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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1:29~51/사람의 죄를 지고가신 어린양과 생명의 하나님을 사람에게 이끄는 비둘기 1부
    말씀 나눔방 2025. 5. 11. 19:35

    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요한복음 1장 29절부터 34절 사이에 예수님께서 비둘기와 함께한 어린 양으로 소개되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1:29 그 다음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했다. "세상의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1:30 이분은 내가 이분에 대하여, '내 뒤에 오시는 분이 있다. 그런데 그분께서 나보다 앞서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던 분이시다.
    1:31 그런데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하였으나, 그분께서 이스라엘에게 드러나셔야 하므로, 내가 와서 물로 침례를 주었다." 라고 말했다.
    1:32 이어서 요한이 증언하여 말했다. "내가 [성령님]께서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오셔서, 그분 위에 머무신 것을 보았다.
    1:33 그리고 나는 그분을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셔서 물로 침례를 주게 하신 분, 바로 그분께서 내게, '[성령]이 누구에게 내려와,

    그의 위에 머무는 것을 네가 보거든, 바로 그가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이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1:34 그러므로 내가 보았고,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다." 라고 말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께서 비둘기와 함께한 어린 양과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대표하고 있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예수님께로부터 요한의 아들 시몬이 게바 곧 돌로 개명되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이 목적이 잘 계시되어 있는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1장29~34절과 42절 이라는 샹각이듭니다.

    1: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1: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1: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사실 하나님의 뜻은 진흙으로 빚어진 사람이 돌들로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뜻이라는 것을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의 계시를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즉 요한복음 1장 42절을 보면 안드레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 왔을 때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을 아주 주의 깊게 자세하게

    깊게보시며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요한의 아들 시몬입니다. 장차 게바라 불릴 것이고, 게바는 곧 돌이라 칭하는 베드로라는 뜻을

    가지고있다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은 진흙으로 빚어진 시몬 같은 자를 바로 변화되어진 돌이라는 뜻을 가진 게바 곧 베드로란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하여 암시받을 수 있습니다. 진흙으로 빚어진 시몬을 돌이라 칭하는 게바 곧

    베드로라는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진흙으로 빚어진 사람이 비둘기가 함께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끌려진 모든 사람들은

    이 베드로와 같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한 돌들로 변화가 되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그 사람이신 작은 자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믿는 자가 변화되어 하나님께서 갈망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도성인 새 예루살렘 성의 한 부분인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집으로 함께 건축되어지는 것 때문에 모든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하나님께서 갈망하시는 집으로 건축하기 위해서 진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을 비둘기가 함께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통하여 돌들로 변화시켜 하나님의 거처요 사람의 거처가 되는 새 예루살렘 성의 일부가 되기를 간절히 추구하고 계십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이라는 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집인 벧엘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다음에 바로 이것의 실제이신 하나님의

    아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집을 성취하시고 그리고 아울러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으로 예표되고 있는 비둘기로 변화되어진 자들을 하나님의 거처가 되게 하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속한 사다리로서 땅과 하늘 천지를 연결한 사람이 되셨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독생자에 의해서 이것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사도 요한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어린 양과 그 영이신 비둘기에 대한 말씀을 우리에게 특별히 영적인 계시의

    말씀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 목적은 영원한 생명을 지니신 하나님이 생명을 소유한 사람과 연합되어

    져서 하나님과 사람이 상호 거하는 거처 곧 집을 조성하고 건축하는 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가 되고 하나님은 또한 사람의 영원한 거처가 되는 것이 계시록에

    기록된 영원한 새 예루살렘 도성이라는 것을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립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 따른 하나님의 영원한 기처에 대한 계시의 말씀인 것입니다.

