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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 1:23, 행 16:6~7/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움직임 안에서 함께 움직이는 참 그리스도인들
    말씀 나눔방 2023. 6. 11. 16:37

     

    말 씀 : 박찬덕 선교사

     

    본문 말씀 : 마태복음 1장 23절, 사도행전 16장 6~7절

    말씀 주제 : 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움직임 안에서 행하고 예수님의                    영은 그들의 움직임 안에서 행하심

     

    전 편에서 신성의 본성을 지니신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본성 안으로 들어와 움직이신 첫 번째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고 그분께서 하나님의 영의 움직이심 안에서 함께 움직이시며 모든 사역을 함께 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리스도로서의 모든 사명을 완수하셨고,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영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 안에도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님께서 들어오셔서 그 영의 움직이심 안에서 그분과 우리가 하나 되어 움직임으로 하나님의 일을 함께 행하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과 같이 되게 하려는 것이 창세전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원대한 경륜의 목적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23, 개역개정)

     

    임마누엘! 그분의 이름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움직이심이 실질적으로 나타나지 않아 하나님에 대해 제한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어떤 죄도 범하지 않고 의로운 삶을 살았음에도 자신에게 닥친 환란의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 항의하였지만 그가 환란을 겪고 난 뒤에 영광의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의 존재의 실체와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고서 내가 주님께 대하여 귀로만 들었으나 이제는 눈으로 주님을 뵙는다고 고백하며 회개를 했던 것입니다.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기 42:5~6, 개역개정)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사탄을 이용하여 욥에게 환란을 허락하여 그가 가진 외형적인 모든 것들을 빼앗고 그의 살과 뼈까지 치시므로 그의 내면 안에 있던 불순물들까지 완전히 벗겨내어 그를 순전한 정금과 같이 그를 조성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 사람 안에 들어가셔서 사람과 하나님이 하나 되어 함께 거하면서 함께 움직이고 함께 행하는 것이 만세전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인 것을 그를 통해 예표로 보여준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욥을 통해서 예표로 보여줬던 일이 신약시대에 나타났는데 그것은 신성의 본질이신 하나님의 영,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 사람으로 탄생하시고 사람이신 그분 안에 성령께서 들어가 함께 하셨으며 특히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또 기름 부음을 받게 하셔서 성령님과 그리스도가 하나가 되어서 모든 사역을 함께 행하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분 안에 계셨던 신성의 본질이신 성령의 움직임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 되어 함께 움직이고 행하심으로 말미암아 만세전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원대한 경륜의 목적을 이루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사람이신 예수님에게 내려오신 것은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고 또한 말씀을 드렸고 사람이 움직일 때 하나님이 움직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때였기에 하나님에 대하여 귀로만 들을 수 있었을 뿐 눈으로 하나님을 뵙지 못했으며 사람 안에 하나님이 들어와 거하시는 일은 없었습니다.

     

    구약시대 믿음의 사람들 중 욥이나 모세과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뵌 것도 그들이 하나님을 그들의 눈으로 친히 뵙는 정도의 은혜에 머물렀던 것이며 신약시대처럼 하나님이 인간의 안에 들어와 함께 거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 39권은 하나님이 인간 안에 들어와 함께 거하며 함께 움직이고 행하는 신약시대의 도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성령님의 움직이심의 준비 단계를 기록한 것이었다면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서는 하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도가 잉태되어 베들레헴(떡집)에서 사람으로 출생됨으로 말미암아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의 본질인 하나님의 영께서 하나가 되어 움직이심으로 하나님의 원대한 경륜을 이루시는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구약시대는 하나님이 인간 안에서 움직이시기 위한 준비 단계였고 신약시대가 도래하여 하나님의 그 움직이심이 시작되었는데, 첫 시작은 신성의 본질이신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가 잉태되고 출생된 것이었으며 이렇게 성령님께서 인간 예수님과 하나 되어서 예수님의 33년 반 동안의 생애 속에서 성령님이 사람 예수님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시고 예수님은 성령님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심으로 말미암아 만세전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을 함께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약시대 성령님의 움직이심의 첫 시작은 사람이신 예수님 한 분을 통해서만 움직이셨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생명을 주는 영, 만유의 주,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부활 후에 50일째 되는 오순절에 마가 다락방에 있던 120명 성도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이 임하므로 하나님의 움직이심은 그 120명에게로 확대되었습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시작한 성령님의 움직이심은 사도행전 2장 3절에 120명에게 생명의 영이 임하였고 사도행전 2장 41절에서는 베드로의 설교에 회개하여 침례를 받아 더해진 신도의 수가 삼천 명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처럼 신약시대의 성도들 안에 그리스도의 영, 생명을 주는 영, 성령께서 들어가 그들을 통하여 역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자로서 사신 33년 반 동안의 삶과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정되어 생명을 주는 영, 만유의 구주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생명을 분배해 주실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생명을 주는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오순절에 120명에 이어서 베드로의 설교로 삼천 명, 사도행전 2장 47절에서는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어 사람들을 통한 성령님의 움직이심이 확장되므로 초대교회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믿고 영접하여 새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가셔서 그 영의 움직이심에 따라 사람들이 움직이시는 역사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사람 안으로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그 영의 움직이심 안에서 사람이 움직이고 사람의 움직임 안에서 성령님께서 움직이심으로써 사람을 통하여 표출되는 모든 것들 곧 선포되는 말씀과 행하는 이적들이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하나님이 하신 일인지 아니면 사람이 한 일인지 분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 유대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오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이 들어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 되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땅 위에서 움직이실 수 있는 통로가 되게 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신성을 지니신 본연의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서 죄의 본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과는 직접적인 만남과 교제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가 없으셨던 사람,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그분의 영이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서 움직이실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이신 예수님 안에 성령께서 들어가 그분 하나 되어서 성령님의 움직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움직이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움직임 안에서 성령께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분의 말과 행동이 곧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이었지만 그분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본 자들이 없었고 그분께서 특별한 이적과 기적과 표적을 보였을지라도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으로서 영접한 이들은 매우 적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을 기록한 사복음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안에서만 하나님의 움직임이 나타났지만 사도행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함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움직이심 안에서 그들이 움직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 사도 요한,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난 일들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었고 그들의 행동이 하나님의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 땅에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나타난 이적을 본 사람들이 그를 신이라고 오해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사복음서에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움직임 안에서 활동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든 활동은 신성의 본질이신 성령 하나님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자들 속에 하나님이 들어가셔서 사람이 하나님의 움직이심 안에서 움직이고 행하여서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함께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출발했지만 주님께서 죽으신 후 50일 째인 오순절에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자들 120명에게 성령님이 임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움직임 안에서 사람들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베드로의 설교로 3천 명으로 확대되었고 또 날마다 그 수가 증가되었고 지금 이 시대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들이 있을 것이며 주님 오실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 그들이 바로 이기는 자들입니다.

