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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장 돌아온 탕자 2부 (세가지 비유와 선물들의 의미)말씀 나눔방 2023. 6. 27. 19:54
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할렐루야! 주님 안에서 모두 평안 하셨는지요 오늘은 돌아온탕자에 대한 말씀으로 전편에 이어 2부 교제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누가복음15장말씀을 한번 읽고 세가지 비유에 대한 말씀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5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7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1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11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4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25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은 누가복음 14장1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1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저희가 엿보고 있더라
이러한 말씀이 있고요 또한15장 1절에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하고
4절에서는 첫번째 비유의 말씀인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예수님 곧 목자의 비유 말씀이 나오고요
8절부터는 두 번째 비유의 말씀에서는 잃어버린 동전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세 번째 15장 12절부터 는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아들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는
아버지 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기만하고 조롱하고 업신여기고 옳다 그르다 라는 얘기를 예수님께 함으로 말미암아 그 종교지도자들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 간접적으로 교훈의 말씀을 통해서 이 업신여김을 받는자들 병든자들
그리고 세리와 창기들 죄인들 이라고 지칭받고 있었던 그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옴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하늘에
신령한 복들을 받을수 있는지 와 구원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 이 누가복음 15장의 잃어 버린양의 비유와 잃어버린
동전인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비유와 그리고 집나간 탕자를 맞아들이는 아버지의 비유의 말씀 입니다.
그래서 불평하고 그 죄인들과 함께 예수님이 그들과 친교를 나누고 가까이 하며 오히려 영접하며 그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불평하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이 비유의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이 세가지 비유의 말씀은 단순한 비유의 말씀이 아닙니다.
여러분 저는 과거에 유치장 특수 선교활동을 20년 넘게 하면서 아마 이 세가지 비유의 말씀을 가장 많이 취급을
했던 말씀들 중에 한가지입니다.
그 얘기는 이 세가지 비유의 말씀은 인간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구원을 받으며 그 구원의 끝인 아버지로부터는
어떠한 일이 우리들에게 다가오는지를 알려주시는 아주 깊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먼저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가 나오는 데요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나간 이 목자는 바로 한분 하나님 안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이 인격적으로 계시고
한분 하나님 안에 계셨던 그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이 어떻게 인간 세상에 인간의 마음에 예수님과 성령님에 의해서
구원받은 자들을 어떻게 취급하시고 어떻게 간섭하시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주시는 것이 이 말씀 인 것입니다.
목자로 이렇게 첫 번째 비유로 말씀하신 잃어버린 양 이야기에서 그 목자 되시는 선한 목자는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니 하고 요한 복음 1장 14절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 말씀을 여러분 기억을 하셔야 됩니다.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누가복음 15장4절에 4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라고 이 말씀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누가복음 15장4절부터7절까지는 잃어버린 양에 대한 이야기 인데요 바로 아들 예수그리스도는 원래 신성을 가지시고
이땅에 이세상이라는 황량한 광야속으로 목자로 오셔서 잃어버린 죄인들을 찾아 자신의 집으로 자신의 우리 안으로
우리들을 인도하신다 라는 말씀이 바로 잃어버린 양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비유는 잃어버린 동전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신성이시나 인성으로 오신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에 관한 얘기라면
이 두 번째 이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성령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심하고도 꼼꼼한 그 성령님으로 비유된 이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나라 동전에 보면 10원짜리에는 다보탑이
그려져 있고 50원짜리에는 곡식이 그려져있고 또는 일반 지폐에는 이율곡선생이라든가 신사임당이라든가 세종대왕 이렇게
그 지폐에는 상징적인 그 어떤 존재나 그 때 당시에 가장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는 그런 것들을 새겨서 돈으로 우리들 에게
유통되어지는 것 처럼 이때 당시에 하루 품삯인 드라크마 속에는 왕의 흉상 왕의 얼굴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바로 이 두 번째 어떤 여인이 잃어버린 드라크마 하나를 발견될때까지 아주 세심하게 주의깊게 빛을 비쳐가면서 먼지를
헤쳐가며 빗자루로 그 동전이 발견될때까지 이 동전을 찾듯이 죄인을 찾고 계시는 성령님의 활동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선한 목자가 죄인을 찾는 비유의 이야기 라면 두 번째는 그렇게 해서 찾아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그 잃어버린 죄인이 세상멀리 완전히 벗어 났다가 자기 자신이 그 흉악한 죽음과 사망의 장소에서 벗어나 바로 여인으로 상징된 성령님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죄인들을 찾는 이야기가 누가복음15장 8~10절 말씀입니다.
