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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7장/ 성막4부/ 복음의 비밀이신 그리스도의 거룩과 의에 대하여말씀 나눔방 2023. 6. 16. 17:47
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출애굽기 27장 4부 성막_거룩과 의로움
성막의 거룩과 의에 대한 3부에 이어서 4부 교제의 말씀 이어가겠습니다.
단편적으로 성소 안에 있는 등대와 기름과 떡상에 대한 이런 얘기를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전반적으로
조금씩 우리가 깊은 복음으로 한번 터치를 하고 지나가야 이해를 도모하기가 쉽기 때문에 3부에 심판받으신
그리스도 이 성막의 외형적인 세마포 포장과 그리고 바깥뜰에서의 놋받침과 물두멍에 대한 얘기를 조금씩
교제를 나누었는데요.
놋 받침 이라는 강한 희생 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의롭게 해주시는 구속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본성의
표현인 거룩한 장소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영역인 그곳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특별히 심판 받으신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가 번제단을 통과해서 성소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그러니까 놋 받침 이라는 이 놋에 대한 문제는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진노의 심판의 불에 의하여 심판받으신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그 결과로 우리에게 의를 선물해 줄 수가 있었습니다.
그 의는 그냥 우리에게 공급되어지고 우리에게 조성되고 전해진 것이 아니라 고통의 그 심판에 대한 극렬하고
말할 수 없는 육체적인 고통은 둘째 치고 한 번도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 사이는 별개의 것으로 구분되거나
분리되어 질 수 없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그런 일을 경험 하면서 까지 극렬한 심판을 받으신 그 결과물로 인하여 소유하신 그 의를 우리에게 선물해 줄 수 있었던 것이지 그 의가 그냥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의롭게 되는 이것은 하늘을 얻는 것보다 우주를 얻는 것보다 더 큰 하나님의
큰 선물이라는 것을 여러분 깊이 깊이 인식하셔야 합니다.우리가 놋받침을 통해서 이 세마포 포장으로 경계선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 분별되어지고 경계되어진 영역이 외부적인 바깥과 내부의 성막의 영역을 구별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세마포 포장 때문입니다.
이 세마포 포장은 놋받침과 놋기둥에 의해서 갈고리와 가름대에 의해서 지탱하는 힘과 받쳐 주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이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 의와 불의, 거룩함과 거룩하지 않은 이러한 일들로부터 구별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의의 기초가 되시기 때문이며 의는 세상과 구별되게 하고 분별되어지게 하고
하는 것임을 여러분 깊이 인식하시면 좋을것 같습니다.이 세마포 포장은 놋기둥에 의해서 세워졌고 놋기둥은 놋받침 위에 세워졌습니다.
순결하고, 곱고, 깨끗하고, 하얀 이 세마포 포장은 놋받침 위에 세워진 기둥 그리고 놋기둥 위에 쳐진 세마포
포장에 의해서 바깥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이 놋받침 위에 놋기둥이 세워졌고 그 놋기둥 위에
세마포 포장이 쳐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뜻하는 놋 위에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고 보여주고
의미하는 세마포를 우리가 볼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일하게 놋과 세마포를 어디서 볼 수 있냐면 바깥들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바깥뜰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극렬한
진노의 불의 심판을 주님께서 담당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분리되는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극렬한 영적이고도 정신적인 그러한 고통을 경험하는 사건의 결과로 우리가 산출되어진 것이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목마르다 불의 진노의 심판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너무나 너무나 그 고통의 시련과 고난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외마디 외침으로 내가 목마르다라고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극렬한 과정 안에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의를 선물해 줄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의롭게 되기 위해서 의로운 자가 거룩함을 볼 수 있는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늘 있는 삶을 살아야 된다 라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는 어디서 만들어 졌다고 했죠?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만들어 졌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걸 강조하고 싶은데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조성되고 산출되어 지고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놋이라는 겁니다.
놋은 세마포를 지탱할 수 있는 기둥을 만들고 그 기둥위에 세마포가 쳐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마포가 놋으로부터 나왔다라는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마포는 어디서 나왔다고요? 생명이 있는 식물에서 나온거죠. 그런데 그것이 연결 연결되어 있죠.
놋기둥에 의해서 놋기둥은 또 놋받침에 의해서 세워진 것을 보면 놋으로부터 나온 것이 세마포 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얘기는 뭐냐면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분인데 바로 그 그리스도의 의는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 조성되어졌고 만들어졌고 산출되어졌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그러면 하나님의 표현이신 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의를
소유하셔서 우리에게 산출되어져서 열매를 맺게 하셨는데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표현인 그리스도처럼 의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의를 소유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삶을 매일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 매일 매일의 하나 하나의 삶 사람들을 만나고, 생각하고,
말하고, 표현하고, 행동하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정화되어져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연적인 아무 말이나 막 쏟아내게 됩니다.
그래서 가인처럼 천연적인 방법으로 제물을 드리게 되고 사울 왕처럼 하나님의 뜻과는 상반되는
마귀의 일을 돕는 자가 되어서 정말 하나님께 부름 받은 자로서 삶을 살지 못하고 버림받은
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 삶을 사는 자는 어떠한 삶을 살더라도 그 삶이 헛되며 어떠한 것도 어떤 행동도
어떤 생각도 어떤 말도 의로운 말과 의로운 생각과 의로운 행동들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결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놋받침은 하나님께 심판 받으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고 그러기 때문에 바깥뜰 성막 안에 들어갔을 때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은 바로 놋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완전하게 받으셨으므로 그리스도가 되셨고
그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생명이 되셔서 의로움을 전달케 해주실 수 있는 분이 되셨다는 것이지
이 의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것을 그냥 내준 것이 아니라 책임을 져주시기 위하여 고통의 삶을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다 감당하시고 내가 목마르다 라고 말씀하신 한마디 외침 속에 말할 수 없는 주님의 그 고뇌가
생명을 전달해 주기 위한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바람과 꿈이 그 안에 목마르다 하는 그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분이 목말라 하심으로 우리가 갈급함을 해결할 수 있고 생명수를 소유받을 수 있는 놀라운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의의 생명을 소유받고 의로움을 표현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야 될까요.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모두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순물이 빠지지가 않고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고 분별되지 않고 혼합되어져서
아무 말이나 행동을 막할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하고 계획하고 하고자 하는 바램들 목적들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에 의하여 심판을
받아야 심판받으신 그리스도처럼 의로워져서 계명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의 품성인 거룩함과
의로움을 행할 수 있는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의 삶을 통해서 매일의 행동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체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날마다 그분의 법 아래 통제받고 그리스도 아래 제약받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에 의해서 조정받고
영원한 생명의 영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통치받으며 사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받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들이라면 내가 어떠한 얘기를 하고 싶어도 말을 하고 싶어도 함부로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께서 나로 인하여 심판받으신 이유는 내가 함부로 내뱉은 그 불순한 말들 행동들
불의한 일들 나쁜 생각들 이러한 것들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심판받으셨기 때문에 그 심판받으시고 고통당하신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 우리들은 아무 말이나 아무 행동이나 아무 생각을 함부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함부로 말을 한다 라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본래적으로 육신적으로 천연적으로 내뱉고
하는 그것이 바로 의로운 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의 반증인 것입니다.
