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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을 통한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사랑이야기 (후편)말씀 나눔방 2023. 8. 7. 16:37
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전편에 이어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 중에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요셉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어떻게 그들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친히 어루만지시고 간섭하시고 다루시고 때로는 뒤에 은밀하게 보이지 않게 그 아들들을 이렇게 간섭하시는 그러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조성되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세상에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고 하나님 자신의 뜻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이 창세기 1장26절 말씀대로
사람을 우리의 형상대로 만들고 우리의 모양대로 지어서 모든 것들을 다스리게 하고 통치하게 합시다 라는
이 통치자 다스리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그 사람들을 다루시고 만들어 나가시고 조성하시는 방법을
요셉을 통해서 어떻게 다루시고 계신가를 제가 전편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요셉이 그 형제들을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그 형제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은 가슴속에 은밀하게 감추고
오히려 외면적으로는 엄격하고 냉대시하고 차갑게 대함으로 말미암아 그 요셉의 비밀스럽고도
은밀한 사랑은 곧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조성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다루심의 방편으로 그리하신다 라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이스라엘의 12 아들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먼저 생명으로 충만한 자로 만드신 다음에 17세에
그 형제들에 의해서 팔림 당한 그 요셉이 십삼년이라는 굴곡진 어둠의 터널을 지나가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를 생명으로 충만하게 합니다.
생명으로 성숙되게 하여서 영의 지배함과 다스림을 받는 그러한 자로 먼저 만드신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였던 요셉을 통해서 형제들을 다루는 것을 우리는 창세기 42장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들여다볼 수가
있습니다.
그 요셉을 먼저 만드신 후에 아직 조성되어지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건축되어지지 아니한 그 르우벤과 같은
첫 번째 이스라엘의 장자였던 르우벤 그 들끓는 정욕으로 말미암아 아비의 침상을 더럽힐 수밖에 없는
악한 자의 모습은 다름 아닌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의 모습이요 그리고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아들 시므온과 세 번째 아들 레위 그 자기들의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딤나가 세겜 족속의
족장의 아들에 의해서 겁탈당하자 그 충동적인 마음과 분노를 자제시키지 못하고 급기야 모든 생명들을
짐승들까지도 어린 아이들까지도 다 죽여 버리는 그런 일들은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선택받은 자들로서
그 생명의 곡식단 생명을 생산 하여서 나누어주는 자들로 부적합한 것입니다.
하늘의 빛나는 발광체 해와달과 별에 그 빛을 이 땅에 전달해 줄 수 있는 생명을 생산하여 산출시켜주고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 줄 수 있는 자들로 너무나 부적합하고 결격사항이 있고 모자라는 미비한 그런
악한 삶의 성향을 가진 자들 그 충동적인 정욕을 지니고 충동적인 분노를 표출한 것이 살인으로 드러내고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처럼 그리고 네 번째 그 형제였던 유다는 자기의 며느리를 이렇게 잠자리를 통해서
정말 있어서는 아니 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혜 가운데 그 유다를 유다 지파 사자로 예표된 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로 오실 것을 하나님께서 엿보게 해 주신 것은 또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처음에
그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들의 모습들은 너무나 악하고 정말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죄인들의
모습이었지만 그들의 삶들이 점점 하나님께서 친히 환경과 장소와 사람들을 통해서 아비를 또 형제를
또 부족 과 국가 이웃 그렇게 주변 국가들의 충돌로 인해서 그 아들들이 점차 변화되어지고 자라고 성장되어서
생명으로 충만한 자들이 되어서 요셉처럼 생명의 양식을 나눠주는 그 축복 가진 자들로 축복을 표현하는 자들로
그리고 급기야 12번째 아들인 베냐민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거처가 그를 통해서 이렇게
만들어짐으로 말미암아 어깨와 어깨 사이에 마치 베냐민 지파 맨 아래 접경지역에 위치한 예루살렘이라는
신명기33:12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맟도록 보호하시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로다
왕의 도성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그곳을 베냐민 지파에 있게 함으로 말미암아
가장 가까운 곁에 베냐민이라는 땅 안에 하나님이 그 보좌를 도성 안에 자리 잡고 있게 함으로 말미암아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처가 그 베냐민을 통해서 맨 마지막 12번째 아들을 통해서 그러한 자들로
변화시키고 많은 그 역경과 어려움 가운데 생명의 충만함을 요셉을 통해서 드러내고 그리고 베냐민를 통
해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장 기뻐하고 만족하고 안식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집이 그 자리에 그가 속해
있는 땅에 자리 잡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져 가고 있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창세기 전체 말씀입니다.
마치 그것은 야곱의 삶과 똑같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기도 하고요 바로 우리가 그런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과
같은 삶의 굴곡진 삶을 살고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친히 이렇게 간섭하셔서 죄악으로 기울어진
성향을 가진 정말 르우벤과 레위와 유다와 같은 그런 또 나중에는 단 처럼 변절될 수밖에 없는 그런 아담이
범죄함으로 타락하여 훼손된 혼의 생명이 하나님의 것으로 이렇게 전체적으로 충만해야 되는데
이 세상에 땅의 것으로 뱀에 그 독소로 인하여 이렇게 혼합되어지고 섞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오히려
하나님의 뜻대로 일치하는 삶이 아니라 그릇된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잘못돼 가고 있는 그들의 생애를
그들의 삶 속에 친히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만들어 가시는 결국 영 하나님이신 영의 지배함을 받고
영의 다스림을 통해서 가장 좋은 하나님의 집이 그들 땅 속에 베냐민이라는 땅 속에 예루살렘이라는
도성이 자리하고 있는 것보다도 더 좋은 하나님과 하나된 삶 영의 다스림을 받는 영의 통제를 받는 그런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요셉을 먼저 만드시고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형제들을 다루시는 것이 창세기
42장 말씀이라는 것을 제가 먼저 전편 교제를 통해서 대략적인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요셉이 자기 형제들을 다룸에 있어서 비밀스럽고도 은밀하게 다루는데 형제들은 그걸 몰랐어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당사자는 열두 아들 중에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의해서 친히 하나님의 손길로 다루심을
받아 변화 받고 조성되고 만들어진 그래서 영의 생명으로 충만한 요셉만이 그 형제들과 함께 식당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들의 말을 들었을 때 형제들은 그 요셉의 실체와 정체를 몰랐기 때문에 요셉인 줄 알지 못하고
자기들의 언어로 얘기했을 때 요셉은 그 말들을 다 듣고 알게 됐던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도단이라는 곳에 갔을 때 나를 죽이려고 그 도단의 깊은 어둠의 구덩이에 빠뜨리고
미디안 상인과 이스마엘 상인에 의해서 팔아서 이러한 우여곡절 속에 삶의 과정을 갖게 된 그 경위와 아버지께서 만들어서 친히 선물한 아름다운 채색 옷을 입고 있는 저 꿈을 꾸는 자 저 요셉을 우리가 죽여버립시다 라고 앞장서서 주동한자가 시므온 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를 더 특별히 관리를 하기 위해서
왜냐하면 너무 악한 성향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변화시켜주어서 조성해 놓지 않으면
하나님의 그 생명의 곡식단 그리고 해와달과 별의 빛나는 발광체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사람들에게 만유에 펼쳐 보일 수 있지 않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그런
자들에게는 악에 고착화된 자들에게는 특별히 그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더 심한 고난과 어둠과 죽음의 장소에
특별 훈련을 6개월이라는 그 시간을 특별 감금해 놓으면서 그에게 외로움과 어두움과 슬픔과 마음의 고통과
그리고 말할 수 없는 마음의 죄책감을 이렇게 깨닫게 하여서 그 죄들을 씻어내주는 그 요셉의 다룸은
다름 아닌 한 분 하나님 안에 계신 바로 아들 예수님과 그리고 동전 을 찾는 여인처럼 드라크마 10개 중에서
하나를 잃어버렸다면 그것을 등불을 켜고 쓸며 찾을 때까지 찾지 않겠느냐 라는 영의 하나님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그런 특별한 간섭과 활동과 역사에 의해서 그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생명의 숨
하나님의 그 호흡을 불어넣어주셔서 돌이 되게 하고 돌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또 신약시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6: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를 부르면서 게바라 이름을 주었던 것처럼 돌이 되게 하고 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선포했을 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구나 하면서 그를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라는 얘기를 통해서 결코 요동침이나 흔들림이 없는 산돌이 되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신령한 주춧돌 이신 그 돌과 하나로 연결되고 일치가 되고 연합됨으로 말미암아 산돌이 되기
위해서 그 산돌이 여러 변화의 과정인 자람과 성장과 생명의 충만함이 흘러 흘러 나가는 그런 과정의 흐름
속에 성령님의 역사 속에 그 돌이 아름다운 12가지 형형색색의 호마노 진주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 속성 자체를
이렇게 드러내는 정금과 같은 자로 만들어져서 바로 하나님의 집 그 하나님의 집들이 모여서 예루살렘 성전
계시록 22장 1절 2절에는 그 생명에 관한 충만한 예루살렘 도성에 대해서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시록22: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창2:10, 겔47:1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겔47:12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하나의 아담이 범죄하여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티끌과 진흙으로 만들어진 그 몸이 변화되어서
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어지는 곧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을 이렇게 제공해주는 드려지는 하나님 앞에 안식을
하나님께서 쉴 수 있는 그 거처를 만들어주는 일이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에 그 일을 요셉을 먼저 만들어놓고
요셉을 통해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먼저 나이 17세에 팔려서 13년이 지난 그 13년이라는 기나긴 그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섭리 과정 속에서 모든 아픔과 시련과 눈물과 어두움과 외로움과 모든 것을 허용해 주는 용납해 주는
왜냐하면 그렇게 그를 내동댕이 쳐지는 것처럼 외부 세계에서 그 요셉의 삶을 보면 저렇게 저주받은 자가 없다.
