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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태복음:1:23/ 임마누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큰 비밀이시다
    말씀 나눔방 2023. 6. 12. 18:40

    f

    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아~ 하나님의 경륜의 마지막 목표는 무엇일까요?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그 어떤 계획을 수행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보여주시고 증거 하시기 위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갈망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이 택한 백성인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고 주님을 경외하면서 주님의 사랑과 생명을 소유하기를 갈망하는 그러한 거듭난

    자들을 바로 하나님께서 얻고 그분의 신성의 요소인 자신의 생명과 본성인 하나님의 속성에 참여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신적인 요소를 소유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신을

    소유하게 하고 그리고 소유하신 그리스도의 씨를 통해서 하나님의 텃밭인 인간의 존재

    안에 신성이신 하나님이 들어와 사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신과 인간이 함께 거하심

    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취하시고자 하시는 원하시고자 하시는 신성한 하나님의

     

    본성 안에서 새로워진 사람 변화된 사람 조성된 사람,소생된 사람, 거듭난 사람, 회복된

    사람, 다시 출생으로 인하여 옛 피조물에서 새 피조물이 되고 옛 사람에서 새 사람이 되고 옛 창조 세계에 속한 자가 새 창조 세계 곧 첫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그러한 모든 자들이

    비천한 몸을 갖고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몸을 가진 자들이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영화로운 몸을 지을 때까지 구속하여서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인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표현하고 하나님을 대표하는 자로 바로 하나님 자신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삶으로 말미암아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영 복합되신 그 영에 의하여 신성한 생명

    에서 영원히 살게 하시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요 의도요 갈망인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 39권 중에서 특별히 욥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욥은 하나님을 찾고자

    하였으나 만나보지 못한 사람으로 귀로만 하나님에 대해서 들었을 뿐인 사람입니다.

    눈으로는 주님을 직접 뵙지 못한 걸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허락된 그런 축복들 외형적인

    환경들 그 많은 재물, 많은 물질, 많은 종들, 많은 자식들 그러한 그 하나님께서 외형적으로 부여해 주시고 허락하신 축복으로 말미암아 만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내려침을 당하기 전까지 고난과 환란을 통하여서 정금 같이 제련되어 나와서

    하나님을 자신의 눈으로 친히 뵙기 전까지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모든

    것으로 말미암아 평안을 누리고 풍요로움을 누리고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만족함을

    누리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 말씀 가운데 나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였습니다.

    왜 나에게 이러한 치심을 통하여 고난과 환란을 나를 왜 이렇게 때리십니까 라는 그러한

    자신의 의로움 가운데 하나님과 다툼이 있다 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내가 눈이 없는 자들에게 눈이 되었고 손발이 없는 자에게 손발이 되었으며 과부에게

     다른 남편이 되어서 그들을 도와주었으며 가난한 자들의 옷과 이불이 되었던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라고 자기 자신의 과거의 삶을 통해서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그 자신이 행한 정직하고 올곧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순전한 삶을 산 그것을

    자신의 옷으로 자신의 도포로 그리고 그 순전함을 자신의 머리에 쓰는 영광의 면류관

    두건으로 자랑하고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내세웠던 것입니다.

     

    욥이 이렇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왜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때리십니까 하나님이 의로우신 하나님이 맞습니까 라고

    자신의 존재를 불분명하게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따졌던 것은 

    귀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귀로만 하나님에 대해서 듣고 실제적으로  자신의 두 눈으로 바로 하나님을 뵙지 못한

    그 이유로 말미암아 자신의 온전함과 자신의 완전함과 자신의 순전함을 내세워 자신의

    의로운 옷으로 그리고 영광의 면류관과 두건으로 앞세워서 하나님이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치리하고 그렇게 행하시는 일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라고 따지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인정하기는 하나 하나님에 대해서 귀로만 들었을 뿐 실제적으로 눈으로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온전하게 완전하게 하나님으로 적셔지고 채워지지 않았던 불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바로 지금 오늘날 시대에 성도들을 예표하고 있는 욥과 같은 자들이 대다수입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위대하심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서 눈으로 성경 말씀을 읽고 설교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대한 복음을 귀로는 들었지만 실제적으로 자기 눈으로 하나님을 뵙는 이런 체험과 경험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체험된 바 되지 않았기에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인정하고 경외하는 마음은 가지나 실제로는 자신의 마음에 참 평안이 없고 하나님이 소유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자신 안의 뭔가 믿고 열심히 교회 활동을 하고 봉사를 하고 많은 기도와 찬양과 물질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마음으로 드리지만 만족함과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자기의 심령이 채워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13~14절에 이 물을 마시는 사람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지만 누구든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원천이 되어 샘 솟아 올라 영원한 생명에 이를 것이다 라고 주님께서 친히 얘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생수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갈증을 참으로 해소해 줄 수 있는 생수 되신 그리스도 자신 곧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런 복합적인 과정과 단계를 거침으로 말미암아 성분과 요소와 본질이 되어 주셔서 진정한 하나님의 생명의 근원이신 생명을 소유 받음으로 말미암아 바로 그 영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이신 그분이 과정을 거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되셔서 그리스도가 된 그분이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채워지고

    적셔지고 만족하게 되고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되는데 그렇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욥처럼 그 어떠한 것이 모두 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소유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참 만족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의 맛을 실제적으로 체험한 바 되지 아니하기 때문에 참 만족이 없었던 것입니다.

