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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1:3 / 하나님의 이상을 보는 자는 하늘에계신 하나님과 하나된자말씀 나눔방 2023. 6. 11. 16:28
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제목: 하나님의 이상을 보는자는 하늘에계신 하나님과 하나된자로 하나님을 앙망하고
교통하며 접촉하고 기다리는자
오늘은 에스겔서 1장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장 1절에서 에스겔 선지자의 나이 30세 때 그달 초닷새 곧 포로가 된 지 5년째 되던 해에 바로 이 갈대아에 있는 그발강가에서 포로가 된 상태에 놓여 있었을 때 하늘들이 열렸고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이상들을 보았다라는 장면이 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3절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바로 이 그발 강가 갈대아 땅에서 주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에스겔에게 아주 특별히 임하고 주의 손이 거기에서 임하였더라라는 말씀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오전에 이 말씀의 교제를 통해서 에스겔 선지자가 하늘들이 열리고 하나님의
그 생명의 흐름에 대한 이상들을 보게 된 날을 통하여 우리가 교제의 말씀을 이렇게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선민 이스라엘들을 회복하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가 되시는 성전인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시기 위하여 선민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이상들을 본 장소가 그발 강가라는 것을 통하여 그 이상들을 본 장소 그리고 이상들을 본 날 그리고 이상들을 본 사람 그 이상들을 보기 위한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여주시고자 하시는가라는 것을 이렇게 교제를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스겔이 나이 30세 때에 바로 그 발 강가에 포로가 된 상태에 있었을 때 하늘들이
열리고 하나님의 이상들을 보았던 것입니다. 신성한 생명의 성숙에 과정을 거쳐서
제사장으로서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신언하는 자로서의 부합되는
자격을 갖추는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이상을 보여준 것을 예의주시하면서 말씀을
묵상하여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갈대아 땅 그 발 강가에 있었을 때 이 이상들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임하였다라는
것을 통하여 어느 때 하나님의 그 이상들이 바로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이렇게 펼쳐 보이시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말씀인 것입니다.
바로 갈대아라는 이 땅은 갈대아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서 결코 좋은 땅이 아닌 아주 나쁜 땅도 아닌 나쁜 땅보다 더 나쁜 악한 땅인 것입니다.
그래서 결코 좋은 땅이 아닌 갈대아인들의 땅은 바로 바벨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에
창세기 11장 31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심을 받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가려고 갈대아 사람들이 사는 갈대아 우르의 땅에서 나왔다라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렇게 불러내셔서 구출해내시는 그런 장면을
창세기 11장 31절을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11: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갈대아는 바로 이 귀신적인 장소 곧 우상숭배의 땅이었던 것입니다.
갈대아가 있는 장소는 창세기 말씀을 통해서 바벨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지만
창세기 11장 1절부터 9절까지 바로 이 바벨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을
여러분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1:1 〔바벨〕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11: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11: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11:4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11:5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11: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11: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11: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바로 사탄에게 선동되어 사탄과 하나가 되어 변절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가 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반역하기까지 아주 극심하게 타락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공격하고자 세운 곳이 바로 이 갈대아 바벨 성과 바벨탑이기 때문에 갈대아는 바벨이 시작된 곳입니다.
이 갈대아가 위치한 곳이 유프라테스강과 바로 이 티그리스 강이라는 두 개의 강 사이에
갇혀 있는 갈대아가 유프라테스강과 테그리스 강 사이에 아주 가운데 마치 감옥이라는
이 두 강 사이에 갖춰져 있는 것처럼 두 강 사이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었던 장소가
바로 갈대아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여 주신 그 약속의 땅 젖과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죽음의 강인 유프라테스 강을 반드시 건너야만 했습니다.
이 히브리인이라는 뜻이 강을 건넌 자 죽음 바로 이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이 사단이 바벨이라는 갈대아라는 장소에 이렇게 울타리를 치고 감옥소처럼 만들므로
말미암아 그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아주 은밀하고도 교묘하게 역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사단의 세력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에 갇혀 있는 아브라함을 기적적인 그 방법에 의해서 그들을 구원해 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바벨이라는 뜻은 히브리어 뜻이죠 헬라어 바벨론과 동일한 단어인데요
이 갈대아는 그런 의미에서 실상 바벨론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바벨론 곧 바벨은 사단이 하나님께 정면으로 반역하기 위해서 타락한 사람들인 악한 사람들만을 모아놓은 곳이 바로 갈대아우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에스겔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하늘들이 열리고 그리고 그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들을 본 장소가 바로 이 사탄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반역하기 위해서
타락한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거스리는 큰 반역을 일으켜서 하나님을 공격하고자
한 사탄의 중심 세력 가운데서 에스겔 선지자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들을 봤다라는 것입니다.
가장 깜깜한 어둠의 시대에 흑암에 있는 바벨론 세력 안에 있어서 도무지 어찌 할 수 없는 바로 그러한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을 통하여 빛을 비쳐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바벨이라는 바로 갈대아라는 장소를 통해서 강과 강
사이에 묶여져 있고 갇혀져 있는 이런 택한 백성들인 아브라함과 같은 자들을 바로
의의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얻으시기 위해 자신의 소유로 삼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곳이 바로 갈대아인 것처럼 갈대아는 바로 바벨론이 시작된 곳이죠.
예 그래서 바로 이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께 반역하기 위해서 타락한 사람들이 있었던
그 장소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을 보았다 라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가장 깜깜한 어둠의 시대에 빛이 되셔서 이상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의 택한 자들을 통하여 빛을 보여주고자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때 에스겔 선지자 당시에 에스겔 1장 1절의 말씀처럼 하늘들이 열리고 하나님의 이상들을 이 에스겔 선지자가 보았던 그때는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택한 백성들인 이 선민 이스라엘 모두가 왕부터 신하, 고관, 제사장들 그리고 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고 또 살아남은 자는 가뭄과 기근을 통하여 굶어 죽고 또 전염병과 역병으로 인하여 남겨진 사람마저도 죽고 산 사람들 대부분이 사단과 하나가 된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포로가 되어 다시 그곳으로
되잡혀 끌려가는 일들이 이렇게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창조하셨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의 의도와는 다르게 타락하는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계속적으로
그때로부터 계속적으로 사단에게 포로가 되어 쇠사슬에 묶인바된 상태에서 다시 자유함을 얻고 다시 해방되어지는 사건이 그렇게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포로가 되었다가 바로 이 창세기 2장 15절 말씀에서 여자의 씨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창세기 3장 15절에 기록이 되어있죠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여자의 씨에 대한 약속을 통해서
구원해내실 것을 약속하신 그 뒤에 계속적으로 하나님께서 포로되어 사탄에게 사로
잡힌 바 된 선민 이스라엘을 애굽에서부터 다시 탈출시켜서 구원시켜주시고 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또 포로가 되었으나 70년 후에 다시 또 해방과 자유함을 주고 이렇게 사단에게 사로잡힌 바 된 선민 이스라엘을 늘 그때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권능인 여호와의 권능의 팔에 의해서 자유함을 주나 다시 또 끌려가고 포로가 되어 다시 또 끌려가고
급기야 이 바벨론 세력에 의하여 사로잡힌 바 된 그들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통하여 구출해 내심에도 불구하고 다시 또 이 세상에 포로가 되어 계속 타락해지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인간 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적으로 창조되어졌으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단과 하나가 되어 포로가
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선민 이스라엘 그 사람들을 계속적으로 불러내시기 위한
작업을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무던히 애쓰시는 이런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첫 번째 창조된 아담 족속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래의 목적인 바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자들을 세상에 산출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표현하고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바벨에서 그만 인류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반역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극도로 타락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결국 하나님께서는 첫 번째 창조된 아담 족속을 버리시고, 대신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시게 됩니다.
