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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삭의 출생은 우리안에 그리스도의 임재 예표
    말씀 나눔방 2023. 8. 17. 17:27

    말 씀 : 박찬덕 선교사

     

    말씀주제 : 이삭의 출생은 그리스도의 임재를 예표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구한 간절한 소원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장 큰 바람과 꿈과 소원이 있다면 자신의 아내인 사라와의 사이에 자식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물질이 많고 재산이 풍부하다고 할지라도 상속자가 없다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말할 수 없는 마음의 근심이고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첫번째로 간구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후사를 이을 씨였습니다.

     

    자기의 혈통을 이을 아들을 낳아 자신의 상속자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께 바라는 아브라함의 가장 큰 소망이었고 하나님께 받는 가장 큰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그 축복은 이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어떤 번영이나 성공들, 재물들, 지위가 높아지는 일들 또 행복을 위한 것들, 건강을 위한 것들 곧 이 세상의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교회들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한 꿈과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씨인 그리스도가 내 삶 속에 나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간절한 꿈이 바로 후사를 가지는 것이듯, 우리들 또한 하나님의 씨인 그리스도를 갖는 일, 곧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 삶 속에 함께 내주하셔서 나와 함께 거하는 삶이 가장 큰 바람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는 삶이 있음으로 구원이 있고 주님께 사랑도 받고 영원한 생명도 소유 받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우리가 간구하는 복 중의 복, 선물 중에 선물이 있다면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뒤를 이을 씨에 대한 것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물질이 좀 부족하다 할지라도 건강이 좀 약할지라도 또는 처한 환경이 다른 사람보다도 많이 좋지 못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 속에서 하나가 된다면, 그보다 더 큰 하늘의 축복은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던 이 씨에 대한 말씀이 창세기 21장 1절, 2절에 성취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처럼(창12:7, 창13:15, 창15:4, 창17:16) 그 씨, 아들을 주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요.

     

    갈데아 우르에 살고 있었던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함께 하나님께 인도되어 그곳을 나왔고 데라가 하란 땅에서 죽은 뒤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가나안 땅으로 이끄시고 그에게 언약의 후사, 언약의 씨에 대한 약속을 하십니다.

     

    하지만, 자신의 후사가 없었던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후 25년이 지나 그의 나이 100세가 될 때까지 하나님은 후사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의 말씀이 있기 전 또는 그 후 이른 시일에 그 언약의 후손을 그에게 주었다 할지라도, 육에 속해 있던 아브라함이 그 언약의 후손에게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믿음과 올바른 신앙의 정신을 물려줄 수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그가 먼저 온전한 신앙인으로 성화 되고 변화되기 위해서, 그 안에 생명의 씨를 소유하고 그것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브라함 자신이 죽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자신의 자아가 먼저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자아가 죽어야 된다는 말은 육에 속한 생각들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갈데아 우르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얻은 많은 학문적인 지식과 세상 경험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한 탁월한 재능들을 의지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꿈과 뜻을 세상속에서 이루며 살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언약의 씨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주신 때는 아브라함 나이 100세, 부인 사라의 나이 90세였습니다. 그 때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늙어서 신체적으로 아이를 절대 낳을 수 없는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이를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들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하나님의 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맞춰서 그에게 언약의 씨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행하여 예측한 때에 그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으로 하늘의 씨, 약속의 씨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들의 가장 큰 꿈과 소망은 그 안에 생명이신 예수님이 항상 내주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고 내 삶 속에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일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행하셨던 방법과 같이 오직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으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힘과 방법으로는 아이를 생산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과 방법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씨를 주신 것처럼, 우리의 간절한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25년 동안 그 약속한 아들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과정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신다는 언약의 말씀을 받고 오랫동안 기다리고 또 기다렸으나 후사가 생기지 않으니까 초조해지고 다급해져서 믿음이 아닌 인간적인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란 땅에서 가나안 땅으로 오는 과정에서 얻은 충성스러운 종 엘리에셀(‘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을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창세기 15장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그의 상속자는 엘리에셀이 아니라 아브라함 자신의 몸에서 날 자가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될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내가 네가 생각한 대로 또 네 방법대로 너에게 씨를 주지 않았다고 네가 마음이 조급해서 너의 종 엘리에셀을 네 상속자로 세우려는 모양이지만,

    그는 네 방법과 네 생각으로 결정한 사람이지 내가 너에게 주려는 씨가 아니니 네 마음 속에서 그를 지워버려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마음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기를 엘리에셀이 타인이고 남의 몸에서 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자신의 상속자로 마땅치 않게 여긴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시간이 지나도 후손이 생기지 않아 자기의 혈족으로 어려서부터 자기를 쫓아온 조카 롯을 후계자로 생각하게 되지만 그는 자기를 떠나 소돔 땅에 거주하게 되어 관계가 끊어져 그를 자신의 마음에서 내려 놓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언약의 씨를 얻기까지 겪은 이러한 훈련과 연단을 통해서 자신의 육신적인 생각과 인간적인 방법, 자신이 가진 힘과 그의 육체의 생명으로 그 언약의 후손을 얻고자 했던 육에 속한 생각들을 하나씩 잘라내게 됩니다.

     

    그런데 창세기 16장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아주 그럴듯한 현실적인 제안을 합니다.

     

    사라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들을 준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자신에게 아들을 주시지 않고 있으니,

    애굽에서 얻은 여종 하갈의 몸을 통해서 자신의 자녀를 얻을까 한다고 아브라함에게 여종 하갈을 후처로 맞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사라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고 여종 하갈은 젊은 처녀이기에 아브라함의 생각에도 사라의 제안이 그럴 듯해 보여서,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생각과 계획 그리고 인간적인 방법을 좇아 그를 취하므로 그의 나이 86세에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한 언약의 자손이 아닌 육에 속한 자손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창16:16)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사라의 몸을 통해서 언약의 후손을 주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는 사라의 몸을 통해서 낳은 아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 난 언약의 씨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갈을 통해서 육체의 자손을 낳은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들의 생각과 방법으로 이룬 결과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각과 방법을 내려 놓기까지 엘리에셀과 조카 롯을 그 마음에서 지워야 했고 또 여종 하갈을 통해서 난 자신의 아들 이스마엘 마저 버려야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아브라함 나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고 14년이 지난 100세에 그의 아내 사라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 낳게 됩니다.

     

    이삭이 젖을 뗄 나이 5세쯤, 아브라함은 이삭이 자기의 후손이 된 것을 너무 기뻐하여 이웃 방백들과 부족장들을 초청하고 자기 가족들과 함께 큰 잔치를 벌입니다.

     

    이 때 이스마엘 나이가 19살이었는데, 어린 이삭을 조롱하고 핍박합니다. 이것을 본 사라는 자신이 하갈을 통해서 얻은 이스마엘이었음에도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으라고 말합니다. (창21:10)

     

    아브라함은 이삭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이스마엘을 언약의 후손이라고 생각해 이스마엘을 마음을 다해서 지극 정성으로 키웠는데, 이삭이 태어나는 일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 이전 창세기 17장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사라가 내년에 낳을 이삭과 언약을 세우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일로 아브라함은 자기의 생각과 방법으로 사람을 취해서 낳은 이스마엘이 언약의 아들이 아닌 것을 깨닫고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삼으려는 마음을 버렸을 때,

    창세기 18장에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이 머물고 있는 그 장막을 찾아와서 내년 이맘때 사라가 아들을 낳을 거라고 말씀을 합니다.

     

    장막 안에서 이 얘기를 듣고 있던 사라가 “90세가 된 할머니가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오”하고 웃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을 한 것임에도, 자기의 신체적인 상태로는 아이를 낳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말씀을 신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라가 웃었기 때문에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그가 웃는다, 웃음’의 뜻인 ‘이삭’으로 짓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에 사로잡혀 엘리에셀을 마음속에 담고 있고 조카 롯을 마음의 상속자로 삼고 있고, 또 자기가 인간적인 방법과 힘으로 낳은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여겨 마음을 쏟고 그를 의존하는 한 하나님의 약속의 씨는 절대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의 육신의 힘, 삶 속에서 만들어진 세상 관념과 사고 방식과 경험들, 이를 바탕으로 짠 계획들이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의 씨가 생겨 날 수 없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일하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에셀과 롯 그리고 이스마엘을 내 생각과 마음속에서 완전히 내쳐버렸을 때, 그제서야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생기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씨인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데,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데 있어 그 일을 방해하고 지체케 했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나중에 깨닫고 이후에는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삶을 보이게됩니다.

     

    육체의 아들을 버렸을 때 언약의 씨,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참 약속의 씨,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언약의 씨가 낳았다고 모든 것이 끝났을까요? 아닙니다.

