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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
    말씀 나눔방 2023. 6. 11. 07:08

     

    설교말씀 : 박찬덕 선교사

     

     

    마귀를 이기신 유다의 사자 예수그리스도

    할렐루야!

    승리하신 주님의 뜻에 따라 세상과 죄와 마귀를 이기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가 만약에 이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은 그리스도와 닮은 자들입니다. 마음도 닮고, 믿음도 닮고 그리고 그 분이 가지신 아름다운 성품도 닮고 세상과 죄와 원수 마귀를 이기신 그 승리의 권능과 능력 또한 닮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란 뜻입니다. 때문에 이기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함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저는 이기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교제를 나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이긴 자로 기대하시고 창조하셔서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라 명하셨지만, 흙에서 난 아담은 땅만 바라보다가 그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이긴 자에 관해서 성경 창세기에 아담, 야곱 그리고 사무엘서에 다윗 이야기가 있고 계시록 5장 5절 말씀에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계시록 이야기는 사도요한이 성령의 감동으로 천국에 올라가서 친히 본 내용입니다.

    요한이 보니 보좌에 앉으신 이 오른손에 책이 있는데 그것은 안팎으로 기록되었고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늘과 땅, 어느 누구도 그 책을 펼 수 있는 자가 없어서 요한이 마음이 아파 크게 소리내어서 울고 있을 때, 장로 중 한 사람이 와서 ‘울지 말라’ 하며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가 그 일곱 인을 뗄 것이라고 알려 줍니다.

    아담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므로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뿌리는 이긴 자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이 다윗의 뿌리로 나타난 유다 지파의 사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히 일곱인을 떼고 승리하여 왕권을 지닌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이긴 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2장부터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에 이기는 자에 대해서 일곱 번을 말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2장 7절에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계시록 2장 11절에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시록 2장 17절에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계시록 2장 26절에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계시록 3장 5절에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시록 3장 12절에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계시록 3장 21절에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아멘 여러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땅에 사는 우리 인간들에게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이기는 그들에게는 이렇게 완전한 하늘의 보상들을 주실 것이라고 성경은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이기는 것일까요?

    계속 이겨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우리 흙으로 지어진 받은 인간이 과연 이기는 삶을 살았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실패하고 넘어지고 실족하여서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될 수밖에 없기에 마귀의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우리 인간이 마귀에 져서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흙과 같은 삶을 살게 되었지만,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릴 기억하시고 자비롭게 대하시고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우리가 이길 수 있도록 한 번 더 기회를 주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은 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인류의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생명나무 곁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어 비록 죽는 자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생명나무에서부터 발원된 그 강의 생명수를 통해서 흙의 존재인 인간을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여 정금과 같이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집을 만드는 존귀한 재료들로 사용하려 하신 것 입니다.

    계시록 21장에 새 예루살렘성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 새 예루살렘성은 각종 아름답고 존귀한 보석들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성이 그와 같이 귀한 보석들로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성품과 ‘모든 것이 닮았다’라는 것입니다.

    그 보석들은 속이 다 보일정도로 맑고 깨끗합니다. 왜 보석이 보석이 될 수 있나요?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단단하지 않으면 깨어지기 쉬워서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가 단단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보석과 같은 예수님을 닮아 믿음에 있어서 강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속이 다 들여 다 보이게 맑고 깨끗해야 합니다. 죄가 조금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 불순물과 더럽고 부정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면 결코 맑고 깨끗할 수 없어 보석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은 정결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보석과 같습니다. 우리가 그 성품을 소유 받아 그것을 세상에 그대로 표현하고 나타낼 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는 아름답고 존귀한 보석이 되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꿈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속이 훤히 들여 다 보이시는 맑고 깨끗한 분입니다. 얼마나 죄가 없고 흠도 없고 허물이 없으면 속이 다 보일까요.

    예수님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을 그렇게 만들었는데 아담은 이긴 자가 되기는 커녕 하나님의 마음을 오히려 아프게 하는 걱정 덩어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담을 흙으로 지으시고 에덴동산 중앙에 있게 하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므로 그를 양육하여 그가 성장되고 성숙되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이 비록 건장하고 장성한 자로 만들어졌을지라도 이 세상 사람들처럼 엄마의 품에서 젖을 빨며서로 눈을 맞추면서 엄마, 아빠를 알아가며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양육되는 그러한 과정이 없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신체적인 기관들을 모두 정상적으로 갖추고 있어도 아직 연약해서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어서 딱딱한 음식은 먹을 수 없고 걸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아담을 신체적으로는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때의 젊은이로 온전하게 만드셨을지라도 그가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아직 성숙하고 온전한 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실족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인 예수 그리스도는 이긴 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나타나기 전에 이긴 자가 누구입니까?

