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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1:1. 2:4 하박국 이름의 뜻 2가지와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말씀 나눔방 2023. 7. 26. 21:52
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12 권의 소 선지서 성경 말씀 가운데 여덟 번째 성경 말씀인
하박국 말씀을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전에 요나 선지자를 통해서 나누던 교제의 말씀의 내용은 여러 이방 민족을 대표하는
앗시리아의 니느웨성 도시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치리하심에 있어서 은혜와 자비로 대하는
것에 대한 계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라면 바로 뒤에 나훔 선지자를 통해서는
하나님께서 나훔 1장 2절에 나오고 있는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리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1: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라고
나훔서에 기록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비와 은혜와 긍휼로 대하신 그 악한 앗시리아의 수도인 그 니느웨성을
한편으로는 구원의 자비를 베푸시는 것을 요나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지만 나훔서를 통해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죄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고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 이 세상 나라들 세상 민족들을 예표하고 있는 악한 성인 앗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 성을 심판하신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나의 후속편이 나훔 선지서 라고 해도 무방 할 것으로 이해 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반면에 이 하박국 선지서를 통한 성경 말씀은 이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이 오늘날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할 수 있는 그런 의문과 의혹에 대한 것을 하나님과 이 선지자들을 통한 대화를 통하여
질문의 대언자로 나타나고 있는 이 요나와 또 욥과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서 욥은 주로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로
하나님이 자신을 치리하시고 다스리시고 통치하심에 있어서 의아한 부분에 대해서 마치 하나님을 피의자로,
자신을 피해자로 이렇게 염두에 둔 듯 따지는 모습을 볼 수 있고요. 요나 선지자를 통해서는 여러 이방 민족을
대표하고 있는 니느웨성을 하나님께서 치리하시고 다스림에 있어서 의아한 부분에 대한 문제와 자신의 문제로 질문을 드리고 있는 자가 요나 선지자라면 이 하박국 선지자는 개인 자신에 대한 문제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 전체의 문제로 선민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대언자로 질문을 하는 장면들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하박국 선지자를 통한 이 말씀의 중점적인 주제는 갈대아 사람들을 통한 세상 민족들을 대표하고 있는 그때 당시에 세상 나라들 가운데 강대국 열국으로 등장한 갈대아 사람들을 통하여 선민 이스라엘을 특별히 유다 민족을 심판하시는 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의 그러한 치리하심 어떤 선민 이스라엘을 돌보시고 은혜로 보살펴야 되는 하나님의 그러한 모습이 오히려 자신들을 더욱더 혹독하게 심판하시고 또 갈대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냥 방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한 의아함과 의혹을 간직한 채 하나님께 질문의 대언자로 나서서 하나님! 도대체 거룩하심이 무엇입니까 라는 그런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것을 이렇게 따지듯 묻는 그런 하박국 선지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박국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이 말씀의 교훈은 선민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 민족들을 대표하고 있는 갈대아 사람들을 통해서 먼저는 유다 나라를 심판하시는 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의 공의와 그리고 난 후에 여러 나라 민족들을 대표하고 있는 갈대아 인들을 징벌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나게 된 하나님의 공의와 의로우심 그리고 거룩하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하박국 선지서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과 열방의 나라들을 다스림에 있어서 자신들을 특별히 돌보시고 은혜와 자비와 긍휼로 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저 열방 나라들을 방관하심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치우치게 혹독하게 다루신다 라는 하나님에 대한 불만을 토로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도대체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신데 왜 선민 이스라엘을 이렇게 징계하시고 그리고 세상 나라를 대표하고 있는 갈대아인들을 통한 열국들에 대한 악은 왜 하나님께서 보지 못하시고방관하시고 그냥 내버려 두십니까?
이것을 나에게 좀 알려주십시요 라고 간절히 요구를 하는 내용의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를 볼수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수년 내에 이런 주의 일이 부흥하게 해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간구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이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서 2장 4절에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는 말씀을 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사람을 의롭게
만드시는 분이시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이 영적인 진리로 계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하박국서는 굉장히 중요한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예의주시 하면서 이 말씀을 잘 묵상을 해야 된다는 것을 먼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인 우리 전 존재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구원과 관계가 있는 말씀이 이 하박국
선지서 이며 마치 복음서와도 같은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12권의 소선지서 말씀들이 서로 서로 하나로 조금씩 조금씩 연결된 고리들로 연결되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이요, 목적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나게 하기 위한 일에 이 하박국 선지서가 차지하고 있는
그러한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과 목적을 담고 있다는 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세상 가운데 하나님께서 치리하고 있는 이 공의와 의에 대한 문제, 거룩함에 대한 문제는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계시의 당사자인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오시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이끌어오시고 해방하기 위한 일종의 조그마한 근거가 되고 기틀이 되고, 바탕이 되고 배경이 된다
라는 면에서 아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 말씀 소선지서 12권 가운데서도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다 중요하지만 이 하박국 성경
말씀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라는 이 놀라운 황금 구절있는 말씀이며
로마서 1장 17절에도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합 2:4〕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도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합 2:4〕
히브리서 10장 38절에도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라고 얘기함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 산다 라는 생명 안에서의 사랑,
의는 믿음으로 산다 라는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참 사랑이신 영원하시고 변함이 없고, 다함이 없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쫓아가는 사랑을 보임으로 말미암아 전적인 책임을 지시는 사랑을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그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보여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참 생명을 얻고 생명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바로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라는 것입니다.
이 하박국 성경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박국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우리가 먼저 알아야 됩니다.
하박국이란 이 이름의 히브리어 뜻은 품에안다 라는 얘기입니다. 예 품에 안다 누가 안았다는 예기죠?
인간이 하나님을 품에 안을 수는 없죠. 하나님께서 인간을 품에 안는다 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품에 안는다 라는 것이 이 신약 성경에서 가장 잘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나타내고 표현해준 말씀이
막달라 마리아와 삭개오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삭개오에 대한 말씀이 바로 주님께서 삭개오야 이리 내려올래 라고 자신의 품에 삭개오를 품어주시고
영접하는 장면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하박국이라는 이름의 뜻이 있는데 그것은 달라붙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나 삭개오와 같은 자를 바로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아버지가 바로 돌아온 탕자를
품에 안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가 아버지의 아들이 되지 않고자 했던
그 둘째 아들 탕자를 품에 안는 마음이 끊임없이 한 번도 변함없이 영원히 함께 하셨다 라는 것입니다.
이 탕자가 결국 이 아버지의 영원하시고도 전적인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아니하는 아버지의 참 사랑을 깨닫고 돌아오는 장면을 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바로 아버지께서 탕자를 품에 안음으로 말미암아 바로 탕자가 꽉 아버지의 품에 달라붙는 바로 그런 모습을 얘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건 막달라 마리아와 삭개오에 대한 말씀이라고 제가 얘기했죠.
이 품에 안다라는 이 하박국의 뜻 달라붙다 라는 이 두 가지 똑같은 말씀인 것 같지만 서로 다른 유형의 방면을
표현하고 설명하고 있는 이 말씀은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이 가슴 문을 활짝 열고 두 팔을 벌리고 영접하기를
원하는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품에 안거나 그분에게 달라 붙은 일로 인하여 그분과 하나가 되는
삶을 살 필요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까지 교제를 나누면서 계속 얘기하고 있는 장면이 무엇이죠?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를 드릴때 하나님 하나님과 저는 하나입니다.