     

    욥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참 만족이 없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연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 안에 영접한 바 되어서 우리 안에 거하여 살아계시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연합되지 못하고 결합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따로 내 삶의 방식 따로 이런 방식으로 삶으로 말미암아 연합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참 평안이

    이루어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영 따로 혼 따로 육 따로 이러한 분리된 상태에서의 그 영은 영 하나님을 모시기에 부적합하고 온전히 그분이 역사하고 움직이고 행할 수 있는 일을

    제한을 두게 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욥은 하나님의 진정한 궁극적인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인 그 사람 안에

    그 인간이라는 욥이라는 존재 안에  하나님 자신이 들어가서 욥이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욥 자신에게는 단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욥 자신 안에 살아계시지 않았다 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살아계심으로 말미암아 그 욥이 조성되고 변화되고 건축되어서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거처인 새 예루살렘을 조성하고 건축하고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그 생명의 씨가 들어와서 변화되고 조성되고 영 하나님에 의해서 가꾸어지고 만들어지고 빼내지고 돌과 같은 불순물들이 제거돼서 정금 같은 자로 나와야 되는데

    그러한 것이 되기까지는 어떤 과정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새 예루살렘을 조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원대한 경륜의 목적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근원 되시는 하나님의 완전체로 조성되기 위해서 요소를 받아들여야 되는데

    그리스도의 생명의 요소 영 하나님의 그 생명의 본질 그런 생명과 본성 본질 속성들을

    소유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만족하지도 못했고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의로움을

    내세웠지만 의로웁기는 커녕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고 얼마나 부족하고 모자란 자임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가 모자랐던 것은 새 예루살렘 성을 조성하고 건축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것으로 요소로 성분으로 본질로 채워져서 그 본질을 통하여 그 요소와 성분들을 통해서 본질을 통해서 그 돌이 산돌이 되어 12가지 형형색색의 보석을 만듦으로 말미암아 그 보석들 그 진주들 그 정금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집이 세워져야 되는데 그러한 생명의 요소들이 생명의 본성들이 생명의 본질들과 속성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사실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다니고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범주에 대다수가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합니다. 그런데 정작 필요한 하나님 자신이 내 안에 없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인간에게 부족한 하나님 자신을 채워주셔서 함께 살아가시기 위한

    이러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씨를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조성되어진 그 생명의 요소에 따라 사람이 하나님의 움직이심 안에서 움직이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의 원대한 뜻이고 목적이고 의도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움직이심에 따라 그대로 함께 움직이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씨가 하나님의 텃밭이요 경작지인 우리의 영이라는 존재 안에 들어와서 자라고 조성되고 성장되고 변화되어야 되는데 그렇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어떤 과정입니까? 욥과 같이 하나님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왔던 그가 하나님을 친히 눈으로 뵙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외형적인 축복들 심지어는 자기 생명의 목숨의 위협을 당하면서까지 자기 자신의 모든 외형적인 것과 내적인

    것들을 벗겨내고 빼앗기고 허물어뜨리고 파괴시켜야만 됩니다.

     

    왜냐하면 그가 자기 자신의 것을 가지고 있는 한 그 속 사람 안에 하나님의 생명의 씨를

    소유하여 영접하여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 안에 자라게 할 수 있는 그러한 옥토의 밭으로

    변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바로 누구도 그 임무를 맡지 않으려는 선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그 품성을 가진 고로 그들은 욥을 때리고 치고 빼앗고 심지어 생명을 위협하고 생명을 죽이는 약탈하고 빼앗고 강도짓하고 태풍을 몰아넣어서 집이 무너져서 자식들 죽게 하는 그러한 악한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의 화신이요 질투의 화신이고 상업적인 원칙에 따라서 그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고자 하는 사탄과 그 악한 천사들을

    하나님께서 이용하여 부추깁니다.

     

    니가 세상에 저 같은 자를 본 적이 있느냐 정직하고 올곧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순전한 사람이 아니냐 계속 첫 번째 회의 두 번째 회의에까지 사탄이 나타나는 것을 방관하면서 제어하시지 않고 막지도 않습니다.

     

    왜? 하나님의 택한 자들 하나님이 사랑하고 하나님을 관심하는 자들 귀로만 듣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좀 더 높은 차원의 세계로 이끌어오기 위해서는 그 사단과 그 사단에 속한 악한 천사를 통해서 그 욥을 때리고 치고 허물어뜨리고 벗기고 소모시키고 모든 것을 제거시키는 빼앗는 그러한 나쁜 역할과 임무는 오직 세상에 사단과 그에 속한 악한 천사들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유예 기간까지 그들의 활동을 하나님께서 완전히 단절시키거나 제한시키지 않고 내버려 방관시켜둡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들을 그 과정이라는 것을 통해서 빼앗고 파괴시키고 제거하는 그런 과정의 일들을 그 악한 사탄과 사탄의 무리들을 통해서 일을 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신성한 생명 신성한 본성을 소유한 자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집을 만들기 위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의 위대한 목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과정을 통해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친히 뵙게 되고 눈으로 친히

    뵌 사람들을 또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합적인 과정을 통해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영 복합되신 하나님의 영께서 인간의 몸속으로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마치 인간의 몸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동정녀 마리아의 몸속으로 들어간 것은 신성이신 하나님이 인성 안으로 들어가는 사건이었습니다.

     

    노아의 방주 사건은 노아의 여덟 사람이 하나님을 예표 하고 있는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방주 안에 사람이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사건입니다.

    이렇게 신성과 인성이 결합하여져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게

    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통하여 원래는 죄악된 본성을 가진 그들을 거듭나게 하고 새롭게 조성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서 새 피조물로 새 세계에 속한 빛의 세계에 속한 하나님에 속한 자들인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이 움직이실 때 같이  움직이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이 움직일 때 함께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곧 사람이 하나님의 움직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쫓아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반대로 하나님이 사람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게 됩니다.

