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출애굽기 27장/ 성막3부/ 복음의 비밀이신 그리스도의 거룩과 의에 대하여
    말씀 나눔방 2023. 6. 16. 17:45

    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성막의 거룩과 의로움에 대한 2부에 이어서 3부 교제의 말씀 계속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성막을 세마포로 길게 포장해서 하나의 생성된 영역을 조성하셨는걸 보면서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두셨을  때도 거기에 우리가 알 수 없고 헤아려 볼 수 없는 그러한 담장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 전체적으로 성경을 통해서 볼때 이 성막의 뜰은 포장으로 특별히 이렇게 사람 키보다
    높은 그런 높이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집은 특별한 영역이  있는 곳이고 또 경계가 반드시 있다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가르쳐주고자 하는 의미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막 그 자체가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은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는 그리스도 자신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 그 하나님의 성막이 교회로 변천되어 있고 교회 안에  구속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진 무리들이 교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곧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하나님의
    성막이라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단체 집 건물들이 아니라 실제 구속받은 백성들이 영원한 생명의 영이신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받은 자들 그들이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막 하나님의 성전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성막이 하나님을 표현하는 그 성막 자체가 사실은 외형적으로는 그리스도 자신을 예표하고
    있지만 그 성막은 사실은  이 땅 위에서는 그리스도가 거처하는 곳을 예표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한복음2:19)
     
    이 땅 위에 있어서는 그리스도가 거처하는 곳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집은 네 개의 영역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성전을
    표현하고 있는 그리스도이시고 두 번째는 그리스도께서 모세를 통해서 인도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일 것이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성막이  지금의 예수 그리스도가 생애를 사신 후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세우신 교회 
    하나님의 집  지금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고 성도들이 모여진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라는 거죠.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의 예표인 새 예루살렘 성 그 새 예루살렘 성이 이 땅에
    내려와서  하나님과 영원한 거처를 이루고 살게 될 그 새 예루살렘성 이것이 하나님의 성막을 이루고 있는
    우리가 집이라고 얘기하는 그러니까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심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시는데 있다 라는 얘기 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하나님이 거하실 것이고 그 하나님이 거하실 곳에 하나님을 따르는 우리들이
    거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거처이시다.
    그래서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모양대로 지어진 인간과 함께 살기 위한 건축 그분이
    거하시는 처소를 만들기 위해서 지금 이러한 새 언약의 사역을 이루는 것이다 라고 우리가 보면은
    이해하기가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건축물인 하나님의 성막을 짓기 위해서
    창세기 1장과 2장에서부터 건축을 위한 재료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2절 한번 읽어볼까요.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베델리엄은 수지가 굳어져서 진주와 같은 일종이라고 말씀 드렸죠.
     
    창세기2장10절에서부터 보면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로부터 발원된 생명의 강물을 얘기한 다음에
    바로 금과 은과 베델리엄 마노보석을 얘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을 강이 흐르는 동산에 두심으로
    생명나무에서  흐르는 그 생명나무는 또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그 근원으로부터 시작된다고 계시록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왜 그러냐면 창세기 1장과 2장이 성경 말씀의 시작이라면 계시록 끝에가 21장 22장 말씀인데
    여기서도 똑같은 종류의 재료들이 표현되고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계시록21장10절부터 한번 읽어 볼까요
    10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14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15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16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17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18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20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째는 청옥이요 열 둘째는 자수정이라 
    21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22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24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25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26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27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그러니까 땅과 하늘들과 그리고 바다에 사는 짐승들을 만드신 후에 맨 나중에 이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거처를
    만들 당사자인 남자와 여자를 친히 창조하신 다음에  바로 2장에 강이 흐르는 동산에 사람을 두시고  바로 그곳에 금과  진주의 일종인 베델리엄과  마노보석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계시록 지금 읽었던 21장 10절 부터 쭉 있지만 18절 부터 22절 까지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18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20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째는 청옥이요 열 둘째는 자수정이라 
    21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22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어린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 그 자체이고 그 성령 그 자체가 되시는 어린양 안에
    우리가 단체적으로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이루기 위해서
    창세기 2장 12절에 있었던 금과 베델리엄과 호마노 이 호마노는 계시록에 12가지의  보석들이 돼죠
    그리고 12문의 12진주 그리고 금이 창세기에서는 금이에요.
     
    그리고 나중에 진주가 되는 베델리엄 이 말은  뭐냐 하면 완전히 만들어지지 아니한 불완전한 것인데
    계시록 21장 에서는 금이 정금이 되고 베델리엄이 12 진주가 되고 호마노가 12개의 보석으로 구성 되는 거예요.
     
    이게 우리가 성경을 전체적으로 넓은 복음 깊은 복음 높은 복음으로 보지 않으면
    왜 이 창세기 1장 2장에 이 세 종류의 재료가 나오고 그리고 계시록에 이 세 종류의 재료들이 완전하고
    온전하고 완벽한 존재로 만들어지고 조성되어진 새 예루살렘 성전 건축물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성경 창세기 1장 2장 그리고 계시록 끝에21장22장그 처음과 끝 사이에 하나님의 집을 만드는
    건축 과정이 있습니다.이게 성경 전체 얘기입니다.
     
    지금 교회에서 이런 얘기들을 다루고 있는 데가 거의 없어요. 지금 우리는 이렇게 만들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를 게바라 하리라 왜냐하면 돌 그러나 그 돌이 나중에 12 기초석이 되잖아요.
    이게 얼마나 신기 합니까 이건 하나님 참으로 놀라운 능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간절한 꿈이고
    염원이고 소망이신 이 건축을 위한 목적 성취를 위해서 하나님은 이 만물들을 만드신 것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이유는 그 만물 속에 가장 중심인 인간을 통해서 이 건축물을 조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조는 인간을 만들기 전에 모든 만물 들을 창조하신 것은 바로 인간을 두기 위한 곧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건축물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창조의 예비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참 중요한 목적이고 중요한 사역의 목적은 뭐냐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거처 그래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얘기를 하는 자들이 많은데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집이 만들어 진다는 이것에 집중하고 주의하며 관심을 가지고 아주 높게
    깊게 넓게 얘기하는 것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잘못된 아담을 통해서 이루지 못한 그 꿈을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사람을 부르셔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한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예정된 사람들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삭과 야곱은 미리 선택하시고 예정하셨죠.
     
