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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욥기:42:5/ 야고보서:5:11/ 욥의 연단을 통한 하나님의 원대한 경륜의 의미?
    말씀 나눔방 2023. 6. 13. 16:14

    말      씀 :  박 찬 덕선교사

     

     

    오늘은 야고보서 5장 11절 말씀으로 욥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보라 인내(忍耐)하는 자(者)를 우리가 복(福)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忍耐)를 들었고 주(主)께서 주신 결말(結末)을 보았거니와 주(主)는 가장 자비(慈悲)하시고 긍휼(矜恤)히 여기는 자(者)시니라.”

     

    욥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이 생존하였던 B.C 약 2천년 경에 존재하였던 인물이었음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예수님이 오시기 2천년 전에 살고 있었던 믿음의 선진자들인데 바로 이것은 그 후에 아브라함 이후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구원자로 등장하기 오백 년 전에 이 욥기가 또한 기록되었음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욥에 대한 이야기가 전체 42장 말씀을 걸쳐서 이렇게 성경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 욥기 1장 1절부터 5절 말씀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1: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純全)하고 정직(正直)하여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며 악(惡)에서 떠난 자(者)더라 1:2 그 소생(所生)은 남자(男子)가 일곱이요 여자(女子)가 셋이며 1:3 그 소유물(所有物)은 양(羊)이 칠천(七千)이요 약대가 삼천(三千)이요 소가 오백(五百) 겨리요 암 나귀가 오백(五百)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東方) 사람 중(中)에 가장 큰 자(者)라 1:4 그 아들들이 자기(自己) 생일(生日)이면 각각(各各) 자기(自己)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請)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 1:5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聖潔)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燔祭)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或時) 내 아들들이 죄(罪)를 범(犯)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背叛)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行事)가 항상(恒常) 이러하였더라 .”

     

    야고보서 5장 11절을 통해서 욥의 인내에 대해서 봤는데요. 인내하는 것은 외부적인

    어떤 자신에게 가해진 환경들에 대하여 심히 부정적인 모든 가해지는 고통과 어떤

    고난의 일들에 대하여 참고 견디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인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이 자기를 심히 괴롭혔던 여러 가지 유형들 자식들이 죽음을 당하고,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재물들이 손실당하고, 자기의 가족의 일부분이었던 종들이 다 죽음을 당하고 심지어는 자기 몸이 이렇게 심한 악창에 걸려 크게 고통당하는 삶에 대하여 참고 견딘 것과 같은 이러한 것들이 바로 인내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괴롭혔던 외부적인 모든 어떤 그런 상황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가해진

    그러한 일들에 대하여 참고 견딘 것과 같은 것이 인내입니다.

     

    그런데 인내가 욥이 처해진 이 인내는 자신에게 가해진 이런 일들이 어떤 이유에서 이런

    고난이 펼쳐졌는지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다루심에 있어서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롭고 온전하고 올곧은 삶을 살았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순전한 삶을 살았던 욥이 어째서 이러한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었느냐 라는 이유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욥이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따지고 다투고 반문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자신이 피고이고 하나님이 원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피고이고 자신이 마치 원고가 된 양 따따 부따

    이렇게 따지는 장면들이 이렇게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 욥을 통해서 욥기에서는 하나님이 인간 세상과 그리고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이러한 원치 아니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가해질 수밖에 없는 어떤 자연재해 또는 질병또는 사고 또는 어떤 욥과 같은 이러한 이상한 고난들에 대해서 욥의 시대 때는 곧 아브라함의 시대 때는 계시가 확 열려진 이러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열려진 계시의 상황은 신약 시대에 사도바울 선생님을 통해서 그 계시가 온전히 열려졌지만 이 당시에는 열려지지 않은 계시로 인하여 많은 의문점과 궁금증과 그리고 의아함을 가진 채 하나님을 대할 수밖에 없는 그런 장면들이 이렇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궁금증에 대한 얘기의 어떤 결론적인 얘기가 욥기 42장 5절을 보면 내가 주님에 대해 지금까지는 귀로만 들어왔으나 이제는 제 눈으로 주님을 뵈었습니다. 주님을 뵌 정도가 그냥 욥에게 열려진 계시의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욥의 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약 4천년이 지났네요.아브라함과 동시대에 존재 했을 것 같은 이 욥이 2천년 후에 예수님이 오시고

    예수님이 오신 후 2천년이 됐기 때문에 4천 년이 지난 지금의 이 시대에 사는 성도들에게는 주님을 뵌 정도가 아니라 주님을 내 안에 모시고 함께 살고 있는 그런 계시가 확실히

    열어진 상태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뵙는 것은 신약에서 하나님을 얻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이러한 고난을 주신 것은 그 욥 자체가 그 당시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러한 고난들을 허락해 주신 것은 하나님 자신을 욥 안에 조성되도록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요소와 생명과 본성 인격을 소유하게 해서 욥이 자신과 같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한 그러한 일들을 우리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성도들인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자 이 욥이라는 자를 등장시켜서 이러한 일을 설정해 놓은 것입니다.

