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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37장44장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사랑 이야기 전편말씀 나눔방 2023. 8. 6. 17:47
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요셉의 이야기를 해 드리려 합니다.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여러차례 여러분에게 언급을 해 드렸는데요.
이 요셉에게 10명의 형제들이 있는데 이 형제들을 어떻게 다시 만나고 대했는지를 우리가 살펴 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가를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해요.
제가 이런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특별히 매우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제가 부럽고 정말 그 지극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라고 얘기한다면
그래요? ! 나는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잘 알지를 못 하는데요 라고
이렇게 깨닫지 못함으로 오해 하여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지 못함으로 인해서
우리가 그 사랑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셉이 형제들을 대하는 그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요셉이 형제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을 사랑하는 모습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모습이에요
바로 한 분 하나님 안에 계신 아들 하나님 영의 하나님 그다음에 천부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요셉은 어떻게 이 형제들을 대했을까요.
요셉은 17세 나이쯤에 두 가지 꿈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됩니다.
하나는 곡식단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 하나는 해와 달과 별들 하늘에 빛나는 발광체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런데 요셉이 17세에 꿈을 꾸어서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그 도단이라는 곳에 형님들을 만나러 가게 되는데
그때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의해서 요셉이 정말 죽음을 경험 하게 됩니다.
창세기37:1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으니 2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 칠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 3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5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7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12그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비의 양떼를 칠 때에
13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4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떼가 다 잘 있는 여부를 보고 돌아와 내게 고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매 이에 세겜으로 가니라 15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가로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16그가 가로되 내가 나의 형들을 찾으오니 청컨대 그들의 양 치는 곳을 내게 가르치소서 17그 사람이 가로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요셉이 그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18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20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21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하여 가로되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22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그 아비에게로 돌리려 함이었더라 23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24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25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떼 이스마엘 족속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약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26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27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 하매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28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지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29르우벤이 돌아와서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30아우들에게로 와서 가로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 31그들이 요셉의 옷을 취하고 수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32그 채색옷을 보내어 그 아비에게로 가져다가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얻었으니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 하매 33아비가 그것을 알아보고 가로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그때 당시에 형제들에 의해서 죽이려고 작정을 하였으나 저기 꿈꾸는 자가 온다.
아버지께서 만들어준 그 채색 옷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저놈을 죽여버리자 라고 모두
극심한 분노를 가지고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죽음이라는 구덩이에 빠지긴 했으나
이스마엘 상인과 그리고 미디안 상인들에 의해서 애굽으로 팔려가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요셉이 꿈꾼 자로서 그 미디안 상인들과 그리고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렸다는 것은
이스마엘이 누구예요 .아브라함에게 아내가 세 명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사라 두 번째는 애굽에서 데리고 온 하갈이라는 이스마엘의 생모이고 세 번째는
말년에 취한 그두라 라는 이방 여인을 통해서 여섯 명의 육적인 후손들을 갖게 됩니다.
그두라를 통해서 나온 후손들이 미디안 이고 하갈을 통해서 나온 후손이 이스마엘 인데
그 이스마엘이나 미디안은 약속의 자녀가 아니고
모두 약속의 자녀 은혜의 자녀에서 벗어난 자들이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
세상에 속한 자들에 의해서 꿈꾸는 자 하늘에 속한 자는 어려움을 당하고 배신을 당하고 죽음의 길로
예수님도 똑같은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쭉 보면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에서 아벨을 죽인 자가 자기의 형님이었어요.
아브라함의 아들 누가 있었죠 이삭과 이스마엘이 있었는데 그 종의 자식으로 취함받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나이 5살 때 어린 이삭을 위한 잔치 연회 때 이삭을 조롱하고 핍박하는 장면을 보게 되잖아요.
창세기21;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그리고 이삭의 아들이 누구죠 에서와 야곱입니다.
큰 아들 에서에 의해서 야곱이 그렇게 또 어려움을 당하는 일을 보고요 쭉 보면 성경의 내용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동족에 의해서 팔림 받는 것처럼 요셉은 자기 형님들에 의해서 꿈을 꿨다는 이유로
하늘의 꿈이 뭐죠 곡식에 대한 곡물은 땅에서부터 생명이 산출되어서 나타나진 것이 곡식입니다.
그 곡식이 마른 곡식단 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은 빻아 지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아주 영글어진 그런 상태입니다.
이 생명과 하늘의 발광체인 해와 달과 별 이런 하늘에 빛이 비춰지고 땅에서 생명을 산출할 수 있는
이런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고 성취할 수 있는 자이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자로부터 이러한 거절당하고 부인당하는
일이있게 함으로 말미암아 급기야는 죽음의 길로 빠지게 됩니다.
그 요셉이 두번의 꿈을 꾼 자이기 때문에 그 꿈을 존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기고 가치 있게 여겼다 라면
그 10명의 형님들이 절대 요셉을 죽이고자 도모하거나 계획하거나 협의하지는 않았겠죠.
그를 존귀한 자 가치 있는 자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팔아버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하늘의 빛과 이땅에 생명을 공급해 주기 위해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주기 위해서 베들레헴 생명의 떡집에서 태어난 그분을 그리스도 바로 구원자라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가치 있게
아주 존귀한 자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유다가 대표적으로 은 30냥에 팔아버렸던 것입니다.
은 30냥 그때 당시에 노예 값이에요. 구약 성경에 그것이 그대로 기록돼 있잖아요.
종 한 사람의 값이 은 30냥 아니 종보다도 못한 노예와 똑같은 취급을 했습니다
그 말은 뭘 뜻 하는 냐면 경홀히 여기고 우습게 여기고 하찮게 여기고 전혀 존귀하게
여기지 않았음을 말해 주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늘의 꿈을 가진 자들은 아주 가치 있는 자들입니다. 조심하셔야 됩니다.
하늘의 꿈을 가졌기 때문에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포부가 하나님의 목표와
목적이 그를 통해서 이루어질 일이 있기 때문에 성도들에게는 각자 하나님의 꿈들을 주었어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그 꿈들을 크고 작은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다 각자에게 주어 진 바 됐습니다.
요셉은 특별히 이 두 개의 꿈 두 번의 꿈을 받은 바 됐습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삶입니다.
우리가 이 요셉과 같이 크고 작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된 꿈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는 13년 동안의 세월이 지나고 어두운
시련과 고통의 삶을 지나 30세에 드디어 통치자로서 높은 보좌에 앉게 됩니다.
13년이라는 이 기나긴 시간은 요셉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그 17세 쯤에 받은 그 꿈으로 인하여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기고 헤쳐 나올 수 있었다.
꿈을 가졌기 때문에 꿈이 없었다 라면 이것이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꿈을 기억했다 라고 얘기했어요.
창세기42장:6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7요셉이 보고 형들인줄 아나 모르는체 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8요셉은 그 형들을 아나 그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더라
9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꿈이 성취되기까지 30세 보좌에 앉았으면 꿈이 어느 정도는 성취됐다고 볼 수 있지만 서도
그 30세에 보좌에 앉아서 7년이라는 풍년의 시간이 지나갔어요. 그리고 7년이 지난 8년째 흉년이 갑자기 다가옵니다.
그때 형제들이 찾아왔던 거예요.
그 풍년 때에 저장해 놓았던 곡식들이 1년 2년을 지나는 동안에 다 고갈이 되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흉년이 한 1년 2년 때쯤이니까
요셉이 30세에 등극을 하고 보좌에 앉았으니까 한 8년 9년 7년의 풍년이라는 기간이 지나야 되니까요.
그래서 38년째 되는 날이 흉년의 첫 번째 해입니다.
38년 39년 그 사이에 형제들이 찾아와서 양식을 구하는 모습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렇게 보게 됩니다.
이 창세기 지금 42장을 지금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예 그렇습니다. 이 17세에 이 팔림을 당하여서 39세 정도의 22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지난 다음에
하나님께 받은 그 꿈이 비로소 성취가 됩니다.
여러분 13년을 지나 또 9년을 더 기다려서 풍년 7년과 1년 2년을 더 기다려서 삼십 팔 구세 때 쯤에
형제들과 아비를 만나 세 번째 방문해서 전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상봉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이 시간이 굉장히 깁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이 꿈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루시려고 한 꿈은 너무나 지대하고 너무나 신령하고 너무나 존귀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빠른 시간 내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의 나이 17세에 팔려서 한 1년 정도 아마도 보디발 장군의 노예로 종으로 아마 그 상인들에 의해서 팔림을
당하고 바로 1년 그때쯤 바로 지나서 보디발 장군 아내에 의해서 음해를 받아서 감옥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17세에 팔려서 한 1년 2년 정도 종살이 하다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지하 감옥으로 들어갔어요.