    이런 모든 구속을 위한 구원을 위한 이런 모든 것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특별히 야곱을 통해서 이루신 일은
    하나님의 집을 조성하고 만들고 건축하기 위한 하나님의 염원이 담겨 있는 뒷바라지 했던 하나님의 사역이죠.
    하나님이 뒷바라지를 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그냥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꿈이 있다니까요.
    우리에게만 꿈이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꿈이 있고 꿈은 반드시 자신의 구속된 백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시고  새 언약의 사역을 허락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분배해 주신 그리스도의 영인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영이 없이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처는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 만들어져야 되는 것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전 생애를 복음을 통해서 듣고 깨닫고 이해하여서
    영접하는 순간에 우리가 하나님께 다시 태어나는 거듭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며 거듭나는 삶에서부터
    하나님의 그 집이 하나님의 거처의 건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그러니까 그 거듭난 순간부터 우리가 생애를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고 섬기고 헌신하고 때로는
    또 복음을 전하고 생애를 살면서 주님을 표현하기 위해서 산 모든 그런 삶의 행위들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한 일들의 하나하나의 부분적인 부분들입니다. 우리 삶을 통해서 하나님은 건축의 꿈을 가지시고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만들기 위한 목적을 가지시고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길을 따라가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절대적인 염원이고 절대적인 소망인 하나님의 거처를
    건축하시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신 하나님의 영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역사를 도움받지 않고 힘입지 않고서는 이 일을 절대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만들어질 수가 없어요. 어떻게 시몬이 베드로가 될 수 있고 야곱이 어떻게 이스라엘이 될 수 있느냐
    이것은 하나님의 영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서도 성경에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마치 하나님의 성막에 포장으로
    둘러싸여진 그 안에 바깥뜰 부분이 있고 우리의 집과 똑 같아요. 입구가 있고 집에 들어오면 거실이 있고
    거실 안에 또 침실 방이나 또 내실이 있는 것처럼 성막에도 하나님의 영역이 있고 하나님의 거처가 있는
    것처럼 에덴 동산도 유프라데스 강부터 나일강까지를 경계로 삼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마귀로부터 파괴되고
    훼손되고 잘못된 영역 잘못된 경계가 만들어진 이곳을 자신의 소유인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울타리가 쳐진 성막을 만드셨고 에덴 동산도 그런 의미에서 유프라테스에서부터 나일강에 이르기까지
    경계를 치셨다.
     
    사면이 이쪽은 바다요 저쪽은 광야겠죠. 이쪽은 또 애굽이겠죠. 사방 팔방이 적들로부터 죽음으로부터
    황폐함으로부터 광야는 오른쪽에 있죠. 동쪽의 광야는 황폐함입니다.
    황폐함으로부터 담이 둘러쳐진 겁니다. 애굽이라는 세상으로부터 담이 둘러쳐진 겁니다.
    블레셋이라는 이방의 세계로부터 담이 쳐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역과 자신의 경계를
    만드시기를 아주 좋아하십니다. 그게 교회입니다. 자신의 것 그래서 인을 치시는 거예요.
     
    그래서 계시록에 보면 예루살렘 성전의 성벽도 144규빗 이라고 거기에도 담장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계시록:21: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이렇듯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건축에는 반드시 경계가 있고 그것은 자신의 것임을 분명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경계인 것처럼 하나님의 집을 대변하고 있는 교회 그리고 성도들도 하나님의 것으로 표시하기 위해서 인을
    쳐 주신다는 것을 여러분 기억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세마포 울타리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세마포는 하나님의 의인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7장 9절 말씀 한번 읽어볼까요. 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지니 남쪽을 향하여 뜰 남쪽에 너비가 백
    규빗의 세마포 휘장을 쳐서 그 한 쪽을 당하게 할지니 성막의 바깥뜰은 백규빗이라고 그랬죠 .

    성막의 바깥뜰은 하나님께서는 좀전에 말씀 드렸다시피 하나님의 영역은 구분과 경계를 반드시 나타낸다고
    말씀 드렸죠. 너비가 100규빗이고 폭이 50규빗인걸 보면 직사각형이죠.
    그리고 12~13절을 자세히 보면 서쪽 너비가 50규빗이라고 나오는데
    12 뜰의 옆 곧 서쪽에 너비 쉰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열이요 받침이 열이며
    13 동쪽을 향하여 뜰 동쪽의 너비도 쉰 규빗이 될지며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알수 있냐 하면 아~ 정사각형의 절반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절반은 성막을 통해서 나타났는데 절반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집 하나님의 나라의 건축물의 최종 완결이 바로 새 예루살렘 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그래서 불완전하게 반만 이렇게 전체가 완전한 정사각형이 아니라 그래서 계시록에는
    정사각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죠 직사각형이 아니라 정사각형이라는 것이
    계시록 21장 16절에 한번 보세요. 정사각형입니다.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근데 여기서는 직사각형이에요 왜 달라요 불완전하기 때문에 새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조성되고 변화된
    바뀌어진 그러한 보석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집을 만들 그런 성도들을 통해서 이루어질 일들이기 때문에
    절반만 기록하는 거예요.
     
    하여튼 이 성막을  들어가기 위해서 멀리서 걸으면서 이렇게 바라보게 되면 바깥뜰을 하얀 세마포 포장으로
    둘러 쳐져있는 것을 볼수 있는데 이것이 뭐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외형적인 모습이 라는 것입니다.
    뜰의 포장은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성도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의가 되신다는 겁니다.
    성도들의 단체인  교회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의가 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우리 성도를 통해서
    곧 교회들을 통해서 살아 나타내 지셔서 경계와 영역의 표현이 되신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 고린도전서 1장 30절 한번 읽어 볼까요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그래서 가장 먼저 외형적으로 첫 번째 눈에 띄는 것이 세마포로 상징된 의이구나 그리고 안에 의로 상징된
    세마포와 세마포 휘장을  통과하게 되면 그제서야 비로소 의를 통과한 다음에 나타나는 정금으로 상징된
    거룩함이 있다니까요 그 거룩함은 뭐죠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이지 아니하는 내적으로는 거룩함이 있고 보이는 그 외형적으로는 세마포로 상징된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이고 내적으로는 거룩함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가 알수 있죠. 의와 거룩함을 소유하고 있는 분은 하나님 외에는 이 세상에 없어요.
     