     

    바로 사람의 아들 곧 인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하나님의 영원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인 진흙이었던 자들을 믿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을 통하여 변화된 돌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가 요한복음 1장 29절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인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진흙으로 빚어진 사람을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변화된 돌로 만드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진흙으로 빚어진 사람을 하나님의 집을 건축할 수 있는 변화된 돌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린 양 그리고

    성령으로 계시되어 있는 비둘기와 돌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한 사람의 아들 인자로 오신 것을 성경은 계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기록되어진 보십시오.세상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어린 양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을까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아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신 것은 진흙으로 빚어진 사람을 돌로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거처를 건축하기 위해서는

    그 첫 사람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되어진 사람의 죄를 없애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죄를 없애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던 것입니다.하나님의 어린 양은 죄를 사함 받게 하는 구속을 위한

    것이었습니다.그렇다면 요한복음 1장 32절에 요한이 또 증언하기를 나는 그 영께서 비둘기 같이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그분 위에

    머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또 한편으로 성령으로 상징된 그 영께서 비둘기같이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왜 머물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비둘기는 생명을 나누어 주어서 생명을 노아의 방주에서와 같이 감람나무를 잎에 물고 노아에게 생명의 소식을 알렸던 것처럼,

    비둘기는 생명의 공급을 통해서 생명의 분배와 변화와 하나님의 집의 건축을 위한 것이 비둘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어린 양은 사람의 구속을 위한 것이라면 비둘기는 생명의 공급을 통하여 진흙으로 빚어진 사람을 돌로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집인 하나님의 거처를 건축하기 위한 것으로 비둘기가 등장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돌은 진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어린

    양과 비둘기를 통하여  변화되어 조성된 돌이 등장되어진 것입니다. 집은 하나님의 거처인 건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건축에 실체는  진흙으로 빚어진 사람이 변화되어 돌로 조성되어진 사람에 의하여 하나님의 집이

    건축되어진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집인 하나님의 처소를 건축하기 위한 생명을 가진 돌들을 산출하기 위하여 비둘기인 그 영과 함께

    있는 하나님의 어린 양인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 요한복음 1장 29절과 39절 사이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집인 하나님의 건축을 위한 돌들로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이 하나님의 어린 양에 의하여 구속되어지는 일이 발생

    되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사람이 어린 양에 의하여 구속되어지게 되면 그다음에 비둘기인 성령님이 생명을 분배하고 공급해 주고

    진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거듭나고 변화되어진 그 사람이 돌이 되고 그 성령님에 의해 돌이 된 자들로 인해 하나님의 처소인 거처가

    건축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집이 건축되기 위해서는 그 재료의 요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사람의 인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집의 본질과 요소가 구성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집의 본질과 실질적인 요소는 인성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인성은 하나님이 거처하는 집입니다.

    그렇다면 신성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신성은 실제이신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성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인성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두 종류의 본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신성을 가지고 오신 신성의 소유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고 하나는 사람의 피와 살을 가지고 오신 인성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바로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장소인 것입니다.

    거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집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안에 거주하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통해서 거주하는 하나님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천연적인 인성이 아닙니다. 피조 된 인성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30년 동안의 인생의 삶과 3년 반 동안의 공생애의 삶을 통해서 최고의 아름다운 미덕들로 조성되어진

    세상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높이 올려 진 인성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30년 동안의 인생의 삶과 3년 반 동안의 그 공생애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거듭 나지고 변화되어지는 일들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비한 일들을 통해서 거치셨다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성육신 하시고 30년 동안의 인생의 삶과 공생애의 삶을 통하여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의 삶을 통한

    여러 삶의 단계들을 통과한 그 삶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유하신 인성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성육신과 인생의 삶과 공생애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통과한 예수그리도의 인성 안에

    하나님의 거처인 하나님의 집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암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 세상에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이러한 성육신과 인생의 삶과 십자가 위에서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의 여러 단계의

    과정들을 통과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이 바로 하나님의 집의 건축의 실체가 된다 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주 극히 드물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여러 과정의 단계들을 통과한 인성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영원하시고 성별되어진 생명을 소유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인자가 하나님의 집이 되는 것이 요한복음 1장 51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1:51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1장 51절 말씀은 야곱의 꿈이 이루어지는 이 창세기 28장 11절부터 22절 사이에 있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계시로 보여주신 것인데요. 인성을 지니신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땅 위에 세워져 하늘에까지 닿는 사다리로서

    하나님의 집인 베델을 위하여 하늘이 땅에 열려 있게 하시고 땅을 하늘에 연결시키시는 장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28:11 어떤 곳에 이르러 해가 지매 거기서 온 밤을 보내려고 그곳의 돌들을 취하여 베개로 삼고 그곳에서 누워 자니라. 

    28:12 그가 꿈을 꾸었는데, 보라,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세워졌고 그것의 꼭대기는 하늘에 닿았더라. 또 보니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것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더라.

