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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권한인 인성과 신성말씀 나눔방 2023. 8. 26. 17:21
말 씀 : 박찬덕 선교사
본문말씀 : 출애굽기 31:2~11
말씀주제 : 인성과 신성을 결합하신 예수그리스도
할렐루야! 그동안 평안 하셨습니까?
여러분들의 삶과 영혼 속에 주님의 그 무한한 생명수 강이 흘러 넘치는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오늘은 출애굽기 31장 1절부터 11절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보라,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르엘을 지명하여 불렀노라. 내가 그를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케 하여 지혜와 명철과 지식과 여러 가지 기술로써 정교한 일을 고안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또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겨서 여러 가지 기술로써 일하게 하였노라. 내가, 보라, 내가 단 지파의 아히사막의 아들 아홀리압을 그와 더불어 주고 현명한 마음을 지닌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지혜를 넣었도다. 이는 그들로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만들게 하려 함이니 회중의 성막과, 증거궤와, 그 위의 자비석과, 성막의 모든 기구들이며, 상과 그 기구들과, 순금 촛대와 그 모든 기구들과, 향단과,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들과, 물대야와 그 다리와, 제사장 직분으로 섬길 때 입는 예복과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의복과 그의 아들들의 의복과 붓는 기름과 성소의 향기로운 향이라. 내가 네게 명령한 모든 것에 따라 그들이 행할지니라." 하시니라.
(출31:2~11, 한글 KJV)
아멘
이 말씀은 상당히 깊은 말씀이기 때문에 제 부족한 성경 지식으로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할지라도 내가 이렇게 은혜받고 깨달은 것을 같이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깨닫고 큰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깨닫고 얼마나 예수님이 이렇게까지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나 하면서 가슴이 먹먹하고 정말 감동이 되고 그분의 인성과 신성을 조금은 제가 느끼게 되어서 여러분들에게도 함께 나누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에서 이 말씀을 전합니다.
사실은 출애굽기 30장, 36장 37장 중 특별히 37장을 보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함에 있어 이 브살르엘이 지휘 감독하여 하나님의 장막을 만든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브살르엘과 그리고 단지파 후손의 오홀리압 이 두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막이 건축은 되지만, 실제적으로는 호렙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늘성소의 원형을 보여주신 그 모형대로 만든 것입니다.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에 그들과 하나님과의 교감이 있고 만남이 있고 관계가 있고 그리고 제사가 있고 속죄가 있는 장소, 하늘성소의 모형대로 땅에 성막을 짓게 함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한 5번 정도 읽어서는 잘 이해가 안 됩니다. 10번, 20번, 30번, 50번 읽어야 이 말씀의 뜻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여기에 공통적인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준 하늘 성소의 식양대로 이 땅에 성막을 건설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신이 브살르엘과 오홀리압에게 임하여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성막과 성물을 짓도록합니다.
특별히 브살르엘은 굉장히 제주가 많았던 사람입니다. 두 번째 책임자 오홀리압도 하나님의 신이 충만하여 브살르엘을 돕는 사람이었습니다.
전체적인 지휘 감독은 브살르엘이라 하는 사람을 위주로 해서 이 하나님의 집이 건축된 것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집을 만듦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두 사람을 지명하여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이 함께하심으로 충만한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건 중요한 말씀인데, 하니님께서 이들을 지명한 사실을 모세에게 알릴 때 의도적으로 무엇을 얘기하기 위해서, 원문 성경에는 31장 2절에 ‘보라’ ‘주목하여 보라’라고 처음 서두에 써 있습니다.
무엇을 봅니까?
바로 하나님의 성막을 만들 브살르엘을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불러서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부어 주시는데 그를 주목하여 보라는 겁니다.
그리고 오홀리압에 대해서도 6절에 ‘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도 너희가 주목하여 보라!
하나님의 집을 만드는데 무엇을 만드는지 너희가 주목하여 유의하여 아주 자세히 살펴보라는 뜻에서 2절과 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 ‘보라’라는 얘기를 읽게 되면 뭐 다른 생각 안 듭니까?
요한복음 1장 29절에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말한 것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 지목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기 위한 절대적인 사역의 중요성이 그 속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주목하여 유의하여 중요하게 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보긴 보는데 그가 2절에 ‘보라’ 하면서 첫 번째 하는 말씀이 유다 지파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 브살르엘을 얘기합니다.
그리고 6절에도 ‘보라’라고 얘기하고 또 단 지파 아이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지명하여 불렀다’라고 얘기합니다.
이게 공통점입니다.
그럼 왜 유다 지파와 단지파를 얘기하고 있을까요?