내가 세상적인 얘기를 하고 싶어도 나의 이 말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나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
고통을 당하셨지 라는 생각을 하면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이란 것이 숨을 한 번 꿀꺽 삼킨 다음에 말을 하려면 어떻게 되죠 숨을 한번 들이마셔야 됩니다.
숨을 마셔야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내뿜은 다음에는 말을 못해요.
숨을 크게 한번 들여 마셔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막 1분 2분간 쏟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의 생명을 소유받아 그 생명을 내뿜게 되면 할 말이 없어집니다.
안에 산소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예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한 생각은 의롭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한 말이나 생각이나 행동은 의롭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모든 삶의 모습들은 의로운 것들입니다.
그리스도가 왜 의롭습니까?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함부로 사람을 조롱합니까 왜 뒤에서 수근덕거립니까 왜 없는 것을 있다라고 얘기하죠.
그것은 내가 지금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은 말이기 때문에 말을 함부로 세상에 쏟아내는 천연적인 말이 되는 겁니다.
함부로 농담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세상의 것들을 얘기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처음에 예수님이 농담도 잘하시고 유머 스럽고 막 그런 분인줄 알았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었던 그분은 그러한 세상 적으로 가미된 그러한 불순물이나 요소들이나 그런한 것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세마포처럼 곱고 순결하고 세밀하고 섬세하고 점이나 흠이나 결함이 없는 분이세요.
생각 자체가 의와 거룩을 소유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것을 십자가를 통해서 의와 거룩을 소유하셨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증거해 주시고 보여주시고 표현해 주신 것이 그 부활의 사건입니다.
그분 자신이 부활이신 것을 부활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죽음이라는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심판을 체험한 자들이 그 다음에 의로워질 수 있고 그 의로움을 통해서 거룩한 영역
거룩한 장소에 발을 딛고 섬기고 봉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심판의 아래 있을 때 그리스도의 통제를 받게 되고 그리스도의 조종을 받게 되고 그리스도의 법안에
제약받기 때문에 말이 자유롭지 않은 겁니다.
그 법이 나를 통제하지 않으면 나는 함부로 아무 얘기나 아무 말이나 막 내뱉을 수가 있어요.
그런 것들이 세상을 불순물로 만들고 더럽게 만들고 냄새나게 만들고 부정하게 만들고 어둡게 만들고
훼손시키고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셔야 됩니다.
그 분이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하신 그리스도이시며 그러함으로 말미암아 의를 소유하여서 우리에게
의를 부여해 주시고 분배해 주신 그리스도의 영이신 영원한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는 삶과
없는 삶은 내가 의로움과 거룩함을 소유한 자냐 아니냐를 분별해 줄 수 있는 시금석이고 잣대입니다.
왜 그분이 우리에게 의를 전달해 줄 수 있고 거룩을 보여줄 수 있고 우리에게 생명과 빛을 전달해 줄 수 있나요.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한 생명이기 때문에 생명을 줄 수가 있었고요
하나님의 심판을 거친 의이기 때문에 의를 선물 해 줄수 있었고요 하나님의 심판을 거친 빛이기 때문에
빛을 선물해 줄 수 있었고요 하나님의 심판을 거쳤기 때문에 거룩이란 것을 우리에게 선물해 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냥 만들어 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놋받침을 체험하는 자들이 되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조각목으로 덮여져 있는 놋받침 제단 위에서
십자가라는 제단 위에서 번제물이 되셔서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 향기가 그 연기가 하나님께 흡족함과 만족함을 드릴 수가 있었고 그 하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바깥뜰 있는 자나 성 안에 있는 제사장들이나 안과 밖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 연기를 보고
평화를 얻을 수 있었고 만족함을 얻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 나의 죄가 해결됐구나 라는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니까요.
그리스도께서 번제단위의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하신 그 현상을 통해서 보고 인간은 평안함을
그리고 하나님은 만족함을 얻었다는 거에요 이게 다릅니다.
인간과 하나님을 동시에 만족함을 드린 것이에요.
하나님을 어떻게 우리가 만족하게 할 수 있어요 때로는 만족함을 보일 수 있겠죠.
그런데 인간과 하나님을 동시에 만족하게 한 것은 그리스도의 놋제단 위에서 심판을 받으신 그리스도 외에는
우리에게 그 일을 선물해 줄 자가 제공해 줄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 번제단에 태워진 번제물의 연기와 냄새를 통해서 하나님은 기쁨으로 만족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올라가는 연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내 죄를 열납받으셔서 다 구속하셨고 제해주시고
사해 주셨구나!할렐루야! 이제는 평안이구나 그래서 이 땅에는 평화 하나님께는 영광 이것이 그리스도
십자가 놋제단 위에서 그 심판의 단계를 거친 그 일이 놋받침을 통해서 체험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이 땅에는 평화가 임한 것입니다.
지금 놋에 대한 얘기를 계속 하고 있는데요 이 십자가 제단이 놋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놋의 의미는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만족함을 인간에게는 평화라는
그래서 땅에는 평화가 하늘에는 영광이 주어졌다라고 이 공관복음서에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은이나 조각목 번제단과 물두멍은 다른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놋으로 만들어졌다라는 것을 통해서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하는 체험이 있지 않으면 의로와 질 수 없다는 것을
제가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매일의 삶에서 그리스도가 받으신 그 심판의 삶을 살아야 된다 라고 말씀을 해 드려도
아! 그래요 하면서 흘려 지나 갈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여러분들이 잘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매일의 삶이야 말로 우리가 의롭게 될 수 있고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뵐 수 있도록
조성된 길이 그 길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제가 계속 여러분에게 강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놋기둥은 아주 지탱하는 힘이 강합니다.