    그 후 이삭이 젖뗄 때쯤, 육체의 후손인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하고 조롱을 합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마엘을 내쫓아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직도 아브라함에게 많은 어려움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쇠를 단련하기 위해서 뜨거운 용광로나 풀무 속에 그 쇠를 집어넣는 것처럼 아브라함 속에 있는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삶 속에 있는 여러가지 문제와 어려움 속에 그를 집어넣었다가 다시 꺼내는 과정, 곧 그가 삶 속에서 고통과 시련 그리고 실패와 좌절을 겪어 낙심할 때 그를 찾아와 희망과 용기를 주시고 위로하시는 과정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만을 100% 의지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5%, 10%의 불순물들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시련과 문제와 어려움들을 당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축복하고자 하시는 것은 하늘과 땅보다도 더 큰 생명의 씨입니다.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소원이 자신의 후손, 언약의 씨였듯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씨인 그리스도가 우리 삶 속에 함께 내주하시는 것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내주 하기 위해서는 죄에 속한 우리 본성에서 나오는 생각들과 계획들을 다 잘라내 버릴 때 그제서야 하나님의 씨인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너무나 중요한 것은, 하늘의 영적인 일들을 우리가 소유하는 기본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십자가 앞에 굴복하는 삶을 통해서 육적인 것을 다 잘라내는 삶뿐만 아니라 이후에 아브라함에게 아주 어려운 시험이 다가왔던 것처럼, 우리가 육적인 것을 버린 후 다가올 어려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육적인 문제를 해결하니까 아브라함에게 정말 어려운 시험 하나가 또 다가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은 지 18년이 흐른 뒤에, 아브라함 나이 118세, 이삭의 나이 18세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바치라고 합니다. (창세기 22장)

     

     

    사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그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령의 나이였던 아브라함이 자신의 힘으로는 자식을 가질 수 없었을 때에, 약속에 따라 하나님의 권능으로 주신 아들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전적인 권능으로 공급하시고 성취하시는 엘샤다이 하나님에 의해서 그 아들이 자기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그는 아내 사라와 의논하지 않고 곧바로 그 아들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 산으로 3일 길을 걸어갑니다.

     

    이 사건은 인간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육적인 문제를 해결하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간절한 소원이었던 언약의 씨, 아들 이삭을 비로소 주셨습니다.

     

    육적인 문제 곧 자기의 자아, 자기 자신의 생각과 방법들을 모두 버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니까 그제서야 생명의 씨,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이 이에 순종하여 그 아들을 바치므로 그 이삭 한 사람을 통해서 놀라운 축복이 다가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들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이 많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13:16, 창15:5, 창22:17)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늘보다도 더 크고 땅보다도 더 큰 축복을 내려주는데 그의 자손이 하늘에 별들처럼 많게 해 주신다는 겁니다.

     

    여러분들!

    청명한 밤하늘에 헤아릴 수 없는 그 수많은 별들을 보셨습니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그 별들도 다 셀 수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별들도 너무나 많을 것입니다.

     

     

    또 바다의 모래처럼, 땅의 티끌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자손이 많아 질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래는 유대인들을 상징하고 있고 바다는 사탄에 의해 타락한 세상을 의미하고 있으며 티끌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땅에 속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래와 하늘과 그리고 티끌과 바다 얘기를 아브라함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가랴서 8장 20절부터 23절에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타락한 세상 속에, 땅에 속한 자들 속에도 하나님을 따르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의 참 백성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12장 17절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바닷가 모래로 나타내어 이들이 붉은 용과의 전쟁을 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서 이끌어 낸 참 백성들을 바닷가 모래로 상징하고 있는데, 이들은 타락한 세상을 상징하는 바다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며 이들이 붉은 용, 사탄과의 전쟁을 할 것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별들은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존재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별들은 타락한 땅, 세상에 속한 자들과 완전히 구별된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

     

    또 바다는 타락한 세상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의미로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북서쪽에 위치한 해안 성읍, 가버나움을 사역의 중심지로 택하시고 활동하신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 바다에 속한 자들을 주님께서 망대처럼 지켜보고 바다 가운데서 그들과 대치하고 대전쟁을 치르시겠다는 단호한 의미에서 가버나움을 택하여 제자들을 부르시고 갈릴리 사역을 행하신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아마겟돈 전쟁(계 16장 14, 16절)에서 붉은 용 사탄과 그를 따르는 타락한 세상의 모든 악한 자들과 악한 영들과의 마지막 대전쟁이 있을 것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통해서 주신다는 하늘에 있는 모든 별들은 사탄과 그를 따르는 악한 자들과 악한 영들과의 대전쟁에서 싸울 증인들을 특별히 말하고 있으며, 또 장차 새 예루살렘 성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함께 살 자들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은 바다에서부터 분리된 모래의 티끌과 같은 존재들이 모인 곳입니다.

    이 티끌로 만들어진 우리 인간이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보석 같은 존재가 되어서 선과 악의 대전쟁에서 마귀를 대적하여 전쟁을 치르는 그들은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얼마나 장엄한 모습이겠습니까.

     

    스가랴 12장 8절,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는 말씀과 같이

     

    이 뽑힌 자들, 마지막 인침을 받은 자들, 거듭난 자들, 기드온의 삼백용사와 같은 십사만 사천 명의 강하고 용맹한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 삼백용사는 열두지파에서 뽑힌 자들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명은 한 지파 당 삼백명씩 열두지파를 모두 합하면 삼천육백명이 나오고 이에 숫자 사십을 곱하면 산출되는 숫자입니다.

     

    여기서 사십이라는 숫자는 예수님과 같은 고난과 고통이 있는 삶, 즉 마귀의 시험과 세상의 유혹과 또 죄의 충동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신의 우상으로부터 완전히 떠난 삶을 말하는데,

    이러한 삶을 사는 자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하나 된 자들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인의 후손은 그리스도를 따라 진리로 하나된 자들, 그 진리 때문에 어떤 비진리나 미혹하는 것들로 결코 넘어질 수 없는 자들을 말하며, 그런 자들이 바로 하나님이 만드시고자 하는 아브라함의 영적인 씨입니다.

     

    이와 같은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들이 하늘의 별들처럼 많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늘의 별들은 땅과 완전히 분리되고 구별된 자들입니다.

     

    마지막 날에 있을 아마겟돈 전쟁에서 사단이 그를 추종하는 악한 영들과 악인들을 모아서,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인 주님의 증거자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이때 말할 수 없는 시험과 핍박과 보통 사람들은 전혀 견딜 수 없는 공격들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오시기 전에 아마겟돈 전쟁이 있을 것인데, 그때 넘어지지 않고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당당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증거하여 하나님의 훼손된 명예와 영광을 회복하는 일을 하는 아브라함의 씨, 그리스도의 증인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굳건히 세워질 것입니다.

     

    그때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이 세워지고 하나님의 계명이 온전히 지켜질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 곧 남은 자들, 인침을 받은 자들, 진리로 인하여 결코 넘어질 수 없는 자들은 사단의 온갖 공격에도 절대 실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전쟁이 있기 전에 이 땅에서 교제의 말씀을 나누고 신앙의 연단과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인침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어떤 자가 인침을 받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만 아시는 일인데, 진리로 완전 무장하여 진리 안에 굳게 서있지 않은 자들은 인침을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이 있을 그 때에 사탄으로부터 권세를 받은 짐승이 나타나 우상에게 경배하게 하고 오른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게 하는 일이 있을 것인데, 인침을 받지 못한 목회자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굴복하고 넘어질 것입니다.