     

    그 당시에 욥은 하나님과 같은 신적인 요소를 소유받아 인간의 존재 안에 신의 요소를

    소유받아 하나님의 요소와 생명과 본성을 받아들이는 그러한 계시의 단계가 아직 이르지 않았던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거듭나는 일을 통하여 구속 받고 구속 받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고 또 영이 거룩하게 되고 혼이 새롭게

    되고 또 인간의 몸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변화되고 같은 형상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영광스럽게 영화로운 몸을 지니게 하는 것이 주님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이렇게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계속적으로 매일매일 반복하여서 뵐 때 우리는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그 신적인 요소와 생명과 본성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게 되고 우리의 나쁜 요소 부정적인 요소 어둠의 요소 부패와 허물을 갖고 오게

    하는 옛 창조의 세계 안에 속했던 그런 불순적인 옛 요소는 모두 제거되고 배출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뵐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욥을 통해서 가르쳐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뵐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를 통해서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계속 뵙는 일을 통하여 마치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인성을 지니시고 사람 예수님으로 오셔서 그 인성을 지니신 그분께서 부활이라는

    것을 통해서 그 인성이 신성화되는 그 과정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인간 또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변화되게 하기 위해서 듣게 하시고 주님을 뵙게 하고 주님을 소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기 42장 5절에는 내가 주(主)께 대(對)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主)를 뵈옵나이다  이 욥의 당시 때 아브라함 당시 때는 주님에 대하여 귀로만 들을 수밖에 없었던 그런 계시의 단계의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욥의 고난의 시간이 끝날 무렵에 주님을 뵈올 수 있도록 하심으로 말미암아 계시의 문턱을 더욱더 낮춰주시고 더욱더 계시의 문을 열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사도 바울 선생님을 통해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신성의 하나님만의 요소와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우리가 소유하여 그 신성과 인성을 지닌 인간의 결합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화 되어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계시의 문턱을 점점점점 낮춰주는 삶이 구약의 이런 과정의 단계를 거쳐서 신약 시대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경에 빠지게 하고 고난에 빠지게 하고 그런 말할 수 없는 슬픔 가운데 고통 가운데 비참함 가운데 살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욥기서 1장 1절의 말씀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욥이란

    자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온전하고 올곧았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순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온전하고 올곧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순전한 그 사람 그 자체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욥이 그러한 모든 것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교만하고 그리고 하나님 안에 들어가는 일에 거추장스러운 불필요한 것들이며 오히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일에 가까운 그 어떤 그러한 지점보다는

    오히려 선악과 지식의 나무의 열매의 발걸음을 향하고 있는 듯한 그 욥의 처한 형편과

    처지를 보시고 하나님은 방향을 선회하여서 하나님 자신을 부어주시기 위해서 욥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벗겨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욥이 가지고 있는 것이 뭐죠? 하나는 겉 사람이고 하나는 속 사람일 것입니다.

    욥이 가지고 있는 겉사람은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닌 외부의 영역으로 표현된 것들일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을 빼앗기고 물질이 없어지고 종들이 죽고 심지어는 자기 몸에서 산출된 7명의 아들이 있었고 3명의 딸들이 있었는데 그 10명의 자식들이 죽어없어지는 그런 상황까지도  그 욥이 처에 있는 겉 사람에 대한 일부분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유함에 있어서 그러한 좋은 환경들  동방에서 모든  사람들보다도 더 위대한

    자로 내비쳐지는 그 욥의 삶의 형편이 하나님 한 분을 소유하는 일에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 외부적인 겉사람들을 벗겨내시고 그리고 심지어는 욥 자신의

    육체의 삶을 곤고하게 하고 고통을 가하고 질병이라는 것을 악창이라는 것을 허락함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이 가해지는 그런 육체에 대한 손상 때문에 마음과 혼이 굉장히 손상당하고 훼파당하는 일을 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욥 자신을 빼앗아버리고 욥 자신을 제거하고 빼앗아버리고 짓누르게 함으로 말미암아 욥이 가지고 있었던 겉사람의 불필요한 것들을 벗겨내시고 그리고 자기 옆 자신에게 처해지는 그런 위해한 나쁜 상황들로 말미암아 욥 자신을 빼앗아감으로 말미암아 욥이라는 존재의 삶을 허물어뜨리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욥이 이 당시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가하는 이러한 모든 형편들의 삶을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욥기라는 이 긴 장문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필요한 것은 재물도 아니었었고 물질도 아니고 수많은 자식들도 아니고 모든 동방의 자손들보다도 더 위대하게 되는 그러한 이름이 드러나는 자가 아닌 하나님 자신을 욥 안에 부어 넣으시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욥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풍요로운 자였었지만 하나님 보기에는 그는 굉장히 가난한

    자였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자기 자신의 눈으로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가진 더할 나위 없는 풍요로운 자였었지만 하나님 보기에는 하나님 자신이 그 안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허망한 자 공허한 자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욥에게 욥이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빼앗아 버리고 벗겨내시고 또 제거하고 소모시킴으로 말미암아 욥이 하나님만을 더욱더 얻도록 하는 데 있다 라고 이것을 신약 성경의 사도 바울 선생님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에 말씀을 통해서 이것이 더 알려져 있습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내가 모든 것을 또한 해로운 것으로 여기는 것은 내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탁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고 합니다."