     

    왜 영 안에서 그 영 하나님이 그 영이라는 존재 안에 들어가신 그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사람을 통제하고 다스리고 제한시키고 그리고 자신의 뜻을 따라 바로 살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사람이 하나님이 움직일 때 함께 움직였던 그 것이 이제는 하나님이

    사람의 움직임 속에서 친히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서 그리스도가 주체가 돼서 그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우리를 이끌고 가시고 이끄심 속에서 함께 동역하는 자로서의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성한 본성을 소유한 자로 하나님을 표현하고 권위를 나타내는 대표자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움직이심에 대한 예비 단계라면 신약 성경은 하나님의 움직이심의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하나님의 움직이심에 대한 기록이 바로 신약 성경입니다.

    구약성경 39권은 하나님이 움직이시기 위하여 전초 단계인 준비 단계에 마치 몸을 풀고

    있는 상태에서의 하나님의 모습 원래 그 하나님은 원래 그 상태로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셨던 창조의 신이시요 생명의신 그분이

    이러한 신약 성경에서 친히 움직이시고 행하시는 이런 사람이 하나님이 움직이심 안에서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하나님이 그 움직인 사람 안에서 바로 움직이시기 때문에 바로

    예수님이 그와 같은 삶을 사셨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을 소유 받은 자들이 이러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의 시작에서는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성육신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이 인성을 지닌 죄악된 본성을 취한 동정녀 마리아의 여인의

    뱃속을 빌려서 10개월 동안 수태되었다가 출생되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가시는 움직임에 대한 얘기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떠나서는 결코 움직이실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비록 태초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고 창조의 영이시고 생명의 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 그 원래대로 움직일 뿐이지 인간을 통해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인간 세계에

    속한 가운데 완전한 하나님 온전한 하나님으로 움직이시기 위해서는 인간을 통하지

    않으면 그 뜻이 펼쳐질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움직이기 위해서 사람

    속으로 하나님이 신성이 인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신성의 요소를 지닌 거룩한 성령님에 의하여 잉태되고 베들레헴 생명의 떡집에서 출생되어집니다.

     

    그러한 수태와 출생되어지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드디어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움직임의 첫 발걸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움직이시기 위해서 구약 성경 39권이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많은 믿음의 선진자들이 그것을 보이기 위해서 예비적 단계 준비적 단계를 이루어서

    실제적으로 하나님 대신에 움직이시고 행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이루시고 그

    성취하시기 위한 일 때문에 구약성경 39권이 존재해야 되고 필요하게 되고 믿음의

    사람들과 그리고 아담과 아브라함과 그리고 다윗과 모든 믿음의 그 선진자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가서 드디어 그 사람 예수님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이제 움직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움직이십니다.

    움직여야 살고 움직여야 죽고 움직여야 활동을 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움직임을 갖기 위한 하나가 되고 일체가 되고 연합되고 결합이 될 그 사람을

    얻으시기 위하여 아담에게 어떤 면에서는 아담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꿈이 갈망이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라는 하나님의 꿈을 갈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사람을 택정하여서 그의 후손을 통해서 야곱의 이스라엘의 씨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고자 이스라엘을 택정하시고 그 택정한 가운데 특별한 사람들 라합이라는 기생 룻이라는 그 이방 모압 여인 바세바라는 다윗의 그 아내를 통해서 바로 다윗의 씨인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하나님께서 움직이셔서 하나님의 그 원대한 경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나라를 택하셔서 나라를 세우시고 그 나라 가운데 씨를 하나 정하셔서 그 씨를 통해서 다윗의 씨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마리아라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일을 비로써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선 마리아라는 사람을 얻으셨고 그리고 마리아라는 사람 속에서 10개월 동안 수태되었다가 그 베들레헴이라는 생명의 떡집에서 태어나심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신성과 인성이 결합될 수가 있었던

    거죠. 결합이 되어야 하나님도 인간도 모두 흡족하고 만족하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종류 사람의 종류가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꿈을 하나님의 갈망을 하나님의 원대한 경륜의 의도를 실현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로서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 그리스도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게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을 얻기 위하여 구약 성경은 그렇게 움직이시기 위한 하나님이 움직이셔야 그 움직이심을 통하여 생명의 씨를 건네주고 생명의 씨가 자라게 하여서 그 자란 그 생명의 씨를

    통하여 하나님과 같은 자들로 신의 아들들로 만들어 나갈 수가 있기 때문에 사람이 되시고자 한 것입니다 만세전에 작정된 일입니다.

    마태복음 2장 21~23절 말씀을 여러분들과 함께 읽겠습니다.

    2: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母親)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2: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父親)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指示)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地方)으로 떠나가 

    2:23 나사렛이란 동네(洞里)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先知者)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稱)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23절에 보면 나사렛 사람 이라고 하신 이 말씀 예! 예수님은 나사렛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 이십니다. 예 그렇습니다 나사렛 사람이라는 이 칭호는  이사야서 11장 1절에 보면

    그 가지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結實)할 것이요"  이 나사렛은 가난한 동네 멸시 받는 지역입니다.