     28:13 또, 보라, 주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주니 곧 네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니라.

    네가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씨에게 주리니

     28:14 네 씨가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동서남북으로 널리 퍼지며 너와 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가족들이 복을 받으리라.

     28:15 또,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너를 지키며 너를 이 땅으로 다시 데려오리라.

    내가 네게 말한 것을 행하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8:16 야곱이 잠에서 깨어 이르되, 주께서 분명히 이곳에 계시거늘 내가 그것을 알지 못하였도다, 하고는 

    28:17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이곳이여! 이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28:18 야곱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28:19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그러나 그 도시의 이름은 처음에 루스라 하였더라. 

    28: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빵과 입을 옷을 내게 주사

    28:21 내가 평안히 내 아버지 집으로 되돌아오게 하시면 주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되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은 변화된 사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변화된 사람 위에 바로 성령님으로 계시된 기름을 부음으로 말미암아 진흙으로 빚어진 사람이 바로 이 어린 양의 구속과 비둘기의

    변화시키는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집이 되도록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꿈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전체의 말씀은 이 51절 말씀을 통하여 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집을 위한 그 영이 있다 라는

    것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또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요한복음 1장 19절부터 51절까지에 있는 요한의 말씀을 통하여 요한이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를 그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 선생님은 이 자신의 성령님을 통한 요한복음의 말씀을 계시로 알려주기 위하여 요한복음 1장 19절부터 28절 사이에

    유대인들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위대한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요한복음 1장 1절부터 얼마나 위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까?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4절에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9절에 참 빛이 있었는데 그 빛이 세상에 와서 각 사람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14절에 말씀께서 육체가 되셔서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니 은혜와 실체가 충만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 18절에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었으나 아버지의 품속에 계시는 독생자이신 그분께서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라는 위대한 성령님의 계시에 따른 빛비춤을 통해서 위대한 계시의 말씀을 보이셨던 이 말씀이 갑자기

    19절부터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 들을 통해서 바로 이 요한이 어떤 자인지를 물어보는

    그러한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요한복음 1장 19절부터 28절 사이에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종교 세력에 대한 말씀이 기록된 것은 생명이 없는 유대

    종교가 참 생명이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가장 강한 세력임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종교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공격하고 대적하고 좌절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유대 종교를 통하여 생명을 소유하신 그리스도께서 로마 정치의 대표자인 빌라도에 의하여 사형 판결을

    선고받고 죽임을 당하시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사실 주님에게 사형 판결을 선고한 것은 로마 세력의

    중심인 빌라도가 아니었습니다.

     

    빌라도는 생명을 소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사형의 판결을 선고하는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연약하고 너무나 부족했던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유대의 종교는 연약한 로마 정치를 통하여 예수님을 사형 판결을 내림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소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 요한 선생님이 요한복음 1장 19절부터 28절 말씀을 기록한 이유는 자신의 그 복음서를 통하여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 생명이 없는

    유대 종교가 생명이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장 강력한 대적자로 나타나게 된 것을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가장 크게

    공격하고 대적한 것은 유대 종교로부터  왔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러한 말씀을 기록함으로 말미암아 당시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생각과 전혀 반대되는

    유대인들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관념과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때 당시에 유대인들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엘리아와 같은 능력을 행하는 위대한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의 유대 종교 안에 있는 유대인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유대 종교적인 관념들은 모세와 같은 마치 메시아 같은

    큰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는 위대한 사람 엘리야 같이 능력 있는 위대한 선지자들을 구하고 찾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구원하고 자신들을 구출하고 인도하기 위한 이러한 일을 하는 위대한 지도자를 모세 또는 엘리야와

    같은 자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물어봅니다. 당신이 누굽니까? 엘리아입니까? 아니면 모세와 같은 지도자입니까? 도대체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고

    물어보는 장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신명기 18장 15절과 18절에서 기록된 것처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대한 선지자가 장차

    올 것이라고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8:15 주 네 하나님께서 네 한가운데서 곧 네 형제들 중에서 나와 같은 대언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니라. 

     18:16 네가 집회의 날에 호렙에서 주 네 하나님께 간구한 모든 것이 이러하니 곧 네가 이르기를, 내가 죽지 않도록 다시 주

    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말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말게 하소서, 하매 

    18:17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말한 바가 옳도다.  