택함 받은 족속인 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원래의 목적인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고 모든 것을 통치하게 합시다
창세기 1장26절 말씀과 같이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땅을 가득 채우고,
땅을 정복하고, 땅 위에서 움직이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통치하도록 하게 한 그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택한 족속인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이삭의아들 야곱과 그의 열두 아들들을 통해서 선민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군대로서 하나님께서 훈련시키셔서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을 이루실 길을 여전히 가지고 그들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조성시켜주시고 변화시켜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일하시는
모습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온 바로 젖과꿀이 흐르는 그 약속의 땅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의 가치와 그 놀랍고 존귀한 그 젖과 꿀이 흐르는 생명의 양식이 있고 생명의 음료가 있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상징하고 있는 그것을 소홀히 함으로 말미암아, 그곳에서 다시 사단에게 포로가 되어서 그 젖과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잃어버린 바 되어진 선민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계속적인 관계를 통해서 또 찾아주시고, 구원시켜주시고, 해방시켜주시고,
또 자유하게 하여 주셔서, 계속적으로 이 사단의 세력인 바벨론과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이 선민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에스겔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선민 이스라엘이 젖과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아닌 바벨론의 세력이 있는 갈대아 땅에 그발강가에 바로 1장 3절에 갈대아 땅 그발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지금 젖과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그리스도의 임재를 상징하고 있는
가나안 땅이 아닌 오늘날에 이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이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까지도
가나안 땅이 아닌 갈대아 땅 그것도 그발강가에 에스겔 선지자와 선민 이스라엘이
이렇게 서 있는 것처럼 대다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젖과꿀이 흐르는 그런 약속의
땅에 있지 않고 타락의 땅이요 사단과 하나가 된 바벨론의 큰 세력이 있는 타락의 땅에
있는 자들의 모습을 오늘날 교회를 통해서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 에스겔이 여호와 하나님의 하늘들이 열리고 이상들을 보았을 때 사로잡힌 자 중에
포로가 된 자 중에 하나인 하나님의 제사장이요 선지자인 바로 에스겔이 그 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손이 그 에스겔 위에 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상들을 보게 된 것을
에스겔서 1장 3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발 강가에서 봤을까요? 그발 강가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인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을 손상시킬 수 있는 정말 큰 대적의 능력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그발 강가인 것입니다.
8:7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洶湧)하고 창일(漲溢)한 큰 하수(河水) 곧 앗수르 왕(王)과 그의 모든 위력(威力)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8:8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漲溢)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遍滿)하리라 하셨느니라
그것이 이사야서 8장 7절 8절에 암시하고 있는데요.
바로 그발이라는 뜻은 매우 강한 능력이 있는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발 강가는 갈대아죠 갈대아는 바벨론의 세력이 있는 곳이죠
바벨론 안에 갈대아가 있고 갈대아 안에 바로 그발 강가가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있는 그발강은 얼마나 크고 얼마나 강한 능력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발이라는 뜻이 매우 크고 능력이 있는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이 그발이라는 강은 성경에는 두 가지의 두 개의 강을 이렇게 나타내고 있는데요.
하나님의 백성을 대항하는 면에서 바벨론이라는 사단과 하나가 된 세력을 표현하는
그러한 갈대아의 그발 강가를 보여주는 사단에게 속한 강이 하나 있고 그리고
에스겔 47장 1절, 5절, 9절에 기록돼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강이 있는 것입니다.
47:1 그가 나를 데리고 전(殿) 문(門)에 이르시니 전(殿)의 전면이 동을 향(向)하였는데 그 문(門)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東)으로 흐르다가 전(殿) 우편(右便) 제단(祭壇) 남편(南便)으로 흘러 내리더라
47:5 다시 일천척(一千尺)을 척량(尺量)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江)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漲溢)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能)히 건너지 못할 강(江)이 더라
47:9 이 강(江)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蕃盛)하는 모든 생물(生物)이 살고 또 고기가 심(甚)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蘇腥)함을 얻겠고 이 강(江)이
이르는 각처(各處)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이 에스겔서에 기록되어 있는 강은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1장에서는 그발강을
얘기하고 있고 47장에서는 바로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온 생명수 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발강은 사단과 하나가 된 세력으로 바로 바벨론의 큰 능력을 가지고 바벨론에 그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대항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꼼짝달싹 하지 못하게 하는 아주 큰 능력이 있는 강이 바로 그발 강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발강이라는 것은 큰 능력으로 아주 바벨론에 강하고 능력이 있는 것을 바로 그발 강가를 통해서 이 죽음에 물을 통하여 자신의 포로가 된 자들을 죽게 만들려는 의도를
가지고 바로 젖과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절대적으로 가지 못하도록 바벨론으로 끌고
가려는 아래로 아래로 흘러 내려가게 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죽음의 세력 안에 갇힌 자들이 되게 하여서 사단과 하나가 되어 영원히 멸망받을 자들로 만들기 위해서 그발강이라는
것은 선민 이스라엘을 하나님에게서 생명의 강인 생수의 원천이신 하나님에게서 죽음의 강이 있는 갈대아에 있는 그 발 강가로 끌려가게 함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맛보게 하려는
그런 무시무시한 의도를 가지고 역사하는 것이 바로 바벨론의 세력인 것입니다.
그 바벨론은 그 생명수 강이 아닌 죽음의 강인 그 발 강가를 통해서 큰 능력을 가지고 그들을 사로잡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이렇게 대할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정면으로 맞서고자 하는 그러한 사단적인 아주 어둠의 속성을 가진 그런 것을 우리가 이 강가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암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발 강가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 이 하나님에게서 흘러 반대
생명수의 원천인 생명샘으로부터 거꾸로 아래로 아래로 흘러 떠내려 보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 강을 맛보게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그 생명 안으로 끌기 위한 하나님의 그러한 의도를 무참히
훼손시켜서 자신이 원하는 그러한 그발 강가를 통해서 아주 큰 능력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죽음의 강으로 흘러 떠내려 보내려고 하는 것이 사단의 세력 안에 있는 갈대아 사람들의
땅에 속해 있는 그 발 강가라는 것이 에스겔서 1장 3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날에 이 에스겔 성경을 통해서 기록되고 있는 이 두 가지 강 47장에서 생명 수강 1장에서는 죽음의 강인 그발 강가를 통해서 오늘날 이 시대에도 하나는 죽음의 강으로 떠밀려 흘러 내려가게 하는 세상 가운데 있는 풍조의 삶을 따라가게 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사단은 바벨론의 그발강이라는 것을 통해서 아주 큰 능력을 통하여 생명수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 강을 맛보지 못하고 거꾸로 내려가는 반대적인 삶을 살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 풍조를 따르게 함으로 말미암아 흘러흘러가게 해서 결국은
맨 마지막 지점인 죽음을 맛보게 하려는 것이 이 사단의 엄청나고도 아주 교묘하고도
음흉한 큰 능력의 술수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두 개 강이 놓여있는 가운데 살고 있으며 어떤 강을
선택하는지에 따라서 살고 죽는 일이 결정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올라가야만 맛볼 수 있는 강이 있고,
또 하나는 아주 편하고 아주 자기 자신을 만족하게 하고 흡족하게 하고짜릿한 즐거움과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떠내려 보내지는 아래로 내려가는 타락한 세상의 강이
있습니다.
