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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14장6~12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믿음말씀 나눔방 2023. 8. 31. 20:13
말씀 : 박 찬 덕 선교사
말씀주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믿음
지난 시간에 예수님의 믿음에 대한 말씀을 전해 드렸는데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는것 같아서
오늘은 조금더 보충적인 설명을 해드리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요한계시록 14장6~12 보면 세 명의 천사가 나타나서 공중에 막 날아다니면서 얘기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 데요
“ 6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이 천사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메신저 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특별한 그 기별을 사람들에게 전하여 주는
하나님의 마음에 부합된 예수님의 성품에 맞는 예수님의 믿음을 가진 그런 특별히 훈련되고 준비된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천사라는 이 공중에 날아가서 막 전하는 이 공중에 날아다니는 천사는 다름 아닌 주님 오시기 전에
우리가 천사처럼 그렇게 바삐 움직여 돌아다니면서 말씀을 전하는 복음 전도자를 말하는 거예요.
근데 첫 번째 천사는 여러 족속들 민족들에게 백성들에게 다니면서 영원한 복음 오류가 전혀 없는
하나님께서 원 아담과 하와에게 전해 주었던 그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은 변질됨이 없이 처음이나 나중이나 알파와 오메가나 똑같이 그 살아 역사하는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영원한 복음 거짓된 복음이 아니라 참 복음인데 그 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성령님에 의해서 준비된 자들이 말세지 말에 주님 오시기 직전에 이러한 말씀을 전하여서 사람들에게 어떠한 말씀을 전하는 냐면 하나님을 왜 두려워하지 않느냐 하나님을 두려워해라 그게 7절 말씀이에요
큰 음성으로 큰 음성이라는 것은 뭐냐하면 너무 사람들이 안 듣기 때문에 적은 소리로 했다가는 그들이 그냥 지나치고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큰 음성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해라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말미암아 경외하고 순종하여서 계명을 따르는 것을 말해요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두려워할 수 있느냐 보여야 두려워하지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 내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 10가지 계명을 축소해서 하나님을 너희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계명을 지키지 않는것과 같아 자세하게 보면 너희가 계명을 지키는 것 같은데 실제는 지키지 않는 것이 있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해라 왜냐하면 그분은 영광을 받으실 우리의 창조주요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라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이유와 목적은 성경에 다 찾아봐도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왜 그분을 섬기고 경배하고 믿느냐?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우리를 만드시고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의 심령에 우리의 마음에 부어주어서
하나님과 같은 자로 만들어서 그분의 나라에 거하여 영원히 함께 장막을 치며 살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그분의 모양대로 그분의 형상대로 우리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천사가 그런 의미를 두고 이렇게 전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천사가 그 뒤를 따라 동시 발생적이지만 엄격히 시간의 순서가 첫 번째 순서가 그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동시에 둘째 천사도 전할 수가 있습니다
일정한 간격을 둘 수도 있지만 그 영원한 복음이 너무나 너무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 세상을 창조한 하늘과 땅과
세상과 물들과 바다와 산들을 만드신 그 하나님께 너희가 경배해야 하는것이 사람이 사는 삶의 의미와 목적이다.
그분에게 경배하라 라고 얘기를 합니다.
동시에 너희가 그런데 왜 경배하지 못하고 너희가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면 교회에서 거짓 복음을 받았다
이 말이에요. 바벨론이란 바벨탑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바벨탑이 하나님의 홍수를 피하고자 자신들이 높게 대를 쌓고 단을
쌓고 1층 5층 10층 20층 30층 높이 쌓아서 아무리 큰 홍수가 오더라도 그 높이 올라가서 피난처가 되어서 하나님의 홍수를
자신들이 면할 수 있다 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함을 보시고 왜냐하면 하나님이 홍수를 내리면 내리는 대로
그의 홍수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옳으신 거예요.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심판하시는 거예요.
죽이시면 죽이시는 대로 살리시면 살리시는 대로 하나님의 공의가 사랑이 있기 때문인데
자신들이 그 위기를 그 홍수를 그 심판을 피하고자 의도적으로 인위적으로 하나님의 매를 피하려 한다 라는 것은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과 대적하려 하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려 하는 마음을 가졌는지를 알수가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구음을 말하는 말들을 각자 변하게 해서 혼잡하게 만듭니다.
알아듣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이 사람은 한국말로 저 사람은 소련 말로 일본 말로 이렇게 하니까
그곳에 한 언어와 한 말로 서로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갑작스럽게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이상한 세상 언어들로 각자 전하게 되니까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됨으로
말미암아 성 쌓기를 바벨 탑을 쌓기를 멈춘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에는 하나님이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생각의 약함을 보시고 하나님의 뜻 위에 자신의 뜻을 세워서 홍수를
면하고자 하는 악하고 패역한 마음이 있기에 혼잡스럽게 한 거예요.