    야곱입니다.

    그는 세상의 발목을 잡으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긴 자가 되어서 ‘발꿈치를 잡는 자’라는 뜻의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란 뜻의 이스라엘로 그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아담의 이름은 바뀌었습니까?

    아닙니다. 아담은 진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바꿔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아담은 그냥 땅의 것을 바라보다가 먹어서는 아니 될 그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자신의 안위와 자신의 만족과 자신의 누림과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한 마음에 미혹 당하여 마귀의 정신을 좇아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으므로 땅에 속한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긴 자’라는 이름을 결코 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보십시요, 야곱은 발꿈치를 붙잡는 자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붙잡습니까? 그는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욕심쟁이입니다. 아주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게 하여 탈취하고자 했고,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받기 위해서 에서로 변장하여 장자가 받아야 할 축복을 속임수로 탈취합니다.

    팥죽 한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에서

    야곱은 자기가 추구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빼앗는 자입니다. 이것 때문에 자기 형 에서, 엄마 리브가 그리고 이삭에게 분노와 아픔과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또, 에서의 복수를 피해서 도망친 하란 땅에서도 속이고 탈취하는 자로 살았습니다.

    야곱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져야만 되는 자입니다. 그 이름의 뜻 ‘발꿈치를 잡는자’와 같이 무엇이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속이고 탈취하여 원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고야 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이루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마귀의 충동을 받은 에서가 야곱이 행한 옛날의 일을 보복하기 위해서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야곱을 죽이려고 온다는 소식이 야곱에게 들려옵니다.

    야곱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과거의 죄에 대한 문제만큼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떤 사람으로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붙잡고 늘어집니다. 야곱이 언약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붙잡고 늘어지지만 자기가 세상에 탈취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이것 때문에 예수님을 이기지 못합니다. 어떻게 이길 수가 있습니까?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지금까지 세상으로부터 탈취한 모든 것들을 예수님 앞에 다 내려놓고 예수님의 양다리를 붙잡고 자신의 죄의 문제로 닥쳐오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매달립니다.

    예수님을 이기려면 세상 것은 다 포기하고 다 내려놓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예수만을 붙잡고 늘어져야합니다. 얍복 강가에서 예수님과 싸우다가 야곱은 이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곧 세상 것을 얻고자 하여 야곱이 가졌던 욕심과 탐욕, 이기심, 지배욕, 거짓말과 사기 이 모든 것이 죄악임을 깨닫고 이것들을 가지고 있으면 예수님을 결코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세상 것을 다 내려놓고 ‘내가 이제 이 두 손을 가지고 주님만을 소유하기를 원하오니 제발 이 문제를 해결하여 주셔서 온전히 살려주십시오’라고 주님께 온전히 굴복하여 죽기 살기로 매달려 주님을 놓아주지 않고 간구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야곱에게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시면서 과거에 그 야곱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다시 한 번 기억을 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주님이 야곱의 이름을 몰라서 물으신 게 아닙니다. 야곱이 과거에 세상 것 만을 얻기 위해서 살아왔던 잘못된 삶의 진짜 실체를 알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에게 새이름을 지어줍니다. 그 새이름은 바로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란 뜻의 이스라엘입니다.

    예수님의 승리가 바로 야곱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아담도 그 이름을 개명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땅에 속한 자였고 진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땅의 것을 모두 내려놓고 주님 앞에 다 굴복하고 두 손을 벌리고 하나님 만을 찾기를 원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그는 새이름을 받은 자가 된 겁니다. 둘은 완전히 다릅니다.

    아담은 세상 것을 취하려고 하늘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비록 탈취하는 삶을 지금까지 살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늘을 바라보며 언약의 주님이신 하나님께만 매달렸기 때문에 그는 그 하늘의 새 이름, 이긴 자라는 왕의 권세를 가진 그 이름을 비로소 갖게 된 것이며 여기에서부터 그의 삶에 있어서 승리 시작이 된 겁니다.