나는 하나님 안에 있고 바로 하나님은 내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나와 예수님은 하나입니다 라는 하나가 되기 위한 일을 추구하고 그 일을 성취하시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 그분께 꽉 접착제로 붙인것 처럼 달라붙는 행위가 전적으로 필요하다 라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얻기 위한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라는 이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그 사랑의 품인 바로 엘샤다이 모든 것을
만족하게 하고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품에 안김으로 말미암아 그분께 절대적으로 떨어지지 않고 분리되지
않고 나뉘어지지 않도록 확실하게 꽉 접착제처럼 달라붙는 삶이 바로 여러분들에게 얘기한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 안에 있게 된다 라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라는 얘기인 것입니다.
바로 믿는다 라는 것은 예수님 안으로 우리가 들어가는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품에 들어가 안겨서 꽉 달라붙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안으로 우리가 믿어 하나가
됨으로 말미암는 그 생명 안에서의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생명에 속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죠.
아버지 하나님이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그 생명 안에는 아버지의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고 다함이 없는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쫓아가는 사랑 끝까지 전적인 책임을 다하는 사랑 우리를 환도뼈를 쳐서
불구자로 만들어서 죽일지라도 우리를 죽여서라도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의 사랑을 맛보게 함으로 말미암아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렇게 바꾸어진 자가 되게 하시기 위함과 그리고 탕자를 돌아오게 하시기 위한 그 사랑의
근거가 바로 하나님 안에 있는 이 생명 안에 속한 사랑을 맛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는 삶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의 최종 완성된 그 영의
부어짐으로 인한 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맛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삶을 살 수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구원은 하나님 자신뿐이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을 통해서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
14절에 말씀께서 육체가 되셔서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
피와살을 가진 사람으로 오셨다. 여러분 하나님은 말씀으로만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으셨다 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육체가 되셔서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 라는 이 요한복음 1장 14절에 충만한 은혜와
실제를 가지시고 하늘에 신성을 지니신 하늘의 하나님이신 말씀께서 우리와 같은 피와 살을 가진 육체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살아계신 신성의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다 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그냥 말씀으로만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으십니다.
말씀이 육체가 되셔서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고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 구원의 일을 이루셨다는
이것이 호세아서 11장 4절에 사람의 줄들과 그리고 곧 사랑의 끈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줄이 뭐죠? 우리 땅에 속한 인간은 하늘에 올라갈 수가 없어요. 힘이 없습니다.
사람의 줄이 되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그 줄을 붙잡고 하늘로 올라가는 삶을 살 때
땅에 속한 우리가 하늘에 속한 자의 야곱이 이스라엘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이라는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왕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의 끈으로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지 않으면 안 되셨기 때문에 성육신하셔서 사람의 줄로 이 세상에 구원의 밧줄을 내리셔서 그 줄을 붙잡고 올라오게 하기 위해서 배려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의 줄이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분의 33년 반 동안의 생애의 삶과 인생 그리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하심으로 사람의 줄들에서 이 다섯 마디마디가 되어주신 육체로 오셔서 인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전적으로 책임을 다하시는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을 가지시고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쫓아오는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를 통한 사랑을 보세요. 끝까지 요나를 쫓아갑니다.끝까지 요나를 쫓아가서 끝까지 이방 나라들을 예표하고 있는 바로 앗시리아의 니느웨성 도시를 그 죄악된 도시를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전적인 책임을 다 하시는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이기 때문에 이러한 우리를 전적으로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되시어서 이 땅에 피와 살을 가진 육체로 인간으로 우리에게 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의 삶을 다루고 있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전체적인 중심의 그 사상은
구원하신 하나님이 그냥 말씀으로만 우리를 구원하시지 아니하시고 그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1장1절 말씀처럼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이 말씀이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이신 그분이신데
그분이 육체가 되셔서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고 사람으로 오셨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전적인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성육신하신 이 말씀이
요한복음 성경 전체의 말씀이면서 그리고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중심 사상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으로 이 땅에 방문하여 나타나셨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그냥 말씀으로만 우리를 구원하시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친히 전적인 책임을
가지시고 아버지의 사랑안으로 구원하시고자 하는 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영원 안에서부터
사람의 시간 안으로 들어오셨다라는 것입니다.
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성경의 중심 사상이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그 말씀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친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고
오시는 영원으로부터 시간 안으로 들어오시는 일로 인하여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부터 땅으로 내려오셨다 라는 것입니다.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본성을 지니신 사람의 몸을 입은 인성 안으로 오셔서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복잡하고도 정말 그분의 말할 수 없는 처절한 구원의 과정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으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 그분께서 그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바로 그 영원 안에서부터 이 인간의
시간 안으로 들어오시고 그리고 영원안에 계셨던 신성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심으로 말미암아
인성 안으로 오셔서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심으로 말미암아
호세아서11장 14절 말씀처럼 사람의 줄들인 사랑의 끈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품으실 수가 있었고
우리는 그분을 강하게 붙잡을 수가 있었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성육신하셔서 사람이 되시고 그리고 33년 반 동안의 공생애를 포함한 인생을 사시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또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줄이 되신 그 다섯 마디의 그 줄들로
엮어진 그 줄은 하나의 줄이지만 5개의 마디 마디로 짜여진 먼저는 기초를 쌓았죠.
그리고 33년 반의 인생의 이 마디가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긴 그 굳건하고 견고한 마디가
굳게 굳게 두 겹으로 쌓여졌죠. 그리고 세 번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이 죄의 능력을 무력화하고 사망의 권세를 무효화시킨 그 무덤을 뚫고 이기신 십자가를 통해서 옛 창조물들을 파쇄시키고 종결시키고 끝내신
죽으심의 세 번째 마디가 합쳐짐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견고하게 됐습니까?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생명 주시는 영 발아시켜 주는 영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의 그 영의 최종 완성된 영의 부어짐을 우리에게 주시는 그 생명의 영 창조의 영을 이 네 번째 마디의 굵은 줄로 묶어냄으로 말미암아 더 견고 해졌죠.
그러나 그것이 또 모자라고 미비하고 부족함이 있기에 승천이라는 또 한 마디를 통해서 우리를 굳건히 끊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이 모든 인류를 끌어서 땅에 속한 자들을 하늘로 이끌어오기 위한 이일 때문에 5개의 성육신이 바탕이 되고 33년 반 동안의 인생을 통해서 인성이 온전해지고 또 죄와 사망을 이기신 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이 우주 전체에 만연돼 있는 죄의 문제를 다 해소시켜 주시고 또 부활과 승천 통해서 바로 최종 완성된 영의 부어짐을 우리에게 내려주시기 위한 그 놀라운 하늘로 우리를 이끌어 데리고 올라갈 수 있는 견고하고도 강화되고도 세워진 힘을 통하여서 우리를 붙잡아 이끌므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의 품에 안기고 그분께 달라붙게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 그러므로 말미암아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인성 안으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은 그 영원한 생명 안에 속한 사랑을 가지고 사람을 품으실 수가 있었고 그 사람은 영원한 그 생명 안에 속한 사랑을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길이고 구원의 품이신 주님의 품 안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라는 것입니다.