     

    갈릴리에서 가장 멸시 받는 동네인 나사렛이라는 아주 낮은 부류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되셨습니다. 싹이신 그 가지이신 그리스도는 이새의 그루터기인 다윗 왕 때와 솔로몬 때에는 이 나무가 얼마나 화려하고 얼마나 멋있고 얼마나 크게 성장하고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나무였었죠. 그런데 그것이 동정녀 마리아 때에는 예수님이 태어나는 그 시점에서는 잘라진 그루터기일 뿐 얼핏 보면은 죽어 있는 듯한 그 나무에서 한 가지가 땅 위로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가지이신 그리스도는 땅 밑에 있는 이새의 뿌리에서 나왔는데 이것은 생명의 깊이를

    사실은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뿌리가 깊게 땅 아래로 박혀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런 이새를 세상에 나오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들 그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산출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의 깊은 과정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싹이요 가지이신 그리스도는 회복하는 능력 복원하는 능력 소생시키는 능력 출생시키는 능력 바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열매가 맺어져서 먹을 수 있는 능력이 가득한 그러한 생명의 깊이입니다.

     

    생명의 깊이는 바로 그러한 열매를 맺어 먹을 수 있는 정도까지 충만한 능력이 가득한 것을 생명의 깊이를 알기 위해서 그 뿌리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생명의 근원으로서 뿌리로 뻗어나감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그분의

    열매로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여호와께서 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지를 뻗어나가게

    하심은 전적으로 그 영에 속한 문제입니다.

     

    그리스도는 영으로 태어나신 분이라고 마태복음 1장 18절에 써 있습니다.

    거룩하신 성령님에 의해서 잉태됨으로 말미암아 신성의 요소를 가지고 태어나신

    그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예수님은 자신의 그 신성한 본질인 거룩하신 성령님

    신성의 요소를 지니신 그 영 하나님에 의해서 조성되어서 잉태되신 분이기 때문에 또한

    그 똑같은 그 신성한 본질인 그 영으로 침례를 받으시고 똑같은 그 영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3장 16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즉시 물에서 올라오셨다. 보아라 하늘이 그분께 열렸고 그분은 하나님의 영께서 그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같이 자기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는데

    하나님의 영이 침례를 주고 누가 복음 4장 18절 말씀에는 기름 부음 받는 사건이 이렇게

    있습니다.4:18 주(主)의 성령(聖靈)이 내게 임(臨)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者)에게

    복음(福音)을 전(傳)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者)에게 자유(自由)를 눈먼 자(者)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傳播)하며 눌린 자(者)를 자유(自由)

    케 하고 4:19 주(主)의 은혜(恩惠)의 해를 전파(傳播)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침례를 받게 하신 분이나 기름 부음을 받게 하신 분이나 똑같이 바로 그 영 신성한

    본질인 그 영 그 영은 바로 마태복음 1장 18절에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母親)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定婚)하고 동거(同居)하기 전(前)에 성령(聖靈)으로

    잉태(孕胎)된 것이 나타났더니  성령님으로 잉태되신 사람 예수 아기 예수님은 성령님에 의해 잉태되셨고 그리고 신성한 본질인 그 성령님에 의하여 침례를 받으시고 성령님에

    의하여 침례를 받으신 그분이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 성령님에 의하여 친히 기름 부음을 받으시고 이렇게 성령님으로 시작해서 성령님으로 함께 움직이시는 일을 사람 안에서

    행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사람 예수님의 출생은 직접적인 성령님으로 된 것입니다.

    그분의 근원은 하늘에 속한 것이고 기원이 하늘입니다.바로 생명의 근원이신 성령님이었기 때문에 그 그리스도의 요소는 모든 것이 신성합니다.

    그래서  인간과 똑같은 몸과 육체와 피와살을 가지고 오셨으나 육체의 모양 몸의 모양

    죄인의 모양이라고 얘기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도무지 짓지 아니한 생각으로 조차도 정말 흠과 점이 없는  얼룩진 삶을

    도무지 살지 아니하신 의로운 삶 만을 사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그분은 피와 살을 취하셨습니다.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람의 본성을 입으셨다는 얘기죠 . 육체가 되셨다는 거죠. 몸을 입으셨다는 얘기죠.

    그러나 육체와 몸을 가지셨지만 그것을 로마서 8장 3절에는 육체의 모양 그리고 사람의

    모양 같이 됐다 라고 빌립보서 2장 7절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8:3 율법(律法)이 육신(肉身)으로 말미암아 연약(軟弱)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罪)를 인(因)하여 자기(自己) 아들을 죄(罪) 있는 육신(肉身)의 모양(貌樣)으로 보내어 육신(肉身)에 죄(罪)를 정(定)하사 8:4 육신(肉身)을 좇지 않고 그 영(靈)을 좇아 행(行)하는 우리에게 율법(律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빌립보서:2:7 오히려 자기(自己)를 비어 종의 형체(形體)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2:8 사람의 모양(貌樣)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自己)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服從)하셨으니 곧 십자가(十字架)에 죽으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신성한 본질이신 그 영 성령님으로 잉태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신성한 본질인 그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으셨고 그 신성한 본질인 그 영 성령님

    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그 영이 시작 때부터 성육신 하셔서 동정녀 마리아 곧 신성이 인성 안으로 들어가는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그 시점부터 끝까지 영원까지

    항상 그 신성한 본질이신 그 영과 함께 계셨던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사람 예수님은 그 신성한 본질인 영 그 성령님과 늘 하나가 되어 사셨고 하나가 되어

    함께 계셨고 늘 영 하나님 그 성령님과 예수님은 하나이신 분입니다.