    이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은 정말 너무나 큰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깨닫고 얼마나 능력이 생겼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이긴 자의 그 씨가 되기 위해서 사자의 새끼가 되기 위해서 제 속에 있는 권능과 능력과 권세는 다른 사람은 알 수 도 없고 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에게 지금 이긴 자의 씨, 사자 새끼에 관한 얘기를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야곱이 땅을 것을 탈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생명, 예수님께 간구하면서 양손을 벌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분께 매달렸을 때 새 생명의 이름을 소유 받는데 그 이름이 창세기 49장 야곱이 임종을 앞두고 아들들을 축복하면서 유다를 축복하는 내용에 잘 나와 있습니다.

    창세기 49장 말씀인데 먼저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여기서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는 얼마나 귀중한 영적인 의미가 있는지 모릅니다.

    아들들을 낳은 아비는 야곱입니다.

    그런데 지금 임종을 앞두고 아들들의 앞 날에 대해서 말하는 아버지는 누굽니까?

     

    바로 이스라엘, ‘이긴 자’로서 말을 하는 겁니다. 이긴 자로서 성취될 예언의 말하고 있는 겁니다.

    야곱이 비록 그들을 낳았지만 그 야곱은 세상만을 바라보고 땅의 것을 소유하기를 원하는 자연적인 흙의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야곱은 이기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금 말년에 열두 아들들을 모아 놓고 각각 머리에 안수를 하면서 예언 축복기도를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넷째 아들 유다에 대해서는 이와 같이 축복합니다. 창세기 49장 8절 말씀입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유다가 형제들의 찬송이 된다고 합니다. 또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라고 합니다. 원수는 누구입니까? 세상과 죄와

    사탄, 붉은 용, 옛 뱀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계시록 5장 5절에도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나옵니다. 이 유다 지파의 사자는 마귀와의 전쟁에서 싸워 능히 이기시는 사자와 같이 용맹하고 강한 예수리그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 지파는 전쟁터에 나갈 때 바로 이 사자의 깃발을 들고 나갑니다.

    어떻게 이 야곱이 옛날에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탈취하고 자기만을 생각했던 욕심쟁이 이 사람이 어떻게 열두 아들들을 놓고 하나님의 비밀이 담긴 이렇게 놀라운 예언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이기는 자의 삶을 그동안에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아담은 흙의 사람, 자연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그 후손들을 향해서 이와 같은 축복과 이와 같은 예언의 말씀을 할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비록 처음에는 이 땅에 속한 자가 되어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삶의 유익을 위해서 살았던 자로 타락하고 타락하는 삶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삶을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 그 형제와 부모를 떠나 머나먼 이방 땅에서 거주하면서 당한 시련과 아픔과 고통 가운데서의 삶을 살았던 그 과정이 야곱을 이기는 자로 만드는 연단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이러한 연단과정이 그에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러한 수많은 애환, 눈물, 낙심 그리고 시련, 고통, 험난한 문제들을 경험하면서 비로소 지금 노년에 삶의 마지막을 앞두고서 이긴 자로서 자식들에게 축복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긴 자가 아니면 절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비밀한 일들을 예언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긴 자, 승리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이긴 자로서의 야곱은 마귀와의 싸움에서 완전히 승리하신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인 예수그리스도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첫 사람 아담은 비록 졌지만,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기는 자로의 삶이 무엇인지를 지금 보여줌으로써 예수님이 완전히 이기는 자로서의 삶을 살고 그 옆구리, 그 허리에서 나온 사자의 새끼들인 교회들,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이긴 자,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가진 자들로서 세상을 이기고 왕의 권세를 가진 자들로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이 이긴 자를 상징하는 이 사자 얘기는 창세기 49장과 계시록 5장 5절에 언급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여러분들! 사자새끼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셨습니까?

    TV에서 방영되는 동물의 왕국을 프로그램을 보면 사자 새끼들이 아비 사자, 어미 사자가 탈취한 먹이들을 먼저 차지하여 많이 먹기 위해서 자기들끼리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야곱은 빼앗는 자, 탈취하는 자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아담도 탈취한 자입니다. 그는 생명나무를 탈취 했어야 합니다. 그런 욕심이 있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먹지말라 한 선악과를 탈취를 해버렸습니다.

    야곱도 처음엔 세상 것을 탈취한 그러한 자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세상 것을 다 탈취한 것들을 내려놓고 행복해 합니다.

