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방

호:11:4,호:11:1,호:11:9/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에 속한 사랑(사람의줄 사랑의 끈 전편

스불론의 배 2023. 7. 16. 21:29

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호세아서 1부 말씀에 이어서 2부 말씀의 교제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이 어리고 아주 연약한 아이였기 때문에 장성하지 못하고

결함이 많고 부족함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품어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친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택한 백성인 장래에 베필될 자들이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 자신의

아들들인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시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애굽에서 부터 택한 백성들인 선민 이스라엘을 변함없이 자비와 긍휼과 인자하심으로 취급하시고 다루시는 것은 바로 그들을 아들로 삼으셔서 그들의 입술의 고백을 통하여 아버지라 부르게 하고, 아들로 삼음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과 그 아들들 사이에 친밀한 교통이 있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갈망하시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라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호세아서 11장1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그 우주와 만물과 사람 또  하나님의 영적인 모든 세계에 존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

자신이 바로 이 사랑의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을 대표하고 있는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선민 이스라엘을

특정하셔서 그들을 통하여 온 우주 가운데 하나님의 그 영원하신 사랑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게 하고 알게 하고 체험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신비한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만물을 어떻게 취급하시고, 어떻게 대하시고, 어떻게 다루시고, 어떻게 돌보신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세상 모든 만물 가운데 경배받기를 원하시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사랑이 영원하고도 변치 않고 다함이 없는 영원무궁한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아들들로 취급되어진 선민 이스라엘을 또한 하나님의 아들들을 삼기 위한 그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아들이 연결되어지게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아버지의 영원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공급해 주기 위하여,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쉼없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임마누엘 하셔서 함께 삶을

공유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로 연합되어지는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기 위한 이런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인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기 위해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런 말씀들을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를 알라 힘써 알라 바로 아버지의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친히 우리에게

하나하나 그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노예 살이를 하고 있었던 그때부터 광야의 40년 동안의 삶의 여정과 더불어

하나님의 그 신성하고 거룩한 생명의 땅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그곳에 들어가서 아버지의 사랑을 전해줌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그 신성하고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여서, 그들이 하나님의 신성한 요소로 조성되어져서 하나님과 어우러지는 일치되고, 조화가 되고, 부합되고, 적합한 그런 존재가 됨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신부로서 적합한 순결을 보존하고 정절을 지키는 아내로서 바로 이 첫

남편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두 번 다시 패역한 짓을 하지 않고, 음란하고 변절된 마음을 가진 고멜과

같은 창기와 같은 그러한 변심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하지 않게 하시려는 아버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선민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어릴 때부터 애굽에 있을 때부터 마치 아버지의 사랑이 어머니가 아이를 품어주시는 그러한 모습으로 선민이 이스라엘을 돌보시고, 다루시고,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우리를 사생자나 또는 양자가 아닌 하나님의 진정한 참 아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그 참 생명을 소유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부여해 주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오병이어와 같이 잘게 잘게 쪼개진 생명의 양식들을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영적 존재에게 이렇게 부여해주고, 운반해주고, 전달해주고, 공급해 줌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똑같은 생명과 아버지와 똑같은 본성을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똑같은 자들, 곧 예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가진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선민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 유다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로 인도하고 있는 하나님의 그러한 역사를 우리가 눈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서 11장 1절에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그분께서 또한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백성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인 그 선민 이스라엘과 연합하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한

이스라엘까지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독생자이셨던 그분을 애굽에서 불러내셨다 라는 것을 마태복음 2장 13절, 14절, 15절에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2: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2: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호 11:1〕

 

출생되어졌으나 헤롯왕이 사탄의 책략과 마귀의 음모로 인하여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난 베들레헴

지경에 그때 당시 태어난 시점으로 어린 아이들 모두를 살해하고자 하는 그러한 사탄의 궤계에 주님께서

천사의 도움을 받아 애굽으로 잠시 피난하였다가 헤롯 왕이 죽었다 라는 그 소식과 함께 다시 유다 땅으로

돌아오는 것을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택한

이스라엘과 연합하였다 라는 것을 애굽에서 불러냈다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는 것은 여러분 남편이 아내를 대하는 그러한 다정다감하고