그래서 그들을 각자 딴 세상으로 각자 서로 말이 맞는 자들끼리 모여서 세상으로 흩어지게 하십니다. 혼잡하게 하셨다.
요즘에 교회를 바벨론 교회라 하는데 이 바벨론이란 뜻은 거기서부터 유래가 되었는데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혼잡한 상태가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 저런 말 자신들의 생각 자신들의 감정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진리가 아닌 자신들이 생각해서 자신들의 뜻을 전하는
그 말은 세상 사람들의 믿는 자들의 귀를 닫게 하고 눈을 감게 하고 마음을 닫게 하여서 진리가 진리됨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니 그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거예요.나오지 않으면 너희들은 멸망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복음 거짓된 복음 오류의 복음을 전하여서 이말 저말 막 하는데 온전한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선포 될 수가 없어요.
교회는 참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서 참 진리를 한 분의 성령님을 통해서 참 하나님
예수님이 마음 가운데 가지셨던 그 성령님 예수님과 함께 역사하셨던 그 성령님 그 성령님이 기름 부어주신 그 메시아
메시아 그리스도인이신 예수님에게 바로 마음 가운데 역사하셨던 그 한 분 단 하나의 성령님이
오셔서 역사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참복음 진리를 따르는 자들에게 그 예수님에게 머무셨던 그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기름 부어주시면 우리가 예수님 사람 그리스도인이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뜻이에요.
하나님께 특별히 그 일을 위해서 선택받고 기름을 부음으로 말미암아 대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으로서 하늘의 왕으로서
대제사장으로서 백성들의 대제사장으로서 선지자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 대신 선포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그 세 가지 일을 하는데 특별한 기름 부음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그 예수님이 어린 시절부터 그분과 함께
하셨던 거예요.
그 성령님께서 함께하셨던 그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그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따른 자 그리스도를 닮은 자라고 우리는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 그대로 하나님의 뜻을 전할게요 교회들에서 나오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교회가 참 복음을 전하고 참 진리를 그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 복음을 전한다면
이 기쁜 진리를 전한다면 똑같은 의미와 똑같은 정신과 똑같은 영을 전해서 사람에게 창조의 역사가 임하여지고 변하여지고 거듭나는 일들이 일어나는데 이 세상이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 바꿔지지 않는 것을 보니까 거짓된 복음을
거짓된 교회에서 전하고 있다 라는 얘기예요.
참 복음을 지금 만약에 예수님이 영접했던 그 성령님이 오셔서 예수님처럼 진리가 선포가 된다면 세상은 지금처럼 어둡고
혼탁하고 혼잡스럽고 거짓과 악이 가득 찬 세상이 절대로 될 수가 없다 라는 거예요.
교회 속에 이런 세상에 악들이 가득 찬 것을 보니까 거짓된 복음을 목자들에 의해서 전하기 때문에 그곳에 있으면 너희들은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나오라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당장 나오는 것을 머뭇거리고 지체할 수밖에 없는 것은 두려워요.
세상에 참 복음을 받게 되면 그 참 복음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어두움이 빛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밝히 드러나므로 말미암아
죄악이 드러나는 일로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두려운 죄책감과 두려운 마음을 아담처럼 갖게 됨으로 말미암아 참 빛 참 복음을 영접하기를 사람들은 인간의 깊은 본성 속에 가지고 있어요.
그 거짓된 복음을 전하는 그 교회에 잠시 육체의 소욕을 쫓는 일을 어느 정도 타협해 주고 어느 정도 발을 맞춰주고 보조를
맞춰주는 일로 인하여 그 안이함과 편안함에 빠져서 그들은 교회에서 나오는 것이 그렇게 두렵고 어려운 거예요.
그러나 그들이 거짓된 복음 자신이 그 교회를 다니면서 변화된 것이 없고 거듭난 것이 없으면 죄를 물리치는 그러한 일들이
없다면 하나님을 만나는 그 만남의 사건들이 창조의, 부활의 경험들이 없는 것이 지속적으로 어제도 오늘도 그저께도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거기에는 참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아니에요.
그러나 참 복음이 전해지면 빛의 복음이 자기의 어두운 마음에 들어가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찢어지고 내가
이 복음으로 인하여 내가 바껴져야 할 텐데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무릎 꿇게 되고 하나님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하나님을 찾고 성령님을 찾고 말씀을 찾게 되면 그것은 바꾸어지고 있다 라는 증거예요.
마음이 부대끼고 부대끼면 성령님의 역사가 그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기뻐해야 됩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 바벨론 거짓된 복음 오류의 복음 어둠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 복음을 전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생명이
없어요. 그러니 그들이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닮아가야 되는데 예수님처럼 사는 생애가 나타나야 되는데
그 생애가 없어요.마음이 거룩해져야 되는데 맑고 깨끗하고 정결하고 거룩한 백성이 돼야 되는데
그런 삶이 나타나지 않고 열매가 없다 라는 것은 그 교회가 죽은 교회라는 거예요.
