 기울어져 있는 사람 스바냐서 3장 16절 손을 축 늘어뜨린 삶을

    살고 있는 우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손이 무거워져서 손을 축 늘어뜨린 이 손이 무거워진 모세는 죄 때문에

    육체와 가까워진 우리를 나타내고 있지만 손을 들고 모세가 하늘을 향해서 기도하는 모세의 모습은 바로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인 것이지만 손을 축 늘어뜨리지 말라 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축 늘어뜨리고

    기도하는 모세의 모습은 바로 실패한 패배를 향해서 기울어진 우리의 삶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동안에 우리 또한 땅 위에서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기도할 때 우리가 끝까지 출애굽기

    17장 12절 하반절에 모세의 손이 어느 때까지? 해가 질 때까지 싸움에서 승리할 때까지 해가 질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손을 들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육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한 중보의 기도가 있어야 되고,

    그리고 그 중보의 기도에 힘입어서 우리가 육체에 대항하여서 이기기 위한 싸움을 위해서 우리도

    중보 기도하시는 그리스도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하나의 통로된 사람의 줄과 사랑의 끈을 통하여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라는 말씀처럼 끊임없이 기도할 때

    우리의 손이 무거워지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우리의 손이 육체와 편법적으로 하나가 되어서 자꾸 기울어지는 삶을살면 손이 점점점점

    무거워짐으로 말미암아 육체가 원하는 삶을 살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그때 기도하는 우리의 손이 자꾸

    육체에게 기울어짐으로 말미암아 패배하고 실패하여 승리하지 못하는 삶을 살 때 우리를 위해서 도와주는

    하나의 돌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를 받쳐줄 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12절에 모세의 손이 무거워지자 그때 돌을 가져다가 모세가 서 있는 곳에 놓았습니다.

    여러분 이 돌이 뭘까요?  바로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와 같은 돌이 필요한데 그것이 아론과 홀과 같은 도움이 필요 하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이기게 하기 위한 견고한 기초를 의미하는 다니엘서 2장 34절, 35절에

    2:34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2:35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산돌이신 세상을 가득 채운 그 견고한 기초를 의미하는 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반드시 지탱해 주고

    우리의 바탕이 되어 주시고 기틀이 되어 주시고 토대가 되어 주셔야만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바로 아론과 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받쳐줄 돌인데 아론이 누구죠?  아론이 대제사장 아닙니까

    이 대제장은 지금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에요. 출애굽기 28장 1절

    28:1 〔제사장의 옷〔출 39:1-7〕〕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여러분 대제사장과 홀이

    우리를 받쳐주고 우리를 견고하게 해줌으로 말미암아 승리케 해야 될 산돌인 것입니다.

     

    그 산돌이 있어야만 우리가 육체를 예표하고 있는 아멜렉 족속을 패배시키고 이길 수 있는데 이 아론은

    대세장이고 바로 홀은 왕권을 상징하고 있는 유다 지파에 속하는데 바로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다 라고 창세기 49장 10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49:10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여러분 우리는 견고하게 받쳐줄 이기게 할 아론과 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사장 직분을 상징하고 있는 아론은 대사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히브리서 5장 1절 말씀이죠

    5:1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대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아론과 같은 대제사장인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그리고 유다 지파에 속한 홀로

    상징되고 있는 참다운 왕권을 가지고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돌이 되어 주셔야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 직분을 가진 아론은 지성소와 관련이 되어있다라는 것입니다.

     

    지성소와 관련이 있는 것은 우리의 가장 외형적인 부분인 육체와 그 안에 속한 육체는 혼을 담고 있고

    혼은 영을 담고 있고 영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지성소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 직분은 지성소와 관련되어 있는 우리의 체험에서 우리의 영과 관련되어 있다 라고

    히브리서 10장 19절에 기록하고 있는 것이에요.

    10:19 〔소망을 굳게 잡으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여러분 우리의 영이 이기기 위해서는 대제사장 직분인 가장 깊숙한 구중궁궐에 있는 지성소의 가장

    중심이 되는 대제사장 직분을 가진 그리스도를 우리가 산돌로 의지하고 그분을 발판삼아 우리가 싸울 때

    우리의 영이 산영이 될 수 있으며 그러할때 이 육체를 상징하고 있는 아멜렉을 패배시키고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권위인 유다 지파에 속하는 왕권을 상징하고 있는 홀을 통하여 이 하나님의 권위인

    왕권 안에서 그분에게 순종하는 삶을 기도를 통해서 토해낼 때 이 영이 육체를 이길 수 있다 라는 것을

    이 출애굽기17장 12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로 비밀한 생명의 말씀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인 아론은 지성소인 우리의 영과 관련돼 있지만 홀은 성막의건축과 관련되어 있다 라고

    출애굽기 31장 2절부터 5절까지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31:2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31:3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가지 재주로

    31:4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31:5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겨서 여러가지 일을 하게 하고

    31:6 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 하게 하며 무릇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로 내가 네게 명한 것을 다 만들게 할찌니

     

    우리가 이김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같은 자들로 건축되어지기 위해서는 바로 성막의 건축을

    상징하고 있는 왕권을 상징하고 있는 유다 지파에 속한 홀이신 바로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가 되는 삶을 살 때 하나가 되고자 하는 우리의 건축을 위한 그리스도와 같은 자가 되기

    위한  삶을 살기 위한 우리의 기도가 목표로 삼아져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아멜렉은 영의 원수입니다.