예 하나는 올라감으로 말미암아 맛볼 수 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온 생명수
강이고 하나는 올라가는 이 강은 굉장히 힘듭니다. 그러나 내려가는 이 죽음의 강이 있는 내려가는 삶은 굉장히 편하고 아주 쉽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타락한 세상으로 가는 죽음의 강의 길은 얼마나 쉬운지 가만히 있어도
편승되어져서 저절로 이 타락한 세상의 강인 그발 강가에 도착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맛보게 되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바벨론 세력 안에 속한 그발강은 세상에 속한 삶이고, 세상에 속한 강이고,
다른 하나의 강은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거룩한 땅에 속한 곳입니다.
왜냐하면 젖과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곳에서
이 십자가에서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수 강 곧 계시록의 22장 1절부터
하나님과 그리고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온 그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온 강이 유대 땅 베들레헴의 생명의 떡집이라는 곳에서 성육신 하신 그리스를
통해서 생명수의 강이신 그분이 세상에 방문하셨기 때문에 생명수의 강은 거룩한 땅
가나안 땅에 속한 곳이고, 이 바벨론 세력에 속한 그발 강가는 이 세상에 속한 죽음의
강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죽음의 강인 그발 강가는 사람들을 이 생명의 하나님에게서 떠내려 옴으로 아주 쉽게 흘러내려가는 삶을 살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세상과 편승하여서 흘러 내려가는 삶을 통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그 세상의 풍조의 흐름을 따라가게 되면 급기야 아주 큰 센 물결에 의해서 죽음의 강에 도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생명수의 강은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바로 이 거룩한 땅에 속한
것임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생명 안으로 생명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되돌려 놓는
것이 바로 젖과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죠
그리스도가 있는 가나안 땅, 거룩한 땅에 가면은 그 생명수의 근원이신 생명의 양식과
생명수의 음료를 먹고 마시는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처소인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것을 도모할 수 있지만 바벨론 세력 안에 있는 바로 갈대아 안에 있는 그발
강가에 그 죽음의 강을 마시게 되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거처인
집을 파괴하는 일을 통해서 죽음의 길을 가게 되어서 결국 영원히 멸망받는 유황불에
처해지게 된다는 것을 계시록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처소에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흘러나온 생수의 강을 마시게 하기 위해서 바로 이 에스겔 선지자는 바로 이 그발 강가 포로가 된 지 5년째 되던 해에 바로
갈대아 사람들의 땅에 있는 그발 강가에서 바로 하나님의 제사장이요, 선지자인 에스겔에게 하늘들이 열리고 하나님의 이상들을 포로가 되어 있는 상태에 있을 때 이러한 놀라운 이상들을 보여주심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세상에 속한 세상의 풍조에 속한 그 죽음의 강을 따라 죽음의 강을 마시기 위해서 세상의 풍조와 흐름을 따라 삶을 사는 자들과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거룩한 땅에 속한 생명수의 강을 마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확연하게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에스겔 선지자의
하나님의 이상들인 것입니다.
지금 선민 이스라엘은 포로가 된 지 5년 후에 지금 그 발 강가에 서 있습니다.
그 발 강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메마른 땅인 그 발 강가 둑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꿀이 흐르는 거룩한 땅에 있지 않고 갈대아인들 귀신들의 처소요 우상숭배의 대명사인 그 갈대인들의 땅에 바벨론 세력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래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그들을 바로 하나님의 그 신성한 생명과 본성을 소유받게 하여서 영원하시고 정말 영화로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이 되어서 그들을 통해서 세상 모든 것들을 다스리고 통치하고 정복함으로 말미암아 통치하도록
하게 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로 거룩한 땅이 아닌 바로 갈대아인들 귀신들의 처소요,
우상 숭배자들의 진원지인 그 땅에 속해 있음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그 생명수 강을 흘러 마시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그 처소를 건축하는 일에 전심을 다하도록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원래 목적이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대다수의 사람들이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군대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또 살아남은 자들은 기근과 가뭄을 통하여 죽고 또 역병과 전염병을 통하여 죽고
하여튼 하나님의 징계인 이 역병과 그리고 가뭄으로 인한 기근을 통하여 굶어 죽고 또
살아남은 자들 대다수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가는 일을 통하여
이 선민 이스라엘은 마치 희망이 없는 것처럼 빛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깜깜하고 어둡고
아주 암흑의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여호와의 그
이상들을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소망을보여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을 정말 소수의 남은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을 유지하고 보존하시기 위하여, 더 큰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목적과 경륜의 이상을 이루시기 위하여 바로 이 바벨론 나라에 떠내려 보내어서 그발 강가에 이렇게 서 있게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풀어주셔서 소망 가운데 그 발 강에 들어가 있게 한 것이 아니라
마른 땅에 남겨두셨다라는 것이 바로 3절 말씀에 여호와의 말씀이 갈대아 사람들의 땅
그발강가 큰 능력이 있는 강물 속에 들어가 있으면 편승되어져서 세상의 풍조와 바벨론의 그 흐름을 따라 바벨론의 그 풍조를 따라, 그 조류를 따라 죽음의 물을 마심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사단에게 사로잡혀서 포로가 된 그들이 바로 이 생명이 아닌 죽음을 소유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정말 마른 땅인 그 발 강가라는 것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들로 하여금 선민 이스라엘과 그들과 함께하고 있는 에스겔 선지자를 생존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되게 하시려고 마른 땅을 주셨던 것입니다.
만약에 그들 선민 이스라엘이 강 속에 있었다라면 모두 죽음의 물을 마시게 되어서 어쩔 수 없이 결국 모두가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발 강가 속에 두신 것이 아니라 그 발강가 둑에 둠으로 말미암아 모든 선민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가졌으나, 그 끌려간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와 자비로 인하여 포로된 땅에 바벨론이라는 그 나라의 그 강가 둑에 생존할 수 있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상들을 통해서 죽음의 강인 그 발 강가의 물을 마시지 말고,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 강을 마심으로 말미암마 다시 소망 가운데 젖과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되돌아오게 하려는 70년 후에 포로가 된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고레스 왕을 통하여 다시 구원함을 주고, 해방을 주고, 자유함을 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풍성함과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도록 배려하신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에스겔 선지자를 통한 이상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포로가 되어서 죽음의 강인 큰 세력과 큰 능력이 있는 그 발강가 속에 있게 하지 않고 그 발 강가 둑에 있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생존의 삶을 살게 하고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들을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보여지게 함으로 말미암아 소망을 갖고 그 암흑의 시대를 통과하도록
힘을 주시고 견고하게 해 주시고, 강화시켜주셨던 것입니다.