     

    그때 넘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서 이 악한 자들과 벌이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앞장서서 싸울 자들이 바로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된 자들, 하늘나라의 기본 원칙인 계명을 온전히 지키어 하나가 된 자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결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마귀와의 관계를 결코 맺지 않으며 믿음에서 되돌아서는 일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자들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이 말씀 교제를 나누고 기도하는 등, 영적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구약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는 이스라엘의 12지파와 신약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표하는 열두 사도들, 이들은 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임할 새 예루살렘 성을 이루는 대표자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새 예루살렘 성을 존귀한 보석으로 만들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새 예루살렘 성을 묘사하고 있는데, 새 예루살렘 성곽의 기초석에 열두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그 성곽의 열두 대문에는 구약의 이스라엘 열두지파들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두사도들로 대표되는 이들이 하늘의 별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을 하늘의 별들처럼 만든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열두사도 같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온전히 순복한자들로 이루어진 인침을 받은 십사만사천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아마겟돈 전쟁에 앞장서 싸워서 승리한 자들이며 하늘의 별들입니다.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을 통한 연단과정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이라는 언약의 씨를 갖기 위해서 엘리에셀과 롯을 마음에서 제거하고 또 자기가 육체로 낳은 아들 이스마엘을 버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씨 이삭을 자기에게 주심으로 십팔년 동안 자기의 생명과 같은 그 아들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며 마음을 쏟고 사랑했는데, 그런 아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되돌려 달라고 할 때, 순종하여 되돌려줌으로써 하늘의 별들, 모래, 티끌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얘기하고자 한 것은

    하나님이 원래 주셨던 그 아들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순종하여 하나님께 되돌려 드릴 때 비로소 하늘의 별들이 생산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자기 나이 100세에 주셨는데 줄 때는 언제고 또 달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으로 대하여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했다면, 결코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되지 못했을 거라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죽어서 수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아브라함이 이삭 한 사람을 희생시켜서 하늘의 별과 같은 후손들이 수 없이 생겨나서 인침을 받은 숫자가 십사만사천명이나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명의 씨,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나타내는 자, 생명을 드러내고 생명을 표현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드리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삭 한 명으로 그쳤을 것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이 얘기를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아브라함에게 이삭 한 명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고집해서 하나님께 이삭을 드리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은 아비로서 이삭 한 사람만을 소유할 뿐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자기 마음에서 잘라냈을 때, 하나님의 생명의 씨인 이삭이 하나님의 은혜로 만들어진 것처럼, 이번엔 하나님께 주신 이삭을 잘라냈을 때 그의 영적인 후손들이 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모래와 티끌처럼 증가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온전히 모시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온전히 모시는 일이 있어야 구원도 있고 영생도 있고 사랑도 있고 모든 성령님의 열매도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이런 모든 일들이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우리 신앙은 힘없이 무너질 것입니다.

     

    그런데 내 본성적인 생각들과 인간적인 방법들과 계획들을 다 버리면 하나님께서 내 속에 성령님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들어 주십니다.

     

    더 나아가 한 분의 그리스도가 내 몸에서 성장되고 하늘의 별들처럼 온전히 만들어져서 그 영광의 빛이 세상에 비춰지게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그 아들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고 그를 되돌려 달라하신 하나님의 뜻이 의롭고 선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기꺼이 되돌려 드려서, 이삭 한 사람의 희생으로 하늘의 별들과 바다의 모래와 티끌처럼 많은 그의 후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성령님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가 하늘의 별처럼 풍성한 열매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생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 되돌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삭 한 사람이 바다의 모래와 티끌과 같이 많은 후손이 된 것처럼, 그리스도를 온전히 나타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만, 내 안에 임재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하여 그리스도라는 선물이 온 세상에 하늘의 별처럼 증가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씨를 주셨는데, 우리가 한 분 예수님만을 소유한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널리 전파되어 그 씨가 널리 퍼져 번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시대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세상 어느 곳과도 동영상이나 글로 소통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언어를 여러 나라의 말로 번역하여서 인터넷 매체를 이용해서 교제 말씀 글이나 말씀 동영상으로 복음을 전하여 빚과 소금으로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온 세상 앞에 드러내는 것이, 지금 시대에 그리스도의 씨를 하늘의 수없이 많은 별처럼 열매를 맺게 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꿈, 하나님이 우리의 일을 통해서, 하늘소리 선교회를 통해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온 세상 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진리,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그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 여호와 하나님이신 우리의 아버지를 세상에 전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달하지 않으면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씨, 이삭을 줬는데, 그 한 사람만을 자기가 데리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복하여 모리아산 번제단 위에 그 이삭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일을 통해서 그 한 사람의 씨가 죽어져서 수많은 생명의 열매로 발화되도록 해야 합니다.

     

    생명의 씨가 발화가 되어야 합니다. 죽지 않으면 생명의 씨가 발화가 되지 않습니다.

     

    창세기 22장 10절에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내려치려 한 것은 하늘에서 번개불이 내려치고 뒤에 큰 뇌성이 울리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우레가 울리기 전에 먼저 하늘에서 번쩍하고 번개불이 온 세상을 빛으로 비춥니다. 번개가 친 다음 3, 4초 뒤에 커다란 뇌성이 우르르쾅쾅 소리를 냅니다.

     

    아브라함이 번제단 위에 누워 있는 그 생명의 씨, 이삭을 죽이려고 칼을 든 것은 마치 번개가 치고 그 후에 큰 뇌성을 발하므로 하나님께서 생명의 빛을 통해서 아직 잠자고 있는 만물들을 깨우시고, 그래도 일어나지 않는 자들에게 큰 뇌성으로 깨워서 생명의 눈을 뜨게 하는 것입니다.

     

    그 죽어진 이삭을 통해서 많은 생명의 씨들이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씨인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게 된 것입니다.

     

    성령님의 은혜로 그리스도가 나 하나만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온 세상의 생명의 씨가 되어 크게 번성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드려져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나타내지지 않으면, 또 우리가 이 세상에 하나님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대표자가 되지 않으면 우리는 생명의 씨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늘소리 선교회를 확장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 목사님들, 선교사님들, 봉사자님들이 계시다면 우리 하늘소리 선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지금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열명의 봉사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단체에 지금 훈련받고 있는 봉사자들이 네 명 정도가 있는데, 일곱명에서 열명의 봉사자가 채워지면 하늘소리 선교회가 글로벌적인 선교,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째, 사람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연단하여 준비한 사람 또 하나님과 복음을 사랑하는 분은 누구든지 나이에 상관없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시간을 드릴 수 있고 또 마음을 드릴 수 있고 자신의 재능들을 온전히 드릴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공동체 생활을 계획하고 있는데, 교회를 운영을 하여 예배도 같이 드리고 청소년 학교도 운영하기 위해서는 건물과 시설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계산을 해보니 4억원에서 5억원 정도만 있어도 일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4억이나 5억이라는 돈은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조그마한 돈이 될 수 있지만, 지금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사람들도 전혀 없고 이 일을 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금액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캄보디아에 있는 학교 땅을 좀 팔려고 100만 달러 가까이 내놨는데 지금 코로나로 인해서 쉽게 팔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금액에 상관없이 빨리 일을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깨닫고 이 일을 하게 됐을 때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일을 빨리 이루어 성취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꿈에 대한 열망과 우리들의 열심이 합쳐져서 하나가 될 때 그제서야 비로소 우리는 하늘의 별들처럼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리면서 교제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이삭의 출생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예표 (skynews mission) | 작성자 인도차이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그 축복은 이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어떤 번영이나 성공들, 재물들, 지위가 높아지는 일들 또 행복을 위한 것들, 건강을 위한 것들 곧 이 세상의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교회들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한 꿈과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씨인 그리스도가 내 삶 속에 나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간절한 꿈이 바로 후사를 가지는 것이듯, 우리들 또한 하나님의 씨인 그리스도를 갖는 일, 곧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 삶 속에 함께 내주하셔서 나와 함께 거하는 삶이 가장 큰 바람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는 삶이 있음으로 구원이 있고 주님께 사랑도 받고 영원한 생명도 소유 받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우리가 간구하는 복 중의 복, 선물 중에 선물이 있다면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뒤를 이을 씨에 대한 것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물질이 좀 부족하다 할지라도 건강이 좀 약할지라도 또는 처한 환경이 다른 사람보다도 많이 좋지 못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 속에서 하나가 된다면, 그보다 더 큰 하늘의 축복은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던 이 씨에 대한 말씀이 창세기 21장 1절, 2절에 성취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처럼(창12:7, 창13:15, 창15:4, 창17:16) 그 씨, 아들을 주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요.

     

    갈데아 우르에 살고 있었던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함께 하나님께 인도되어 그곳을 나왔고 데라가 하란 땅에서 죽은 뒤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가나안 땅으로 이끄시고 그에게 언약의 후사, 언약의 씨에 대한 약속을 하십니다.