    그것이 누가복음 4장 1절에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이렇게 성령님으로 충만했다 라는 얘기는

    간헐적으로 그분에게 찾아오셔서 역사하신다는 얘기가 아니라 항상 사람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와 신성한 본질이신 그 영 성령님은 항상 함께하시고 항상 하나이시고 항상

    그 영을 따라 행하시고  그 신성한 본질인 그 영 안에서 그 성령님과 함께  그 영 

    성령님에 의해 그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사신 그것이 성령님으로 충만되시어 라고

    누가복음 4장 1절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늘 항상 그 영 성령님과 함께 계시고 항상 하나이셨고 항상 그분의 뜻을 따라

    행하셨고 그분 안에서 그에 의하여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먹고 마시고 움직이고

    행하고 말하고 모든 그런 생각하고 이렇게 펼치는 모든 것들이 그 신성한 본질인 그 영을 통해서 하신 것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이렇게 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 예수님이 인간 33년 반 동안에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이 신성한 본질인 영 그

    성령님의 속성들 그 자체로 사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그 성령님에 의한 삶이었고 성령님에 의하여 함께 하나가 된 삶을 가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신성한 본질이신 그 성령님 그 영은 바로 그리스도의 실제인 것입니다.

    이게 진리입니다. 뭐라고요 신성한 본질 태어나실 때부터 영으로 잉태되시고 조성되시고 영으로 침례를 받으시고 그리고 그 영으로 기름 부음 받으시고 하나가 된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그 신성한 본질인 그 영은 그리스도의 실제인 것입니다.예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람 안으로 들어오셔서 그 사람을 얻으심으로 말미암아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님과 하나되고 함께 됨으로 말미암아 그 영이 실제가 된 것처럼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신 것은 실질적인 본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하기 위한 신성한 본질인 그 성령님의 신성한 요소의 본질은 결코 변할 수도 없고 사람 예수님과 절대 분리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신 사람 예수님 위에 성령님께서 내려오셔서 함께 하나되어 사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경륜적인 것입니다.이것은  예수님의 사역과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그리스도 기름을 받은 자로서의 하나님의 경륜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그 일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신성한 본질이신 그 영께서 예수님 위에 내려오셔서 함께 하나된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경륜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그 하나님의 경륜의 일과 관련되었기 때문에 주권적인 하나님의 경륜에 의해서 성령님이 예수님 위에 내려오셨는데 예수님의 사역을 위한 이 성령님의 능력은 때에 따라서 어느 때는 함께 하나가 되어 그 일에 임무를 위해

    예수님과 함께 움직이실 수가 있었지만 필요에 따라 그분에게서 또한 떠나실 수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거 참 깊은 얘기입니다.

     

    어떻게 성령님이 함께 하나되고 실제적인 그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이신 그분이 어떻게 필요에 따라 예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잠시 분리될 수가 있었을까요?

    여러분 보세요.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 갈보리 언덕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고

    죄를 다 끌어안고 인류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경륜적인

    면에서 주권적인 면에서 큰 원대한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을 이루고자 예수님을 버리고

    이 신성한 본질이신 그 영은 예수님을 잠시 떠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나가 되어서 그 예수님 위에 하나님의 원대한 경륜의 그 임무와 목적과 그 뜻을 수행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위해 내려오신 신성한 본성이신

    바로 그 성령님께서 필요에 따라 그분을 99.9% 도우셨지만 필요에 따라 어느 순간에는

    그분을 떠나 계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죄인들의 모든 인류의

    모든 죄를 끌어안고 죽으실 때 하나님의 크신 경륜적인 면에서 예수님을 버리시고 떠나셨다 라는 것이 마태복음 27장 46절에 여러분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제 9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막다니 라고 부르셨는데 이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라는 뜻이에요

    여러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바로 신성한 본질이신 그 성령님께서는 잉태하실 때도

    함께 역사하셨고 조성하셨고 신성한 요소를 지니신 신성한 본질이신 그 성령님께서 잉태하는 순간에도 함께 간섭하셨고 그리고 침례를 받으실 때도 성령님께서 함께 친히 하나

    되셔서 간섭하셨고 기름 부음 받으실 때도 누가복음 4장 1절에 성령님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실 때도 함께 간섭하시어 함께 하나가 되었고 사역을 함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 그리스도로서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예수님을 위해 내려오셔서 항상 함께 하나 되는 삶을 살아서 그 성령님의 그 신령한 요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와 결코 분리될 수가 없었던 그분입니다.

     

    예수님의 신성한 존재 그 자체는 신성한 인격과 관련되어 있는 이 모든 것이 본질적인

    그 신성한 본질이신 성령님에 의해서 예수님을 그렇게 조성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원대한 경륜에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죽으실 때는 그 일을 하나님의

    경륜의 위대한 꿈을 이루고 성취하는 바로 그 결정적인 찰나에는 하나님이 경륜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예수님을 잠시 버리시고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능력의 성령님께서 주님 위에 내려오셔서 함께 하나 되는 삶을 사신 신성한 본질이신

    그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태하시고 출생하실 그 처음 시작부터 본질의

    성령님께서 함께 계셨던 분이십니다.

     

    그분이 그리스도로서 그 임무를 온전히 수행하시는 그런 과정 가운데 있을 때도 늘

    하나가 되고 함께하는 삶을 사신 분이십니다.