이 ‘보라’라는 그 뜻에는 유다 지파의 후손 브살르엘과 단 지파의 오홀리압을 통해서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막이 만들어지는 데 있어서 어떠한 속성을 가지고 어떠한 신비한 의미를 두고 만들어지는지를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 지파와 단 지파를 불러서 그들로 성막의 기초를 이루게 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집의 성물들을 만드는 일에 왜 이 두 지파의 후손을 썼는지 창세기 49장 9절과 신명기 33장 22절 말씀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유대 지파에 관한 내용 창세기 49장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창세기 49장 말씀은 육에 속했던 야곱이 노년의 죽음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을 때에 그의 육신은 굉장히 눈이 어두워졌고 다리도 쩔뚝쩔뚝거리고 육의 기능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영적인 통찰력은 아주 빛났으므로 이 열두 아들들을 놓고 유언을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영적인 통찰력이 얼마나 빛이 났겠습니까?
이 야곱이 네 번째 아들 유다에게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너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숫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리오.”라고 말합니다.
이 사자 새끼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가 먹이를 입에 물고 엎드리고 웅크림이 마치 승리한 전리품을 취한 위엄이 있는 숫사자와 같고 새끼들을 많이 낳는 암사자 같다라고 유다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집을 브살르엘과 오홀리압이 만들었는데 이는 사자와 같은 강인한 생명력, 아주 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집을 만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 만에 이 성전을 다시 세우리라 한 것처럼 실제적으로 광야에 세워졌던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막의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막 그 자체가 되는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인성과 신성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모양과 어떠한 힘과 어떠한 것들을 소유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강물이 엄청난 힘으로 힘차게 흘러내려 오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세상과 죄와 마귀와 싸운 그분의 생애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 일들이 얼마나 위대한 힘과 생명력을 가지고 이루신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라고 사자에 비유하고 그 다음에 수사자와 암사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막은 이러한 생명력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서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브살르엘은 유다의 후손인데, 사자와 같은 강한 생명력, 강한 능력과 강인한 힘을 가진 자로서 그들이 하나님의 전을 지었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모세가 단 지파에 대해서 예언한 신명기 33장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러분 창세기 49장에서는 야곱이 단을 축복할 때, 단을 뱀으로 비유하였지만
신명기 33장 22절에서는 단 지파를 성령님께서는 모세의 예언을 통하여 유다처럼 사자 새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단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면 사자는 동물의 왕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육체로 오셔서 인성을 취하시고 그 후에 신성의 능력을 가지시므로 인간을 구속하시는 완전한 하나님이 되셨고 인성과 신성이 완전히 하나로 연합되어 신적인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성을 입으시기 전에 인성의 기초를 닦은 것처럼,
브살르엘이 성막을 세우는 기초, 곧 금과 은과 놋과 나무를 깎고 다듬는 일로 하나님의 전을 세우는 기초를 닦았다는 의미에서 브살르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예표하고 있으며 그 위에 신성이 놓여 진 것입니다.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기초입니다.
10층짜리, 20층짜리 고층 건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10m, 20m 이상 지하를 깊이 파서 철근이나 빔을 그 위에 설치하고 또 시멘 콘크리트로 바닥을 두껍게 채워 높은 건물의 무거운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기초를 아주 튼튼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흘러 넘치는 신성의 능력, 생명의 힘, 그 생명의 강을 육신을 지닌 우리 인류에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육체를 입어야 했습니다.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린 그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성막의 기초 위에 하나님의 신성을 상징하는 거룩한 기구들이 놓여 진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구속의 힘, 생명력 있는 능력과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인성이라는 터 위에 하나님의 신성이 연합되어야 했습니다. 이로써 인간을 구속하시는 완전하신 하나님이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신성만 지니시고 이 세상에 오셨다면 그분은 무슨 일이든지 행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실 수 있지만, 인간을 구속해 주는 일 곧 죄를 사해주고 죄의 흔적을 없애 주는 일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 제거하는 구속의 주가 되기 위해서는 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성전에 기초가 되는 일들을 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오셔서 그분이 동족들과 형제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그렇게 부인을 당하고 고초당하고 배척을 당했던 삶을 사신 것이 참 성전의 기초가 되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동족과 형제들로부터 당하는 핍박과 고난, 저주와 욕설을 듣고 뺨을 맞는 이런 일들을 만약에 한 번이라도 그분이 견디지 못하고 인간적인 어떤 방법으로 대해서 죄를 범하셨다면 그분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실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그래서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아니하신 분입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한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는 피흘림이 있어야 하고 그 피가 생명이 되어야합니다.