     

    하지만, 자신의 후사가 없었던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후 25년이 지나 그의 나이 100세가 될 때까지 하나님은 후사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의 말씀이 있기 전 또는 그 후 이른 시일에 그 언약의 후손을 그에게 주었다 할지라도, 육에 속해 있던 아브라함이 그 언약의 후손에게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믿음과 올바른 신앙의 정신을 물려줄 수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그가 먼저 온전한 신앙인으로 성화 되고 변화되기 위해서, 그 안에 생명의 씨를 소유하고 그것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브라함 자신이 죽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자신의 자아가 먼저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자아가 죽어야 된다는 말은 육에 속한 생각들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갈데아 우르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얻은 많은 학문적인 지식과 세상 경험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한 탁월한 재능들을 의지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꿈과 뜻을 세상속에서 이루며 살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언약의 씨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주신 때는 아브라함 나이 100세, 부인 사라의 나이 90세였습니다. 그 때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늙어서 신체적으로 아이를 절대 낳을 수 없는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이를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들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하나님의 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맞춰서 그에게 언약의 씨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행하여 예측한 때에 그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으로 하늘의 씨, 약속의 씨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들의 가장 큰 꿈과 소망은 그 안에 생명이신 예수님이 항상 내주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고 내 삶 속에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일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행하셨던 방법과 같이 오직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으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힘과 방법으로는 아이를 생산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과 방법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씨를 주신 것처럼, 우리의 간절한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25년 동안 그 약속한 아들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과정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신다는 언약의 말씀을 받고 오랫동안 기다리고 또 기다렸으나 후사가 생기지 않으니까 초조해지고 다급해져서 믿음이 아닌 인간적인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란 땅에서 가나안 땅으로 오는 과정에서 얻은 충성스러운 종 엘리에셀(‘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을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창세기 15장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그의 상속자는 엘리에셀이 아니라 아브라함 자신의 몸에서 날 자가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될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내가 네가 생각한 대로 또 네 방법대로 너에게 씨를 주지 않았다고 네가 마음이 조급해서 너의 종 엘리에셀을 네 상속자로 세우려는 모양이지만,

    그는 네 방법과 네 생각으로 결정한 사람이지 내가 너에게 주려는 씨가 아니니 네 마음 속에서 그를 지워버려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마음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기를 엘리에셀이 타인이고 남의 몸에서 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자신의 상속자로 마땅치 않게 여긴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시간이 지나도 후손이 생기지 않아 자기의 혈족으로 어려서부터 자기를 쫓아온 조카 롯을 후계자로 생각하게 되지만 그는 자기를 떠나 소돔 땅에 거주하게 되어 관계가 끊어져 그를 자신의 마음에서 내려 놓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언약의 씨를 얻기까지 겪은 이러한 훈련과 연단을 통해서 자신의 육신적인 생각과 인간적인 방법, 자신이 가진 힘과 그의 육체의 생명으로 그 언약의 후손을 얻고자 했던 육에 속한 생각들을 하나씩 잘라내게 됩니다.

     

    그런데 창세기 16장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아주 그럴듯한 현실적인 제안을 합니다.

     

    사라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들을 준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자신에게 아들을 주시지 않고 있으니,

    애굽에서 얻은 여종 하갈의 몸을 통해서 자신의 자녀를 얻을까 한다고 아브라함에게 여종 하갈을 후처로 맞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사라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고 여종 하갈은 젊은 처녀이기에 아브라함의 생각에도 사라의 제안이 그럴 듯해 보여서,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생각과 계획 그리고 인간적인 방법을 좇아 그를 취하므로 그의 나이 86세에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한 언약의 자손이 아닌 육에 속한 자손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창16:16)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사라의 몸을 통해서 언약의 후손을 주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는 사라의 몸을 통해서 낳은 아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 난 언약의 씨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갈을 통해서 육체의 자손을 낳은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들의 생각과 방법으로 이룬 결과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각과 방법을 내려 놓기까지 엘리에셀과 조카 롯을 그 마음에서 지워야 했고 또 여종 하갈을 통해서 난 자신의 아들 이스마엘 마저 버려야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아브라함 나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고 14년이 지난 100세에 그의 아내 사라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 낳게 됩니다.

     

    이삭이 젖을 뗄 나이 5세쯤, 아브라함은 이삭이 자기의 후손이 된 것을 너무 기뻐하여 이웃 방백들과 부족장들을 초청하고 자기 가족들과 함께 큰 잔치를 벌입니다.

     

    이 때 이스마엘 나이가 19살이었는데, 어린 이삭을 조롱하고 핍박합니다. 이것을 본 사라는 자신이 하갈을 통해서 얻은 이스마엘이었음에도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으라고 말합니다. (창21:10)

     

    아브라함은 이삭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이스마엘을 언약의 후손이라고 생각해 이스마엘을 마음을 다해서 지극 정성으로 키웠는데, 이삭이 태어나는 일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 이전 창세기 17장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사라가 내년에 낳을 이삭과 언약을 세우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일로 아브라함은 자기의 생각과 방법으로 사람을 취해서 낳은 이스마엘이 언약의 아들이 아닌 것을 깨닫고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삼으려는 마음을 버렸을 때,

    창세기 18장에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이 머물고 있는 그 장막을 찾아와서 내년 이맘때 사라가 아들을 낳을 거라고 말씀을 합니다.

     

    장막 안에서 이 얘기를 듣고 있던 사라가 “90세가 된 할머니가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오”하고 웃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을 한 것임에도, 자기의 신체적인 상태로는 아이를 낳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말씀을 신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라가 웃었기 때문에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그가 웃는다, 웃음’의 뜻인 ‘이삭’으로 짓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에 사로잡혀 엘리에셀을 마음속에 담고 있고 조카 롯을 마음의 상속자로 삼고 있고, 또 자기가 인간적인 방법과 힘으로 낳은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여겨 마음을 쏟고 그를 의존하는 한 하나님의 약속의 씨는 절대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의 육신의 힘, 삶 속에서 만들어진 세상 관념과 사고 방식과 경험들, 이를 바탕으로 짠 계획들이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의 씨가 생겨 날 수 없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일하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에셀과 롯 그리고 이스마엘을 내 생각과 마음속에서 완전히 내쳐버렸을 때, 그제서야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생기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씨인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데,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데 있어 그 일을 방해하고 지체케 했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나중에 깨닫고 이후에는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삶을 보이게됩니다.

     

    육체의 아들을 버렸을 때 언약의 씨,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참 약속의 씨,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언약의 씨가 낳았다고 모든 것이 끝났을까요? 아닙니다.

    그 후 이삭이 젖뗄 때쯤, 육체의 후손인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하고 조롱을 합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마엘을 내쫓아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직도 아브라함에게 많은 어려움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쇠를 단련하기 위해서 뜨거운 용광로나 풀무 속에 그 쇠를 집어넣는 것처럼 아브라함 속에 있는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삶 속에 있는 여러가지 문제와 어려움 속에 그를 집어넣었다가 다시 꺼내는 과정, 곧 그가 삶 속에서 고통과 시련 그리고 실패와 좌절을 겪어 낙심할 때 그를 찾아와 희망과 용기를 주시고 위로하시는 과정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만을 100% 의지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5%, 10%의 불순물들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시련과 문제와 어려움들을 당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축복하고자 하시는 것은 하늘과 땅보다도 더 큰 생명의 씨입니다.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소원이 자신의 후손, 언약의 씨였듯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씨인 그리스도가 우리 삶 속에 함께 내주하시는 것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내주 하기 위해서는 죄에 속한 우리 본성에서 나오는 생각들과 계획들을 다 잘라내 버릴 때 그제서야 하나님의 씨인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너무나 중요한 것은, 하늘의 영적인 일들을 우리가 소유하는 기본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십자가 앞에 굴복하는 삶을 통해서 육적인 것을 다 잘라내는 삶뿐만 아니라 이후에 아브라함에게 아주 어려운 시험이 다가왔던 것처럼, 우리가 육적인 것을 버린 후 다가올 어려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육적인 문제를 해결하니까 아브라함에게 정말 어려운 시험 하나가 또 다가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은 지 18년이 흐른 뒤에, 아브라함 나이 118세, 이삭의 나이 18세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바치라고 합니다. (창세기 22장)

     

     

    사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그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령의 나이였던 아브라함이 자신의 힘으로는 자식을 가질 수 없었을 때에, 약속에 따라 하나님의 권능으로 주신 아들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전적인 권능으로 공급하시고 성취하시는 엘샤다이 하나님에 의해서 그 아들이 자기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그는 아내 사라와 의논하지 않고 곧바로 그 아들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 산으로 3일 길을 걸어갑니다.

     

    이 사건은 인간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육적인 문제를 해결하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간절한 소원이었던 언약의 씨, 아들 이삭을 비로소 주셨습니다.

     

    육적인 문제 곧 자기의 자아, 자기 자신의 생각과 방법들을 모두 버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니까 그제서야 생명의 씨,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이 이에 순종하여 그 아들을 바치므로 그 이삭 한 사람을 통해서 놀라운 축복이 다가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들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이 많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13:16, 창15:5, 창22:17)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늘보다도 더 크고 땅보다도 더 큰 축복을 내려주는데 그의 자손이 하늘에 별들처럼 많게 해 주신다는 겁니다.

     

    여러분들!

    청명한 밤하늘에 헤아릴 수 없는 그 수많은 별들을 보셨습니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그 별들도 다 셀 수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별들도 너무나 많을 것입니다.