    능력의 성령님께서 그 분 위에 내려오실 때에도 그 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의 계획을 수행하고자 그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는 일에 있어서 늘 본질의 성령님과 함께 계셨지만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골고다 십자가 언덕에서 죽음을 당하시는 그 순간에는

    하나님께서 경륜적인 면에서 예수님을 어쩔 수 없이 버리시고 떠나셔야만 했던 기구한

    하나님의 슬픈 마음 하나님이 그때 마음이 어떠하셨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만 움직이지 아니 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으로서만 움직이셨지만 신약 성경을 통하여 처음부터 등장된 것이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는 신성이 인성 안으로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통해서 사람 안에서 하나님이 움직이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하나님 움직임에 안에서 움직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고 그리함으로 말미암아 움직인 사람 앞에 하나님이 그 움직이는 사람 안에서 주체자가 돼서 움직이지만 외형적인 보여지는 모습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주체는 하나님이시지만 외형적으로 이 일을 수행하는 사람의

    그러한 나타나는 결과의 모습은 사람을 통해서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사람의 종류 사람의 본성을 입고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령님이 계셨던 것처럼 성령님이 예수님의 움직이심 안에서 움직이셨던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하나님의 움직이심 안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성령님이 예수님의 움직이심

    안에서 움직이고 예수님이 성령님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적과 표적과 기사를 보여졌을 때 신기했던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어떻게 저런 일을 행할 수 있느냐 혹! 하나님이 아닌가 라고 그를 반신반의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성경을 통해서는 하나님 그 원래대로만 움직이셨던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만 움직이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인간의 존재 안에 하나님 자신을 집어넣으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움직이시고 실제적으로 활동하고 행하는 영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경륜의 원대한 계획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만 움직이기를 원치 아니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을 통해서 일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인성 안에 들어오신 그 독생자 사람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님이 예수님의 움직이심 안에서 움직이기를 원하셨고 그리고 그 사람

    예수님은 성령님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함께 하나 되어 그리스도로서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원대하신 경륜의 목적과 뜻을 이루고 성취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복합 되신 그 하나님이그 거듭나서 새로운 생명으로 조성되어진

    사람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되고 연합되고 함께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주체자는 사람이 하나님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마치 사람이

    주체자로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보이지 아니하는 신성한 본질이신 바로 그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그 조성되어진 사람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고 이끌고 행하기 때문에

    사실은 하나님에 의해서 이러한 일들이 행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성경에서 처럼 그냥 원래의 상태 하나님의 상태 대로만 움직이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생명이라는 것을 부여해주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얻으셔야만 됐고 그 얻으신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움직이시길 원했던 것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와서 사람이 하나님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함께 동역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것이 그것이 욥에게 부족했던 욥이 가지고 있지 않았던

    욥 자신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그 과정을 통해서 벗기고 빼앗고 허물어뜨리고 파괴시키고 제거하는 일을 통해서 눈으로 친히 하나님을 뵙게 하는 그 일을 수행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와 똑같이 사람의 종류대로 사람의 본성을 입고 오신

    그 예수님 안에 성령님께서 움직이셔서 예수님이 사람이셨기 때문에 영 하나님이 그 영이라는 존재를 통하여 영이라는 존재 안에 들어오셔서 움직이시고 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펼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만 움직이기를 원치 않으시고 그리고 또한 사람으로서만

    움직이기도 원치 않으셨습니다. 사람으로서만 움직이기도 원치 아니하시고 하나님으로서만 움직이지도 결코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어진 두 가지 종류의 본성을 가진 그 신성이 인성 안에 하나님이 사람 안에 들어간 그 독생자를 통하여 신성의 본질을 가지신 그 성령님께서 사람 예수님을 통해서 움직이심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이 예수님 안에서 움직이셨고 예수님은 성령님의 움직임 안에서 함께 사역을 행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예수님이 성령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그 관계가 불확실하고 불완전하고 불온전함으로 말미암아 불투명해져서 예수님의 사역을 잘 이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람 예수님은 그러기 때문에 신성을 지니신 그분이 인성 안으로 들어오셨죠.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셨죠.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하나님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였죠.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의 조성되어진 사람의 움직임

    안에서 활동하게 됐죠. 마찬가지로 성령님이 예수님 안에서 함께 하나가 되고 잉태되고

    침례받고 그리고 기름 부음 받고 사역을 수행하는 그 모든 전적인 일에 나실 때부터 죽기 바로 그 직전까지의 모든 삶이 신성을 지니신 신성한 본질이신 그 성령님과 함께 하나님의 영과 함께 하나가 되는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하나님의 삶인지 사람 예수님의 삶인지 섞어졌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됐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이 예수님 안에 살아 움직이는 그 움직임 안에서 성령님이 움직이시고 또한 그러므로 말미암아 사람 예수님은 성령님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사람 하나님의 영 그리고 하나님의 영은 신성한 본질이시죠 신성과 인성으로 움직이신 분입니다.

    하나님으로서 사람으로서 움직이신 분이 바로 사람 예수님이십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것이 여러분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서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정체가 불분명했던 겁니다.

    누군지 잘 몰랐던 거예요. 유대인들뿐인가요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대제사장들, 심지어는 빌라도까지 당신이 누구냐 진리가 무엇이냐 라고 이렇게 의아하고 의문을

    가지고  알기를 원했던 것처럼 하나님이시면서 사람 사람이시면서 하나님 사람이신 예수님이 신성한 신성의 본질이신 성령님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본질이신 성령님이 사람 예수님을 통해서 행하고 있다 라는 것을 그

    원대한 하나님의 경륜의 꿈을 목적을 구원의 계획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장로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로마 군병들 빌라도 대제사장들 할 것 없이 예수님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안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 사람으로 움직이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게

    하고자 사람 안으로 거듭나서 새 사람을 만들어서 조성시켜서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그런 행하는 일 가운데서 움직여서 하나님 자신이 구원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 선생님은 아셨던 것입니다.

    바로 그분의 생각과 그분의 감정 그분의 하나하나의 말씀들이 그분의 행동들이 도대체

    하나님의 행동인지 하나님의 생각으로 말하는 건지 하나님의 움직임인지 아니면 그냥

    단순한 하나의 우리와 똑같은 몸과 육체를 지닌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의 사람의 행동인지

    구분이 안 되었기 때문에 그 예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오해를 갖게 되어 지고 심지어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일들이 생긴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자체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가장 위대한 우주 가운데 가장 큰 비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큰 비밀이 그리스도이시듯이 그리스도의 큰 비밀은 성도들입니다.