    육체인 아멜렉을 통하여 영이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의도를 자꾸 빼앗아버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수인 육체인 것입니다.  우리는 육체가 우리의 원수로서 우리에게 대적하여 싸우는 동안에

    우리는 순종할 의도도 없고 순종할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7절 8절 말씀에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그래서 자꾸 우리의 영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마비시키려는 능력을 가진 이 육체를 없애기 위해서는

    대제사장직분을 가진 아론과 왕권을 가진 홀이신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해서 중보 기도하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가 되는 삶을 살지 아니하면 절대 이길 수가

    없다 라는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말렉 족속을 통해서 출애굽기17장 16절에 그때  여호와의 보좌를 치려고

    손이 들렸으니 5절에서 깃발 나오죠 여호와 닛시라고 했는데 이 깃발을 통하여 그 여호와의 이름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깃발이다 라는 뜻을 가진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제단을 통하여

    육체에 대한 우리의 승리를 기념하는 것이 뭡니까? 깃발을 꽂는 것입니다.

     

    여러분 적과의 싸움에서 6.25 전쟁을 생각해 보세요.

    이 북한군과 남한군이 싸워서 이 대적자를 물리치고 산위에서 맨 처음 하는 일이 뭐죠? 깃발을 꽂는 행위입니다. 깃발은 승리를 표현하고 승리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승리를 기념하는 것이 십자가 아닙니까

    출애굽기 17장 15절에서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 닛시 라고 하였다 라는 이것은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제공해 준 우리의 깃발이 되시고 우리를 승리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무엇을요? 아멜렉이라는 육체를 상징하고 있는 그것을 우리의 영이 승리를 누림으로 말미암아

    승리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머리 팻말에 바로 히브리어 헬라어 아람어로 기록돼 있지 않습니까?

     

    유대인의 왕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는데 종교와 정치와 문화를 각각 대표하고 있는 모든 것을 승리로

    이끄신 분이 바로 십자가를 통한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멜렉이 하나님의 보좌를 거스르기 위한 가로막는 손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단과 하나가 된 아멜렉 우리의 육체는 바로 창조되어졌으나 하나님의 안배에 따라서 아담이 창조되어졌으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실족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보좌를 거스리는 손이 육체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육체가 늘 하나님께 반역적이 됨으로 말미암아 영의 일이 도모되지 못하고 마비가 되고 순종하지 못하고

    순종할 능력도 없게 만들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늘 거스르게 하고

    하나님의 보좌에 가까이 가려는 그 길을 가로막는 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멜렉이라는 육체를 가진

    그 존재가 바로 하나님께 반역적일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원수라는 것입니다.

     

    육체가 하나님의 보좌 하나님의 통치적인 행정 모두를 거스리고 가로막고 대적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를 통한 모든 것들은 선하든 악하든 다 하나님의 권위를 대적하는 원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는 모든 것 0.0001%도 해당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바로 출애굽기 17장14절 말씀인 것입니다.

    17:14 그때에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기억하기 위하여 이것을 책에 기록하라.

    그리고 여호수아의 귀에 그것을 되풀이하여 말하라. 왜냐하면 내가 하늘 아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철저히 없애겠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육체와 지속적으로 싸우시겠다 라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육체가 없어질 때까지 육체가 하는 일과 도모되는 일이 완전히 무력화되고 무효화되기까지

    지속적으로 싸우시겠다 라는 것이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의 닛시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의

    깃발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지성소인 성막 안에 지성소가 보존되어

    있는데요 하나님의 거처인 성막 안에 성소와 지성소로 건축이 되어서 우리가 육체를 뛰어넘어 십자가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인하여 아멜렉과의 전쟁을 통하여 승리하는 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원수요 우리의 대적자인 육체가 완전히 처리가 되어서 제거될 때까지 왕권으로 오신 유다 지파의

    왕권을 상징하고 있는 홀과 바로 이 제사장 직분을 상징하고 있는 대제사장인 아론과 함께, 곧 대제사장이요

    우리의 영원한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왕국이 세워질 때까지 육체의 일이 영에게 간섭하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이기고 승리하는 싸움을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그러한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양을 가진 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온전히 그리스도와 똑같은

    자들로 건축될 수 있음을 바로 왕권으로 오신 대제사장 직분을 가지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선하든 악하든 할 것 없이 우리 하나님의 권위를

    대적하는 원수이기 때문에 육체의 선한 방면도 우리가 거절해야 되고, 육체의 악한 방면도 거절함으로

    철저하게 완전히 배격하고, 배제하고, 거절하고 이렇게 단절시킴으로 말미암마 우리가 바로 육체를

    거절하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육체가 없어질 때까지 우리의 육체를 위해서 싸우시는