     

    세상과 죄와 사탄을 이긴 자들이 천년 왕국에서 왕 같은 제사장의 무리가 되어서 다스림을 갖는 영예를 얻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움직일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 안으로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사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이 아직 조성되지 않았던 때입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이 사람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이루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셔서 그분을 믿는 자들을 그분의 피로 씻어 의롭게 함으로써 비로소 그들 안에 그분의 영이 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분의 영이 그분을 믿는 자들 안에 들어올 수 있었지만 구약시대에 살았던 욥은 그가 비록 의로운 자였지만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하여 귀로만 들을 수밖에 없고 환란을 겪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자신의 눈으로 뵙는 정도의 은혜에서 그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의 역사 가운데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내 존재 안에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그 움직임 안에서 내가 움직이고 행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과 같은 형상으로 조성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입니다.

     

    이것이 온 우주 가운데 가장 큰 비밀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가장 큰 비밀이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비밀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것을 기록한 성경이 사도행전이며 성령께서 행하신 사역이기에 성령님 행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성령님의 움직이심이 외형적으로는 사람을 통해서 나타났기에 그 움직임의 주체가 사람인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는 사람 안에 임한 성령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새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 안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이심에 따라 그들이 움직인 것입니다.

     

    이렇게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로는 사람의 영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움직임 안에서 사람이 함께 움직이고 행함으로써 사도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고 또 많은 이적과 기사와 표적을 나타냈던 것이며,

    이와 같은 하나님의 움직이심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모든 자들을 만세전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 곧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들어 우리로 하나님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분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소유한 자들을 하나님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의 움직임 안에서 함께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나와 하나님의 움직이심이 하나 되어 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움직이심의 근본적인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된 우리를 그분께서 우리를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계획을 수행하시기 위해서 온전한 삶을 사셔서 온전한 인간이 되신 것처럼, 죄악된 본성을 지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새 생명을 소유하여 온전한 사람이 되고 또 하나님의 신성을 입은 자 곧 하나님과 같이 되게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신성을 소유한 사람들,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자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그리스도의 움직이심 안에서 움직여서 하나님의 원대한 그 경륜의 꿈을 이루어 드리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닮은 그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유익을 좇아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는 자들로서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비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들로부터 수 없는 오해를 받고 그들의 불신 가운데 때로는 조롱과 핍박과 멸시와 심지어는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그 상황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시지만 외형적으로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그런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바로 사람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 신성의 본질이신 영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심으로 함께 사역을 행하시고 하나님의 아들,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수행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여서 함께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예수님의 영이시며 또 그분이 또 부활의 영, 성령님, 하나님의 영으로도 표현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성육신하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것을 이루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인간을 구원하는 영이 되셨다는 뜻에서 육체가 된 구주의 영’으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그분의 말씀을 받은 자들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시기 때문에 세상 삶과는 너무나 다른 삶의 모습에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움직임을 좇아 사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육신을 위한 삶이 아니기 때문에 때론 손가락질과 무시를 당하고 “저렇게 한다고 돈이 생겨 아니면 쌀이 생겨”라고 조소와 비아냥을 듣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부딪치는 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받은 자들 속에 들어오셔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움직이십니다.