8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1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그 다음에 세 번째 비유는 누가복음15장11절부터 32절 까지인 이 말씀은 바로 한분 하나님 안에 계신 세분 하나님중
하늘 아버지에 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12절에 보면 아버지로 표현되어진 그 어떤 사람이 집을 나간 방탕한 아들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그리스도에 의해서 멀리서
찾아진바 된 그 사람이 죄인이 여인으로 표현된 성령님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으로 회개하고
돌아온 죄인을 기쁨가운데 맞아 들인다는 말씀이 12~32까지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바로 신성으로 표현된 한분 하나님 안에 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께서는 구원의 과정 단계 단계 마다 죄인을 얼마나
기억하시고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고 그 한분하나님이신 생명의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아들과 그리고
여인으로 표현된 성령님 그리고 아버지로 표현된 하늘 아버지께로 인도하는데 얼마나 얼마나 아들과 성령님과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죄인의 구원을 위해서 친히 활동하시고 간섭하시고 참여하시는 이러한 기가 막힌 비유의 말씀이
누가복음 15장의 3가지 비유의 말씀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3세가지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뭔가 발걸음을 돌려 방향을
재 설정 한 다음에 여인(성령님)의 빛을 비췸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인간의 마음에 채워지는 그런
역사를 통하여 인간이 비록 타락하여 어둠의 상태에 그리고 죄인의 상태에 있을지라도 예수그리스도와 성령님의 기가막힌
활동의 수고와 노력과 간섭에 의해서 구원을 이루는 이런 아들과 성령님과 아버지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이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이 여러분이 깨닫게 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여야 하기 때문에 지금 까지 계속
반복적으로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이세상에 어두움 가운데 죄악 가운데 정말 타락한 상태에 있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신성하고도 영원한 사랑은 선한목자로 대변되고 있는 바로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말할수 없는 따뜻함과
그리고 마치 여인으로 대변된 성령님의 세밀하고도 등불을 비추어 가면서 빗자루로 쓸어가면서 찾을때까지
여러분 포기를 모르는 분이 성령님 이십니다.
절대 그만두는 일이 없으시고 성령님께서는 하나님께 선택된 백성이요 왕과 제사장으로 예정된 그들을 부르셔서 구원을 얻기까지 그러한 과정이 벌어지기까지 세심하게 끝까지 찾고 역사하시고 활동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 왕의 얼굴이 담겨져 있는 드라크마 동전에는 창세기1장26절에 보면은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3)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와 같이 참으로 기가 막힌
협의와 계획과 놀라운 세분 하나님의 회의 속에서 인간을 만드시고 그 하나님의 영광된 모든 특별한 내적 본질의 속성인
거룩함과 의로움과 영광과 생명 하나님 자신의 모든 것을 인간의 영속에 유일한 하나님 과의 접촉 기관인 영에 그것을 부어
담아 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그 드라크마를 볼때는 보물중에 보물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사도바울이 인간은 보물을 담아놓은 질그릇이고 용기라고 설명하고 있는 말씀에 내용이 많이 나오는것 처럼 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4:7)
21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22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찌라도 무슨 말 하리요(로마서9:21~23)
그 성령님께서 잃어버린 동전을 볼때는 왜 잃어버린 동전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끝까지 찾고 정말 말할수 없는
수고와 말할수 없는 활동을 하시며 그 인간의 마음을 소유하고자 하는가 하면요
인간의 심령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진 하나님의 인이 찍혀진 바로 왕의 표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여인으로 표현되고 있는 성령님께서 말할수 없이 세밀하고도 아주 찬찬하게 끝까지 등불을 켜서 집안을 쓸며
빗자루 질을 하면 얼마나 또 먼지가 나겠습니까 그 드라크마를 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와 정성이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포기하심이 없이 끝까지 이렇게 찾으시는 모습은 바로 오늘날 우리를 향한 성령님의 역사가 이렇게 끊임없이
찾고 또 찾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왔을때는 천하보다도 더 귀한 영혼이라고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실족 시키지 말라고
그 영혼에 대한 가치와 존귀함을 알고 절대 실족 시키는 일이있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알고
바로 종교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이런 자들에게 정말 그 한 영혼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고
천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그들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음과 동시에 우리에게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목자되신 예수님 그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 여기저기를 다닌 곳은 눈에 보이는 그런 곳이 아니라
흉악한 골짜기 또는 산짐승들이 우글거리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있는 곳들 호수가에 빠졌는지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졌는지 그런 곳들을 찾아 다니다 보니 그렇게 잃어버린 양을 찾아 다닌 목자는 황량한 사막 가시덤불이 있는곳
그런 곳만 다니다 보니 목자되신 예수님은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온몸이 흉측하게 찢어지고 피가 나고 생명을 지닌 그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되찾기 위한 몸부림으로 온몸이
아~ 말할수 없는 고통과 그 헌신과 봉사 바로 2000년 전에 오신 이 그리스도는 이와 같은 죄인 하나를 구하기
위해 오신 우리의 구원자 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가지 비유를 통해서 구원의 첫 시작은 아들 예수님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고
그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가는 그 시작점에서 성령님으로 진행하여서 아버지 하나님께로 결국은 인도하게 된다는 것이
그 믿음의 과정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과정이 이와 같습니다.