저렇게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가 있을까 어떻게 저 사람의 인생의 삶은 저런 일만 벌어지는가 발생하는가 하는
그렇게 오해받을 정도로 기묘한 삶 정말 마치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삶 이상한 삶 어째서 나에게만 이런
삶을 허락해 주십니까?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고도 보통적인 그런 삶이 아니라 나에게는 왜 이렇게 암울하고
굴곡이 있고 이렇게 어둡고 외롭고 고통 이런 삶을 허락해서 나에게 이 기구한 삶을 맞이하게 합니까 라는
그 요셉의 삶은 사실은 하나님이 그를 다루셔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주게 하는 자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철저한 다루심 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였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영이신 그 영의 하나님을 통해서 이 일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인간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거듭나고 다시 태어나고
영이 좀 더 확신 속에서 믿음 속에서 견고해져서 성령님의 그런 영의 하나님의 감동과 어떤 교통하심에
의해서 생명의 영으로 점점 충만해지고 기름이 부어져서 그 영이 함께 조금씩 조금씩 변화됨은 물론 생명의
영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빛을 나타내고 그 빛이 이 세상에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주는 영의 생명을 소유한 자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영의 다루심을 영의 지배함을 받는 자로 만들기 위해서 요셉의 모든 삶을 그렇게
관여하셨다 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삶이 르우벤과 같은 삶이라면 르우벤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좋거나 나쁘거나 크거나
작거나 모두 악의 길로 가는 일이지만 요셉에게 벌어진 일은 그게 그 어떤 일이라 할지라도 다 요셉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변화시키기 위한 조성하기 위한 건축하기 위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소유자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빚으심이었고 하나님의 다루심이었고 하나님이 친히 간섭하시는 만드시는
모든 축복의 손길이었다.
여러분들 하나님께서 귀히 보는 아주 존귀하게 사용 할 자 하나님께서 크게 쓰실 자 꿈을 그 하나님 관점에서
하나님 편에서 그 꿈이 어떤 꿈이든지 간에 그 꿈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온전한 자로 생명의 충만을
받아 영의 통치를 영의 다루심을 그가 받게 되었을 때 그를 통해서 자신의 꿈을 이루게 하여서 하나님의 집을
만들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그 요셉의 삶을 특별히 간섭하셔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도무지 어떻게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삶들이 펼쳐지지? 아니 이건 소설책이나 어떤 이야기 책으로 해도
그게 진짜 사실이야? 그런 얘기가 실제적인 일이야 라고 보고 듣고 읽는 자 조차도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삶 속에 내동댕이 쳐지고 나뒹굴어질 수밖에 없는 그러한 자로 보여지는 것이 사실은 하나님이
그를 만드시는 과정이었다. 그게 축복이었다. 그게 생명을 소유하는 방법이었다.
요셉을 그렇게 친히 다루지 않으면 야곱처럼 야곱의 삶 속에 요셉의 삶이 있고 요셉의 삶 속에
열두 아들의 모든 삶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열두 번째 아들이었던 베냐민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꿈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아들은 이스라엘의 사람들입니다.
그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은 무슨 뜻을 가지고 있죠 원래 야곱이라는 이름을 가진 속이고 빼앗고 취하고
탈취하는 그 이기적인 사람에서 나눠주는 자 하나님의 이스라엘 하나님과 싸우는 자 얼마나 그가 천연적인
힘이 강했으면 밤새 그와 천사로 나타났지만 그 천사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창세기32:24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26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28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29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성경에 나오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하신 예수님과 싸울 정도로 다퉈서 결코 패배하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천연적인 힘이 강했던 사람입니다.
그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환도뼈 위를 내리침으로 말미암아 그를 인위적인 방법에 의해서
꺾을 정도로 그는 그렇게 자신의 힘이 강했어요.
그 육신의 힘 자신의 힘 그 육신적인 방식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야곱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허물어 뜨리기
위해서는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친히 손을 댈 수밖에 없는 그런데 그가 나중에는 어떠한 자로 변화가
됩니까 여러분 성경에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창세기47장 29절에 야곱이 죽을 때가 가까워지자 요셉을 불러
유언을 하는 겁니다.
29이스라엘의 죽을 기한이 가까우매 그가 그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환도뼈 아래 넣어서 나를 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하여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30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 요셉이 가로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야곱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
여러분 여기에 나오는 환도뼈는 처음에 어디서 나오죠
처음에 야곱이 탄생할 때부터 하나님은 건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보여지는 현상이 넙적다리 힘줄이 붙어 있는 야곱의 넙적다리 환도뼈 엉덩이 뼈를 치신
것이 창세기 32장 25절에 여러분 나오고 있어요.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야곱의 엉덩이 뼈 환도뼈를 쳤다.
야곱은 그 사람과 씨름하는 중에 엉덩이 뼈가 엉망이 됐다. 하나님조차도 그의 천연적인
육신의 그 뜻을 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우리 인간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그것이 아담의 모습이고 그것이 르우벤의 모습이고 시므온, 레위, 유다 그런 자들의 모습이에요.
그것이 결국은 단 이라는 자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큰 역심을 품고 변절하는 그 사건 그 우상을
만들어서 마치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정말 딴 짓을 하는 변절된 모습을 보이는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18:30 단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18: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그래서 이 야곱은 환도뼈의 내려침을 당했던 그가 변화되어서 나중에 하나님 앞에 온전한 자로 성숙한 자로
조성되었을 때 그 아들에게 요셉은 장자를 상징하고 있죠 큰아들 앞에 자기의 모든 것을 곧 열두 아들들에게 당부를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내 넙적다리 아래 환도뼈 아래에 네 손을 넣어 다오 이게 뭡니까
하나님에 의해서 친히 그 손길에 의해서 다룸받고 누룸받고 변화받고 조성되어져서
이제 그 천연적인 힘 육신대로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생각으로 이기려고 했던 그 하나님조차도
이길 수 없었던 여러분 우리들의 그 잘못된 생각과 의지를 하나님도 이길 수가 없어요. 꺽을 수가 없어요
목이 곧은 자들을 절대 부드럽게 할 수가 없습니다.