    의는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을 통해서 나타나는 행위들을 통해서 보여지는 것이 그분의 의입니다.
    의가 다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내적인 그러한 하나님의 신성한 품성 그것이 저절로 반사되고
    너무나 강렬하고 너무나 충만하니까 그러니까 보여지는 것이 아주 의지만 그 의 속에 내 영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함 거룩함은 하나님의 본성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본성 의는 하나님의 행위 하나님의 본성과 의는 따로 이질적인 것으로 나타나질수는 없어요
    그 본성 자체가 거울을 통해서 똑같으게 사람이 비춰지듯이 본성이 행위를 통해서 나타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이고 그리고 의 안에 감추어진 것이 바로 하나님 본성이신 거룩함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우리 성도들의 외형적인 표현은 바로 그리스도가 가지신 의를 사람들에게 보여야 되고
    내적인 표현은 하나님을 향한 거룩함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 그 거룩함은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여지지 않는데 반드시 의를 통해서만 그것이 비춰진다니까요. 속일 수가 없어요.
     
    에베소서 4장 24절 한번 읽어 봅시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새사람에 대해서는 우리가 1부에서 얘기했죠.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을 쫓아
    행하는 삶이 새사람이 되는 길이에요. 아주 간단하지만 그게 아주 깊은 복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먼저 무엇을 표현해야 돼요 성막 안에 가장 먼저 보여지는 것이 세마포로 상징된 의잖아요.
    외형적으로 우리는 의를 먼저 표현해야 돼요 그 다음에 거룩함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거꾸로 생각하고 있던가 아니면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따로 구별된 것으로 아니에요 구별된 것이 아닙니다. 의를 통해서 거룩함을 이룰 수 있다 라고 바로 이사야서 5장 16절에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 하나님 자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시는 거예요.
    의가 없는 자는 거룩함도 없는 거예요. 의를 표현하는 자는 거룩함을 가지고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러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놋기둥을 높이 세우셔서 놋기둥이 얼마나 강합니까 왜냐하면 이 하나님의 집
    그리스도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는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지탱하는 힘이 강하다는
    얘기입니다. 왜 이렇게 강할 수 있느냐? 그분이 왜 이렇게 강하고 세상 만물을 다 포함하실 수 있고 모든
    만물을 충만하게 할 수 있는 이러한 지탱하는 힘이 너무나 견고하고 조각목 처럼 강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다름 아닌 그 이유가 하나님께 심판을 받으신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심판 받으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 놋기둥입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여기 출애굽기 27장 11절에도 기둥 얘기가 있고 계속 기둥 얘기가 이렇게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바깥뜰에서 가장 먼저 보여진 것이 하얀 세마포  그리고 긴 휘장 앞에 드리워진 그 세마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번제단과 물두멍을 지나가야 되는데 그 둘 다 놋 으로 만들어 졌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한 자들 하나님 심판의 아래에 있는 자들이 의로우신 휘장 문을 통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 예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첫 번째는 놋이고 그리고 놋을 통과한 다음에 성막 안에 그 세마포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마포 포장이 참으로 깨끗한 순결한  인성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그 고상한 품성 아주 순결한 품성 그런 말할 수 없이 깨끗한 품성이 세상에 살면서도 전혀 죄로 오염되거나 죄를 짓지 아니한 삶을 살 수 있는 그 세마포 포장 하얀 세마포 포장이 그 놋받침 위에 세워진 놋기둥 놋받침입니다. 놋받침 위에 기둥이 서 있죠 세워진 놋 기둥 위에 걸려져있다 라는 것은 포장이 어디에 걸려 있어요? 기둥에 걸려 있죠 기둥은 어디 있어요? 놋받침 위에 다시 한 번요 세마포가 어디에 걸려 있습니까? 여기 계속 가름대와 갈고리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마포는 바로 놋기둥에 의해서 걸려 있고요 놋기둥은 놋받침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놋받침이 강하지 않으면 놋기둥이 세워질 수가 없어요.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없어요. 이것은 하나님의 의가
    이렇게 강하고 충만하고 완전하고 온전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라는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완전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이 놋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니까 예수그리스도를 우리가 얘기할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사전에 인식하고 하나님 심판의
    모든 고통의 요소들이 피의 요소들이 있다 라는 것을 우리가 얘기하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심판의 요소가 너무나 너무나 충만하게 깔려 있다 라는 것을 우리가 인식해야 됩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에는 하나님께 심판받으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다라는
    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분이 내 영과 연합하여 한몸을 이루어서 교회를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고자 할 때 우리는 저절로 본의 아니게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되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쉬워요.
     
    심판받은 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을 때는 그리스도만 모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가 목마르다 하면서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받고  고통을 참으시면서 생명을 산출하기 위해서 죽음을 내 놓으신 그분의 심판의 모든
    것들이 그 그리스도라는 이름 안에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분이 놋받침이 되고 기둥이 되어서 세마포 의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세마포 휘장이 바람이 불고 광야의 센 바람 눈보라치고 얼마나 강한 바람이 불어옵니까?
    그때 약하면 그냥 다 허물어져요. 모든 것이 그냥 다 훼손되고 망가지고 부서지고 그런데 그것이 정말
    조금의 어떤 훼손도 없이 온전하게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온전한 하나님의 의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의 집의 영역인 하나님의 표현이라니까요.
     