놋 제단도 마찬가지입니다.놋제단은 아카시아 조각목으로 만들어졌다고 그랬죠?
조각목을 덮은 것이 놋으로 만들어진 제단입니다. 이 조각목은 강하고 질긴것을 표현하고 있어요
얼마나 강하고 질긴지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시고 그렇게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하여 심판받으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에게 의와 거룩이 만들어지고 산출이 되어졌다라는
이 의미는 아~ 정말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네 그렇습니다. 놋 받침이나 놋 기둥이나 모두 놋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연결하고 지탱하는
힘과능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고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인성으로서의 그 33년 반 동안의 삶을 십자가를 통하여 온전히 나타내셨는데 그분의 삶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시기까지 한 그 마지막 삶의 결정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의와 거룩을 선물해 주셨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 꼭 기억하셔야 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하고 거룩하게 되는 것은 이게 보통 은혜가 아니구나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아니고서는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여려분이 꼭 알고 계셔야 합니다.
예 받침과 기둥이 뭘로 만들어졌다고요? 놋으로 만들어졌다고 했죠 놋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신 그리스도
받침과 기둥은 다 그리스도 십니다. 받침이 있음으로 기둥이 세워지고요 기둥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마포 포장이 연결되어져서 우리의 피난처 보호막 경계물 영역의 표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어요.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십자가에 죽으실 때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심판 받으신 그리스도십니다. 이게 달라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어서 죽으실 때는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심판받으신 그리스도 이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영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영을 우리에게 선물해 준다 라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연결한 힘이 되시고 지탱해 주시는 힘이 되시고 보호막과 막아주시는 모든 것에 힘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놋받침이 기초이듯이 세워지는 것이 기둥 이듯이 그렇게 세워진 기둥을 통해서 세마포 포장이
연결되어지듯이 이 모든 놋받침과 놋 기둥 그리고 세마포 모든 것은 다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우신 품성이 세마포라면 받침과 기둥 그 자체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으신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심판 받으신 이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주 할 때 의를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심판받으신 그리스도가 오늘 날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 심판 받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실 때 내가 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확실하게 구별하고
알아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의 삶에서 매일의 말들과 행동들에서 날마다 하나님께 심판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심판받아야 그것이 구별되고 분별되고 정화되고 정결해지고 은을 제련하는 것처럼 불순물이빠지고
좋은 그러한 결정체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앞에 심판 받는다면 하나님의 의가 날마다 세워질 것입니다.
그러면 날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이 심판 그리스도께서 받은 심판을 우리도 함께 경험하는 것이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삶이 라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로마서 8장 3~4절을 한번 읽어볼까요.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네 여기에서 육신의 모양을 입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아까 제가 6라는 숫자를 얘기 했었는데요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께 심판받은 육신의 모양을
하나님 앞에 심판받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해야 이 6이라는 숫자가 다른 것으로 조성이 되고 변화가 됩니다.
마치 야곱의 삶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환도뼈를 때림 받음으로 말미암아 탈골이 되고 위골이 되어서
장애를 얻어 달라진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될 수 있었던 것 처럼 그래서 이 성막의 뜰에 있는
받침이 몇 개입니까? 60개입니다. 기둥이 몇 개죠 60개입니다. 왜 60이라는 숫자가 있어요.
이 60이라는 숫자는 천연적인 사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의 심판에 따라서 하나님께
심판받는 육신의 모양을 얘기하고 있어요.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60개의 놋받침과 60개의 놋 기둥이 있는 것입니다.
60이라는 숫자는 세상의 숫자고 사람의 숫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모양을 입은 사람의 모양이 되셨습니다.
사람이 되셔서 하나님에 의해서 심판을 받으셨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육신이라는 하나님께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천연적인 삶의 본질을 가진 육신의 모양을 입은 사람들을 대신한 둘째 아담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끌어안고 육신 안에서 하나님께
온전하고도 완전한 심판을 받으신 겁니다. 우리 때문에 그리스도가 육신의 모양을 가지고 인성을 가지고
인자로 오셔서 육신 안에서 심판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심판받은 그리스도의 결과물에 따라서 생명의 의를 통해 거룩으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제공 해 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휘장이 위에서
부터 아래로 갈라져 쪼개졌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요.
바로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천연적인 본질을
가진 인간이 되시고 인간을 끌어안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육체가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심판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는데 그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은 우리의 육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게 참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의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의 모양을 가지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육체는 심판을 받아야 되는데 왜냐하면 우리 육체가 원래 심판을 받아야 되는데
대신 담당하셔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버림받고 심판받는 일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이 일이 생겨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심판 받으신 것처럼 그 육신 위에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을 그리스도 처럼 체험하는
삶을 갖게 되면 그럼 어떻게 될까요. 성막의 뜰에 놋기둥과 놋받침이 60개라고 했죠 그러면 이 육십이라는
수는 사람의 본질 천연적인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심판받으시고 생명의 영이 되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주로 모시고 살 때
2천년 전에 그리스도의 육신 위에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께서 내 안에 살 때 그분의 말과 그분의 생각과 그분의 계획과 그분의 목적과 그분이 하시는
모든 행동들과 표현들이 우리의 것이 되는것입니다.
여러분 기둥이 없는 받침을 생각할 수 있나요? 또 받침이 없는 기둥을 생각할 수 있나요.
받침도 없고 기둥도 없다 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는 경험을 받지 않은 일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천연적인 의를 행할 수밖에 없는 그냥 아담 과 하와 처럼 첫사람 옛 창조 안에 있는
사람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놋 받침 위에 세워진 그 기둥과 함께 연결되어진 세마포 포장이 둘러져 있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진 삶 변화되고 변형되고 이스라엘처럼 조성된 바뀌어진 삶이 될 수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얘기가 조금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는데 한마디로 말 한다면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께
심판받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냥 우리는 보통 영광만
생각하고 좋은 것만 취사선택해서 보여주고 나타내기를 원하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나쁜 것들을 가져가시고 좋은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그러한 선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고 무섭고
어떤 의미에서는 부정적이고 좀 나쁜 의미로 생각되어지고 보여질 수 있지만 바로 이 은으로 입혀진 갈고리와
가름대를 생각해 보세요. 갈고리와 가름대가 은으로 만들어졌다고 그랬죠
받침과 기둥은 놋으로 만들어졌다고 그랬습니다. 그 기둥 머리는 은으로 만들어졌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정적으로 생각 하는 이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은 사실은 우리에게 의와 거룩을 선물해 주기
위한 놀라운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의 불 내가 목마르다 할 정도로 뜨거운 진노의 심판의 불 때문에 그리스도의 구속이 생겨난 것입니다.그래서 구속은 하나님 심판의 진노의 불 때문에 생겼죠
그렇기 때문에 그 의로운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구속해 주신 그리스도의 그 구원이 우리의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기둥 머리에 은으로 덮여졌다고 그랬죠 그리고 갈고리 갈고리는 힘을 얘기하고 연결하면서
능력을 의미한다고 그랬죠 갈고리와 연결해 주는 가름대는 은으로 만들게 함으로 말미암아 은은 뭐라고 그랬죠?