그게 18세 때쯤 정도에 일어난 일일 거예요. 그리고 12년 동안을 긴 세월을 옥살이를 합니다.
그리고 방면을 하는데 나이 28세 때 17세가 지나고 11년이 지난 후에
그 술관원장과 떡관원장을 그 감옥에서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죠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그 징검다리를 통해서 가장 높은 바로 왕을 대면할 수 있는 일이
그 술관원장의 해몽으로 말미암아 석방이 돼서 목숨을 생명을 유지하고 보전한 그의 그 2년 뒤에 고백되어야 될
그 일 때문에 감옥에서 그들을 만나도록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선해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상황과 환경을 설정해놓고 조성해 놓았다 라는 것입니다.
28세에 그들을 만났어요. 그 술관원장과 떡관원장이 꿈을 꿉니다.
창세기40:1그 후에 애굽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 주 애굽왕에게 범죄한지라 2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그들을 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의 갇힌 곳이라 4시위대장이 요셉으로 그들에게 수종하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지 수일이라 5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몽조가 다르더라
6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 빛이 있는지라 7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관원장에게 묻되 당신들이 오늘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8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 9술 맡은 관원장이 그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12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13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하리니 당신이 이왕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 손에 받들게 되리이다 14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그러면 여러분 그러고 나서 바로 석방될 것 같은데 석방이 안 됐어요.
물론 요셉은 얘기를 합니다. 당신이 나가면 내 이 억울한 일로 이렇게 들어왔는데 내가
억울하게 들어왔으니까 좀 잘 얘기해서 나를 좀 석방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부탁을 하지만
그 일이 바로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질 않아요. 1년 기다립니다.
1년이 넘어 1년 6개월 2년 왜? 28세 때 그들을 만났는데 바로 석방이 되지 않았을까요.
나이가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구나 예수님이 몇 세 때부터 공생애를 시작했어요.
30세에 가장 좋은 나이 가장 활력이 넘치는 3년 된 어린 양 양이 가장 정력적이고 활동적이고 가장 힘이 센
그 나이가 바로 3년입니다.
아주 좋은 상태 요셉이 가장 좋은 상태 그래서 28세가 아닌 2년 더 기다려서 30세 때 보좌에 앉을 수가 있었던 것이에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시간 그건 우리도 알지 못해요.
왜 그렇게 완전하게 내 자신이 정말 영의 지배함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이 영 하나님의 다스림을 통하여
세상에 그 생명의 양식을 충만하게 소유 받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충만히 소유하게 되면 생명이 넘칠 것 아닙니까
생명이 넘치는 자가 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온 전 우주적으로 자기의 가족들뿐만이 아니에요.
형제들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주변 국가들 모두에게 기근으로 인하여 생명의 양식을 전달해 주는 겁니다.
여러분 기근은 죽음을 상징하고 있어요.
아주 안 좋은 것이죠. 부정적인 것이죠.
그러나 양식은 생명 아주 긍정적이고 좋은 생명을 여러분 지금 어떤 시대인가요 풍년인가요
양식으로 충만한 풍년의 때인가요 아니면 기근으로 말미암아 정말 양식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기근의 때인가요 여러분 지금 기근의 때입니다.
없어요. 참 진리 참 실체이신 하나님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있죠
물론 있죠. 세상 곳곳에 많이 숨겨져 있어요. 근데 찾아볼 수가 없는 시대예요.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기근의 시대 말할 수 없는 기근의 시대 핍절한 시대
그래서 여러분이 이 생명의 양식은 교회를 통해서 나누어집니다.
요셉 안에 생명의 양식이 있어요. 요셉에게만 양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에게만 양식이 있다는 얘기예요. 그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교회 안에서만 생명의 양식이 전달되어지는데
전달 되어 지면은 만족이 있어야 됩니다.
배가 불러서 내가 누리는 일이 있어야 돼요 기뻐야 돼요 배가 부르면 어떻습니까 기분이 좋다.
배고파서 얼마나 죽을 것 같았었는데 배부르니까 너무 좋아 이젠 뭐 소원이 없어 만족과
누림과 기쁨이 있는 것이 이 양식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채워질 때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데
이 교제 생활 교회를 통해서 이 요셉인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의 양식이 그 손에서 나오는데
그 손을 통해서 전달되어지는 교회들을 통해서 우리가 배부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근데 만약에 여러분들이 만족과 기쁨과 누림을 경험하지 못하고 지금 말씀에 대한 기근을 여러분이
느낀다면 그곳은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주는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은 곳입니다.
참 그리스도는 생명의 양식을 전달해 주는 참 공급원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가서 여러분들이 그 교회의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함에도 불구하고
뭔가 결핍되고 모자라고 핍절되고 배고프고 뭔가 하나님에 대한 이 배고픔 기근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느낀다면 그것은 참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 주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예요.
여러분 그곳에서 나와서 참 생명의 양식을 전달해 주는 곳으로 가야 됩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13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그 영의 하나님이신 성령님의 통제 아래 그 배고픔과
또 형님들에 의해서 팔림을 당하고 종의 일을 하고 그리고 그 보디발 장군의 아내에 의해서 음해를 받고 말할 수 없는
음해로 인하여 또 보디발 장군으로부터 또 주위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손가락질과 조롱을 받았겠습니까
수치를 당했겠어요.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을 그가 꿋꿋하게 이겨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영의 다스림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지배하는 삶을 그가 살았기 때문에 그는 그러한 삶의 기간들을 혹독한 어둠 가운데
죽음의 장소에서 조차도 그것을 꿋꿋하게 이기고 자신의 지조와 정조를 지키고 순결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열두 아들들 중에 첫 번째 아들이 장자 르우벤인데 르우벤은 좋은 상황 속에서도
아비의 침상을 더럽히는 그런 일로 인하여 장자권 축복에서부터 벗어나는 장자가 되는 일은
왕의 지위도 있고요 제사장의 지위도 있지만 특별히 다른 형제들보다도
몫이 두 배나 더 많은 특별 대우를 받는 겁니다.
근데 르우벤이 그 특별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그 몫을 더럽히는 정욕에 들끓는 인내하지 못하고 참지 못하고
그만 아비의 침상을 더럽히는 그 일로 인하여 장자권이 요셉에게 옮겨가게 됩니다.
그래서 창세기 마지막에 그렇게 나옵니다. 창세기 49장에 이스라엘이 축복 예언 기도를 해주죠 .
예 그렇게 그 말씀대로 됩니다. 또 요셉에게 그 장자권이 돌아가게 되는데 요셉이 낳은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 차자에게 더 큰 아들이라는 직분을 주면서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하나님 앞에 성소 봉사를 하는
레위 대신 이제 열 지파가 남았죠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대신 추가함으로 말미암아 두 배의 몫을 받은 겁니다.
요셉에게 장자권이 넘어갔다는 얘기예요.
그렇게 해서 그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어째서 요셉이 두 배의 몫을 받았죠.
르우벤은 좋은 상황에서 좋은 환경에서 그는 육체의 들끓는 정욕을 인내하지 못하고
참지 못하고 그것을 통제하지 못해서 더럽힌 자가 됐어요. 혼의 생명을 더럽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똑같은 상황이 아니라 더 열악하고 더 정말 최악의 그런 상황에서 꿈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꿈을 소유했기
때문에 그 꿈을 의지하고 꿈을 성취하기 위한 삶을 은연 중에 갖고 하나님의 통제를 받으면서 순결한 삶을 살았어요.
순전한 삶 지조를 지키고 정조를 지키고 정직하고 정말 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원래 장자권을
소유받기로 한 르우벤의 손으로부터 요셉의 손으로 그것이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야곱의 이스라엘의 축복 기도를 그렇게 기도해 주는 것을 인정하고 실제적으로 가나안 땅에
할당된 몫을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소유하게 되는 일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이렇게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의 다스림을 받은 자예요. 왜 받았느냐 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꿈을 소유한 자이기 때문에 그 꿈을 통해서 그 꿈을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자신이 생명이 충만해서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
줌으로 말미암아 이 요셉 안에서 영의 다스림을 통해서
그 안에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를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 아들인 12번째 아들인 베냐민을 통해서
성경에 하나님의 집이 지어졌다 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요셉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지읍시다 라는 그 하나님의 협의에 의해서 한 분 하나님 안에 계신 아들 하나님 영의 하나님 성령님 하나님 그다음에 아버지 하나님의 그 협의에 의해서 형상을 가진 자인데 아담이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여 그 형상이 훼손이 돼버렸어요.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서 꿈을 주었기 때문에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그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꿈을 가진 자가 꿈을 꾸게 되어서 꿈을 결국은 소유하게 되고 꿈을 성취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는 일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꿈을 가진 자는 하나님이 특별히 보호하시고 간섭하시고 다스리십니다.
