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17장 영적인 가뭄 마지막 때에 우리들에게 일어날일
하늘소리 선교회(Sky News mission)
설교말씀 : 박찬덕 선교사
열왕기상17장에 관한 말씀
주님께서마태복음 6장 말씀을 통해서
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염려하지 말라..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감찰하시고 아시기 때문에
근데 이런 생각을. 그런 생각 때문에 분주하거나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는 것이
네. 아버지의 나라가 하늘에서 전쟁을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하늘
나라가 훼손되었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명예가 더럽혀졌기 때문에 그리고 그 법이
온전히 바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마귀로 인하여.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국 주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라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할 것이요
오늘 너희에게 닥친 어려움이나 시련이나 고통이나 문제 재앙들은 오늘 하루로
충분하다라는 얘기를 이렇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들은 이세상 불순종의 영이요 세상 권세자로
스스로가 칭하고 있는 이 원수에게로부터 오는 시험은 한 가지씩 옵니다 두 가지씩
세 가지씩 열가지씩 이렇게 한꺼번에 닥치는 것이 아니고 한 가지 시험을
이기고 나면 또 한 가지가 우리에게 이렇게 밀려오는 것이 하늘의 영적인 법칙이에요
우리의 몸이 하나고 육체가 하나고 혼이 하나고 영이 하나인 거로 한꺼번에. 이런 일들이 닥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능히 피할 만한 또 길들을 또 허락하시는 우리 주님 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어제 주님의 그 최후의 심판의 결과인 말씀의 기근 말씀의 가뭄이 오기 전에는
여러 가지 경제적이나 또는 온역들이나 또는 먹을 것에 대한 양식들 또는 여러 가지 천연 재해를 통한 기근이나
홍수 재난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스며들어 가까이 오므로 말미암아 말씀이 부족한 기근의 때인 것을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세상의 현상들을 통하여 알려주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이 환란 날에 많은 핍박 날에 정말 말할 수 없이 극심한 때에 세상으로부터 다가오는 이런 환경 세상적인
어떤 문제와 그리고 실제적으로 세상 권세자인 마귀로부터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해를 가하고자 하는 그러한 짐승의표에
환란의 때에 이 사고 파는 일 매매를 못하게 하는 일들이 생기는데 그때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방법으로. 주님의
이기게 하는 그일로 말미암아 이 위난을 위기를 능히 넘어갈 수 있느냐 이 말입니다.
계시록 13장 16절 17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자나 자유 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니 그 이름의수라" 이마의 표를 짐승의 표를 우리가 받게
되면 강제적이고 힘 있는 법령에 의하여 경제적인 수단이 단절이 됩니다
돈이 있어도 내 마음대로 사거나. 내 마음대로 팔 수 없는 시대가 곧 닥칠 것이라는 말씀을 분명히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고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러한 날이 지금은 전혀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인가 라고
의문과 의혹을 가질 수 있지만 마귀의 이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혜와 지식과
오묘 하심으로 이모든 일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은 사고파는 문제를 우리가 할 수 없음으로 말미암아 경제적인 위난으로 말미암아
먹고 마시는 일을 도무지 할래야 할 수 없는 시대가 닥칠 것이라는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33장 14절부터 15 16절을 보면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이 타는 것과 함께 거 하리요. 하도다
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이제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않은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되며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14절에. 보면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주님께서 이 환란과 심판날에 그 심판 앞에 그 영광의 빛 앞에 누가 감히 설자가 있겠는가 라고 14절 말씀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영영이 타는 것과 함께 거하며 그러니까
노아시대 때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마지막 때에는 불로 심판한다 라는 그런 말씀이 있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 환란과
이 심판 날에 주님 앞에 대면하여 설자가 누가 있겠는가.
같이 거할 자가 누가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이 얘기하십니다.. 근데 그때 의롭게 된 자들은.
주님께서 양식을 공급하시고 물을 끊치지 아니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15절 말씀은 바로 거듭난 자들 의롭게 된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 회개하여 점과 흠이 없게 된 자들. 어린 양을 따라 어디 어디든지 따라가고자
하는 자들 예수님의 생애의 증거를 가진 자들 예수님께서 이 땅의 생애를 사시는 동안에 그분이 하나님께 가지셨던 그 믿음
그리고 우리에게 보이셨던 그 믿음을 가지고 지키는 자들만이 하나님께서 그 심판날에 우리를 높은 곳에 거하는 도피성
피난처가 되시는 견고한 바위가 우리의 보호가 되며 양식과 물을 공급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일입니다
과연 이러한 날이 우리 앞에 진짜 참으로 목격하는 그리고 실제 체험하는 일이 될까요.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이 말씀은 절대 되돌아오는 법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요. 참이요. 영원한 것이며 생명이기 때문에 천지를
창조하셨던 그 생명의 말씀을 한번 말씀을 뱉으시면 절대 바꿔지거나 변개하거나
되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때 악인들은 이런 심판 앞에 정말
영영이 타는 불과 함께 멸절 될수 밖에 없지만 의롭게 된 자들. 의의옷을 빛나고 흰 깨끗한 새마포 옷을. 주님께로 부터 주님의 의를 받아 내 삶에 그 의의 옷을 입고 사는 자들에게는. 주님께서 친히 보호하시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면 그 먹을 것과 마시는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줄까요
바로 그것이 엘리야의 열왕기상 17장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우리가 생각해 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엘리야 때에도 엘리야 때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어떤 상황이었섰나요.
그 나라 그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지금의 상황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지금의 상황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가장 배도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을 외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섬기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참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그들이 마음속으로 그들이 합당하다 라고. 여긴 좋게 여긴 그러한
거짓신을 만들어놓고 그 바알이라는 선지자를 통하여 애굽에서 탈출케 하신 그 하나님이
바알 신이다 라고 왕으로 부터 왕의 아내로부터 선지자들로 부터 가르침을 받고.