     

    그는 ‘내가 다 내려놨습니다. 하나님 이 문제 좀 해결해 주세요. 이제 주님만 탈취하길 원합니다.’하고 주님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씨름했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얼마나 간절히 했을까요. 왜 목숨이 달려 있는 문제였으니까요.

    그런데 유다를 ‘사자 새끼들,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먹이를 탈취하는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자새끼들은 먹이를 먹기 위해서 이렇게 경쟁하고 싸우면서 성장을 해갑니다.

    야곱이 처음부터 큰 사자가 됐을까요? 이기는 자, 이스라엘이 됐을까요?

    아닙니다!

     

    처음에는 세상속에 묻혀 시련과 아픔과 고통의 과정들을 겪고 특별히 얍복강가에서 그 어떤 사람으로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을 통해서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살아 왔고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삶이었는지를 확실하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세상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만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자기가 얍복강가에서 싸워서 탈취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라는 것을 그는 분명히 알게 된 겁니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올라갔다’는 이 말을 여러분들 기억하십시요. ‘올라 갔도다’라는 얘기는 뭡니까?

    그것은 전에는 내려간 적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전에 낮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올라갔다는 말입니다.

    이 얘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높이 들리시기 위해서 하늘에서 낮고 낮은 이 땅까지

    내려오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내려오셨습니까?

    먹이를 탈취하기 위해서 내려오셨습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모릅니다.

    그럼, 이 세상의 먹이가 무엇입니까?

    죄의 문제, 세상의 문제, 마귀의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저번에 호렙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준 세 가지 표적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첫번째는 모세의 지팡이를 뱀으로 변하게 하는 표적입니다.

    모세는 자기가 가지고 다녔던 지팡이가 뱀의 화신인지 몰랐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땅에 던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버리라’고 하신 게 아닙니다. 그 지팡이는 나중에 크게 쓰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지팡이를 땅에 던지니까 그게 뱀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자기가 지금 의존하고 살던 지팡이와 같은 것, 이것은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지팡이 같은 게 무엇이 있을까요?

    자기 자식들, 남편, 부모, 또는 여러분들의 부인, 남편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어떤 것들일 수도 있습니다. 재물, 명예, 권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뱀의 화신으로서 교활하게 숨어 가지고 우리 삶에 지속적으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나를 세상에 얽매게 하였던 것입니다.

    두번째는 손을 품에 넣어 문둥병이 되게 하는 표적을 통해서 죄가 내 옆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내 속에, 나 자신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알리셨습니다.

     

    세번째 표적은 나일강 물을 취해서 육지에 부어 피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세상에 속하여 살면서 세상 것을 탐하고 세상에서 나오는 생선과 떡과 물을 의존하며 ‘부어라 마셔라 먹어라’ 하며 온갖 좋은 것들을 풍족히 누리며 살지만, 그것에 빠져서 자신의 생명을 의탁하여 사는 삶은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 생명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리기 위해서 광야에서 하늘의 만나와 반석에서 나오는 생수 딱 두 가지밖에 안 준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탄이 뿌려 놓은 이 악의 씨들, 죄와 사망 그리고 우리 곁에 있는 뱀의 정체를 낱낱이 폭로하고 그 정체를 드러내어 멸하시기 위해서 사자 새끼와 같이 그 먹이를 움켜쥐고 올라 가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내려와서 마귀를 죽이고 그 손아귀에 있는 먹이를 탈취하고 찢어서 올라가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사자새끼가 ‘올라갔다’는 말이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 올라가셨습니다. 왜 올라가셨습니까?

    이 세상의 죄와 이 뱀의 화신인 마귀를 예수님께서 잡아가지고 십자가에 올린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밤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양손과 발에 대못이 박혀서 피를 흘려죽으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지파의 사자인 예수그리스도가 그의 먹이 곧 사나운 대적자 마귀를 공격하여 항복시키고 완전히 멸하기 위해서는 전쟁이 필요합니다.

     

    이 전쟁에서 다치고 부상을 입습니다. 맞서 싸우는 사나운 대적자는 목숨을 걸고 덤벼들었습니다. 하지만, 덤벼 들어봤자 기껏 발목을 상하게 하였을 뿐 마귀는 완전히 패배합니다.