그 교회에서 나오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겁니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지 몰라요
세 번째 다른 천사 세 번째 천사가 그 뒤를 따라 어떤 음성으로 큰 음성으로 너희가 마지막 때에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며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너희가 마시게 되어 결국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이신 예수님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 라는 이런 무서운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그 짐승에게 우상에게 경배하지 말고 그 이마에 짐승의 표를 손에 나 이마에 받지 말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해답을 안 가리켜 주셨을까요?
성령님께서 예수님께서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결 봐야 되나 어떻게 이겨야 되나 그들에게 그 짐승과 그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지 않으려면 마지막 그 환란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까 라는 것이
12절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의 믿음을 지키는 자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된 마음을 가져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기쁘고 즐겁게 돼야 된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자신의 노력이나 우리 자신의 열심이나 애를 써서
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안된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아주 기쁘고 즐거움 속에서 그 하나님의 법을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믿으셨으며 늘 기쁨속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조금의 죄도 짓지 않으시고 사셨던 예수님의 생애처럼 내가 따라 살고
그 믿음을 가진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믿음을 지키는 자가 될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믿음을 가진 자들이 되면 됩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하나님께 절대적인 신뢰와 절대적인 사랑과 절대적인 존경심과 절대적인 순종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를 묵상하기를 쉬지 않고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우리 성도들에게 주는 믿음 가운데 우리를 구원하는 영 믿음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는 영혼
요동치는 믿음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 별 믿음이 다 있는데 예수님이 가지신 믿음은 바로
첫 번째로 먼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보여 나타낸 증거로 말씀하신 예를 들자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오 내 기뻐하는 자다 라는 요단강에서 거룩한 영을 상징하는 비둘기같이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예수님에게 들려집니다. 또 예수님과 함께했던 몇몇 제자들에게도 이 말씀이 들려졌기 때문에 성경에는
지금 우리가 보는 대로 기록이 되고 있던 것이고요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그 한 번 말씀하신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사랑한다 내가 기뻐하는 자다 라는 그 말씀을 가지고 바로 광야에 가서 시험을 이길 수 있었던 근거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나의 일을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 내가 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들려주었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서 들려준 그 말씀을 따라 순종을 하고 기억하고 그 말씀을 믿는
믿음에 의해서 주님께서는 세상을 이기실 수 있었던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자신을 만나주시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세 가지 시험 이기기 힘드셨어요.
왜냐하면 그분은 인자 사람의 아들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인간의 인간으로 태어나신 우리와 똑같은 자로 태어난 인간이기
때문에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공급해 주지 않으면 절대 이길 수 없었어요.
그렇다면 우리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신 그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대로
내가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구나 그분이 나를 참으로 사랑하는구나
내가 하는 일을 내가 태어나 내가 이 일을 위해서 사는 것을 하나님은 엄청 기뻐하시는구나 라는 것을 마음에 심령에 간직하고 새기고 돌판에 새긴 것이 아니라 예수님 심비에 마음 판에 그것을 새기고 잊지 않고 날마다 그것을 들여다보며 날마다 날마다 생각을 하며 날마다 날마다 그것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며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지 아!맞아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야 라는 그 말씀으로 인하여 세상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에요.
세상은 마귀와 죄와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가지셨던 그 믿음을 우리도 바로 이 말씀의 진리를 통해서 생명의 진리의 말씀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이 우리를 날마다 깨끗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거룩케 하시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도 그와 같이 예수님이 가지셨던 그 믿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생애를 사시면서
하나님께 가지셨던 그 믿음을 무엇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들려오는 말씀 때로는 성경 말씀에 그 말씀 구약의 선지자를
통해서 시편을 통해서 바로 그렇게 말씀하신 그 말씀들 그거를 기억했다는 겁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라는 이 얘기는 예수님께만 얘기하신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마음과 그와 같은 심령을 가진 자들에게 똑같이 오늘날 이 시간에도 매일매일 우리에게 그와 같이 말씀해
주고 있다라는 얘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 말씀을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마음이 있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말씀이 나하고 상관이 없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얼마만큼 주님의 믿음에서 떨어져 있는지 연약한지 부족한지를 알 수가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다윗에게만 얘기한 겁니까 베드로에게만 했는가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이 얘기는 니고데모 에게만 얘기한 것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에게도 얘기하신 것이고 베드로에게도 우리에게도 그와 같이 얘기를 하신 것인데 사람들은
그 얘기를 니고데모에게 말을 했기 때문에 니고데모에게만 말했지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거야라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아니에요.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너를 정죄하는 자가 없느냐 참소하는 자가 없느냐 예 없습니다.
다 떠났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라는 말씀은
막달라 마리에게만 한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삶 그 같은 생애를 살고 있는 모든 죄인들에게 하여 주신 말씀인데
그 말씀이 나에게 부합되지 않으므로 그 말씀은 한낱 문자처럼 그냥 한 편의 글처럼 막달라 마리에게만 부합된
죽은 말씀으로 들려질 뿐이에요.