이렇게 말을 선포를 받은 백성들은 그 하나님이 그 하나님이겠지 라고 하면서
사실은 다른 하나님을 섬기며 영적으로 어둠이 아주 하늘을 가득 채운 것 같은
그런 깜깜한 시대에 어두운 시대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바로 그때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타난 현상 참 진리와 참 하나님이 저희가 믿고 있는 참 신이 아닌 것을
드러내기 위한 그 갈멜 전쟁이 있기 전에 세상에는 그런 영적인 어둠을 하나님이 없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나. 살아계신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그런 시대를 가뭄과 기근으로
바로 세상에 하나님께서 모양으로 나타내 펼치십니다 그 기근은 3년 반 동안에 비가 내리지 않고 우로가 없는 그 경험은
실제 말씀의 기갈이 왔기 때문이라고. 우리 아모스 8장 11.12절 말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11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보라 그 날들이 이르리라. 내가 그 땅에 기근을 보내리니,
빵으로 인한 기근도 아니요, 물로 인한 갈증도 아니며, 오직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니라.12 그들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떠돌아 헤매어 주님의 말씀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달릴 것이나 그 말씀을 찾지 못하리라.“
처음에 경제적 기근이 왔죠 먹고사는 문제가. 아주 심히 어려운데 그것이 어떤 한 족속
한 민족 한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온 세상에 그런 일들이 마치 지금
코로나19가 퍼짐으로 이 온역 때문에 전 세계가 활동할 수도 없고 경제적인 어떤 일들이
축소되고 나라와 나라 끼리 여행하는 이 교통수단이 비행기가 다 멈춰지는 희한한 일들이 과거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런 일들이 먼저 비춰진다 라고 우리 어제 성경을 통해서 한번 묵상을 해봤습니다 그다음에 온 것이 실제적으로 가뭄과 기온 이상한 자연재해가 병충해가 곡식을 갉아먹고 곡식들이 잘 자라지 않고 거기에다가 비와 햇볕이 이렇듯
자연적인 어떤 기후가 더워질 때 춥고 추워질 때 덥는 이런 현상들로. 말미암아 곡식의
열매들이 나오지 않아서 세상에 먹을 것을 다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거기에 말할 수 없는 큰 기근과. 가뭄이 함께 덮쳐옴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삶의 핍절 삶의 위기를 갖고 오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외형적으로는 가뭄과 기근으로 나타나지만 실제 살아계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없어졌다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를 보여주고 알려주고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
온 세상에 경제적 기근 매매를 못하게 하는 그런 일들도 벌어지고 더욱더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뭄과 기근이라는
이런 현상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그 경고에 대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알려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모스서 8장11절 12절을 보면 "주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곧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오. 물이 없어. 갈함도 아니고"
겉으로는 그런 가뭄과 기근이 나지만 실제적으로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말씀이 풍성하게 테레비만 보면 무슨 기독교 방송 무슨 방송에서
보여지고 동영상을 통해서 언제든지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참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그런 이상한 시대가 닥칠것이 라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고하시고 우리에게 염려하심으로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때 그러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의의 옷을 입고 의롭게 된 자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보호하시고 보장을 해 주시는데 그와 같은 먹고 마시는 문제가
열왕기상 17장 1절부터 7절 말씀입니다.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처음에 하나님께서 그러한 말씀에 기갈로 오는 영적인 가뭄으로 인하여 나타난 그러니까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이 세상에 온전히 나타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어둠의 영이
이 세상에서 이런 어떤 자연적인 이상한 가뭄과 기근들을 통하여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하면 우리가 이런 가뭄들을 볼 때 이런 이상 현상들을
볼 때 우리는 무엇을 먼저 봐야 되냐면 이러한 핍절하고 부족하고 물이 없고 양식이 없는 이 시대를 봄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생명의 양식들이 성령님의 그 생수가 아! 정말
없는 듯 보이는 그런 것을 우리가 이렇게 영적으로 깨어서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 할때 먼저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얘기 하냐면 그 말을 먼저 아합 왕에게 먼저 전달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수년 동안 3년 반이죠 비를 내리지 않겠다고 하신다 하고
그 이야기를 성령님 충만한 가운데 아합왕 에게 하긴 했지만
나와서 보니 두려움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님. 충만했던 그에게 또 이렇게 인간적인
생각으로 두려움과 공포가 몰려오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 엘리야의 마음을 아시고 넌 여기서 떠나서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시냇가에 숨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숨으라는 단어를 기억하시고 명심하셔야 될 것입니다.
그냥 그곳에서 시내가에 있으라 그러고 천사를 통해서 보호하시고 이렇게 숨기시면 될 텐데 어찌 숨으라고 얘기하는 것을
통해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되는 어떤 영적인 전쟁에 우리가 섰을 때 이런 것도 우리의 삶에 필요하구나
하나님이 사람이라고. 그래서 하나님이 전적으로 우리를 다 전적으로 보살펴주고 가만히
있어도 이렇게 천사의 날개로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우리가 해야 되는 것임을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4절에 그 시냇물을 마시라.
가뭄이 오긴 왔는데 초창기 이기 때문에 그동안에 비가 내리는 어떤 시냇물이 아직도
물이 조금씩 있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가 있지요 이미 가뭄이 오긴 왔으나
그전에 약간씩 축적되었던 그전에 비가 내렸던 그런 시냇물에서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는 것을 우리가 이렇게 연상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시냇물을 마셔라 물이 좀 있습니다..
그런데 뭐를 명하여 거기서 엘리야 에게 먹게 하셨습니까
까마귀들 예. 까마귀 까마귀는 좋은 새일까요.. 나쁜새일까요
실제 이 까마귀는 부정한 새입니다. 시체를 파먹고 더러운 것을 죽은 그 사체를 뜯어먹는 그래서 까마귀가 나타나면
까악까악 대고 이런 것을 보면 뭔가. 음침하게 들리기도 하고 뭔가 부정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뭔가 기분 나쁘고.
재수가 없는 새라고 해서 별로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까마귀를 통하여 너를 먹이게 한다. 그죠. 그 시냇물을 마셔라 내가 까마귀들을 통하여 까마귀들입니다..