구속을 상징한다고 그랬잖아요 구속의 힘에 의해 기둥들인 우리가 연결 되어졌다하는 겁니다. 좀 어렵죠
9. 그는 성막 뜰을 두르는 울타리를 만들었는데, 가는 실로 짠 모시 휘장으로 울타리를 둘렀다.
그 남쪽 휘장은 백 자로 하였다.
10. 휘장을 칠 기둥 스무 개와 그 밑받침 스무 개를 놋쇠로 만들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고리를 은으로 만들었다. 11. 북쪽에도 마찬가지로, 백 자가 되는 휘장을 치고, 기둥 스무 개와 밑받침 스무 개를 놋쇠로 만들고,
기둥의 갈고리와 고리를 은으로 만들었다.12. 해 지는 쪽인 서쪽 울타리는 쉰 자가 되는 휘장으로 하고,
기둥 열 개와 밑받침 열 개를 만들었다. 그 기둥의 갈고리와 고리를 은으로 만들었다.
13. 해 뜨는 쪽인 동쪽 울타리도 쉰 자로 하였다.
14. 동쪽의 정문 한쪽에 밑받침 셋을 놓고, 그 위에 기둥 셋을 세운 다음에, 열다섯 자가 되는 휘장을 쳤다.
15. 다른 한쪽에도 밑받침 셋을 놓고서, 그 위에 기둥 셋을 세운 다음에, 열다섯 자가 되는 휘장을 쳤다. 동쪽 울타리에 있는 정문의 양쪽을 이렇게 똑같이 만들었다.
16. 울타리의 사면을 두른 휘장은 모두 가늘게 꼰 모시 실로 짠 것이다.
17. 기둥 밑받침은 놋쇠로 만들었으나, 기둥 갈고리와 고리는 은으로 만들고, 기둥머리 덮개는 은으로 씌웠다.
울타리의 모든 기둥에는 은고리를 달았다. 18. 동쪽 울타리의 정문에 칠 막은, 청색 실과 자주색 실과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모시 실로 수를 놓아 짠 것으로, 그 길이는 스무 자이고, 너비 곧 높이는 뜰의 휘장과 마찬가지로 다섯 자이다.19. 그것을 칠 기둥 네 개와 그 밑받침 네 개를 놋쇠로 만들고, 그 갈고리를 은으로 만들고, 기둥머리 덮개와 고리를 은으로 만들었다. 20. 성막의 말뚝과 울타리 사면에 박을 말뚝은 모두 놋쇠로 만들었다.(출애굽기38장)
기둥들이 뭘로 덮여졌다고 그랬죠 보세요. 좀 전에 출애굽기38 쪽을 쭉 읽었는데 기둥 머리에 은을 입혔다고
했어요. 수없이 많은 기둥들이 세워져서 연결되어져서 세마포 포장이 둘러졌는데 이 기둥들은 사실은 우리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지탱하는 힘이 되시고 강한 연결하는 힘이 되어주셔서 우리를 붙들어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로 만들어진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힘에 의해서 곧 은에 의해서 연결되어 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불순물이 제거됨으로 만들어 진 것이 은이 아닙니까 그래서 그리스도에 의해서 우리가 구속의 힘에
의해서 불순물이 제거되어서 의를 산출하는 세마포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자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모든 것이 제가 얘기하고 있는 이것에 초점이 뭐냐면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으로부터 그리스도의 구속이
나타나셨고 힘이 되고 능력이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체험으로 우리가 경험되어질 때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질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는 생명이 얼마나 강하고 얼마나 질기고 얼마나
생명력이 있고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생명은 우리에게 놀라운 구속을 주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영원한 생명의 영이 되신 그리스도 영 이시라고 말씀 드리는 겁니다.
영원한 생명의 영 그보다 더 좋은 말씀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구속을 받은 자들입니다.
구속을 소유한 자들이에요. 이 구속은 하나님의 의로운 십자가로부터 나온 거예요.
그냥 십자가만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십자가에 진노의 불의 심판을 내리신 하나님을 봐야 됩니다.
그래서 이 구속은 놀라운 능력이 되고 연결하는 힘 지탱해 주는 능력이 되어서 서로서로를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로 연결해 주고 연합해주고 일치시켜주는 놀라운 그런 역할을 해 주는 것이 바로 구속의 사건입니다.
은이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우리는 하나님께 날마다 심판받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우리가 구속을 받을 때 소유 받는 이 생명이 얼마나 강하고 얼마나 능력이 되고 힘이 되는지 이것을
우리가 제대로 소유받고 그리스도의 의를 표현할 때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까 놋기둥 머리는 뭘로 만들어졌다고 그랬죠? 은이라고 그랬죠? 그 기둥머리는 영광을 상징하는데요
구속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낼 때 영광이 보여 지고 표현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의로 삼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의가 먼저 옵니까? 거룩함이 먼저 옵니까?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의가 먼저 보여집니다.
성막 안에 있는 가장 내밀한 곳인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의의 영역을 통과해야
됩니다. 왜냐면 바깥에서 보여지는 세마포 포장을 지나 거기는 홍색 자색 이런 것들이 없죠.
그 안에 들어가서 번제단에 발을 딛는 순간에 바로 보여지는 것이 세마포입니다.
그리고 그 세마포를 지나서 번제단과 물두멍을 지나게 되면 하나님의 성소가 나타나는데
그때부터 금의 세계가 보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인 거룩함을 접촉할 수 있다 라는 얘기죠.
우리는 다 금이 되길 원합니다. 금이 보여지기를 원하고 금으로서 반사되기 원하고 표현하기 원합니다.
그런데 금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될 일이 의를 상징하는 세마포를 가져야 됩니다.