    그런데 출애굽기 27장10절에 보면 계속 은 얘기가 나옵니다.
    놋 얘기가 나오다가 뒤에 보면 은 얘기가 나오는 데요
    10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11 그 북쪽에도 너비가 백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기둥의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갈고리와 가름대를 은으로 하라고 나오죠 또 출애굽기 38장 17절을 한번 읽어볼까요.
    기둥 받침은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요 기둥 머리 싸개는 은이며 뜰의 모든 기둥에
    은 가름대를 꿰었으며   이 은이 뭐냐 그러니까 아까 창세기 2장 12절에 베델리엄 얘기가 나오죠
    베델리엄이 죄를 범하기 전에는 이게 진주의 일종으로 이렇게 나타났지만 이것이 죄를 범한 후에는
    불순물이 빠져야 되고 연단 되어져야 됩니다.
     
    이 은을 함유하고 있는 그 광석을 풀무불에 넣어서 최고의 일정한 고열로 올리면 은만 산출이 됩니다.
    동글동글 뭉칠때 빨리 부어야지 그 시기를 놓쳐버리면 은이 완전히 없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한 눈 팔면 안됩니다. 몇 시간을 그 은의 불순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다 거기서 잠시 잠깐 한 눈을
    팔게 되면 지금까지의 모든 수고가 수포로 돌아가고 은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한눈 팔지 말고 잘 지키고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계속 계속 이렇게 지켜 보시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기둥 머리에 은을 입혔는데 이 은은 뭐예요. 백성의 속죄를 위해서 그들에게서 모은 것이에요.
    아까 놋이 뭐로 만들어졌다고 했죠. 원망과 불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불의한 마음을 가진 250명의
    두령들의 향로로 만든 것이 놋이라고 그랬잖아요.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마찬가지로 이 은은 백성들의 속죄를 위해서 그들에게서 모은 것으로 출애굽기38장25절과 28절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25:계수된 회중이 드린 은은 성소의 세겔로 백 달란트와 천칠백칠십오 세겔이니
    28:천칠백칠십오 세겔로 기둥 갈고리를 만들고 기둥 머리를 싸고 기둥 가름대를 만들었으
     
    이 은 얘기가 걔속 나오는데요 여러분 가룟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에 팔았죠? 은 30냥이죠
    출애굽기 30장11절부터 16절까지 좀 길지만 한번 읽어보죠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진주나 은 이런 의미를 알아야 계시록에 있는 그런 얘기들을 이해하고
    우리가 신앙의 길을 좀 더 정말 견고한 삶의 길로 이렇게 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1
    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를 세어 인구를 조사할 때에, 그들은 각자 자기
    목숨 값으로 속전을 주에게 바쳐야 한다. 그래야만 인구를 조사할 때에, 그들에게 재앙이 미치지 않을 것이다.
    13. 인구 조사를 받는 사람은 누구나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내야 한다. 한 세겔은 이십 게라이다. 이 반 세겔은 주에게 올리는 예물이다. 14. 스무 살이 넘은 남자, 곧 인구 조사를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주에게 이 예물을 바쳐야 한다.15. 너희가 목숨 값으로 속전을 주에게 올리는 예물은 반 세겔이다. 부자라고 해서 이보다 더 많이 내거나,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이보다 덜 내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16.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받아 회막 비용으로 쓸 수 있게 내주어라. 나 주는 이것을 너희 목숨 값의 속전으로 여기고, 너희 이스라엘 자손을 기억하여서 지켜 줄 것이다."
     
    지금 여러분들이  이 얘기 듣고 저 얘기 듣고 놋 얘기 듣다 은 얘기 듣다 하고 있는데요.
    이런 은 얘기들을 얘기한 다음에 종합적으로 이렇게 세트를 만들어서 여러분이 노트를 하나로 만들어서
    이해를 하고 인식을 한다면 전체적인 것이 이렇게 깨달아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은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이 은은 그리스도의 구속이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서
    나온 것임을 상징하고 있는 거예요. 원래 보세요. 창세기 2장 12절에 베델리엄이 진주의 일종이지만
    그것은 훼손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은은 정제되어야만 변화되어진 것이 아니라 일부러 조성되어지고 만들어지고 일부러 불순물을 제거해야만 되는 것이 이 은입니다.
     
    원래 광석에서 추출된 것입니다. 의로운 심판으로부터 나온 것을 상징하고 있다니까요.
    그리스도의 구속 은이 만들어지는 것이 불순물이 다 빠지고 나쁜 찌꺼기들이 다 제거되고 은이 축출된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의해서 나온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과하셨기 때문에 기둥위에 은을 입혔다라고
    출애굽기38장17절에 나오잖아요 기둥 받침은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요
    기둥 머리 싸개는 은이며 뜰의 모든 기둥에 은 가름대를 꿰었으며
    이 기둥 머리가 면류관인 영광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통과했기 때문이에요.
     
    은이 만들어진 것은 불순물이 뜨거운 그 고열에 의해서 풀무불에 달궈진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은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것처럼 그리스도의 구속이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에 의해서 나옴으로 말미암아
    면류관이 영광을 상징하게 된 것이 기둥 머리가 은으로 만들어 졌다는 거에요.
     
    기둥의 갈고리 또한 은으로 만들어 졌는데 그 의미는 뭐예요.
    붙드는 능력 영원하게 잡는 휘지 않는 능력을 갖추고 있잖아요. 그리고 가름대는 뭐죠? 연결하는 가름대
    갈고리와 기둥을 이렇게 세워놓고 연결하기 위한 가름대 이것은 힘을 상징해요 이 모든 것들이 은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갈고리는 붙드는 능력을 말하고 있어요 우리가 생명의 영원한 영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게 되면 하나님의 영이신 그분이 우리를 붙드는 능력이 이렇게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