가장 먼저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시작되고 그리고 흉악한 어둠의 장소에서 떠나 등을 돌리고 다른
방향으로 설정된 그 죄인을 그때부터 성령님께서 활동하고 역사하시고 일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께로 인도 한다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세가지 비유의 순서인 것입니다 이순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한 이 비유의 말씀 가운데는
하나님의 구원속에 실제적으로 말씀 하신분이 예수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까 제가 요한복음 1장 14절을 말씀 드렸는데요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셔서 세상가운데로 오신 예수님을 얘기하고 있는 말씀 인데요
먼저 세상가운데 이 신성을 지니신 아들 예수님께서 인성을 지니시고 곧 육체가 되셔서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고
우리와 같은 종의 형체 사람의 모양이 되셔서 바로 우리와 같은 인성을 지니신 것은 잃어버린 죄인들을 죄악된 본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동질의 사람으로 오셔야 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세상가운데 오셔서 말씀 하시는
분이 아들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에 관한 얘기가 가장 먼저 나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질 그 십자가의 그 피는 구속과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몸을 찢고 피 흘려 주시는 이 구속의 문제는 우리 구원의 첫 시작이며 구원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그 아들이신 예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셔서 그 일을 친히 행하신 그분이 바로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구속을 성취한 일이기 때문에
아들 예수님에 대한 얘기를 가장 먼저 다루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이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시고 다시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구원의 기초을 이루시고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자신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신 곧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오게 하는 통로가 되게 해주신것이 십자가의 죽음의 사건이기 때문에 가장먼저 구속의 이 문제를 성취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비유를 가장 먼저 다루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구속의 문제로 하나님의 구원의 기초을 이루신 것이며
그리고 천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귀한 선물인 성령님을 받아 바로 그 성령님을
이땅에 모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 선물로 공급해 주셨습니다.
구원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고 그 위에 성령님의 계속적인 빛의 비춤인 등불을 켜는 일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속에 히브리서4장 의 말씀처럼 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3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이렇듯 성령님께서는 바로 인간의 몸과 혼과 영에 간섭하셔서 인간의 마음 인간의 자아와 생각을 변화시켜 주시고
방향을 설정해 주시고 완전히 근육과 살을 만들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분이 여인으로 표현된 성령님 이신데
누가복음 15장8절에 드라크마를 찾기위해 등불을 켜서 집을 쓸고 라는 표현이 있는 것 처럼 이 쓸다라는 의미는
뭔가를 찾기 위해서는 쓸어야 되는데 하나님의 말씀 곧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께서는 이러한 외형적인
부분 첫째 몸의 부분일수 있죠
사람의 형태적인 것으로 얘기 하자면 예수그리스도는 몸의 부분을 찾기를 원하고 성령님께서는 혼의 부분
하나님 아버지 께서는 영의 부분을 간섭하시기를 역사하시기를 원하시는 데요 이것은 차후에 얘기 하기로 하고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한 목자 되셔서 잃어버린 양을 십자가를 통해서 찾으시는 모습은 바깥부분 이라면 그 다음에 등불을 켜고 집안을 쓸며 찾을때 까지 세심하게 인간의 내면적인 문제를 역사 하심으로 말미암아 일을 이루어 나가시고 계신분은 성령님 이십니다.
그리고 세 번째 비유의 말씀이 누가복음15장11~32 절 까지 쭉 나오고 있는데요
여기에 첫 번째 예수그리스도의 수고와 노력과 정성 그다음 두 번째 여인으로 대변된 이 성령님의 활동은 찾고 찾으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 그 다음 세 번째 사랑이 너무나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곧 천부의 일에 대해서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12절에 보면은 아버지 재산 중에서 나에게 줄 몫을 주세요 라고 하면서
아버지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상속분 분깃 몫 을 달라고 여러분 이것이 무었입니까
여기에 이 분깃이라는 아들이라면 모두가 받을수 있는 상속분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죠 창세기 1장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여러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사랑과 생명입니다,
여러 가지 그 속에 영광도 있구요 빛도 있구요 거룩도 있구요 선하심도 있구요 말할수 없이 많고 어떻게 말로 다
표현 할수 없지만 그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이렇게 표현하자면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원래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그 아들에게 부여 해 주었던 것입니다.
물론 사랑도 가지고 계셨지만 여기에는 죽어가는 자들을 살리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생명이라는 말이
여기에서는 더 부합이 됩니다.
그가 내게 돌아올 분깃을 주옵소서 하는지라 그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누어 주었다 라는 살림은 본래부터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던 것인데 아버지가 나누어준 그 인간의 속에 아버지가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고 그 코에 생기를 (하나님의 숨 하나님의 호홉 하나님의 생명을 )불어 넣어 주신 그 생명을 이 비유에서는 재산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은 누가복음 15장29~30 29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라고 아버지의 살림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을 볼수 있는데 이것은 아버지의 살림이란 원래 아버지가 가지고 계셨던 근원적인 재산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인간의 그 코에 불어 넣어 줌으로 말미암아 인간을 영으로 만드셨다는 얘기입니다.