예 하박국 선지자의 그 히브리어 이름의 뜻이 품에 안다 꽉 달라붙다 라는
그 이름의 설명을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박국이라는 이름에 이렇게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은 신약 성경의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하박국 2장 4절에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라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얘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그냥 건성으로 말씀으로 우리를 그냥 하늘에서 손을 땅으로 내밀어서 그냥
구원의 밧줄만 내려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셨다 라는 얘기입니다.
호세아서 11장4절에 구원의 줄 곧 다섯 마디로 합쳐지고 결합이 되고 모아진 그 다섯 마디의 하나의 줄이지만
그 사람의 줄들은 인성을 가지고 오신 사랑의 끈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냥 손을 땅으로 내밀어 우리를 구원코자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친히 품어주셔서 우리가 그분을 꽉 붙잡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성을 지니신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 오셔서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모양과
형체로 계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 그 자체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모양과 하나님의 형체, 그 전능자로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나 사람이 되신
피와 살을 가진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이라 이름하는 뜻의 이름을 가진 예수님이라 하는 사람의 형체로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품어주시고, 우리가 그분을 붙잡을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이렇게 이끄셨다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시지만 인성을 가지고 오신 사람이라는 뜻에서의 이름이 예수님이라는 이름인
것입니다. 예수님이라 이름 하는 사람의 형체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지 전능하신 하나님 그 자체로서
우리를 하늘에서 그냥 손만 내밀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닌, 이런 복잡하고도 말할 수 없는 성육신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라 할지라도 세상에 그 무엇도 이 사람의 줄로 오신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내려진 이 사람의 줄과 사랑의 끈은 절대적으로 해체시킬 수가 없고, 끊어 낼래야 끊어낼 수가 없고,
그것은 인성을 가지고 오심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그 견고한 줄로 우리를 이끄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분을
꽉 붙잡을 수가 있어서 그분의 품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우리가 하나로 연합될 수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예 구원하는 이 사람의 줄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섯 마디라면 이 5개의 가닥의 마디로 결합되어진 이 사람의 줄들과 함께 인성을 가지고 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는 사랑의 끈이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는 이 사람의 줄들과 사랑의 끈들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를 품으실 수가 있었고, 우리는 그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꽉 붙잡을 수가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탄 마귀는 이것을 알고 인자로 오신 인성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성도들, 교회들이
알게 되면 큰일 나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이 인성을 감추기 위하여, 신성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로 떡을 한번 만들어보십시오. 예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으로서만 일을 하시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인성을 가지신 자로서 세상의 죄와 세상과 마귀를 이기는 일은 절대하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장면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요한복음15장 4~5절 말씀입니다.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래서 이 막달라 마리아와 삭개오에 대한 얘기를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품에 안기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에 꽉 달라붙음으로 말미암아 주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특별히 누가복음 19장 1절부터 10절까지 나오는 삭개오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19:1 〔예수와 삭개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19: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19: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수 없어
19: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19: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19: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19: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심으로써 어떻게 우리를 품에 안으시고 꽉 달라붙게 함으로 말미암아 구원하시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주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하신 구원하시는 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막달라 마리아와 삭개오에 대한 성경 말씀인데요.
하나님에 의하여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가 되고 바로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있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있게 하기 위한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 품에 안겨야 하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만을 전적으로 붙들어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사람을 구원하신 길을 이 막달라 마리아와 삭개오를 통해서 우리에게 아주 적나라하고도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먼저 19장 5절 말씀을 통해서 삭개오야 이리 내려올래 라고 먼저
주님께서 우리를 영접해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먼저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영접해 주셔야
주님을 우리가 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삭개오가 급히 내려와 기뻐하며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이 예수님을 기뻐하면서 영접한 것이 바로 뭡니까? 하나님의 품에 안긴 것입니다.
이거 얼마나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먼저 삭개오야 내려올래라고 그분께서 두 팔 벌리고 삭개오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 초청에 응하여서 반응하여서 나타난 그 삭개오가 19장 6절에서 삭개오가 급히
내려왔어요. 여러분 그냥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그 자신을 영접 하고자 초청하는 그 말씀의 부르심에 얼마나 기뻤던지 그 뽕나무에 올라갔던 삭개오가 아마도 그 뽕나무 위에서 그냥 주르륵 줄을 타고 내려오듯이 그렇게 내려오지 않았을까요 기뻐하면서 예수님이 영접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품에 안긴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께 달라붙을 필요가 있는데 어떨 때 우리가 그분께 달라붙어서 꽉 떨어지지 않게 될까요?
여러분 원숭이가 자기 새끼를 돌볼 때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렇게 뛰어갈 때
이 새끼가 꽉 어미에 가슴을 붙잡고 부여잡고 떨어지지 않고 있는 모습을 우리가 종종 동물의 왕국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캥거루를 보세요 캥거루 새끼가 적을 때는 캥거루 주머니에 있지만 어느
정도 큰 다음에는 어미 가슴에 달라붙어서 함께 하나가 되어 사는 삶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가 되어 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자신의 품에 안겨주시고, 먼저 초청하셔서
그분이 우리를 품에 안으실 수 있도록 초청하시고, 그다음에 삭개오가 급하게 내려와서 기쁨으로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품에 안김으로 말미암아 이제 달라붙는 일이 필요한데, 그 달라붙는 일이 8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율법에 따른 배상 조건인 내가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뿐 아니라, 그리고 내가 누구의 것을
속여서 늑탈하고 빼앗고 강탈한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겠습니다.
율법에 따른 배상 조건인 출애굽기 22장 1절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내가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 소유를 내놓고 4배로 늑탈한 것을 내가 다 갚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이렇게 고백한 것이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그분께 꽉 달라붙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 꽉 달라붙기 위해서 이 8절 말씀을 통해서 소유의 절반을 내놓고
네 배로 내가 갖겠다라는 율법에 따른 배상 조건에 대한 이러한 일을 행하겠다 라고 고백할 때 삭개오는
하나님의 품에 안김으로 말미암아 꽉 달라붙어서 그리스도가 삭개오 안에 계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삭개오의 이 행위는 주님과 이제 나는 하나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내 안에 계십니다 라는
이 표현을 누가복음 19장 1절부터 10절까지의 특별히 말씀 가운데서 이렇게 기뻐하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영접하기 전에 먼저 삭개오를 초청하신 그 은혜와 사랑과 자비와 긍휼과 불쌍히 여기심을 통하여 삭개오야
내게 내려 올래 라고 두 팔을 벌리고 가슴을 활짝 열고 그를 맞이하고자 하는 이 모습은 오늘날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을 향한 주님의 그러한 기쁜 소식의 초청이요 우리를 품에 안기 위한 간절한 부르심입니다.