    18:18 내가 그들의 형제들 가운데서 너와 같은 대언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들을 그의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할 모든 것을 그가 그들에게 말하리라.  모세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위대한 선지자가 올 것이라고 말씀을 통해서

    약속을 했습니다.그때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적으로 그 선지자가 올 때까지 그 선지자를 기다렸고 마침내 침례 요한이 왔을 때

    바로 그 사람이 신명기 18장 15절과 18절에 기록되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위대한 선지자가 당신이냐고 물어봤던 것입니다.

     

    2천년 전에도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은 이와 같이 위대한 지도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당시의 유대인들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처럼 외형적으로 나타난 위대한 설교자나 지도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통하여 침례 요한에게 그 유대인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당신이 메시아입니까 당신이 엘리아입니까?

    또는 그 선지자 입니까라고 질문을 함으로 말미암아 침례 요한은 아닙니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입니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일 뿐입니다 라고 소리에 대한 말씀을 합니다.

    소리는 무엇입니까? 단지 외치고 끝나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음성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잠시 그 소리를 통하여 들려졌다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소리인 것입니다.

    결코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접촉할 수도 없는 것이 소리인 것입니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이렇게 침례 요한이 설명하고 있는 것은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그 신명기에서 말한 선지자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메시아도 아닙니다라고 말을 함으로 말미암아

    그 침례 요한에게 그 말을 들은 모든 유대인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크게 실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유대 종교의 관점에서 볼 때 바로 참 생명을 소유하신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 앞에 잠시 나타나 사라지는 소리에 대한 것을 말했을 때

    바로 유대 종교적인 관점에 의한 그 생명을 나타내고자 하는 그 소리와 그리고 생명을 소유하신 그리스도는 그들의 눈에 보기에

    그들의 관념에 의하면 매우 하찮고 별 볼 일 없고 시시한 것처럼 보여졌다라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침례 요한 자신에게 침례를 받기 위해서 오는 것을 보고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왜  침례 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표현했을까요?다윗왕가의 후손으로

    오신 위대한 왕으로 오신 이 유다 족속의 사자 라고 표현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사자라고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또 날짐승들 가운데 가장 힘차고 능력을 행하는 독수리라고 표현하지도 않았습니다.

    왜 그 침례 요한은 힘센 사자나 힘찬 독수리가 아닌 아주 작은 어린 양으로 예수님을 소개했을까요? 만약에 힘센 사자나 힘찬 독수리로

    예수님을 소개했더라면 그 주위에 예수님께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이 큰 두려움에 처해져서 아마 피하고 멀리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침례자 요한에 의하여 어린 양으로 소개되고 천거됨으로 말미암아 종교인들이 위대한 모세와 같은 지도자 또는 능력을

    행하는 엘리아와 같은 지도자를 고대하고 있었을 때 침례자 요한에 의하여 아주 작고 아주 힘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소개되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러한 능력을 행하는 자 또는 위대한 모세 같은 지도자가 되기 위하여

    오시지 않았고 오히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작은 양이 되기 위하여 오셨다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세상 죄를 지고 가기 위해서 어린 양이 되기 위하여 오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구속의 문제는 위대함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구속의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에 위대한 모세 같은 지도자나 능력을 행하는 그러한 위대한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로 오지 않고 작은 어린 양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구속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아주 작은 어린 양으로서 오셨다

    라는 것입니다.

     

    어린 양으로 주님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실 수 있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인류에게 필요했기 때문에 침례자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작은 어린 양으로 천거하고

    소개한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자는 우리를 지도해 주는 인도자인 모세 같은 자가 아닙니다.

    능력을 행하여서 우리에게 시선을 끌게 한 엘리야와 같은 그러한 선지자가 아닙니다.

    인류가 처한 사람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 필요할 뿐입니다.

    작은 어린 양으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구속을 이룰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유대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생각과 관념은 위대한 지도자를 꿈꾸었지만 하나님의 관점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경륜은 사람의 죄 곧 인류를 죄로부터 구속하기 위해서 작은 어린 양으로 오셔서 그 작은 어린 양이 죽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서 사람이 구속을 받고 구속받은 그 사람이 성령님으로 계시된 비둘기에 의하여 변화되어져서 돌들로

    만들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집을 건축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위대한 지도자가

    필요했던 것이 아닙니다.그래서 침례자 요한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또 한 편 비둘기와 함께 있는 어린 양으로 천거하는 모습을 요한복음 1장 32절 33절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1:32 이어서 요한이 증언하여 말했다.