그 말씀은 그 심령과 같은 자가 되면 바로 그와 같은 통분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죄 때문에 자기가 멸절 당하고 고통 당하고
비웃음 당하고 부끄러운 삶을 사는 그런 마음을 가진 자에게 똑같이 그런 말씀이 들려졌다면 받으면 그 말씀이 바로 생명의
말씀이 되어서 막달라 마리아처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노라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라는 얘기로 우리가
듣고 생명으로 소유 받을 수 있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어떤 말씀을 읽을 때 두려워하지 말라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이런 말씀을 하셨을 때
그게 제자들에게만 얘기한 걸까요? 베드로에게만 얘기한 걸까요?
아니에요. 그 얘기는 지금 주님을 바라보며 사는 그리스도인 선한 성령님 안에서 한 진리를 받은 우리들에게 똑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으니 너희도 세상을 이길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 말씀이
나와 상관이 없는 죽은 말씀이 되는 것이에요.
베드로에게만 하신 말씀 그러니 삶에 변화가 없고 삶의 기쁨과 즐거움이 없고 그 예수님이 2천 년 전에만 역사하시고
지금은 역사하지 않는 하나님으로 보여지는 거예요.
지금은 그 예수님이 자신의 영을 통해서 내 말은 영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지금 성령님의 영으로 거룩한 성령님으로 예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역사하시고 계셔요
하늘에 계시지만 그분의 영은 성령님을 통해서 바로 하나님께 구하여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려오신 그 성령님은
예수님과 똑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나와 같은 대언자 나와 같은 변호자 나와 같은 위로자가 너희에게 올 것이다.
똑같은 위로자 예수님과 같은 분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은 2천년전에 그런 활동을 제자들에게 하셨는데 부활하고 승천한 다음에는 하늘에 올라가서 지금 휴가를
보내고 있는지 아니면 어디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지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분이 보내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똑같이 지금도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를 만나고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다라는
얘기예요. 그리고 도와주고 있다라는 얘기예요.
변호자 격려자 위로자 우리가 슬플 때 성령님을 통하여 어루만지면서 엘리야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물을 주고 구운 떡을 주면서 엘리야야 일어나라 네가 지금 누워서 이렇게 낙심하고 죽을려고 그러는게 아니지
나와 함께 동행하자 니가 할 일이 있단다 이렇게 하시는 분이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시라는 얘기예요.
여러분은 얼마나 그 성령님을 간절히 찾고 간절히 기다리고 있나요.
말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성령님을 간절히 간구해야 됨은 물론 무엇보다도 성령님을 간구하고 회개하고
우리가 간구하는 그분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일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예수님이 하셨던 기도처럼 그런 기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데 우리는 예수님이 가지신
그 예수님이 가지셨던 그 생애를 사시면서 우리에게 보이셨던 그런 믿음이 없어요.
알려고 하지도 않아요. 어떤 게 그분의 믿음인지 요즘에 교제를 통해서 얘기하니까
아! 이런 것이 예수 믿음이구나 라고 알았지만 부분적으로 조금 알았지만 아주 깊숙하게 알지를 못해요.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이기고 마지막 때에 그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이마에나 손에나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는 것은 순종하며 진리를 고수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가지셨던 그 믿음을 가져야만 이길 수가 있다 라는 것이에요.
이 세상에 예수님의 믿음이 아니고서는 그 어떤 것도 우리는 절대 이길 수가 없어요.
예수님의 그 믿음이 말씀으로 표현된 것이 신약 성경이에요.
그분이 하나님께 믿음을 가졌을 때 아!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시는구나 나를 이렇게 기뻐하시네 내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네 이런 것을 믿게 된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라는 거예요.
이게 중요해요 어떻게 그 믿음을 보여줬을까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다 너는 내 아들이야 내가 기뻐해 내 사랑하는 자 너의 이름은 내가 항상
너와 함께하는 임마누엘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사랑하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하시네 사랑도 하는데
기뻐하기도 하네 나를 아들로 인정해 주시네
이러한 하나님께서 그 증거를 가지고 보여주신 말씀을 따라 그 말씀을 내가 증거로 믿고
내 마음속에 심령에 돌판에 새긴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 깊숙하게 깊은 골을 내어서 뾰족한 칼로 깊이 새겨서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말씀으로 보여 질 때 나는 그 말씀을 생각하며 맞아!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지 하나님이
지금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나와 함께하시지 라는 이 증거를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주었다. 이 말입니다.
.
그 주신 믿음 때문에 예수님이 그 하나님이 주신 그 믿음을 보고 자기도 믿음을 따라 하나님께 그 믿음을 드렸다.