이 삭개오는 거기에 응답을 했어요. 삭개오가 거기에 급하게 아주 재빨리 급히 내려와서 기뻐하며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급하게 반응함으로 말미암아 꽉 주님을 붙잡는 행위를 가짐으로 말미암아 9절에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라고 구원에 대한 얘기를 하십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라고 하나님을 꽉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삶 곧 그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다른 것이 구원이 아니라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지 못하면은 우리가 참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서 고백한다는 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잘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우리가 예수님 안으로 삭개오처럼 이렇게 믿어 그분을 만왕의 왕 바로 아버지의 사랑을 가지고
전적인 책임을 갖고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는 삭개오를 진정 굴복시킬 수 있는 그 그리스도를 통한 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맛봄으로 말미암아 그 삭개오는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게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서 예수님 안에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에 의하여 삭개오가 구원받기 위하여 먼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긍휼의 마음으로
우리를 가슴 문을 여시고 초청하셔야 되고 초청에 반응하여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 위하여 급히 내려와 기쁨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고 그 행위에 따른 결과로 하나님을 붙들기 위한 외형적인 표시와 외형적인 결과물로
내가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내어주겠습니다. 내가 늑탈하고 빼앗고 강탈한 세무장으로서 내가 못된 짓을 해서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나 하나님의 율법에 따른 배상 조건을 다 이루겠습니다 라고 할 때 오늘날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하나님의 품에 삭개오가 안겼다 라는 뜻이며, 하나님을 붙잡았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삶인 것입니다. 구원의 길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삶인 것입니다.
삭개오가 지금 이 행위를 보인 것은 하나님과 나는 이제 하나가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이제 내 안에 계십니다.
무엇으로 삭개오가 내어 보일 수 있었을까요 ? 그것은 기쁨으로 급히 나무에서 내려와서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어주었고, 늑탈한 것을 네 배로 갚은 그 율법에 따른
배상 조건을 다 이룸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신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라고 칭해준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박국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놀라운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라는
말씀의 중요성을 암시하고 있는 계시인 것입니다.
이 하박국 선지자를 통한 사역 시기는 대략 한 610년경부터 626년 사이에 사역을 했던 것으로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바벨론이 침입하여서 이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인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간 시기인 대략적으로 크게 나눠서 약 40년이 지난 B.C 586년에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는데 이 하박국 선지자를 통한 약 40년이 지난 때 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선민 이스라엘
백성인 유다 나라가 멸망당한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하박국 선지자의 이 사역의 장소는 남왕국 유다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욥은 자신의 문제로 질문을 하였지만 하박국 선지자는 국가적인 문제인 선민 이스라엘 민족인
그 대표자인 남왕국 유다 민족의 의혹과 의심을 그 문제를 가지고 질문을 하는 질문의 대언자로 불리는
자가 바로 하박국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신데 왜 선민 이스라엘을 이렇게 혹독하게 갈대아 사람들에 의하여 멸망시키겠다고 선포하십니까? 그리고 북 이스라엘 왕국은 이미 앗시리아인들에 의하여 징계를 당하고 그리고 이 하박국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왜 포악하고 이렇게 잔인무도한 갈대아 사람들에 의하여 선민 남 유다가 멸망
당해야 됩니까? 왜 그렇습니까? 왜 열국은 가만히 내버려두고 왜 선민 이스라엘만 이렇게 하나님이 혹독하게
다루십니까 라는 이러한 의혹과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이러한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의혹과 의문들을 우리를 대신해서 물어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베드로전서 4장 17절 말씀을 통하여 4: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라는
이 선민 이스라엘을 먼저 하나님께서 이 갈대아인들을 수단과 도구로 등장시켜서 징계하십니다.
먼저 선민 이스라엘이 매 맞음을 당합니다. 이것이 베드로전서 4장 17절에 기록된 것처럼 때가 이름에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심판이 먼저 선민 이스라엘 곧 신약 시대를 살고 있는 성도들까지도 포함한 선민 이스라엘 곧 남왕국 유다에게
이렇게 시작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자들인 열국들 세상 사람들은 그 세상 사람들의 마지막은 어떠하겠느냐 라는 것을 얘기하는 이 베드로전서 4장 17절에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먼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는 이것에 대해서 아주 일률적으로 보편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특정한 선민 북왕국 이스라엘을 포함한 남왕국 유다에 대한 심판을 갈대아인들을 동원시켜서 아주 무자비하시고 잔인하게 앗시리아 사람들을 통해서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시고 남왕국 유다는 갈대아 인들을 통해서 이렇게 징계하시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그 공의와 의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과 거룩하신 속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것을 심판을 통하여 내보이시는데요. 먼저 선민 이스라엘을 때리기 위하여 세상 만물 가운데 강한 나라로
등장한 열국들을 동원시키고 수단과 도구로 사용하셔서 징계 하시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다니엘: 7:1 〔네 짐승 이상〕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7:2 다니엘이 진술하여 가로되 내가 밤에 이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7: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7: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7: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7: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7:7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네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7: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7:9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7: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7:11 그 때에 내가 그 큰 말하는 작은 뿔의 목소리로 인하여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가 상한바 되어 붙는 불에 던진바 되었으며
7:12 그 남은 모든 짐승은 그 권세를 빼았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그래서 이 선민 이스라엘은 갈대아인들에 의하여 심판을 받게 하고 이 갈대아인들은 또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되고 바벨론은 또 나중에 메대 페르시아 제국에 의하여 멸망되는 것을 다니엘서 2장에 보면 이것이 금신상, 은신상, 놋신상 그리고 쇠와 진흙으로 만들어진 바로 거대한 인간 정부의 형상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고 7장에서는
다니엘 선지자의 이상을 통해서 사나운 짐승들로 표현된 그런 대해 지중해에서 올라온 사자와 곰과 날개 달린
그런 표범의 모습과 그리고 무시무시한 열뿔을 가진 로마 제국에 대해서 이렇게 보여지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 제국은 사자로 표현돼 있고 메대 페르시아는 곰으로 무지막지하고 아주 포학한 힘을 가진 메대 페르시아 제국으로 그 다음에 헬라 제국은 날개 달린 표범을 가짐으로 말미 신속하게 세상 나라들을 정복하는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고 이 헬라 제국은 누구에 의해서 멸망이 됩니까 ? 로마 제국 예 흉축한 열뿔달린 쇠
이빨을 가진 무시무시한 로마 제국에 의해서 패배당하고 소멸당하는 것을 계속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요엘서 1장 4절에서는 세상 나라들에 대한 인간 정부의 형상과 사나운 짐승들로 표현된
바로 이 세상 나라를 통한 사단과 하나가 된 적 그리스도에 대한 모습들을 바로 메뚜기 군대로 표현하고
있는데 메뚜기 군대가 바벨론 제국을 상징하고 있는 바로 그러한 갉아 먹는 메뚜기 이고 이 메뚜기가 먹고
남은 것을 또 떼 짓는 메뚜기가 와서 먹고 메대 페르시아죠 얼마나 숫자가 많습니까?