     

    먼저는 뭐라고요? 우리가 하나님 안에?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셔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이신 하나님, 신성한 본질을 지니신 하나님의 영, 성령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 예수님이 그 하나님의 영 안에서 움직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고나서 예수님 속에 들어와서 움직이시는 성령님의 움직임 안에서 사람 예수님이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역사하게 되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 안에 그리스도라는 씨를 심어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내 존재 안에 들어와서 내 안에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께서 먼저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그 움직임 안에서 하나 되어 내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의 영이 들어와서 함께 역사하고 동역하는 일들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함께 움직입니다.

     

    이러한 일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는 것은, 먼저 성령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들어가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수태하여 출생케 하셨고 또 그 영께서 그리스도에게 침례를 베푸시고 기름을 부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33년 반 동안 인생에 늘 하나 되어 만세전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구원을 계획을 조금도 차질 없이 온전히 행하여 이루도록 하신 성령님의 역사가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성령님과 함께 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만유의 주, 하나님의 그리스도, 생명을 주는 영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그분을 믿고 거듭난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나누어 주시게 된 것입니다.

     

    그분께서 부여해 주신 그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하나님의 움직이심 안에서 또한 움직임으로 함께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수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분 예수님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었던 하나님이 이제는 그분을 믿고 거듭난 성도들 안에서 하나님이 움직이시게 되었고 사람은 그분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의 역사가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놀라운 일들로 나타나므로 하나님의 일의 진행이 더욱더 빨라지고 복음이 곳곳에 확산되어 많아지는 그 열매를 풍성 맺는 일들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 특히 예수님의 제자들을 익히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은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가 그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을 보았지만 변화된 그들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할 뿐 과거에는 보잘것없는 신분에 불과했던 그들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서 하나님께서 제자들 안에서 살아서 움직이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처럼 경외하고 존귀하게 생각하는 살아 계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그들이 직접 뵙지 못한 채 귀로만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욥기서 42장 5절에서 욥이 환란을 겪고 난 뒤에 귀로만 들어 알고 있던 하나님을 자신의 눈으로 뵘으로 말미암아 그가 정금처럼 변화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과거의 우리의 모습과 현재의 우리의 모습 그리고 미래의 모습은 너무나 다른 모습, 하나님의 신성을 소유한 자의 모습, 바로 주 예수님과 같은 영화로운 모습으로 변형되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린도후서 3:18, 개역개정)

     

    왜냐하면 하나님의 움직이심 안에 있는 우리의 움직임과 우리의 움직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움직이심의 과정 가운데서 내 안에 하나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점점 확대되고 증가되어 충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조그마한 씨앗이 흙 속에 묻혀 있을 때는 죽은 것처럼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가 천둥 번개가 갑자기 치듯이 생명의 기운으로 그 씨앗이 발아되기 시작하면 거기서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가지가 나오고 잎이 나서 자라 큰 나무로 성장하여 수많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손톱만한 도토리가 땅에 떨어져서 거대한 나무로 성장해서 수많은 도토리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 조그만 도토리 안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씨,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우리 안에 신성의 본질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오셔서 생명과 신성의 요소를 넣어 주심으로 우리를 자라게 하면 손톱만한 도토리가 5m, 10m의 큰 나무로 성장하여 수없이 많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도 그처럼 장성한 자가 되어서 수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베드로전서 1:23, 개역개정)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지극히 작은 겨자씨 한 알이 떨어져 나무처럼 크게 자라서 새들이 깃드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곧 생명의 씨가 우리 안에 심어져서 자라게 되면 그와 같이 놀라운 모습으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그러한 생명력이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 안으로 들어오셔서 그리스도가 성육신 되시고 그분의 33년 반 동안의 생애와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이시며 신성의 본질이신 세 분 하나님의 영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오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그분의 영원한 생명과 신성의 성분(成分)들이 우리 안에 흡수됨으로써 우리가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자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에베소서 4:13, 개역개정)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조그만 겨자씨가 후에 새들이 깃드는 큰 나무와 같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과 같이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움직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새 생명을 소유한 자들이 움직이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영께서 새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는 일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충만하게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움직임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하여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궁극적인 이유가 사람을 하나님 되게 하려는 것인데,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움직이시는 그 움직이심에 하나 되어 함께 일하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회복한 자들입니다.

     

    구약시대 사람 욥은 혹독한 환란을 통해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그가 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가 자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친히 뵐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귀로만 하나님을 들었던 그가 지극히 높으시고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뵘으로 말미암아 아주 지고한 영적 수준에 올라가는 특별한 경험, 마치 땅에서 걷는 자가 날개를 달고 하늘 공중을 날아다니며 땅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그러한 경험을 하며 얼마나 기뻐하며 또 얼마나 놀랐을까요?