까마귀 한 마리가 아니에요. 그죠 까마귀들
이 얘기는 뭐냐면 주님의 사람들을 공궤하고 양식을 공급하고. 마시게 할 때 누군가는 비축이 되어 있겠죠
아무리 핍절하고 아무리 가뭄과 기근이 이라도 경제적으로 사고팔고 못하게 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래도 부자들은
창고에 많이 비축된 어떤 그런 것들이 있겠죠. 그래서 때로는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을 예전에 한 과부가. 내 아들이
지금 빚진자 에게 팔려가 죽게 되었습니다 라고 엘리사 선지자에게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살려달라 라고 우리 남편이
하나님을 경외 한줄을 당신이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 문제를 포로가 되어서 죽게 될 수밖에 없는 이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라고
그렇게 간구할 때 이 과부의 남편이 누구라 했죠 오바댜 입니다
왕 의 신하였던 그가 100명의 주님의 남은 선지자들 50명씩을 굴에 따로 따로 비밀리에 숨겨놓고 기근과 가뭄이
지나갈 때까지 그 모아놓은 재산 다 탕진 하고 그 숱한 역경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충성스럽게
헌신하고 공궤하고 봉사하였던 오바댜 라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 도 있습니다
그렇죠. 믿는 자들을 통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도 있어요. 그런데 때로는
이런 까마귀들을 통해서 부정한 사람들을 통해서 때로는 우리와 종교가 다른 뭐 불교 어떤 종교 또는 무교 이러한 사람들을
통해서 만나게 하여서 우리에게 이런 양식과 물을 공급에 줄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 까마귀 들이 물론 4절에 나오는 까마귀는 실제적인 까마귀이지만 이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은 처음에는
그런 방식으로 공궤를 하였습니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충분한 양식을 아침 저녁으로 매일매일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측정해 보면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시냇물조차 말라버렸어요.
자 그러면 시냇물이 있었을 때는 그 요단 앞 그릿시냇가에 숨어서 까마귀가 옮겨주는 이 떡과 고기와 이렇게 물은
또 시냇물이 있으니까 먹을 수 있고 먹고 마실 수 있었지만 시냇가에 물이. 마르므로 말마암아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어요
그 떠날 수밖에 없었던. 떠나는 그 상황 이후에가 문제라는 얘기 이게 여기서부터 까마귀가 나오는데. 그게 바로
8절부터 말씀입니다
8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10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11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2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13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먹을 양식과 물을 까마귀를 통해서 이렇게 전달해 주십니다.
참 신기한 방법이죠. 왜냐하면 시냇가로 요단 앞 그릿 시냇가로 숨었을때
거기는 인가나 인적이나 사람이 살지 않는 그러한 곳이기 때문에 사람이 살지 않은 민가가
없는 그곳에서 엘리야가 먹을 양식을 공급받는 일은 하늘에서 친히 주님께서.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하지 않으면 그런 먹고 마시는 일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에그렇습니다.
저번에는 엘리야가 천사를 통하여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니가 왜 이렇게 낙담하여. 죽고자 하느냐 라고.
그에게 위로하고 격려하는 주님의 손길을 우리가 볼 수 있었어요.
천사를 통해서 이곳에서는. 시냇물은 있었지만 서도 먹을 양식이 구할 수 없었던 이때의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으로
역사를 하시는데 우리가 주님이 속히 오시기 전에 바로 이러한 일들이 주님의 사람들에게 실제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과거에만 있었던 일이라고 우리가 덮어놓으면 안 돼요 피치 못할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께서 피치 못하게 이러한 방법으로 역사를 하신다는 겁니다.
어느 때까지 당분간만 중요합니다 무슨 얘기인지 알죠 믿는 자를 통해서 역사를 합니다
때로는 믿지 않는 자들을 통해서 역사하는데 우리가 지금 읽은 것처럼 이런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양식을 먹도록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라고
이미 하나님께서 주의 천사를 통해서 이러한 일들을 엘리야라는 이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가 바로 세워지고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이스라엘 전체에게 왕에게 신하들에게 선지자들에게 백성들에게 알리는 중대차한
일을 바로 하기 전에 그를 이렇게 공궤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갈멜 전쟁에서의 일을 이렇게 하나로 초점을 모아서
관심을 갖도록 큰 커다란 소문이 온 나라에 퍼질 수 있는 일을 만들기 위해서 이런 일들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십니다
무슨 얘기인지 아시죠.. 그런데 니가 요단앞 그릿시냇가에 숨었다가
까마귀를 통해서 먹고 마시는 시냇 물을 통해서 마시는 물을 해결하더니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이 어디예요. 시돈에 속한
사르밧 입니다 이곳이 어디 사람들은 이 명칭이 나오니까
그냥 뭐 시돈에 속한 사르밧 사람인가 보다. 시골사람 그냥 뭐 이름도 없는 또 과부입니다 이 엘리야가 그곳에 갔을때 물론 아들은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이 갔을 때 어떤 문제가 닥치게 될까요
이상하게 생각 하겠죠 예 소문과 루머가 행색이 이상 했겠죠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입은 옷차림이 아무리 남루하고 비루해 보여도 그 옷차림을 통해서 시돈에 속한
사르밧 과부는 그가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선지자라는 것을 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못 차림이 달랐어요. 침례요한이 광야에서 있는동안 옷차림이 세상과 분리되고
구별되고 뭔가 행색이 달라요. 말하는 것도 달라요 느껴지는 그런 모양새가 달라요
이가 간 곳은 바로 지금 이스라엘. 그 왕은 그 왕과 그 안에. 이세벨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그들은 사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거짓인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는 거짓 신인 바알신 태양신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4장 26절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26절: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그 다음에 마태복은 11장 21절 22절 말씀입니다.
21. 화 있을진저 고라산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게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예수님께서도 친히 누가 복음 26장 마태복음 11장을 통해서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이 사르밧 과부에 대한 얘기를 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시돈땅에 있는 사르밧은 두로와 시돈 지방 그 중심지중 가운데에 있는
이름 모를 조그마한 고을이었던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곳에 보낸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 왕은 지금 누구를 섬기고 있습니까
참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거짓 신인 바알신을 섬기고 있는데 이 바알신의 중심지가 시돈과 두로 예요
두로와 시돈 지방이 이 바알을 섬기는 아주 큰 도시 중심지입니다
이 중심지 바로 가운데 속해 있는 이곳 사람은 당연히 바알 선지자를 알고 바알 선지자를 믿고 섬기는 자가 아니겠습니까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께서 그 적진에 가장 중심부에 최고의 정말 가서는 아니 될 그런 곳으로 보내는 것이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에 가서 놀라운 일을 행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소문이 온 나라를 뒤덮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왜냐하면 바알신이 있는 곳에서 바알신이 할 수 없는 이거 여러분 잘 들으세요
다시 할 수 없는 그 죽은 자를 살리는 창조주 하나님께서만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데
창조주.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죽은 자를 부활하게 하는 그 일을 일어나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두로 와 시돈 지방에 커다란 소문이 이스라엘 나라의 왕에게 전파되게 되고
그 소문이 신하들에게 선지자들에게 전하게 되어서 곧바로 이 사건이 끝난 다음에 갈멜
전쟁을 시작함에 있어서 모든 백성들이 이 죽은 자를 살렸다 라는.