그때 우리가 더 내적인 하나님의 본성인 거룩을 볼 수 있고 거룩이 보일 때 그 하나님을 표현하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에 살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위한 삶으로 대치가 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거룩함이란 의로움을 먼저 우리가 소유한 다음에 거룩함의 길로 갈 수가 있습니다. 거룩함은 바로 뭡니까?
하나님과 연결되어져서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마음껏 나의 하나님을 누리는 것이
그게 거룩함입니다. 거룩함 이 다른게 아니에요.
하나님을 내 안에서 나와 함께 누리는 것 이것이 거룩함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내 안에 하나님을 모심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어서 바깥으로 의를 나타내는 자들이
되어야 됩니다. 바깥에 나타내지는 그 의는 안에 내재 되어 있는 거룩함의 부분적인 표현입니다.
주님을 볼 때 의로운 자다 라는 얘기는 그분이 내안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본성이 존재하고 있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삶을 산 것처럼 바깥에서 보여지는 의의 삶의 표현이 필요하고
또 거룩함을 소유한 자가 돼서 하나님과 연결되고 접촉되는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누리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거룩한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밖으로는 의를 표현하고 안으로는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인 하나님 자신을 마음껏 내 자신
안에서 내 삶 안에서 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아까 성소에 들어갈 때 4개의 기둥이 있다고 말씀 드렸죠 네 개의 받침과 4개의 기둥에서 세 개의 문이
이렇게 조성되어 있는데 세상 모든 곳에서부터 사람들을 향하여 열려져 있는 곳이 바로 성막 안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라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방팔방 이 세상 모든 열방의 모든 사람을 향하여 열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27장 16절을 한번 읽어 볼까요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짠 스무 규빗의
휘장이 있게 할지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이며먼저 순서가 뭐로 돼 있죠? 먼저 첫 번째가 청색실
두번째가 자색실 세 번째가 홍색실이 세가지 실을 따로 분별해서 문을 이렇게 아주 보기에 좋고 화려하고
눈에 띄게 아름답게 꾸며 두었는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영적인 의미가 있겠죠?
청색은요 하늘이 어떤 색입니까 하늘이 바로 청색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마포 곱고 섬세한 실로 짜진 아주 질긴 실 인성이신 예수님의 고운 품성을 나타내고 상징하고 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세마포의 숨어져 있는 짜진 청색 실처럼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속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자란 얘기입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것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자색은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왕으로서 땅에 왕이 되어서 사단의 노예와 종 노릇하여서
사망과 죽음에 처하고 있는 자들을 해방시켜서 대속해 주시고 구속해 주신 구속주가 되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왕의 권한을 가지신 왕권을 상징하고 있는 거에요.
세상은 어둠의 왕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왕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홍색은 예수님의 피가 생각나잖아요.
그 피를 통해서 구속의 일을 해결해 주는 구원자 구속주가 된다 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청색과 자색과 구속하는 홍색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선 하늘에 모든 것을 지니신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땅에 내려오셔서 왕의 권한을 가지고 바로 죄 아래 어둠 아래 죽음 아래 놓여 있는
자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아 자유인 하늘에 속한 자 하늘 나라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오신 분으로서
구속의 일을 하셨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세마포에는 그런 영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냥 청색 자색 홍색 그러면 아무 의미가 없는데 이런 의미를 가졌을 때 아! 십자가에 그래서 달리 셨구나
하늘의 것을 가지고 그 하늘의 왕이신 그분이 땅의 왕이 되어서 땅의 백성들을 사로잡힌 자를 쇠사슬을 끊어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구속의 일을 하신 십자가 사건이 바로 세마포로 이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구나 그래서 이 세마포가 가닥가닥 꼬여서 짜져 있었구나
이것이 얼기설기 그냥 막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날실(세로) 씨실(가로)을 통해서 아주 질서있고
조화롭게 성령님의 특별한 은혜를 통해서 이 세마포가 만들어 졌습니다.
단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이 그와 함께 하였으니 오홀리압은 재능이 있어서 조각하며
또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수 놓은 자더라(출애굽기38:23)
이 가늘게 꼰 세마포가 그 온갖 광야에서의 비바람과 그 먼지바람을 이기기 위해서는 이 세마포 포장이
얼마나 강해야할까요? 바로 이 세마포는 예수님의 고운 품성 순결하고 곱고 세밀하고 세심하고 자상하고
정말 말할 수 없는 자비와 긍휼을 가진 것도 포함하고 있지만 고르고 균형 잡힌 인자로 오신 강한 생명을
가진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가늘게 꼰 세마포로 만들어 졌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강한 생명을 지니신 분 조각목도 강한 생명 세마포도 역시 강하고 질기잖아요
예수님은 강한 생명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강한 생명을 가져야 이길 수 있잖아요.
제가 개들을 키워보니까 오늘 처음으로 밥을 줘봤는데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밥을
그 세 마리 강아지 중에서 한 마리는 죽자 사자 그 밥을 먹고 다른 두 마리는 밥그릇을 갖다 주고 길을 제시
해 줘도 안먹더라구요.
우리는 그리스도를 집요하게 따르고자 하는 닮아 가고자 하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갖고 살 때 그리스도에게서 힘을 공급받을 수 있는 새 언약의 사역을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우리가 도움 받을 수가 있습니다.
수를 예쁘게 놓았다고 그랬죠 그룹들을 수 놓았죠. 얼마나 아름답게 예쁘게 수놓아 졌을까요?
이것은 성령님의 조성하는 역사가 그리스도를 그렇게 아름답게 표현 하신다 라는 얘기예요.
성령님의 조성하는 역사 수를 놓음으로 말미암아 그룹들이 보여지고 있잖아요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수를 놓음으로 말미암아 아름답게 눈에 비춰 지잖아요.
성령님이 조성하는 역사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이렇게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 답게 그리스도와 같이
보여 진다는 얘기입니다. 성령님의 조성하는 역사가 없이는 예수님의 그 강한 생명이나 고운 성품 그리고
균형 잡힌 삶의 모습이나 강한 인성을 지니시고 정의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신 분으로 나타내 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문에는 기둥이 넷이 있고 받침이 넷 출입 장소가 있는 것이다.