     

    욥이 이해하지 못한 이러한 부분들을  빌립보서에는 이러한 말씀이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다른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를 얻는 일에 다 해로운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본성과 생명과 그분의 인품만이 세상에서 모든 것들 가운데 우월하고 탁월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 선생님이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교훈의 말씀은 예수님만이 탁월하시고 존귀하시고 고귀하시고 거룩하시고 지극히 보배로우신 너무나도 뛰어난 가치를 지니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른 어떤 것들은 다 배설물로 여겨진다 라는 것입니다.

     

    욥기서에서  1장 1절에서 말하는 온전하고 올곧았다 이렇게 정직하고 순전한 삶을 살았다 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온전한 것은 속 사람과 관련이 있는 것이고 올곧은 삶을 살았다 라는 말씀은 겉사람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속사람과 관련이 있는 온전한 삶을 살았다는 것은 그가 내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리고 외적으로 겉사람과 관련이 있는 이 올곧은 삶을 살았다 라는 것을 통하여 세상에 내적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긍정적인 삶을 살았고 외적으로는 악에서 떠난 사람이 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세상의 부정적인 것들을 멀리하고 구별된 삶을 살았고 처리하는 그런 삶을 살았다 라는 것입니다.

     

    내적으로도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긍정적인 삶을 살았고 외적으로는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멀리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 됨으로 말미암아 그는 순전한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순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내적인 온전함과 그리고 외적인 올곧은 것의 모든 총체가 순전한 것입니다.

    욥은 순전한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내적으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 너무나도 긍정적으로 살았고 그리고 외적으로도 세상 모든 악에서 떠난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부정적인 것을 다 버린 어둠의 허물과 부패된 것들을 다 멀리하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내적으로

    외적으로 순전한 삶을 살았다 라는 것입니다.

     

    그 순전함이라는 것은 그 존재의 실체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총체적인 표현이죠.

    그래서 성격적으로는 내적으로 온전한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외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그러한 올곧은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윤리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순전함을 그리고 내적으로도 온전한 순전함을 가지고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이러한 면이 좋은 것으로  그래도 지식의 나무보다는 생명나무의 길로 가는 방향으로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를 위해서 하늘나라에서 천사들과 함께 그 욥을 위해서 어떻게 처리해서 그에게 부족한 하나님 자신을 부여해 주시기 위한 그 과정 그 작업 그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두 번의 회의를 가질 정도로 욥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이 욥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러한 온전함과 올곧음 내적인 온전함과 외형적인  올곧음

    이 내적인 온전함과 외형적인 올곧음의 이 순전함이라는 이런 것들은 세상 사람들 눈에는 좋아 보이고 그리고 욥 자신에게 그것이 자신이 어떤 그 면류관의 모양으로 표현될 수 있으나 하나님 보기에는 그것은 이 욥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그 내적인 온전함과 외형적인 올곧음은 하나님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공허하고 허무한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치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욥이 가지고 있었던 그런 온전함과 올곧음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할 수가 없다 라는 것입니다. 그 욥이 온전함과 올곧음을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그 생애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크나큰 위대하신 경륜 하나님의 갈망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비슷한 종류의 온전함과 올곧음 순전함만을 그들에게 전가시킬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온전함과 올곧음과 순전한 그러한 것을 하나님이 바라고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욥의 안에 하나님 자신이 들어가서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본성과 하나님의 인품을 취하는 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세상

    모두에게 전가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는 예수님 오시기 2천년 전의 시대였기 때문에 계시가 온전히 열려진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과 하나님의 인품이 취해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본성과 하나님의

    인품이 인간이란 존재 안에 신성을 지니신 예수님께서 인성을 쓰시고 세상에 오셔서 그

    인성을 쓰시고 오신 주님께서 인간의 존재 안에 같은 종류의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에게 소유 받을 수 있도록 부활이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해 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생명이 분배되고 공급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에 의해서 창에 찔린바 되어서 피와 물을 쏟아냄으로 말미암아 피를 통해서는 구속의 성취를 이루시고 물을 통해서는 생명을 분배시키기 위해서 공급시켜주시기 위해서 나눠주는 통로가 생명수 물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되는데 이때 당시에는 예수님 오시기 2천년 전에 욥의 시대 때는 이러한 일이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삶을 살고 외적으로도 올곧은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순전한 외적으로도 순전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욥을

    사랑하시고 욥을 염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러면 저 욥이라는 자를 통하여 어떻게 장차

    욥과 같은 그러한 마음의 의문점과 마음에 오해들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어떻게 처리하실 것인지 욥을 어떻게 다루실지를 놓고 하늘에서 정말 아주 중요한 두 번의 회의를 여셨다