    우리를 연결하는 힘이 세상에서 그 무엇도 우리를 끊어낼 수 없다 라는 가름대를 연결하는 힘을 상징하고 있죠.
    갈고리는 붙드는 능력을 말하고 있어요. 능력과 힘은 달라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의로운 구속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서 나온 것인데 그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속하신 죄에서 해방 하신 노예에서 해방하신 이 구속의 사건은 붙드는 능력과 연결하는 힘이 충만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기둥들과 기둥들을 서로 연결하고 있는데 그리스도 자체이시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단체적인
    우리 성도들 교회들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기둥들이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된 우리들을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거룩함과 연결하여 우리를 서로 연결하는 삶을 하나님 앞에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하나님을 서로가 서로를 그러니까 이 성막의 바깥뜰에 사용된 놋으로 만들어진 재료들과
    하얀 그 세마포 그 재료들을 통해서 특별히 그 놋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 뭐냐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항상 심판 아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신성한 심판을 상징하고 있는 놋
    곧 하나님의 신성한 심판 아래 우리가 무릎 꿇고 통제받고 제어받고 복종한다면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은이다. 은이 그리스도의 구속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를 쫓아 행하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표현과 하나님의 증거인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거룩함과  특별히 여기서는 세로포가 나타나니까 의를 얘기합시다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이 매일의 복종된 삶을 우리가 살게 되면 하나님의 구속인 의를 체험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의와 연결되었다라는 것을 기둥들과 가름대와 갈고리를 통해서 보여준 것처럼 하나님의 표현과 증거인 하나님의 의와 저절로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지탱하는 힘과 그 붙드는 능력이 너무나 강하고 크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구속의 의미를 접촉하고
    경험하고 체험하면 체험할수록 하나님과 우리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를 떼놓을 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깥뜰의 정사각형이 아닌 직사각형이 하나의 절반의 상태로 만들어진 것은 우리가 완전체로
    이 세상에 반쪽으로 아담과 하와가 서로 반 인 것처럼 이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와 우리가 온전한 연합체로
    하나가 되는 삶을 통해서 새 예루살렘 성에서는 전체로서 무리로서 완성이 될 것인데 그제서야 우리는
    직사각형의 거처가 아닌 정사각형의 정 방향의 완전체의 새 예루살렘의 성의 정금과 진주와 12가지 보석들로
    만들어진 그 집 우리들을 통해서 만들어진 그 집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처의 아름다운 집을 짓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께 우리가 하나님의 요구를
    만들어진 존재의 이유를 흡족하게 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래서 이 성막뜰에 대한 것을 이렇게 대충 살펴봤습니다.
     
    그렇습니다. 바깥에서 보여지는 그 세마포 하얀천은 뭐라고 그랬죠 하나님의 를 상징하고 있고
    곧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의이시며 가장 먼저 보여지는 것인데 그 의는 뭐라 했죠? 의는 하나님의 행하심이고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내고 있는 외형적인 표현이라고 했는데 그 하나님의 의를 외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분이 세상에 거처를 삼고 사신 그리스도이시다.
     
    지금은 교회를 통해서 성도들을 통해서 그 하나님의 의인 그리스도는
    우리가 다른 말로  얘기를 한다면 하나님의 표현이다.
    의를 지니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표현 곧 하나님의 그 본성이신 거룩함을 외형적으로 삶의 행하심들을
    통해서 사역들을 통해서 보여준 삶의 길이 의의 길이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의이시구나 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표현이시구나
    무엇을 표현하십니까? 의와 그리고 거룩 의를 통해서 거룩을 볼수 있는 것입니다. 거룩은 우리가 볼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본성을 우리가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의를 통해서 비춰지는 그 삶의 모습들을 통해서 비춤을 통해서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강력한 본성을 들여다보게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건축의 영역이고 경계입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경계된 인을 치고 경계되고 분별되고 구별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신다.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지 않으면 이방 사람들로부터 구별되지 않으면 이방신을 믿는 것으로부터
    구별되지 아니하면 거룩한  날을  지키는 안식일로부터 구별되지 아니하면 (오늘날의 신약시대에서는
    성도들이 예수님안에 누리는 삶이 진정한 안식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자들로 치부되어서
    의를 소유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은연 중에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세마포는 뭘 상징한다고요? 예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는 뭐라고요? 그리스도 자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 의를 우리에게 소유케 하셔서 우리를 의롭게 하신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 전체가 그 얘기예요.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이입니다.
     
    제가 83년 11월 11일에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예 우리는 하나님만의 것입니다.
    의는 우리의 것인 이 그리스도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실 때 그리스도가 소유하신 그 의가 우리 것이 되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건축의 하나님의 집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반사하는 자들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을 절대 표현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 나타낼 수가 없어요. 안 됩니다. 그래서  이 성막에 외형적으로 눈에 가장 먼저 띄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건축의 경계인 세마포인데 세마포는 하나님의 의이고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이 하나님 자신의 건축의 하나님의 집에 경계인
    바로 그리스도 의를 얘기하고 있다 라는 이 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왜 의로움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냐 그리스도의 표현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표현이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표현 이십니다.
    하나님의 표현인 그리스도가 우리안에 부족하기 때문에 반사되어지는 것이 미비한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말씀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깨닫고 인식함으로 말미암아
    그분께서 우리를 얼마나 의롭게 하셨는지를 그 이유를 알아갈 때 우리가 그 의를 우리의 것으로
    소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에 보면 새사람을 이루는것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한번 읽어 볼까요 4장 24절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의 건축물 하나님의 거처가 새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모신 자들이 새사람인데 그리스도의 영을 쫓아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세상에서 보편적으로 말하는 교회 그게 하나님의 집이 아니에요.
    물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처소가 되는 어떤 그런 곳 장소가 없으면 안 되겠죠.
    그런데 새 사람이 하나님의 사실상 집이고 건축물이지 보여지는 외형적인 건물이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새사람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조성되어졌기 때문이에요.
    왜 이 새사람이 된 거죠. 새사람은 이 옛 창조 안에 있었던 아담의 옆구리를 통해서 산출되어진
    모든 사람들은 새 사람이 아니에요. 정죄받아 죽음 아래 놓여진 사람들이죠.
     