    그러나 바로 우리의 구세주이신 유다 지파의 그 사자 새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 우리 구주 메시아, 기름 부음 받은 자는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사람이 되시고 사람으로서 이 세상 마귀와 세상과 죄를 이기시고 창세기 49장 말씀과 같이 그 먹이를 움키시고 십자가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먹이 곧 사탄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사나운 맹수들을 보면 자기가 먹이를 잡은 다음에는 다른 적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서 높은 바위나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그 먹이를 즐깁니다. 이와 같이 유다의 새끼로 상징된 예수님은 3년 반 동안의 공생애를 통해서 십자가에서 마귀를 멸하는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창세기 49장 9절에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고 되어 있습니다.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대적자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시고 그 전리품을 가지고 십자가에 올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승리한 것을 통해서 이제 왕권을 받으시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큰 대적자 사탄을 이미 정복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마태복음 28 장 18절 말씀과 같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곧 왕의 권세와 왕권과 왕국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사탄과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과 그리고 세상 속에 거하고 있는 인간들의 마음속에 있는 죄를 정복했기 때문에 수사자 같이 왕권을 하늘에서 받으신 것입니다.

    이 수사자는 전쟁에 완전히 승리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이 왕권을 받은 왕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또 암사자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암사자는 그럼 무엇을 얘기할까요?

     

    여러분!

    완전한 승리를 하고 정복하여 마귀의 일을 멸함으로써 죄를 이긴 그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셔서 얻으신 것은 새끼들입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흘리심으로 그 생명 수와 생명의 양식을 쏟아 내어 세상 끝까지 흐르고 흐르게 하고 넘치고 넘치게 하여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므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생산하신 겁니다.

    암사자란 바로 새끼를 낳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곧 교회들, 목사님들과 전도사님 우리 집사님들은 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우리를 사자새끼와 같이 만들러 오셨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떤 존재가 돼야 됩니까?

    예수님과 같이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를 사자새끼로 만들었습니까?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서 그렇게 피 흘리고 싸워 탈취한 그 먹이를 통해서 이긴 자가 된 것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사자새끼로서 이기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8절은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그 사자가 창세기 49장에 ‘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았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마귀의 목을 잡아 그를 죽였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일지니라’는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예수그리스도를 표상하고 있습니다.

    시편 23편에도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의 원수, 우리를 유혹해 범죄하게 하고 우리를 문둥병자가 되게 하는 이 뱀, 응큼하게 숨어서 우리의 생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그러한 간교하고 그 뱀의 목을 잡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암사자가 되어서 이 세상에 교회, 우리를 낳으신 것입니다. 반석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낳으신 겁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뭐가 흘러 나왔습니까? 물과 피입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물과 피는 인간의 구속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죄를 사함 받게 하는 구속입니다.

    물은 생명의 양식 전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물이라는 것은 흘러 흘러내려가 생명의 양식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집니다.

     

    우리가 양식을 먹지 않고 물을 마시지 않으면 전쟁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까?

    그것을 먹게 하고 마시게 하기 위해서 요한복음 19장 34절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로마 군병에 의해서 옆구리를 창에 찔림 받아 피와 물을 쏟으시므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 생명수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피를 받아 마셔라. 내 살을 받아 먹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피를 마시고 이 살을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암사자로서 우리를 낳으신 것을 성경을 통해서 ‘내가 너를 낳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암사자이신 이 예수님이 승리하여 그 옆구리에서 나온 물과 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하여 다섯 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고기로 천 배나 되는 숫자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조그마한 어린아이가 가지고 온 생선과 그 보리떡은 크게 잘라 놓는 한 덩어리가 아니라 어린 아이가 먹기에 좋은 조각조각 나뉘어진 조그마한 양식입니다. 예수님은 크신 분으로서 우리가 먹기에 알맞게 잘게 잘게 썰어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런데 오천명을 먹이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그 남은 열두 광주리는 암사자가 낳은 우리 교회들입니다.

    열 둘이란 숫자는 삼 곱하기 사입니다. 하나님의 숫자인 삼과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숫자 사가 예수님, 그 암사자로 인하여 생명수와 생명의 과일 나무를 통해서 완전하고도 충만한 숫자 교회를 만드신다는 겁니다.

    곧 하늘의 것을 탈취하기 위하여 천국을 들어가기를 원하여서 침노하여 피 흘리고 죽기까지 싸우는 이런 이기고자 하는 소망을 가진 자들을 예수님께서 낳으셔서 이기는 자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27장 51절부터 53절까지 말씀입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이 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돌아가셨을 때 일어난 것입니다.