통제를 하셔야 그 통제하는 삶이 가장 좋은 삶입니다 가장 고차원적인 삶이에요.
우리는 영의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 지금 이 시대는 성령님의 다스림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몸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서 이 영의 다스림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하고요 그 과정에서 우리 앞에 주어진 어둠의 시간들
고통의 시간들 슬픔의 시간들 오해받는 시간 조롱의 시간 수치의 시간 이런 모든 것들을 헤쳐 나가야 돼요
그래서 그런 삶 가운데서 그런 환경 가운데 그런 장소 그런 상황 가운데 펼쳐 놓으신
그러한 사람들을 통해서 나의 더러운 부분들 불순된 잘못된 것들 죄악된 성향들로 치우쳐진 것들을
실족할 수 있는 그러한 얼마든지 선악과를 따먹을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어두운 부분들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목적에 목표에 합당한자로 만들어 나가십니다.
요셉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다루셨어요. 꿈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이 이렇게 다루십니다.
그렇게 다룬다 라는 것은 그가 가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요 나이 17세에 팔려서
11년이 지난 때에 지하 감옥에서 술 관원장 떡 굽는 관원장을 만났는데 그들도 굉장히 높은 바로의 고관들이었어요.
그런데 그는 하나님 보기에 그렇게 큰 가치가 있는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석방을 당합니다.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죽어요. 요셉은 꿈을 가진 자 영의 다스림이 있기 때문에
곧 하나님의 생명이 충만하게 그 속에 내주하고 있기 때문에 그 생명의 힘으로 말을 할 때 어떤 사람은
그 생명의 말을 받아들이면 살고 어떤 사람은 그 사망의 냄새로 인하여 죽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누구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한편 강도 왼편에 있는 강도 오른편에 있는 강도가 있었죠.
한 사람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당신도 구원하고 우리도 한번 살려내봐 라고 그분을 조롱하고 업신
여기고 거절했지만 한편 강도는 주여 당신이 오늘 당신의 나라에 가거든 나를 제발 기억해 주옵소서 라고
간절히 생명에 대한 염원을 가지고 그 영원을 갈망하는 그 사람의 간절함과 배고파함과 심령이 아주 핍절한 것을 보고
그렇게 간구했을 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 낙원은 그분과 함께 그날 낙원에 갔다는 것은 죽음의 장소
그 죽음의 장소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한 그것은 죽음의 장소가 음부가 아니에요.
어둡고 깜깜하고 죽음이 있는 쉬는 장소지만 주님께서 곁에 있는 한 그곳은 낙원인 것입니다.
예 그것의 연장이 하늘나라고요 여러분 이게 얼마나 중요한 얘기인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예 우리의 삶이 어떤 사람에게 생명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저주가 되어서 죽음을 갖고 오게 할 수도 있어요.
그는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하는 자이기 때문에 영의 다스림을 받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이 28세쯤 돼서 그렇게 꿈을 해몽한다는 것이 뭐예요.
그 생명을 주시는 영이신 주님께서 함께하고 있다 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꿈을 해몽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나 꿈 해몽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영의 다스림이 있는 자 바로 주님께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영
다시 사신 영 다시 사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 가장 귀한 성령님 이잖아요
바로 부활의 영 그리스도는 아버지께 감으로 말미암아 생명 주시는 영으로 아담은 죄를
지음으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혼적인 몸이 훼손이 돼버렸어요.
혼적인 몸을 똑같이 입고 우리에게 변화 주시기 위하여 아담과 같은 인성을 가지고 말씀이 육체가
되셔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그가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몸이 됐어요.
그 영적인 몸이 우리의 혼적인 몸 상실되고 훼손되고 파괴되어 못 쓰게 된 우리 혼적인 몸을 대체한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영 부활의 영을 받아들이는 자만이 영의 다스림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이에요.
여러분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를 내가 접촉하고 내가 그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내 영혼이 촉촉히 적시어질 때 생명 주시는 영이신 주님께서 내게 거하게 되는 겁니다.
그때 생명이 넘치니까 꿈도 해몽하고요 만나는 사람에게 사망 아니면 생명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러한 자들이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 이러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요셉의 삶에 그렇게 관여하시고 그렇게 굴곡 있는 삶을 살게 하시고
마치 야곱의 삶처럼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가 가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술 관원장과 떡 관원장은 그렇게 가치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게 몇 날 며칠이 못 되어서 석방이 됐지만 요셉은 나이 17세에 팔려서 죽음의 구덩에 빠지질 않나
종살이를 하지 않나 짧은 시간이지만 그리고 또 보디발 그 아내의 음해 말할 수 없는 거짓말에 의해서
또 이렇게 옥살이를 하게 되고 옥살이에 또 있다가 또 좋은 일이 있으려나 하고 기다렸는데
또 이 꿈을 꿀 수 있는 술 관원장 떡 굽는 관원장을 만나서 꿈을 해몽해주지만 그는 거기서 석방될 줄 알았어요.
근데 석방이 안 됩니다. 왜 석방이 안 됩니까
꿈을 가졌기 때문에 꿈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생명 주시는 영이 그 안에 가득 차야 됩니다.
90%만 차도 안 돼요 99% 차도 안 돼요 100% 차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했나요.
충만한때에 왜 3년 된 어린 양이라고 그랬을까요.
3년 된 양이 가장 힘이 좋고 활력이 있고 가장 충만한 상태 아닙니까 예수님이 나이 30세 때가 가장 충만한
상태 바로 요셉이 28세에 왕이 되면 안 돼요 충만하지 않아요.
뭔가 모자라 2% 결핍됩니다. 모자라고 핍절되고 뭔가 부족해요.
그래서 채우기 위해서 2년을 또 기다렸어요. 여러분 기다려야 됩니다.
완전히 생명 주시는 영에 의해서 내 안에 생명이 가득 차기만 하면 돼요
가득 찬다는 것은 그냥 채워진 것이지 그것이 줄줄줄 부어져서 넘쳐흘러지는 그 넘쳐 흘러지는 것으로
이웃들에게 남들에게 가족들에게 세상에게 나누어 줄 때 그것이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는 그냥 가만히 있고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을 가만히 있고 넘치는 것을 주어야 우리의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그러면 안 돼요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남편이기 때문에 내가 낳은 자식 내가 낳았기 때문에
사랑한다고요 그렇게 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을 전해줄 때 천연적인 나의 힘 어떤 육신의 생각대로 베풀어지는 사랑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가장 낮은 차원의 사랑이라도 가장 높은 차원의 육신적이고도 천연적인 그 사랑보다도
훨씬 하나님의 사랑으로 전달될 때 그것이 효력과 능력과 큰 유익을 위한 선을 위한 생명을 위한 성취가 결과물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전달될 때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도록 하세요.
인간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누가 내 자매며 누가 내 형제냐 너희가 내 형제요
너희가 내 자매가 아니냐 라고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말씀을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12:47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48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49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50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그래서 우리가 이 부활의 영이신 생명 주시는 영 부활의 영 영적인 몸이 됨으로 말미암아
이 아담이 범한 혼적인 몸의 모든 것을 덮어주실 수가 있었던 거예요.
마치 아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서 입혀주신 것 처럼 바로 영적인 몸이 부활하기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은 그냥 말씀이 육체가 되어 오셔서 인성을 지닌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셨어요.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생명 주시는 영 그리스도의 영이 되셔서 이제는 벽을 통과해서 피와 살은 가졌지만
똑같은 사람의 모습을 취하셨지만 그분은 이제 아무 때 누구든지 만날 수 있고 언제든지 유체 이탈해서
쉽게 말하자면 제자들에게 나타 나셔서 얘들아 평안할지어다 하면서 숨을 후~하고 불어넣으셔서 그들에게 바로
생명 주시는 영으로서 생명을 공급해 주는 왜냐하면 그들이 지금 의기소침해 있고 굉장히 절망에 빠져 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외토리가 됐다 라고 생각한 그들에게 생명 주시는 영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이신 그분 자신을 그들에게 공급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 갑니까
그래서 인간의 첫사람 아담에게는 사람의 그 코에 생명의 기운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으셔서 그 사람을 생명 주시는
그 영적인 존재가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숨을 성경에 세 번 나타나고 있어요. 언제 언제 줍니까
아담 한 사람에게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도 숨을 불어넣으셔서 생명의 기운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으셔서 혼 생명이 되게 하셨습니다. 살아있는 혼 산혼 살아있는 생명체 살아있는 인격 그게 나예요.