     

    욥은 자신의 지식의 나무 영역 안에서 하나님께 대해서 귀로만 듣는 것으로 만족했지 하나님을 뵙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뵙는 일이 있기 전에 욥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고 죽음보다 더 한 육체의 고통을 허락하심으로 말미암아 욥의 내면에 있던 부정한 모든 것들을 모두 벗겨내 제거하고 모두 허물어 뜨려서 완전히 없애신 것은 장차 정결케 된 사람 안에 하나님이 들어가 살아 계시기 위하여 예표로서 보여준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욥이 주님을 눈으로 뵌 사건은 신약 시대에 주님을 영접하여 소유한 자들의 예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궁극적이 목적이 우리를 하나님 되게 하려는 것처럼 욥에게는 환란으로 벗기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하려는 것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33년 반 동안의 삶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고 생명을 주는 구주의 영, 만유의 주가 되심으로써 우리 그리스도인들 안에 그분의 생명의 영을 부여해 주셨으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움직임 안에서 모든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바로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셔서 그분의 헌신과 희생으로 모든 일을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 인간을 구속하는 합법적인 권한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 구주의 영이 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바로 창세기 12장,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라고 약속하신 그 복인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라디아서 3:14, 개역개정)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영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서 역사하는데 그 영이 우리 안에서 내주하신다는 이것이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의 가장 큰 비밀은 하나님이 사람 안에 들어오셔서 내주하시고 임재하셔서 우리와 함께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서 움직였습니까? 아닙니다.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사람 안에 들어가실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으로서 이루신 복합적인 과정 곧 하나님이 인간의 종류가 되시기 위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 10개월 동안 있다가 출생하셔서 사람으로서 죄 없는 삶을 사시고 그리스도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는 과정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모든 과정을 거치시고 모든 사명을 온전히 성취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으로써 인성과 신성을 모두 소유하신 그분께서 만유 앞에서 우리 인간을 구속하는 합법적인 권한을 가진 만유의 주, 그리스도의 영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영이 우리 사람 안에 들어와 임재하실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공의의 속성을 부인하실 수 없고 또한 자신의 사랑의 속성을 부인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죄 없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의 법과 사랑의 법을 온전히 충족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만유의 주가 되셨기 때문에 죽어야 하는 인간을 구속하여 생명의 영을 부여할 수 있는 근거가 확립된 것이지 하나님 자신의 본성을 거슬러가면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임의대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닙니다.

     

    구약 시대의 하나님은 본연의 하나님이셨지만 신약 시대에는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인간으로서 모든 것을 이루시고 또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통하여 인성과 신성을 모두 가지신 분으로서 우리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의 영이 되셔서 우리 인간 안에 들어오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기 전 구약시대 하나님은 신성을 가지신 본연의 하나님으로만 움직이시고 행하셨을 뿐 인간 안에서 움직이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완전한 하나님으로만 계셨을 뿐 인간이 되시는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성과 사람의 인성이 하나로 결합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셔서 인간으로서 사신 삶과 그분이 받은 사명을 모두 성취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인성과 신성을 모두 소유한 분으로서 인간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영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영이 우리 인간 안에 들어와서 내주하시게 된 것이며 그분이 움직이시면 사람이 따라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되어 함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움직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의 희생으로 모든 것을 성취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결과로 우리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영이 된 것이며 그 영 곧 성령님 안에는 아들 하나님이 계시고 아들 하나님 안에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님을 모셨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을 모셨다는 것이며 또한 아들 하나님과 영 하나님을 모두를 모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성령님이 바로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사람이셨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몸을 취하여 영이 되신 성령님이십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9, 개역개정)

     

    바로 그분이 영 하나님이시고 그 성령님 안에 아들 하나님이 계시고 그 아들 하나님 안에 아버지 하나님이 계셔서 세 분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내주하셔서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마가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에게 그리스도 자신을 부어 주셔서 그들이 그리스도를 소유하게 되었고, 또 제자 베드로 안에 계시는 성령의 강력한 능력이 함께하여 베드로가 담대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할 때 하루에 3천 명이 주의 말씀을 받고 회개하게 한 사건은 바로 생명의 영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음 것입니다.

     

    구약 시대 사람, 욥이 누구보다도 의로운 삶을 살고 누구보다도 혹독한 환란을 통해 연단 되었을지라도 그는 인성을 소유한 불안전한 자로서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그를 구원해 주실 그리스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욥의 시대에는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기 전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뵙는 정도의 은혜에 그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성육신하셔서 사람이 되셨고 또 의로운 자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분의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이제는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실제적으로 내주하셔서 함께 하나 되어 역사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되신 예수님 안에 그 신성의 본질이신 성령님께서 계셔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면서부터 죽으시는 그 순간까지 하나가 되어서 함께 움직이시고 행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경륜의 계획을 이루셨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믿고 새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 안에 성령께서 들어가 하나 됨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의 움직임 안에서 함께 움직이고 행하여 하나님의 경륜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 성령님께서 관여하신 움직임 안에 사람 예수님이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되어 하나님의 원대한 경륜의 목적을 이루시게 된 것입니다.

     

    지금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영과 우리는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하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계시록 22장 17절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라고 되어있어 성령과 신부가 하나 된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계시록 22:17, 개역개정)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만유의 주,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믿고 거듭난 자들에게 선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과 우리가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체와 혼이 하나님의 영과 하나 된 우리 영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거나 슬프게 하거나 근심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4:30, 우리말 성경)

     

    이것은 동행하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몸의 지체처럼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서 움직이시는 그 영 안에는 세 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 안에 계신 세 분 하나님께서 함께 사람 안에 들어가셔서 하나님께서 움직이실 때 사람은 그 성령님의 뜻을 좇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6장 6절과 7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성령님이 아시아로 가는 것을 막으면 가지 않았고 또 그가 비두니아에 가고자 애썼을 때 예수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아 가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사도바울의 움직임은 성령님의 뜻을 좇아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성령 님께서 주도적으로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사도행전 16:6~7, 개역개정)

     

    사도 바울 안에서 움직여서 그를 인도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영, 생명의 영은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영적인 몸을 취하여서 영으로 임마누엘하신 것입니다.