    그때 무덤들이 열렸고 죽었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 났을까요?

    어린 사자 새끼로 나타난 예수님이 마귀를 멸하셨기 때문입니다. 먹이를 완전히 탈취한 것입니다. 야곱이 탈취한 세상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괴롭히는 마귀, 우리를 속이고 하나님과 우리 앞에서 전적인 원수가 된 이 대적자를 죽이고 그를 십자가에서 멸한 것입니다.

     

    마귀를 멸함으로 말미암아 발생된 것이 뭡니까?

    전리품입니다.

    전쟁에 나간 장군이 그 오랜 기간 동안 싸워 승리하면 무엇을 가져 옵니까. 적군에게서 빼앗은 금은보화, 적군 포로, 노예들을 다 전리품으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승리하시므로 전리품을 얻으셨습니다.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 주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보인 많은 사람들은 바로 사탄의 사망 권세 아래에 놓여 결박 되고 죄의 노예로 멍에를 메고 있던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승리하셔서 얻은 전리품인 것입니다.

    그 증표로서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할 때 이들을 데리고 올라가신 겁니다.

     

    할렐루야!

    무덤에서 부활한 사람이 몇 명인지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하늘로 함께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왜냐하면 승리의 전리품, 마귀로부터 탈취한 영혼이기 때문에 세상에 남겨놓고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 전쟁에서 ‘너희가 이긴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기 때문에 모든 전리품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간’이라는 자가 전리품을 탐내 도둑질을 하므로 그를 죽여버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만 손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무덤에서 일어났던 사람들을 하늘로 함께 데려가 하나님 앞에 승리의 전리품으로 그들을

    드린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이 암사자로서 이 우리 인간들의 구원을 위해서 새끼를 낳기 위해서 애쓰시고 수고하시고 노력하신 것은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사자의 모습으로 오신 것은 강한 마귀와 싸워서 이겨 그의 일을 멸하고 인간의 죄로부터 발생한 죽음을 없애 버려 우리 인간을 구속하기 위함이며,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뱀의 정체를 폭로하여 뱀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므로 우리도 마귀와 대적하여 싸워 이기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싸워 이기신 것처럼 우리는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싸울 때 우리가 상처를 안 입을 수 있나요? 그 목을 잡기까지는 내 발꿈치가 상하는 피 흘림이 있어야 됩니다.

     

    때문에 강한 수사자 같이 그렇게 강한 자로 만들기 위해서 여러분과 우리 교회를 야곱처럼 많은 삶의 시련과 아픔과 연단의 길을 때론 타락의 길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일부러 타락의 길은 가면 물론 안 되지만, 우리가 주님을 몰랐을 때 걸어 갔던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도 주님은 우리를 강하고 능력 있고 권능이 있고 권세 있는 자로 만드는 과정으로 삼으시는 겁니다.

    하지만 주님을 아는 순간에 다 멈춰야 합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저도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죄 가운데 살았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것을 아니까 죄를 범할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는 사자와 같은 자입니다. 사자의 새끼들이에요.

    아담은 온전했지만 강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온전하지도 강함도 없는 자였기에 온전해지고 강해지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를 하나님께서 하란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부딪히고 멸시 받고 고통 당하는 많은 삶의 문제들을 통해서 강해졌을 때, 얍복 강가에서 마지막 시험에서 세상에서 탈취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 한 분만을 붙잡고 그 분만을 탈취 하고자 하는 삶으로 바뀌어 진 것입니다.

    세상을 탈취하며 살았던 야곱이 이젠 예수님 만을 탈취하고자 합니다. 세상 속에서 잘못 쓰였던 장점들이 예수님 안에서 변화되면 선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뱀이 되었는데 후에 홍해를 가르고 반석을 가르는 하나님의 권능의 지팡이가 되었듯이 여러분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재산, 건강, 지혜, 지식, 여러 가지 학문, 경험들, 여러가지 재능들, 영혼을 사모하는 등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면 여러분들의 삶을 사자처럼 살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사자 새끼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수사자요, 우리의 암사자로서 세상을 이기시고 죄를 이기시고 마귀를 이기신 분입니다.

    우리도 사자로 오신 예수님처럼 우리가 이기는 자 되어서 하늘에서 예수님께서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겠다고약속하신 하늘의 보상을 꼭 받으시길 바랍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 귀가 열리고 눈이 보아져서 이기는 자 사자처럼 사는 여러분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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