    그런데 새사람은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으로 조성되고 변화되고 바뀌어진 그런 자들이 새사람이에요.
    새사람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 안에서 하나님의 품성으로 하나님의 인격으로 달라진 자들이 새로운 사람이에요.
    우리 골로새서 3장 9~10절 읽어 볼까요 하나님의 형상 이게 참 중요합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그러니까 창세기1장 26절에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람을 만들 때만큼은 얼마나 고심을 하고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세 분 하나님이시죠 아버지, 아들, 영 하나님 그분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듭시다.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이라고 했죠?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의 본질인데 근데 하나님 본성은 보여진 것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있다고 했죠 보여지는 것은 의이고 보여지지 아니하는 그분의 품성과 인격은 거룩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형상은 두 가지 이유와 두 가지 표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의와 거룩 입니다.
    그래서 새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들 곧 의와 거룩함을 소유한 자들 그게 새사람입니다.
    다른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원래 상태대로 회복된 자들 창세기 1장 26절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듭시다.
    하신 원래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되돌아 간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세워진 자들은 의와 거룩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의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이 그리스도의 영을 쫓아 사는 자들의 삶을 통해서 보여지고 나타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거처에서  가장 먼저 보여지고 가장 먼저 바깥에서 외형적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뭐라고요? 의입니다.
    번제단과 물두멍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게 함으로 말미암아 의를 소유하게 된 자들이
    접하게 되는 것이 은밀하고 보여지지 아니하는 내밀한 하나님의 거룩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이며 인격입니다.
    그러니까 밖으로는 의가 나타나고 안에 보여지지 아니하는 성소와 지성소 안에서는 거룩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의와 거룩 세마포는 하나님의 의를 상징하고 있다고 그랬죠.
    그러나 성소와 지성소 내부에는 뭐가 있었다고 했죠? 금이 있다고 그랬죠
    순금이 널판들 기구들 모두가 금으로 덮여 있습니다. 금은 뭐예요?
    성경에서 말하는 금은 무엇을 얘기하고 있냐면 하나님의 본성인 거룩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금이에요.
    게시록:21:21절에 성의 길은 맑은 유리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다고 그랬죠 그게 하나님의 거룩이 그렇게
    온전하고 완전하고 충만하다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계시록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하신 분입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예 하나님은 여러 가지 품성을 가지고 계신데
    그중에서 가장 귀한 품성인 거룩함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거룩 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 그 자체이십니다.
    그 거룩한 하나님이 나타내지는 행해지는 역사들 사역들 행하시는 일들이 바로 의입니다.
     
    손으로, 발로, 말로, 생각으로, 머리로 모두 모두 바깥으로 유출되어져서 표현되어지는 것이
    바로 의인데 의는 하나님의 행사에 관계된 것입니다.그러나 거룩은 하나님의 본성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의를 통해서만 보여지고 나타내집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의롭지 않다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본성 그 자체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다 거룩하시고
    하나님이 생각하신 것은 다 거룩하시고 하나님이 행하신 것은 다 거룩하시기 때문에 이것은 거룩 이라는
    것이 바깥으로 유출된 하나님의 행사에 관계된 것이 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다 의롭고
    행동하는 것이 다 의롭고 생각하시는 것도 다 의롭고 모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다 의롭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라고 이렇게 얘기를 한 것이죠.
    하나님의 행사는 다 의롭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는 그리스도께서는 그의와 거룩을
    소유한 그 자체가 되신 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행사는 다 의로운 것입니다. 의가 뭐라고요?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이 바깥으로 유출되어 져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행사에 있어서의 표현이 의이고
    반면에 거룩은 하나님의 본성에 있어서의 표현입니다.
     
    본성은 보이지 않는 내적인 것이라면 의는 바깥에서 보여지는 세마포처럼 세마포가 하나님의 의를 상징하고
    있는데 세마포는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소와 지성소에 있는 내밀한 여러 재료들과 기구들은 바깥에는
    절대 보여지지 않고 들어가야만 보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의를 통해서 들어가야만 하나님의 거룩함을 우리가
    접할 수가 있는데 사람들은 의는 도외시하고 간과하고 거룩함만을 쫓으려 하다 보니까 거룩함을 경험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만져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육체로 오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룩함을 나타나기 위해서 의를 보여주셔야 했기에
    그러니까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는 이 두 가지 하나님의 본성인 거룩함과 하나님의 행사에 있어
    표현인 의로움을 다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의 영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영 그리고 그 그리스도의 영이신 하나님의 영
    곧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들은 이러한 의의 표현이 나와야 된다는 것이고 의의 표현을 통해서
    거룩함의 표현이 드러나져야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바 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막이 세마포와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놋을 통해서 그분의 거룩한 본성을 접할 수 있는
    성소와 지성소로 내밀한 곳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을 통해서 제사장들이 예복을 입은 후에야 바로 그 거룩한
    곳에 들어가 봉사하고 섬길 수 있는 것처럼 우리들은 바로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 심판 아래 있는 의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의 표현인 금이 되어야 됩니다. 그게 성전의 건축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우리는 금이 되어야 됩니다. 우리가 거룩해져야 하나님의 본성인 형상을 되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거룩한 본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속받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의 표현인 금이 되어야 됩니다.
    성소와 지성소에는 놋이나 은은 없습니다. 다 정금이에요. 거룩이에요. 의는 바깥에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삶의 길을 따라 밖으로는
    의의 삶을 살고 안으로는 거룩한 하나님의 본성의 삶 금으로서의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전의
    건축이 정금으로 만들어지는 보석과 진주로 만들어지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보석과 진주가 뭐죠? 진주! 그게 하나님의 구속 그리스도의 구속을 얘기하고 있다고 그랬잖아요.
     