엘리야의 소문을 듣고 갈멜산으로 모든 백성들이 다 집결하여 모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무슨 얘긴지 아시겠어요 이 사건이 어떻게 됐을까요
그러면 그 갈멜 전쟁에 450명의 그 바알 선지자들과 싸우고 왕을 상대로 나라를 상대로
거짓 신을 상대로. 싸울 때. 싸움에 있어서 전쟁을 치름에 있어서 백성들이 참여를 해야
되는데 그래야 백성들이 알고 그 거짓. 교리에서 거짓 진리에서
거짓. 신으로부터 배도하고 깜깜하게 되고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은 그때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무너진 그 재단을 다시 정리하고. 정돈하여 수축하여 쌓고.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문제가. 그렇게 결론지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일들이 어떤 과정들이 어떠한
단계들이 징검다리가 필요하냐면 이러한 징검다리가 필요해요.
그동안에 이 하나님의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에도 또 이렇게 또 해결이 돼요.
아까 까마귀라고 얘기했죠.. 까마귀들 그렇죠 이 여자는 그런 면에서 어떤 여자예요.
두로와 시돈지방에 바알선지자 그 중심 그 도시 가운데 살고 있는 이 고을 한가운데 살고있는 이사람은 바알을 믿고 따르는
그러한 이방의 부정한 자예요
이 까마귀들. 왜 하나님께서 이 까마귀들을 통해서 공궤한다고 했을까 물론 실제적인
까마귀를 통해서 공궤 한다고는 했지만 그 숨은 이면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오히려 반대되는 신들을 믿고 섬기는 그들을 통해서도 우리의 삶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 마지막 때 마지막 때에 그러한 일들이 벌어지기 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통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얼마나 좋아요.
오바댜처럼 네. 경건하고 하나님 믿고 하나님이 섬기고 경배하는 그런 자들을 통해서.
주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종이요. 얼마나 어렵습니까 제가 공궤하겠습니다.
하면 얼마나 좋아 그런데 그런 일들이 아니라 오히려
정말 대적자 그 다른 신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는 그러한 자들을 통해서
이가 섬김을 받고 있다 라는 얘기는 무엇을 얘기하고 있냐면 바로 그런 자들과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이렇게 이적과 표적과 기사로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그 부정한 백성들 부정하게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모시고 알고 섬기며 살아가는
그들을 끄집어 내어서 참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에요.
그래서 계시록에 보면 그 말씀이 나오죠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라. 바벨론에 그 음료의 포도주에 취하게 하는 거짓된 복음 잘못된 거짓 가르침 참 가르침이 아니라 거짓 가르침을 듣고 아멘 아멘 하고 따르는 그들도 우상 숭배를 하고 있다 라는 거예요. 지금 세상에. 많은 교회가 바벨론이라는 것입니다.
그 거짓된 부분과 잘못된 오류의 진리의 말들을 진리의 말씀처럼 마치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교회에서 나오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하나님의 백성이 있다라는 얘기예요..
내 백성아 나오라. 하나님의 백성이 있기 때문에 내 백성아라고 얘기한 겁니다.
그곳에 주의 백성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나와서 참 진리 참 하나님을 선포하고 참 하나님을 이렇게 이야기 해줌으로 전파해줌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마치 이 바알신 을 거짓신 참
하나님이 아니라. 거짓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일을 그렇게 말과 이적과 표적을 통해서
그를 되돌아오게 하는 것이 바로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주의 종들
참 백성들이 해야 되는 일들이다라고 이렇게 알면 됩니다.아시겠습니까
그래서 부정한 자들을 부정하다 라고 여기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 들어가서 그 부정한 자를 참 하나님을 전파하고 보여주고 알려줌으로. 말미암아. 그가 나중에 어떻게 됐어요.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고. 당신이 섬기는 그 하나님이 진실한 하나님이라는 것은.
내가 이제야 알았나이다 라고 그 부정한 자가 정결한 자. 거룩한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일이 나타난 거예요.
그곳에 그 엘리야가 가지 않았다 라면. 어떻게 돌아오겠어요 그 집 하나님이 바알신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어 있는 영적으로 살아 있으나 마치 육적으로는 살아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죽은 자들 그 한 사람을 구원하는 문제는 그 주위에 그 지방의 그 나라에
그 이스라엘 전체에 사람들을 구해내는 하나의 첫 열매일 뿐이에요
그 한 사람을 통하여 나라 전체를 구하겠다 라는 그 엘리야를 통한 하나님의 그 간절한
염원과 소원과 바람과 기대가 그안에 숨겨져 있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 때에 이런 방법으로 먹고 마시는 문제가 언제까지 가뭄이 끝날 때까지. 그렇죠. 아!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일이 실제 가능할까요. 어떻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내가 고린도전서 10장 11절 말씀을 항상 얘기하지 않습니까.
구약에 있었던 출애굽 사건이나 그런 모세를 통한 어떤 그런 사건들 또는 선지자를 통해서 또는 왕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그 역사적 사건들은 우리에게 거울이 되고 우리에게 경계가 되고 주의를 해서 그것을 통해서 재현될 것임을 분명히 알고 대비하라.
그때를 위해서 깨어서 각성하고 너희가 피할 길을 바로 이러한 방법으로 가져라 라는 것을 바로 보호 대책으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가 어떻게 그 과부 사람하고 이렇게 만남을 갖게 되나요
이때는 지금 어느 시대예요. 가뭄 극심한 가뭄 비가 오지 않아서.
이제 아직도 3년 반 동안 중에서 이제 초 처음에 조금 몇 개월만 지났을 뿐이에요.
앞으로 남은 기간이 3년 동안 긴 시간이라는 곳이 남아 있어요.
그런데 물이 있겠습니까 가뭄이 바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4개월 6개월 지났기 때문에
그동안에 비축하고 모아놨던 물들을 다 소진하고. 이제 거의 없게 된 거예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 엘리야가 그 과부에게 말하기를 불러서 10절입니다..
청컨데 그릇의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이 배도의 중심지인 이 시돈 지방 사르밧 과부에게 가서 온갖 루머와 소문과 이상한 얘기들을 들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러한 일들을 가운데에 바알신을 섬기는 그도 시 지방 가운데서 이러한 일을합니다
예전에 가나안 여인 있었죠. 개들도 주인이 상해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삽니다.
