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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헬을 향한 야곱의 신실한 사랑말씀 나눔방 2023. 6. 11. 16:27
설교말씀 : 박찬덕 선교사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고 또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 제자들 가운데서 특별히
사랑하셨던 가장 나이 어린 제자였던 사도 요한이 주님의 지극하고 극진한 사랑을
깨달은 후에 아마도 밧모섬에서 사랑의 예수님을 기억하고. 추억하면서 이 말씀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 말씀은 바로 요한1서 3장 1절 말씀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면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라는
이런 말씀이 있고 또 시편 6장 5절에 다윗이 주님을 생각하면서 기록한 말씀 중에서도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
여러분 우리 인간이 죽은 다음에 한 줌의 흙으로 아마 무덤에 있을 것입니다
무덤에 있는 자들은 그냥 편히 마치 안식을 누리면서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일이 생기므로
주님을 생각할 수 없고 기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하지만 주님께서는 이 죽은 자들까지도 기억 하신다 라는 것입니다.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가 누구리이까? 우리가 죽으면 주님을 기억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죽었으나 이삭이 죽었으나 야곱이 죽었으나 영원히 존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죽음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어도 산자같이 여기며 그걸 기억한다 라고 이렇게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창세기 48장에 야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곱이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므낫세가 첫째 아들이고 에브라임이 둘째 아들인데 에브라임을 자신의 양자로 요셉에게 이야기함으로 말미암아 그를 르우벤 대신에 장자가 되게하고 기업의 두배나 받을 수 있는 장자권을 전해주면서 그는 내 아들이다 라고 얘기하는 장면이 창세기 48장 5절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내가 애굽으로 와서 내가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루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오, 이들 후의 네 소생이 네 것이 될 것이며
그 산업은 그 형의 명의하에서 함께 하리라.
내게 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노중에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오히려 격한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햄이라 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이 나옵니다.
지금 현재 야곱의 나이 147세 이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는 때는 죽음을 얼마
앞둔 고령의 나이입니다. 이때는 육의 사람이 더 이상 아니라 정말로 진리의 빛을 보고 야곱의
노년의 인생의 삶은 참으로 승리한 자로서 가장 아름다운 진리의 빛을 나타내고 있는 바로 그런
기간에 속해있는 자입니다.
육의 눈은 잘 보이지 않지만 영의 눈은 아주 확연히 잘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순서를 바꿔서 차자를 이렇게 장자로 입양을 하고 므낫세에게 좌수로 기도해 줌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통찰력이 얼마나 그가 강한지 하늘의 사람으로 조성된 정말 완전히 빛으로 가득 찬
자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야곱의 나이 107세 때 지금 현재 기도하는 시점은 147세 40년 전에 이미 사랑하는 아내 라헬은
이미 죽어버렸습니다. 레아의 동생이 라헬이죠.
이미 에브랏 곧 베들레햄에 장사 지낸 지 4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40년이 지난
이 시점까지 라헬을 잊지 않고 그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였는지 여러분 야곱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상징하고 있는 자입니다.
야곱이 생애를 살면서 레아와 라헬 그리고 두 명의 종들을 후처로 삼아 4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가장 사랑했던 라헬이라는 여인을 40년이 지난 후에도 잊지 못하고 그를 위해서 이 라헬의
친 소생 이었던 요셉을 통하여 요셉의 아들들에게 장자권이 되게 하는 첫째 아들이라는 기업을
물려주는 이러한 일을 바로 요셉을 상징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을 이와 같이 잊지 아니하시고 정말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러한 사랑으로 비록 우리가 죽음과
사망 안에 거했을지라도 끝까지 기억하시고 추억하시고 마음에 이렇게 담고 계시다 라는 것을
야곱이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엿볼 수가 있습니다.
정말 이런 사랑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야곱은 진짜 이런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그 자들이 비록 죽음을 당하고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정말 사망 가운데 무덤 가운데 처한 그들을 잠시 후에 만날 것을 고대하면서
이런 사랑이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영원히 함께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을 야곱의 이런 라헬을 추억하고 기억하는 것을 요셉의 두 아들을 통해서 나타낸 현상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대신 엿볼 수가 있습니다.