    "내가 [성령님]께서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오셔서, 그분 위에 머무신 것을 보았다.

    1:33 그리고 나는 그분을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셔서 물로 침례를 주게 하신 분 바로 그분께서

    내게, '[성령]이 누구에게 내려와, 그의 위에 머무는 것을 네가 보거든, 바로 그가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이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비둘기가 함께 있는 어린 양으로 천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사람에게 이끌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을 통해서 죄를 사하여 주는 구속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비둘기가 함께 있는 어린 양을 보여주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지니신 하나님을 생명을 소유하게 하여서 사람에게 그 생명을 분배하여 주어서 하나님을 사람에게 이끌게 하기 위해서

    비둘기에 대한 상징적인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 곧 어린 양은 사람의 죄를 처리하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비둘기는 사람에게 생명이신 하나님을 이끌어 오시기 위하여 사람에게 생명이신 하나님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비둘기와 함께 있는

    어린 양을 침례자 요한은 소개했던 것입니다.

     

    바로 생명을 소유한 믿는 이들을 생명을 지니신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어 연합하기 위한 것으로 성령님께서 비둘기같이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바로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 위에 머무시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로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집이 되기 위해서 곧 하나님이 사람 안에 들어오고 사람이 하나님 안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이 구속과 생명의

    분배 이 두 방면의 문제가 다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죄의 구속을 위하여 하나님의 어린 양이 등장되어지고 그리고 생명이신 하나님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비둘기인 성령님을

    계시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비둘기는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하나님을 이끌어서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어서 생명을 분배해 주어서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관계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소극적인 면에서는 구속의 문제 곧 사람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만 적극적인 문제 아주 좋은 면에서는

    비둘기는 생명이신 하나님을 생명을 소유한 사람에게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은 죄로부터 사람을 분리시킴으로 말미암아 구속의 문제를 이루시고 비둘기는 생명을 지니신 하나님을 생명을

    소유한 사람에게 연결시킴으로 말미암아 이 사람이 하나님 안에 참여하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다윗 왕가의 후손으로 오신 왕으로서의 사자나 독수리가 아닌 작은  비둘기와 함께한 어린 양으로서의 예수님을

    천거함으로 말미암아 작은 예수님으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생명의 떡과 피를 마시게 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린양은 약해 보이고 비둘기 또한 작고 온순하고 유순한 것으로 표현됨으로 말미암아 바로 비둘기로 상징되어진 성령님이 이와 같은

    분으로 예수님 위에 이 비둘기와 함께 있는 어린 양으로서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그렇습니다.

    이 비둘기는 생명을 소유하신 하나님을 분배하고 공급해 주고 나누어줌으로 말미암아 이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을 생명을 소유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중생을 가지고 오고 또한 기름부음을 통해서 변화와 연합과

    하나님 집의 건축을 위한 것이 성령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비둘기는 능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생명을 전달해 주고 공급해 주고 분배해 주고 나눠주는 생명을 위한 일이

    성령님으로 계시된 비둘기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비둘기와 함께 있는 어린 양으로 소개된 예수님이 어떠한 분으로 세상에

    오셨는지를 우리가 암시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으로 계시된 이 비둘기는 능력이나 큰 힘으로 표현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가서에 등장한 그 주님을 사랑한 그 여인이 비둘기 같은 눈으로 자신을 애타게 찾고 그리워하는 자를 주님은 칭찬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가서 1장 15절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1:15 "보라, 내 사랑아, 네가 어여쁘구나. 보라, 너는 어여쁘며, 비둘기 눈을 가졌구나."

    주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그 여자의 비둘기 같은 눈으로 그분을 애타게 찾는 그 일편단심으로 그분만을 바라보는 그 여자를 칭찬하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비둘기는 능력을 상징하지 않습니다.생명을 공급해 주는 감람나무를 마치 홍수 이후에 이 세상에 새 창조를 불러일으킬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노아에게 그 감람나무를 전달해 주어서 생명의 땅에 도달했음을 알려주는 것처럼 생명을 분배해 주고 나누어 주고 공급해 주는 그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 비둘기인 것입니다.비둘기는 아주 온순합니다. 유순합니다. 아주 사랑스럽습니다.