그리고 떼짓는 메뚜기가 먹고 남은 것을 핥아 먹는 메뚜기는 헬라 제국 마케도니아 제국인 알렉산더대왕의
메뚜기 떼를 통해서 소멸당하는 것을 볼 수가 있고 또 이 헬라 제국은 신흥 제국의 세력으로 등장한 기원전
약 44년 전에 나타난 로마 제국에 의하여 핥아 먹는 메뚜기 군대가 파멸을 당하고 이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황충 메뚜기인 로마 제국 점점점 강도와 세기가 그 먹어치우는 흉폭함과 강포함이 아주 비중을 더해가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나라들 가운데 그 당시 때마다 등장하고 있는 이 제국들 메대 페르시아 제국, 헬라 제국, 로마 제국에 의하여 선민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고 끊임없이 고통당하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고통 당하게 하고 왜 이렇게 심판의 징계를 세상 나라들 열국을 통해서 선민 이스라엘이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이 중심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위한 일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의인는 믿음으로 산다 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춰 계신 삼일 하나님의 이 최종 완성된 영의 부어짐이 있어야 세상 역사가 죄에 대한 문제가 사단으로 기인한 우주 전체에 만연된 죄의 독소가 다 해소될 수 있고, 청결하게
할 수 있고, 마감할 수가 있고, 말소될 수가 있고, 끝내실 수가 있고, 다 처리할 수가 있기 때문에 이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이일 때문에 어그러진 삶을 살고 있는 선민 이스라엘을 교화시키고 교정시키다 보니 바로 열국을 통하여 이때 당시에 갈대아인들을 통하여 선민 이스라엘 남유다를 때리시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 2장과 다니엘서 7장에서 인간 정부 전체를 멸망시키기 위해 그 당시 때마다 드러난
이 바벨론 제국과 헬라 제국, 메대 페르시아 제국,로마 제국, 그래서 그때마다 드러난 바벨론 제국은 또
메대 페르시아에 소멸되고또 메대 페르시아는 헬라제국에 의해서 일정한 때가 됨으로 말미암아 소멸이 되고
헬라 제국은 로마 제국에 의해서 패배당합니다.
그리고 지금 2천년이라는 시간이 예수님이 오신 후에 지났습니다.
그럼 로마 제국은 어떻게 될까요? 적 그리스도에 의하여 더욱더 기세 등등한 강한 힘으로 회복된 로마 제국은
다니엘서 2장 34절과 특별히 35절 말씀을 통해서 인간 정부 전체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오시는 그리스도께
패배당할 것이라고 바로 기록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34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2:35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바로 이 인간 정부 전체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오시는 돌이신 산돌이신 그리스도께 완전히 패배 당함으로
말미암아 여름 타작마당에 겨같이 되어서 바람에 날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러한 강대한 적그리스도에
의하여 정말 살기 등등한 존재자로 회복된 로마 제국은 결국은 산돌이신 그리스도에 의하여 완전히
패배당할 것을 이 인간 정부 전체가 멸망당할 것임을 성경은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산돌은 거대한 인간 형상의 운명을 손도 대지 않고 떠내려진 돌에 의하여 날아가는 돌에 의하여 산산이
부서진다라고 성경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랐습니까? 예 이 산돌이신 이 산돌 그 자체는 바로
베드로를 올려놓은 이 산돌이신 그리스도이시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을
통한 하나님에 의하여 죽음에 넘겨지셨고 그리고 하나님에 의하여 쪼개지셨다 라고 스가랴서 3장 9절과
사도행전 2장 23절에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3: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2: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바로 하나님의 경륜의 계획에 따라서 십자가의 죽음에 넘겨지셔서 유대인들을 통해서 죽음을 당하시고
그리고 세상 법적인 로마 제국의 법을 통하여 죽음에 넘겨지셔서 하나님에 의하여 쪼개지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의하여 떠내어지심으로
말미암아 세 방면을 지니신 돌이 되셨음으로 산돌이라고 우리가 일컫는 것입니다.
예 교회 건축을 위한 기초돌 우리 성도들을 위한 돌이죠. 모퉁이 돌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하여서는
걸림돌 그리고 교회 건축을 위해서는 기초 돌이 되시고 모퉁이돌이 되시지만 또 유대인들을 향해서는
시험하는 돌 걸림돌이 되셔서 실족하게 만들고 또 인간 정부 총체를 멸하는 산산이 깨뜨려 부수는
돌이 된다 라고 마태복음 21장 44절에 기록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1: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이 산산이 부수는 산돌로 오실 때 절대적으로 홀로 오시지 않습니다.
홀로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은혜의 시대 비밀의 시대, 교회의 시대에
주님께서 지금 이 홀로 오시지 않고 함께 오시기 위한 이기는 자들인 자신의 군대인 바로 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은 자신의 신부 계시록 19장 7절, 8절에 바로 혼인 잔치를 하는 신부의 모습들을 볼 수가 있죠.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바로 자신의 신부와 함께 혼인 잔치를 벌임과 동시에 자신과 증가된 자들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는
산산이 부수는 돌로 오실 때 홀로 오시지 않고 그 자신의 이기는 자들인 신부가 된 자들과 함께
증가된 돌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 금신상, 은신상, 그 형상의 쇠와 진흙으로 된 발을 쳐서 산산이
부수게 될 수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교회 시대, 비밀의 시대, 은혜의 시대인 지금
이 신약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이러한 자들로 지금 만들고 계심으로 말미암아 지체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왜 지체되고 있냐면 하나님의 원수와 전쟁을 하기 위해서 이긴 자들이 필요한데,
이긴 자들이 아직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건 신부가 될 자들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결혼식에 참여해서 치르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기는 자들이 되어서 이 적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를 따르는 모든 악한 세력들과 함께 전쟁을 치루어서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백마를 탄 그리스도와 함께 뒤를 따르는 전쟁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의 용사를 조성하시고 만드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세상 가운데서 이겨본 경험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로 결혼식을 한 후에 계시록 19장 7절 8절 말씀이죠.
바로 남편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갓 결혼한 그 신부들과 함께 오셔서 자신의 군대인 그 이긴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직접 대항해 싸우려는 적 그리스도와 하나된 바로 사단과 하나된 모든 적 그리스도의 세력을 면하실
것이라고 계시록 17장 14절과 19장 19절에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19: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예 하나님에 의하여 떠내어진 이 돌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산돌이 되십니다.
예 산돌은 친히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성도들에게는 바로 건축을 위한
기초돌과 모통이 돌이 되시고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는 실족하게 하는 시험돌과 걸림돌이 되게 하시고,
세상 나라들, 세상 열방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산산이 부수는 돌이 됨으로 말미암아 산돌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 이기는 자들과 함께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싸우는 그 전쟁이 인류 최대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인 것입니다. 예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신부가 되고 증가된 단체적인 산돌을 통하여 적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모든 열왕들
세상 정부들이죠, 그동안에 함축 되어진 열왕들을 한꺼번에 침으로 말미암아 계시록 19장 11절에서부터
21절까지 기록되어 있죠 거대한 형상을 가진 가장 약한 아킬레스건인 발가락부터 머리까지 산산이 부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19:11 〔백마를 탄 자〕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9:12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9: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9: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19: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9:18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19: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왜 그렇습니까? 이것은 사탄과 하나가 된 인류 최초의 영걸인 니므롯에 의하여 발원되어서 앗시리아를
통해서 바벨론 제국을 통해서, 메데 페르시아를 통해서, 헬라 제국을 통해서, 로마 제국을 통해서 지금까지
사단에 의하여 기세 등등한 큰 힘을 가진 정치적인 바벨론, 종교적인 바벨론, 물질적인 바벨론 세력을 가지게 된 이 인간 정부 총체에 대한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심판이 될 것이 바로 다니엘서 2장 35절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아마겟돈 전쟁인 것입니다.