    라는 것이 욥기 1장 6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그 자들을 자신의 생명으로 얻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취급하시고 다루신다라는 것입니다.그 하나님 자신의 생명과 자신의 본성을 소유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은 그들의 외형적인 삶의 소유를 벗기고 그리고 친히 욥 자신을 치시고 때리고, 두들기고, 억누름으로 말미암아 그가

    가지고 있는 소유를 다 빼앗아버립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고난과 위경들을 이긴 자들에게 고난을 통해 영원한 주님의 그 생명과 본성과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품성을 소유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자신과 함께 영화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바로 하나님 자신으로 이끌어 가시기 위해서 욥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러한 역사를 하나님께서 하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욥이라는 이름의 뜻은 많은 핍박을 받다, 큰 고통을 당하다, 큰 미움을 받다 라는 이런 뜻입니다. 이것은 욥이 하나님께서 그를 처리하고 그를 취급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게 함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이나 또는 타락하지 않은 선한 천사들은 이 일에 나쁜 역할을 가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나쁜 역할을 갖게 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분의 하나님의 묘사

    이시고 오묘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지혜와 자신의 주권으로 사탄에 대한 어떤 그런 것을 어느 정도는 이렇게 열려놓음으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사랑하는 자들을 이렇게 취급함에 있어서 그 사단을 어느 정도 이용하고 어느 정도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기 위하여 부정적인 방면에 요소를 필요를 어떤 그 계획을 채우는  일들을

    하게 하는데 악역을 사단에게 맡겨버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나 선한 천사들은 이 나쁜 역할 악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기 위한 일에 스스로 일하실 수 없기 때문에 이 부정적인 방면에 아주 특별한 요소와 재능을 가진 사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욥을 이렇게 변화시키는 일을 합니다.

     

    욥이 하나님의 경륜에 의해서 그에게 고난이 주어짐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많은 손실과

    많은 손상과 빼앗기는 그러한 그러한 일들을 주어지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친히 하실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사단을 통해서 그 하나님의 크신 지혜와 하나님의 크신 주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사단을 통해서 욥을 벗겨내십니다.

    왜냐하면 사단이 원래 그러한 존재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참으로 오묘하시고 전지전능하시고 큰 지혜와 주권이 있으신 분이라는 것을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경륜을 성취하고자 했을 때 욥에게 나쁜 역할을 자기가 가짐으로 말미암아 욥에게 위해를 가하고 손실을 주고 손상을 시키고 넘어뜨리고 빼앗고 하는 이러한 일들은 선한 천사들은 할 수가 없는 존재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 일을 하나님의 선한 타고난 천사들에게 맡기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구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구하실 수도 없으시고 그리고 요구하려고도 하지 않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부자 청년에게 선한 이가 누구냐 하나님 외에는 선한 자가 없다 라고 얘기한 것처럼 그 하나님과 그 따라가지 않은 선한 천사들은 이러한 나쁜 역할 욥에게서 정말 위해를 가하고 손실을

    주고 재물을 빼앗고 사단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그런 자연재해 태풍과 회오리 바람을 통해서 그의 소유와 생명을 거둬가시는 이러한 정말 이런 도덕적으로 어긋나는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를 이루기 위한 이런 나쁜 역할 이런 벗겨내고 빼앗아버리고  거둬가시는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우주 안에 유일한 존재자인 사단이라는 존재자입니다.

     

    사단과 그와 또 함께하는 타락한 천사들만이 나쁜 역할을 담당하고 나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이 위대하신 깊은 경륜의 의도를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서 이런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과 그런 뜻을 이루는 데 수행할 수 있는 자는 우주 안에 사탄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욥기 2장에 보면 사단이 여전히 어느 정도 자유롭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이 의도적으로 사단을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나쁜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어느 정도 그를 자유롭게 왕래하도록 지금 까지도 허락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2:1 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와서 여호와 앞에 서니  2: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對答)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 왔나이다.” 

     

    지금도 이 사단이라는 존재가 지금도 똑같이 하나님의 깊은 경륜 아래 깊은 지혜와 깊은

    주권 아래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받게 하여서 하나님의 품으로 이끌기 위해서 어느 정도 사탄을 이렇게 자유를 허락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사단을 엄격하게 다루시지만 사단이 또한 여전히 어느 정도는 자유롭다 라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기 위한 깊은 하나님의 지혜에 의해서 이러한 일들이 비롯됐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면은 하나님의 깊은 경륜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동시대에 있었던 욥의 시대 2천년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탄을 멸망시키셨습니다.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사실은 사탄이 멸망당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히브리서 2장 14절에도 히브리서 2장 14절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피와 살을 가졌으므로 그분 자신도 같은 모양으로 피와 살에 참여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죽으심으로써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망시키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죽음 죽으실 때 죽으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망시키셨다라고 히브리서2장14절에 얘기하고 있습니다.