이 넷 이라는 숫자를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요. 피조물을 상징하고 사람을 상징하는 이들을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세 분 하나님에 의해서 조성되어져서 지성소의 거룩한 영광의 빛을 비췸 받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가 그 문을 통해서도 이렇게 나타나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바깥뜰과 성소를 거치지 않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언약궤 영광의 시은좌가 있는 영광의 빚이
있는 그곳에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시는 그곳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바깥뜰을 통과해야 하나님의 심판아래 놓여있는 의를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성소에 발을 딛고 거룩한
성소에서 섬기는 자들을 위해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고 비춰주는 빛의 비춤을 따라서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일을 통해서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그곳에 우리가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순서가 체계적으로 이렇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늘 염두에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예 우리를 구원하셔서 천국에 데려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가기 때문에 제가 믿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시는 데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피라는 대가를 치루어서 죽음이라는 것을 내놓고 바꿔치기 하셔서 자유인으로
구속함을 주신 구원의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의 집안으로 곧 지성소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 그곳에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가장 중심 안으로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삶을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라는 이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안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 라는 이 얘기를 많이
수도 없이 매일 매일 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의 집 안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안으로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는 이 일을 하여서 하나님의 거처를 정말 아름답고 강하고
아주 순결하고 정말 흠과 결이 없는 점이 없는 그러한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꿈이요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우리가 옛 창조 안에 삶을 살았던 첫 아담의 옆구리에서 산출되어진 우리가 아담에게서 부터 나와서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졌습니다. 옮겨지기 전에 우리들은 죄인들이었습니다.
이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구속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통과한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롭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제 옛 사람인 아담에게서 나와 새사람의 원조이신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졌고 이제는 우리의 몸 안에서 우리의 영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영이 되시는 그리스도와 나의 영이 하나가 되는 삶과 새 언약의 사역인 그리스도의 영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이 나를 인도하는 삶을 살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 언약의 사역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살기에 적합한 자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사역이 절대적으로 필요
한데요 그 성령님의 사역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삶을 사시고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영이 되신 바로 그 하나님의 영이신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서 지금 이렇게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이 바로 이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복음을 얘기할 때 구원에 대해서 치중하고 구원에 대해서만 얘기하면 아주 낮은 복음입니다. 깊은 복음, 높은 복음, 넓은 복음은 구원받은 우리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어서 어디까지 가야 되는냐면 지성소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곧 하나님의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새 예루살렘성에 12 문 12기초석 12보석들로 조성되어서 새 예루살렘 성 하나님과
우리가 영원이 머물게 될 그 성이 다시 내려오겠죠. 이 땅이 새롭게 창조되겠죠. 예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구원이란 죄로부터 사함받고 용서함받는 일의 차원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집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집 안으로 지성소로 들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구원받는 일입니다.
바깥뜰에서 번제단에서 희생 제물을 드리고 물두멍에서 손을 씻고 발을 씻는 그 일이 진정한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막 바깥뜰에 있었을 때는 구원받지 못한 자로 존재했었으나 그 세마포 포장의 문을 열고 들어와서 바깥뜰에서 희생제물을 드리고 물두멍 에서 손과 발을 씻는 그 일을 행했을 때 우리는 잃어버린 바 되었다가 다시 되찾은 바가 되어서 거기서부터 의로운 삶과 행복한 삶을 살고 거룩한 하나님을 뵙기 위한 성전으로 들어가서 거룩한 영광의 빛이 있는 지성소에까지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요 소망이어야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집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리라 라는 그 성전 안으로 새롭게
헐고 새로운 성전의 주가 되시는 그 분 안으로 우리를 들어와 영접하게 하게 하기 위해서 이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과 영 하나님 을 통해서 이러한 구원의 역사의 놀라운 여러 가지 절차와 과정들을 거치시면서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데 여기에는 많은 수고와 노력과 애씀뿐만이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하나님의
놀라운 진노의 심판의 불까지 경험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의라는 것을 선물 받았다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세 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바로 이 법궤 안에 있는 만나와 그리고 증거판에 있는 십계명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 세 분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들의 염원이고 바램이고
소원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보면은 성막에 사용된 이 재료들은 광물과 식물들과 동물들의 가죽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많은 광물들 중에서 기본적인 재료가 놋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놋은 하나님의 의의 심판을 상징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우리 요한복음 16장8절 한번 읽어 볼까요.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여러분 하나님의 진정한 집의 중심은 어디 있죠 바로 성소를 지나서 구중궁궐의 속에 있는 바로 지성소가
하나님의 집의 중심입니다.그 하나님의 집 중심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바깥뜰에서 하나님에 의한 의의
온전한 심판을 통과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의 문인 놋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계속 제가 강조하는 부분인데요 날마다 날마다 이 삶이
우리에게 재현 되어져야 됩니다.
그 놋 기둥에 세마포장이 쳐져 있지만 뜰의 기본적인 재료가 뭐예요. 놋입니다.
그 성막의 기본적인 재료는 첫 번째 눈에 띄는 것이 놋이에요.
그 놋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통과하심으로 발생되어 진 사건
그리스도께서 심판받으신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바로 이러한 것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기 위해서
그래서 심판을 받으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때 우리는 교만 해 질수 없습니다.
사람 앞에서 내가 높임 받고자 하는 그런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바깥뜰에서 이 세마포 문을 통해서 들어오게 되면 번제단과 물두멍이 보이지만 바깥뜰의 표현은
하나님의 의를 상징한 세마포입니다.
놋과 세마포가 중심적으로 가장 눈에 돋보이는 것인데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내지고 보여지고 표현된다라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오늘도 우리는 심판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을 거예요.
이미 하나님의 심판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다 끝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왜 받습니까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게 되면 우리에게 나타나는 생각과 표현과 말들과
행동들은 육적이며 본래적이고 천연적인 옛 창조 안에 있는 아담에게 속한 천연적인 삶의 모습이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심판을 통과함으로 발생되어지는 표현들이 의이고 거룩 입니다.
의를 나타내고 거룩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날마다 이 심판의 불을 통과해야만 되는데
그것은 내 생각 나의 말 나의 행동 나의 이 모든 것들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그 이유를 되새기고 그와 같은 삶의 고초를 겪게 하신 고통을 당하게 하신 것이 바로 이것 때문에 그런 것이니
이것들을 버리고 죽여야 됩니다. 죽이는 일이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하는 방법입니다.