    주님의 뜻을 따라서 싸움으로 말미암아 아멜렉을 멸망시키는 일을 우리가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이 육체를 상징하고 있는 아멜렉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고 멸망되어져야 할 것들 가운데

    자기의 천연적인 관념에 따라서 취해야 될 소나 양이나 짐승중에 좋은 것들, 보석들 또 아멜렉족의 왕인

    아각을 남겨둠으로 자기가 승리했다 라는 어떤 자기의 명예욕 하나님 권위 대신에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고자

    했던 권세와 명예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양과 소와 짐승들 가운데 좋은 것들은 탐심과 탐욕에 대한 것들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모든 육체, 아멜렉으로 표현되고 있는 모든 것 명예, 권세, 탐심, 탐욕, 정욕적인 거 뭐 할 것

    없이 다 멸망시켜야 되는데 좋은 몇몇 가지들을 남겨놓음으로 말미암아 왕권을 잃어버리고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것이 사무엘상15장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까지 스바냐서 3장 16절에 네 손을 축 늘어드리지 말라 라는 장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손을 늘어뜨리는 것은 이 아멜렉으로 상징되고 있는 육체의 삶에 기울어지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노래하고 큰 소리로 그 승리의 함성을 지를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육체의 일이 도모되는 것이 멸망당하고 파쇄 되어야만 우리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 때 왜 두 손을 들죠?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왕권을 가지고 오신 홀로 상징되고 있는 유다 지파의 왕권의 상징인 홀과  대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바로 그리스도를 향해서 우리가 간구하는 갈망의 모습인 하늘을 향해서 두 팔을 올릴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육체와 싸우기 위해서 십자가의 승리를 통한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의 깃발로 상징되고

    있는 끝까지 우리의 육체를 파쇄시키기까지 그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계신 주님의 열망에 따라 두 손을 높이

    들고 우리 육체의 문제가 해결이 될 때 영의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 너에 대한 심판을

    거두었고, 내 원수를 쫓아내버렸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 원수가 무슨 원수입니까? 이 원수는 아멜렉 족속뿐만 아니라 여러 원수가 있죠.

    특별히 가나안 땅 일곱 족 속을 상징하고 있는 가나안은 바로 물질 재물들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원수 가운데 육체 안에는 이 재물들을 소유하고자 하는 돈에 대한 욕심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쫓아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의 영 가운데 그 참 왕이신 그분이

    내주하셔서 우리라는 영의 보좌에 그분께서 좌장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시는 재앙을 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시온아 네 손을 축 늘어뜨리지 말고,  두 손을 하늘을 향해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향해서 구원을 베푸시는 강하신 분이시다 라고 외쳐서 너희가 기쁨으로 노래하라 시온의 딸아 기쁨으로 노래하여서 환호하고 승리의 함성을 질러라 라는 4번의 함성과 한 번의 환호 우와~ 맨 먼저 시온의 딸아 환호하여라. 시온의 딸아 노래하여라. 큰소리로 노래하여라 이것은 환호죠 오! 이스라엘아 크게 외칠지어다. 승리의 함성이죠  네 번의 승리의 함성 속에 한 번의 환호로 나타난 이것을 통해서

     

    17절에 그분께서 네 가운데 계신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신 강하시는 분 너희를 이기게 하는 분

    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 즐거워하시며 자신의 사랑 안에서 잠잠히 사랑하신 가운데서 안식하시며 너로 인해 노래를 부르고 기뻐하시리라. 네 한가운데 계시는 주 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능하신 자이시니

    그분께서 구원하시고 너로 인하여 기뻐하며 여러분 기뻐하며 라는 말 속에 환호와 큰 승리의 함성이 있는 겁니다.

     

    여러분 기뻐하며 즐거워하시고 친히 사랑하신 가운데 안식하시며 말할 수 없는 큰 음성이 아~ 우리로 인하여

    주님께서 친히 사랑하시는 가운데 안식하시며 우리로 인하여 나로 인하여 여기에 너는 나, 나 개인인 나인

    것입니다.  나로 인하여 노래를 부르고 기뻐하신 하나님이 우리 때문에 노래를 부르고 기뻐하신다 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승리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능하게 하시는 분이신 그분께서는 우리를 승리하게 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때문에 구원하시는 그분은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승리한 것을 보고 기뻐함으로 승리의

    함성을 나타내고 즐거워함으로 승리의 함성을 나타내고 사랑하시는 가운데 안식하시며 승리의 함성을

    나타내고 우리로 인하여 노래를 부르고 기뻐하시는 것을 통해서 승리의 함성을 지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바로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하며 노래하여라 환호를 불러라 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 14절에 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환호를 하여라.

    오 이스라엘의 딸아 크게 외칠지어다. 승리의 함성을 너희가 크게 질러라.

    왜? 너희가 마음을 다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님께서 이러 이러한 일들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여러분 오늘의 교제는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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