    그 영의 행하심은 사도 바울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함께 역사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이 성령님이십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에서 사도 바울을 인도했던 영을 ‘성령님’이라고 했고, 7절에서는 ‘예수님의 영’이라고 말하고 있어 성령님이 곧 예수님의 영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은 생명의 영입니다. 예수님의 영 안에 계시는 세 분 하나님이 때로는 예수님의 영, 때로는 성령으로 기록하고 있어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한 그 영임을 알려주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예수님의 영이고 예수님의 영이 성령님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영께서 성령님이라는 것을 사도행전 16장 6절, 7절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는데 성령님은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에 대한 일반적인 칭호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보세요.

    천지창조 당시 수면에 운행하셨던 하나님의 영, 창조의 신, 생명의 신이셨던 그분은 본연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사람으로서 사신 삶과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모든 것을 이루심으로써 인성을 가지셨던 분이 영광을 받아 영화로운 신성의 몸을 입고 나타나신 그 하나님의 영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 예수님의 영 곧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한복음 7:39, 개역개정)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은 이러한 복합적인 과정 곧 성육신, 인자의 삶, 십자가 죽음,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사람이신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아 하나님의 신성을 취하여 나타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칭호는 구약성경에서는 주로 하나님의 영, 신약 성경에서는 대부분 성령님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영은 성령님에 대한 특별한 표현이며 예수님의 영을 이렇게 기록한 것은 성령님이 그리스도 자신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누구라고요?

    구약 성경에 하나님의 영으로 표현된 그분은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복합적인 과정을 거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되신 그 하나님의 영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그 성령님이 또한 예수님의 영이라고 얘기한 것은 하나님의 영에 대한 특별한 표현입니다.

     

    왜 예수님의 영입니까? 예수님 하면 무엇이 생각납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이신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예수님의 영은 육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분은 사람의 본성을 가지신 온전한 사람으로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 10개월 동안 있다가 출생하셔서 33년 반 동안의 삶을 사시고 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영광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구주가 되신 바로 그 영인 것입니다.

     

    ‘육체가 되신 그 구주의 영’ 곧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영광 받으심으로써 구세주가 되신 그 영이 바로 예수님의 영, 성령님, 하나님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구약시대와 신약 시대에 있어 하나님의 영이 다른 점이 있다면,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시지 않아 인간으로서 사신 삶과 십자가에서 죽음과 부활의 경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연의 존재, 신성의 하나님으로만 계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하나님이 여인의 몸에 수태되셔서 출생됨으로 말미암아 온전한 사람 예수님이 되셨고 그분께서 인간으로서 사신 삶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고 신성을 입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 곧 예수님의 영, 성령님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의 하나님은 신성을 지니신 본연의 하나님이셨지만, 신약시대에서는 본연의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신 하나님의 영’으로 나타나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의 영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이 하나님의 영이고 하나님의 영이 예수님의 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칭호가 하나님께서 이루신 사역의 결과로 달리 표현된 것입니다.

     

    이를 좀 더 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약 시대의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고 십자가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경험이 없어서 우리 인간의 영 안에 들어와 생명을 줄 수 없었기에 신성만을 소유하신 하나님 곧 하나님의 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반면에 신약 시대의 하나님은 인간이 되셔서 이루신 모든 사역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통하여 인성과 신성을 모두 가지신 영 곧 인간 안에 들어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칭호를 예수님의 영, 성령님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영은 바로 신성의 본질이신 하나님이 인성을 가지셨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은 하나님의 영에 대한 특별한 표현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영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구약 성경에서는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 안에는 뭐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계십니다.

    그분은 신성의 본질인 성령님에 의하여 잉태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셨고 성령님과 하나 되어 인간으로서의 삶을 사시고 침례를 받고 기름 부음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서의 공생애 사역을 또한 함께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바로 전까지 그분의 삶 전체 속에서 하나님의 신성한 영은 그분 영 안에 계셔서 그분과 언제나 함께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 안에는 바로 인성과 신성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태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성과 인간의 인성 곧 두 가지 본성을 소유하셨고 그분 안에는 33년 반 동안의 삶을 살면서 겪은 희로애락의 인생의 요소도 있었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죽음에 대한 요소도 있고 또 음부에 가셨던 그런 요소도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만유의 주,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되셔서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신성의 요소도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여러 과정들을 거쳐서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의 영, 우리 인간을 생명을 주는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이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신 것은 바로 우리로 생명과 그 본성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사도행전 16장 6절과 7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성령님은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고자 했으나 막으셨고 또 비두니아에 가고자 했으나 예수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님이 곧 예수님의 영입니다. 그 예수님의 영 곧 육체이셨던 그 구주의 영은 영광을 받아 영적인 몸을 취하신 영이기 때문에 그분은 사람 안에 들어가서 함께 사람과 함께 움직이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도 바울의 사역에 그분께서 함께 하시면서 그를 인도하셨으며 그분께서 인도한 길이 아닌 경우에는 그분이 허락지 않으시고 막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복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마케도니아를 향하게 된 것입니다.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사도행전 16:9~10, 개역개정)

     

    여러분!