흙으로 만들어진 우리 인간의 몸을 지으시고 몸으로 지어진 그곳에 통로가 숨을 쉬고 내쉬는 곳이 어디죠
들숨과 날숨이 코를 통해서 그러니까 그 코에 숨을 넣으신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육체를 지닌 그 인간에게 주셨으나 인간이 범죄하여 타락하여서 혼의 생명이 훼손이 돼버렸네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훼손된 혼에 아담의 그 혼 생명을 변화시켜 주시기 위하여 혼 생명을 취하기 위해서
말씀이 육체가 되셔서 똑같은 인간으로 오셨으나 부활하심으로 곧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몸을 취하셨어요.
아담은 혼적인 몸이 이 변절로 말미암아 훼손되고 파괴되고 망가져서 예수님께서 그 몸을 똑같이 입고
오셨지만 첫사람 아담과 다른 것은 죄가 없으셔요 죄의 모양은 가지고 왔으나 죄 그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에
그가 다시 의인이시기 때문에 살아나실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가 비로소 부활의 영 그리스도의 영 살려주시는 영이 되어서 제자들에게 내가 살려주는 영이다 라고
이제는 영적인 존재로서 그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처럼 이제 모든 자들에게 그 생명 주시는 영 그리스도의 영이죠.
영 하나님 그분을 공급해 줄 수 있다고 표현한 거에요
이제는 언제 어느 때에서도 그분을 모실 수가 있고 그분과 함께할 수 있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이 다락방에서 120 문도가 있을 때 그 제자들이 10명 정도 모였을 때는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애들아
너희가 평안할지어다 하면서 크게 숨을 불어넣으시면 됐었어요.
그리고 아담에게는 그 코에 생명의 숨 생기죠 똑같은 생기나 숨이나 똑같은 말씀입니다.
이 숨이라고 표현한 것이 더 정확해요.
숨을 크게 불어넣으셔서 아담을 이 하나님의 생명을 불어넣으셔서 영적인 존재가 된 거예요. 영의 사람이 된 거예요.
그게 아담 그런데 아담 그때는 지금부터 6천 년 전에 예수님이 오시기 4천년 전에는 숨을 사람에게 불어넣으셔서
그렇게 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그날 밤에는 그 제자들에게 한 번에 숨을 후~하고
대표로 베드로에게만 숨을 불어넣어 주신 것이 아니라 후~하고 생명 주시는 영적인 몸이 됐잖아요.
다시 사신 부활의 몸이 되었잖아요
다시 사신 것은 왜 그래요 생명을 지녔기 때문에 생명을 지닌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생명 주시는 영으로 이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숨을 후~하고 불어넣으신 겁니다.
그러나 그 12명의 제자들에게는 숨을 불어넣으면 됐고 창세기 때 아담에게는 그 코의 생명의 기운 숨을
불어넣으시면 됐지만 이제 마가 다락방에서는 120문도 12명의 제자보다도 10배나 더 많아요.
완전한 숫자입니다. 충만한 숫자예요. 거기에는 바람 같은 숨이 필요해요
큰 바람 그게 조그만 바람 풍선 부는 그 기계 그 풍선을 크게 하는 그 기계보다도 큰 애드벌룬을 만약에 크게 분다면
얼마나 큰 기계가 필요하겠어요. 그런 것처럼 120문도에게는 바람 같은 숨이 필요한 거예요.
바람 같은 생명을 주시는 영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그때 그러한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게 요셉이 생명 주시는 영이 오셔서 꿈을 주시고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를 통제해 가고
다스리고 그 삶의 과정 속에서 일일이 간섭하심으로 말미암아 그가 영의 하나님 생명이신 그리스도 영
그때는 부활의 영은 아니죠.
그러나 영의 다스림 그리고 지금 그 후로 먼 훗날이 지난 2500년이 지난 예수님 때에는
부활의 영이신 생명 주시는 영으로 이렇게 부어주셨지만 그 당시에 요셉에게는 그냥
영 하나님의 다스림을 허락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잠언 16장 32절에 그러한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32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33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영의 다스림이 있는 자는 어째서 그렇죠 그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영의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기 때문에
그 통제는 어떻게 생겼죠 13년 동안의 그러한 과정의 삶을 꿈을 받았기 때문에 꿈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성취한다 라는 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만족시켜서 하나님께 진정한 평안과 안식을 주고자 하는
그 마음으로 그 역경을 이겨나가고 헤쳐나갈 수 있다.
하나님이 기쁘고 하나님이 만족하고 하나님이 참으로 쉬시는 쉼이 있다면 그 쉼을 통해서 내가 기쁘고
만족하고 쉼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누구에게 더 필요 한가요 우리가 하나님이 더 필요할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를 더 필요로 할까요. 많은 사람들은 100명이면 거의 다 대부분이 우리가 하나님이 필요하죠
하나님 없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요. 그렇지만 실제적인 성취하고자 하는 마지막 그 부분에 가서는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그것보다는 하나님이 우리를 더 필요로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통해서 꿈을 주시고 그 꿈이 이루어져야
그 이루어진 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이 만들어져서 함께 일치를 이루어서 연합되어서 거할 수가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을 만든다 라는 그 차원에서 꿈이 성취되고 꿈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면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더 필요로 하고 있다 라는 말씀을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게 아니야 하나님이 우리를 더욱더 절대적으로 우리 없이는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하나님의 그 꿈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져요.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진 일 때문에 요셉의 삶에 야곱의 삶에 그리고 똑같은 우리들의 삶에 그렇게 깊이 관여하시고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러한 꿈을 가진 자를 그렇게 어둠을 주고 시련을 주고 문제를 주어서 그 과정들을
통해서 불순물이 떨어져 나가고 또 악의 성향으로 기울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고 강건한 어떤 능력을 주어서
생명의 힘을 공급해 주어서 다시는 선악과를 아담처럼 따먹지 않고 아무리 주위에 선악과가 많을지라도 아무리 뱀이
우리를 공격하려고 해도 그것을 늘 이길 수 있는 힘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
우리를 만들어 나가고 조성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꿈이요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있는 빛을 이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춰주어서 생명되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하늘의 빛과 생명으로 충만한 그 영 하나님을 통해서 생명으로 마음껏 공급받음으로 말미암아
그 우주에 모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들에게 이러한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우리를 통해서 벌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우리를 필요 하기 때문에 우리를 만들어 나가실 수밖에 없다.
그 만들어 나가는 것이 뱃 속에 있을 때부터 우리를 선택하셔서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들기로 작정하시고
예정하시고 아브라함처럼 부르시고 그리고 이삭과 야곱처럼 그렇게 다루시면서 만들어 나가면서 변화시켜서
돌들이 되게 한다 성전의 보석이 되게 한다 한 줌 의 티끌로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야곱의 꿈을 통해서 돌이 되게 하고
돌베개를 하지 않습니까? 그 돌베개를 일으켜 세워서 기름을 부음으로 말미암아 그 순간부터 변화가 되기 시작해요.
변화가 돼서 신약 시대에 어떻게 됩니까
그 제자를 부르는 가운데서 베드로를 만났을 때 너의 이름은 이제 개바라 하라 게바 돌이란 뜻이에요.
돌을 불렀어요. 그런데 돌이 산돌이 돼야 될 거 아니에요.
그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네가 어떻게 주는 살아계신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마태16: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느냐 이 반석위에 네 돌을 조약돌이죠. 반석 예수 그리스도라는 총체적인 그 정말 주춧돌이며
생명의 돌이며 그 산 근원의 돌인 그 위에 올라서 연결되어지면 합해지면 산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점점 과정을 거쳐서 변화된 그 돌이 자라고 성장해서 성숙되어져서 요셉 같은 자
야곱과 같은 자 야곱 빼앗는 자 속이는 자 탈취하는 자가 어떻게 이스라엘의 왕자 하나님의 왕자가 됩니까
빼앗는 자 속이는 자 취하는 자 이스라엘 왕자가 뭐예요.그건 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서 변모되어서 나눠주는 자 공급해 주는 자
그래서 바로를 만나서 두 번 기도해 주고 축복 기도해요.