2:35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그래서 이렇게 옛 창조 안에 있는 인간 정부 총체에 대한 사단과 하나가 된 적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모든
세력들을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신부와 함께 증가된 자들과 함께 백마를 타고 세상에 내려오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심판이 될 것입니다. 이 우주에 전체적으로 만연돼 있는 죄의 냄새와 부패된
독소들을 완전히 깨끗하게 청결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창조 안에 있는 이 땅의 인간 정부 시대가 완전히 처리가 되고 종결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천년 왕국과 더불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온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다니엘서 2장 34절, 35절 말씀을 통해서 적그리스도에 의하여 사단과 하나가 되어서 큰 힘을
가진 이 로마 제국은 결국 적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그 적대적 세력들인 그러한 모든 악에 속한 무리들을
산돌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 정부 전체와 더불어 사단과 하나가 된 모든 인간 정부
전체와 사단까지도 포함한 바로 모든 것들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오시는 그리스도께 패배 당할 것이므로
말미암아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을 이루신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이 중심 사상들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신데
왜?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이 조금 잘못했다고 해서 선민 이스라엘을 왜 강포한 갈대아인들을 수단과
도구로 사용해서 우리들을 징계하시고, 왜? 저들은 가만히 내버려 두십니까 라는 의혹과 의문과
그런 반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먼저는 자신의 선민을 심판하시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 자신의 집에서부터 시작되기 위해서 선민 이스라엘을 때리시지만,
그 선민 이스라엘을 혹독하게 때린 잘못을 범한 세상 나라들 가운데 열국으로 등장한 그러한 나라들을
하나님께서 그냥 방관하시지 않고 악한 이스라엘과 함께 강포한 갈대아인들 모두를 둘 다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을 이렇게 혹독하게 다루었다 라면 마지막에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 세상 마귀를 대표하는 갈대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얼마나 혹독하겠느냐 라는 것을 은연중에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이스라엘과 강포한 갈대아인들을 모두 심판하실 때 의인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라고
하박국 2장 4절에 아주 황금 구절의 말씀입니다.
예 이것을 통하여 온 땅에 하나님의 공의와 의가 드러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의 실체를 알게 하신다라는 것이 2장 14절 말씀인 것입니다.
2:14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여호와의 영광을 알게 하기 위해서 온 땅으로 거룩한 성전에 계신 여호와의 영광을 선민 이스라엘과
강포한 갈대아인들을 둘 다 심판함으로 말미암아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함으로 말미암아
온 땅으로 하여금 거룩한 성전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 앞에
아무도 그 어떤 말로도 반박하지 못하도록 의문과 의혹을 갖지 못하도록 입을 다물게 하려는 잠잠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여호와 앞에 누구도 입을 다물게 할 뿐만 아니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 그러한 자들로 하여금
신뢰와 찬미와 영광으로 찬양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기쁨으로 노래하기 위해서 라고 하박국:3장3절에서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산에서부터 오시도다
(셀라)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하나님께서 데만에서 오시고 거룩하신 분께서 바란산에서 오시는데 그분의 광채는 하늘을 덮고 그분에 대한
찬양은 땅에 가득하다. 그분을 기쁨으로 노래하고 찬양하고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하나님께서는 하박국 선지자와의 오고가는 질문과 대답을 통하여 하박국 선지자가 의아해하고
좀 뭔가 궁금한 그런 내용들을 마치 따지듯 하나님에 대해서 1:2 〔하박국의 호소〕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하고
이렇게 이 선민 이스라엘을 혹독하게 다루고 정말 아주 무자비하게 대하는 갈대아인들을 하나님께서 방관하시는 그러한 모습을 보고 하박국 선지자가 의문을 가지고 첫 번째 여호와께 부르짖는 대화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 갈대아인들의 강포가 성읍에 가득하였는데 왜 어찌하여서 그들의 3절에
보면 1:3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아니 저 갈대아인들을 하나님이 내버려 두신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나는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파괴와 폭력이 내 앞에 있는데 다툼이 있고 분쟁이 일어나는데 4절에 그러니 법은 효력이 없고 정의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으니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정의는 어디 있습니까? 도대체 이 일들이 무슨 일들입니까?
갈대아인들을 통하여 선민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의로운 심판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방관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을 자신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라고 얘기하는 것은 그 선민 이스라엘 전체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이 이렇게 멸망을 하였던 것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선민 이스라엘 그리고 오늘날 이 시대에
살고 있는 교회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대답이 이 하박국 선지자를 통한 응답의 말씀이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계신냐 하면 하박국 1장5~11절에 말씀하고 계시죠.
1:5 〔여호와의 응답〕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찌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찌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1:6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 아닌 거할 곳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1:7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심판과 위령이 자기로 말미암으며
1:8 그 말은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 기병은 원방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기병이라 마치 식물을 움키려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1:9 그들은 다 강포를 행하러 오는데 앞을 향하여 나아가며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 같이 많이 할 것이요
1:10 열왕을 멸시하며 방백을 치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취할 것이라
1:11 그들은 그 힘으로 자기 신을 삼는 자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득죄하리라
먼저 하박국 신언자가 여호와 하나님께 질문을 한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1장 12절
1:12 〔하박국이 다시 호소하다〕 선지가 가로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를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를 세우셨나이다
1: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하나님께 택정받고 돌봄과 가르침을 받는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 아래에 있는 자신들을 때리려고
심판하시려고 오히려 그들을 만세전에 이렇게 그들을 정해 두셨다 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어째서 저렇게 강포하며 잔인한 야수와도 같은 갈대아인들 야수같고 게으른 자들을 방관하여
내버려두시고 저희들은 어떤 면에서 의로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데 의로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선민을
삼키도록 할 때까지 하나님은 아무런 일도 아니하시고 잠잠하시고 계십니까? 아무런 일도 하시지 못하시는
것처럼 그냥 잠잠히 계십니까 라고 하나님께 매우 하박국 신언자가 화가 나서 따지듯 마치 하나님이 피의자고
자신들이 피해자인 것처럼고소자가 된 듯 하나님께 따따 부따 하고 있는 바로 하나님의 처사에 대하여 매우
못마땅하고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기분 나쁜 마음을 가진 선민 이스라엘의 마음이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 왜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저들이 더 번영을 하고 저들이 더 행복하고
건강하고 어떻게 해서 저들은 징계를 받는 일이 없이 오히려 우리들만 하나님 이렇게 비천한 처지에 빠지게
함과 동시에 우리만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처사가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라는 마치 욥과 요나의 의혹과 의문과 같은 이러한 못마땅한 심정을 가진 자들이 바로 오늘날 이 하박국 선지자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1장 12절과 13절에 하박국 선지자가 여호와께 자기의 궁금한 것을 하나님께 여쭙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저들이 악인들이고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 선인 임에도 우리가 저들보다는 의로울진대
어떻게 의로운 우리들보다 악한 저들을 하나님 가만히 내버려 잠잠히 계십니까? 라는 이것에 대해서
이 신언자인 하박국 선지자가 2장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응답하시는지를 알기 위하여 잠을 자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2장 1절 말씀입니다.
나아가 내 파수 초소에 있어서 요새에 자리를 잡고 그분께서 나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또
나의 불평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지켜보리라.