내 귀신들린 딸을 제발 고쳐주세요 라는
이 가나안 지방 여인도 이 시돈 지방의 사르밧 과부 얘기를 구약의 과부 얘기를 듣고
그 소문을 익히 오래전에 있었던 그 일을 알고 바로 바로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가
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고 예수님께 다가왔던 것입니다
기억나시죠 가난 여인. 그 개들을 막 얘기하면서.
주님께 죽자 사자 매달리는 그 얘기도 바로.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나타나서 죽은
아들을 소생시켰다라는 그 말씀을 듣고 접하고 알고 읽었기 때문에.
그런 자신 앞에 있는 그 예수라는 자가 바로 엘리야보다도 훨씬 더 능력 있는 그러한
구원자라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다가갔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냥 그냥 찾아온 곳이 아니에요. 아시겠죠 바로. 이 여인도 그 지방에 같은 여인이었어요. 그렇습니다 물을 좀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해라 마지막 남아 있는 이제 그 물이 떨어지면 정말 음식도 해먹을 수도 없고 정말 생명의. 건강을 유지하는 그런 물이 끊어짐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물로 만들어진 이 사람의 인체가 더 이상 활동할 수 없는 기능에 빠져서 죽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물을 가지러 가는데. 다시 부릅니다
엘리야가 저를 불러 가라되. 11절 내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 가져오라 하니 가뭄으로
인하여 그동안에 모아놓고 비축한 음식을 다 먹고 이제는 한 줌 한 가루밖에 없는 그 상황에서 이제는 떡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에서 그 엘리야가 온 선지자임을 옷차림이나 말씨나 이런 걸 통해서 그를 알고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를 하는데. 떡도 없습니다. 다만 통에 떡을 만들 수 있는. 조금 가루 한 움쿰과 병의
기름 조금뿐입니다 저번에 우리 병 얘기를 했었죠. 기름 얘기 똑같은 얘기예요 결국은
성령님과 말씀으로만 산다 라는 얘기를 이렇게 통에 가루 한 웅쿰 떡을 만드는 재료가 이제 마지막으로 조금 남았을 뿐입니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 과부가 말하기를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내가 죽을려고.
이제 마지막 내가 밥상을 차리려고 지금 생각하고 있습니다 라고 얘기합니다..
그때 엘리야 선지자가 얘기하는 것이 두려워마라 하나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는 내 말대로 그렇게 하는데. 네가 먹으려고 먹고 죽으려고 했던 그 떡을 먼저
우선적으로. 나을 위하여 큰 떡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작은 떡 하나 큰 떡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없어요. 그것은 그것이 마지막인 것을
모든 것을 다 합해서 만든 조금의 소량 한 사람도 채 그 양식으로 먹을 수 없는 1인분이 아니라. 한 저기 조그만 어린아이가 먹을 수 있는 정도의 그런 조그마한 양인 것을
13절에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네게로 가져와라. 그리고 뭐예요 그리고 난 후에 하나님의
기적으로 그 가루가 또 생기고 가루가 또 생기고 또 부으면 또 생기고 또 생기고 하는
이적과 표적을 기사를 통해서 너와 내 아들을 위하여 떡을 만들라 라고 먼저 있는 그 모든 것을 자신에게 드리라고 곧 하나님께 바치라고 공궤하라고 얘기를 합니다.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이상으로 채워주시겠다 라는
그런 보상의 법칙을 엘리야가 은연 중에 이렇게 숨기면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비를 이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아직도 얼마나 남았어요 가뭄이 이제 초창기에 몇 개월 지났기 때문에 3년이 넘도록
긴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에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 아니라 저가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엘리야도. 물론 그 과부와 그의 아들 식구라고 써져 있는 것을 보면
그 아들 외에 또 사람이 있다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어요.
그렇죠. 만약에 이게 아들 하나뿐이라면 저와 엘리야와 아들이 여러 날 먹었으리라
그랬을 텐데. 식구가 여러 날 먹었다는 것을 통해서 거기에 이 과부와 아들뿐만 아니라
남편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라는 것을 우리가 은연 중에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 같이 통해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였다. 이렇게 나옵니다
지금까지 아주 순조롭게 잘 됐죠.. 양식과 먹을 것이 없을 때 세상의 짐승의 표에 환란이
개국 이래로 없던 그러한 환란과 핍박이 일곱째 재앙이 바로 내리기 전에 일곱째 재앙이 매우 있기 전에 일곱째 재앙이 섬들이 막 옮겨지고 바다에 없어지고
우박 60km 70km에 되는 그러한 우박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살아남을 자가 거의 없겠죠.
모든 사람이 아마 죽을 것입니다.
그때 그러한 일들이. 벌어질 때 벌어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의의 옷을 입은 자.
거룩함을 입은 자. 하나님의 참 백성 으로 진리를 선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일정한 기간 동안에 당분간 까마귀를 통해서 먹여주시고. 시냇물을 통해서 마시게 해주시더니 시냇
물이 마른 후에는 그나마.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이 방 사람. 부정한 자들로 통하여. 부정한 자로 통하여. 자기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이렇게 공급하게 하십니다
여기까지는 아주 읽으면 참 좋아요..
그런데 17절부터24절까지 읽으면 이상한 일이 이 클라이맥스 이 내용이 나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열왕기상 17장 17절부터 24절까지입니다.
17 이 일 후에 그 집 주모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19 엘리야가 저에게 그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취하여 안고 자기의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 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20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로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 오고 살아난지라
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 어미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줄 아노라 하니라
이 여인의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린 것이. 과부의 죄 때문에 이런 재앙이 하나님이 심판이 임했을까요 어떻습니까..
18절에 보면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죄를 생각나게 합니까.
그러니까 남편은 지금 죽어서 살아 있지 않지만 그 과거에 삶을 살면서 어떤 그만이 알고 있는 깊숙이 마음 한가운데. 죄짐 으로 남아 있는 중압감. 그런 죄가 기억나게 하고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아들이 죽은 것이 자기의 죄로만 이런 일이
생겼다라고 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절에 엘리야 선지자도 그렇게 얘기해요 하나님 주께서 내가 이 우거하고 있는 . 내가 지금 신세를 지고 있는데 이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서 그 아들로 죽게 하십니까. 라고 따집니다.
이 엘리야도 이 재앙이 그 과부가 어떤 잘못한 일 때문에 그 일이 생기지 않았나라고
얘기하지만 실제 이러한 삶의 결과들인 재앙들은 죽는 일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아닙니다
그 고통. 그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우리 성경의 요한복음 읽어보면 그것이
나오죠. 이게 누구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가 그런 것이지.