특별한 하나님의 간섭이 없으면 그게 안 되는 일이에요.
그런데 노년에 죽을 때가 되어서 말년이 되었을 때는 환도뼈 밑에 니 손을 넣어다오 하고
완전히 하나님 앞에 그 천연적인 힘이 다 파쇄되고 파괴되고 허물어지고 깨드려지고 마치 십자가 위에
그 죄인이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산산조각이 난 것처럼 완전히 자신의 것은 없어지고 하나님에 의해서
영의 지배함을 받는 자가 됐다 라는 의미에서 내 환도뼈 밑에 아래라는 소리에요
그게 처음에는 창세기 32장 25절에는 엉덩이 뼈를 그 위를 쳐버렸어요.
얼마나 말을 안 듣고 천연적인 힘이 강했으면 그런데 지금 이 요셉에게 자신의 유언을 할 때는 천연적인 힘이
도무지 나타나지 않고 그냥 그저 두 손을 지팡위에 이렇게 얹은 상태에서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온전히 굴복하고 순종한 자기 목에 금사슬 금목걸이가 크게 걸어진 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승리한 자의 모습이고 이것은 탕자가 첫 번째로 받아 입게 된 의로 칭의된 구원의 옷이 아닙니다.
야곱과 요셉이 받은 옷은 금실로 수놓아진 빛나고 밝고 아주깨끗한 흰세마포 옷입니다.
이것은 이긴 자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이고 왕을 대면하여서 그 왕에게 인정받은 자만이
그에게 선물 받음으로 말미암아 입을 수 있는 옷인데 이것이 지금 야곱에게 입혀진 것입니다.
금 목걸이가 채워진 거예요.
창세기 32장 25절에 그 얍복강가에서 씨름할 때는 목이 곧아서 금 목걸이를 채워줄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그 말씀에 순종하고 그 영의 지배함과 영의 다루심을 받고 영의 다스림을 받은 말년에는 아주 목이
부드러운 자 목이 뻣뻣한 자가 아닌 목이 뻣뻣한 자에게 그 금목걸이는 걸어질 수도 없고 그것은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목이 뻣뻣한 자에게 금사슬을 걸어준다 한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에 의해서 속에 감춰지기
때문에 내보여야 됩니다.
내보이는 것은 그 빛나고 밝은 금실로 수 놓아진 그 옷을 입은 자가 아주 아름답게 치장을 한 모습과 함께
반지를 끼고 높은 자 앞에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머리를 아주 90도 각도가 아니라 완전히 엎드려서 절을 하는
경배하고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일 때 그 속에 차고 있던 금목걸이가 딱 드러나서 바깥에 나타나지는
것입니다.
그때 그 금목걸이가 나타나짐과 동시에 그 사람의 인격 그 사람의 전체적으로 만들어진
형상의 회복인 그 금 목걸이 금사슬을 통해서 그 사람의 실체 정체가 다 온전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금 목걸이는 무릎 꿇고 경배하는 자가 아니면 결코 바깥으로 드러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바로 금 목걸이가 드러나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히 복종하는 자 순종하는 자 성령님 앞에 순종하는 자에게 드려지고 성령님께
온전히 굴복하고 순종하고 완전히 복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귀한 선물이 금사슬 목걸이에요.
이게 두 번째 옷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만들기 위해서 요셉을 먼저 하나님께서 친히 다루셔서 생명의 영의 통치를 받게
하셔서 영의 다스림을 받게 한 것입니다. 그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조성되고 만들어진 자가 보좌에 앉음과 동시에 그 선물을 받게 되고 그리고 제사장의 아내
(애굽 여인인 이방교회를 상징함)를 또 얻게 되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또 이렇게 생산을 해내고
이러한 모든 일들은 그가 온전히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는 순종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종하는 자에게 드려지는 선물이 무엇인가요 바로 그게 금사슬 금 목걸이입니다.
그 성령님의 역사를 성령님의 모든 것을 드러내주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승리의 왕이 되신 다음에 하나님께 받을 가장 귀한 선물이 성령님 이셨듯이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바로 금 사슬 목걸이인데 이것은 영의 하나님 생명이신
영의 다스림을 받는 자 순종하는 자 영의 통치함을 받는 자 영의 통제 아래 있는 자 그렇기 때문에 영의 통제 아래 있는 자가 요셉이었기 때문에 곧 그 안에 야곱이란 자가 야곱은 누구예요. 그 장자로 예표된 요셉의 아비입니다.
그 요셉은 이스라엘의 아들이에요. 곧 이스라엘의 아들이 통치하고 보좌에 앉았다는 것은 야곱이 그 생명의
충만한 자로 변화되고 조성되어서 그를 통해서 야곱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요셉이 그 나라의 통치자가 되었지만 실제적으로 그 아비 이스라엘이 그러한 생명의 양식을 나눠주는 것으로 성경은 은연 중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생명의 영이 충만하여서 정말 그 목걸이에 목이 곧은 자였었지만 목이
부드러운 어린아이처럼 순전하게 온전하게 굴복하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그에게는 금 사슬 목걸이가
큰 목걸이가 보이지는 않지만 요셉에게 주어진 그것은 야곱에게 주어진 거나 똑같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변화되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다퉈서 이긴 자 얼마나 그가 고집쟁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그 이름의 뜻에서 볼 수 있잖아요.
그가 천연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나중에는 매 맞고 파괴되고 부서지고 녹아지고
위에서 눌려지고 압축되어지고 풀무불에 들어가고 나오고 이런 삶들을 통해서 그가 생명의 영의 통치를
받는 자가 되어서 생명으로 충만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가장 높은 바로 왕 앞에 들어가서 만나자마자
축복을 해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히브리서7장7절 항상 얘기하죠.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위해서 축복 기도를 해 줄 수 있고요 낮은 자가 높은 자에 의해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있지 않습니까
히브리서:7:7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빎을 받느니라
그가 생명으로 충만하여서 하나님 앞에 다스림을 받는 자이기 때문에 세상을 다스리는 최고의 높은 자
왕이라 할지라도 세상 첫 번째로 높은 지위와 권세 면에서 가장 높은 자라 할지라도
이 방면에서 하나님의 것을 받은 이 야곱이나 요셉에 의해서 나오는 가장 못한 것은 세상에 가장
우월한 것보다도 말할 수 없이 천양지차이로 하늘과 땅 차이 처럼 큰 간격을 가지고 하늘의 것을
소유하고 있는 자가 이 땅의 사람들은 하늘의 것을 전혀 소유하지도 못하고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하늘의 자기가 소유받은 그 생명을 그 바로에게 이렇게 기도를 해줄 때 그가 그 하늘의 것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 얘기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기까지 모든 것을 정복했다는 얘기입니다.
르우벤처럼 그 들끊는 정욕을 정복했고요 시므온과 레위처럼 그 들끓는 분노 그것을 잠재우는
그런 변화된 자기가 정욕으로 인하여 통제를 받았던 사람 들끓는 분노로 인하여 사람들을 죽였던 사람들을
살인 하였던 그 시므온과 레위 그리고 넷째 아들 유다 그 자기의 며느리를 이렇게 잠자리 그러한
모든 것들은 육신의 정욕을 영으로 그래서 혼을 생명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렇게 육체를 생명으로 표현해주는 것이 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영의 사람으로 이렇게 변화시키지
않으면 그러한 아담이 범죄하여 타락한 그런 모든 죄악으로 기울어진 성향들을 이겨나갈 수가 없습니다.