생명의 힘, 생명의 기운, 그 생명의 숨을 인간에게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는 인성을 입고 오신 그분이 인성을 극복하셔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깨닫고 이해한 자들에게 너희도 완전하고 거룩한 삶을 살라라고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깨닫고 성령님께서 함께하는 사람들은 죄를 버릴 수가 있게 됩니다.
제가 과거에 37년 동안 이 문제 때문에 고통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못하겠더라고요,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 말씀들을 깨닫고 인성으로 오신 그리스도와 신성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하나로 결합되어서 완전한 하나님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큰 믿음이 생겼는지 모릅니다.
제 기도 제목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입니다. 이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하여 가지신 꿈이며 목적입니다.
우리는 정말 세상과 마귀와 시험 앞에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아직 자신을 부인하고 육신을 이기지 못했다면 누가 나에게 손가락질이나 욕을 하고 옆에서 나를 한번 툭 때리면 나는 화를 내며 ‘왜 때려’하고 반응이 벌써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육에 속해 있기에 우리가 인성과 신성을 지니신 그리스도를 닮아 그를 쫓아가지 아니하면,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지 아니하면, 우리는 도무지 세상과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출애굽기 31장에 유다의 6대 손 훌의 손자 브살르엘은 사자 새끼의 강인한 생명력과 힘을 가진 인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인성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강한 힘과 생명력을 가지고 그의 생애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하는 핍박과 배척과 조롱과 욕설, 매맞음, 오해와 헛소문들을 모두 이겼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성을 입고 오셔서 숱한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단련되고 연단되어서 죄를 극복하시고 승리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30장과 37장에 브살르엘이 성막과 기구를 만드는 전체적인 일을 모두 총괄 지휘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출애굽기 31장만을 놓고 보면, 브살르엘이 유다 지파의 후손이고 오홀리압은 단 지파, 다산에서 뛰어나온 사자새끼의 후손이다라고 말하면서 둘을 구분하여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신을 브살르엘에게 충만하게 하여 주셔서 그는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정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겨서 여러 가지 일을 하였다고 되어있습니다.
이게 무엇을 말합니까?
이것은 금과 은과 놋과 보석과 나무들이 지성소와 성소 안에 놓여 질 거룩한 기구들을 만드는 재료가 되기 위해서는 깎고 다듬고 자르는 일들이 필요한데 이것은 연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성으로 오셔서 진리로 인하여 자신이 사람들과 부딪히고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배척과 조롱, 욕설을 듣고 심지어는 사생아라고 놀림을 받을 정도로 형제들로부터 오해를 당하고 제자들에게까지 의심을 받는 일들을 겪으셨습니다.
이것은 금과 은과 놋과 보석 그리고 나무가 정결해지지 않으면 성물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될 수 없는 것처럼, 인성을 입으신 예수님은 거룩한 성전을 세우기 위해서 이러한 고난과 역경의 삶을 사셔서 성전의 기초를 만드신 것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30년 동안의 생애와 3년 반 동안의 공생애를 살면서 이와 같이 깨어지고 부딪히고 연단되는 삶을 사신 것은 아름다운 하나님의 집, 성막의 기초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고초를 겪으셨다는 사실을 제가 깨닫고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집은 거룩한 집이기 때문에 깎아지고 다듬어져서 존귀한 보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면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데 사용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과 은과 놋과 보석을 자르고 깎고 다듬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을상징하고 있는 나무도 자르고 깎고 다듬어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 건설에 사용될 존귀한 보석으로 만들어져야 할 자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들입니다.
그리고 금과 은과 놋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집인 성소와 지성소 그리고 성소 뜰에 사용되는 기구들을 만들었습니다.
성소 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는데 이것은 모두 놋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양을 끌어오면 제사장이 기도하여 사람들의 죄를 그 양에게 전가시키고 그 양은 죽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성소와 번제단 사이에 물두멍이라는 곳에 가서 손을 씻습니다. 깨끗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발은 안 씻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소 바닥은 흙이었습니다.
인간이 거기서도 ‘부정하다’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바닥이 흙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는 의자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봉사해야 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의자가 없습니다.
하여튼 성소 뜰에 있는 번제단과 물두멍은 놋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성소 뜰에 사용되는 기구는 놋으로 만들어졌고 성소와 지성소에 사용되는 기구는 모두 금으로 감싸거나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지성소에 두는 법궤도 조각목으로 만든 다음, 겉을 정금을 입혔고 그 위 속죄판과 그룹은 정금으로 만들어서 하나님께서 임재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성소 밖은 놋으로 성소 안은 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성소와 휘장문의 받침, 기둥 갈고리와 가름대 등을 은으로 만들었습니다.