예 포로가 된 땅에서도 에스겔을 포함한 선민 이스라엘은 아주 조그마한 소망의 빛인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누릴 수가 있었던 것이 바로 그발 강가 둑이었던 것입니다.
그 물을 마시게 되면 안 되지만 물 바깥에 둑에 이렇게 서 있게 함으로 말미암아 소망의
빛을 던져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가 본 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들은 바로 그 발 강가 둑에 포로로 잡혀 있는 한 백성이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그 배려와 자비와 은혜를 통해서 젖과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가게 하여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강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신약 시대를 살고 있는 교회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이 성도들이 지금
이 바벨론 세력 안에 있는 그발 강가에 있는자들처럼 그렇게 죽음의 강가에 바로 근접해
있는 아주 가까운 그발강둑에 서있어서 여차여차 하면 조금만 소홀히 하고 조금만 간과하고 조금만 시선을 놓치게 되면 죽음의 강물을 마실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의 세상의 풍조인 것입니다.
세상을 보세요. 얼마나 네온사인이 화려하고 눈만 뜨면 온갖 죄들을 범할 수밖에 없는
세상의 모든 것이 죄악된 것이고, 모든 것이 허물들인 이 육신의 삶을 만족시켜주는
기쁨과 즐거움을 잠시잠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세상을 통해서 이렇게
보여지기 때문에 오늘날 이 시대에 살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성도들, 하나님의 자녀들 또한 포로된 땅 곧 바벨론에 대부분 살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이 들어지는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바로 젖과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거룩한 땅 안에 우리가 속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죽음의 땅인 갈대아인들의 땅에 있는 그발 강가에 있게
되면, 큰 능력 강한 세력을 가진 그발 강가의 죽음의 강을 통하여 바로 세상 풍조를 따라
살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영원한 바벨론의 세력 안에 포로가 된 자들로 만듦으로
말미암아 이 사단에 사로잡힌 자들이 되게 하여서 하나님의 집을, 하나님의 처소를
건축하지 못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인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훼손시키기 위한 사단의 세력에 우리가 넘어가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지신 그 목적과 그 의도는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본성을 소유받고, 영화로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과 함께 그 영화로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게 하기 위해 한 것이 하나님의 목적인데 사단은 교묘하게 죽음의 강을 마시게 하고, 포로가 되게 하여 죽음의 강을 마시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그 원래의 목적을 짓밟고, 훼손시키고,
반대하고, 거절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생명수 강이 아닌 죽음의 강 안에 이렇게 흘러내려가게 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이 사람을 산 자가 되지 못하게 하고 죽은 자가 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택한 자들이 사단에 의하여 사로잡힌 바 되어서 하나님의 꿈을 짓밟혀 버리게 되는 그런 일들을 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단의 바벨론의 세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이러한 의도를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강이 있다라는 것을 알고 소망 가운데 사역을
하게 하시려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는 그발 강가에 사로잡힌 자 중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5년 동안 나이 25세 때 사로잡혀 있는 포로로서 시험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제사장으로서, 선지자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러한 이상을 눈으로 친히 볼 수가 있었고 바로 영을 통하여 하늘들이 열리는 것을 보고 선민 이스라엘에게 그 이상에 대한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으며 이렇게 준비된 자로 만들기 위해서 또 하나님을 위해 전적으로 말할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합당한 배움과 준비와 훈련과 그런 과정을 통해서 25세 때로부터 5년
동안의 훈련기간을 가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나이 30세 때에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드디어 제사장으로서, 선지자로, 신언자로, 대언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에 있어서 하나님께 그리고 선민 이스라엘
모두에게 하나님을 위해 말할 수 있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때가 되었을 때, 선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그때에, 그 대상의 말하는 자인 에스겔과 듣는 자인 그 선민 이스라엘 모두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 때, 나이 30세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들을 선지자가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하나님의 그 깊이 있는 이상을 보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의 성숙이 보다 깊은 단계를 거쳐서 그 과정을 지나서 통과한 후에 아주 깊은
이상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 30세 때에 제사장으로서 선지자로서 합법적인 자격을 취했을 때 드디어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과 연합되는 사람이 됨으로 말미암아 비록
죽음의 땅 흑암의 땅에 있어서 포로된 땅에 그가 있었지만 바로 에스겔 선지자 한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았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삶을 통하여 비록
젖과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이 아닌 바벨론 세력이 있는 그 갈대아
그발강둑에 있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말미암아 기도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접촉하여서
하나님과 교통하여 드디어 하늘들이 열리고 하나님의 이상들을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25세부터 30 때가 될 때까지 그러한 신성한 생명의 성숙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바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과 그 하나 되는 삶을 통하여 접촉하는 삶,
함께하는 삶, 하나가 되는 삶을 에스겔 선지자가 그러한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갈망하는 가운데 그 삶을 살았기 때문에 드디어
하늘이 열렸고 하나님의 이상들을 볼 수가 있었다라고 에스겔서 1장 1절은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접촉함으로 말미암아 하늘들이 열리고 하나님의 이상들을 보았지만 제사장 에스겔에게 부시라는 이름을
통해서 그가 경멸받고 멸시 받는 아주 조롱받는 그러한 닉네임을 가진 부시의 아들 경멸
받는 자의 아들이야라고 얘기함으로 말미암아 처해진 그때 당시에 선민 이스라엘이
바벨론 사람들에게 갈대아 사람들에게 당하는 수모와 수치와 창피함을 바로 경멸받는
선지자 경멸받는 자다라는 부시라는 그 이름을 통해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바로 경멸받는 자의 아들 멸시받는 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겔 선지자는 그렇게 경멸을 받고 멸시받는 이 선민 이스라엘이
처해진 그 상태와 처해진 그 위치가 지금 그렇게 포로가 된 상태에서 바벨론 땅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땅인 가나안 땅이 아닌 포로가 된 땅인 바벨론의 땅 안에 그발 강가 둑에 포로가 되어서 있는 그들의 모습의 상태가 사로잡힌 바 되어서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그들을 세상이 그렇게 조롱하고 멸시한다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이런 이름의 뜻을 가진 부시의 아들 제사장 에스겔에게라고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선민 이스라엘과 하나가 되어서 선민 이스라엘이 지금 처해진 그런
상태 그 선민 이스라엘이란 하나님의 이 특정된 민족인 그들이 조롱받고 멸시받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 에스겔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에스겔이 무슨 뜻이죠? 하나님이 힘을 주신다 전능자가 너의 힘이 되신다라는 이 에스겔의 이름을 하나님의 그 미리 아심에 따라 에스겔이라는 이름을 부여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한 면으로는 경멸받는 자의 아들 부시의 아들이니까요. 그래서 이 경멸받고 멸시받는 자, 조롱받는 자의 아들이지만 에스겔이라는 이름을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견고하고 강화하심을 입은 큰 힘을 받은 에스겔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를 도운다라는 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서 3장 8절에서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3장 8절과 9절에 하나님께서 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어떻게 개인적으로 어떻게 말씀을
하시는지 얼마나 견고하게 하고 얼마나 강화시켜 주시는지를 이 말씀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3:8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그 수치와 조롱과 부끄러움과 이런 멸시를 받을 때
에스겔의 이마가 말할 수 없는 그 정말 머리를 조아리고 숙임으로 말미암아 그 멸시와
조롱을 피하고자 한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9절 말씀입니다.