억지로 세울 수는 있지만 스스로 이겨 나가려면 하나님의 전적인 힘을 의지하고 이겨나가는 삶이 필요한데
그것을 위해서 야곱을 만들고 그 야곱의 후반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요셉을 통해서 이러한 삶을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영의 다스림을 받고 지배함을 받고 순종하는 사람의 삶은 그 다른 세상에 어떤 사람의 가장 우월하고 높은 자보다도 훨씬 더 우월하고 초월적인 존재이며 높기 때문에 이 세상 통치자가 바로가 그 양식을 공급받기 위해서 그에게 찾아온 그 이스라엘에게 축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는 얘기를
이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 말씀들을 통해서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요셉은 뭡니까 생명의 영을 충만히 받아서 그 생명의 영에 생명 주시는 영 급기야 신약 시대 때는
부활의 그리스도이신 생명의 영이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통제를 받고 만들어 짐으로 말미암아 요셉에
의해서 자기 형제들을 자기를 비롯한 모든 자까지 포함된 그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요셉을 다루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은연 중에 다루고 있음을 우리가 엿볼 수가 있습니다.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자입니다.상징입니다.
요셉의 생활 그 자체는 구약성경에서 그렇게 순전하고 완전한 삶을 사는 자가 없어요.
얼마나 완전합니까 죄의 모습이 드러나 있지 않아요.
사람이면서도 죄의 모습이 드러나 있지 않는 것은 바로 영의 통제를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꿈을 준 것입니다.
17세 그쯤에 두 번의 꿈을 각각 하늘과 땅의 생명을 산출시키는 곡식 단과 하늘의 빛나는 발광체로서
보이게 하는 그러한 해와 달과 별을 통해서 은연중에 나타나는 그러한 빛나는 광명체 그리고 생명의
곡식 생명을 생산해내서 양식을 전달해 주는 곡식 단으로 꿈을 보여준 것은 그 요셉의 삶 속에 친히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생명의 영이 친히 주관 하셔서 영의 다스림 영의 지배함 영의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빛과 생명의 양식 곧 영양분을 이렇게 공급해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다루셨습니다.
물론 성경을 읽어보면 이렇게 생명을 산출시키는 곡식단에 대한 얘기와 빛에 대한 얘기 해와 달과 별에
대한 이야기 꿈에 대한 얘기는 있지만 생명에 대한 얘기는 없지만 그 모든 것이
요한복음 1장에 4절 보면은 예수님께서 친히 얘기하신 것이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빛은 높은 하늘에 빛나는 광명체들 해와 달과 별 그걸 상징하고 있죠 구약시대 그다음에
생명의 곡식단 거기에는 그 곡식 곡물 양식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영양분이 들어가서
생명을 유지하고 생명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생명입니다.
바로 이 빛과 생명은 은연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란 단어는 이 창세기 말씀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모든 말씀 하나하나에
생명이 들어가 있지 않은 말씀이 없어요. 한마디도 헛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는 생명으로 가득 차 있어요. 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들을 가지고 오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요셉을 다루셔서 먼저
애굽 이라는 나라에 이렇게 처하게 하시고 또 우여곡절의 여러 과정들을 통해서 보좌에 앉혀놓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의해서 만들어 나가는 그 조성된 과정들을 통해서 그리고 그들을 불러 세우기
위해서 그들이 요셉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뭡니까 이 땅에서 그 멀리 떨어져 있는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그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아들들과 그 후손들이 멀리 이 애굽에 속해 있는 요셉을 이렇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그 땅에 기근을 줘야 됩니다.
땅에 기근을 통해서 양식이 핍절하고 양식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배고파 죽게 되었을 때 양식이
많은 바로 애굽에 그들의 발걸음과 마음과 뜻이 가게 되어서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41장 56절에는 그 말씀이 써져 있는 거예요.
온 지면에 기근이 들자 요셉은 모든 곡식 창고를 열고 애굽 사람들에게 곡식을 팔았다.
그런데 애굽 땅에 기근은 더 심하였다.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이집트 땅에 기근이 더 심해졌다는 것은 온 땅에 기근이 확장되어졌다는 것입니다.
57절에 그 말씀이 있어요. 온 땅에 사람들이 곡식을 사려고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왔다.
기근은 뭡니까 바로 이스라엘과 요셉을 제외한 열한명의 아들 곧 전체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애굽에 가서 만나서 상봉하여 그 나라에 400년 동안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땅에 기근을 온 세상에 기근을 주었다라고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장면이보입니다.
창세기 42장 전체가 기근에 대한 얘기인데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해 주게 하는 그 양식이 부족하다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양식을 통해서 생명을 유지시켜주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은연 중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배고프다 라는 것은 기근을 통해서 양식이 곡물이 보이지 않게 된다 라는 것은 배부름이 없다는 뜻입니다. 배부름이 없다 라는 것은 뭡니까 만족이 없다는 거예요.
생명을 유지하거나 생명을 보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다 그렇지는 않지만 거의 대부분이 이러한 기근으로 가득 차 있어요.
땅의 양식 보이는 그 양식의 고갈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하늘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고 영의 성령님의 생명의 영이 되셔서 우리에게 흘러 흘러 이렇게 생명의 양식을
소유하게 하고 영양분이 되게 하기 위해서 흘러 흘러 적셔지게 하는 이런 일이 지금 교회를 통해서
이 진리의 말씀이 빛이 되게 하고 생명이 되게 하는 이 일들이 어디엔가 그 빛과 생명을 전달해 주는 교회가
있을지 몰라도 눈에 확연히 띄지 않게 아주 감춰진 아주 소수의 이게 굉장히 마음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금 기근이 온 세상에 온 땅에 기근이 심해진 때입니다.
41장 56절의 말씀처럼 온 땅에 사람들이 곡식을 사려고 다 가지만 다른 곳에는 없어요.
이집트에 다른 사람에게 가도 양식을 공급해 주는 자가 없어요.
그 생명을 공급해 주는 자는 생명을 소유한 요셉 외에는 없어요.
그래서 17세에 팔려서 13년 동안을 생명을 소유한 자가 되어야 생명의 양식을 전달해
줄 수 있는 꿈에 곡식단이 절하고 빛이 이렇게 절을 하는 그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가 먼저 생명을 소유함 받아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셔서 다루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 속에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다루고 계셔요
때로는 어둡게 때로는 눈물 나게 때로는 고통스럽게 때로는 외롭게 때로는 정말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할 수밖에 없는 많은 그 이상한 일들이 처음에 제가 이 사실을 몰랐거든요.
근데 요즘에는 나에게 위에서부터 짓눌르는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나를 크게 엄히 다스리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것을 알고 기대가 됩니다.
지금은 얼마나 기대가 되고 고대가 되고 사모가 되는지 감사가 돼요.
오히려 나를 얼마나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로 조성해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애를 쓰시고 노력하시고 정말 나의 생명을 소유하게 하기 위한 그 일 때문에 진짜 고군분투하고 계신 아들 하나님 영의 하나님 천부 아버지 하나님의 역사를 은연 중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다루지 않으셨다면 생명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생명은 애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애굽의 요셉의 손에 달려 있어요.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바로 이 신약 시대 때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생명의 구원자가 되신 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그런데 예수님 허리에서 생산된 산출되어진 교회들입니다.
성도들입니다. 교회요 선교회요 예 그렇습니다.
우리들을 통해서 생명이 지금 전해지고 있어요.
그 생명을 생명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이면 살게 되고 술관원장 처럼 그것을 하찮게 여기고 거절하면
오른편 강도와 왼편에 있는 강도처럼 하나는 조롱하고 당신도 구원하고 나도 한번 구원해 봐
그러나 한편 강도는 당신이 오늘 하늘나라에 가거든 아버지의 나라 하나님 나라에 가거든
제발 나를 기억하여 주옵소서 할 때 내가 오늘 나와 함께 진정 낙원에 있으리라
예 그 생명을 소유한 자라는 것을 알고 가장 가치 있게 여기고 존귀히 여기고 그분 앞에 두려워 떠는
자들에게 순종하는 자에게는 생명의 양식이 나누어진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요셉에게 이 문제를 그 생명을 나누어주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먼저
그 에게 13년이라는 세월을 통해서 생명의 양식을 나눠줄 자가 되기 위해서 먼저 영의 통제함을 받고
영의 다스림을 받는 생명 주시는 생명의 영의 하나님에 의해서 충만한 삶 넘쳐 흐르는 삶
그것을 소유하게 한 것입니다. 간섭을 하셨던 것입니다. 조성해 간 것입니다.