정말 4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에게 두 배의 분깃을 준다 라는 것은 그를 원래 르우벤이 야곱의 첫째 아들인데 아비의 침상을 더럽혔습니다
그리고 둘째 시므온과 레위는 야곱의 딸 딥나가 이웃 족속의 그 부족장의 아들로부터 겁탈을
당하는 일로 말미암아 할례라는 것을 핑계로 그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하고 죽인 일로 말미암아
야곱이 마음에 상처의 흔적을 갖게 되었고요, 르우벤은 자신의 후처를 겁탈하는 일로 말미암아
아비의 침상을 더럽힌 자가 되었으므로 이 아들에게 장자가 되는 가문의 대표이고 이 부족의
머리가 되며 이 족속에 야곱 족속에 정말 전체 이스라엘 백성의 이 대표자가 되는 일에 어떤 불순한 흔적이 있기 때문에 야곱은 영적인 통찰력과 하늘의 사람으로 완전히 재창조된 조성된 사람으로서 그들의 분량대로 예언의 기도를 해주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 요셉의 아들인 이 첫째 아들 므낫세와 둘째 아들인 에브라임을
중에 둘째 아들 에브라임을 양자로 세우면서까지 그에게 첫째 아들이 되게 하셨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래 야곱의 첫째 아들은 르우벤이었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요셉에게 두 배의 분깃을 주는 것을 이 아들들을 통해서
대신함으로 말미암아 야곱은 바로 정말로 사랑했던 여인이 라헬이었다 라는 것을
라헬의 친아들이 첫째는 요셉이고 둘째는 베냐민 인데 요셉에게 내가 너의 친 엄마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다 라는 것을 살아 생전에 보임으로 말미암아 나의 사랑에 대한 것을
요셉을 통해서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통해서 전달해 주고 또 기념해 준 것이죠.
이미 죽어서 고인이 된 지 40년이 지났고 또 무덤 가운데 있을 지라도 야곱이 라헬을
지금까지 잊지 않고 존속하는 것과 똑같이 사랑하고 있다 라는 최상의 아름다운 표현이
바로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 에게 요셉에게 두 배의 상속권 두 배의 분깃을 주는 것으로 인하여 라헬에 대한 사랑의 표를 보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정말 이 세상에는 볼 수 없는 정말 하늘의 사랑 우리 주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방법과 같은 방법으로 라헬을 기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 가장 아름다운 표시 최고의 최선을 다한 방법으로 라헬을 기념하는 것이
바로 요셉의 두 아들들에게 두 배의 분깃을 요셉에게 두 배의 분깃을 주는 일로 나타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랑을 지금 세상에서도 가져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야곱의 첫 번째 아들 르우벤이 그 침상을 더럽힌 일로 이렇게 야곱의 마음에 정말 상처의 흔적을 가지고 대신 진심으로 사랑했던 라헬의 소생이었던 첫 번째 아들이었던 요셉을 통해 사랑의 마음을 전달한 야곱은 정말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나타나기에 충분한 모습이고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야곱은 그런 어떤 마음에 커다란 어둠의 상처와 커다란 마음에 찢어진 흔적들 그런 르우벤과
시므온 대신해서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레아의 동생이었던 라헬의 첫 번째 자식이었던
요셉을 분깃을 줌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 아들들을 자신의 양자로 삼고 이렇게 기도해 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12 아들들 가운데 첫 번째 두 아들들이 되기를 곧 르우벤과 시므온 대신에
이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해서 앉게 해주는 일을 갖게 함으로 말미암아
라헬에 대한 사랑을 대신 나타내 주었던 것입니다.
참 놀라운 사랑입니다. 야곱의 마음에서 이 요셉의 두 아들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이제 12지파의 처음에 두 아들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르우벤이 실제적으로 첫 번째 아들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자권에서 멀어지고.