    구속받은 자들이 은으로 만들어진 열두 대문의 그 은이 커다란 진주라고 그랬잖아요.
    모든 것이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해서 그리스도로 끝나는 것입니다.
    세마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 전체를 상징하고 있어요.
    인생 전체가 의롭다는 것입니다. 단편적인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그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막다니
    그때만 의로우셨던 것이 아니라 전체 33년 반 동안의 삶 전체가 그리스도의 인생 삶 전체가 세마포의
    삶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세마포는 어떻게 만들었어요? 곱고 하얗고 꼬인실로 왜 꼬인 실로 만들었죠? 꼬인실이 얼마나 질기고 강해요.
    그것이 연하고 약해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두 줄 세 줄 네 줄로 엮여져서 새끼를 꼬듯이 밧줄을 만들듯이
    그러면 얼마나 질겨집니까 그리스도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 강한 삶이 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표현인 의의 표현을 나타내기 위해서 세마포의 삶을 사신 것처럼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세마포 인생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얼마나 깨끗하고 얼마나 순결하고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곱고 식물로 만들어진 것 중에서 가장 보기에 아마 좋을 것입니다.
     
    지금이야 고운천이 많지만 그때 당시에 문화와 문명이 발달되지 않은 그때는 세마포 보다 더 귀한 천이
    없었을 것입니다.시대가 시대인 만큼 세마포는 그 휘장으로 둘러싸져 있는 전체적인 세마포는 하얗고
    순결하고 백색인 깨끗하고 흠이 없고 점이 없는 결이 없는 고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의 삶이 그렇게 고왔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고운 삶을 살아본 적 있습니까 단 하루라도?저는 간혹가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유치장 선교 다닐 때 복음 성가 중에 이런 내용의 성가가 있었던 것이 기억나는데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아니! 정말 예수님처럼 그렇게 살 수 없을까 단 한 시간이라도 그러기 위해서는 영원한
    생명의 영이되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쫓아 사는 삶이 있을 때에만 우리가 이와 같이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그 외에 하는 것은 다 포장된 것입니다 가짜입니다.
     
    불순물이 있기 때문에 천연적인 삶으로 조성된 그런 것들은 하나님이 받아주시지를 않아요.
    가인과 아벨의 삶에서드린 제물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천연적인 그냥 자기 생각의 뜻대로 드린 제물이었고 아벨은 자기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바라시는 그것대로 했어요. 피를 흘리고 처참하죠, 좀 뭔가 불결하죠,
    뭔가 징그럽죠, 뭔가 역겹죠, 냄새도 났겠죠. 짐승을 죽이기 위해서 또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어요.
     
    그들이 그런 짐승을 자주 죽여봤겠어요. 아마 처음으로 죽여봤었는지도 몰라요.
    얼마나 두렵고 얼마나 무서웠겠어요?그러나  자기는 하기 싫고 자기는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했어요 그것이 다른 제사이며 다른 모양의 절차의 헌물의 드림이라니까요.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고운 삶을 사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요구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구속주이신 그리스도의 삶은 인생 전체의 삶은 세마포 삶입니다.
    그것은 고운 삶이셨습니다 조잡하거나 거칠지 않습니다.
     
    여러분 세마포 지금 그것이 어떤 물질로 만들어진 것인지 모르지만 세마포이니까
    아마도 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것을  만드는 방법을 TV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아주 절차가 까다롭게 말리고 물에 적셔가지고 또 여러 가지 만드는 절차에 따라서 만드는데 나중에보면
    아주 부드러운 아주 연한 실들이 이렇게 줄줄이 만들어져 가지고 그것으로 여러 가지  옷이며 천을 만드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조잡하지 않습니다. 깨끗합니다. 곱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또 다른 서신서엔 잘 안 나타나 있지만
    이러한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를 통해서 자세히 그리스도의 삶을 집중해서 유추해 보면 얼마나 곱고
    얼마나 자상하고 그 막달라 마리아를 대하시는 것을 보세요. 뽕나무 위에 올라간 그 삭개오를 배려하셔서
    그렇게 우러러 경배 받으셔야 될 그분이 우러러 보면서 그를 내려오게 하여서 자기와 똑같은 자로 눈높이를
    맞춤을 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자기의 신붓감으로 배필로 취할 자로 만들기 위해서 그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 수 만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신 그분의 오병이어의 떡을 그들의 배고픔을 위해서 자신의
    살과 피를 갈갈히 갈갈히 찢고 쪼개서 나뉘어져서 그 생명의 양식의 공급을 위해서 자신을  하늘의 것을
    세상에 내려와서 모든 것을 다 나뉘어 주고 돌아가신 이 삶이 얼마나 섬세하고 얼마나 곱고 얼마나 순결하고
    얼마나 자비스러운지 보세요.
     
    세마포 휘장은 하얗기도 하지만 또 섬세하고 깨끗하고 순결하고 거칠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실로 꼬아서 짰어요. 이것을 꼬아서 짠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세마포가 꼬이지 않으면 어떻게 그것이 포장이 될 수 있나요. 휘장이 되려면 꼬아야 됩니다.
    꼬아져야 포장으로 조성되어 질수 있다는 것을 제가 이해했을 때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그게 왜 그렇습니까? 그분은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세상 앞에 고통을 통해서 함부로
    막 다루어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유발시킨 그 죄 때문에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 말할 수 없는 그 심한 고통을 당하면서까지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렇게 십자가의 고통을 보여 주실 뿐만 아니라 생애 전체의 고통의 삶을
    당하신 그런 감람나무에서 추출해진 그 감람나무의 열매를 틀에 넣어져서 쪼개지고 빻아지고 으깨져서
    기름을 유출시키기까지 그렇게 해서 자신의 성품이 하나님의 고운 본성이 어떤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세마포가 그렇게 꼬아서 겹겹으로 짜진 것입니다.
     