    너무나 조그마한 한 손에 잡힐 수 있는 아주 조그마한 그 생명을 가진 그러한 존재입니다.

    아주 작고 사랑스럽고 아주 유순한 존재지만 그 성령님으로 계시된 비둘기에는 생명으로 충만한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모습으로 오셨는지를 사도 요한의 요한복음의 말씀을

    통해서계시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말씀이 계신 하나님은 정말 크신 전능하신 분입니다.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크신 하나님이 요한복음 1장 29절 말씀을 통하여 아주 작은 어린 양으로 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작은 어린 양이 그 영이신 성령님께서 비둘기같이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예수님 위에 작은 자가 되신 그 예수님 위에 머무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정말로 크신 하나님께서 작은 어린 양으로 오시고 또한 아주 비둘기같이 자그마한 그러한 생명을 소유하신 분으로 오신 그분이 훨씬

    더 작은 것인 요한복음 12장 24절에 기록되어진 한 알의 밀알로 비유되셔서 오신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이 한알의 밀알은 또 빻아지고 파쇄가 되어지고 짓눌러지는 이런 여러 단계의 30년의 인생과 3년반 동안의 공생애와 십자가 위에서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이라는 여러 단계의 과정을 통과하신 후에 고운 가루로 만들어진 오병이어가 됩니다.

    한알의 밀이 고운 가루로 만들어짐으로 말미암아 5개의 아주 작은 보리떡으로 만들어 지셔서 사람들이 생명을 소유하게 하는 일을 갖게

    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크신 하나님이 작은 어린 양으로 오십니다. 그 작은 어린 양이 조그마한 비둘기로 오십니다.

    조그마한 비둘기가 한 알의 밀알이 되십니다. 한알의 밀알이 모아져서  빻아지고 으깨지고 쪼개지고 짓눌려짐을 통하여 고운 가루로

    만들어져서 5개의 보리떡으로 사람에게 생명이 되어 주시기 위해서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오신 주님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알의 밀은 밖으로 나타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능력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생명으로 충만한 이 한알의 밀은 생명을 소유하게 하셔서 생명의 증가와 번식을 위한 일입니다.

    생명 안에서의 번성을 위해서 한알의 밀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생명의 책이지 능력의 책이 아닌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능력의 책이 아닌 생명의 책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양은 힘이 없습니다. 다윗 왕가의 혈통을 지닌 유다의 사자가 아닌 어린 양으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능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 곧 인류의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구속을 위해서 하나님의 작은 어린 양으로 오신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다윗 왕가의 혈통을 지닌 피조물의 왕 중의 왕인 큰 능력과 힘을 상징하는 사자로 예수님이 오셨더라면 예수님을

    이 세상 사람은 그 어느 빌라도가 됐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됐던 누구도 그 예수님을 사자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 놓아서

    사형 선고를 받게 하고 죽임을 당하게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잘 표현한 말씀이 이사야서 53장 7절 말씀입니다.53:7 그는 학대를 당하였고, 고난을 당하였지만,

    자신의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는 도살장으로 향하는 어린양같이 끌려가지만, 양이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것같이,

    그렇게 그가 자신의 입을 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힘없는 아주 조그마한 어린 양으로 오셔서 사람의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크신 하나님이 자그마한 그 어린 양이 더욱더 작아진 영으로 계시된 비둘기와 하나가 된 예수님이 한알의 밀알이

    되어서 땅에 떨어져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고 이것이 연합되어져서 한 떡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지체요 하나님의 몸인 교회가

    됨으로써 하나님의 집을 나타내는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위대한 설교자가 되는 것 에 대한 문제도 아닙니다.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는 문제도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과 함께 하나 되어 나타나는 비둘기와 함께하는 어린 양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의 필요는 생명을 소유한 자가 되어서 생명이 수반되는 어린 양을 통해서 구속받는 일과 비둘기를 통해서 거듭나는 중생을 통하여

    기름 부음을 받고 변화되어져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것이 우리의 필요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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