그런 거예요. 조금 어렵죠. 느낌으로 받으셔야 돼요 영이기 때문에 진리는 영이기 때문에 즉 다시 말하자면
그러니까 예수님이 가지셨던 그 믿음은 생애를 사시면서 하나님께 얼마나 순종하고 얼마나 신뢰하고 얼마나 존경하고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서는 절대 예수님이 하지 않을 정도로 예수님의 스케줄에는
하나님의 스케줄로 꽉 차 있어요.하나님의 스케줄 속에서만 예수님이 움직이셨어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였기 때문인데 그 신뢰하게 된 믿음이
그 믿음은 어디서부터 왔냐면 하나님이 먼저 예수님을 그렇게 찾아와서 말씀으로 증거로
너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야 이렇게 전해졌고 얼굴을 쓰다듬어주면서 기뻐하는 자다라고
증거해 주셨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만약에 그분이 예수님에 대해서 요단 강에서 그 확연한 음성으로 많은 사람들은 우레가 울린다
이게 번개의 소리야 이게 무슨 소리야 천둥 소리네 알아듣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그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었어요.
그 음성을 듣고 나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서 예수님은 확실히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임을 자기를 사랑하는 아버지임을 자기를 너무나도 기뻐하는 아버지임을 그 아버지께서 나와 지금 함께하고 있다 라는 그 사실이 바로 예수님이 가지셨던 믿음이라는 거예요 그게 믿음이에요.
믿음은 다른 곳에서 찾으면 안 되고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서 나타난 그 관계
그 관계와 교제와 사귐과 사랑의 미로를 통해서 바로 예수님이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죽기까지 따르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 어떠한 것이라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순종하면서 가게 할 수 있었던 믿음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극진하게 사랑하였다 라는 것을 먼저 보였기 때문이에요.
사랑은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먼저 내려와야 돼요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오는 거예요. 구원은 선물로 주시는 거예요. 태양은 빛일때 우리가 따뜻함을 받는 거예요.
그 하나님께 가진 너무나 자신을 사랑하고 너무나 그 사랑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너무나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분으로 여기시고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믿음 사랑 이런 소망이 하나님께 다 달려 있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예수님의 생애요 삶이에요.
그래서 그분의 말씀은 전체가 하나님에 대한 영광의 말이에요.
사랑의 말이에요. 순종의 말이에요. 순종의 삶의 말이고 사랑의 행위에 대한 말이고 전체가 아버지가 없이는 도무지 한시도 살 수 없었던 예수님 왜냐하면 한순간도 그분의 은혜와 은총과 그분이 주시는 생명과 사랑 그분이 주시는 자신에게 부딪힐 때마다 주시는 그 사랑을 가지고 믿음으로 승화시키고 생명을 죽일 때 그 생명을 믿음으로 승화시키고 그러니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으로 가득 찰 수 밖에 없었던 거에요 하나님으로 꽉 차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그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께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이 성장되고
견고하게 되고 정말 세상이 마귀가 아무리 공격을 해도 상관이 없는 자로 도무지 죄를
지을래야 도무지 한 가지 죄 조차도 범하지 않는 자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믿고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겼던 그 사실로 인하여 예수님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 하나님 나라 곧 하나님 나라를 대변하고 있는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수 없다는 것이 심령이 너무 가난한 건 뭐예요.
먹을 것이 없어요. 돈도 없어요. 양심도 없어요.옷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자 내가 하나님께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로 당장 굶어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주님의 양식을 주세요 라고 간절히 부르짖는 자에게 양식을 주신다라는 거예요.
가난한 자 없는 자에게 있는 자에게는 그러니 어떻게 보면 돈이 있는 자 재물이 많은 자 세상에 권세가 많은 자들 높은 자들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 만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보세요.
부자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해서 지나가는 것처럼 어렵다라고 하는 것은 세상의 것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그 심령이 예수님만을 모셔야 될 자리에 다른 것들이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에 바로 천국을 상징하고 있는 예수님이 거할 자리가 없다라는 말씀이에요.
그래서 때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부와 명예와 권세 이런 풍족할 정도로 부족함이 없이 가지고 있다는 오늘날의 라오디게아
교회 같은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실제 너희가 벌거 벗고 수치스럽게 벌거 벗은 몸으로 다니는구나 그 의의 옷을 사서
너희가 부끄러움을 가려라 간절히 간절히 주님께서 아멘이요 아멘 아멘이라는 것은 마지막 자기가 하는 종료의 시간을 알리는 겁니다.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것을 끝으로 마지막으로 내가 동의를 합니다.
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멘이요 충성된 자요 그 얘기는 마지막으로 그 라오디게야 교회에게 안약을 사서 발라라
의의 옷을 네가 사서 입어라 네가 연단된 믿음을 사서 정금 같은 믿음을 네가 사서 소유해라 라고 얘기하신 거예요.
왜냐하면 이 라오디게야 교회는 마지막 교회 마지막 시대 주님 오시기 직전의 시대이기 때문에 이 복음의 전파가
뒤에는 없어요. 이러한 마지막 하나님의 엄위 하시고 두려우신 경고의 메시지는 이것으로 끝납니다.