    그 고통을 통한 하나님과 사람 앞에 함부로 다루심을 받고 버림받아 가면서 생명을 산출시켜서
    구속을 이루기 위해서 한 그 일 때문에 세마포가 그렇게 꼬아서 짜진 것입니다.
    그 세마포가 꼬아지고 짜졌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통해서 십자가의 고통과 그 다루심과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 그런 모든 것들을 통해서 세마포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인성이 그렇게
    조성되어졌기 때문에 그것이 절대 끊어지지 않고 풀어지지 않고 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마포가 강한 광풍에도 강한 비바람과 눈보라에도 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고통을 통한 하나님의 다루심과 사람들 앞에 함부로 내쳐진 그런 일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인성은 쉽게 끊어지거나 부러지거나 연약하거나 훼손되지 않고 강하면서도 섬세하고 섬세하면서도 질기고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33년 반 동안의 생애를 사시면서 이러한 수많은 세마포 베실과 같이 씨실과 날실로
    엮이고 꼬아져서 세마포로 짜지기까지 수백 수천 가닥가닥 그렇게 엮여진 삶들의 그러한 단계와 과정들과
    그러한 인생의 삶의 시련들을 통해서 다루심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강한 질긴삶 풀어지지 않는 삶을
    삶으로 우리들에게 그 안에 있는 이 성막 바깥뜰이 아닌 안에 있는 자들에게 보호막이 되시고 안전막이 되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삶의 거처의 경계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세마포의 감춰지고 숨겨진 의미입니다.
     
    이 바깥뜰을 두르고 있는 세마포에는 청색이나 홍색이나 자색이나 이런 세 가지 천연색으로 이렇게
    수놓아진 것이 없습니다. 바깥뜰을 두르고 있는 휘장입니다.

    그런데 성막을 덮는 덮개 성막에 덮개가 4개가 있다고 했죠
    거기에는 첫 번째가 세마포이고
    두 번째가 양가죽의 덮개이고
    세 번째가 검은 염소의 가죽이고
    검은 염소는 죄를 상징하고 있죠.
    우리는 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 번째가 바다동물인 물개가죽 덮개입니다.
     
    첫 번째 바깥뜰을 통해서 성소에
    들어가게 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그 성막을 덮는 첫 번째 덮개인 가장 눈에 띄는 안쪽의 내부에서 보여지는 여러 가지 색들로 그룹들이 수놓아진  세마포 앙장(휘장)이 덮여져 있고요.
    그 부분은 출애굽기 26장1절과 출애굽기27장16절에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 한번 읽어 볼까요.
    1 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열 폭의 휘장을 만들지니16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짠 스무 규빗의 휘장이 있게 할지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이며
     
    여러분 혹시 바깥뜰의 세마포 휘장의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아십니까?
    사람 키보다 높을 까요 낮을 까요 한규빗이 45.6cm 라고 하는데 쉽게 50cm 라고 한다면
    출애굽기 27장18절에 보면 뜰의 길이는 백 규빗이요 너비는 쉰 규빗이요 세마포 휘장의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그 받침은 놋이며 높이가 5 규빗이라고 되어 있죠?
     
    그러면 2.5m 정도 나오는데 이세상에 아무리 키가 큰사람 이라도 그 세마포 휘장안을 쳐다 볼 수가 없어요.
    바깥에서는 인성으로 오신 그리스도 그러나 실제는 신성의 본성을 지니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가 없어요.
    알 수가 없죠. 왜 5규빗 이라는 숫자를 썼는냐 물론 2m 50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이 5라는 숫자는 책임을 의미합니다.
     
    이 5라는 숫자는 4에다 1을 더했을때 나오는 숫자인데 여러분 손가락과 발가락이 5개씩 되어있죠.
    10계명이 5개 5개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두 돌판에 기록 돼 있어요. 이것의 의미가 있어요.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책임을 져주시겠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손가락에 하나의 엄지와 네 개의 손가락이 있죠 이 네 개의 손가락을
    하나의 엄지가 감싸쥐지 않으면 힘을 발휘할 수가 없어요. 잡아도 불완전 합니다.
     
    그러나 하나라는 이 엄지가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완전체로 이루어서 온전한 기능을 발휘하고 나타내고
    그 기능을 제대로 보여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4라는 숫자는 피조물의 숫자이고 세상을 상징하고 있기도
    하고 바로 하나님의 숫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책임을 져주신다 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세마포의 포장의 높이가 다섯 규빗으로 이렇게 우리에게 숫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바로 5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책임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마포 포장이 의를 상징하고 있다고 했죠 이 의는 책임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얘기는 뭐예요. 이게 가슴 먹먹한 얘기입니다.
    이 세마포는 의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의는 바로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를 소유하고 계시는 거예요.
    이 말은 하나님이 책임을 질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드려야 할까요.
    의는 1과 4의 높이로 만들어진 다섯이라는 숫자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순결한 세마포가 나타내지는 이 5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책임과 결코
    따로 구별되거나 분리될 수 없다 라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을 질 수 없는 사람이라면 절대 의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책임을 다하기 때문에 의롭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십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에요. 그러면 만약에 바꿔서 내가 사람이 사람의 책임을 다할 때 의롭다고 그러는 거에요.
     
    그 책임은 1 이라는 숫자에 감춰져 있어요. 1이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 분이십니다.
    이 책임은 하나님이나 우리 사람 모두 다에게 있어요.직장에 다니면 상사의 지시에 따라서 일을 해야 됩니다.
    부모로써 자식을 돌봐야 하는 책임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또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다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책임을 다하는 그러한  일들의 반응에 따라서 의롭다라는 것입니다.
     
    책임을 다한다는 말이 그런 의미에서 아! 이 세마포 포장은 하나님의 의로운 집 하나님의 거처를
    조성하는 일에 있어서 첫 번째로 보여지고 표현된 것이 의로움인데 의로운 분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책임을 다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포장은 모든 것을 가려주고, 보호해주고,  챙겨주고, 경계가 되어주고, 영역이 되어주고, 그 포장으로 인한
    모든 것이 그 안에서 안전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서 만물에 대해서 하나님으로서의 창조만 해놓으시고 만약에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에 따른 어떤 유지시키고 보존하고 이러한 일에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하나님의 절대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에 의로울 수가 없다라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입니다. 의로우신 그분은 자신의 책임을 감당하고 그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서
    광야의 거친 들판의 눈보라와 광야의 센 바람과 광풍을 혼자 도맡아 책임을 져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그분이 그런 방패막이가 되고 도피처가 되고 피난처가 되고 반석이 된다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책임을 다하시는 그 하나님의 의를 본받아 책임을 다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따라서
    의로운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의로우신 하나님을 표현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 드리면서
    성막의 의와 거룩에 대해서 3부 말씀의 교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