바로 나 자신을 죽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 휘장이 위에서 부터 아래로 갈라졌는데 그리스도의 육체를 1차적으로는
나타내고 있지만 2차적으로는 들어가고 나오는 제사장들 바로 베드로 선생님이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들의 육체가 쪼개지지 않는 이상 지성소에 절대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광야에서의 삶이 필요하고 광야에서 삶을 통해서 의롭게 된 자는 요단강을 지나 바로
그리스도의 실체이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심판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소유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와 같이 의를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구속은 어디서부터 왔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그리스도께로부터 우리가 구속받은 것인데
하나님의 심판이 없었다면 구속이 있을 수가 없어요. 심판은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은 굉장히 좋은 것이며 아주 긍정적인 것입니다. 아주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심판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구속하는 일이 주어지지 않고 구속하는 일이 없으면
의의 일과 거룩함을 이룰수가 없는데 어떻게 소유가 될 수 있어요.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얘기입니다.
의는 우리가 의롭게 되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맛볼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그리스도의 구속은 바로 번제단에서 놋을 통해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부터 그리스도의 구속이 산출되어졌다 라는 이 얘기를 여러분 잊어버리시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놀라운 우리의 죄로부터 해방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의의 심판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지
그냥 단순하게 죽으심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불에 의해서 타 죽음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목마르다 정말 육체적인 고초를 당해서 목마르다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인 모든 것을 다 포함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모든 것 그 모든 것이 뭐예요? 부정적인 것 어두운 것 불순한 것들 불의한 것들
죄된 것들 그 모든 죄된 것들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심판받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속하셨어요.
그걸 다 없애버려 주셨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새롭게 되는 거예요.
새 사람 새로운 피조물 이건 정말 놀라운 얘기입니다. 정말 할렐루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심판하신 모든 것들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 성에 내린 유황불이 한 두 개
였겠습니까? 수천 수만 수백개 였지 않았을까요 마치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의로운 심판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구속을 가져와서 부정한 것들을 제거해 주시고 부정한 것들
나쁜 것들 어두운 것들 죄의 것들 냄새나는 것들 우리에게 해가 되는 그 모두를 가져 가셨어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53: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라고 말씀 하신 그분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말씀하신 그 자유는 바로 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진 자들이 가지게 되는 구속
죄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없애주시고 풀어 주셔서 제로 상태로 만들어주신 해방과 자유입니다.
모든 나쁜 것들 모든 어두운 것들 부정한 것들 죽게 하는 것들 아픈것들 이런 모든 것들을 구속해 준 사건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그리스도가 있었기 때문이고 의도 마찬가지다 라는 얘기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심판하신 모든 것을 구속하시기 때문에 이 구속은 심판받은 사람을
하나님의 의에 연결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게 참 신기합니다.
심판받은 사람을 하나님에 의에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의의 심판을 모두 담당하시고
받음으로 말미암아 가져가셨기 때문에 우리를 하나님의 의에 연결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가져가시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의 심판 아래 통과받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소유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로를 연결시키고 지탱하는 힘이 되고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시켜서 하나로
짜여지게 한 것입니다. 마치 세마포가 만들어진 것처럼 곱고 가느다란 실이 여러 겹으로 꼬아져서
짜져서 만들어져서 그렇게 강하게 된것 처럼 이 그리스도의 구속은 우리를 의롭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로서 우리를 하나님에
의에 연결시킵니다. 아까 말씀 드렸죠 갈고리와 연결하는 가름대는 은으로 만들라
출애굽기27장 10절 말씀입니다. 10절에 연결이라는 말씀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이 얘기는 뭐냐면 우리를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 아래 그리스도가 놓여 진 사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로 우리를 강하게 끊어지지 않게 연결시켰다는 것입니다. 놀랍죠.
하나님과 우리를 서로 연결시키고 그리고 우리 형제들 우리 교회 여기에는 높고 낮은 것이 없어요.
교회에서는 목사님을 높이 받들고 그러는데 정말 성경에서 얘기하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 안에서 지체된 자들
그리스도의 지체된 자들이어서 같은 자들입니다. 높고 낮은 자들이 어디 있어요.
일의 사역에 따라서 그 높고 낮은 것은 일하기 수월하게 하는 것일 뿐이지 그것을 가지고 권위를 삼고
발판을 삼아서 자기를 높이거나 남을 업신여기거나 이러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 바깥뜰의 세마포와 놋과 문의 모양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놋으로 만들어진 놋제단과 물두멍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인식해야 되고요 그다음에 은으로 만들어진 모든 연결하는 갈고리와 기둥과
연결하는 가름대를 통해서 구속하신 그리스도를 염두에 두어야 되고요
그러함으로 말미암아 이 심판을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일을 통해서 우리를 구속하여 줌으로
우리를 의롭게 해 줬다는 의를 인식해야 하는 이 세 가지를 항상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 심판받으심으로 우리가 구속받아져서 구속받아진 우리를 의롭게 했습니다 .
이 바깥뜰에서는 이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심판과 구속과 의 이것을 이루신 것이 십자가입니다.
다른 게 아니에요. 다른 걸 여기 첨가하거나 그러면 안 됩니다. 제단을 다듬어지지 않은 돌과 흙으로 제단을
만들라고 그랬죠 하체를 보이지 말라고 그랬죠 .그게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가감해서는 안됩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복음은 순결해야 하고 순수해야 합니다.
전체가 놋을 통해서 그때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았을 거예요.
250명의 두령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당하여서 그들이 소유한 향로를 깨뜨려서
만든 것이 바로 제단과 물두멍입니다. 그리고 놋입니다.
그 놋이라는 것을 통해서 그 백성들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을 그들이 보고
굉장히 죄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받침도 놋이고 기둥도 놋이고 말뚝도 놋이고
기구들도 놋이고 제단도 놋이고 물두멍도 놋이고 모든 것이 가는 곳마다 놋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건 하나님의 심판이 가는곳 마다 놓여 있다는 것인데 뭘 의미하고 있죠. 우리의 삶이 그렇다는 거에요.
모든 장소 마다 놋이 놓여 있다는 것은 모든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삶을 살 때 심판이 없는 삶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예 그리스도의 구속이 어디서 나왔다고 했죠? 하나님의 심판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음으로 구속이
산출되어졌다고 그랬죠? 구속이 산출되어지므로 우리에게 결과물로 열매로 나타나 진 것이 의입니다.
의를 가진 자가 그 거룩한 영역인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 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구속은 뭐에 의해 상징된다고 했죠? 기둥위에 덮인 은에 의해서 은이 불순물을 제거하기까지
얼마나 높은 고열과 뜨거움과 때림과 내려침을 당해야 됩니까 ?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해 주기 위하여 은과 같은 그런 제련의 단계를 거치셨다라는 얘기를 지금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기둥 머리들이 다 은으로 입혀졌어요.