    “2:14 자녀(子女)들은 혈육(血肉)에 함께 속(屬)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貌樣)으로 혈육(血肉)에 함께 속(屬)하심은 사망(死亡)으로 말미암아 사망(死亡)의 세력(勢力)을 잡은 자(者) 곧 마귀(魔鬼)를 없이 하시며 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者)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2:16 이는 실로 천사(天使)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子孫)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사단은 멸망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권리를 아직 빼앗기지

    않았다 라는 것이 여러분 계시록 12장 10절에 기록됐다는 것을 아십니까

    12:10 또 내가 들으니, 한 큰 음성이 하늘에서 말하기를 "이제 구원과 능력과 우리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권세가 임하는도다. 이는 우리 형제들을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고소하던 그 고소자가 쫓겨났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의 출현이 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은 왕국과 함께 완전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난자가 하나님 앞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믿는 이들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여기 뭐라고 쓰여 있냐 하면 10절 하반절에 왜냐면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우리

    형제들을 비난하던 사단이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우리 성도들을 가리지 않고 그냥 밤낮으로 비난하고 있었는데 여러분 이 하나님의 원수인 이 사단이 이때 당시에 계시록 12장 10절에 여전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끊임없이 성도들을 비난하는 일을 통하여 넘어뜨리고 실족하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단절시키게 하는 이 마귀의 이 권리는 언제 완전히 빼앗기게 되냐면 대환란이

    시작될 때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이기는 이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승천하여서 휴거 될 때 사단은 하늘들에서 땅으로

    완전히 내쳐지고 내 던져질 것입니다.

    그것이 계시록 12장 5절에 기록돼 있다라는 것을 여러분 아십니까

    “그 여자가 아들 곧 그 쇠 막대기로 모든 민족을 다스릴 사내 아이를 낳았으며그 아이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보좌로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7절 9절 보겠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12:7 하늘에 전쟁(戰爭)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使者)들이 용(龍)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龍)과 그의 사자(使者)들도 싸우나 12: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12:9 큰 용(龍)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魔鬼)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天下)를 꾀는 자(者)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使者)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

     

    예! 마귀가 가지고 있는 이 실족시키기 위해서 넘어뜨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참소하고 끊임없이 비난하는 이 권리가 바로 대환란이 시작될 때 완전히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이기는 자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휴거되어서 하나님 앞에 서 있을 때 사단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던져질 것이고 그 이후로 사단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권리를 완전히

    빼앗기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권리가 이제는 사용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때까지  이기는 자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휴거될 때까지 사단이 하늘 들에서 완전히 땅으로 내던져지기까지는 끊임없이 사단을 활용하고 사단을 통해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는 일에 있어서 부정적인 방면의 일들을 하게 하기 위해서 사단을 통해서 일들을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욥을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변화시키는 삶을 갖게 해야 되는데 바로 그 부정적인 일을 하게 하는 일은 하나님은 속성이 빚을 소유하신 분이신 고로 그 어둠의 방면의 일들을 하실 수가 없는 일들이기 때문에 사단을 통해서 이러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욥은 온전하고 올곧은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내적으로도 그리고 외적으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정직한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순전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 앞에 온전한 자 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에게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한 가지 모자라고 결핍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데요, 그것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셨습니다.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욥안에는 없었습니다. 욥의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은 것입니다.

     

    욥안에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욥안에 하나님을 계시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욥의 내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온전함과 그리고 외적으로 정직한 삶을 살고 있는 그 올곧음에 관한 그 순전한 삶을 살고 있는 욥을 사단에게 일부러 공개적으로

    자랑합니다. 왜 질투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욥기 1장 8절에 나오죠

    “1: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留意)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純全)하고 정직(正直)하여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며 악(惡)에서

    떠난자가 세상(世上)에 없느니라.” 

     

    이렇게 일부러 욥에 관하여 사탄에게 자랑을 합니다. 드러내 보입니다. 공개적으로

    나타냄니다. 그러니 질투의 화신인 사단이 얼마나 부아가 나고 질투가 나고 했겠습니까?

    그게 바로 2장 3절에도 그렇게 써져 있습니다.

    “2:3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留意)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純全)하고 정직(正直)하여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며 악(惡)에서 떠난 자(者)가 세상(世上)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激動)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自己)의 순전(純全)을 굳게 지켰느니라 .”

    이것이 두 번째 회의가 열렸을때 하나님께서 말씀 하신것입니다.

     

    좀전에 장은 첫 번째 회의가 열렸을 때 사단에게 말씀 하신 것입니다.

    사단이 이렇게 왕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이 하나님의 천사들과 회의를 할 때 그도 왕래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는데 그러한 어둠에 부정적인 방면의 요소들을 이렇게 행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지혜 하나님의 크신 주권에 의해서 이런 일들을 하십니다.

     

    이 욥기 2장 3절 말씀을 듣고 사단이 여호와께 그제야 대답을합니다.

    에이~ 하나님 가죽은 가죽으로 참으로 사람은 자기 목숨을 위해서 가진 모든 것을

    내놓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뻗어 욥의 뼈와 살을 한번 쳐보세요?