여러분 양식은 창세기 42장 5,6절에 보십시다
창:42;5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6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여기에 보면 이 기근이 들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기근이 들었어요. 7년 동안 풍년이 있었기 때문에 아마 다른 나라들도 그와 걸맞게 아마
양식을 생산할 수 있는 풍년 가운데 그들은 아마 허랑방탕하게 그 양식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냥 비축하지 않고 그냥 막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7년이라는 어떤 풍년이 지난 다음에 흉년이 갑자기 찾아왔을 때 1년 2년 동안에
모아놓은 그 곡식들이 고갈이 되고 핍절이 되어서 다 이제는 떨어져 나가는 그 상태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해야 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곡식을 사러 가는 겁니다.
근데 5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끼어 곡식을 사러 갔다.
왜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근이 온 세상에 퍼졌습니다.
그런데 6절에 보면 요셉은 그 땅을 다스리는 총리였으며 그 땅의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고 있었다.
여러분 제가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생명의 양식은 누구에게만 있습니까
그 어떤 세상 그 어떤 나라에도 없어요. 애굽에 양식이 있었지만
그 양식을 친히 그 손길에 의해서 공급해 주고 나눠주고 분배해주는 자는 요셉
그 나라의 통치자였던 가장 높은 권세자 였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를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요셉에게만 있다 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양식은 누구에게만 요셉에게만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그랬죠
요셉은 누구요.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양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만 있다.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기근을 당한 자 배고파하는 자 만족이
없는 자가 가서 생명의 양식을 먹고 배부름으로써 기쁨과 만족과 안식을 누리는 곳이에요.
그런데 그 교회에 찾아갔는데 이러한 만족이 없고 배부름이 없고 기쁨과 만족과 안식이
없다 라면 그곳은 생명의 양식을 나눠주는 곳이 장소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제가 이것을 얘기하고 싶은 거에요 여러분 혹시나 그런 곳에 있다면 그냥 시계 추처럼
왔다 갔다. 교회 생활 하지 말고요 그곳에서 나오셔서 다른 생명의 양식을 통해서 나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기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양식은 누구에게만 있어요.
요셉에게만 그리스도에게만 지금은요 교회 생활 이런 교제를 하는 이유가 뭐예요.
이곳에 여러분들에게 만족이 없고 기쁨이 없고 이 말씀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진정한
참 안식 배부름이 없다면 여러분 이 말씀 들을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여러분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면 이것은 생명의 양식이 나에게 없다 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정말 제삼 제사 숙고하여서 이 말씀을 듣고 여러분에게 생명이 된다 라면
이 말씀의 교제 생활에는 여러분 생명의 양식이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겁니다.
생명의 양식은 누구요. 요셉에게만 요셉은 누구를 얘기하고 있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다고 그랬잖아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생명의 양식이 있고 지금은 교회 생활 교제 생활 하는 교회에만
이 생명의 양식을 나눠주는 곳이에요.
그런데 배부름이 있고 만족이 있고 기뻐야 돼요 정말 할렐루야 날마다 외치고 부활의 삶의 경험
다시 태어나는 그 삶의 경험이 거듭나는 사람이 날마다 매시간 벌어져야 되는데 그것이 없다면
여러분 내가 전하는 이 교제 생활에서 떠나야 돼요 왜냐하면 나는 여러분에게 생명의 양식을 전해주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듣고 여러분의 마음속에 정말 분쟁이 일어나고 다투는 문제가 일어나고
그리고 나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그런 일이 이렇게 계속되고 생명을 소원하고 싶은 들으면 들을수록
생명을 갈망하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 이 교제 속에는 생명의 양식이 그리스도가 있다 라 는겁니다.
생명의 양식은 이 요셉에게만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요셉에게 갔어도 생명의 양식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는 교회를 통해서 참 배부름과 만족과 기쁨과 아주 이렇게 정말 여유 있는
그런 안식과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여러분들은 생명의 양식이 없는 그리스도가 안 계신 곳에서
교회 생활 교제 생활을 하고 있다라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근 아래에 있으면 빨리 양식을 나눠줄 수 있는 그곳으로 찾아서 가야 됩니다.
소문을 들어야 됩니다. 어디어디에 양식이 있다는 얘기는 우리가 다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양식을 딱 먹어보면 그 양식이 참 생명의 양식인지 아니면 죽음의 양식인지
그냥 알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스라엘 아들들이 창세기 42장 5절을 통해서 이스라엘 아들들도 다른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곡식을 사러왔다 요셉에게만 생명의 양식이 있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우리의 생명의 유지와 보존을 위한 이 만족함은 이 배부름은
오직 요셉에게 있었듯이 예수 그리스도 곧 교회 생활 안에만 있다.
교제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가고 그것을 통해서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올리고
내 영이 살아나는 이러한 생활들 속에 있다.
여러분 교회 생활이 그래서 교제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는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을 수 있지만 단체적으로도 이 교회 생활을 통해서 교제 생활을 통해서
우리가 견고해지고 정말 강건해지는 삶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얘기를 해드립니다.
기근은 언젠가 그리스도가 안에 들어오셔서 영의 다스림을 받는 순간에 이 기근은 그제서야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삶이 17세에 팔려서 13년이란 그런 암울한 어둠과 외로움과 고통스러운 삶을 지나 거쳤을 때
그가 생명으로 조성된 자가 되었을 때 그 자신의 삶이 끝나고 이제는 그 자신이 소유한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 주는 자리로 30세에 그 보좌의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금목걸이가 채워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끝나는 시점이 있어요.
지금 여러분 기근 아래에 있습니까 배고픕니까 그건 생명에 대한 갈망입니다.
영혼을 사모하는 여러분들의 영혼이 살고 싶어 하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라는 성령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시는 거니까 여러분 찾고 두드리고 여십시요 반드시 하나님께서 찾는 자에게 주시고 두드리는 자에게 문을 열게 하시고 그리고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여러분들이 소원하고 갈망하는
그 간구하는 것들을 반드시 일정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체험하고 경험된 일이기 때문에 자신 있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예 포기하지 마세요.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면은 이스라엘 그 아들들이 생명의 양식을 나눠주는 요셉에게 찾아가지만
요셉은 그 형제들을 다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2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죠.
17세에 팔려서 13년이란 세월이 지나 보좌의 자리에 생명의 양식을 나눠주는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13년의 세월 30세입니다. 30세가 지나서 7년 풍년이 지났어요.
37세예요. 그리고 1년 2년 흉년의 기간이 지났어요.
38세 39세쯤에 21년에서 22년 사이에 그렇게 긴 22년이라는 긴 과정의 시간을 지나 왔지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그러는데 요셉은 자기의 그 열명의 형제들 다 알아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변해도 알아볼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들은 변화된 요셉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왜 17세에 팔렸을 때는 그 요셉은 조성된 자가 아니에요.
만들어진 자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영의 다스림을 받는 자가 아니에요.
목이 뻣뻣해 가지고 그 목에 어린아이 처럼 부드러운 목이 되어서 영의 순종하는 삶을 사는 자에게
걸쳐지는 영광의 상징 바로 왕의 잔칫자리에 같이 겸상해서 식탁을 누릴 수 있는 그 두 번째 옷인
두 번째 옷을 빛나게 하는 더 드러나게 하는 더 높아지게 하는 그런 금 목걸이가 조성되기까지는
그가 많은 변화와 다루심과 엄격함이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에 삶이 필요 했기 때문에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어요.