이제 다시는 없어요. 다시는 주어지지 않아 라고 이게 교회가 끝인데 하필 우리가 200년 전 300년 전도 아닌 바로 이 시대가 라오디게야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를 생각할 때 참으로 긴장하고 깨어 있고 참으로 인내하면서
살아야 되는 거예요.
어쩌면 복음이 난무하고 교회가 가득 차고 선교도 많이 하고 무엇이든지 다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모든 여건이
준비되었다고 하지만 참 복음이 사라졌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 현실에 보이는 이 교회들을 통해서는 오히려 하나님을
잃어버릴 수 있다 라는 말씀을 하시며 실제 잃어버리고 있다 라는 것을 경고하시는 메시지예요.
너희가 마치 부유하다 생각하고 많은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하고 옷도 입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너의 몸은 벌거벗었다. 의의 옷을 안 입고 있다.
그러니까 주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음을 얘기하는 거예요.네가 믿음이 있노라 하지만 그건 연단된 믿음이 아니다.
그 연단된 믿음 풀무불에 들어가고 용광로에 들어가는 그 고난과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 너희 믿음이 만들어져야 되는데
너무 편안한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그 정금 같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순수한 정금의 믿음은 마치 100K 가 있다면
10K 정도 그러면 가격이 떨어지고 90%가 불순물이 라는 얘기에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정금 같은 연단된 믿음이에요.
그게 없다는 겁니다. 이 시대가 그렇다는 겁니다.
오히려 핍박받고 오히려 종교 시대처럼 로마 그 교황 로마 황제들로부터 막 죽임을 당하고 믿는 자들이 막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고 산 속에서 토굴 속에서 갇혀 지내며 비밀리의 집회를 갖고 오히려 그러한 시간에는 하나님을 찾는 간절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서 오히려 의의 옷을 입을 수 있는 여건이 더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없어요.그런데 지금 많은 교인들은 이런 걸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전했을 때 좋은 반응이 나타날 것 같아요 아니에요.
얼마나 악하고 얼마나 어둡고 그 심령에 어둠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빛의 복음을 선포하면 그들이
자기가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고 보고 있었던 그 어둠이 소멸되는 것이 너무 두렵고 너무 무섭고 그런 거예요.
왜 지금까지 편안했기 때문에 그 편안한 그 복음을 오류의 복음을 버려버리고 참 복음을 받으면 살수 있을 텐데
참 빚대로 살자니 자기가 희생하고 고통스럽고 너무나 버려야 될 것이 너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못 버리니까 그냥 그렇게 지금 다니는 교회에서 그냥 안주하고 그냥 그렇게 헌금이나 하고 그냥 그렇게
기도하고 그렇게 그렇게 하지만 변화된 건 없고 죄는 그냥 간직하고 십자가를 통해서 내가 어제 오늘 내일 다 구원받았으니까 구원은 받겠지 ! 절대 아니에요. 내가 감히 얘기하는데 깜짝 놀랄 거예요. 천국에 들어갈 자가 너무너무 없을 거예요.
많은 믿는 자들이 안 믿는 자들은 고사하고 믿는 자들 가운데에서 그래서 예수님이 계속
얘기하기를 청함을 받은 자는 많은데 초청 잔칫집에 와라 와라 교회를 다닌 자는 많아
근데 택함을 입은 자가 없네 택함은 바로 진리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준행하는 자 아 ! 나는 잔치 집에 들어와서 함께
신랑의 잔치에 참여해서 같이 이 잔치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지 라고 택함 받은 자가 없다는 거예요.
이 시대를 또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얼마나 심각한지 보통 문제가 아니라니까 그냥 눈물이 나와 하나님 그럼 저들을 어떻게 할까요
저들 삶이 주어지는 곳곳에서 여러분들이 만나는 사람 하루에 두세 명씩은 있어요.
또 만나고자 한다면 5명 정도 연락할 수 있어요.
그 사람들한테 조금씩 조금씩 이 영원한 복음을 참 복음을 전해 주어야만 해요
그런데 안 들어요. 어쩔 수 없어 그러나 전하는 것은 우리 파수꾼들의 몫이에요.
왜냐하면 진리를 몰랐다면 괜찮아 용납을 하셔 알았다면 그 복음을 전해야 돼요
그럼 전하지 않는 자들은 어떻게 되느냐 그 참 복음을 모르는 자들이 구원의 참 길로 갈 수 있을까
하나님이 우리 생각에 용서가 많고 사랑이 많으니까 그냥 두루뭉실 하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마치 심판을 거치지 않고
구원시켜주실 것 같으죠 아니에요.
얼마나 그 심판이 얼마나 절차가 복잡하고 얼마나 확실하게 공정하게 공평하게 합리적으로 왜 모든 우주가 보기 때문에 마귀도 보고요 마귀가 막 참소합니다.