    바로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사람 안에 들어오셔서 움직이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영 곧 성령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사람들을 통해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주체가 되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 행위들의 주체는 하나님이며 실제는 그 행위가 하나님의 행위였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사람을 통해서 행하는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영이 되시고자 구약 성경 39권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지자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계시의 빛을 비춰주므로 말미암아 신약시대 성도들이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틀을 조성해 주신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그리스도인,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 사도 베드로를 포함한 열두 사도와 사도 바울 선생님이 성령님의 움직임 안에서 하나 되어 함께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갈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 뜻과 내 생각을 좇아 움직이거나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뜻과 생각대로 움직이고 행하는 모든 일들은 생명나무 영역 안에서 행하는 삶이 아니라 지식을 알게 하는 나무의 영역 안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며 육체를 노크하며 혼과 친구가 되어서 영의 일들을 어긋나게 하는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의 뜻을 온전히 쫓기 위해서는 혼을 친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육체를 통한 기쁨과 만족을 누리고자 그 육체가 원하는 일들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육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제거하고 혼이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욕구를 통제함으로써 영의 기능이 완전히 활성화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의 영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하나가 되어 역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5:17, 개역개정)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영(창 1:2, 출 31:3 등) 또는 주의 영(시 104:30, 겔 3:12 등)으로 표현하고 있고

    신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대다수 성령님으로 표현하고 있고 때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영(벧전 1:11 등), 주의 영 (행 5:9 등), 예수님의 영(행 16:17) 또는 하나님의 영(롬 8:9 등)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그 하나님의 영이 인간 안에 들어오실 수 없어서 인간 안에서 역사할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신약시대에서는 인간 안에 들어오셔서 함께 움직이고 역사하실 수 있는 성령님 곧 예수님의 영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참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모든 것을 거치시고 이루시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생명을 주는 구주의 영이 되었기에 우리가 예수님의 영을 떠나서 우리의 생각과 뜻과 방식을 좇아 임의대로 그 어떤 행동과 일을 시작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주님의 복음 전파를 위해서 아시아로 가고자 했을지라도 그 모든 길을 아시는 성령께서 그를 막으셨던 것처럼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서 선한 뜻을 가지고 그분을 위해서 일하고 그 일들이 옳은 것 같이 보일지라도 성령님께서 함께하여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면 지식을 알게 하는 나무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뜻과 열심을 좇아서 한 모든 일들이 아무런 열매도 없는 헛되고 공허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욥이 아무리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을 떠나 정직하고 올곧고 순전한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는 그 안에 하나님을 결코 소유할 수는 없었던 것처럼, 내가 비록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는 선한 뜻을 가지고 열심을 다해 어떤 일을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이라면 어떤 선한 열매도 맺지 못하는 공허하고 헛된 일이 될 뿐인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잠언 19:21, 개역개정)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5, 개역개정)

     

    만유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시기까지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역사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눈으로 뵙는 정도의 은혜에 그쳤던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자신 안에 모으셔서 함께 움직이고 함께 역사했던 사람 모세일지라도 여호수아일지라도 다윗이라 할지라도 그 밖에 어떤 선지자나 제사장일지라도 그 사람 안에서 움직이시는 하나님은 결코 소유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성육신하셔서 거치신 과정과 성취하신 일들을 통하여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셔서 이제는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 있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제 그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 안에 거하여서 그분이 움직일 때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뜻을 따라 움직일 때 그분이 취한 행동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의 영의 움직임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 사도행전 16장 말씀이 참 중요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 6절 7절 말씀에 나오는 예수님의 영은 육체가 되신 사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영화로운 영적인 몸을 취하신 그 영 하나님이 육체가 되셨던 구주의 영, 예수님의 영, 성령님이라는 것을 제가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이처럼 구주의 영이 되시기 위해 성육신하셔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모든 과정들을 거치시고 또 모든 일들을 다 이루셨던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그분은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그분이 가지신 인성에 영화로운 신성의 몸을 취함으로써 인성과 신성이 하나로 어우러져 결합된 영 곧 생명을 주는 영, 예수님의 영, 성령님으로 나타날 수 있게 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 영을 우리에게 선물로 허락해 주심으로써 우리가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 받지 않고 그분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움직여 역사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임의로 움직여서는 안 되며 나의 개인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어떤 말과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생명나무의 영역이 아닌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의 영역 안에서 행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그 의도가 선하고 올바른 선택인 것 같고 또 처음에는 비슷하게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지만 주님을 모시고 그분을 좇아 사는 자들의 삶의 결과와는 정반대로 그러한 길을 가는 자들은 주님께서 함께 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결국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결과와 같이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움직임이 없이는 자신의 선악의 기준을 좇아서 임의로 혼자 움직이거나 행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깊이 인식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해서 자신의 생각대로 성급하게 움직였던 사람이 아담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타락하게 된 것이며 그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아담의 후손 역시 자기들의 죄악된 본성의 뜻을 좇아 삶으로 말미암아 결국 모든 일이 헛되고 공허한 삶의 결과로 나타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세기 6:5, 개역개정)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의 영 곧 성령님의 움직이심을 좇아 함께 움직이고 행할 때 그분 안에서 선한 열매를 산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셔서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영광을 받고 영화로운 영적인 몸을 취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의 영, 성령님,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입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지 않으신 본연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영광을 받아 영화로운 신성의 몸을 입으신 그 영 곧 육체가 되었던 그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 성령님은 인간의 본성 안에 하나님의 생명의 씨를 뿌려서 발아시킬 수 있는 합법적인 권한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육체가 되신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 성령님을 우리는 구주의 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주, 구세주는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영 안에는 우리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고 깨끗하게 하는 생명과 신성의 요소들이 있어서 그것을 우리에게 부여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적인 모든 기능들을 소생시켜주고 옛사람을 새 생명을 가진 새사람으로 탈바꿈시켜 주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음식물을 섭취하면 그 음식물이 소화를 통해 분해된 각종 영양분이 우리 몸속에 공급되므로 우리 신체의 각 기관들을 튼튼하게 하고 제 기능을 유지하게 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모든 성분을 공급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생명과 속성을 소유하고 또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또 그분의 거룩한 속성으로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여인의 몸에 수태되어 출생하시고 사람으로서 33년 반 동안의 삶을 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분을 높이시므로 그분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신성한 몸을 취하셔서 생명을 주는 구주의 영이 되신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인간의 구속을 위해서 준비를 하셨지만 육체가 되시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을 구속할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육체가 되셔서 사람으로서 사신 그분의 삶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아 신성의 몸을 입으시고 생명을 주는 구주의 영이신 성령님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나타나 먼저는 오순절에 120명의 성도에게 강림하셔서 우리 인간을 구속하시고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신 것입니다.