그 영을 통해서 영이신 하나님과 접촉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의 유일한 접촉 기관이 바로 그 영입니다.
인간의 영이 아담이 범죄하여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훼손되고 파괴되어서 죽어버리게 되었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죽어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3절에 보면은 그후 몇일이 못 되어 하나님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 주셔서 하나님의 형상(하나님의 사랑과 생명 영광 거룩 )을 이 부여해 주신 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모르고 떠나고 하나님을 상실해 버리면 이것 조차도 사라져 버리는 거에요
어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이것이 제거가 되는데 그것을 모르고 마치 자기 것인냥 그것을 취하여서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므로 말미암아 재산을 탕진 해 버립니다.
먼 나라로 갔다 라는 것은 어디를 기점으로 떨러 졌다는 것인가 하면 바로 아버지 집 아버지가 중심입니다 .
아버지가 있는 곳이 아버지 집이고요 그곳으로부터 멀어지면 질수록 어둠의 짙어 지구요
바로 사단 마귀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인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에 3장7~10 보면은
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8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범죄함으로 자기들이 인위적으로 무화가 잎으로 앞가리개를 엮어서 덮었다는 것은
그 덮은 것이 뭐 하루나 이틀 갈까요 그들이 부끄러웠다는 것은 그들이 벌거 벗었다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냐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다는 것을 하나님을 잃어 버렸다는것으로
이말씀이 정말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잘 깨달을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벌거 벗었다 하는 의미는 하나님을 잃어 버렸을때 그리스도를 상실해 버렸을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께서는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 그 가죽옷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1:29)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대변하고 있는 그 가죽을 양 한 마리를 죽였겠죠 피 흘렸겠죠그것을 죽여서 가죽옷을 만든 거에요
그리스도를 상실해서 부끄러워진 것을 덮어 주신거에요 덮개 속죄란 뜻이에요 속죄소가 덮개란 의미입니다.
덮어주었다 하는 의미는 상실된 그리스도을 채워 주었다 라는 의미 인거에요
그리스도가 임재 되었다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벌거 벗어진 아담에 몸을 둘러 준 것이죠
앞 만 가린것이 아니라 전체 적으로 가려준 것입니다.
그 가죽옷 안에 사람이 들어간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는냐 라고 먼저 찾으시는 그분이 찾아 오셔서 만들어 주신 옷이 그 가죽 옷입니다.
이 가죽옷은 그 아담과 하와의 수고나 공로로 만들어진 옷이 아닙니다.
그냥 은혜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것이 하나님의 칭의입니다 .
여러분도 다 죄를 짓지요 그런데요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그 구속의 문제를 믿는 자들이 칭의를 소유하는 거에요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래서 14절에 보면은 그나라 전역에 심한 기근이 들었다 라는
14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그 살림살이를 다 까먹어 버렸죠 그리고 16절에 보면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돼지를 치게 하였다 라고 했는데
그사람은 바로 그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사단의 역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가 돼지를 치게 하였습니다 라고 했는데
레위기11장 7절에 보면 7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돼지를 보세요 여러분 이것저것 아무거나 주워 먹고 자기가 싼 분변위에 않아 있고 그런 그 마귀의 속성과 너무나 닮아 있는 그 돼지를 치게 했다는 것은 바로 이 마귀자신 처럼 그러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사단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명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서 삶을 살면 생명으로부터 빛으로부터 멀리 떠나면 떠날수록 죽음이 가까이 오고
어둠이 가까이 오고 부정한 것이 가까이 오게 되어서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6절에 보면은 쥐엄나무 열매라고 먹고자 했지만 아무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6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그제야 제 정신이 들어서 말하기를 17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라고 말합니다.
돼지를 쭉 치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죠 배고픔을 견디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과 성령님과 천부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끄는 일에 있어서는 단계와 과정이 있는데
처음에 이가 아버지 집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죠
왜냐하면 놀고 먹고 마시고 하는데 푹 빠져 있으니까 아버지가 생각이 날 리가 없죠
그러나 모든 가지고 갔던 재물이 다 떨어지고 배고픔 생명의 문제가 생기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제정신이 번쩍 든것이 무엇일까요 이것이 바로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생명을 보존시키고
유지 시키는것이 바로 양식입니다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생겼구나 라는 마음을 갖게 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성령님의 역사
라는 것입니다.
아까 여인의 비유에서 동전 10개 중에서 하나를 잃어버리면 찾기 위해서 등불을 켜고 쓸며 세심하게 동전이 있을만한
곳을 끝까지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찾는 이것이 여인으로 비유된 성령님의 간섭이라는 것입니다.