아들들에게 기도해 주고요 나눠주잖아요.
계속 하늘에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을 내려주기를 원합니다.
생명을 빛을 비춰주기를 원하고요 생명을 주기를 원하고 하여튼 하늘의 신령한 복들을
마음껏 마음껏 공급해 주기를 부여해 주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부요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부요하신 하나님의 복들을 사람을 통해서 일할 수밖에 없어요.
사람을 통해서 나눠질 수밖에 없는 천사도 그 일을 못해요. 우리만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그 인간만이 그 하나님의 그 복들을 하나님이 주고자 하는 그것들을 대신
전달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되는 이 일이 전제되어야 되기 때문에
야곱을 요셉을 그렇게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의 하나님을 통하여 다스리는 자로 만들기 위해서 요셉을 그렇게 만들어 나갔습니다.
대표자로 12 아들 중에 대표자로 만들었던 거예요.
그런데 르우벤을 보세요. 아비의 침상을 더럽힘으로 말미암아
그가 크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장자권을 빼앗기고 순결한 삶을 살고 정조와 지조를 지켜서 정말 순결하고도
거룩한 삶을 산 요셉에게 그 분복이 빼앗겨짐으로 말미암아 요셉의 첫 번째 아들 므낫세 두 번째 아들 에브라임을 통해서
그 가나안 땅의 몫이 할당된 그 땅이 그들이 나눠가지잖아요. 요셉이 두 개의 땅을 소유하게 됩니다.
요셉의 아들들에게 부여해 주잖아요. 장자권이 넘어갔다는 얘기예요.
여러분 그래서 일상생활의 삶에서 우리가 삶의 행실을 바르게 살라는 의미에서 르우벤과
같은 그런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게 우리들의 모습이에요.
르우벤의 모습은 그 들끓는 정욕을 참지 못하고 제어하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통제가 안 되거든요.
그래서 영의 하나님의 다스림이 필요하다는 얘기예요.
혼이 생명이 범죄하여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혼의 생명이 이게 불끈불끈 일어나거든요.
일어나면 안 돼요 그게 일어나면 영이 엄메 기죽어 하고 지배당하는 거예요.
사람이 혼의 생명이 살아나면 안 돼요 죽어줘야 돼요 그게 죽어지는 것을 혼의 생명이 또 살아나야 된다는 의미로
또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혼이 영에 종속되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혼의 생명이 자기의 기능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예요.
그 능력을 발휘해서 육체의 오감을 육신의 그 정욕 다섯 가지 코와 눈과 입과 촉각을 통해서 눈을 통해서는
아름다운 것을 아주 미적인 것을 취하게 하고 귀를 통해서는 달콤하고 아주 감미로운 음악 감미로운 소리를 듣기를 원하고
손을 통해서는 아주 부드러운 그런 것을 만지기를 원하고 또 입을 통해서는 아주 맛있는 것을 탐하기를 원하고
그렇게 눈과 코와 입과 손 촉각 이런 모든 것들 아주 특별히 육신의 오감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어진
그런 것들을 이렇게 제어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 혼이에요. 혼 생명 그게 나예요.
그게 자기의 인격 자기 생각 자기의 감정 자기의 의지 그것이 능력이 견고해지지 않으면 육체의 정욕이 불끈불끈 드러납니다.
육체가 혼을 담고 있는 그릇이고 혼이 영을 담고 있는 우리의 영을 담고 있는 그릇인데
이것이 제 기능을 일사불란하게 유기적으로 하나로 일치가 되지 않으면 이게 엉망진창으로 혼이 주인 노릇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생명 그 자기는 그 육체를 동맹군으로 삼아서 언제든지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가 있어요.
영이 주인 노릇하지 않으면 이상한 이러한 역심의 일을 경험하게 되는 자기 마음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거예요.
자기가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것이 바로 그래서 요셉이 영의 다스림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을 통제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형제들이 왔을 때 내가 요셉입니다.
형님들의 아우 동생 요셉이에요 라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얘기를 안 해요.
발설을 하지 않습니다. 표현을 하지 않아요. 왜? 표현을 하면 그 형님들의 하나님께서 그 형제들을 다루심을 통하여
간섭하시고 만지시는 일을 통하여 그들에게 그 친히 그 영의 하나님 영의 다스림을 있게 하여서 그 곡식단이 되게 하고
하늘에 빛나는 발광체 해와 달과 별 그런 것들이 되게 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다루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다루시는
자기와 같은 삶의 경험과 과정 훈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자기가 그렇게 나이 30세의 보좌에 앉아서 풍년 7년 기간 지나고 1~2년 세월이 지나서
삼십팔,구세 때에 형제들을 만났는데 자기 형제들에게 자기의 모습을 보이고 싶을 거 아니에요.
내가 이렇게 출세했다. 내가 이렇게 권세를 누리는 통치자가 되었다.
내가 영광의 보좌에 앉았지 않느냐
내가 과거에 꿈을 얘기한 것처럼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냐 라고 막 얘기하고 싶었겠죠.
내가 출세한 자야 얼마나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겠어요.
그러나 그런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왜 얘기를 안 하느냐 꿈이 완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버지까지도 포함한 해와 달과 별 그 아버지까지도 포함한
그리고 12 형제 모두가 지금 베냐민은 거기에 참석하지 않았죠. 베냐민은 나중에서야 참석합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참석한 그 세 번째 여행을 했을 때 비로소 요셉은 자신이 형님들의 아우인 요셉입니다.
내가 잃어버린 또 당신들이 구덩이에 빠뜨려서 그 상인들에게 애굽에 팔림을 당했던 그 요셉 아닙니까
그리고 그 세 번째 그 상봉에서 드디어 자기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전에 자기의 본 모습을 드러내면 얼마나 화려하고 출세하고 높은 보좌에 앉은 그를 보고 정말
우리 동생 요셉 이구나 얼마나 우러러 봤을까요.
근데 그것을 감춥니다. 자기의 속마음을 감춰요.
그 대신 속에는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외형적으로는 아주 냉대하고 아주 엄격하게 아주 그냥 마치 아무것도 아닌 자들에게 얘기하는
업신여기고 있는 것 같은 그런 행동을 하는데 왜냐면 하나님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영광보다는
하나님의 영광 빛과 생명을 산출하는 저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자신의 영광 자신의 보여지는
그런 좋은 출세들은 감추고 얘기하고 싶은 그런 마음을 감추고 저들을 만들기 위해서 잠시 그것을 지연시킵니다.
미룹니다. 연기시켜요 억눌릅니다.
자기의 영광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이 저들에게 만들어져서 그 영광을 소유한 자들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는 그 꿈을 요셉은 더 귀하게 가치 있게 여겼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신의 본 모습 그 통치자 라는 것을 요셉이라는 사실을 형제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았지만 마음은 슬픔을 억제하지 못해서 자기 방에 들어가서 펑펑 눈물 흘리고 웁니다.
그것은 자기를 통제하는 자가 됐다는 얘기예요.
자기가 자기의 생각대로 자기 방식대로 어떤 천연적인 상태에서 얘기하기보다는 영의 다스림 안에서
그것을 통제하고 지배당함으로 말미암아 얘기할 것은 얘기하고 얘기하지 않을 것은 얘기 안 함으로 말미암아
그가 통치자의 자격이 있다 라는 것을 그러한 행동들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볼 수가 있는 겁니다.
그가 이렇게 보좌에 앉아서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 통치자 다스리는 자가 되기까지는 이러한 자기의 혼의 생명을
다스리는 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영의 다스림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자신의 실제적인 모습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것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고 있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잡힌 바 된 사람이다 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섭리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세 번째 만남을 통해서
30세의 보좌에 앉았지만 8년 9년이 지난 다음에 그제서야 아버지도 만납니다.
보좌에 앉은 후에 8~9년이 지난 그때까지도 기다렸어요.
보통 우리 같으면 보좌에 앉자마자 가장 나의 영광과 부귀와 출세 통치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 아버지 불러와 아니면 자기가 말을 타고 가든가 얼마 걸리지도 않으니까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런데 요셉은 자신을 통제하는 삶을 살았어요.
자신을 통제하는 삶을 살았던 것은 영의 통제함을 받은 영의 다스림을 받는 생명 주시는 영이신 바로 주님의
돌보심 그 주님의 손길 아래 그가 목걸이에 금사슬을 한 자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얘기했죠. 탕자에게는 부끄러운 구원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가려야 되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제일 좋은 옷을 입혀라 종들에게 명해서 가장 제일 좋은 옷을 받아서 입었지만 그것은 구원의 옷일 뿐이에요.