     

     

    또 바다의 모래처럼, 땅의 티끌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자손이 많아 질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래는 유대인들을 상징하고 있고 바다는 사탄에 의해 타락한 세상을 의미하고 있으며 티끌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땅에 속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래와 하늘과 그리고 티끌과 바다 얘기를 아브라함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가랴서 8장 20절부터 23절에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타락한 세상 속에, 땅에 속한 자들 속에도 하나님을 따르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의 참 백성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12장 17절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바닷가 모래로 나타내어 이들이 붉은 용과의 전쟁을 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서 이끌어 낸 참 백성들을 바닷가 모래로 상징하고 있는데, 이들은 타락한 세상을 상징하는 바다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며 이들이 붉은 용, 사탄과의 전쟁을 할 것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별들은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존재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별들은 타락한 땅, 세상에 속한 자들과 완전히 구별된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

     

    또 바다는 타락한 세상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의미로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북서쪽에 위치한 해안 성읍, 가버나움을 사역의 중심지로 택하시고 활동하신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 바다에 속한 자들을 주님께서 망대처럼 지켜보고 바다 가운데서 그들과 대치하고 대전쟁을 치르시겠다는 단호한 의미에서 가버나움을 택하여 제자들을 부르시고 갈릴리 사역을 행하신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아마겟돈 전쟁(계 16장 14, 16절)에서 붉은 용 사탄과 그를 따르는 타락한 세상의 모든 악한 자들과 악한 영들과의 마지막 대전쟁이 있을 것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통해서 주신다는 하늘에 있는 모든 별들은 사탄과 그를 따르는 악한 자들과 악한 영들과의 대전쟁에서 싸울 증인들을 특별히 말하고 있으며, 또 장차 새 예루살렘 성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함께 살 자들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은 바다에서부터 분리된 모래의 티끌과 같은 존재들이 모인 곳입니다.

    이 티끌로 만들어진 우리 인간이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보석 같은 존재가 되어서 선과 악의 대전쟁에서 마귀를 대적하여 전쟁을 치르는 그들은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얼마나 장엄한 모습이겠습니까.

     

    스가랴 12장 8절,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는 말씀과 같이

     

    이 뽑힌 자들, 마지막 인침을 받은 자들, 거듭난 자들, 기드온의 삼백용사와 같은 십사만 사천 명의 강하고 용맹한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 삼백용사는 열두지파에서 뽑힌 자들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명은 한 지파 당 삼백명씩 열두지파를 모두 합하면 삼천육백명이 나오고 이에 숫자 사십을 곱하면 산출되는 숫자입니다.

     

    여기서 사십이라는 숫자는 예수님과 같은 고난과 고통이 있는 삶, 즉 마귀의 시험과 세상의 유혹과 또 죄의 충동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신의 우상으로부터 완전히 떠난 삶을 말하는데,

    이러한 삶을 사는 자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하나 된 자들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인의 후손은 그리스도를 따라 진리로 하나된 자들, 그 진리 때문에 어떤 비진리나 미혹하는 것들로 결코 넘어질 수 없는 자들을 말하며, 그런 자들이 바로 하나님이 만드시고자 하는 아브라함의 영적인 씨입니다.

     

    이와 같은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들이 하늘의 별들처럼 많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늘의 별들은 땅과 완전히 분리되고 구별된 자들입니다.

     

    마지막 날에 있을 아마겟돈 전쟁에서 사단이 그를 추종하는 악한 영들과 악인들을 모아서,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인 주님의 증거자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이때 말할 수 없는 시험과 핍박과 보통 사람들은 전혀 견딜 수 없는 공격들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오시기 전에 아마겟돈 전쟁이 있을 것인데, 그때 넘어지지 않고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당당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증거하여 하나님의 훼손된 명예와 영광을 회복하는 일을 하는 아브라함의 씨, 그리스도의 증인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굳건히 세워질 것입니다.

     

    그때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이 세워지고 하나님의 계명이 온전히 지켜질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 곧 남은 자들, 인침을 받은 자들, 진리로 인하여 결코 넘어질 수 없는 자들은 사단의 온갖 공격에도 절대 실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전쟁이 있기 전에 이 땅에서 교제의 말씀을 나누고 신앙의 연단과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인침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어떤 자가 인침을 받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만 아시는 일인데, 진리로 완전 무장하여 진리 안에 굳게 서있지 않은 자들은 인침을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이 있을 그 때에 사탄으로부터 권세를 받은 짐승이 나타나 우상에게 경배하게 하고 오른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게 하는 일이 있을 것인데, 인침을 받지 못한 목회자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굴복하고 넘어질 것입니다.

     

    그때 넘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서 이 악한 자들과 벌이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앞장서서 싸울 자들이 바로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된 자들, 하늘나라의 기본 원칙인 계명을 온전히 지키어 하나가 된 자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결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마귀와의 관계를 결코 맺지 않으며 믿음에서 되돌아서는 일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자들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이 말씀 교제를 나누고 기도하는 등, 영적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구약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는 이스라엘의 12지파와 신약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표하는 열두 사도들, 이들은 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임할 새 예루살렘 성을 이루는 대표자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새 예루살렘 성을 존귀한 보석으로 만들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새 예루살렘 성을 묘사하고 있는데, 새 예루살렘 성곽의 기초석에 열두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그 성곽의 열두 대문에는 구약의 이스라엘 열두지파들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두사도들로 대표되는 이들이 하늘의 별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을 하늘의 별들처럼 만든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열두사도 같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온전히 순복한자들로 이루어진 인침을 받은 십사만사천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아마겟돈 전쟁에 앞장서 싸워서 승리한 자들이며 하늘의 별들입니다.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을 통한 연단과정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이라는 언약의 씨를 갖기 위해서 엘리에셀과 롯을 마음에서 제거하고 또 자기가 육체로 낳은 아들 이스마엘을 버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씨 이삭을 자기에게 주심으로 십팔년 동안 자기의 생명과 같은 그 아들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며 마음을 쏟고 사랑했는데, 그런 아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되돌려 달라고 할 때, 순종하여 되돌려줌으로써 하늘의 별들, 모래, 티끌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얘기하고자 한 것은

    하나님이 원래 주셨던 그 아들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순종하여 하나님께 되돌려 드릴 때 비로소 하늘의 별들이 생산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자기 나이 100세에 주셨는데 줄 때는 언제고 또 달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으로 대하여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했다면, 결코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되지 못했을 거라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죽어서 수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아브라함이 이삭 한 사람을 희생시켜서 하늘의 별과 같은 후손들이 수 없이 생겨나서 인침을 받은 숫자가 십사만사천명이나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명의 씨,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나타내는 자, 생명을 드러내고 생명을 표현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드리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삭 한 명으로 그쳤을 것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이 얘기를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아브라함에게 이삭 한 명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고집해서 하나님께 이삭을 드리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은 아비로서 이삭 한 사람만을 소유할 뿐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자기 마음에서 잘라냈을 때, 하나님의 생명의 씨인 이삭이 하나님의 은혜로 만들어진 것처럼, 이번엔 하나님께 주신 이삭을 잘라냈을 때 그의 영적인 후손들이 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모래와 티끌처럼 증가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온전히 모시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온전히 모시는 일이 있어야 구원도 있고 영생도 있고 사랑도 있고 모든 성령님의 열매도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이런 모든 일들이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우리 신앙은 힘없이 무너질 것입니다.

     

    그런데 내 본성적인 생각들과 인간적인 방법들과 계획들을 다 버리면 하나님께서 내 속에 성령님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들어 주십니다.

     

    더 나아가 한 분의 그리스도가 내 몸에서 성장되고 하늘의 별들처럼 온전히 만들어져서 그 영광의 빛이 세상에 비춰지게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그 아들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고 그를 되돌려 달라하신 하나님의 뜻이 의롭고 선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기꺼이 되돌려 드려서, 이삭 한 사람의 희생으로 하늘의 별들과 바다의 모래와 티끌처럼 많은 그의 후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성령님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가 하늘의 별처럼 풍성한 열매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생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 되돌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삭 한 사람이 바다의 모래와 티끌과 같이 많은 후손이 된 것처럼, 그리스도를 온전히 나타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만, 내 안에 임재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하여 그리스도라는 선물이 온 세상에 하늘의 별처럼 증가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씨를 주셨는데, 우리가 한 분 예수님만을 소유한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널리 전파되어 그 씨가 널리 퍼져 번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시대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세상 어느 곳과도 동영상이나 글로 소통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언어를 여러 나라의 말로 번역하여서 인터넷 매체를 이용해서 교제 말씀 글이나 말씀 동영상으로 복음을 전하여 빚과 소금으로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온 세상 앞에 드러내는 것이, 지금 시대에 그리스도의 씨를 하늘의 수없이 많은 별처럼 열매를 맺게 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꿈, 하나님이 우리의 일을 통해서, 하늘소리 선교회를 통해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온 세상 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진리,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그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 여호와 하나님이신 우리의 아버지를 세상에 전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달하지 않으면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씨, 이삭을 줬는데, 그 한 사람만을 자기가 데리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복하여 모리아산 번제단 위에 그 이삭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일을 통해서 그 한 사람의 씨가 죽어져서 수많은 생명의 열매로 발화되도록 해야 합니다.