     

    육체가 되신 하나님의 영을 구주의 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이 되셔서 그분의 삶을 통해서 모든 것을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영광을 받아 신성의 몸을 입고 우리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영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던 구약시대의 하나님은 창조의 신이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셨지만 죄를 지은 인간에게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부여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를 씻기고 그들을 거룩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기 위해서는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점과 흠도 없는 삶을 사시고 십자가에서 인간을 위해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생명을 주는 구주의 영이 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어서 모든 사명을 완수하시기 전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영 안에 들어와 생명을 주시는 구주의 영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이 바로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우리가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을 모시고 살아야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그만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뱀의 거짓말에 속아서 자신의 생각을 따라 자신의 계획과 뜻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음으로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영광을 받고 신성을 취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가 소유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뱀은 뭐라고 거짓말을 했습니까?

    그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속였던 것입니다. 아담은 너무나 조급했고 너무나 성급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그것이 지식의 나무의 영역 아래에서 그 열매를 따먹는 전초 단계인 것입니다.

     

    뱀의 말을 듣고 인간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하여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는 타락이며 죽음이었지만 하지만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계획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인간을 하나님 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믿는 자들 안에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며 이렇게 하나님께서 생명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탄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그럴듯한 거짓말로 아담과 하와를 속여 그들이 그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하나님처럼 만들려는 하나님의 시도가 좌절됨으로써 창세 전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계획이 영영 실패한 것 같아 보이지만 인간이 죄인이 되었을지라도 그 인간을 하나님처럼 만들려는 만세 전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경륜은 결코 포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처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성육신하심으로 사람이 되셔서 그리스도로서 모든 사망을 완수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의 죄를 씻고 거룩하게 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신 것이며,

    그 생명을 주시는 영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살아 계셔서 그분이 움직일 때 우리가 그분의 움직임을 따라 사는 삶 속에서 그분과 우리가 하나가 되고 우리가 조성됨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속성에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말은 맞는 얘기지만 또한 틀린 얘기입니다.

    사탄은 아마 인간이 타락하였기에 인간을 하나님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다고 생각했겠지만,

    사탄도 전혀 몰랐던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구주의 영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의 죄를 씻어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리스도를 소유하게 함으로써 그들을 하나님과 같이 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세전부터 감추어진 비밀인 것입니다.

     

    사탄은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하였지만 인간 스스로는 절대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 하나님의 말씀 곧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먹는 자들을 하나님 되게 한다는 것이며 이것이 참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의 본질들, 하나님의 속성들을 우리 안에 부어 주시기 위해서 여자의 몸에 수태되어 사람이 되셨고 인간으로 삶과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하셔서 만유의 주가 되시는 모든 과정을 겪으신 것입니다.