3:9 네 이마로 화석(火石)보다 굳은 금강석(金剛石)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悖逆)한 족속(族屬)이라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라 하시고
여러분 부싯돌은 불을 일으키는 딱딱한 돌이기 때문에 불을 일으키기 위해서 탁탁
쳤을 때 절대 깨지지 않은 돌들 중에서 가장 강한 돌이 부싯돌인 것입니다.
그러나 돌들 중에서 가장 강한 돌이 금강석인 것입니다.
금강석 다이아몬드 단단한 내가 내 이마를 부싯돌보다도 더 단단한 금강석으로 하였으니 바로 그들이 반역하는 집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들의 용모에 놀라지도 말아라 라고 하나님께서 이 에스겔 선지자 이 부시의 아들이라는 것을 통해서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스라엘과 함께 하나가 된 에스겔이 멸시 당하고 경멸을 받지만 하나님께서 에스겔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그 하나님의 택한 선지자인 에스겔을
강화하신다 힘을 주신다 함께 하나가 돼서 강화시켜주신다라고 에스겔 3장 8절과 9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 선지자 사역을 수행하는 동안에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존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인 그 선민 이스라엘이 그렇게 손과 발이 묶인 채 두 눈이 뽑혀진 채 왕이 보는 앞에서 자식들이 죽임을 당하고 고관들과 백성들과 신하들 모두가 포로가 되어진 그런 말할수 없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그런 수치와 부끄러움과 조롱과 치욕을 당했을 때 에스겔 선지자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다이아몬드처럼 강한 이마를
갖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에스겔을 이스라엘 백성의 징표 곧 이스라엘이 그와 같은 수치, 에스겔, 부시의 아들, 조롱받고 멸시 받고 수치와 이 열국과 모든 세상으로부터
모든 민족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할 수밖에 없는 에스겔이 바로 선민 이스라엘의 처해진
모습과 상태가 바로 에스겔의 그런 처지라는 것입니다.
에스겔과 선민 이스라엘은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러한 말씀이 에스겔서 12장 6절에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2:6 어두울 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것을 네 어깨에 메고 나르면서 앞으로 나아가며 또 네 얼굴을 가림으로써 땅을 보지 말라. 내가 너를 세워 이스라엘의 집에게 표적이 되게 하였느니라, 하시기에 12:7 내가 명령을 받은 대로 행하여 낮에 내 물건을 내놓되 포로의 물건같이 내놓으며 또 저물 때에 내 손으로 성벽을 뚫고 어두울 때에 그것을 가져다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내 어깨에 메니라 라고 이러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조롱받고 수치 받고 정말 창피함을 받는선지자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징표를 이스라엘 집에 하나의 표적으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 바로 이 4장에서는 바로 사람의 똥 인분이죠 사람의 똥으로 불을 피워 떡을 구워 먹으라고 하신 것이 바로 4장 9절부터 15절에 이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4:9 너는 또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 한 그릇에 담고 그것들로 너를
위해 빵을 만들어 네가 네 옆구리로 누워야 할 날수대로 곧 삼백구십 일 동안 그것을 먹으라. 4:10 네가 먹을 음식은 무게로 달아서 하루에 이십 세겔이니 너는 때를 따라 그것을 먹고 4:11 물도 육분의 일 힌씩 되어서 마시되 때를 따라 마실지니라.
4:12 너는 그것을 납작한 보리 빵같이 먹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사람에게서 나오는 똥으로 그것을 구울지니라, 하시니라.
4:13 또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방인들에게로 이스라엘 자손을 쫓아내리니 그들이 거기서 그들 가운데서 바로 이와 같이 자기들의 더럽혀진 빵을 먹으리라, 하시기에
4:14 내가 이르되, 아, 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내 혼이 더럽게 된 적이 없었나이다.
내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저절로 죽은 것이나 갈기갈기 찢긴 것을 먹지 아니하였고 가증한 고기를 내 입에 넣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 4:15 그때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네게 사람의 똥 대신 쇠똥을 주었은즉 너는 그것으로 네 빵을 예비할지니라, 하시고
특별히 4장 15절에 그들이 보는 데서 사람의 똥으로 불을 피워 그것을 구워야 한다.
이런 수모를 겪으면서까지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하여 선민 이스라엘이 그러한
수치를 당하고 있다라는 표징으로삼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라 4장 4절 5절의 말씀을 보면은
4:3 또 너는 철판을 가져다가 너와 그 도시 사이에 두어 철벽으로 삼고 그 도시를 향해 네 얼굴을 고정하라. 그 도시가 에워싸이리니 너는 그 도시를 에워쌀지니라. 이것이 이스라엘의 집에게 표적이 되리라. 4:4 너는 또 네 왼쪽 옆구리로 누워 이스라엘의 집의 불법을 그것 위에 놓고 네가 그것 위에 눕는 날수대로 그들의 불법을 담당할지니라. 4:5 내가 그들의 불법의 햇수를 날수대로 네 위에 놓았나니 곧 삼백구십 일이라 라는 이러한 일을 통하여
왼편으로 390일, 40일간은 우편으로 누워 이러한 징표의 일들을 통해서 얼마나 그가
수욕받는 선지자로서의 삶을 살아왔는지를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대로 인분을 피워서 떡을 구워 먹으라면
구워 먹고, 성벽을 뚫고 행구를 그리로 옮기라면 또 옮기고 그리고 더욱더 말할 수 없는
것은 에스겔 24장 16절에 보면은 자신의 아내가 느닷없는 죽음을 당하는 것이 바로 나옵니다.24:16 사람의 아들아, 보라, 내가 한 번 쳐서 네 눈이 바라는 것을 네게서 빼앗을지라도 너는 애곡하거나 울지 말고 눈물도 흘리지 말며 24:17 울부짖는 것을 자제하고 그 죽은 자를 위하여 애곡하지도 말며 네 머리의 수건을 네 몸에 두르고 네 발에 신을 신으며 네 입술을 가리지 말고 사람들의 빵을 먹지 말라, 하시매
24:18 이에 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말하였는데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으므로 내가 명령받은 대로 아침에 행하니라. 여러분 이것이 선지자가 하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 삶을 사는 사람에게 이러한 여호와의 명령을 통하여 그 말씀대로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그 에스겔 선지자는 확실히 이 멸시를 받고 조롱을
받고 수욕의 날들이 됨을 이렇게 성경은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이렇게 멸시와 조롱과 수치와 부끄러움이 되는 수욕의
아들들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면은 열려진 하늘들을 보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들을 보고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라는 그런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면은 마치 큰 영화와 큰 부와 존귀함을 소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들 모두가 이러한 수욕의 아들들로서의 삶을 사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참 사역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신하여 그러한 조롱과 수치와 부끄러움과 수욕을 감당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참 말씀을 전할 때 바로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수치와 부끄러움과 수욕 가운데 있다라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비록 수치와 치욕과 부끄러움과 말할 수 없는 손가락질을 당한 창피함을 말할
수 없는 수욕의 아들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만이 그의 힘인 것이 바로 에스겔이라는 이름의 뜻인 것입니다. 에스겔이라는 이름의 뜻은 전능자의 힘이 그를 도우신다 그와 함께 하신다라는 그 뜻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라는 그러한 이름의 뜻을 통하여 수욕의 한
가운데서도 부끄러움과 수치와 멸시와 조롱 가운데서도 그 에스겔 선자가 강할 수가
있었고 의연한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의 이름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힘을 강화시켜주시는 분으로서 계신다라는 그것을 통해서 사역을 온전히 수행
할 수 있었다라는 것을 우리가 이렇게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의 성숙의 과정을 채우고 신성한 생명의 성숙의
과정을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선지자로서 영을 통하여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이상을 친히 볼 수 있었다라는 것을 통해서 이상을 보기 위한 조건들이 어느 정도 있다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은 하나님이 특별히 방문하신 것입니다.