실제적으로는 에브라임이 야곱의 장자권을 소유한 자가 되어서 땅의 기업을 그렇게
받게 된 일이 나중에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5절에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것이오 라고 르우벤과 시므온을 대신해서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그 자리에 앉혀놓습니다.
그러니까 참 이것은 요셉에게 내가 너희 엄마 라헬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겠지 이렇게 표현한
것과 똑같습니다
살아 있을 때 이 요셉에게 할 수 있는 정말 최고의 표현 방법이 바로 요셉의 아들들에게
이렇게 르우벤과 시므온을 대신해서 자식을 삼아주는 것이야말로 진심으로 고인이 되었으나
살아 그대로 사랑을 전하는 야곱의 마음을 죽은 라헬에게 전해주는 것처럼 우리 예수님께서도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비록 세상을 떠나 죽음 가운데 있을지라도 주님께서는 야곱처럼 40년이 지났습니다. 40년이에요. 여러분들 40년이란 시간의 이유를 알겠죠.
그렇게 오랜 인고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다 라는
것을 이렇게 나타내 주듯이 우리 비록 살아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죽어도 그 믿음을 가진 자들은 우리 하나님께서 사랑의 마음을 계속적으로 영원히
주님 오실 때 또 만날 것을 고대하면서 주님께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야곱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장자권이라는 것은 첫 번째 그 부모 아비가 가장 마음을 두고 정성과 정말 모든 힘을 다해서
사랑하고 의지하고 의존하고 가문의 대표자 족속의 머리로 또 권위자로 에브라임을 통해서 만들어줌으로 말미암아 야곱이 살아 생전에 얼마나 자기 아내 라헬을 생각했는지를 기억했는지를
이렇게 요셉의 아들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주님의 피로 만든 교회들 남편 되신 예수님께서 신부가 되고 아내가 되는
교회들을 이 성도들을 이와 같이 야곱이 라헬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이렇게 애틋한
마음으로 영원히 그 마음을 변치 않고 가지고 있다 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살았어도 죽었어도 똑같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어져서 앞으로 천년왕국에서도 이와 같은 사랑을 우리가 누리게 될 것이고요.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 가운데 세워질 새예루살렘성 우리 주님을 이렇게 사랑의 관계를
온전하게 맺은 아내들 신부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 재료들로
건축되어지는 이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집 예루살렘성전 가운데 주님 남편 되신 주님 모시고
이와 같이 사랑의 관계가 계속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그래서 영원합니다.
모든 것이 다 없어질지라도 믿음 소망 사랑 사랑은 영원 불변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요셉에게 두 배의 분깃을 두 아들을 취함으로 말미암아 양자로
삼으심으로 특별히 에브라임에게 그렇게 하셨죠.
그래서 야곱은 라헬이 40년 전에 죽었으나 이 라헬을 그의 진정한 첫 번째 아내로 인정하고
그를 기억하고 있다라는 것을 나타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도 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양자로 받아들이는 일을 용납하시고 야곱의 기도를 야곱이 행한 그 요셉에게 두 배의 분깃을 주는 것을 친히 영적인 통찰력과 하늘의 사람으로 조성된 그가 기도한 것을 가납하시고 존중하셔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실제적으로 좋은 땅으로 들어갔을 때 그 땅을 분배함에 있어서
그렇게 실제적으로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거는 무슨 얘기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그 기도를 들어 응답하심에 있어서 반드시 이루시고
성취하신다라는 것을 이러한 말씀 속에서 영적인 의미를 우리가 발견해야 될 것입니다.
야곱이 세상에 살면서도 라헬을 향한 야곱의 사랑은 지극하였지만 죽어서도 잊지 않고
끝까지 그가 40이 지난 후에도 그 세월이 얼마나 긴 시간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신실하고 똑같이 변함없이 계속적으로 한결같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러한 사랑의
마음으로 기억하시고 우리를 추억하시고 생각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가 살아 생전에 이 땅에 우리가 7,80년 동안에 인생의 삶을 살아나가는 동안에
우리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지극한 야곱과 라헬과 같은 사랑의 경험 사랑의 증거를
가져야만 됩니다.