그의 죄 때문이나 조상들의 죄 때문에 그가 이러한 소경이 되고 앉은뱅이가 되고.
귀머리가 된 것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에게 일어나는 이런 안 좋은 일들.
특히 병으로 증세가 심히 위중 하다가 죽는 일이 마치 내가 죄를 지어서 나를 치기 위해서 그 아이를 죽이는. 아니에요 모든 것은 개인에게 이렇게 연결되는 것이지
나의 죄 때문에 그래서 이 구약에 그런 말씀 있잖아요 아비가 포도주를 마셨는데 자식이
이빨이 시다 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아니다
그렇지 않다. 하고 각각의 죄는 각각의 개별적으로 임하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곧 이 고통과 이 재앙과 이 아들의 죽음은 하나님의 일을 나타나므로 어떤 것을 보여주려고 그랬어요 무엇을 보려고 지금 그런 거예요.. 왜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이 아들을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한 가운데 숨이 끊어지게 했습니까.
뭡니까 이유가 뭐예요 1시간 넘도록 이렇게 얘기한 것은 이 오늘 지금 바로 이 짤막한
이 5분 동안 얘기를 하려고 그 얘기를 지금까지 한 거예요
뭡니까 왜 죽었어요 뭐 때문에 죽었습니까. 이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에 대한 얘기를 알아야 돼요 이 얘기는 바로 예수님 얘기예요.
내가 그랬죠. 항상. 성경을 읽을 때 그 성경 속에 예수님이 보여 지지 않으면 예수님이
이렇게 나타나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성경을 잘못 읽은 거라고 내가 몇 번 얘기했죠.
어떻게 이게 예수님 얘기일까요. 정말 상상이 안 되죠 그죠 상상이 안 될 거예요.
이 얘기를 이해하려면 예수님께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야 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빌라도가 뭐라고 얘기를 했냐면 내가 이 예수를 유월절에는
특별히 죄인 한 사람을 석방하는 그런 관례가 있는데 내가. 이 사람을 내가 살려줄까.
아니면 너희가 살인자라 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로마 정부로부터 구속 구원해야
된다 라는 그런 말로 쿠데타를 일으킨 대모 주동자 로마 정부에게 반기를 든 사람
앞장섰던 지도자 바라바를 내가 살려줄까 하고 두 가지 문제를 이렇게 제시하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으면서 기억납니까
내가 바라바라를 놓아주랴. 아니면 이 예수를 놓아주랴 하고 얘기했을 때 그들이 얘기한
것이 뭐예요. 그 바라바가 누굽니까. 이것을 알아야 이 문제를 풀 수가 있어요.
성경에 바라바를 살려주고. 저희 예수를 죽이라 했을 때 그렇게 기록 됐을 때 이름까지
기록됐죠 그죠. 그러니까 우리가 바라봐라 알고 있잖아요.. 그때 뭔가 그 바라바라는 거기는 뭔가 영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결국 한 거예요. 그냥 기록한 게 아니에요.
그런데 그 영적인 의미를 우리는 알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 귀가 있었지만
마음이 있어도 깨닫지 못하는 그런 영적인 둔감함으로 많이 아마 그 일이 왜 벌어졌는지
우리가 그 속에 감춰져 있는 주님의 구속 사업을 우리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지.
하나님은 다 말씀들 통해서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다 알려주고 있어요..
그 바라바는 뭐냐면 바요나 시몬아 할 때 바자가 들어가죠.
바요나 그러잖아. 예수님께서 시몬을 부를 때 시몬아 너는 시몬인데
이제부터는 배드로라 하라 할때 바요나 그 얘기는 뭐냐면
요한은 사람 이름인데 바자라는 얘기는 아들이란 뜻이에요.
바요나 시몬아는 요한의 아들 시몬아 이런 뜻이에요. 그러면 바라바의 뜻은 뭘까요
바라바의 뜻이 뭐예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확실히 맞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맞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죄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고 죽기 위해서 오셨죠.
그러면 그 죄를 대표하는 자가 누구냐면 바라바예요
바라바는 . 어떤자예요 아담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에덴 동산에서 그런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어요 원래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었는데 불순 종의 죄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이 아들로서의 형상을 잃어버렸어요 빼앗겨버렸어요.
원수마귀에게 그렇죠. 모든 사람들이 아담에 속한 자예요.
원래 우리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에요.
바라바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또 하나의 하나님의 아들.
바라바가 뭐냐면 하나님이 아주 그분 똑같은 예수님의 이름과 똑같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여기에 눈물 나는 이 얘기가 숨어져 있어요.
무슨 얘기예요 아마 여러분들은 이런 얘기 좀 처음 들을 거예요. 이 바라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죄를 지어서 잃어버린. 그 하나님의 원래 하나님의 아들 신분이었던
아들된 자들. 하나님의 아들들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과 맞바꿔치기한 것이 십자가 지금 조금 이해가 되나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죄를 짓고.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밖에 없는 형벌당할 수밖에 없는 그. 바라바를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짐으로 그 바라바가.어떻게 됐어요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됐잖아요.. 원래 그가 그 십자가에 달려야 될 사람이에요..
누가 빌라도가 얘기했잖아요. 내가 누구를 살려주랴 관례에 따르면 유월절 날 한 사람을 꼭 석방시키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한이 만약에 있고. 너희 유대 백성들에게 그렇게
시행할 그 로마 황제의 그 은총에 따라서 그 일이 벌어지는데 바라바를 십자가에 달까
그럼 내가 예수를 풀어줄 것이다. 바라바를 십자가에 달라 라고 한다면 그는 십자가 달려서
예수님이 지금 이 죽으신 것처럼 그렇게 죽어야 해요.
그런데 그 관중들이 하나님의 구속 사업의 섭리와 경륜에 따라서 바라바를 살려라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 라는 그 말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바라바가
짊어질 그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될 형벌을 대신 형벌을 받으므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죽고 그는 살아난 거예요.
바라바는 살고. 예수님은 죽으신 거예요. 이게 다 바꿔치기한 거라니까.
이런거 여러분 잘 모르셨죠 성경이 이렇게 오묘하다는 얘기야 이게 모르면 그냥 바라바
뭐. 그 사람 운이 좋아서 이렇게 살아났네 이렇게 생각하고. 예수님이 억울하게 그냥
아무 죄도 없는 분이 돌아가셨네. 그게 아니라 그 속에는 죄를 하나님의 죽었던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내려와서 그를 살리고 대신 죽어지는
이 죄를 담당하는 사건이 바로 십자가라 이말이에요 그러니까 바라바가 죽는 것은 예수님이 죽는 것이에요. 바라바를 살리기 위해서. 반대로 예수님이 죽고요.