모든 것이 구속 받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뭐가 왔죠. 의가 왔잖아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되어지고 구속을 통해서 우리에게 의가 소유된 것처럼
의가 소유되어져서 기둥 머리가 은으로 입혀졌다는 것은 영광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구속받아진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겁니다.
기둥머리들은 영광을 상징하고 있다니까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나온 그리스도의 구속은
우리에게 의를 가져오게 하고 의를 소유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의의 면류관이 되고 자랑이 됩니다.
영광과 자랑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이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 했다는 그 죽음을 연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 그게 의미하는 바가 굉장히 큽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이 은으로 만들어진 이 하나님의 모든 건축의 모든 부분의 가장 마지막 위에 부분에
존재하는 것인데 낮은 부분에 존재하는 것은 놋입니다.
이게 놋과 은이 하나님의 집에 아주 기초가 된다는 것을 은연중에 출애굽기 27장 말씀을 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성소 안에 들어가기 전에 바깥뜰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교제를 나누고 있는데요
먼저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통해서 얘기 해 드렸고요 그다음에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겐 구속이 주어져서 구속을 통해서 올려진 번제물 희생제물인 그 양이 도살되어져서 피를
흘리고 죽어지고 불에 태워지는 일을 통해서 연기로 올라가고 연기가 올라갈 때 하늘에 높이 계신 하나님은
그 연기의 향기로운 냄새를 보고 맡으면서 만족함을 누리게 되고 인간은 올라가는 연기를 통해서 하나님께
저 연기가 올라가서 상달 되어 지는구나 !우리의 죄가 사함 받고 이제 자유로운 자다 라고 평안함을 느끼는
두 가지 모두가 충족되어지는 사건이 제단의 십자가 사건이라는 것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심판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구속이 산출되었고
그리스도의 산출을 통해서 우리에게 의와 거룩의 길을 갈 수 있는 의로움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게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겨진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구속은 무엇이냐 그리스도의 구속 하나님 심판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그리스도가 버림받음으로 심판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없애주신
그래서 그리스도의 구속은 우리에게 자랑이 되고 영광이 된다는 겁니다.
그것을 우리가 모든 천사들이나 만물 앞에 우리가 정말 우러러 봄을 받을 수 있는 우리의 면류관이 되고
지탱하는 힘이 되고 연결되는 힘이 된다라는 것이 그리스도의 구속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이렇게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멸류관이 되고 자랑이 되고
영광이 되어지는 이 일을 갖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이신 그리스도가 기초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광물 중에서 성막을 구성하는 그 재료들이 금과 은과 놋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먼저 놋이 보여집니다. 그다음에 은이 들어옵니다.
그다음에 성소 안에 있는 금이 보여집니다. 놋에 의해서 우리는 바깥뜰 성막전에 들어오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번제단의 놋을 통해서 그 세마포에 이렇게 둘러져 있는 것를 통하여 성소에 들어가게 됩니다.
성소 안에 들어가게 되면 모든 것이 성소뿐만 아니라 지성소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금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구속을 받아 의로운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정금 같은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을 비춰주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자가 되어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바람이고 꿈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마지막에 기구로서 금이 이렇게 재료의 기구로서 만들어진 것은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만 됩니다. 우리의 분깃이 되어야 되고 우리의 재산이 되어야 되고 우리의 누림이 되어야
되고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 됩니다. 왜 금은 신성한 하나님의 본성이니까요.
하나님의 본성이 뭐죠 의와 거룩이죠. 예 그렇습니다.
의와 거룩을 체험함으로 말미암아 금이 되는 그것이 새 예루살렘 성이 모두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죠?
계시록에 보면 정금으로 바뀌어 있잖아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거처로 건축되어지는 일이 된다는 일이
바로 정금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 성막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금입니다.
널판도 금이고 기구들도 금이고 진설 병도 금이고 떡상도 금이고 분양단도 금이고 등대도 금이고
그리고 언약궤도 조각목으로 해서 금으로 덮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성소 안에는 그릇들조차도 금입니다.
그리고 기구가 딱 하나 있는데 법궤인데 법궤도 다 금입니다. 그게 뭐예요. 의는 신성한 본성 뭐예요.
의와 거룩 다른 게 아니닙니다. 어렵지가 않아요. 하나님의 본성을 여러 가지로 생각 할수 있지만 딱 두 개입니다.
의와 거룩 성경은 그래서 의와 거룩함을 쫓으라고 말씀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의를 공급받은 자가 거룩의 삶으로 갈 수 있고 그제서야 하나님의 지성소에 있는 영광의 빛을
비춤받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가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소가 아닙니다. 바깥들은 더더욱 아닙니다.
바깥뜰을 통과한 자는 성소에 들어가고 성소 안에 있는 자는 일정한 단계를 거쳐서 지성소에 드러가는 것이
하나님의 바람이고 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사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받은 구속함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셔서
우리를 의로운 삶의 길로 가게 하여서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기 위한 길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구속받은 후에 우리는 하나님의 본성이신 거룩함의 길로 이끌림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구속함이 얼마나 소중하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불에 의해서 타죽음을 받은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에게 피와 살이 되지 않는 한 이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이 우리의 체험의 경험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놋의 세계를 통과해서 은의 세계로 지나가게 되면 구속함을 받고 반드시 금으로 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본성이신 거룩함의 길로 들어가게 되는데 우리는 거기에 머물러 있어야지 놋의 세계인 바깥뜰에
있어서도 안 되고 또 놋의 세계를 지나 은의 세계인 문 앞에 머물러 있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그 안에서 진정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
끈질김과 집요함과 간절함을 가지고 깊은 구중 궁궐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 시은좌의 보좌에 나아가
그분의 자비와 그분의 긍휼과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빛과 생명을 체험하고 만지고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하나님을 마음껏 누려야 될것입니다.
하나님 그 빛의 세계 그 시은좌 위에 있는 하나님 그 자체의 영광이 빛 그건 바깥뜰에 있는 천연적인
해와 달과 별의 빛이 아닙니다.그리고 성소안에 있는 등대의 빛도 아닙니다. 그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 그 자체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로 하여금 경험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그분과 하나가 되어서 그분의 깊은 사랑과 은혜와 자비와 긍휼을 체험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영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맛보는 의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꿈에 걸맞는 자가 될것입니다.
이것으로 성막 의와 거룩함에 대한 1~4부의 말씀을 모두 마칩니다. 감사합니다.'말씀 나눔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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