하나님 왜 우리들이 아닌 저들 열국이 살육당해야 되는데 오히려 열국을 통해서 우리가 고통당하는
이 이상한 일들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것에 대해서 대답 좀 해보십시오 라고 자신이 따지듯 불평하는
못마땅한 하나님의 처사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대답하시는지를 보기 위해서 잠을 자지 않고 밤새 뜬눈으로 자신의 불평에 대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를 파수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2장 1절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들의에게 숨겨져 있는 본 바탕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인 하박국 선지자에게 응답하기를 하박국아 내가 지금 너에게 얘기할 텐데
갈대아인들에 대한 이 열국에 대한 선민 이스라엘이 아닌 의로운 자들이 아닌 이 불의한 자들에 의해서
그나마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 그 선민 이스라엘을 향한 이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이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여
모든 자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하라
라고 먼저 이것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 2절 말씀입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나에게 대답하셨다. 이상을 기록하되 판에 분명히 새겨서 달리는 이도 읽을 수 있도록
크게 공개적으로 모든 자들이 인식하고 깨닫고 바로 그것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하라 라고 중요하게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이 말씀을 통해서 이 예언의 계시, 묵시의 이상을 통해서
정한 때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 종말의 때가 되면 그 종말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신 분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 종말의 때에는 속히 이 일들을 이루고 결코 변역되거나
잘못되거나 거짓되지 않고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장면이 3절의 말씀입니다.
이 이상은 장차 정해진 때를 위한 것이니 끝을 재촉하고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라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신언자인 하박국 선지자에게 대답하신 것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좀 지체가 될지라도 왜요? 선민 이스라엘이 아닌 저 열국들은 가만히 내버려두시고 그냥 있고
번영을 하고 강대해져서 우리를 못 살게 굴고 고통을 주고 선민 이스라엘만 이렇게 핍박을 당해야 하며
왜 이렇게 어렵고 곤고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네가 이해가 안 될지라도 비록 지체되고 더딜지라도하박국 선지자와 그 뜻을 같이 하는 선민 이스라엘과 그리고 신약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도
이것을 다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비록 지체되고 더딜지라도 하박국 선지자는 그것을 다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이 일은 때가 되면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늦어지더라도 너희는 기다리라 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갈대아인들은 마음이 교만해지고 악하고 강포해짐으로 말미암아 저들의 혼들이 그 속에서
정직하지 아니하여서 이렇게 멸망을 당하나 의인들은 자신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라고
얘기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한 일을 고대하고 갈망하는 하나님의 경륜의 계획이신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한 그러한 갈망과 소망을 가진 자들에게는 바로 의인는 믿음으로 산다 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갈대아인들은 강포합니다 마음이 교만합니다 잔인합니다.
얼마나 무자비한 그런 학살을 하는 자들인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반드시 때가 되면 심판하실 텐데 아주 심판하시는 것이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그 심판의 날이 올 것인데 그들의 당하는 그 심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혹독한 심판이시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열국을 향한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고통 가운데 빠지게
했던 그들은 처음에는 심판받지 않으나 때가 되면 심판받게 되는 일이 나올 텐데 그 때가 되어서 심판받게
될 때는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속히 이루실 것인데 그 심판의 일들이 너무나 공정하고 너무나 합당하고 너무나
정당하다 라는 것입니다.
예 하박국 선지자만이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죄인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신 생명 안에 속한 사랑을 앎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살게 될 때 죄인들까지도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베푸신다. 라는 것을 2장 4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진실함으로〕
신약 성경에서 사도바울 선생님이 이것을 로마서 1장 17절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 히브리서 10장38절에
똑같이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라고 얘기를 계속적으로 신약 성경에서 인용을 하고 있는데요
이 말씀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참 사랑을 십자가를 통하여 맛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 안에 있는 그 사랑을 맛봄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고 그 생명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산다 라는 것은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생명을 얻는 일은 그 생명 안에 있는 사랑인 것입니다.
생명 안에서의 그 사랑 생명에 속한 그 사랑을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맛봄으로
말미암아 생명으로 사랑하는 행위가 산다 라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처음에 하박국 이름의 뜻인 하나님의 품에 안기고 그분께 딱 달라붙는다 라는 하박국의 히브리어
원문의 이름의 뜻이 품에 안다 달라붙다 라는 이러한 것을 통하여 영원한 구원이 하나님의 품에 안기고
그분께 딱 달라붙는 이들에게 곧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삭개오와 같은 자들을
품으셔서 그 사람이 나를 꽉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으로 오신 피와살을 가진 예수라 이름하는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구원하는 사람의 줄들이며 곧 사랑의 끈들이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인성을 통해서 바로 구원을 베푸시겠다 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삭개오처럼 하나님의 품에 안겨야 합니다. 하나님 붙들어야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의 그 멸망함이 때가 되어서 지체함이 없이 속히 이룰 텐데 그때는
그 누구도 심판을 피할수 없으며 심판의 그 혹독함과 멸망당하는 것에 대한 무시무시한 두려움
또한 있지만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라고 얘기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구원 받게 하려는 하나님의
참 사랑을 우리가 엿볼 수가 있습니다.
예 산다는 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먹고 그리스도의 그 생명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생명 안에는 아버지의 하나님의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는 사랑이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아니하는 사랑 끝까지 쫓아가는 사랑 책임을 다하는 사랑 끝까지 환도뼈를 쳐서 불구자로 만들어서
라도 아버지의 그 기업을 다 훼손시키고 다 허비하고 낭비하게 할지라도 그 생명만은 보존하고자 함으로 말미암아 그 아버지의 사랑을 맛봄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굴복하게 되었던 탕자의 아버지를 향한 사랑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산다 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기에서 보면 사도바울 선생님이 로마서 1장17절과 갈라디아서 3장 11절,
히브리서10장 38절에도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로마서 1장 17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합 2:4〕
17절에 처음에 뭐라고 써 있냐면 믿음에서 나와 믿음에서 나와야 됩니다.
예 믿음에 이르게 하는 여러분 삭개오를 구원시킨 하나님의 그 사람의 줄과 사랑의 끈은 우리를 먼저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초청을 가슴문을 활짝 열고 삭개오야 이리 내려올래 라고 초청해 주는
영접해 주는 일이 먼저 선제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에서 나와 믿음에 이를수 있게 주님께서 먼저 선제적으로 우리를 가슴을 활짝 열고 영접해 줌으로
말미암아 삭개오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품에 꼭 안겨서 그분께 달라붙을 수 있는 그 근거와 기틀과 바탕이
되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나와 믿음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에 의하여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이 복음에 계시되어 있는데 성경에 이르기를 의인은 믿음으로 생명을 얻고 살 것이다 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 믿음에서 나와 믿음이 하나님의 의가 계실 때는 근원과 기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이신,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의 의만이 우리를 믿음으로 끌어 당길 수 있는 근원과
기초가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 야곱의 이 믿음은 의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수신기이자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 바로 이 믿음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예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존귀한 보배함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담는 존귀한 그릇이 되지 아니하면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면 할수록 그분의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더욱더 빛나고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믿음에 이르게 하며 이 믿음이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보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것이라는 얘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이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내 주시고 보여주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사람의 줄과 사랑의 끈이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와 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근원과 동기가 된다 라는 얘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유일한 길이요,
수단인 것이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능력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의를
우리가 소유할 수도 없다 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견고하고도 확고부동한 사람의 줄로 오신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와 사랑의 끈으로 오신 인성을 가진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가 된다 라고 시편 89편 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89:14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
법적인 면에서 이 사랑과 은혜는 하나님이 때마다 조금씩 변동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공의는 절대 변동되거나 변개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법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지는 기틀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사랑과 은혜와 달리 변동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과 은혜는 사람에 따라서 사랑을 베풀 수도 은혜를 베풀 수도, 사랑과 은혜가 아닌 보복하시고
진노하시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지만, 보복하시고 진노하시는 것은 의에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의는 절대적으로 법적인 면에서 변동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민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이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돌봄과 가르침 가운데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삶을 살 때는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고 징벌하신다 라는 얘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계시된 이 그리스도라는 이 의는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인 것입니다.