그 사랑을 가진 증거가 죽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고 추억하게 되는 것이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내가 세상 가운데 빠져서 그분과의 사랑을 소홀히 하고 간과하고
좀 뭔가 이렇게 미진하다면 주님의 사랑의 마음이 그렇게 야곱처럼 라헬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지극한 마음을 계속 가지고 계실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우리가 주님과의 삶을 이 땅에서의 세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주님과의
이러한 사랑은 이러한 사랑을 야곱과 라헬처럼 가졌을 때 야곱이 그를 기억하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에 극진한 정말 순전한 일편단심의 마음으로 그런 마음으로 그분을 대하고 사랑의 관계를 맺을 때 그분이 이 신실하고도 순전한 사랑을 가진 성도들
교회들을 귀히 여기시고 영원히 추억하고 기억하신다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성도와 교회를 통해서 사랑의 관계를 나눈 그러한 사랑의 추억이 있기 때문에 그 후손을 통해서 비록 그는 무덤에 들어가 있지만 그 후손들이살아 있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죽은 자의 사랑의 열렬한 순전한 신실한 사랑의 관계를 추억하고 그 후손들을
기억하여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그 두 배의 분깃을 요셉에게 내려주는 것처럼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그래서 축복받은 것 아닙니까 그들은 원래 열두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라헬을 사랑한 자기의 진정한 아내라고 그를 살아 생전에 사랑의 특별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요셉의 아들들은 전혀 선택받지 못했으나 야곱의 그 신실한 라헬과의
사랑의 관계의 결정체로 인하여 전혀 선택되지 않았던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선택받아 12 지파
가운데 하나가 돼서 영역을 소유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몰라요 우리가 나와 하나님과의 이런 사랑의 관계가
정말 알지 못한 은밀한 정말 아가서에 기록된 그 솔로몬 왕이 그 술람미 여인을 사랑하는 것
같은 그런 관계가 맺어진다라면 우리의 후손들이 주님의 의해서 이렇게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후손들을 대해주셔서 정말 주님의 나라로 주님의 땅 주님의 가나한 땅은 뭡니까?
그리스도 자체예요. 여러분 그 땅은요.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지극히 존중하고 경외하고
정말 사랑하는 그 마음 그 사랑의 관계의 결정체를 보고 우리 후손들을 그 땅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하게 하는 일이 야곱에게 있게 한 것처럼 이 요셉의 아들들이 그런 특별한 하늘의 축복들을
받게 된 것처럼 우리의 후손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그러한 축복들을 받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나 하나에 의해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의 결정체가 향기가 되어서 냄새가
되어서 계속 우리 후손들에게까지도 전가가 되어서 후손들까지도 신실한 하나님의 축복을
정말 전혀 예상하지도 않았던 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열두지파의 형제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렇게 속하게 된 것처럼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 그리스도를
차지하고 소유하는 그런 일들이 이런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발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라헬이 살아 생전에 야곱과 얼마나 지극하고 정말 신실하고 순전한 사랑을 가졌는지를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뒤에 야곱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된 것처럼 우리가 이땅에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존재로서 귀히 여김 받는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 있는 우리들 역시 이 땅에 가족들 하나님께서 맺어진 그런 남편들에게 또는 부인들에게도 이러한 사랑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 없이 결혼하게 되면 또 되지 않죠.
여러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야곱처럼 라헬을 사랑하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을 정말
그리스도를 신랑 되신 우리 그리스도를 신실하고 순전하고도 일편 단심으로 결코 변하지
아니하는 정금 같은 그러한 정말 그 어떤 시험과 어떤 환란과 어떤 어려움과 핍박 속에서도
변하지 아니하는 정금 같은 믿음의 사랑으로 그런 변치 아니하는 보석과 같은 아름다운
사랑으로 우리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교재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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