    그러면 경외하기는커녕 하나님의 얼굴에 대고 하나님을 저주할 것입니다라고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께서 욥이 부족하고 정직하고 올곧은 삶 이런 순전한 삶을 사는 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올곧은 정직한 삶을 그 세상에 대해서는 모든 것에 대해서는 악에서 떠난 그러한 올곧은 삶을 살고 그리고 긍정적인 면에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온전한 삶을 욥이 행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욥이 가지고 있는 것 자체는 하나님이

    안 계신 가운데에서의 욥의 행위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욥이 진짜 필요한 그거 반드시 지켜야 될 것 취해야 될 것 바로 욥

    안에 하나님을 넣어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계시게 하기 위해서 욥의 부족을 채울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하나님 자신이 아닌 왜냐하면 그 때리고 손상을 주고 위협을 가하고

    죽이고 또 태풍을 일으켜서 또 재물을 빼앗기게 하고 여러 가지 그러한 재난과 위해들과

    고난들과 그러한 슬픈 일들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고 이 빛이신 분이신 고로 하나님께서 행하시고자 하는 그런 일들을 바로 추악한 도구이며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게 할 수 있는 일은 어둠의 권세자인 사단이 할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 사단을 통하여 욥의 부족을 채우시기 위하여 사단을 이렇게 부추깁니다.

     

    악한 천사인 사탄은 부정적인 일들을 할 수가 있지만 하나님과 선한 천사들은 그 악한

    천사인 사탄과 그 사탄을 따르는 그 타락한 천사들이 하는 일들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사단을 통하여 욥의 삶을 통하여 벗겨내고 빼앗아 버린 그 모든 것이 제거된 그 상태에

    하나님 자신을 채우게 하기 위해서 바로 이 명예롭지 않은 부정적인 악한 일들을 사단이

    담당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단은 본래부터 에스겔 28장 16절에도 있고 그리고 계시록 18장 11·19절에도 그의 사상과 정신 생각은 자신의 상업적인 원칙에 따라서 항상 일을 합니다.

    적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그런 것들도 사단에 그 사상과 정신과 관념은 이해득실을

    따지는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는 그 상업적인 어떤 원칙에 근거해서 일을 진행 합니다.

    “에스겔:28:16 네 무역(貿易)이 풍성(豊盛)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强暴)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犯罪)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山)에서 쫓아 내었고 화광석(火光石) 사이에서 멸(滅)하였도다.” 

    18:11 땅의 상고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18: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18: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18:14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 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18:15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18:16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8:17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18:18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18: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그래서 계시록 18장 11절에서부터 19절에 보면 사단은 상인으로 등장이 됩니다.

    장사꾼으로 이렇게 성경은 얘기를 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단이 가지고 있는 상업적인 원칙을 가지고 있는 분이 아니시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사단을 통해서

    욥에게 하실 수 있는 일을 대신 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에 사단은 어느 정도 완전히 제어하지 않고 통제하지 않고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으신

    이 하나님의 경륜의 일을 그 사단과 악한 천사들을 통해서 하게 하기위한 깊은 의도 가운데 그들에게 어느 정도 자유를 소유하게 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단이 왜 자유롭게 왕래하고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이 이렇게 욥 때문에 두 차례나 욥을 어떻게 다루어야

    되는가 욥을 통해서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기 위한 이러한 일들을 함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될까라는 이러한 깊고 중요한 일을 가지고 두 번의 회의를 하였을 때 여전히 이 사단이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공간인 처소에 자유롭게 왕래하고 천사들과 함께 여시는 그 하나님의 회의들 중에 참석할 수 있는 어떤 여권을 지닌 자로 마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왔다 갔다 왕래 할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 라고 이렇게 물었을 때 내가 땅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오지 않았겠습니까 라고 어느 정도로 여전히 자유롭게 하시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일에 사탄을 사용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의 목적을 마귀와 마귀의 도구가

    된 유대인들을 통해서 이 일을 이루시는 것이 그러한 이유에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이해가 될 때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아~ 그렇구나 하나님의 이 원대하신 계획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 그 사건이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막 이렇게 함성을 지르고 그 십자가에 달리게 했던 그런 모든 일들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이렇게 시작됐던 것이구나 라는 것을 알수가 있죠.

     

    그렇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이 죽으시기까지 사망의 세력을 가진 자인 마귀를

    멸하시기 이천년 전에 이러한 일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잠시 전에 계시록 12장 10절을 읽어드렸는데요.