죄악 가운데서 건져내옴을 받아서 아버지가 그 아들을 의롭다고 깨끗하다고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의롭게 아무 공로 없지만 의롭게 칭의의 옷을 준 거예요.
그건 구원의 옷이에요. 그러나 요셉이 그 말씀을 통해서 받은 그것은 뭡니까
창세기 41장 42절이 나오죠
바로가 자기 손에서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워주고 세마포 옷을 입혀주고 금사슬을 목에 걸었다.
요셉의 손에 끼워준 거 이거는 성령님의 인쳐지는 구원의 표시로서 주는거고 세마포 옷은
정말 금실로 수놓아진 황금 옷입니다.
이게 탕자가 받은 첫 번째 구원의 옷과 요셉이 받은 이 금실로 수놓아진
왕 앞에 왕을 대면하면서 입어야만 만나볼 수 있는 이 두 번째 주어진 요셉에게 주어진
옷은 이거는 두 번째 옷이에요. 우리가 두 가지 옷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는 구원의 옷 탕자가 받은 그건 누구든지 보편적으로 다 받았어요.객관적인 의입니다.
의는 누구나 주님을 영접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부활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주어지는 의 입니다
그런데 이 세마포 요셉에게 입혀졌던 것은 주관적인 개인의 것이에요. 보상입니다. 상급입니다.
이것은 높은 자를 만날 때 입을 수 있는 옷이에요.
천국 잔치에 들어갈 때는 예복을 통해서 누구나 다 입고 들어가지만 특별히 그 왕과 함께 연회의 자리에 앉아서
겸상을 하며 먹고 베풀 수 있는 그런 특별한 잔치의 신부로서 입고 가는 옷은 특별한 드레스 특별한 옷
그게 요셉의 두 번째 옷입니다.
이 요셉의 두 번째 옷을 우리가 갈망해야 되고 우리가 소유해야 될 그런 아주 좋은 옷인데 그게 주관적인 나만이 갖고 있는
하나님께 의를 소유받아서 정말 내가 예전에는 아버지를 잘 몰라서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정말 몹쓸 짓 하다가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이렇게 나를 사랑하는 줄 몰랐구나 이젠 내가 철이 들어야지 철이 들어서 장성한 자로서 사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 완전히 인정받는 자의 모습이 이 두 번째 우리가 소유 받아야만 되는 그런 옷이
우리는 지금 만들어 가고 있어요.아직 그것을 취한 자는 없습니다.
만들어 가고 있지만 이 옷이 만들어진 것이 금사슬이에요.
이 두 번째 옷이 금사슬로 표현되고 있는 거예요.
몸과 이 머리와 머리 아랫부분에 있는 몸을 가장 가려줄 수 있는 것이 옷입니다.
사람과 악수할 때는 반지를 통해서 이가 참 이 사람의 상속자구나 이 아버지의 소유자구나 아버지 집의 일원 이구나
가족 이구나 아들 이구나 라는 것을 반지를 통해서 보지만 외형적으로 멀리서 볼 때는 옷입니다.
하얀 옷을 가까이 가면 갈수록 금실로 수를 놓았으니 얼마나 화려합니까
이 화려한 금실로 만들어진 가장 좋은 옷을 입었을 때 이것을 그 사람의 권위와 그 사람의 실체와
그 사람의 높음과 영광 모든 이 빛나는 것을 하나로 이 몸과 옷을 통해서 어우러지게 하고 하나의
일체를 이루게 하는 것이 사람의 목에 걸쳐진 금사슬입니다.
이 금사슬이 금목걸이에요.
그 금목걸이가 평상시에 꼿꼿하게 내가 서 있으면 굵은 이 금목걸이가 안 보입니다.
아무리 금실로 수놓은 옷 속에 가려져 있더라도 이가 꼿꼿하게 서 있는 이상 안 보여요
이가 왕 앞에 진정으로 경외하는 모습으로 90도 각도로 절을 할 때 아주 경외하는 마음으로 절을 할 때
그 속에 두꺼운 그 금목걸이가 툭 가장 좋은 빛나고 밝은 세마포 바깥으로 탁 들쳐져내서 그것이 바깥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때 그 사람의 영광이 그 사람의 빛남이 그대로 드러나고 보여지는 거예요.
경배할 때 복종할 때 하나님 앞에 순종할 때 주는 선물이 금사슬이에요.
우리가 영이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 영이신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예요.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에요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성령님 앞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 때
구부린 삶을 살 때 목이 곧은 백성이 아니라 정말 어린아이처럼 부드러운
그러한 순전한 순종의 삶을 살 때 주어지는 것이 금목걸이에요. 이것이 두 번째 옷입니다.
우리가 취해야 될 순종의 삶 그것은 요셉이 지금 영의 다스림을 받는 이 삶을 살기 때문에 주어졌다는 겁니다.
요셉은 순종의 삶 하나님 앞에 온전히 복종하고 순복하고 순종하고 정말 영 하나님 앞에 정복당한 삶 지배당하는 삶
순복하는 삶 영의 다스림이 있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왕에게 선물을 세 가지 선물 중에서 가장 빛나는 영광 그 사람의
전체를 예표하고 대표하고 상징하는 가장 귀한 그것이 바로 순종하는 자에게 주는 영의 선물이에요.
성령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받아야 됩니다. 이것을 받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바로 이 금목걸이를 소유한 바 된 사람이기 때문에 온전한 영의 다스림이기 때문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보다는 형제들을 위해서 그들의 영광을 위해서 빛과 생명을 산출하는 하늘의 높은 곳에 있는
빛나는 광명체가 되어서 하늘의 빛을 땅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춰줘서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 주는 일을 통해서
산출시키는 이러한 일을 하게 하고자 자기의 영광은 숨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꿈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자기는
감추고 그리고 하나님을 궁극적으로 나타내고자 그들에게 자신을 감춘 것입니다.
금목걸이는 옷속에 감춰져야 돼요 자기의 뜨거운 사랑 그들을 아버지를 향한 사랑도 있었고요 형제들을 위한 사랑도 있었죠.
내가 당신들의 아우입니다. 요셉입니다라고 얘기를 얼마나 하고 싶었겠어요.
그러나 감춰야 돼요 그 뜨거운 용광로 같은 사랑은 감추고
바깥으로는 차갑게 냉대하게 엄격하게 그게 하나님의 사람이에요.
그게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의 삶입니다.
목걸이를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목에 금 목걸이를 하고 있는 자들의 삶은 하늘의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꿈을 이루어드리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쁨과 만족을 선물해 드리기 위해서 자기의 삶을 살지 않고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자기의 영광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다른 행동들을 다른 말을 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형제들 앞에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는 거예요.
그러나 그 속 사람은 속에 있는 그 사랑은 말도 못하게 뜨거워요.
그러니까 혼자 방에 들어가서 펑펑 울잖아요.
그게 날마다 이겨 나가는 사람 영의 다스림을 받는 자의 삶 목에 금목걸이를 한 자의 삶은 바로 날마다 이겨낸 삶인데
자기 뜻대로 자기 방식대로 자기의 생각대로 한다면 자기 영광을 보이기 위해서 내가 당신들의 아우입다 라고 얘기했겠죠.
얘기를 안 해요. 첫 번째 만났을 때 얘기 안 해요.
두 번째 만났을 때 같이 식사하고 양식도 주고 다 베풀었지만 얘기 안 해요.
왜 그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꿈 그것을 성취하는 자들로 그러니까 요셉 자기만 만들어지면 안 돼요
여기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중요한 영적인 의미는 요셉을 비롯해 요셉은 대표자예요.
그 요셉을 비롯한 11명의 사람들 결국 요셉까지도 12명의 모든 사람들이 요셉과 똑같은 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바람이에요.
요셉은 그걸 알고서 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만들어 나가야 되잖아요. 그들을 훈련시켜야 되잖아요.
너무나 나쁜 자들이에요. 르우벤 들끊는 정욕으로 인하여 아비의 침상을 더럽혀가지고 장자권을 뺏긴 자
둘째 레위와 셋째인 시므온을 보세요 또 네 번째 유다를 보세요. 디나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이 겁탈당했다는
이유로 세겜 족 속의 그 모든 생명체들 짐승까지도 어린아이까지도 다 죽여버리잖아요.
그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할 짓입니까 아니에요.
첫 번째 아들 장자는 들끓는 정욕을 참지 못해서 르우벤의 모습은 아담의 모습이에요.