사람의 줄이 되시고 사랑의 끈이 되시는 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와 인성을 가지고 오셔서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이루신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가 되시는 의이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생명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의 원동력의 시작점인 것이며,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로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지니신 생명과 본성
그리고 그분의 품성과 인격을 우리가 얻고 로마서 5장 18절 말씀입니다.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즉 다른 말로 한다면 하나님과 똑같은 자로 만들게 하기 위한 것이 곧 예수님의 인성을 소유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자들로 만듦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있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게 하기 위한 하나가 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혹독하고도
철저하게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생명을 허락해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혹독하게 하시는 공의와
의의 심판과 막대기와 징계와 징벌을 통하여 우리를 변화시켜주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의롭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 로마서 전체는 그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서 우리가 때림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때림에 의해서 교정이 되고, 교화가 되고, 변화가 되고 조성이 되는 하나님의 생명 안에 있는 사랑,
하나님의 생명에 속한 사랑인 아버지의 사랑을 통하여 우리를 때리심으로 말미암아 야곱을 그렇게 혹독하게
때려서 불구자로 만드시는 것을 보세요. 그 야곱을 의롭게 하여 주셔서 이스라엘로 만들어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안배였던 것입니다.
이 생명을 가지고 예수님과 같은 자로 살게 하여서 합당하게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살기에 적합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일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계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박국 성경 전체의 말씀을 보면 선민 이스라엘들을 향한 이 세상 나라를 대표하고 있는
아주 무자비 하고 강포하기가 짝이 없는 학살을 자행하는 이 갈대아인들을 통하여 교회들을 무너뜨리고
실족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선민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기 위한 이런한 일들이 사실은 선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안배요 배려라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 안에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그 공의 안에 있지만 그 안에는 함축되어져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되었던 이방인들이 되었던 결국 하나님의 심판에 처해져 죽을 운명에 처해져 있지만 먼저는 유대인들 하나님의 집 안에서부터 심판이 시작되고 뒤 이어서 때가 되면 지체되지 않고 모든 죄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안에 처해짐으로 말미암아 죽을 운명의
멸망에 처하게 된다 라는 얘기가 로마서 6장 23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러면 이 모든 죄인들이 하나님의 심판 안에서 죽을 운명에 처해 있다라고 로마서 6장 23절은
기록하고 있는데 그러면 이 죄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어떻게하나님의 심판과 죽음과
멸망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소유받아 구원받을 수 있는가 라는 문제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암시되어
있는 것이 바로 3장의 기도 내용인 것입니다.
그 내용은 하박국 선지자가 기도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 가운데 신뢰하는 가운데 그분을 찬양하며
부르는 즐거운 기쁨의 노래인 것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그가 아~ 하나님 그렇습니까 라면서 여기서
보면 맨 마지막에 하박국서 3장 10절, 18절에 제가 여호 안에서 크게 기뻐하며 제 구원의 하나님께서
기뻐하려 합니다. 여호와 주님은 저의 힘이시니 그분은 저의 발을 암사슴의 발처럼 만드시고 저를 저의
높은 것들로 걷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하박국 선지자가 여호와를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 의문과 의혹을 가지고 하나님의 옳지 못한 처사에 대해서 못마땅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화난 마음으로 따지듯이 하나님께 논쟁을 통하여 질문의 대언자로 나타났던 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그런 의혹과 질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첫 번째, 두 번째 대답들을 통해서 죄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영원히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한 곧 죄인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게 되고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을 얻고 사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2장 4절의 말씀인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유대인들이 되었던, 이방인들이 되었던 모든 죄인들이
이렇게 기가 막혀 죽을 운명의 팔자의 소관이 되어서 죽을 운명에 처해진 자들이 될 수밖에 없지만
로마서 6장 23절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세상에 나타나시기만 하면
무엇을 통해서?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의 중심이신 열국을 통한 이 선민 이스라엘을 때리는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을 자꾸 이끌어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꾸 나타나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끌어오시고 나타나게 하신 예수님이 급기야
오시게 되면 바로 이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영
이 최종 완성된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요 하나님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이 모든 문제들이
해결이되고 죽음과 부활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최종 완성된 영의 부어짐이 있을 것이라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은 삭개오처럼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를 믿어
품에 영접한 그에 의해서 반응을 함으로 말미암아 신속히 나무에서 내려와 그분을 영접함으로 품에 안기게
되어서 바로 인성을 가지고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품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삭개오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야 됩니다.
하나님을 꽉 붙들어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줄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사랑의 끈이신 인성을 가지고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을
품어주실 수가 있었고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 붙잡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은 사람을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성 안으로 오셔서 성육신 하신 것이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과 1장 14절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 안에서 시간 안으로 오셨고 하늘에서부터 땅으로 오셨고 신성 안에서 인성 안으로 오셔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실 수가 있으셨던 것이지 하나님이 그냥 말씀으로 뚝딱 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은 이러한 과정인 성육신하심으로 그 인성을 가지고 오시는 이 일 때문에 얼마나
하나님이 고통을 당하셨어요 이런 복잡하고도 어려운 과정은 그냥 이루어진 일들이 아니라 이렇게
최종적으로 이런 과정들을 거쳐서 완성된 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영,
바로 그 영이신 예수님이 그토록 말씀하셨던 그 아브라함에게 축복하고자 했던 그 영 그 축복의 그 당사자가
바로 그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것입니다.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최종 완성된 영의 부어짐이 성령님 하나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 아버지 하나님이신 삼일 하나님의 영 바로 그 영을 통하여 우리가 의롭게 되고 그 영을 통하여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을 얻고 살 수 있다는 이것만이 우리의 온존재인 영과 혼과 육을 영원히 구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은 우리의 영뿐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과 혼 뿐만이 아니라 몸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은 우리의 몸까지도 고통으로부터 구원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온 존재인 영과 혼과 육을 영원히
구원하시는 것이라고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3절에 말씀을 읽으면서 말씀의 교제를 마칠까 합니다.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화평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이 모든 영과 혼과 몸 이것을 완전하게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원하신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과 구원을 받아들이는 길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의 영이신 그리스도, 예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그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아버지와 아들과 영, 바로 그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영적인 몸을 취하신 영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에 의하여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영생, 구원,
신성한 생명, 거룩한 생명 의를 소유할 수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살기에 적합한 자격을 가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하나님 예수님은
나와 하나입니다 라고 고백을 할수 있는자가 되려면 아버지의 그 생명에 속한 사랑을 맛본 삭개오와 같은
자를 통하여 전해주고자 했던 영생인 그 신성한 생명을 얻을 때에만 그 생명에 의하여 우리가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라고 로마서는 계속적으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면서 하박국 1부 교제의 말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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