     

    이와 같이 조성되고 거듭나져서 같은 움직임 안에서 내가 움직이고 성령님이 움직이는

    가운데 바로 성령님이 예수님 안에서 움직이고 예수님이 성령님 안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바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 복합 되신 그 영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지금 조성되어진 우리를 통해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움직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 이 복합되신 그 하나님께서는 곧 그리스도께서는 새 사람이 된 새 세계 빛의 세계 그리스도에 속한 자의 몸 안에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하나님이 움직이시고 행하셔서 구원의 일을 도모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의 비밀은 성도들 곧 교회들입니다.

    사람 예수님은 본래가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이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지만 본래 그분은 신성한 본질이신 하나님에 의하여

    잉태 된 신성한 요소만 가지고 계신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람 예수님이 원래는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이시지만 사람 안으로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수태 되시고 출생되어지는 일들을 과정들을

    통해서 사람이 되신 것은 다름 아닌 우리로 하나님 같은 자 하나님 되게 하려 하십니다.

     

    뭐라고요? 예수님이 성육신하심으로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로 하나님 되게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과 같은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성육신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셨으니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안에 참여하게 하신 것은 우리를 신성한 자로 조성시켜서

    우리로 하나님 되게 하려는 이 사실을 누가 알까요?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를 하나님 되게 하려고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셨구나! 성육신하셨구나! 이 사람이 되신 이 일이야말로 할렐루야! 우주 가운데 가장 큰 위대한 사건입니다.

     

    이것이 사람 안에서 하나님이 움직이시고자 하는 하늘의 원칙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와서 사람 안에 조성된 사람 예수님을 통해서 움직이시고

    구원의 도를 행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이제는 신성한 본질을 가지신 그

    하나님께서 사람 예수님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똑같이 그와

    같이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움직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소생되고 회복됨을 받은 거듭난 자들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이 하나님의 경륜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시고 성취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움직임의 원칙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움직이심은 구약 성경에는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 안에 들어오실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안으로 들어오기 위한

    작업을 펼치기 위한 모든 준비 단계 예비적 단계가 구약성경 39권에 기록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움직이심이 준비 단계에 있었던 그 움직이심이 신약 성경에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사람 안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사람 안에 하나님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함께

    움직이시고 행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먼저는 사람이 하나님의 움직이심 안에서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이 사람의 인성을 입고 사람 안으로 들어오셨죠. 사람 안으로

    들어오므로 말미암아 사람 되신 예수님이 신성한 본질이신 성령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게 됐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체가 성령님이 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제 신성한 본질을 지니신 성령님의 움직임 안에서 예수님도 함께 움직임으로 하나되어 함께 되어 그 일로 이루어서 죄를 도무지 짓지 아니한 자로 정말 의로운자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속의 성취의 문제와 생명을

    분배해 주는 일을 하실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비밀은 예수님 이셨습니다. 바로 사람 예수님은 원래는 하나님이셨지만 사람 안으로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피와 살을 입은 사람이

    되셨지만 그분은 원래는 신성한 본질을 가지신 성령님에 의하여 잉태되었고 태어나시면서

    부터 그리고 사역을 시작하는 공생애부터 신성한 본질이신 성령님에 의하여 침례를 받으시고 또 기름부음도 받으시고 또  원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하기 위한 그 사역의 임무를 위하여 함께하고 하나되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셨고 예수님은 또한 그 신성한 본질이신 성령님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누가 누구에 의해서 움직여졌는지 분간을 하지 못할 정도로 그래서 사람들이 오해를 했던 것입니다.

     

    왜 신성한 본질이신 성령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고 하나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그 움직이심 자체가 신성한 본질을 지니신 그 성령님의 움직이심은

    사람을 그러한 과정 가운데 신성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성한 요소를 소유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그 원하시는 그 계획과 바람과 갈망을 심어줄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움직이심 안에 사람이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 하나님의 그 본질 하나님의 속성 빛의 세계에 속한 모든 하늘의 속성들 요소와 본질들이 성분화 되어서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과 같은 자가 되게 합니다.

    본성에서 하나님 되게 한다라는 것입니다. 생명과 본성 면에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서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름 부음 받으셔서 이 원대한 구원의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는 외형적으로 사람의 모습으로 보였지만 오순절 다락방에서 예수님 자신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자신의 사람들에게 내려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강림을

    통하여 원래 한 사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셔서

    사람이 된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영 신성의 본질을 지닌 하나님의 영이 그 예수님과 함께 하나되고 함께 사는 삶 잉태되는 순간 나시면서 부터 침례 받고 기름 부음 받고 사역을

    수행하는 내내 일생의 전 과정 죽기 전까지 바로 그 성령님이 관여하셔서 성령님이 그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 안에서 움직이셨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강림을 통하여 오순절 그 다락방에서 120명으로 증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신성의 본질을 가지신 성령님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였던 그 움직임이 예수님 한 분으로 시작했는데 오순절 그 다락방에서는 120문도에게 이것이 증가가 됐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베드로를 통해서 3천 명이나 되는 엄청난 숫자로 증대가 되고 확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행전 2장 47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모든 사람 앞에서 은혜를 얻었다.