예수님 만약에 십자가를 지지 않고 십자에 달리지 않고 산다 라면 바라바가 죽어야 되는
거예요. 반대 현상이 일어나는 거예요. 예수님이 살고자 했다면. 살았다면 바라바가 죽을
것이오 .반대로 저 바라바를 살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형벌을 담당하셔야 되요
예수님이 죽는다 라는 것은 바라바가 구원받는 것을 의미하는 거예요.
바라바와 예수님은 하나가 된다 그래서 너희가 십자가에 달려서 하나가 되라 라는 얘기가 그런 의미예요.
죄 위에서. 이제 알겠죠 하나님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참 하나님의 아들이
그 형벌을 우리가 받아야 될 그 십자가 틀을 대신 형벌을 담당하시고 죽음으로 우리가
살게 되었고 그가 고통 당함으로 우리가 평안 얻었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고 그가 침뱉음 당하고 조롱받고 욕지거리를 당하고 그런 일을. 당함으로 우리가
위로를 받은 것이 바로 반대 현상이 전체적으로 일어난겁니다
얼마나 놀라워요 내가 원래 바나바였었는데 원래. 내가 진짜 저렇게 죽어야 되는데
예수님이 저렇게 죽었구나 하나님의 아들이여 나를 위해서 그렇게 나를 위해서
그렇게 돌아가셨군요 라고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구원의 길로 들어선 거예요
하나가 된 거예요 이 말이 20절 말씀이예요 이게 예수님 말씀이예요
여러분은 내가 지금 이 말을 해도 그 아이 위에 세번을 구푸렸다는 말을 몰라요
여러분은 지금 이 영적인 예기를 몰라요 내가 지금 이 예기를 5분 10분에 걸쳐 말해도
몰라요 그 사람이 엘리야가 왜 세번 그위에 올라가서 엎드렸나요 그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그 아이 위에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 그 세 분 하나님께 간절히 요청한 것은. 뭐예요 내가 저 아이와 하나가 되겠습니다 하나가 된 마음이 뭐예요.
예수님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세요. 내가 죽고. 저를 살려주세요.
내가 죽고. 저를 살려주세요.. 엘리야가 지금
그 죽은 아이의 몸 위에 올라가서 어떤 기도를 했어요.
예수님과 같은 기도 스데반과 같은 기도 아버지여 저들이 자신들이 하는 이죄들을
알지못합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내가 죽어서라도 저들을 살리고 싶습니다 라는
하나님의 마음 그게 사랑과 자비의 영광의 바로 여호와의 이름이예요
하나님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서 저 바라바를 살릴 수 있다면.
바라바는 우리 모든 하나님의 아들들이예요 내가 죽어서 저를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해주세요 라고. 그분이 죽어서 바라바가 어떻게 됐어요 살았습니다 십자가 형벌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처럼 엘리야는 지금 그사람 위해서 그아이위해서 이게 복음이고 이건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해 왜. 그 사람이 왜. 이 아이가 살았는지.
도대체 왜 그 죽은 시체 위에 부정한자 위에 얼굴에 얼굴을 맞대고 눈에 눈을 맞대고
코에 코를 맞대고 내 눈을 빼서 저의 눈을 집어넣어주겠다는 얘기. 그래서 새로운 눈을
집어넣어주겠다는 얘기예요 내 심장을 꺼내서 내 심장이 내 빼내가지고 저 심장 안에
넣어서 새로운 심장을 새로운 생명으로 태동하고 만들고 싶다 라는
그런 마음의 소원 엘리야가 그래서 부활 승천한 거예요그 런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를 죽여서 내가 죽어서. 차라리 나을 죽이고 저를 살려주세요
예수님과 같은 그러한 이 죄인들을 위해서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고 하나님 하나님.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이 예수님이 가지셨던 이 마음이 누구의 마음이에요..
하나님의 마음이잖아요 하나님이 그 예수님과 하나가 된 마음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가 됐기 때문에 죽음의 길로 갈 수 있었던 거예요.
지금 이 엘리야는 예수님하고 하나가 된거에요 그러니까
그러했던 것처럼 똑같이 자기도 하나님 나를 죽이고 저는 이애를 살려주세요.
그게 옳지 않습니까. 얘가 살아야죠. 그래야 엄마가 새 생명 얻고 행복하게
정말 이 정말 주님께 큰 은혜를 받고 기쁨 가운데 살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제발 나를 죽이고 저를 살려 주세요 라고 간청 했을때 이러한 부활이 일어 납니다
지금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에요 또 있어요 이 말씀을 내가 얘기하잖아..
2시간 3시간 얘기해야 돼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여러분 말씀이 참 오묘하다. 참 기묘하다 어떻게 이런 말씀 속에 십자가에 피에 대한
얘기가 이렇게 골골이 아주 알알이 석류알 처럼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어때요
오묘한 정도가 아니라 내 가슴을 파 부벼 칼로 에이는 듯한 아픔이 있어요
이런 말씀을 들으면 오묘하다는 말을 떠나서 가슴이 찢어져요
이렇게 구속 사업이 우리를 향한 구원 사업이 이렇게 이 하나님의 아들까지 오셔야만 되는 그리고 죽으셔야만 되는 대신 형벌을 받으셔야만 되는 아! 지금 그 아이의 죽어있는 삶은 어떤 삶의 모습 이예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모습이에요
죽어 있어요 영적으로 가뭄이 뮈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가뭄이 닥친 것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오고 기근이 오고 홍수가 나고 막 이런 것이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그러한 일들이 벌어진 것처럼 실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와 같이 죽어 있는 모습이라는것 죽어있다 라는것 살아있는것 같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참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참 하나님이라고 섬기고 있는 그 바알신은 태양신으로써 거짓 신이고
그러니 그들에게 그들이 구하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응답할 수 없는 그러한 어두움의 시대 그런 깜깜한 그런 영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 진리가 사라져버린 시대. 그때 이 하나님의 종이. 어떤 마음이에요 하나님 내가 죽고 저를
살려 주세요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믿음 그게 바로 예수님 마음 아니에요
그렇죠. 예수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그 마음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에요 그런 것처럼 엘리야도 지금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죽은 자를 살리고 싶다 라는 그 염원은 곧 이스라엘 백성들 내가 죽어. 저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 살리고 싶습니다 라는 그런 영혼의 기도가 있는 거예요
그런 자가 하나님의 일꾼 하나님의 종이 되는거예요. 아무나 종이 되는 게 아니에요.