     

    생명의 씨가 발화가 되어야 합니다. 죽지 않으면 생명의 씨가 발화가 되지 않습니다.

     

    창세기 22장 10절에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내려치려 한 것은 하늘에서 번개불이 내려치고 뒤에 큰 뇌성이 울리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우레가 울리기 전에 먼저 하늘에서 번쩍하고 번개불이 온 세상을 빛으로 비춥니다. 번개가 친 다음 3, 4초 뒤에 커다란 뇌성이 우르르쾅쾅 소리를 냅니다.

     

    아브라함이 번제단 위에 누워 있는 그 생명의 씨, 이삭을 죽이려고 칼을 든 것은 마치 번개가 치고 그 후에 큰 뇌성을 발하므로 하나님께서 생명의 빛을 통해서 아직 잠자고 있는 만물들을 깨우시고, 그래도 일어나지 않는 자들에게 큰 뇌성으로 깨워서 생명의 눈을 뜨게 하는 것입니다.

     

    그 죽어진 이삭을 통해서 많은 생명의 씨들이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씨인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게 된 것입니다.

     

    성령님의 은혜로 그리스도가 나 하나만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온 세상의 생명의 씨가 되어 크게 번성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드려져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나타내지지 않으면, 또 우리가 이 세상에 하나님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대표자가 되지 않으면 우리는 생명의 씨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늘소리 선교회를 확장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 목사님들, 선교사님들, 봉사자님들이 계시다면 우리 하늘소리 선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지금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열명의 봉사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단체에 지금 훈련받고 있는 봉사자들이 네 명 정도가 있는데, 일곱명에서 열명의 봉사자가 채워지면 하늘소리 선교회가 글로벌적인 선교,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째, 사람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연단하여 준비한 사람 또 하나님과 복음을 사랑하는 분은 누구든지 나이에 상관없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시간을 드릴 수 있고 또 마음을 드릴 수 있고 자신의 재능들을 온전히 드릴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공동체 생활을 계획하고 있는데, 교회를 운영을 하여 예배도 같이 드리고 청소년 학교도 운영하기 위해서는 건물과 시설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계산을 해보니 4억원에서 5억원 정도만 있어도 일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4억이나 5억이라는 돈은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조그마한 돈이 될 수 있지만, 지금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사람들도 전혀 없고 이 일을 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금액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캄보디아에 있는 학교 땅을 좀 팔려고 100만 달러 가까이 내놨는데 지금 코로나로 인해서 쉽게 팔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금액에 상관없이 빨리 일을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깨닫고 이 일을 하게 됐을 때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일을 빨리 이루어 성취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꿈에 대한 열망과 우리들의 열심이 합쳐져서 하나가 될 때 그제서야 비로소 우리는 하늘의 별들처럼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리면서 교제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이삭의 출생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예표 (skynews mission) | 작성자 인도차이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그 축복은 이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어떤 번영이나 성공들, 재물들, 지위가 높아지는 일들 또 행복을 위한 것들, 건강을 위한 것들 곧 이 세상의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교회들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한 꿈과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씨인 그리스도가 내 삶 속에 나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간절한 꿈이 바로 후사를 가지는 것이듯, 우리들 또한 하나님의 씨인 그리스도를 갖는 일, 곧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 삶 속에 함께 내주하셔서 나와 함께 거하는 삶이 가장 큰 바람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는 삶이 있음으로 구원이 있고 주님께 사랑도 받고 영원한 생명도 소유 받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우리가 간구하는 복 중의 복, 선물 중에 선물이 있다면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뒤를 이을 씨에 대한 것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물질이 좀 부족하다 할지라도 건강이 좀 약할지라도 또는 처한 환경이 다른 사람보다도 많이 좋지 못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 속에서 하나가 된다면, 그보다 더 큰 하늘의 축복은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던 이 씨에 대한 말씀이 창세기 21장 1절, 2절에 성취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처럼(창12:7, 창13:15, 창15:4, 창17:16) 그 씨, 아들을 주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요.

     

    갈데아 우르에 살고 있었던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함께 하나님께 인도되어 그곳을 나왔고 데라가 하란 땅에서 죽은 뒤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가나안 땅으로 이끄시고 그에게 언약의 후사, 언약의 씨에 대한 약속을 하십니다.

     

    하지만, 자신의 후사가 없었던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후 25년이 지나 그의 나이 100세가 될 때까지 하나님은 후사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의 말씀이 있기 전 또는 그 후 이른 시일에 그 언약의 후손을 그에게 주었다 할지라도, 육에 속해 있던 아브라함이 그 언약의 후손에게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믿음과 올바른 신앙의 정신을 물려줄 수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그가 먼저 온전한 신앙인으로 성화 되고 변화되기 위해서, 그 안에 생명의 씨를 소유하고 그것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브라함 자신이 죽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자신의 자아가 먼저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자아가 죽어야 된다는 말은 육에 속한 생각들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갈데아 우르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얻은 많은 학문적인 지식과 세상 경험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한 탁월한 재능들을 의지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꿈과 뜻을 세상속에서 이루며 살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언약의 씨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주신 때는 아브라함 나이 100세, 부인 사라의 나이 90세였습니다. 그 때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늙어서 신체적으로 아이를 절대 낳을 수 없는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이를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들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하나님의 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맞춰서 그에게 언약의 씨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행하여 예측한 때에 그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으로 하늘의 씨, 약속의 씨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들의 가장 큰 꿈과 소망은 그 안에 생명이신 예수님이 항상 내주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고 내 삶 속에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일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행하셨던 방법과 같이 오직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으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힘과 방법으로는 아이를 생산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과 방법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씨를 주신 것처럼, 우리의 간절한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25년 동안 그 약속한 아들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과정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신다는 언약의 말씀을 받고 오랫동안 기다리고 또 기다렸으나 후사가 생기지 않으니까 초조해지고 다급해져서 믿음이 아닌 인간적인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란 땅에서 가나안 땅으로 오는 과정에서 얻은 충성스러운 종 엘리에셀(‘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을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창세기 15장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그의 상속자는 엘리에셀이 아니라 아브라함 자신의 몸에서 날 자가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될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내가 네가 생각한 대로 또 네 방법대로 너에게 씨를 주지 않았다고 네가 마음이 조급해서 너의 종 엘리에셀을 네 상속자로 세우려는 모양이지만,

    그는 네 방법과 네 생각으로 결정한 사람이지 내가 너에게 주려는 씨가 아니니 네 마음 속에서 그를 지워버려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마음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기를 엘리에셀이 타인이고 남의 몸에서 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자신의 상속자로 마땅치 않게 여긴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시간이 지나도 후손이 생기지 않아 자기의 혈족으로 어려서부터 자기를 쫓아온 조카 롯을 후계자로 생각하게 되지만 그는 자기를 떠나 소돔 땅에 거주하게 되어 관계가 끊어져 그를 자신의 마음에서 내려 놓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언약의 씨를 얻기까지 겪은 이러한 훈련과 연단을 통해서 자신의 육신적인 생각과 인간적인 방법, 자신이 가진 힘과 그의 육체의 생명으로 그 언약의 후손을 얻고자 했던 육에 속한 생각들을 하나씩 잘라내게 됩니다.

     

    그런데 창세기 16장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아주 그럴듯한 현실적인 제안을 합니다.

     

    사라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들을 준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자신에게 아들을 주시지 않고 있으니,

    애굽에서 얻은 여종 하갈의 몸을 통해서 자신의 자녀를 얻을까 한다고 아브라함에게 여종 하갈을 후처로 맞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사라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고 여종 하갈은 젊은 처녀이기에 아브라함의 생각에도 사라의 제안이 그럴 듯해 보여서,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생각과 계획 그리고 인간적인 방법을 좇아 그를 취하므로 그의 나이 86세에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한 언약의 자손이 아닌 육에 속한 자손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창16:16)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사라의 몸을 통해서 언약의 후손을 주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는 사라의 몸을 통해서 낳은 아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 난 언약의 씨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갈을 통해서 육체의 자손을 낳은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들의 생각과 방법으로 이룬 결과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각과 방법을 내려 놓기까지 엘리에셀과 조카 롯을 그 마음에서 지워야 했고 또 여종 하갈을 통해서 난 자신의 아들 이스마엘 마저 버려야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아브라함 나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고 14년이 지난 100세에 그의 아내 사라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 낳게 됩니다.