아까 그랬잖아 하나님 저 여호수아 불에 그슬렸는데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스가랴 3: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6 여호와의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증언하여 이르되
7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내가 죄 없이 용서해 줬어 정죄하지 않겠노라고 내가 단언해 줬어 막달라 마리아 처럼
저 여호수아 대제사장 교회들 내가 그렇게 해줬어 내가 먼 미래에 내가 믿음으로 사랑으로 돌봐주면 그 믿음을 가지고
생명이 되어서 물과 피를 먹고 생명수를 받아 먹음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말씀을 양식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저가 곧
빠른 시간 내에 아니면 나 박찬덕이 처럼 38년 그 어느 때 변화돼서 의로운 자가 되어서 의로운 옷을 입게 될 거야
그래서 내가 미리 지금 죄를 용서해 주는 거야 옳고 그름에 대한 심판에 대한 문제는
맨 나중에 온 우주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한번 따져보자 라고 심판의 문제를 뒤로 한 채 앞의 문제를 두고
그냥 용서를 해준 거예요.얼마나 우리를 믿고 있는 겁니까
만약에 그러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해요.
내가 죄를 용서 받고 의인으로서 삶을 살 것이라고 믿고 우리를 완전히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었는데 아까 스가랴 3장 1절부터 5절 읽었죠. 그런데 잘못되면 어떻게 해요. 그런데 예수님의 믿음은 얼마나 그 믿음이 확실하냐면
잘못된 리가 없다는 거예요.
왜 그 믿음은 하나님이 가지셨던 믿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보이셨던 믿음이기 때문에 내가 믿음을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 그렇게 대하면 절대 저는 구원을
받을 자로 바뀌어진다는 겁니다.
놀라운 복음이에요. 이런 말씀을 세상이 지금 알고 이 말씀을 듣고 그렇게 산다 라면 모든 사람이 아! 하나님이 우리가 그슬린 나무 불에 태워서 이 껌댕이가 가득 찬 죄인의 모습일지라도 예수님이 나를 보고 나를 선택해서 나에게
그 예수님이 보이셨던 그 믿음은 내가 의인 이래 먼 훗날의 의인이 아니라 지금 당장
아름다운 옷을 의의 옷을 입혀주셨어 와 ! 그 순간에 그 예수의 믿음의 씨가 그 안에 들어가서 그 믿음의 씨가
그를 생명이 있게 놀라운 역사로 바뀌어 지는데 그게 창조의 능력이라는 거예요. 그게 믿음이에요.
그래서 의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 믿음 믿음 그렇게 강조하고 있는 거예요.
믿음은 산을 옮기는 능력이 있어요. 창조의 역사가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 곧 박찬덕이에게 그렇게 믿음을 가지고 나를 대하시고
계신데 어떻게 잘 못 될 수가 있겠어요.
잘못될 리가 없어요. 그 믿음을 발견한다고 어 ! 예수님이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가 내가 너를 사랑하는 자다 기뻐하는 자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는 그 한 번의 음성이 있었다 라면 여러분 어떻게 살 것 같아요.
예수님이 그 하나님이 자신을 향해서 믿은 그 증거로 다른 성경에서는 계시록에 뭐라고 써 있냐면 예수님의 믿음을 증거로
가진 자들 그들이 이기는 자다 라고 써 있어요.
예수님처럼 그러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친히 말씀하시는 얼마나 자기 자신을 믿었으면
내 사랑하는 자 너 내가 기뻐하는 자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내 사랑하는 아들이야
내가 너와 항상 임마누엘 하겠다 라고 그렇게 한 번 얘기해 준 것을 우리는 이게 진짜야
하나님이 말씀하신 거야 또 또 한 번 들려주세요.
하나님 진짜인가요 나는 잘 아까 못 들었거든요.
한 번 더 들려주세요. 잘 몰라요 한 번 더 한 번 더 그게 아니라 예수님은 한 번으로
그냥 끝나요. 그냥 한 번으로 족해요. 그게 예수님의 믿음이에요.
우리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적과 표적과 기사를 그렇게 자주 안 나타내신 거예요.
왜 그러한 이적과 표적과 기사는 사람들에게 그때 잠시 잠깐의 인상을 줄 수 있고
잔상을 줄 수 있고 기억을 갖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런
이적과 표적과 기사가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말씀 그 증거예요.
그 말씀만이 우리를 바꿔줄 수 있어요.
말씀만이 믿음만이 그 말씀을 전해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믿고 계시네
그 하나님의 믿음 때문에 내가 정말 이렇게 믿음을 가졌네 사랑을 가졌네 생명을 가졌네
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성이신 예수님께서
인자 사람의 삶을 사는 그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신성의 그 증거를 말씀을 바로
하나님의 믿음을 그 예수님에게 보내주셨을 때 그 믿음을 받아서 인성과 신성이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가 되었을 때
예수님의 삶은 신의 삶 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자로서 살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으로 확장한다는 얘기 사랑 얘기가 얼마나 많이 나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자 나를 사랑하는 자 나를 사랑하는 자 그러면 그 얘기가
그때 열두 제자에게만 한 거냐 아니라는 얘기예요.