이 성경을 통해서 하늘이 열린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창세기 28장 12절 말씀이죠 야곱이 하늘이 열리고 땅에 세워진 사닥다리가 꼭대기 하늘에 닿는 것을 봄으로 말미암아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고 하늘의 문이구나라는 것을 28장 17절에 이렇게 말씀을 기록한 것처럼 28:12 그가 꿈을 꾸었는데, 보라,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세워졌고 그것의 꼭대기는
하늘에 닿았더라. 또 보니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것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더라.
28:17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로다, 성경에서 최초로 하늘이 열린 것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야곱의
꿈속에서 하늘이 야곱에게 열린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 하늘 문이 열리고 땅으로 열릴 수 있는 사닥다리 꿈을 통하여
이렇게 보여주신 이유는 하늘이 땅으로 열릴 수 있는 시작점을 삼고자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하여 하늘문이 열리고 땅으로 열릴 수 있는 사닥다리를 통하여
사닥다리의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것을 봄으로 말미암아 그 하늘이 땅으로 열릴 수 있는
교두보로 삼고자 나타낸 것이 성경에서 최초로 하늘이 열린 것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에스겔 선지자도 하나님의 이상들을 하늘들이 열리고 1장 1절에서
제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계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라고 요한계시록의 사도 요한도 1장 1절에 그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마찬가지로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도 침례를 받으셨을 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바로 하나 된 사람이 땅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가 된 사람
에스겔 선지자가 어떻게 하늘들이 열리고 하나님의 이상들을 볼 수 있었죠 하나님과
하나가 돼서 하나님과 접촉하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하늘들이 열리고 바로
하나님의 이상을 보여주신 것처럼 바로 예수님이 침례받으셨을 때 하늘들이
열리고 라는 그 말씀이 마태복음 3장 16절, 17절 말씀입니다.
3:16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똑바로 물 속에서 올라오실 때에, 보라, 하늘들이 그분께 열리며 또 하나님의 영께서 비둘기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내려앉는 것을 그분께서 보시더라. 3:17 보라,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있어 이르시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라는 것을 통하여 바로 하나님과 하나된 사람이 땅에 있을 때 그 하나님과 하나된 땅에 있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을 보여주시고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과 하나가 된 사람이 땅에 있을 때 하늘 문이 열려진 사건이 바로 스데반 사건인 것입니다. 이 스데반이라는 그 일곱 집사 가운데 한명이었던 그 스데반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죽음을 당했을 때 하늘문이 그에게 활짝 열리고 인자가 보좌에서
벌떡 일어나는 장면을 보았다라고 사도행전 7장 56절에서는 그와 같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7:55 스데반이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똑바로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을 보고 7:56 이르되, 보라 하늘들이
열리고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을 내가 보노라, 하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또 한 번 하늘 문이 열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된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하나님과 하나된 사람이 세상에 있다라면 하늘이
열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을 보여줄 것을 우리는 지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과 하나된 사람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하늘 문을
여시고 하늘들의 그 영역 안에 속해 있는 그 하나님께 속한 그 이상들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원하는데 사단이 이 땅을 차지한 후부터는 하나님의 원래의 창조의 목적을
훼손시키고, 창조되어졌으나 타락한 이 첫 사람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모든 땅의
사람들이 사단에 의하여 훼손되어진 후에는 하나님과 하나된 사람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땅으로 오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늘 문을 여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을 보여주어서 하나님이 이 땅에 방문하시게
되는데,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실 수가 없었던 것은 모든 땅에 있는 사람들이 사탄에
의하여 훼손되어진 후부터는 하나님께서는 땅으로 오실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 하늘도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절대 열릴 수가 없었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나된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된 사람이 땅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꿈을 통하여 그렇게 하늘 문을 여시고 벧엘에서의 꿈을 선포해 주시고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 당시의 상황이 바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땅의
사람들에게 이상을 통하여 자신의 경륜의 이상을 보여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포로가
된 그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에스겔 선지자에게 바로 하늘 문을 여시고
여호와의 하나님의 이상을 보여주십니다.
이스라엘은 그때 당시에 사탄에 의하여 완전히 훼손된 자들로서 포로로 끌려갔었습니다.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그 이상을 절대 보여줄 그러한 시기나 그러한 때가 아니었습니다. 사단에 의하여 완전히 변절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함으로 하나님께 버림받은 상태가
되어져서 포로로 끌려감으로 말미암아 하늘 문이 그 선민이스라엘에게 열려질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포로로 잡힌 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하나님만을 추구하고, 하나님만을
갈망하고, 하나님만을 앙망하고, 하나님만을 접촉하는 하나님과 하나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자가 바로 에스겔이라는 선지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이라는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이 땅에 그 포로가 된
죽음의 땅이죠. 바벨론 세력 안에 있는 땅이죠. 그발강가인 죽음의 강이 있는 그발 강가
둑에 서 있는 그 한 사람이 하나님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가 된 그 사람이 그 발
강가의 둑에 서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하늘 문을 여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그 이상을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그 에스겔에게 하늘이 열리고 심지어 땅에
있는 그들 가운데서 성취될 수 있도록 에스겔 1장부터 48장 까지의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된 땅의 사람을 통하여 하늘 문이 열려졌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들을
보여줬다라는 얘기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친히 하늘에 속한 그 이상들을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보여 주시고 그의 입을 통하여 선민 이스라엘에게 선포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선민 이스라엘 가운데서 성취될 수 있도록 하게 하신 말씀이 에스겔서 1장 3절에 그발 강가에서 부시의 아들 제사장 에스겔에게 분명히 임하였고 거기에서 여호와의 손이 그의 위에 임하였다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땅에 있는 그들 가운데서 하늘에 속한 것들이 이상을 통하여
먼저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주고 그 에스겔 선지자가 본 그 이상들이 선포되어져서
말씀을 통하여서 전해짐으로 말미암아 선민 이스라엘이 청종하게 되고 또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땅에 있는 그들 가운데서 바로 하나님의 성전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 강을 통하여 하나님의 처소가 건축되어질 수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목적과 이상이 이루어지는 이 일들을 통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땅에 있는 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된 사람이 비록 포로된 땅에 비록 바벨론이라는 그 죽음의 땅에 사단과 하나가 된 땅에 살고 있었을 지라도 살아계신 하늘에 하나님과 하나된 사람이 존재할 때 이러한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 신약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끊임없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하늘을 열리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이렇게 필요로 한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그 하늘에 속한 것들을 이 땅에 내어 보여줄 수 있는 이상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오늘날에 하나님의 갈망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갈망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 된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그 이상을 보여주고 그 말씀으로 선포되어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 전체가 지금 사탄에 의해서 불법적으로 점유되어 있고, 사단에 의하여
세상의 흐름을 통해서 풍류와 그 조류를 통해서 포로가 되어 잡혀 있기 때문에 에스겔과
같은 자들이 나오기를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고 계시며 그 에스겔과 같은 자들을 이긴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기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아마겟돈 전쟁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이 세상에 내려와서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모든 악한 세력들과 함께 영적인 전쟁을 치르고서
승리를 하게 될 것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 사탄이 불법적으로 자기 것인냥 점유하고 있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물론 교회를 다니는 하나님의 백성들까지도 포로가 되어서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주님의 영역에 발을 딛고 삶을 사는 자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에스겔 선지자와 같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가 된 사람이 땅에
살고있는 자로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가 된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사역하는 하늘 문을 여는 자들이 필요합니다.