이 성령님의 역사 성령님의 활동이 이 말씀의 등불을 통해서 빗자루로 쓰는 일을 통해서 영의 비췸과 살핌의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재난과 시련과 문제와 고통 이 40이라는 숫자속에 감추어져 있는 시련과 고통 때로는 사업에 문제가
생기고 때로는 질병에 문제가 생기고 때로는 자식의 문제가 대두가 되고요 때로는 부부간의 문제 때로는 재난의 문제
때로는 이별의 문제 또는 죽음의 문제 이러한 모든 것들이 성령님께서 그 영에 사람의 마음에 비쳐주고 쓸어서 살피기 위한
활동의 과정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얘기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그 탕자가 17절에 보면 아버지 집이 생각이 났고 그 아버지 집에 있는 품군들이 생각이 났어요 그 품군들은
배고픈 일이 없다는 얘기이죠
그 얘기는 아버지집의 부요함과 아버지집의 행복함 어떤 충만함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전해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아버지집과 아버지 집의 품군들의 풍족함 그리고 과거에 아버지와 함께 할때 아버지가 자기에게 해주었던 일들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라는 (마 3:17)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런 얘기들을 얼마나 많이 했겠어요 그런 일들이 많이 생각이 났겠죠 내것은 다 네것이다 라고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었음을 되내이며 과거에 아버지가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돌이켜 생각하며 추억하게 되는 것이
바로 여인으로 대변되는 성령님의 활동의 찾으심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길게 여러분들에게 하는 것은 이 성령님의 활동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함이며 얼마나 그 잃어버린
동전하나를 찾고자 빗자루로 쓸며 온집안을 먼지를 일으키며 등불을 비쳐가며 눈에 코에 먼지가 얼마나 들어가겠으며
오래된 곰팡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이며 어디에 깊이 박혀 있을까 찾고 또찾고 손이 더러워지고 발이 더러워져가며
이렇게 성령님께서 활동한 결과로 이 탕자가 아버지 집이 생각나고 과거를 추억하게 하며 마음이 변화되고 발걸음을
아버지집으로 방향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변화 되게 하기까지는 성령님의 애씀, 수고, 희생 ,봉사, 노력의 결과로 나타나진 것임을 여러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보면은 18절에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을 소유하신 하나님께서 누구나에게 그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허랑방탕하게 낭비한 죄
선용하지 못하고 낭비한 죄 그것이 얼마나 큰죄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또 19절에 보면은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품군의 하나로 보아 달라했는데 원래 이 탕자는 종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 인간 보다도 더 고귀한 자가 있을까요
천사가 지금 저희 보다는 우월한 존재요 월등한 존재 이지만 천사가 우리를 지극히 존귀한 자로 여기고 생각하는 것은
말씀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육체가 되셔서 우리가운데 장막을 치시고 곧 인자로 오셔서 그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구속 하셨기 때문에 천사 까지도 인간의 몸을 지닌 인간을 더없이 존귀하고 가치있게 보고 있습니다 .
왜냐하면 천사들 조차도 육체를 지니시고 인간의 장막 가운데 펼치셔서 사람의 몸을 입고 사람을 위해서 돌아가신
그 체험과 경험은 사람이 아니면 절대 체험 될수 없고 이해 될수 없고 경험될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천사 조차도 우리를
굉장히 고귀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이것은 원래 아들이었는데 이 집나갔던 탕자의 신분은 품군이 아닙니다 .
이 아버지가 아들로서 여기고 있는 마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영원히 불변하시는
미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다 변하지 않으신다 영원히 변치 않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에요
그런 것이 변하신다면 언제든지 그 환경과 상황과 장소에 따라서 변개가 될수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더 이상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시기에 정해놓은것은 그대로 따라가야 되는것이 하나님의 속성인 것입니다
이 아들이 집을 나갔다가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결심을 하여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일이 생깁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결심이 나타나서 아버지께로 가지만 아버지가 자기를 생각하는것과 자기가 아버지를 생각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로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얼마나 자기 자신을 미천하게 보면은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라는 말을 할수 가 있습니까?