만약에 우리에게 나에게 이 박찬덕이가 그런 마음 없이 영적으로 죽은 하나님의 백성들
이스라엘 백성들 거짓 신을 믿고 지금 바벨론에서 나와라 나와라 거짓된 복음을 전하는
그들에게서 나와라 거짓된 복음 개인적으로 세상 간증이나 하고 하나님 뭐 이렇습니다
저렇습니다가 아니라 이런 피의 복음 이러한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이런 생명의
복음이 없는 그 얘길 듣고 아멘 아멘 동의하고 아 그렇습니다 그런 식으로 우상숭배 하고 있다는거에요 지금 그들이 거짓 신을 믿고 있다는 거에요
그들은 참 하나님을 십자가를 보고 예배를 드리고 헌금 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하나님께 경배 드리고 섬기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참 하나님이 아니라 거짓신을
섬기고 있는 거에요 그들이 그러니까 나오라는 거에요 내 백성아 내 백성아. 너는 나의
자녀가 되어야지 넌 내 백성이 되어야지 나와라 참 복음 참 진리를 듣고 참 하나님을
만나라는 얘기에요 너무나 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래서 엘리야가 바로 이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이제 소문이 났겠죠 하나뿐인 아들이 죽어버렸으니 울고불고 난리가 났겠죠 그런데 엘리야가 그만 살려버렸네
그니까 온 나라에 온 이스라엘 땅에 모든 사람들이 이소식을 듣고 귀 기울이고 있을 때 엘리야의 일거수 일투족이 다 초점이 되고 1급 뉴스가 되겠죠
긴급 뉴스가 되는 거에요 그리고 어디로 갑니까 갈멜로 가잖아요 전쟁을 치르러
왜 그러므로 말미암아 모든 백성들이 그 엘리야 죽은 자를 살린 이가 이적을 행하신
하나님의 참사람인 그를 보고자 모든 사람이 모여 있을 때 누가 참 신이냐
너희가 바알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내가 섬기는 하나님을 선택할 것이냐
둘중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얘기했을 때 바로 하늘에서 하나님의 불이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은 봤지.너희 백성들아 봤지 내가 섬기고 내가 기도하고 내가 수축한 제단에서 올린 제사만이 하나님이 받을 수 있는 참 신이야.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저 바알신을 믿는 선지자 450명을 그냥 다 죽여버려. 모두다 죽여버립니다
이러한 일이 없었다 라고 한다면 죽은 자를 살리는 이런 놀라운 일이 없었다면 영적으로
죽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이끌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과부의 아들을 병으로 죽게 하고 살리시므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대하신 하나님 창조하신 하나님 살리시는 하나님 부활하시는 하나님.
참으로 역사하신 하나님 참으로 애굽 에서 10가지 재앙을 이렇게 이기게 하시고
애굽 에서 출애굽 시킨 하나님 이심을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보여주는 표적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제가 가진 믿음은 바로 예수님과 같은 믿음 이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기도했기 때문에. 그 죽은 자가 살았 던거지 그냥 우리가 손을 얹고 야고보서
5장5절에 나오죠
그 얘기가 그 얘기예요 의인의 간구하는 기도는 역사하심이 많다 이 엘리야의 이런 일을 염두에 두고서
사도바울 선생님이 얘기한 거예요.
그냥 우리가 기도해서 낫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 나타나는
것이지 이런 마음 없이 하나님 고쳐주세요.. 죽는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어떻할건가요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엘리야가 이 과정을 통해서 알므로 말미암아
그위에 몸을 얺고 그러한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그가 부활하게 된것입니다
이말은 많이 묵상을 해야 돼요. 곱씹고 되새김질하고 아 이런 얘기들이 신약 성경에도
한번 나와요.. 그 아이 위에 죽은 사람 위에 몸을 펴서 엎드리어서. 이렇게 기도하는 장면이 생각이 나요. 사도행전 9장 32.33 죽은 애니아의 부활 사도행전 20:8 유두고 청년의 부활
그래요 바로 우리가 이러한 이 영적인 전쟁을 치르기 전에 이렇게 엘리야처럼 믿음을
이런 하나님께 예수의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하고 훈련 받아야 됩니다 영적으로 이렇게 훈련받지 않은 자가 준비돼 있지 않은 자가 갈멜 전쟁 가면 오히려 바알 선지자 에게 얻어터져 죽죠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훈련받아야 됩니다. 준비하셔야 됩니다..
일곱 째 날 외쳐 부르짖는 날이 있어요 그때를 위해서 지금은 우리가 연단 받고 훈련받고 조금씩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언젠가 크게 선포할 날이 와요 바알선지자 450명
왕도 있고 온갖 왕의 신하들 높은 사람들이 다 있고. 백성들이 이곳저곳에서 사방에서
그 갈멜 에서 엘리야 선자가 와서 바알선지자들과 대치해서 전쟁을 치른다는 얘기를 듣고
모든 사람들 전부 거의 다 나왔을 거예요.
너무나. 희한한 얘기 때문에 가뭄이 있죠. 죽고 사는 문제가 달려 있죠..
이때 이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보여주고 나타내주고 드러내주기 위해서 지금 엘리야를 들어 쓰시는 거예요. 그렇게 들어 쓰시는 거예요
그때 우리도 엘리야처럼 사용을 받아야 된다.
첫 번째 엘리야가 있습니다
이 엘리아가 첫 번째 엘리야의 두 번째 엘리야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바로 오리라
한 엘리야가 침례요한이다 두 번째 엘리야가 있습니다
세 번째 우리가 바로. 그 세 번째 엘리야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내 백성아 내 백성아 그곳에서 나와서 참 하나님 너희가 지금 섬기고 있는 하나님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하는 이방 교회가 섬기는것 같은 우상 숭배와 같은 그런
참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야 하고 그 바벨론의 지금 거짓 복음에 취해있는
오류 잘못된 진리를 듣고 있는 그들을 정말 끄집어내서 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수
있는 우리가 돼야 됩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생명의 말씀을 전할 때 우리는
세 번째. 엘리야가 된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말씀드리며 오늘 말씀의 교제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