하늘 문을 열고 하늘의 이상들을 봄으로 말미암아 그 이상들을 선포하여서 땅에 포로가
되어서 사는 자들을 바로 그 이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흘러주시는 바로 이 성전
문을 통해서 흘러 나오는 생명수의 강을 마시게 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그들을 하나님의
원래 목적이 성취될 수 있도록 우리가 이렇게 도구로 사용되어져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가 된 사람이 땅에 있을 때
이 땅에 그런 에스겔 선지자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하늘에 속한 이상들을 보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속한 것들이 하나님과 하나가 된
에스겔과 같은 자를 통해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과 이상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 가운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시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시며 나라에 임하오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그 말씀은 이 에스겔 선지자가 하늘들이 열림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을 봤죠 그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이 이 땅의 사람들에게
보여짐으로 말미암아 땅에 있는 그 선민 이스라엘을 통해서 성취되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갈망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된 사람인 에스겔 선지자와 같은 사람 그렇게
하나님만을 추구하고 하나님만을 접촉하고, 하나님과만 연결된 그러한 사역자를 통하여 하늘에 속한 것들 하나님의 그 경륜의 목적과 경륜의 이상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그 간절함이 예수님의 주기도문 속에서도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만을 추구하고 하나님만을 접촉하고 하늘과 연결된 하나님의
자녀들이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늘이 우리에게 열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속한 그런 엄청난 이 계시들을
이상들을 하나님과 하나가 된 자들에게 보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땅에 속한 사람들을
통해서 성취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에스겔서40장4절에서는 하늘이 에스겔에게 열렸을 뿐 아니라 이상들을 이렇게 계시를 통하여 보여줌으로 말미암마 하늘 문이 열려진 것을 눈으로 영을 통하여
보게 하시고 하늘에 속한것을 친히 자세하게 말씀을 통하여 또 부연 설명을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40:4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네게 보여 줄 모든 것을
네 눈으로 보며 네 귀로 듣고 네 마음을 그것들 위에 둘지어다.
내가 그것들을 네게 보여 주려고 너를 여기로 데려왔나니 네가 보는 모든 것을
이스라엘의 집에게 밝히 드러낼지어다, 하더라. 라고 이렇게 바로 하늘이 열린 것은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하늘에 속한 이상들, 하나님의 계시들을 보여주려는 것으로써
하늘 문이 열린 것이죠. 예 그리고 하늘 문이 열려서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그 이상들을
보여주었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이상들 곧 하나님의 그 계시들을 우리들에게 제대로 적나라하게 똑같이 전달해 주기 위해서는 바로 그 이상이 신성하고 영적이고 하늘에 속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또 부연 설명해 주시기 위하여 말씀으로 에스겔 선지자에게 자세하게 또 이야기하시는 장면이 성경에 기록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열린 것을 볼 수 없는 자들 하나님의 이상들을 볼 수 없는 자들은 바로 하나님의
그 하늘에 속한 것들을 절대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하늘에 속한 그 신령한 것들, 신성한 것들, 영적인 것들, 하늘에 속한 그
놀라운 신기한 것들, 귀한 것들 정말 그런 것들은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본 자들 곧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가 된 땅에 살고 있는 자를 통하여 하늘에 속한
것들만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곧 하늘의 시작을 여시고 에스겔로
하여금 하늘 문 뒤에 있는 그 하나님의 속에 있는 그것을 자세하게 보게 한 것이 바로
네 생물 이죠. 에스겔 1장4절부터 14절까지가 네 생물에 대한 얘기 사람의 모양을 지닌
네 생물의 모양과 모습은 사람의 모양을 지니고 있었는데 바로 첫 번째는 사람의 얼굴이고 두 번째는 사자의 얼굴이고 그다음에 소의 얼굴, 그 다음은 독수리의 얼굴을 지녔다라고
하는 네 생물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보좌에 대해서 이렇게 그 신성하고도 영적이고 하늘에 속한 놀라운 하나님 자신이신 그 영광의 모습인 그 영광스러운 보좌를 보게 하시는 것은 바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에게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이상들을
통해서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그 이상들을 그대로 또 선포하는 그 사역자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그러한 놀라운 일들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가 본 것은 바로 영 안에서 본 하나님께 속한 하늘에 속한 이상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사역자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이상들을 본 자들은 그 이상들이 영적이고 신령한 것이고 하늘에 속한 기이하고도 놀라운 것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반드시 분명하게 전달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 하늘들의 이상을 바로 본 자만이 다른 이들에게 그 하늘에 속한 신령하고도 신성하고도 영적인 이 이상들을 바로 말씀을 통하여 전파함으로 말미암아 전해질 수 있는데 이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가 된 사람들, 하나님을 접촉한 사람들, 하나님과 접촉하는 삶을 통하여 바로 하늘과 연결된 제사장 하나님과 연결된 사역자들에게만 이런 일들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특별히 그 많은 선민 이스라엘 얼마나 숫자가 많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에스겔이라는 선지자에게만 특별히 임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 1장 3절에 보면 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에스겔에게 분명히 임하였고
특별히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의 이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이상들을 보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이상은 무엇입니까? 제가 이상을 여러곳에서 검색을 해봤지만 뜻을 잘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상을 저는 하나님의 계시인 이상 이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조금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무언가를 그림 또는 사진 또는 어떤 것들을 통해서 보여주는 마치 영화에 나오는 그런 어떤 장면처럼 우리로 무언가를 보게 하는 하나님의 계시가 이상인 것입니다.