    12:10 또 내가 들으니, 한 큰 음성이 하늘에서 말하기를 "이제 구원과 능력과 우리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권세가 임하는도다. 이는 우리 형제들을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고소하던 그 고소자가 쫓겨났기 때문이니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사탄을 완전히 멸망시키셨기 때문에 이제는

    사탄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단절되었다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계시록

    12장 10절에는 사단이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우리를 참소하는데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휴거되어서 마주하기 전까지는 이 사단의 권리는 계속 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환란 초기까지 사단에게서 이 사단이 가지고 있는 권리는 없어지지 아니하고 대환란 바로 초기에 그런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이렇게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휴거 될 때 하늘에 도착될 때 그제서야 사단은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날 것이라고 계시록 12장 10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부터 사단은 더 이상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권리를 갖지 못하고 영원한 불못 가운데서 멸망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위대하신 경륜을 이루기 위해서 그분의 지혜와

    그리고 그분의 주권 안에서 때로는 일시적이고 때로는 제한적이고 때로는 이러한 통치적인 통제를 통해서 행사하시고 계신 것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거로 하나님께서는 그 사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원대하신 경륜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다루심에 있어서 긍정적인

    방면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접촉하실 수 있지만 부정적인 면에서는 사단을 통해서 역사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아시면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어느 정도 많이 해소될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가 소유하게 될 그 하나님을

    얻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욥에게 역사했던 것처럼 물질과 많은 자식과 재물과 많은

    종들을 허락해 주시는 것이 아닌 오히려 빼앗고 제거하고 벗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그 안에 넣어주시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욥안에 다른 것은 많이 있었습니다.

    많은 재물 많은 종들 많은 자식들 정말 자랑스러운 이름 동방에서 가장 위대한 자로

    손꼽힐 정도로 그러나 욥에게 그런 많은 것들이 풍요로운 것이 있었을지라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부족한 것이 있었는데 그게 하나님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욥안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온전하고 올곧음에 관해 자랑되어진 그것을 사탄에게 얘기하고 자랑되어진 그것을 통해서는 하나님 자신을 넣어주실 수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가 자랑하고 그가 의로 여기고 있는 그 온전함과 올곧음과 그 순전함에 대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다. 나는 의로운 삶을 살았다. 나는 정말 다른 이들에게 해를 가한 적이 없다 라는 그런 것이 오히려 하나님을 소유하는 일에 큰 방해가 되는 것을 알고 그것을 벗겨내는 작업을

    하는 것을 사단을 통해서 하셨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을 통해서 그의 외부적인 환경을 빼앗아 가버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벗기심입니다. 욥을 손상시키게 했던 그것이 바로 욥을 무너뜨리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이 벗기고 무너뜨리고 빼앗고 짓누르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인 하나님을 욥안에 하나님께서 넣어주시기 위한 일 때문에 바로 하나님이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아프지만 욥이 이해가 안 될 정도로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 앞에 따따부따 따지고

    하나님 앞에 다투게 되는 그런 일을 하시면서 까지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하셨습니다.

     

    욥이 고통당한 것만큼 하나님 자신의 행위를 하나님의 경륜의 위대한 욥을 향한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과 성품을 넣어주어서 하나님화시키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모르는 욥과 함께 하나님은 마음 아파하시고 고통 당하셨던 것입니다.

     

    욥이 재산을 뺏기고 손실당하고 자식들이 죽어 나자빠지고 욥 자신의 생명이 위협의 가해를 받는 그때에 하나님도 함께 그 고통을 감수하셨다는 것이 바로 임마뉴엘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되셔서우리와

    함께 사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우리 속에 들어오신 삶이 이와 같이 함께 고통당하는 삶으로 욥이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손상당하고, 빼앗기고, 넘어져 울고 있을 때 여호와이신 그리스도 부활의 영이시요 주의

    영이신 그리스도께서도 함께 넘어지고 자빠지고 아파하고 고통 당하셨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자신을 주시기 위하여 욥이 가지고 있는 모든  걸치고 있는 부정적인 것들 불필요한 것들을 완전히 벗겨내서 완전히 제거시켜서 그 안에 하나님이 들어가시는 이 일을 하기 위해서 그 어떤 오해까지도 그리고 욥과 다투는 그러한 일에 지경까지 이르게 할 정도로 하나님이 어떤 면에서는 마치 업신여김을 당하는 그런 처지에 있을 정도까지

    하나님은 인내하셨던 것입니다.

     

     욥이 가지고 있는 불필요한 것들을 벗겨내서 필요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자신을

    넣어주시기 위한 일 때문에 온전한 소생 온전한 회복 온전한 출생이 있기 위해서는 욥이 완전히 벗겨져야 했던 것입니다.

    이 벗겨지지 아니한 삶 벗겨지지 아니하고 빼앗기지 아니하고 제거됨이 없는 삶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씨가 들어와서 자라고 성장하고 영양분을 공급받아 내가 그리스도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완전히 욥처럼 벗겨져야 됩니다. 어느 정도까지요? 완전히 모든 것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벗겨질 때까지 벗겨져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벗겨짐 그런 빼앗김 그런 제거됨 그런 넘어짐 그러한 파괴되는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욥처럼 똑같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심성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내 안에 얻기 위해서 여러분 욥안에는 무엇이 없다고 그랬죠?