천부께서는 집을나가서 방탕하게 생활하다 돌아온 아들일지라도 아버지의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이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이 탕자는 전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타락한 죄인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집으로 가게 되면은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기 위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부요함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갈 때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이해 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여서 마치 자기가 아버지집에 돌아가면 아버지께 인정받기 위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하여 일 할려고 생각하는
이 품군의 하나로 여기며 보아 주세요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미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크신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부인하고 거스르게 되는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이 원래 가지고 계신 우리들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극진히 생각하시고 그렇게 영원히 기억하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요
모욕이 나를 품군중에 하나로 보소서 라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거리가 먼데 먼저 발견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탕자에게로 막 달려가서 막 껴안고 입을 맞춤니다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여러분 어떻게 아버지가 우연히 창문을 열고 봤을때 20절말씀을 보면 거리가 멀다 라고 나와있죠 이 탕자가 집을 나갈때는
의기 양양하게 많은 재산과 화려한 마차를 타고 종들을 이끌고 나갔겠죠 그러나 집으로 돌아 올때는 거지중에 상거지 그런
거지가 없을 정도로 남루하기 그지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 그를 보고 알아 본자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상거가 먼데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그를 알아보고 측은히 여겼으며 얼마나 그동안에 고생을 했을꼬 라는
측은한 마음을 갖고 집나가서 허랑방탕하게 살았던 하나님의 것을 선용하지 못하고 악용하였던 그 죄인을 맞이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변함없으신 미쁘심과 영원하신 열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아버지가 목을 끌어안고 다정하게 입을 맞추는 이 행동은 아버지의 미쁘심과 아버지의 영원하신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충만하신 기쁨과 영접함 입니까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우리가 돌아 올때에 이러한 말할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 속에 우리를 맞이 해주신다는 것을
이 탕자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몇일 전에 요셉이 받은 3가지 선물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요
인장반지와 세마포옷 과 금사슬 에 대한 얘기 인데요 많은 분들이 이 세가지 선물에 대한 말씀을 듣고서 은혜를 많이
받았노라고 저에게 말씀을 해주신 분들이 많았는데요
혹시 듣지 않으신 분들은 다음 카페에 말씀을 정리해서 올려 놓았으니 다시 한번 읽어 보시기를 권해 드리고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 가장 귀한 선물인 반지와 세마포와 금사슬 목걸이를 받았는데
그것을 바로 가지고 내려오셔서 믿는 자들에게 성령님을 통하여 분배하시고 나누어 주셨다는 것을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여기에 보면은 제일 좋은 옷이라고
22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여러분 제일 좋은 겉옷이 아무거나 그중에서 제일 좋은 옷이 아니라 또 그때 당시에 만들어 놓은 옷이 아니라 이미
그 아들이 집을 나가는 순간부터 만들어진바 되고 지어진바된 옷인 것입니다.
특별한 옷입니다. 특별한때에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이 집을 나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다시 돌아온 이제는 다시는
집을 나가지 않을 그 참 아들을 위해서 이미 준비되고 예비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2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종들에게 어서 빨리 동시 발생적으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이것은 미리부터 옷이 최상품으로
인간에게 더 이상 좋은 옷이 있을수 없는 그러한 옷 제일 좋은 옷이 뭐에요 제가 아까 말씀 드렸죠 아담이 범죄 했을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는냐 했을때 제가 벌거 벗었음으로 부끄러워 숨었나이다 벌거벗은것을 덮어 주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큰 은혜일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은혜가 자신의 수치와 더러움과 죄를 해결해 주는 덮개인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인 것입니다.
여러분 벌거 벗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상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잃어 버리니 벌거 벗어졌음으로 수치가 드러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으로 어린양이 희생 됨으로 말미암아 덮개 어린양의 그 가죽옷 이 만들어 지기까지
그런 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우리에게 제일 좋은 옷은 회개하는 탕자 같은자 우리같은 자 회개하는 죄인을 덮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만족해
하시는 의 이신 아들 그리스도 그 가죽옷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수치와 더러움과 그 두려움을 피하고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당하지 않고 일정기간 유예기간을 가질수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받으시는 아들 예수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레미야33장16절에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여호와 우리의 의라 불린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예루살렘성이 이 이름으로 불리웁니다 그리스도와 예루살렘 성이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와 예루살렘성이 하나 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 예루살렘성 우리 교회가 모여서 전체적인 교회가 됩니다
예레미야23장 6절에도 보면
6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여호와 우리의 의는 신성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가르킵니다.
그러나 그분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이 되어 이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인성으로 이세상에 오셨지만 본래 그분은 하늘에 계셨던 신성안에만 계셨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레미야23장 5절말씀에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여기에서 가지(순)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장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사람의 본성을 입고 오신 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의
인성속에 생명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순이 뭐죠 살아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발아가 되어서 싹이 트고 잎이 나오고 가지가 형성이 되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게 되는 것이잖아요 여러분 그리스도의 인성 속에는 생명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을때 새롭고 신선한 싹이 다윗의 그루터기로부터 나왔다는 것이 이사야16장에
잘 나와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 1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우리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창세기3장15절 말씀을 통해서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이 믿음을 가진고로 하나님께서 칭의를 허락하여 주셔서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신것처럼