     

    신성의 본질이신 그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이 조성됨으로 우리가 신성한 요소로 변화되어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와 완전히 똑같아질 수는 없지만 그분의 신성의 요소가 우리 안게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같은 품성과 생명을 소유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 자신처럼 만들기 위해서 선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담은 너무나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욕심에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여 하나님의 말씀보다 뱀의 거짓말을 믿어서 선악과를 따먹는 길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5, 개역개정)

     

     

    그러므로 우리가 생명을 주는 영,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을 소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택하고 행하는 일들은 지식의 나무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일의 결국은 멸망의 길로 인도될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어 선악을 구별할 줄 알게 된다고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님께서 내 안에 들어와서 함께 하나 되어 사는 삶을 통해서 조성돼서 인성을 가진 우리가 성화되어 하나님과 같이 될 때 바로 선과 악을 분별하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옳음이 무엇이고 진정한 그름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은 아무리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에 있어 설령 옳은 것을 택했을지라도 틀린 것이며 틀린 것을 택한 것은 당연히 틀린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는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 곧 예수님의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지 않고서는 우리는 절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지 않은 채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더 큰 잘못된 길, 악을 취하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 곧 예수님의 영을 모시지 않은 상태, 그분이 살아 계시지 않게 하는 상태에서 비록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움직이고 행하는 모든 것들은 지식의 나무 영역 아래서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천 가지, 만 가지의 일을 했을지라도 다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 곧 예수님의 영, 성령님의 움직임에 따라서 우리가 움직이고 행할 때 우리는 생명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영은 육체가 되신 하나님의 영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의 육체가 되신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인간으로서 모든 일을 성취하심으로써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생명을 주는 분으로 나타내게 된 것입니다.

     

    그분이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 곧 예수님의 영 또는 성령님, 그리스도의 영, 주의 영, 하나님의 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주의 영, 그리스도의 영은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세 분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 곧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 안에서 움직여야만 그릇된 길, 악한 길을 가지 않고 세상과 죄와 사탄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혜사이신 예수의 영,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예수님의 영은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이지만 구약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은 육체가 되지 않으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거쳐서 육체가 되신 하나님의 영이 되셨습니다.

     

    육체가 되신 하나님의 영,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은 인간이신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인정되심으로 말미암아 땅과 하늘들의 만유 앞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영, 만유의 주로 공식적으로 선포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은 예수님의 영, 성령님, 부활의 영, 그리스도의 영인데 그분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 곧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들 속에 들어가셔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이 움직이게 되어 하나님과 함께 동역을 하는 것이며 사도 바울도 자신을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린도전서 3:9, 개역개정)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이 움직이심으로써 사람을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생명나무의 길이 아닌 지식의 나무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의 움직임 안에서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우리 안에 그 영이 계시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의 생각과 힘으로 움직이게 되면 그 일의 결과는 모두 헛되고 공허한 것이 되며 결국은 잘못되어 사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 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에 성령님이 신부와 더불어 말한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곧 서로 분리된 개별적인 개체로서 함께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 되어 그 성령님과 신부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계시록 22:17, 개역개정)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예수님의 영 곧 성령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하나님의 영이 아시아에 있는 에베소 교회 등 일곱 교회에게 ‘편지하라’로 명령하고 또 ‘귀 있는 자는 성령의 말씀을 들으라’라고 계속 말씀하십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계시록 2:1, 개역개정)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계시록 2:7, 개역개정)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는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 성령께서 혼자 교회들에게 말씀을 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계시록 22장 17절,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님의 영으로 조성되고 변화된 사람들 곧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성령과 하나 되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으로 조화되고 변화되어 그분의 영과 하나 된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영, 육체가 되신 구주의 영을 소유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분과 똑같은 영의 속성을 받은 자들, 예수님의 생명과 본성을 지닌 자들이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신부인 교회와 예수님의 영 곧 성령님과 하나가 되시어 함께 말씀하시는 장면이 바로 요한계시록 22장 17절 말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인간으로서 사신 삶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죽어야 하는 인간을 구원하는 구주의 영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사람들 안에 들어가셔서 그들을 조성시키고 변화시킴으로써

    그들은 12가지 빛나는 형형색색의 아름답고 존귀한 보석들과 유리처럼 맑은 정금과 진주 곧 하나님의 속성들, 신성한 본성을 입은 자들이기 때문에 성령과 신부인 교회가 하나가 되어 함께 말씀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예루살렘 성은 인성을 가진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조성되고 변화되어 신성한 본성 가짐으로써 하나님과 하나 된 삶을 사는 사람들 전체 모임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영 곧 성령님과 하나 되어 그분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움직이심 안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일이 되어 아무런 열매도 없는 헛된 결과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과 분리된 개별적 존재로서 그분과 더불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과 함께 하나가 되어 말해야 합니다.

     

    성령님과 하나 되어 함께 말하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내 안에 들어오셔서 역사하시고 움직이시는 예수님의 영과 모든 생각, 감정, 의지, 계획, 목적, 동기 등 모든 것들이 연합되고 결합되어 완전히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그리스도의 씨가 심어진 우리 영 안에 그분이 충만해야 합니다. 내 영 안에 계신 그분이 생명력을 갖고 크게 자라게 될 때 내가 그분의 생명력을 소유 받아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이 내 안에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는 우리는 죄악된 본성을 가져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이지만 내 안에 그리스도의 씨가 자라게 하는 생명 주시는 성령님에 의해서 우리가 조성되면 우리가 영화롭고 신성한 몸으로 변화가 되고 그분의 움직임이 내 안에서 더욱더 활성화되어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더욱더 크게 역사하실 수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 교제 말씀을 여기서 맺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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