    욥에게 한 가지 딱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 한 가지 부족한 것을 하나님은 아셨는데

    욥은 그걸 몰랐어요 바로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욥안에 하나님 곧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은 것임을 알고 하나님은 그걸 다 빼앗아버립니다. 모두 빼앗아버립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그리스도를 우리가 많이 얻기 위해서는 내 안에

    그리스도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빼앗김을 당했는가? 얼마나 많이

    주님 앞에 넘어져 사단을 통해서 한 그런 행위를 통해서 나타난 넘어짐이 있었는가?

    제거됨이 있었는가? 소모됨이 있었는가?얼마나 여러분 파괴된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 얼마나 하나님의 위대하신 경륜에 의해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의 크기와

    높이와 넓이가 크면 클수록 벗기심이 크다 라는 것을 여러분 인식하셔야 됩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벗김을 당했는가에 따라 얼마나 내가 하나님을 많이 얻었는가? 그리스도를 내가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가 똑같은 비례적인 방법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통하여 벗기심을 당하면 당할수록 우리는 그리스도를 더욱더 많이 얻는다라는 것입니다.

    벗기심을 당할 때 욥은 오해의 소지를 가졌으나 여러분들은 이 욥의 말씀의 교제를 통해서 오해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하고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그런 삶을 산 자가 사도 바울 선생님이었던 것입니다.은 하나님 앞에 오해하고 하나님

    앞에 따지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경험되어져야 됩니까 라고 했지만 사도 바울은 그 보다도 더 위해가  가해지는 많은 그러한 생명까지도 손상 당할 수 있는 그런 지경까지 자기에게 처해졌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기뻐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 선생님은 이보다도 엄청난 영적으로 깊은 삶을 사셨다 라고 우

    리가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이 사랑하는 택한 자를 하나님 자신을 넣어

    주시기 위하여 다 빼앗아버립니다. 벌거벗기입니다.

    벌거 벗길 정도만 아니라 그건 외형적인 옷을 벗기는 행위죠 벗긴다는 행위는 내적으로

    때리셔서 그 내적으로 가지고 있는 심성의 모든 것을 빼앗아버리고 제거하고 소모시켜버립니다.

    그러한 완전히 벗기고 소모하는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추구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신 곧 생명 인간은 생명을 반드시 필요로 하게 돼 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요 생명을 필요로 하는 인간들에게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자신을 넣어주십니다. 하나님 자신을 분배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어두운 방면 부정적인 모든 방면에 그런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사단을 활용하셔서 사단과 악한 천사들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욥을 벗기는 일을

    강행하십니다. 욥을 너무나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서 욥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취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빼앗아 가고 제거하고 넘어뜨리고 파괴시키고 벗기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만을 추구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하나님을 그 욥 속에 넣어주십니다. 그러나 욥에게는 그러한 일들이 불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들은 이천년이 지난 후에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부활의 영이 되신 그리스도의 영 곧 그리스도께서 분배하여 주셔야만 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들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이러한 삶의 위경에 처했을 때 오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욥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결국 하나님을 뵀습니다.

    얻지는 않았어요. 신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뵌 것을 여러분 하나님을 얻는

    것과 동일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욥기42장 5절에 제가 주님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왔으나 이제는 제 눈으로 주님을 뵈었습니다.

    욥이 개인적인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뵙게 되었다는 것이 신약 성경에는 하나님을 얻은 것과 동일하게 신약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욥의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게 하고 잃어버리게 하고 넘어뜨리고 벗기고 허물어뜨리고 파괴시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신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주님을 뵙다 라는 얘기는 그리스도를 뵈었다는 얘기죠

    하나님을 얻었다는 얘기죠

     

    물론 욥은 하나님을 얻진 못했지만 이 말씀을 통해서 신약의 의미에서는 하나님을 뵙는

    것이 하나님을 얻는 것과 동일하게 취급함으로 말미암아 그런 면에서 우리는 욥이 어느

    정도 완전한 정도는 아니지만 하나님으로 조성되도록 하나님의 요소와 생명과 본성을

    어느 정도 하나님을 뵘을 통하여 마주함을 통하여 받아들이게 되었다 라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욥은 사단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 위한 부정적인 모든 요소를가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잃어 버리게 합니다.그러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자신을 그 욥에게 보여주시는 그런 일들을 펼쳐 놓아주십니다.

     

    그러함으로 말미암아 욥이 하나님을 뵙는 일을 통하여 온전히 어느 정도 변화되고 어느

    정도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본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욥의 모든 것이 되시기 위하여 욥의 모든 것을 벗기셨다 라는 것을 여러분

    이해하시고 인식하시면 커다란 믿음의 성장을 이룰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사랑하는 자들 교회들 성도들의 그러한 이해할 수 없는 원치 아니하는 말도 안 되는 정말 우리가 생각할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까라는 그러한 벗기시는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그들에게

    자신을 추구하게 만들고 추구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하는 마음을 부여해 주셔서

    하나님을 넣어주시고 분배해 주시며 하나님을 공급해 주시는 일을 성령님을 통하여

    조성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하나님을 살게 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끝으로

    말씀 드리면서 오늘의 교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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