탐욕 그것을 절제하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우리들의 삶이 르우벤 같은 삶이에요.
과거에 주님을 몰랐을 때는 이와 같은 똑같은 형태의 삶의 모습이 나와요
그리고 그 분노 주체하지 못하는 분노로 사람을 죽이고 살인하는 그 시므온과 레위
물론 레위는 나중에 들끊는 불붙는 분노와 혈기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오히려 자기 가족들 자기 자매들
형제들을 다 쳐죽이는 일로 인하여 성별된 제사장으로 부름 받는 일 그냥 똑같은 그러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느냐 아니면 정말 자기의 어떤 육적인 천연적인 어떤 생각과 뜻에 의해서 발산하느냐에 따라서 엄청나게
하늘과 땅처럼 다릅니다.
유다 근친상간을 통해서 며느리와 잠자리를 통해서 후손을 낳았잖아요 물론 그것까지도 하나님께서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일로 그를 이렇게 삶을 펼쳐 나가십니다.
하여튼요 그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에요.
그러나 정작 갈수록 단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변절된 자 자기 우상을 만들어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에게 절하게 하고
그러나 단이 비록 변절했지만 그 아셀과 또 납달리를 통해서 회복하게 하고 납달리를 통해서 또 부활의 삶 또 요셉을 통해서 만들어져서 정말 생명이 충만한 자로 만들더니 베냐민을 통해서 마지막 12번째 마지막 삶의 모습은 하나님의 집이 하나님의 거처가 베냐민에게 베냐민이 뭐예요. 유다 위에 있는 땅의 그 베냐민 땅의 가장 맨 아랫부분에 사사기 1장 21절에
베들레헴이 있잖아요.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신명기33:12 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살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마치도록 보호하시고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
베들레헴 하나님의 도성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 하나님의 집이 있는 곳을 누가 차지했느냐 베냐민이 차지했어요.
베냐민은 하나님의 집을 만든 자 가장 하나님이 원하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자로 만들어 그게 하나님의 꿈이고
하나님의 목적이었어요.
근데 그것보다도 더 위대한 삶은 영의 다스림을 받는 영의 통치를 받는 자의 삶 그것은 하나님의 집은 물론 조성하고
건축하는 것은 물론 하나된 삶 그리스도와 같은 똑같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바로 요셉과
같은 사람도 필요하고 야곱과 같은 사람도 좋고 베냐민 같은 삶이 돼야 되지만 그것보다도 요셉에게 일어났던
영의 다스림을 통하여 모든 것을 통치 통제하고 다스리는 자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느낌 우리의 방식 우리의 편견 우리의 관념 이런 모든 것들을 치우시고 한쪽에 제쳐두고 정말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드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제쳐 두고 그 일을 먼저
우선시해야 된다 라는 얘기를 여러분에게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러한 영의 다스림을 받고 생명을 주는 생명의 영의 통제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대로
임의대로 하지 않고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그 10명의 형제들을
훈련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 창세기42장 17절에 보면은 그리고 나서 요셉은 그들을 모두 3일 동안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3일 동안 가둔 얘기가 나와요왜 3일 동안 가둡니까
그렇게 해서 3일 동안 가두는 동안에 그들이 얘기를 합니다.
우리가 요셉을 판 것 때문에 우리가 이런 정말 엄청난 잘못된 일로 말미암아 대가를 톡톡히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구나
하면서 얼마나 정말 자책하고 정말 회개하고 깨닫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막 그랬겠습니까
짧은 시간이면 안 돼요 사흘이라는 하루 이틀 사흘이라는 이 시간에 그들은 모두 밤낮으로 모여서 요셉의 얘기
아버지가 자신들의 거짓말로 인하여 슬퍼한 얘기 요셉을 판 얘기 죽었는가 살았는가 팔아서 멀리 뭐
그런 얘기들을 통해서 그들의 불순물들이 제거되고 악으로 기울어진 그들의 성향들이 좀 더 견고 해지고
능력 있는 삶의 소유자들로 바꿔 나가기 때문에 특별히 시므온을 남게 하여서 10명의 형제 중에서 9명은 보내고
양식을 가져가게 하고 시므온은 특별히 특별 훈련을 시킵니다.
골방 지하 감옥에 이렇게 가둬 놓음으로 말미암아 6개월 동안을 데리고 있는 것이 여기 나옵니다.
창세기 42장 36절에 너희가 내 자식들을 잃게 하는구나 야곱이 아들들에게 얘기하는 겁니다.
요셉이 없어졌고 이제는 시므온도 없어졌는데 이제 너희가 베냐민 마저 데려가려 하는구나 모든 것이 나를 대적하는구나
이게 요셉이 그 첫 번째 만남 두 번째 만남을 통해서 자신을 비밀스럽게 감추고 그들의 서로 하는 얘기를 통해서
시므온이 그때 당시에 저 꿈꾸는 자가 온다. 저 아버지께 선물 받고 예쁜 옷을 입고 있는 채색 옷을 입고 있는 저 요셉을
우리가 죽여버리자 라고 주동한 자예요. 앞장선 자입니다.
그때 르우벤이 말리고 유다가 또 설득하고 해서 급기야 이스마엘과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림을 당하게 되는
일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섭리대로 노예로 팔려감으로 말미암아 그곳에서부터 바로에게까지
이렇게 지나가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만 시므온이 너무나 죄악된 편향된 아주 기울어진 악의 성향으로 기울어진
그를 특별히 훈련시키는 일을 갖게 하기 위해서 6개월 동안을 가둬놨던 겁니다.
이것이 요셉의 마음이고 요셉은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해서 그를 그렇게 혹독하게 훈련시킨 것이에요.
그러나 마음으로는 그도 형제입니다. 뜨거운 사랑이 있죠.
그러나 그를 그렇게 하는 것이 곡식 단에 대한 꿈 하늘의 별과 해와 달과 별들에 대한 꿈을 꿨기 때문에
빛과 생명을 소유하여서 모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회복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밝히 드러내기 위해서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에 속으로는 뜨거운 사랑을 갖고
그리고 겉으로는 냉랭하게 엄격하게 아주 무시무시하게 아주 심한 형벌까지 주면서 그를 대했던 것입니다.
너무나 과하다 할 정도로 그러나 마음속의 뜨거운 사랑으로 인하여 그 과함 그 심한 냉대와 오히려 핍박과 무서운
형벌 같은 것이 뜨거운 사랑의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있는 한 그것은 매를 천대 만대 때려도 사랑의 매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사람이 인간적인 마음에서 자기 자식들 남편들을 사랑하면 안 돼요 아무리 자기 자식이라고 해서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머금은 상태에서 전달해 주는 그 사랑이 최소한의 가장 낮은 사랑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내가 천연적이고도 인간적이고도 육적인 사랑으로 전달해 주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통한 그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해
주는 것이 가장 큰 것이에요.
그것이 그래서 예수님께서 누가 내 형제며 누가 내 자매냐 너희가 내 형제요 너희가 내 자매가 아니냐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 제가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슨 얘기입니까
요셉이 그 열 명의 형제들에게 보여준 것이 사랑하지만 외형적으로는 아주 엄격하게 아주 차갑게 대했다는 것입니다.
왜 이것은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향한 우리 주님께서 보여주는 사랑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취급하실 때 이러한 요셉과 같은 사랑으로 대하신다는 얘기예요. 요셉은 그들을 사랑했어요.
사랑했지만 은밀하게 사랑을 표현합니다.
속으로 언젠가 드러나야 될 때까지 참는 겁니다.
지루한 시간을 기다려요 그는 아주 거기서 꾹꾹 억눌러 참고 있습니다.
아주 은밀하고 깊은 사랑 그 높은 사랑 그 정말 말할 수 없는 넓은 사랑을
요셉은 가지고 있었지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겠어요. 형제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겠어요.
그 방에 들어가서 펑펑 울었죠. 그러나 이 비밀스런 사랑을 그들을 위해서 차갑게 대했던 거예요.
그들을 위해서 감춰놓았던 거에요 이게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할 때 감춰놓고 있어요. 비밀스럽고도 은밀하게 나타내지 않아요.
왜 우리가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에 만약에 하나님의 사랑을 요셉의 그 사랑을 보여주고
아주 적나라하게 나타내준다면 그들이 저 요셉 이구나 만들어질 수가 없어요.
변화될 수가 없어요. 악한 성향으로 기울어진 그들을 다시 일으켜 가지고 자신과 같은 꿈을 꾸게 하여서
곡식 단이 되게 하고 해와 달과 별과 같은 빛나는 하늘의 발광체들이 만들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속을 바꿔줘야 됩니다.