우리 모두에게 했는데 왜 지금의 사람들은 왜 그것을 2천년 전에 그 만난 사람에게만
국한시키느냐 이게 마귀의 교묘한 술수요 속임수요 거짓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왜 그렇게 믿느냔 말이에요 지금 그 천지 창조하셨던 그 예수님 예수님 하나님은
지금도 나의 삶에 매일매일 찾아와서 성령님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라는 얘기예요.
천지 창조의 그 역사를 내 삶을 변화시키는 천지창조보다 더 위대한 삶은 내 완고하고
완악한 이 삶을 바꿔주는 거듭나게 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 역사에요.
그 삶이 있다 라는 얘기예요. 너희가 거듭나면 물과 성령으로 너희가 불로 물과 불로 너희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불로 태우고
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시는 그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씻어내고 그래도 안 씻어지는
것은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시는 불 같은 그 성령님의 은혜로 태워서 나를 정결케 하여서 성령님을 내 마음 가운데 예수님과
같은 성령님이 오시면 그 예수님이 받으셨던 그 성령님의 능력으로 예수님과 같은 삶 예수님 같은 이적 표적 물위를
걷고 죽은 자를 살리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이 똑같이 재현이 된다 라는 얘기예요
.
이 일이 언제 일어나느냐
주님이 오시기 전에 개국이래로 없던 환란이 이루어질 때 온 천하의 짧은 시간이겠지만
온 천하에 복음이 전파될 때 그러한 성령님을 우리에게 부어주지 않으면 우리가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그러한 때가
곧 임박해 오는데 그것을 받기 위해서는 그 폭포수 같은 성령님의 역사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 준비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얼마나 놀라운 분이신가를
성경을 통해서 알려 드릴께요 먼저 요한 복음 5장 22절
(요한복음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지금 읽은 말씀은 예수님이 예수님 자신이 심판자 하나님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죠 다 아들에게 맡겼다. 내가 심판자다 심판자는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심판할 수 없어요.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얘기에요
“시편50편1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2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
3 우리 하나님이 오사 잠잠하지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얘기를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거예요.
“히브리서1장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막12:7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4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6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롬8:29, 벧전3:22
7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시104:4
8 아들에 관하여는 ㅁ)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시45:6
9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
10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잠깐만요 모든 세계를 누가 지었어요. 예수님이 예수님 3절 읽어보세요.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이 능력의 말씀으로 해와 달과 별을 허공에 허공에 떠 있는 게 신기하잖아요.
아니 어떻게 저 무거운 것이 저렇게 큰 것이 말씀으로 지금 그 법칙에 의해서 그렇게 하도록 친히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그거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하나님이시라는 얘기죠
골로새서 1장 15절 16절 17절 골로새서 지금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라는 것을 지금 살짝 알려주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그냥 예수님이 아니에요.
“골로새서1장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만물보다 먼저 계시다고 하니까 만물보다 조금 앞선 거라는 그런 게 아니라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다는 얘기고 모든 만물이 예수님 자신을 위해 창조된 거예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네 만물이 놀랍잖아요.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그냥 이렇게 지나면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유일하신 아!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 먼저 났다 라는 것은 으뜸이라는 얘기예요.
으뜸 된 자 먼저 났다 라는 것은 내가 여러분 보다 하루 먼저 태어났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15절 지금 얘기하는 거예요.
그는 보이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의 형상 이란 우리눈으로 볼수 없는 하나님의 내적 존재 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속성 곧 하나님의 내적 본질의 표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이 형상은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속성가운데 가장 크게 보여지는 특성은 사랑인 것입니다 이것을 요한 복음에서는 빛으로 표현했고 구약성경에서는 거룩함과 의로 표현 한것입니다. 이속성들을 모아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분이 그리스도인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속성인 생명이 우리에게 생명을 나눠 주신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26절에서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과 사람을 만들자 라는 그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내면적인 속성을 가리키는 것이고 우리의 모양에서 모양은 보이는 외면적인 하나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 외적인 것은 그리스도의 모양을 나타낸 것입니다.
모든 창조물 보다 먼저 나신 자라 먼저라는 것은 으뜸 그 으뜸이라는 얘기는 하나 오직
유일하신 자 유일하신 창조자 우리는 죄인의 신분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어요 없잖아요.
죄인의 신분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는데 예수님이 죄인의 그 신분이 되어서 내려옴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그 하나님을 영광의 그 자체 이신 그분을 우리 죄인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신 분
그렇게 예수님은 겸손하신 분이세요
그분이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되셨다는 것은 유일하게 그분에 의해서 모든 창조물들이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 단 하나의 한 분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먼저 이렇게 얘기했는데 이게 조금 우리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리는 것이죠
이런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기대와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우리가 한몸에 받고 있다는 것을 알 때 우리가 막달라 마리아 처럼 베드로 처럼 될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셔야 함을 말씀 드리면서 오늘의 교제의 시간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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