    그래서 주님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날마다 더하시어 합치셨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을 통하여 바로 신성한 신성의 본질을 지니신 하나님의

    영이 곧 사람 안에 하나님이 들어가심으로 말미암아 사람과 함께 움직였던 이 일이 그 전에사람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예수님 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움직여서 하나 되는 삶을 사신 것처럼 반대로 사람 예수님은 하늘에 성령님 움직임 안에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그 일을 이루신 것처럼 그 움직임이 예수님 한 분으로 움직였으나 한 알의 밀알이 죽어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처럼 사도행전에서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예수님께 역사하셨던 신성의 본질을 지니신 그 영 성령님께서 복합되신 과정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되었음을 공개적으로 공식적으로 만천하에 선포된 사건입니다.

     

    그리고 승천은 만유의 주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합법적으로 이 일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증명하고 판명하고 증거하는 사건이 승천 사건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마태 마가 누가 복음에서 예수님을 통해서 한 분 하나님이신 성령님에

    의해서 예수님이 움직이심이 시작되었으나 이제 사도행전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움직

    이심 안에서 120명이 움직였고 3천 명이 움직였고 그리고 바로 사도행전 2장 41절에서

    그날에 약 3천 명의 사람들이 더해졌다.  더해졌다 라는 것이 날로 날로 더해졌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120명이 3천 명이 되고 3천 명이 얼마나 됐을까요? 우리가 헤아릴 수는 없지만 날로 날로 더해졌다 라는 그 말 안에서 하나님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사람에 들어가서 사람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고 행함으로 이 일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이 오순절 마가 다락방의 120명 사건에서 시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론 성육신하신 그 예수님 안에 신성의 본질을 지니신 성령님에 의해 수태되고 그 나실 때부터 관여하시고 그 사역을 수행하는 일을

    온전히 이루게 하기 위해서 침례 받게 하시고 그 성령님에 의하여 기름 부음을 받게 하시고

    그 성령님에 의하여 사역을 행하게 하시고 그랬던 그분이 결국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는 그 순간에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분이 순식간에 떠나시는 그 일을 예수님이 경험하게 됩니다.

    아~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사건이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움직이고 행하는 이 일들을 세상의 모든 평범한 사람들은 거듭나고 소생되고 하나님께 택정받고 새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은 이러한 일이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향해 수근 대고 그냥 이것이 도대체

    무슨 영문으로 이러한 일들이 벌어졌는가 하고 의아해 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 잘 배우지도 못하고 유식하거나 학식이 있고 명망 있고 권세 있는 자들이 아닌 그냥 가난하고 어부 출신이었고 세금을 걷던 그런 평범한 사람들로만 예수님의 제자들을 하나님과 사람이 사람이 하나님의 움직이심 안에서 함께 하나 되어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단지 평범한 사람들이 잠시 술에 취해서 엉뚱한 일을 벌리고 있구나라고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 사도행전 4장 13절 말씀입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배우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인 것을 알았는데 그들이 매우 담대한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그들은 또한 그 두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예! 평범한 사람들로 알고 있었지만 그들 안에는 하나님의 움직임이 있었고 그 하나님의

    움직임 안에 또한 외형적으로 사람의 움직임이 있어서 사람이 하나님의 움직이심 안에서 계속적으로 하나되어 움직여서 역사를 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어떤 특별한 사람들이 이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움직이심이

    있었다 라는 것 하나님의 움직이심을 통해서 그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라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예 그런 사람들이 그러한 얘기들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줍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그 사람들에 의해서 전해진 그 기쁜 소식들이 후에 구원 얻을 자들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계획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들을 알아채여서 열매 맺는

    자들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사도행전 4장 16절은 우리가 이 두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뚜렷한

    표적이 이들을 통해서 일어났다는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습니다.

    이 뚜렷한 표적들을 통해서 사람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움직임에 대한 것을 알아챘습니다. 우리도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이 전한 이 말 때문에 나중에 고넬료 라든지 또는 몇몇 어떤 사람들이 구원 얻는 그 무리들 가운데 이렇게 들어오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움직일 때 하나님도 움직이십니다.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하나님이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그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셨던 그 신성한 본질이신 그 영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자신들 안에 역사하고 있는 그 하나님의 움직임을 알아채고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들을 소유하는 일 사람들을 얻는 일

    추수하는 일을 이렇게 하나님이 감당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위대한 비밀들의 얘기입니다. 사람들이 그들 그 오순절 날 마가 다락방에서 그 신성한 본질이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 때부터 죽기 직전까지 하나

    되어 함께하셔서 하나 된 삶을 살았다라는 것을 알아챈 그들이 하나님의 움직임 안에서

    함께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들을 통하여 그들의 움직임 안에서 또한 움직이시면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움직여짐이 하나님이 먼저 움직인 것인지 사람이 먼저 주도하여 움직인 건지 정말 알아챌 수 없는 불분명한 불완전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인 사건은 먼저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움직이심 안에서 움직일 때 마치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에 의하여 잉태하셨지만 그 사람이신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잉태하실 때부터 내내 간섭하시는 사건이 먼저 있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움직여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함으로 말미암아 사람 되신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영의 움직임 안에서 자신의 사역을 행하는 일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분이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강림하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 하나님의

    신성한 본질을 지니신 영이신 하나님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 복합되신 아버지, 아들, 영 하나님 이 세 분 복합되신 하나님으로 조성되어진 바로 그 영 아브라함에게 축복되어진 바로 약속되어진 그 영 그 영의 움직임 안에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사람이 움직이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고 새롭게 되고 변화되고 영화롭게 된 그 사람들의 움직임 안에서 제자들 그 무리 안에서 교회의 몸 안에서 함께 움직이는 것이 라는 것을 끝으로 말씀 드리면서 오늘의 교제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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