     

    이삭이 젖을 뗄 나이 5세쯤, 아브라함은 이삭이 자기의 후손이 된 것을 너무 기뻐하여 이웃 방백들과 부족장들을 초청하고 자기 가족들과 함께 큰 잔치를 벌입니다.

     

    이 때 이스마엘 나이가 19살이었는데, 어린 이삭을 조롱하고 핍박합니다. 이것을 본 사라는 자신이 하갈을 통해서 얻은 이스마엘이었음에도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으라고 말합니다. (창21:10)

     

    아브라함은 이삭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이스마엘을 언약의 후손이라고 생각해 이스마엘을 마음을 다해서 지극 정성으로 키웠는데, 이삭이 태어나는 일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 이전 창세기 17장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사라가 내년에 낳을 이삭과 언약을 세우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일로 아브라함은 자기의 생각과 방법으로 사람을 취해서 낳은 이스마엘이 언약의 아들이 아닌 것을 깨닫고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삼으려는 마음을 버렸을 때,

    창세기 18장에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이 머물고 있는 그 장막을 찾아와서 내년 이맘때 사라가 아들을 낳을 거라고 말씀을 합니다.

     

    장막 안에서 이 얘기를 듣고 있던 사라가 “90세가 된 할머니가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오”하고 웃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을 한 것임에도, 자기의 신체적인 상태로는 아이를 낳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말씀을 신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라가 웃었기 때문에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그가 웃는다, 웃음’의 뜻인 ‘이삭’으로 짓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에 사로잡혀 엘리에셀을 마음속에 담고 있고 조카 롯을 마음의 상속자로 삼고 있고, 또 자기가 인간적인 방법과 힘으로 낳은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여겨 마음을 쏟고 그를 의존하는 한 하나님의 약속의 씨는 절대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의 육신의 힘, 삶 속에서 만들어진 세상 관념과 사고 방식과 경험들, 이를 바탕으로 짠 계획들이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의 씨가 생겨 날 수 없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일하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에셀과 롯 그리고 이스마엘을 내 생각과 마음속에서 완전히 내쳐버렸을 때, 그제서야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생기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씨인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데,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데 있어 그 일을 방해하고 지체케 했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나중에 깨닫고 이후에는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삶을 보이게됩니다.

     

    육체의 아들을 버렸을 때 언약의 씨,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참 약속의 씨,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언약의 씨가 낳았다고 모든 것이 끝났을까요? 아닙니다.

    그 후 이삭이 젖뗄 때쯤, 육체의 후손인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하고 조롱을 합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마엘을 내쫓아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직도 아브라함에게 많은 어려움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쇠를 단련하기 위해서 뜨거운 용광로나 풀무 속에 그 쇠를 집어넣는 것처럼 아브라함 속에 있는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삶 속에 있는 여러가지 문제와 어려움 속에 그를 집어넣었다가 다시 꺼내는 과정, 곧 그가 삶 속에서 고통과 시련 그리고 실패와 좌절을 겪어 낙심할 때 그를 찾아와 희망과 용기를 주시고 위로하시는 과정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만을 100% 의지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5%, 10%의 불순물들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시련과 문제와 어려움들을 당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축복하고자 하시는 것은 하늘과 땅보다도 더 큰 생명의 씨입니다.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소원이 자신의 후손, 언약의 씨였듯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씨인 그리스도가 우리 삶 속에 함께 내주하시는 것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내주 하기 위해서는 죄에 속한 우리 본성에서 나오는 생각들과 계획들을 다 잘라내 버릴 때 그제서야 하나님의 씨인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너무나 중요한 것은, 하늘의 영적인 일들을 우리가 소유하는 기본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십자가 앞에 굴복하는 삶을 통해서 육적인 것을 다 잘라내는 삶뿐만 아니라 이후에 아브라함에게 아주 어려운 시험이 다가왔던 것처럼, 우리가 육적인 것을 버린 후 다가올 어려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육적인 문제를 해결하니까 아브라함에게 정말 어려운 시험 하나가 또 다가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은 지 18년이 흐른 뒤에, 아브라함 나이 118세, 이삭의 나이 18세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바치라고 합니다. (창세기 22장)

     

     

    사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그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령의 나이였던 아브라함이 자신의 힘으로는 자식을 가질 수 없었을 때에, 약속에 따라 하나님의 권능으로 주신 아들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전적인 권능으로 공급하시고 성취하시는 엘샤다이 하나님에 의해서 그 아들이 자기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그는 아내 사라와 의논하지 않고 곧바로 그 아들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 산으로 3일 길을 걸어갑니다.

     

    이 사건은 인간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육적인 문제를 해결하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간절한 소원이었던 언약의 씨, 아들 이삭을 비로소 주셨습니다.

     

    육적인 문제 곧 자기의 자아, 자기 자신의 생각과 방법들을 모두 버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니까 그제서야 생명의 씨,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이 이에 순종하여 그 아들을 바치므로 그 이삭 한 사람을 통해서 놀라운 축복이 다가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들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이 많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13:16, 창15:5, 창22:17)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늘보다도 더 크고 땅보다도 더 큰 축복을 내려주는데 그의 자손이 하늘에 별들처럼 많게 해 주신다는 겁니다.

     

    여러분들!

    청명한 밤하늘에 헤아릴 수 없는 그 수많은 별들을 보셨습니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그 별들도 다 셀 수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별들도 너무나 많을 것입니다.

     

     

    또 바다의 모래처럼, 땅의 티끌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자손이 많아 질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래는 유대인들을 상징하고 있고 바다는 사탄에 의해 타락한 세상을 의미하고 있으며 티끌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땅에 속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래와 하늘과 그리고 티끌과 바다 얘기를 아브라함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가랴서 8장 20절부터 23절에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타락한 세상 속에, 땅에 속한 자들 속에도 하나님을 따르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의 참 백성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12장 17절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바닷가 모래로 나타내어 이들이 붉은 용과의 전쟁을 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서 이끌어 낸 참 백성들을 바닷가 모래로 상징하고 있는데, 이들은 타락한 세상을 상징하는 바다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며 이들이 붉은 용, 사탄과의 전쟁을 할 것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별들은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존재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별들은 타락한 땅, 세상에 속한 자들과 완전히 구별된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

     

    또 바다는 타락한 세상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의미로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북서쪽에 위치한 해안 성읍, 가버나움을 사역의 중심지로 택하시고 활동하신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 바다에 속한 자들을 주님께서 망대처럼 지켜보고 바다 가운데서 그들과 대치하고 대전쟁을 치르시겠다는 단호한 의미에서 가버나움을 택하여 제자들을 부르시고 갈릴리 사역을 행하신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아마겟돈 전쟁(계 16장 14, 16절)에서 붉은 용 사탄과 그를 따르는 타락한 세상의 모든 악한 자들과 악한 영들과의 마지막 대전쟁이 있을 것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통해서 주신다는 하늘에 있는 모든 별들은 사탄과 그를 따르는 악한 자들과 악한 영들과의 대전쟁에서 싸울 증인들을 특별히 말하고 있으며, 또 장차 새 예루살렘 성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함께 살 자들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은 바다에서부터 분리된 모래의 티끌과 같은 존재들이 모인 곳입니다.

    이 티끌로 만들어진 우리 인간이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보석 같은 존재가 되어서 선과 악의 대전쟁에서 마귀를 대적하여 전쟁을 치르는 그들은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얼마나 장엄한 모습이겠습니까.

     

    스가랴 12장 8절,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는 말씀과 같이

     

    이 뽑힌 자들, 마지막 인침을 받은 자들, 거듭난 자들, 기드온의 삼백용사와 같은 십사만 사천 명의 강하고 용맹한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 삼백용사는 열두지파에서 뽑힌 자들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명은 한 지파 당 삼백명씩 열두지파를 모두 합하면 삼천육백명이 나오고 이에 숫자 사십을 곱하면 산출되는 숫자입니다.

     

    여기서 사십이라는 숫자는 예수님과 같은 고난과 고통이 있는 삶, 즉 마귀의 시험과 세상의 유혹과 또 죄의 충동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신의 우상으로부터 완전히 떠난 삶을 말하는데,

    이러한 삶을 사는 자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하나 된 자들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인의 후손은 그리스도를 따라 진리로 하나된 자들, 그 진리 때문에 어떤 비진리나 미혹하는 것들로 결코 넘어질 수 없는 자들을 말하며, 그런 자들이 바로 하나님이 만드시고자 하는 아브라함의 영적인 씨입니다.

     

    이와 같은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들이 하늘의 별들처럼 많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늘의 별들은 땅과 완전히 분리되고 구별된 자들입니다.