변화되기 전에 요셉의 모습과 22년이 지난 후에 변화된 조성된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어진
여러분 돌이 보석으로 긴 긴 세월 지나서 한 줌의 흙이 돌이 되고 돌이 아름다운 아주 빛나는 아주
노랗고 빨갛고 하얀 형형색색의 파란 보석 에머랄드처럼 빛나는 보석이 됐을 때 이게 돌이야
아니 ! 돌이 어떻게 그 빛나는 보석이 됩니까 그렇게 변화되면 몰라보는 겁니다.
알아보지 못해 그걸 누가 돌이라고 그럽니까 원래 그게 흙이었어요.
처음에는 그 광물이 흙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것이 변화를 거쳐서 조성됨으로 많은 물의 흐름을 통해서 굳건해지고 단단해지고 불순물이 떨어지고
해서 그것이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어지는데 그들이 요셉을 알아보지 못한 거
발견하지 못한 것 알아채지 못한 이유는 변화되기 전에 요셉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2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그가 완전한 영의 지배함을 받고 영의 다스림을 받는
정말 영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됐기 때문에 땅에 속한 자들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아직도 땅에 속한 자들이 되어서 요셉을 상징하고 있는 그리스도 그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는 겁니다.
땅에 속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해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고자 온갖 음해와 손가락질과 비난과 거절 부인
알아봤다면 어떻게 그렇게 대해요. 예수님을
형제들이 꿈을 꾼 요셉을 알아봤다면 존귀하고 하나님께서 가치 있는 자로 만들기 위한 것을 알았다면
감히 저 꿈꾸는 자 저 채색옷을 입은 자 우리 죽입시다 라는 것에 어떻게 동조하여서 그 엄청난
그런 구덩이에 빠뜨리고 팔아버리는 그리고 죽이려고 까지 할 수가 있었겠어요.
그 일이 어떻게 가능했겠어요. 가치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치를 모르고 변화된 자를 모르고 기름 부은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죄악들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변화되기 전에 요셉은 알았어도 변화된 후에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22년 만에 만난 그는 엄청나게 자기들과는 천양지차로 하늘과 땅 차이처럼 완전히 바뀌어진 자 영의 통치함을 받고 영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집이 조성돼 있고 그 조성된 집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그 집은 아름다운 보석으로 건축되어졌고
그 안에 생명의 양식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넘치는 생명으로 나눠주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꿈이 이루어져 가고 있었어요.
여러분 우리는 1년 전 10년 전에 나와 20년이 지난 뒤에 나의 모습이 엄청나게 변화되고 조성된
것을 보아야 됩니다 내가 지금 만약에 조성되고 변화되었다 라면 변화되고 조성되고 바뀌어진
자의 모습 바로 야곱이 탈취하는 자 속이는 자 그 자가 바로에게 아들들에게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요셉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요셉의 그 환도뼈 밑에 손을 넣고 자기의 당부하는 말을
들어줄 것은 이런 모든 것들이 변화되지 아니하면 생겨날 수 없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제가 지금 얘기하는 것은 이 아들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42장 8절에 요셉은 자신의 형들을 알아보았지만
그 형들은 10명의 형들은 요셉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겠어요.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왜 변화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서 조성되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자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자가
그 안에 생명의 영이신 영의 하나님에 의해서 완전히 충만해졌기 때문에 그 충만해진 생명이 그냥 바깥으로
얼굴로 말로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하늘도 땅도 감당을 못하는 겁니다.
그런 일이 벌어져요. 여러분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 그 요셉을 감당을 못해요 알아보지도 못하고요
그러나 요셉은 변화되고 조성됐기 때문에 땅에 속한 자들을 알아보고 그들에게
기도해 줄수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어서 바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12 아들들을 위해서 기도해 준 것은
그가 이미 조성되어서 조성되지 않은 그들을 다 알아봤기 때문에 뭐가 불순물이 있고 뭐가 더러운 것이 있고 뭐가 결격 사항이고 뭐가 부족하고 잘못된 것임을 알고 기도를 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은 그들을 알아봤기 때문에 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들에 걸맞게 하나하나
얘기를 건네어서 일대일 맞춤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결격 사항이 너무나 많잖아요.
르우벤 아담의 모습이라고 했잖아요. 시므온과 레위 유다 우리들의 모습이에요.
이것들이 죄악으로 물들어서 범죄함으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고 파괴되고
찌그러지고 일그러진 그것들을 다시 재창조하기 위해서는 정말 새로운 생명의 영이 필요한
그게 영의 간섭하심 이고 영의 다스림입니다.
그래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 요셉은 그들을 3일 동안 특별 훈련을 또 시킵니다.
창세기 42장 17절 그러고 나서 요셉은 그들은 모두 3일 동안 감옥에 가두었다.
3일 동안 감옥에 가두어서 특별 훈련을 시키는데 그들이 그 안에 있는 동안에 얼마나
그 이상한 일 이해할 수 없는 일 도무지 감당할 수조차 없는 자기들에게 닥쳐진 그러한
갑작스러운 이상한 일들을 경험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일들이 자기들이 요셉을 정말 아무 죄도 없고 아무 잘못도 없는 그를 아버지께 그 옷을 받은 자라는 이유 때문에 꿈을 두 번이나 꿔서 자기들이 오히려
그에게 경배 한다고 절을 한다는 그 이유 때문에 가치 있게 존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그를 따돌리고
죽이려고 했던 그 요셉을 자기들이 얼마나 잘못하였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지금 발생된 것이 우리가 정말
심은 대로 거둔다 라는 말처럼 우리가 그런 아무 죄도 없는 그를 억울하게 고의적으로 죽이려 한 사실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벌을 받는구나 이러한 것을 통해서 그들이 깨닫기 시작합니다.
3일 동안 밤낮으로 그들이 있으면서 무슨 얘기를 했을까요.
자기들이 너무나 크게 잘못한 아마 르우벤 같은 경우는 자기가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히고 레위와 시므온 같은 경우에는 세겜 족속의 모든 사람들과 짐승들을 다 죽인 일들 유다는 정말 며느리와 그런 모든 잘못된 것들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시하고 중대차한 요셉에 대한 얘기를 가장 많이 했을 것 아닙니까
나름대로 개인적으로 자기의 부끄러운 수치를 드러내지 않지만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는
아마 그 문제를 가지고 씻어내고 잘라내고 그 할례를 받는 거죠.
할례가 뭐예요. 육신적인 모든 일을 제거하고 잘라내는 일입니다.
그러한 잘못된 것들을 다 잘라내고 특별히 요셉에 대한 문제를 서로 공개적인 토론에 의해서
얼마나 그 문제로 그들이 반성하고 회개했을까요.
그런 것을 위해서 특별 훈련 엄청난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 17절에 요셉은 그들 형제들을 모두입니다.
10명의 형제들 열 완전한 겁니다. 그 열 명이라는 숫자는 여기에 기록돼 있지 않지만
그 3일 동안 감옥에 가둔 사람들은 열 명이에요.
열이란 숫자는 완전한 온전한 그 완전하게 죄를 빼내는 그 상태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삼일 밤낮을 사흘 밤낮을 음부의 어둠의 사망의 장소에 있게 되는데
그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신 그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는 십자가에 내가 그분을 찔러서
나로 인하여 그분이 죽게 되었다 라는 이 죄의 모습 죄의 형체를 우리가 들여다보고
회개하고 반성하고 그것을 다 드러내고 이렇게 빼내야 되는 일인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요셉은 그들을 특별히 훈련시키기 위해서 그 모두들 에게 잘못된 그 공통적인 일 때문에
3일 동안 그들을 이 감옥 생활을 하게 하였고 깜깜한 장소 어둠의 장소 그리고 시므온에게는 특별히
쪽집게로 끄집어내서 자기를 죽이고자 하는 일에 주모자가 되었기 때문에 저 채색 옷을 입고 아버지께
좋은 옷을 선물 받고 저기 꿈꾸는 자라고 해서 자기가 자랑하는 저놈을 죽여버립시다
해서 그 주동자였기 때문에 시므온에게는 더 악한 죄의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지하 감옥에 가두어서
6개월 동안을 외로움과 고통과 시련과 그 어둠의 삶을 때로는 3일이라는 객관적인 시간을 통해서 때로는
시므온 처럼 6개월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주관적인 훈련을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하지 않으면
우리들에게 아주 깊게 내장 속에 가장 찌꺼기로 남아 있는 그 기름의 문제 그 생명이 흘러넘쳐서 그 기름이
되는데 그 기름은 우리의 외형적인 이 배를 갈라서 속에 가장 깊숙하게 감춰져 있는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깊숙이 깊숙이 들어가서 빼서 잘라내서 그것을 없애야 되는지 몰라요
여러분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야곱과 요셉을 그렇게 다루시고 요셉을 대표한 12명의 아들들을
하나님께서 먼저 요셉을 그렇게 친히 훈련시키시고 그리고 후에 또 10명의 형제들 그리고 베냐민까지
포함한 11명의 형제들 자기를 포함한 12명의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입니다.