고통이라는 것을 통해서 요셉이 어떻게 그렇게 영의 다스림을 받는 고통이라는 것을 통해서 문제 시련 아픔 슬픔 정말 외로움 이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요셉을 깨끗하게 처리하셔서 그 안에 거룩하신 영이신
생명의 영이 그 안에 내주하셔서 다스리고 있는 겁니다.
그때 요셉은 통치하는 자로 드러날 수가 있게 되는 거예요.
요셉은 그 어떤 일이나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할지라도 다 요셉에게 벌어진 그 일들은 축복이요
하나님의 집을 만들어 나가는 하나님이 친히 만드는 조각칼이요 조각칼에 의해서 이렇게 다루어지는 자요.
축복이요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그 손길마다 만들어져 가고 있는 거예요.
깎아질 것은 깎아지고 붙여질 것은 붙여지고 제할 것은 제하고 불순물 없애질 것은 없어지고 눌러야 될 것은 눌러서
견고하게 되고 이런 일들을 고통을 통해서 주는 것입니다.
그게 야곱과 요셉에게 준 모든 고통스러운 일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영의 다스림을 위해서
그렇게 조성되어지는 그러한 어루만짐이었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어루만져서 만들어지기까지는 비밀스럽게 해야 되잖아요.
나타내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요셉이 자신을 감추고 비밀스럽게 사랑은 가졌지만 외형적으로는 얘기를 안 했던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그걸 얘기를 안 하시는 거 비밀스럽게 대하셔야 됩니다.
그래야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걸 알면은 꿈을 가진 자와 꿈을 가지지 않은 자의 차이는 뭐냐면 꿈을 가진 자는
그것을 알고 단축시킬 수가 있어요.
그것을 축소시켜서 더 빠른 10년에 걸릴거 1년 만에 만들 수 있어요.
나는 오랜 시간 걸렸어요. 38년 걸렸어요.
이런 거를 알았더라면 누가 가르쳐주는 자가 있었더라면 교제를 통해서 누가 풀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38년이 3년 반 만에도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이걸 이제 나이가 다 들어가지고 이제 제가 살아야 얼마나 살겠습니까?
노년이 돼서 근데 우리 주님께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라고 그런 세밀한 음성을 저에게 들려주셔서 제가 아~그렇습니까
지금부터네요. 인생은 지금부터네요. 60세 70세 그때부터 여러분의 인생이 시작되는 겁니다.
만들어지기만 하면 만들어지는 시점에서 하나님이 기뻐하고 우리를 통해서 아주 만족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이 누가 더 필요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더 필요로 한다고요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를 더 필요로 할까요.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알아요 아니에요.
하나님은 우리 없이는 일을 못해요.아무것도 못합니다.
우리를 통해서 빛이 비쳐지고 하늘의 그 높은 빛이 우리를 통해서 땅에 그 생명이 곡식이
자라서 30배 60배 100배의 그 밀알이 죽어져서 발아가 되고 또 자라남으로 말미암아 성장해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야 되는 일을 사람을 통해서 하십니다.
사람을 통해서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이렇게 귀하게 가치 있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10명의 형제들을 아주 철저하게 다루기 위하여 철저한 아주 그냥 아프게 때리는 겁니다.
때리고 옥에 가두고 뭐 그냥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슬픔과 어둠을 경험하게 특별한 훈련을
왜냐하면 그래야 그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만들어지는 과정이 비밀스럽게 행해야 되기 때문에 요셉이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비밀스럽게
얘기를 안 했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환경과 장소와 만남의 주위에 이렇게 설정돼 있는 조성되어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을 비밀스럽게 하나님의 사람 곧 영의 다스림을 받는 자 곧 꿈을 주었는데 그 꿈을 이루어지고
성취하게 하기 위한 자로 베냐민 같이 하나님의 집을 만드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아름다운 보석들로 만들기 위해서
여러분들에게 그렇게 다루시고 계시다 생명의 양식을 나눠주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속에는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외형적으로는 아주 차갑게 그들을 대한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대우하신다 취급하신다.
근데 이러한 일들을 알지 못하면 오해한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나를 어루만지시고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 베풀고
그래야 되는데 아니 이게 양식을 주고 엉뚱하게 곤혹스러운 일을 경험하게 하고 또 그 일로 인하여 마음을 막 이렇게
끄집어내서 마음을 아프게 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이것 그뿐이에요.
철저히 깨닫도록 또 3일 동안을 그냥 꼭 감옥에 갇히게 하고 시므론 같은 경우는 깜깜함과 외로움과 그 흑암 속에서
죽음의 장소에서 보내게 하고 왜냐하면 그래야 그가 깨지기 때문에 그가 산산이 십자가 위에 그 자신이 떨어져서
산산이 부서지지 않으면 그가 혼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영을 정복하지 못하는 그런 일들이 있을까 봐
요셉은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꿈을 성취하는 자로 만들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합니다.
자신을 내보이지 않아요.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과 안식을 위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꿈을 소유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게 하기 위해서 영의 다스림을 받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그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고자 갈망하는 것 때문에 자신의 모든 꿈을 포기합니다.
자신의 모든 소원들 자신이 바라고 있는 것들을 다 내려놓습니다.
그것이 영의 다스림을 받는 자의 그게 목에 금목걸이를 받은 자의 삶 그렇게 된 자의 삶이 금사슬 큰 금 목걸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을 아는 분량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드리기 위한 그 갈망이 크면 클수록 큰 목걸이가 우리
요셉에게 주어졌던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꿈이 큰 자에게는 그 꿈의 성취를 위해서 더 오랜 시간을 지연되게 하고 꿈이 없는 자들 가치가 없는 자들
그 술관원장과 떡관원장 같은 경우에는 꿈이 없고 하나님 관점에서 볼 때 가치가 있는 자로 보지 않기 때문에
금방 석방시키고 그런 시련과 어둠과 그런 어려움이 없어요.
그들에겐 그러나 꿈이 큰 자 야곱처럼 야곱을 보세요.
요셉을 보세요. 13년 등극의 보좌에 앉았는데 또 9년을 기다려요 또 몇 년을 기다린 거에요
22년을 기다린 후에 아~ 22년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위치한 장소가 어딥니까? 몇 년을 기다렸어요?
3년 기다렸습니까? 5년? 10년? 여러분의 위치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고요 장소에서 좀 해방되고 싶다고요? 아니에요.
큰 자일수록 꿈의 그 성취를 위해서 더 오랜 시간을 기다리게 하고 지연시키고 더 눌러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왜? 그렇게 해서 여러분을 만들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고 기뻐하시고 만족하시고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희생해야 되고 인내해야 되고 기다려야 되는 것을 위해서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매일의 삶을 통해서 매일의 그 이겨나가는 삶을 통해서 영의 지배함을 영의 다스림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바로 생명의 영이신 하나님의 생명의 통제 아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부활의 삶을 살게 함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생명의 통제아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요셉이 이러한 생명이 있었기 때문에 형제들을 그렇게 대하고
시므온을 그렇게 혹독하게 훈련시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는 자 특별히 자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특별 대우를 하는 것이
그렇게 비밀스럽고 그렇게 은밀하게 대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돈을 돌려주고 양식을 줌과 동시에 또 자기의 뭐라 그럴까요.
좋고 나쁜 것을 이렇게 구별해주는 이방신도 감춰놓고 해가지고 아주 비밀한 방법으로 그들을
특별 훈련 시키는데 실제적으로 사랑했다.
하나님의 유익한 것들을 공급받게 하기 위해서 소유하게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그렇게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하시는 사랑의 방법이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게 보여진다. 그래서 요셉은 자신의 갈망과 자신의 감정 자신의 생각 자신의 뜻 자신의 기질
자기의 필요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한 그 영광을 위하여 그 하나님의 필요를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일을 행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덮어놓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아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감정이 아닌 영의 다스림을 통하여 이 일을 하고 있다라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진정 사랑의 마음으로 조성하는 사람은 오랜 시간을 그리고 오랜 시간 뿐만 아니라 혹독한 훈련을 통하여 그리고
특별한 때에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꿈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오랜 훈련을 통해서 슬픔과
시련과 어둠 가운데 임하게 하시는데 이것은 바로 요셉이 비밀스럽게 형제들을 사랑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은밀하고도 보이지 않게 아주 비밀스럽게 우리를 향해서 사랑하신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우리를
대하시는 크신 사랑의 방법이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리며 곧 이어서 교제 또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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