     

    마지막 날에 있을 아마겟돈 전쟁에서 사단이 그를 추종하는 악한 영들과 악인들을 모아서,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인 주님의 증거자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이때 말할 수 없는 시험과 핍박과 보통 사람들은 전혀 견딜 수 없는 공격들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오시기 전에 아마겟돈 전쟁이 있을 것인데, 그때 넘어지지 않고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당당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증거하여 하나님의 훼손된 명예와 영광을 회복하는 일을 하는 아브라함의 씨, 그리스도의 증인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굳건히 세워질 것입니다.

     

    그때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이 세워지고 하나님의 계명이 온전히 지켜질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 곧 남은 자들, 인침을 받은 자들, 진리로 인하여 결코 넘어질 수 없는 자들은 사단의 온갖 공격에도 절대 실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전쟁이 있기 전에 이 땅에서 교제의 말씀을 나누고 신앙의 연단과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인침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어떤 자가 인침을 받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만 아시는 일인데, 진리로 완전 무장하여 진리 안에 굳게 서있지 않은 자들은 인침을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이 있을 그 때에 사탄으로부터 권세를 받은 짐승이 나타나 우상에게 경배하게 하고 오른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게 하는 일이 있을 것인데, 인침을 받지 못한 목회자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굴복하고 넘어질 것입니다.

     

    그때 넘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서 이 악한 자들과 벌이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앞장서서 싸울 자들이 바로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된 자들, 하늘나라의 기본 원칙인 계명을 온전히 지키어 하나가 된 자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결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마귀와의 관계를 결코 맺지 않으며 믿음에서 되돌아서는 일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자들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이 말씀 교제를 나누고 기도하는 등, 영적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구약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는 이스라엘의 12지파와 신약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표하는 열두 사도들, 이들은 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임할 새 예루살렘 성을 이루는 대표자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새 예루살렘 성을 존귀한 보석으로 만들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새 예루살렘 성을 묘사하고 있는데, 새 예루살렘 성곽의 기초석에 열두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그 성곽의 열두 대문에는 구약의 이스라엘 열두지파들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두사도들로 대표되는 이들이 하늘의 별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을 하늘의 별들처럼 만든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열두사도 같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온전히 순복한자들로 이루어진 인침을 받은 십사만사천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아마겟돈 전쟁에 앞장서 싸워서 승리한 자들이며 하늘의 별들입니다.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을 통한 연단과정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이라는 언약의 씨를 갖기 위해서 엘리에셀과 롯을 마음에서 제거하고 또 자기가 육체로 낳은 아들 이스마엘을 버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씨 이삭을 자기에게 주심으로 십팔년 동안 자기의 생명과 같은 그 아들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며 마음을 쏟고 사랑했는데, 그런 아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되돌려 달라고 할 때, 순종하여 되돌려줌으로써 하늘의 별들, 모래, 티끌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얘기하고자 한 것은

    하나님이 원래 주셨던 그 아들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순종하여 하나님께 되돌려 드릴 때 비로소 하늘의 별들이 생산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자기 나이 100세에 주셨는데 줄 때는 언제고 또 달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으로 대하여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했다면, 결코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되지 못했을 거라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죽어서 수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아브라함이 이삭 한 사람을 희생시켜서 하늘의 별과 같은 후손들이 수 없이 생겨나서 인침을 받은 숫자가 십사만사천명이나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명의 씨,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나타내는 자, 생명을 드러내고 생명을 표현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드리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삭 한 명으로 그쳤을 것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이 얘기를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아브라함에게 이삭 한 명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고집해서 하나님께 이삭을 드리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은 아비로서 이삭 한 사람만을 소유할 뿐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자기 마음에서 잘라냈을 때, 하나님의 생명의 씨인 이삭이 하나님의 은혜로 만들어진 것처럼, 이번엔 하나님께 주신 이삭을 잘라냈을 때 그의 영적인 후손들이 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모래와 티끌처럼 증가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온전히 모시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온전히 모시는 일이 있어야 구원도 있고 영생도 있고 사랑도 있고 모든 성령님의 열매도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이런 모든 일들이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우리 신앙은 힘없이 무너질 것입니다.

     

    그런데 내 본성적인 생각들과 인간적인 방법들과 계획들을 다 버리면 하나님께서 내 속에 성령님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들어 주십니다.

     

    더 나아가 한 분의 그리스도가 내 몸에서 성장되고 하늘의 별들처럼 온전히 만들어져서 그 영광의 빛이 세상에 비춰지게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그 아들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고 그를 되돌려 달라하신 하나님의 뜻이 의롭고 선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기꺼이 되돌려 드려서, 이삭 한 사람의 희생으로 하늘의 별들과 바다의 모래와 티끌처럼 많은 그의 후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성령님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가 하늘의 별처럼 풍성한 열매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생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 되돌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삭 한 사람이 바다의 모래와 티끌과 같이 많은 후손이 된 것처럼, 그리스도를 온전히 나타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만, 내 안에 임재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하여 그리스도라는 선물이 온 세상에 하늘의 별처럼 증가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씨를 주셨는데, 우리가 한 분 예수님만을 소유한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널리 전파되어 그 씨가 널리 퍼져 번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시대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세상 어느 곳과도 동영상이나 글로 소통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언어를 여러 나라의 말로 번역하여서 인터넷 매체를 이용해서 교제 말씀 글이나 말씀 동영상으로 복음을 전하여 빚과 소금으로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온 세상 앞에 드러내는 것이, 지금 시대에 그리스도의 씨를 하늘의 수없이 많은 별처럼 열매를 맺게 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꿈, 하나님이 우리의 일을 통해서, 하늘소리 선교회를 통해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온 세상 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진리,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그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 여호와 하나님이신 우리의 아버지를 세상에 전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달하지 않으면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씨, 이삭을 줬는데, 그 한 사람만을 자기가 데리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복하여 모리아산 번제단 위에 그 이삭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일을 통해서 그 한 사람의 씨가 죽어져서 수많은 생명의 열매로 발화되도록 해야 합니다.

     

    생명의 씨가 발화가 되어야 합니다. 죽지 않으면 생명의 씨가 발화가 되지 않습니다.

     

    창세기 22장 10절에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내려치려 한 것은 하늘에서 번개불이 내려치고 뒤에 큰 뇌성이 울리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우레가 울리기 전에 먼저 하늘에서 번쩍하고 번개불이 온 세상을 빛으로 비춥니다. 번개가 친 다음 3, 4초 뒤에 커다란 뇌성이 우르르쾅쾅 소리를 냅니다.

     

    아브라함이 번제단 위에 누워 있는 그 생명의 씨, 이삭을 죽이려고 칼을 든 것은 마치 번개가 치고 그 후에 큰 뇌성을 발하므로 하나님께서 생명의 빛을 통해서 아직 잠자고 있는 만물들을 깨우시고, 그래도 일어나지 않는 자들에게 큰 뇌성으로 깨워서 생명의 눈을 뜨게 하는 것입니다.

     

    그 죽어진 이삭을 통해서 많은 생명의 씨들이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씨인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게 된 것입니다.

     

    성령님의 은혜로 그리스도가 나 하나만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온 세상의 생명의 씨가 되어 크게 번성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드려져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나타내지지 않으면, 또 우리가 이 세상에 하나님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대표자가 되지 않으면 우리는 생명의 씨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늘소리 선교회를 확장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 목사님들, 선교사님들, 봉사자님들이 계시다면 우리 하늘소리 선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지금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열명의 봉사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단체에 지금 훈련받고 있는 봉사자들이 네 명 정도가 있는데, 일곱명에서 열명의 봉사자가 채워지면 하늘소리 선교회가 글로벌적인 선교,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째, 사람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연단하여 준비한 사람 또 하나님과 복음을 사랑하는 분은 누구든지 나이에 상관없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시간을 드릴 수 있고 또 마음을 드릴 수 있고 자신의 재능들을 온전히 드릴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공동체 생활을 계획하고 있는데, 교회를 운영을 하여 예배도 같이 드리고 청소년 학교도 운영하기 위해서는 건물과 시설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계산을 해보니 4억원에서 5억원 정도만 있어도 일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4억이나 5억이라는 돈은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조그마한 돈이 될 수 있지만, 지금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사람들도 전혀 없고 이 일을 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금액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캄보디아에 있는 학교 땅을 좀 팔려고 100만 달러 가까이 내놨는데 지금 코로나로 인해서 쉽게 팔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금액에 상관없이 빨리 일을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깨닫고 이 일을 하게 됐을 때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일을 빨리 이루어 성취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꿈에 대한 열망과 우리들의 열심이 합쳐져서 하나가 될 때 그제서야 비로소 우리는 하늘의 별들처럼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리면서 교제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이삭의 출생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예표 (skynews mission) | 작성자 인도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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