여호와 우리의 의는 원래 하늘위에 계셨던 신성을 지니신 분이시나 순으로 생명을 가지시고 신선한 싹으로 다윗의 그루터기로부터 신선한 생명을 가지시고 세상에 오신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의로운 한 순은 예레미야 23장5절 말씀은 인성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름이 나오죠 예레미야33장16절에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이 이름은 다윗의 후손이신 그리스도께서 단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것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천지의 주재 하늘과 땅의 주권자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높으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분이 원래 아담을 창조 하셨구요 노아의 홍수의 심판을 내리신 분이시고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이삭, 야곱,요셉
이 이스라엘12지파를 통한 이스라엘 히브리 민족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여호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우리의 의 이분이 원래는 의로운 한 순 다윗의 그루터기에서 나온 생명을 가지신 인성을 지니신 생명의 소유자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다윗이 주님이라고 불렀던 그분이 바로 인성을 지니신 생명을 가지신 본래 여호와 하나님 이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이 세마포 옷에 대한 얘기를 여러분에게 더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전에 요셉에 3가지 선물 중에 이 옷에 대한
얘기를 깊게 못해 드려서 조금더 깊은 얘기를 해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라는 것은 세마포 옷을 지칭하고 있는데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입으시고 우리가운데 장막을 치심으로 말씀께서 육체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똑같은 본성을 입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하나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하나가 되셔서 우리의 의가 되셨음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22절에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혀라 라고 말씀 하신 것은 이미 만들어진 옷이며 죄인들을 덮는 옷이며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고 만족해 하시는 십자가의 구속을 근거로 하고 기초로한 의이신 아들 예수그리스도
인성으로 오셔서 생명의 순이 되어주신 다윗의 후손으로 그 베들레헴 생명의 떡으로 오셔서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기
위하여 오신 그 안에는 생명의 순이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생명의 순이 억울하게 의로운 자가 불의한 자 처럼 죽음을 당한것을 본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께서 기뻐서 우리를 기쁨으로 영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쁨과 만족을 드릴수도 없으며 감히 설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수고로는 전혀 될 수가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문제로 이 옷이 만들어 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최상품의 제일 좋은 옷은 돌아온 탕자의 더러운 옷을 상대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사야서 64장 6절 말씀 여러분 그리스도의 상실은요 그리스도의 임재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아담이 그리스도의 상실로 말미암아 벌것벗은 것을 오히려 그리스도의 임재가 우리에게 있을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모릅니다.
이것이 이사야서 64장 6절 말씀을 보면요 6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
7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우리로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8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다.
죄악 가운데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이렇듯 죄의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얘기 하고 있고
하나님 앞에 돌아 왔을때 최상품의 제일 좋은 옷이 입혀 진다는 것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2절에 보면은 겉옷을 입힌 다음에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제가 요셉의 세가지 선물 중에서 손에 가락지 얘기를 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의 생명을 기억하고 있고 다시 되돌아가서 영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인으로 인치시는 성령님을 상징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창세기 41장 42에 보면
자기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가락에 끼워 주고 그에게 고운 모시 옷을 입히며 금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었다.
왕이 인장 반지를 빼어서 주었다는 것은 통치자로서 아버지가 주시는 그 인으로 영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인을 쳐 주신다는 말씀으로 지난 시간에 자세하게 말씀 드린바 이것에 대한 설명은 생략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신발에 관한 말씀의 의미는요 여러분 우리가 신발을 신은자와 신지 않은 자가 어떤 산이나 돌밭이나 험한 가시나무
엉겅퀴가 있는 들판이나 그런 곳을 갈 때 신발이 없는 사람들은 굉장히 어려움을 당하고 발이 찢겨지고 피가 나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달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삶으로부터 구별하시고 분별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능력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반지를 끼워주는 것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신분의 표시 이고 이 신발을 신긴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구별시킨다 라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둘다 자유한자 상속자 아들에게 분깃을 받을자 기업을 물려 받을자 에게 주는 표시가 반지를 끼우고 발에는 신발로 치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세요 손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죠 몸에는 옷으로 입혀 치장되어져 있습니다
발에는 신발로 치장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이탕자는 아버지의 사랑이 생각나서 돌아온 회개한자
이기 때문에 그 금목걸이인 금사슬은 이에게 주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이것은 승리한자에게만 주어진다고 지난번에 요셉의 세가지 선물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죠
요셉은 예수님의 예표가 되고 예수님이 그 실체가 되시는데요
예수님께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시고 승천 하셔서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이 반지와
세마포옷과 그리고 금사슬인 목걸이 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받아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통하여 다 나누어 주었는데요 이것이 몸에는 옷으로 입혀 주었는데
옷은 그냥 부끄러움을 가려주는 그리스도의 구속함을 근거로 한 구원에 대한 문제입니다 .
그런데 우리가 예복을 입은 자로서 이제는 하늘보좌 오른편에 앉아 계신 예수그리스도와 천국잔치를 열때는
또 하나의 금으로 수 놓아진 아름다운 신부로서 입는 그 치장된 옷을 입고 들어가야 되는데
이것은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진 옷입니다.
그리고 이 금목걸이 또한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복종하고 준행하는 삶을 사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금사슬이기 때문에 이 탕자는 승리한 자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두가지 옷중에서 첫 번째 옷을 받았습니다.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탕자는 아버지 집에서 함께 어울리고 살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것이 바로 반지와 옷과 신발입니다.