이스라엘에 속한 자들이에요. 그들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나가십니다.
여러분 보세요. 이렇게 훈련을 시키고 또 양식을 공급받는 문제에 있어서 그들이 지금 양식을 필요로 해서
요셉에게 찾아왔을 때 그것을 빌미로 요셉은 훈련을 나름대로 객관적이고도 주관적인 훈련을 필요에 따라
이렇게 전합니다.실제적으로 양식을 빌미로 해서 훈련을 시키고 있는데요.
요셉에게 있어서 베냐민까지 포함한 그 열한 명의 형제들이 필요 했을까요.
아니면 그들이 요셉을 더 필요로 했을까요. 어떤 쪽이 더 필요로 했을까요.
요셉은 그 나라에 지금 통치자가 돼서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의 그 열명의 형제들은 요셉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죠
그러나 요셉은 누구를 상징하고 있다고 그랬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요셉은 실제적으로 양식을 자기 손을 통해서 구하러 온 그 형제들이 요셉을 더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요셉은 그 형제들이 오히려 양식을 빌리러 또는 돈을 주고 사러온 그들이 외형적으로는 아무 필요가 없었어요.
가족이기 때문에 건네주는 문제죠 그런데요.
실제적으로 요셉은 이 형제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절대적으로 그에게 찾아오지 않았으면 안 돼요 찾아와서 생명의 양식을
빌리는 그런 문제의 과정들을 통해서 그와의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완성이 돼야 됩니다.
그게 무슨 얘기냐 형제들이 더 요셉을 필요로 했을까요.
양식 빌리는 문제 때문에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이 그 형제들이 더 필요로 했어요. 왜 그러냐면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상징입니다. 요셉이 만족돼야 해요
곧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만족을 누려야 됩니다.
그 만족이라는 것이 뭐예요. 요셉이 왜 그 형제들이 필요로 했냐면요.
당연히 만나야 돼요 만나서 이런 일이 벌어져요.
이런 일을 통해서 훈련이 시작돼야 돼요 왜 꿈을 꿨잖아요.
17세 그쯤 전후로 해서 요셉은 그 12 생명을 생산하고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 주는 곡식단이
절하는 꿈과 그리고 해와 달과 별이 하늘에 높은 빛나는 광명체가 절을 하는 꿈을 꿨어요.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잖아요. 성취되지 않았잖아요 완성되지 않았잖아요
그 꿈이 이루어져야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요셉은 이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형제들을 만나서 그 만남을 통해서
자기의 그 꿈이 이루어지는 그 일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면해야 되고 반드시 대면을 통해서
훈련해야 되고 조성되어지고 만들어져야 그래야 그 두 가지 꿈이 비로소 22년이 지난
첫 번째 두 번째가 아닌 세 번째 만남의 여행에서 그렇게 상봉을 하게 돼서 그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꿈이 이루어진다는 얘기에요 그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요셉이 형제들을 필요로 했지 형제들이
그 양식 문제 때문에 요셉을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꿈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먼저 이루어지는 일이 필요했어요.
꿈의 완성이 이루어져야 돼요 22년 전에 꾸었던 그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버지 이스라엘과
그리고 11명의 형제들 자기까지 포함한 12명 그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그 11명의 형제들이 절대적으로 자신과 상봉하여서 만나는 일이 있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국무 총리가 되어 통치자가 된 그에게 꿈이 이루어지는 절을 하고 경배하는
꿈의 성취를 위한 일 때문에 요셉이 형제들을 필요로 했지 형제들이 양식 때문에 요셉을
필요로 했던 것보다는 요셉이 꿈을 이루기 위한 방면에서 볼 때 형제들을 더 원했다.
이 얘기는 지금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리고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똑같은 원리와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또는 우리 교회 우리 성도들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을
내가 나를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하고 헌신하고 학교도 만들고 교회도 만들고 아~좋다
내가 그래서 널 필요로 한다 라는 이러한 것보다도 하나님이 우리를 더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이 교회, 선교회들, 성도들을 더 필요로 하는 것이 우리가 교회가 하나님을 더 필요로
하는 것보다도 더 훨씬 중요하고 크고 원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지셨던 그 꿈이 꿈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람인 우리 교회 성도들인 우리 교회들인 우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더 필요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그 소원과 꿈과 그러한 일들이 이루어지는 일 때문에 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간섭하시고 찾아오셔서 우리를 조성하시고 변화시키시고 만드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꿈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하는 역사를 보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우리를 더 필요로 하신다 이게 여러분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일을 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하늘소리 선교회와 교제를 나누고 있는 여러분들과 제가 있습니다.
간혹 가다 이렇게 전화를 받으면 정말 선교사님 만난 것이 복됩니다.
정말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요 아니요.
사실은 제가 여러분들이 더 소중하고 여러분들이 더 중요하고 여러분들이 더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내가 여러분들을 통해서 함께 하나가 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요셉에게 주었던 그 두 가지 꿈처럼 이 세상에 빛이 되고 생명을 나누어 주는 자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모여서 힘을 합하여 그 하나님이 주신 꿈을 성취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가 여러분이 더 필요로 합니다.
같이 하나가 되는 연합됨으로 말미암아 일치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이 일
때문에 저는 여러분이 더 필요해요 물론 어떤 면에서 여러분들이 저를 또 필요할
그런 일도 있을지 몰라도 전체적인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는 하나님의 일의 소중함 때문에 그 꿈이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면에 있어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더 필요로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우리를 더 필요로 하신다 라는 얘기입니다.
아~ 이게 은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도 하나님이 나를 더 필요로 하신다!
얼핏 생각하면 내가 하나님이 필요하지 하나님이 없으면 안 되는데 라고 얼핏 생각할지 몰라도
만남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소중하게
여기시고 가치 있게 여기시고 더 없어서는 아니 될 아주 필요한 존재로 여기시는 것은 우리를 통해서
일을 해야 되는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의 꿈이 성취되는 일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꿈을 먼저 주신거예요.
그리고 꿈을 먼저 주시고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주시고 또 그 13년 뒤에
또 9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난 다음에 이스라엘의 아들들 이스라엘은 이미 조성되고 만들어지고 변화된
자요 건축된 자예요.
그러나 이 형제들은 요셉과 같은 야곱과 같이 만들어진 자들이 영의 다스림을 받는 자들의 삶이 필요했기
때문에 요셉을 통해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요 요셉은 형제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어요.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서 그들이 만들어져야 하나님의 자기에게 준 그 꿈이 이루어지잖아요.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여전히 꿈이 요셉에게 있어서 그 꿈이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형제들이 필요로 했다는 거에요 그 형제들이 만약에 없다면 꿈이 요셉이 아무리 하나님께
두 가지 아니 한 20가지 꿈을 받았다 할지라도 꿈이 이루어질 수가 없잖아요 성취될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곡식단 12 빛나는 발광체 그것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형제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요셉에게 있어서 그 형제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처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요셉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했고 요셉은 그 형제들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했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자신의 꿈을 그리스도를 향했던 그 꿈과 소원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객관적으로
보편적으로 모든 세상들에게 구원의 문제가 다 해결됐지만 이제는 주관적으로 그 의를 그 구원을 각자에게
나누어 주는 이 일들을 우리를 통해서 해야 되는 문제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시고 그 필요로 하는 가운데 비밀스럽게 우리를 조성해 나가신다.