성소의 기구들을 금이나 은으로 만든 것은 녹이 슬지 않는 성질이 있기 때문인데,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변함없고 순결한 성품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인성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고통을 당하시고 배척당하고 핍박받는 일들을 통해서 하늘의 거룩한 품성의 소유자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했기 때문에 그분이 하나님의 집에 기초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성을 입으시고 오신 그분이 고난과 고통의 삶 속에서도 죄와 세상의 유혹과 마귀의 시험에 굴복하지 않고 이기는 삶을 삶으로 성전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기초가 중요합니다. 그래야 그 후에 하나님의 집을 높게 세워서 또 하나의 하나님의 집들을 성도들을 통해서 세워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성막의 기초가 되기 위해서 인성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죄를 이기기 위해서 얼마나 강력한 생명력과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자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자의 강한 이빨과 발톱, 또 먹이를 무는 아구, 달리는 속도는 강한 생명력과 힘에서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마귀의 시험을 이긴 그 강한 품성이 사자와 같다는 겁니다.
사자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한 인성이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일에 기초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제 오홀리압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에 앞서 브살르엘의 이름의 뜻은 보면 ‘엘’은 하나님이라는 뜻이고,
‘브살르’는 ‘영화롭게 한다, 빛나게 하다’는 뜻이 있어 ‘하나님을 영화롭게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세상에 사자와 같은 강인한 모습으로 인성을 입으시고 오신 분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지 못하면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힘듭니다.
오홀리압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 새끼로 비유된 단 지파 사람입니다.
출애굽기 31장 6절을 원어 성경으로 보면, 브살르엘과 마찬가지로 오홀리압에 대하여 ‘보라’라고 합니다.
이는 오홀리압을 주의하여 ‘보라’는 말입니다. 오홀리압의 마지막 글자 ‘압’은 원어로 ‘아브’인데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앞 글자 ‘오홀리’는 장막, 집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버지의 장막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오홀리압이 그 이름에 걸 맞게 하나님의 집을 만드는 것을 볼 때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생명을 지니신 빛으로 오신 분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오홀리압은 아버지의 집을 세우는 자입니다.
출애굽기 31장 1절부터 5절까지는 브살르엘에 대한 설명이고 6절 이후에는 마치 오홀리압이 지성소와 성소의 성물들을 만든 것처럼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브살르엘이 전체적으로 지휘하고 감독을 하여 성막과 기구들을 주도적으로 만든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오홀리압이 성물들을 만든 것처럼 기록하고 있는 것은
브살르엘이 금과 은과 놋과 보석 그리고 나무를 깎고 다듬는 일로 성막의 기초를 세운 것이 인성을 입으신 그리스도께서 강인한 사자 같은 모습으로 세상과 죄와 마귀와 싸워 이겨서 하나님의 성전 기초를 세운 것을 나타낸 것이라면,
오홀리압은 브살르엘이 다듬어 놓은 성막의 기초 위에 성물들을 제작하므로 인간들을 속죄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는 일을 하시는 신성을 입으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31장 3절, 4절에는 성막과 기구들을 만드는데 사용될 기초 재료들을 언급하고 있는 반면에,
31장 7절부터는 그 기초 재료들을 이용하여 만들어야 할 성막과 증거궤, 속죄소, 분향단, 등대, 떡상, 번제단과 물두멍 그리고 제사장 의복과 관유와 성소의 향기로운 향까지 만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관유와 기름과 성소의 향기로운 향 모두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성소와 성속 밖의 기구들은 인간들의 속죄와 관계 있는 것들입니다.
구약은 모두 신약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다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 한 사람으로 두 가지 속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셉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예표임에도 그 요셉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온전히 나타내는 일이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전을 지음에 있어서 이 유다의 후손인 브살르엘을 통해서는 성막의 기초가 만들어지는 일을 하게 하여 인성으로서 사역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었고,
그 다음, 그 세워진 성막의 기초 위에 인간의 죄를 속죄하는 성물들을 만드신 것은 신성을 가지신 예수그리스도와 그 사역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기초가 되는 일을 수행했고, 이를 예표한 것이 하나님의 성막인 기초를 세우는 브살르엘의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아홀리압은 인간들의 속죄에 필요한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제작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브살렐이 기초라면 아홀리압은 그 기초가 완성된 기구입니다.