요셉처럼 승리한자 왕이 되어서 통치하고 다스림을 통해서 하나님의 권위를 세상에 나타내는 자가 될 때 우리같이 지금 준비 과정을 거치고 있는 그런 자들이 왕으로서 자격이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금목걸이라는 것을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23절에 보면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이 살진 송아지는 여러분 창세기 15장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통해서 씨에 대한 문제와 땅에 대한 문제를 확증시켜 주는것이15장 9절 말씀인데
그때 3년된 암송아지 얘기가 나옵니다.
이 살진 송아지는 바로 믿는 이들이 온전한 누림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피흘리신 그러한 의로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고 에베소서3장8절은 얘기하고 잇습니다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여러분 그렇습니다. 살진 송아지는 바로 예수님께서 3년 동안의 공생애를 사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의로우신 죽음을 당하신 십자가를 상징하고 있는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 먹는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신령한 축복들 은혜들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 바로 의로우신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누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왔다 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살진 송아지를 잡아 먹자 먹고 즐기자 라고 애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옷은 외형적으로 우리 눈에 보여지는 수치가 드러나지 않고 부끄러움이 나타나지 아니하는 외형적인
문제에 대한 말씀이라면 살진 송아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 출애굽기에서 피를 좌우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고
난 다음에 집안에 들어가서 양고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불에 구워서 먹게 했죠 왜 양고기를 먹게했죠
출애굽한 그들이 이제는 바로의 손으로부터 견고해져야 하고 강해져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양고기를 먹게 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22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그렇듯이 이 살진 송아지로 상징된 송아지를 먹고 즐기자는 얘기는 옷은 외형적인 것을 얘기한 바깥의 구원을 얘기한
것이라면 이 살진 송아지를 먹는다는 것은 우리의 누림을 위한 우리의 생명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우리의 성품을 강건하게 합니다 .
우리의 품성과 형상을 온전하게 건축되어지고 조성되어지게 하는 속(안)의 구원입니다. 이것은 주관적인 구원이에요
아까 의의 옷은 객관적인 보여지는 구원의 옷이라면 그러나 이 살진 송아지를 먹으면 그것이 살로 양식으로 먹어져서 보이지가 않고 바로 배설물로 나오죠 이것은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기 위한 강건한 영양분이 되기 위해서 이것이 살진 송아지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통해서 우리에게 부여해지고 주어지는 이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살이 되고 근육으로 만들어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안이 보여지지않는 속에 구현되는 만들어지고 조성되는 구원에 대한 문제입니다
영양분이 되어야 되요
그러나 옷은 외형적으로 믿는 순간에 주어지는 구원으로 이 구원에는 두가지 방면이 있다는 것을 제가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는 옷으로 표현 되어지는 바깥의 구원 그리고 하나는 주관적인 구원 안이 보이지 아니하는 그러니까 우리가 누림을
위해서는 생명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밤낮 교제를 나누어야 하고요 그래서 교회 생활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생활 선교회 생활을 통해서 서로 교제를 나누는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살진 송아지를 먹는 것입니다.
이것의 중요성을 여러분 잘 모르실거에요
이러한 생활로 우리가 조성이 되어지고 그래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대로 우리가 삶을 영위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좋은 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근거로 기초로 하여서 그 방탕한 아들이 돌아와서 아버지 품에 안기울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마음과 기분을 만족해 하고 기뻐하게 한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문제에 근거했기 때문에
피흘리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그 사건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 것이고 그가 아버지께로 돌아가고자 마음을 먹은 것은
성령님의 등불을 켜고 쓸며 찾기 까지 애쓴 그런 역사와 활동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살진 송아지는 배고품을 채우고 제일 좋은 의의 옷은 수치와 부끄러움을 가려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보는 이나 그 돌아온 탕자나 그 주위에 보는 모든 이들이 그 살진 송아지와 제일 좋은 옷 그리고 반지와 신발을
보면서 함께 기쁨의 잔치에 참여 할 수가 있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24절에 보면은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을 떠난 모든 자들을 죽어 있는 자들로 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잃어버린 자로 보신 것이고 죽어 있는 자로 보신 것입니다
에베소서2장1절과 5절을 보면 잘 나타나 있는데요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여러분 생명되시는 하나님을 떠나 집을 나서는 순간에 우리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죽어있는 자들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으로 다시 돌아 왔어요 하나님의 집에는 누가 계신가요 하나님이 아버지 천부께서 계십니다
그러니까 천부께서 계신 그집으로 들어오는 순간에 아버지를 만나는 순간에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요한 복음 5장 24절 말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2)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골로새서 2장13절에도 이와 같은 말씀이 있는데요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우리들은 죄와 허물로부터 벗어나고 용서함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얘기 입니까
시간이 많이 진행된 관계로 여기서 돌아온 탕자 2부 교제의 시간을 마치고요 3부에서 더 보충적인 설명과 깊이 있는
말씀으로 여러분과 교제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고요 앞으로 제가 신약의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 이 비유의 말씀들을
자세하게 풀어서 여러분들에게 전해 드리려 합니다 위해서 많은 기도 부탁드리고요 여러분들 또한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잘 깨달을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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