예 눈으로 본 그 계시를 그런데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세하고도 분명하게
알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씀도 이렇게 주셨는데
바로 그것은 에스겔이 눈으로 본 그런 장면들을 그 하나님의 계시를 에스겔을 통하여
말씀으로 그 이상들을 설명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이상들이 자기 자신이 분명히 보긴 보았는데 하나님의 그 이상과 함께
말씀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부연된 자세한 설명하시는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가 더욱더 확실하고도 분명한 것으로 에스겔에게 인식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셨던 것처럼 오늘날 이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확실하게 각인되고,
확실하게 인지하게 되고, 기억하게 되고, 그것이 분명하게 입력될 수 있도록 특별한 말씀, 신성한 말씀이 오늘날에 말씀을 전하는 자들에게 일어나야 되는 그런 일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에스겔 선지자가 하늘에 속한 이상을 보고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을 들은
것처럼, 오늘날 이 시대에도 하늘에 속한 신령한 이상들을 보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해주시는 그 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이상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줄 그런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가 본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설명하게 해줄 수 있는 말씀들이 필요
하다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형편인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 1장 3절 하반절에서는 여호와의 손이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다라고
말씀을 함으로 말미암아 첫 번째로 열린 하늘이 있었죠.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들을 보았죠. 그리고 특별하게 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죠. 그리고 네 번째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권능이 이 에스겔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은 맨 마지막에 바로 하나님의 손을 통하여 그 말씀하신 것이
더욱더 강화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손이 에스겔 선지자 위에 함께하셨는데 그것은 하늘
문이 열려지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들을 본 것을 제대로 분명하게 확실하게 전해주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분명한 말씀이 임하였고, 하나님의 손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함께
하였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을 제대로 전달해서 영광을 나타내게 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손이 뒤따라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똑같이 드러낼 수 있도록 역사해 드릴 수
있도록 하나님의 특별한 권능의 손이 우리 위에 있어야 된다라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먼저는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이 필요하고, 두 번째는 이상을 보는 이상이 임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상이 우리 눈과 우리의 영을 통하여 그 이상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필요하고, 그 다음에 분명하게 이 이상의 말씀을 특별하게 분명하게 전달되어질 수
있도록 특별하게 분명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다음에
주님의 손이 함께 우리 위에 함께 있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것을
여러분 이 순서를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이 사람 위에 있는 것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친히 지시하고 인도하심은
하나님께서 그 원하시는 행동과 말을 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열왕기상 18장 46절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이 가뭄이었던
기근의 때에서 비가 쏟아지는 장면에 대한 내용인데요
18:46 주의 손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예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이 아합왕의 병거보다도 먼 길을 지치지 않고 앞서서 달려가는 엘리야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서 여호와의 손이 엘리야 위에 임하시자 이것이 여호와의 손인 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은 뭐라고요? 예 사람을 인도하고 이끌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행동을
취하게 하기 위한 어떤 기적적인 권능의 힘을 소유 받음으로 말미암아 정말 하나님이
하고 싶어 하시는 일들을 사람을 통해서 하시는 것이 바로 여호와의 손인 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엘리야위에 임함으로 라는 말씀과 또 에스겔 선지자에게도 하나님의
손이 에스겔 선지자위에 임하였다 라는 말을 통해서 바로 영을 통하여 눈은 이상들을 보기 위한 것이고, 귀는 말씀을 듣기 위한 것이고, 바로 이 손과 발은 행동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기적적인 어떤 권능을 베풀어주셔서 손과 발을 견고하게 하고 강화시켜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서 손과발은 행동하기 위한 것이고,
눈은 이상들은 보기 위한 것이고 귀는 말씀은 듣기 위한 것 그래서 육체의 오감을 통해서 전적으로 표현을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우리의 육체를 소홀히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 선지자 위에 있는 주님의 손이 그를 정말 강력하게 붙잡고 이끄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다리가 얼마나 아합왕의 병거보다 병거는 왕이타는 마차이기 때문에
네 마리 말들이 끌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그 말들보다도 앞서고 또 먼 길임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고 앞서서 달려간다 라는 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손 곧 주님의
손이 그를 강하게 붙잡고 그를 이끌어서 인도하고 들어올림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예 주님의 손이 친히 그 에스겔 선지자의 손을 붙잡고 이렇게 인도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이상을 제대로 분명하게 선포할 수 있도록 힘을 강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마치 엘리야 선지자가 허리에 띠를 동여매고 아합 왕의 병거 보다도 앞서서 먼 길을 지치지 않고 달려간 것은 여호와의 손이 엘리야 위에 임하여서 강하게 붙잡아 들어 올려서 데려감으로 말미암아 그가 앞서서 달려갈 수가 있었지 어떻게 앞서서 달려갈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임한 후에 바로 주님의 손이 위에 임하였는데
그가 그 주님의 말씀이 임한 후에 여호와 하나님의 손이 강하게 그를 이끄시고 들어올리셔서 데려감으로 말미암아 그가 행한 모든 것이 주님의 손의 인도와 지시로 인한 것임을 선민 이스라엘이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손이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을 위해 말하는 사람으로서 인도하고 지시하기 위해서 강하게 들어올려서 이끄셔서 놀라운 기적적인 권능의 방법으로 그를 데리고 이 일을 행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손이 에스겔 선지자 위에 임하는 그 순간부터 에스겔 선지자의 행동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그분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분의 지시하시는 손에 따라 그 에스겔 선지자가 이끌림 당하여서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바울 선생님과 같은 삶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포로가 되어 묶여 있던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의 손이 바로 에스겔 선지자
그의 위에 임하여 있든 어떤 상황이든 간에 그가 하는 모든 행동들, 모든 하는 말들, 하나님의 손의 인도와 지시 아래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위해 말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손이 그 사역자 위에 임함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자유는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편리를 따라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자신의 어떤 생각과 방법과 계획대로 자신이 이렇게 가고자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권능의 손길에 의하여 그분의 인도하심과 그분의 지시하심을 따라 이제는 자유가 박탈되어진 것조차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가 되어서 말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땅에 살고 있는 그가 하나가 되어서 접촉하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그가 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자, 하나님을 위해 말하는 자, 하나님을 위하여 행동하는 자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에스겔 선지자의 행동은 하나님의 그 권능의 손에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손에 엄격한 지시와 통제, 다스림 안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것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따라 일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인도하심과 전적인
지시하시는 그 손 안에 있으면서 그분을 위해서 말하는 사람, 행동하는 사람으로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전적으로 사는 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당한 댓가가 따르기 때문에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 바로 이렇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가 된 자의 삶을 사는 사람의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첫 번째로 하늘 문이 그에게 열린 자라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가 된 자가 바로 에스겔 선지자였던
것처럼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서 접촉하는 삶, 하나 되어 움직이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그에게 보여줬던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여호와 하나님의 열린 하늘 문을 통하여 그 하늘의 휘장 뒤에 있는
놀라운 하나님께 속한 이상들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 하나님의 이상을 더욱더 견고하게 하고 확실하게 하고 분명하게 하고 제대로 선민 이스라엘에게 전달해 주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특별하게 강하게 임한 자,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이 특별하게 임한 자에게 여호와의 손이 그의 위에 함께 있다 라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네 가지 바로 30세 때에 이스라엘 선민이 포로가 된 지 5년이 지난 때에
하나님의 그 신성한 생명의 성숙의 과정을 모두 거친 에스겔 선지자 곧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삶을 산 그에게 하늘 문이 열리고, 이상들을 보게 되고,
말씀이 특별하게 임하고 하나님의 손이 그에게 있음으로 말미암아 바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 강을 마시게 할 수 있는
소망을 갖게 하기 위해서 바로 에스겔 선지자를 택하신 것처럼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와 같은 그러한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전적으로 하나가 된 사람들,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갈망하고 하나님만을 소유하기를 원하여서 접촉하고 하나님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오늘날 하나님께서 찾고 계시다는 것을 끝으로 말씀 드리면서
오늘의 교제의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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