만약에 인성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성전의 기초가 되는 인성의 삶을 살지 않았다면 신성을 가지신 그분은 인류의 죄를 속죄할 수 있는 능력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인성 위에 신성이 연합되어져서 일치됨으로 말미암아 인간을 구속하시는 완전한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삼일 후에 부활의 권능으로 인하여 예수님이 승천하신 것은 그 육신으로 오신 그분이 성막의 기초로 인성을 세우셨고 그 위에 신성이 결합되어 인간들 영혼 속에 생명을 공급하여 흐를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연 준 사건이 요한복음 19장 34절,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에 의해서 옆구리를 창으로 찔림 받아 물과 피를 쏟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흘러내렸는데, 이는 사실, 폭포수 같이 쏟아져 나오는 성령님의 역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깨닫고 내 믿음이 마치 건물 1층에서 10층은 올라간 거 같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 성막의 기초가 되기 위해서 인성을 입으시고 모든 배척과 핍박과 아픔과 고통을 경험하시면서 세상과 죄와 마귀를 이기신 그 인성 위에 신성이 결합되므로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어 주시는 분이 되신 것입니다.
그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눠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구속의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인성만 가져도 안 되고 또 신성만 가져서도 안됩니다. 인성과 신성이 반드시 결합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건 다 할 수 있는데 구속의 문제, 죄를 없이 해주는 이 문제는 인성과 신성이 연합되어 하나가 되었을 때, 구속을 행사하는 능력과 그 효력이 발생됩니다.
그래서 인간들의 영혼 속에 영적인 생명의 숨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숨(생기), 생명의 기운에 대해서 창세기 2장 7절에 하나님께서 아담의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신 것으로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그리고 요한복음 20장 22절에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 숨을 불어넣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이는 완벽하게 인성과 신성이 하나로 연합이 되어서 인간을 완전히 구속할 수 있는 권한이 그리스도에게 이제 생겼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구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증거는 부활 승천하신 것이 증거이고 보증입니다.
그러니까 인성과 신성이 결합되어서 나타난 성령의 역사는 인간들의 죄를 사해주는 그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그 효력이 생긴 것은 더럽고 추악하고 모든 부정한 것들이 있는 인간의 영혼 속에 영적인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시기 위하여 이와 같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지 않으면 인간에게 생명의 힘을 공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구약에는 성령님을 아침이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슬로 표현된 성령님의 역사가 생명력, 생명의 힘, 생명의 숨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결합으로 인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인류를 위한 구원의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얼마나 어려웠으며 예수님께서 인성을 입고 오셔서,
육신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죄의 문제, 세상에 대한 문제, 마귀에 대한 시험의 문제들을 이기기 위해서 그분이 얼마나 노력했고 또 얼마나 고초를 당했는지를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자처럼 강인해지지 않으면 강건한 생명력이 없으면 언제든지 마귀의 시험에 실족당하여 넘어지고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탄이 예수님께 천하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나에게 절하면 모든 것을 줄 것이라고 했을 때, 보통 사람이면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은 강한 사자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기 때문에 모든 죄의 유혹과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 성막의 기초가 되기 위해서 인성으로 오셔서 모든 죄를 이기셔서 그 위에신성이 더해짐으로 인간을 죄 가운데서 구원해 줄 수 있는 구속의 권한을 갖게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9장 6절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유대인들과 그 무리들은 ‘도대체 저가 누구길래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권세가 있는가’하고 깜짝 놀랐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합해졌을 때 나타나는 권세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증거를 보여주는 사건인지 모릅니다.
만약에 그분이 인성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당하시는 온갖 핍박과 고난과 아픔과 슬픔, 외로움을 견디고 극복하지 못하셨다면 아무리 신성을 입고 오신 분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구속할 수 있는 효력을 가져오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속의 힘은 생명나무가 아니라 성령님이신 생명수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수가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그 다음에 과실을 따먹고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 피를 받아 마시라고 한 것이며 또 내 살을 먹으라고 한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입고 오셔서 이기는 삶을 사시므로 우리에게 자신이 입고 오신 신성이 하나님의 권능을 가져오게 할 수 있는 통로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 인성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었습니다.
그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어렵고 극복하기 힘든 것인가는 우리가 믿음을 통해서 성경을 바라볼 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죄를 지으려고 할 때마다 그 예수님이 세상과 죄와 마귀를 이기신 것을 생각하고 저도 죄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많은 오해와 많은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제가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가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성인 의지와 말씀이 접목되면 강인하게 되고 죄를 이길 때 신의 속성이 내 안에 하나하나 생겨나 그리스도의 속성이 내 속에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성과 신성의 결합이신 성령님의 결과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를 생명의 속성이 흘러 넘치게 하는 자로 만들 것입니다.
인성과 신성이 결합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보내실 그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들의 영혼들 속에 생명의 숨, 생명의 힘, 생명의 기운을 공급해 주십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인성과 신성의 삶을 사셨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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