요셉이 형제들을 다룸에 있어서 그 형제들은 그 요셉이 22년 전에 헤어졌던 17세에 그들을 도단 이라는 구덩이에 빠쳐가지고 30세에 보좌에 앉고 7년의 풍년과 1년 2년 사이에 흉년 가운데 이니까 22년이 지났어요.
나이 39세에 만났다는 얘기예요.
그때쯤에 나이 38세 39세쯤에 나이에 만났으니까 22년이 지난 요셉을 그들은 알아보지 못해요.
변화된 자를 어떻게 알아봅니까
그런데 그들은 요셉의 형제들은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알아볼 수가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변화된 자는 변화되지 않은 자를 축복해 줄 수가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있는 자 하나님에 의해서 조성된 자 하나님의 영의 생명이 충만한 야곱을 보세요.
이스라엘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축복 기도를 하는 거예요 바로에게
마찬가지로 변화되지 않은 그 형제들은 변화된 요셉을 알아보지 못 했지만 변화된 요셉은
그들의 잘못된 것이 다 보임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그런 삶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다 알아보고
그래서 그들에게 필요한 특별 개인 훈련 개인 과외 수업을 시킨 겁니다.
그 죄악으로 기울어진 성향들 아담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여서 그 손실된 혼의 생명들이 완전한
산자들로 만들어 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같은 삶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비밀스럽고도
은밀하게 그들을 요셉은 다루었던 겁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보이지 않게 은밀한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우리를 다루시고 어루만지시고 간섭하시고 때리시고 누르시고 빼내시고 이러한 삶의 과정들을 계속적으로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그들을 통해서 요셉이 꾸었던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러분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누구를 통해서요. 요셉을 통해서 요셉은 자기 형제들을 통해서 그 12명의 이스라엘의 아들들
이스라엘에 속한 자들 그 12 아들들이 이스라엘이에요. 야곱이 요셉이 된 겁니다.
요셉이 야곱의 일을 연이어서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조성되고 변화된 자 그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화된 자 천연적인 사람에서 하늘의 생명의
사람으로 변화된 자이기 때문에 생명의 양식을 나눠주는 것을 요셉을 통해서 지금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창세기에 야곱과 요셉에 대한 얘기 이스라엘과 야곱에 대한 얘기가 동시 발생적으로 함께 거론되고 나오는 것은 야곱과 요셉이 하나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은연 중에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에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예 형제들이 필요로 했습니다.
그들이 자신에게 준 그 꿈을 이루어 드리는 일 때문에 그 일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너무나 엄위하고
너무나 중대차한 꿈의 성취를 위해서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제데로 들여다보지 못한 그들을 자신은
알고 있기 때문에 비밀스럽고도 은밀하게 이스라엘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그 훈련이 그들을 사랑했다 사랑인 것입니다.
그들을 요셉은 사랑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대우한 것이지 미워서 정말 시므온의 주동적인
어떤 말에 의해서 요셉을 죽이려 했던 그 어떤 육적인 마음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머금고 뜨거운 마음을 갖고 외형적으로는 엄격하고 냉대하고 아주 차갑게 대했지만 그 안에는
뜨거운 사랑과 함께 그들을 훈련시키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비밀스러운 사랑의 방법이다
우리를 대우하실 때 우리를 대하실 때 다루실 때 우리를 취급하실 때 그러한 방법으로 역사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분 잘 알지를 못합니다.
형제들이 세 번째 그가 자신이 내가 당신들의 요셉입니다 라고 자기의 정체를 밝히기 전까지는
전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그걸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그가 아주 너무나 야속하고 어째 사람이 저럴 수가 있어
우리가 이렇게 하는 행동이 아닌데 어떻게 도무지 이상한 일들을 이렇게 꼬이도록 해서
우리를 곤욕스럽게 하고 감옥에 쳐넣고 아니 우리 사랑하는 형제 시므온은 또 감옥에 혼자 있고
이거 도대체 웬일이야 이 일이 요셉이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만들어 나가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그러한 사랑의 방법으로
우리들 삶에 다가와서 그렇게 취급하시고 어루만지시고 누르시고 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라도 여러분을 만들기를 작정하신 겁니다.
그게 하나님의 애달프고도 너무나 가슴 저미는 사랑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을 외형적으로는 냉대하는 것 처럼 보였으나 속으로는 뜨거운 그 형제들을 향한
사랑을 품고 있었기에 방에 홀로 들어가서 펑펑 울었던 것처럼
그 두 가지의 변형된 모습을 보이는 그분이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으로 삶을 환경을 사람들을 통해서 다루실 때 알아보지를 못해요.
보이질 않아요. 그 사랑이 안 보입니다.
요셉은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게 특별 훈련을 시키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알지를 못해요.
그래서 창세기 42장 27절 28절에 보면
27한 사람이 객점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고 본즉 그 돈이 자루 아구에 있는지라
28그가 그 형제에게 고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 일을 행하셨는고 하고
29그들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 그 아비 야곱에게 이르러 그 만난 일을 자세히 고하여 가로되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러한 이상한 그 돈과 함께 그 양식 자루 속에 은이 들어있다.
그 당시에 아마 은으로 통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으로 인하여 마치 도둑질한 것처럼 나타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어떤 점을 보는 그러한 신상을
그들이 훔쳐간 것처럼 그 속에 넣어서 그들 열 형제가 아주 곤혹스럽게 빼도 박지도 못하는 그러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다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자신들을 그렇게 했던 사랑을 나중에 세 번째의 만남을 통해서 급기야 마지막에
요셉이 자기 스스로를 밝힐 그때 그 모든 것이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알고 정말 요셉
앞에 절을 하게 됐던 것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비밀스럽고도 은밀한 사랑을 모르게 되면 우리가 이와 같이 하나님께
경배하고 경외하고 절을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오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오해 그런 마음속에 오해와 불신과 이상한 하나님이 하나님 이신가 라는 그러한 불편한 감정을 오해를 받으시면서 까지도 하나님께서는 그 아주 그런 오해와 불편한 그런 마음에 그런 어떤 취급을
당하면서 까지도 우리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모든 것을 감수하시는 분입니다.
아~ 여러분 이게 마음이 아파요 그분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 모든 것을 다 감수를 하세요.
불편함을 오해 이거 말도 안 돼 뭐 이런 일이 다 있어 저는 나쁜 사람일 거야
하나님을 때로는 나쁘게 생각하고 있다니까요.
우리가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나쁘게 우리가 여기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해가 되기 때문에 알지 못해요.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인 줄 알았더라면 그래서 야곱이 그걸 알았던 거예요.
나중에 침상 에서 지팡이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 기도했던 것이 그걸 알았던 거예요.
요셉이 자기의 삶에 그렇게 관여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알았던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다루셔서 나를 이렇게 빛과 생명의 양식을 나눠주는 자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했구나 야곱은 꿈을 가졌기 때문에 그 오해가 오해를 불편함을 얼마든지
그분을 싫어할 수 있음을 넘어설 수가 있었던 거에요.
그런데 그 형제들은 요셉의 꿈이 자신들의 꿈으로 여겨야 되는데 똑같은 꿈인데 그 꿈 속에 자신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꿈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요셉을 가치 없는 자로 존귀한 자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팔아서 죽어버리게 했던 거예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오해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오해가 되지 않고 그분 앞에 진정한 경배를 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속에 있을 때 요셉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다 축복입니다.
르우벤에게 있었던 모든 일들은 다 저주지만 요셉에게 있었던 모든 어두움과 외로움과 슬픔과
고통과 은혜와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축복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오늘의 교제의 말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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