어떤 애정 어린 사랑으로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맛보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남편이 되시고 선민 이스라엘을 아내라고 이렇게 칭하면서도 사실은 그 속에 바로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인 아버지의 사랑을 가지고 친히 그들을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하나님의 참 성전이신 그리스도를 만들기까지의 모든 삶의 첫 부분부터 마지막 부분까지 하나님께서 친히 관여하여 주시고 친히

관계를 맺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그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는 사랑인 생명 안에서의 사랑 생명에 속한

그 사랑을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내가 살과 피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노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가 있다 라고 영생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생을 소유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 피와 살을 나눔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생명을 내놓고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대신 대치하여서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부여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공급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대치시켜서 우리를 생명을 소유한 자로 만드는 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피를 받아 마셔라 내 살을

받아 먹어라 라는 그분께서 몸을 통하여 이루시고 성취한 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분의

피와 그분의 살을 먹는다 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부여해주고자 하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는 그러한 사랑을 느끼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죠? 자신을 내놓고 바로 자신의 생명의 양식을 먹은 자들 그리스도를

먹고 마신 그런 자들을 똑같이 일치된 사랑을 갖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그 여호와

하나님의 그 사랑은 정말 말할 수 없는 신비하고도 놀라우면서도 이 세상에서는 전혀 맛볼 수 없는

그러한 생명에 속한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이 사랑은 우리에게 이러한 하나님 자신을 내어주고 하나님 자신이 내어주신

그 생명을 통하여 우리를 생명을 소유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과

경륜의 이상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선민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는 다함이 없는 영원무궁한 사랑을 이렇게 선민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셔서 베풀어 줌으로 말미암아 그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하셔서 그 뒤에 오실 바로 호세아 선지자가 예수님 오시기 750년 전 시대의 사람이죠.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로 주후 27년 늦가을에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공생애를

시작하죠. 그리고 31년 봄에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면 약 몇 년입니까?

 

약 750년 전에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이 말씀이 기록되어졌다면 바로 30년이 지난 약 780년 후에

나타나실 그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신 그분의 사랑은 바로 아버지의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는 생명에 속한

사랑으로 우리들을 이렇게 취급하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어서 생명 안에 있는 사랑을 갖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들어주신다 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이

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함께 발걸음을 떼는 순간부터 손을 잡고 품에 안으시면서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함께 걸음마를 걷게 하여 주시고 또 품안에  품어주셔서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인 만나와 생수를 먹고 마시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에 속한 사랑인 그 아버지의 사랑을 부여해 주어서

그들이 어떻게 성장해지는지를 이렇게 하나하나 우리가 엿보면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변함이 없는 영원한

사랑을 하나하나 우리가 이해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사랑을 추구하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간절히 구하되 특별히 예언 하기를 힘쓰라.

그 예언은 바로 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 안에서의 그 사랑인 생명에 속한 사랑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그러한 영원한 사랑 변함이 없는 사랑을 전하라는 얘기입니다.

 

예~ 아버지의 사랑이지만 이집트에서 선민 이스라엘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그 자들이 아직도 연약하고

뭔가 결함이 있고 부족하고 성장하지 못한 아이들임으로 말미암아 아이들을 돌보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그들을 품어주시고 광야에서는 다정다감한 남편의 사랑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함께하셔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셔서 임마누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지만 실제적으로는 아버지 하나님이

가지신 바로 생명 안에서의 사랑, 곧 생명에 속한 사랑을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어떻게 조성하시는지,

어떻게 그 간음을 하고 변절한 마음을 가진 마치 고멜과 같은 창기 짓을 하여서 부정하게 되고 정말 첫 남편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거짓 남편이요 가짜 남편인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하는 헛된 남편을 따르는 그러한

정말 있을 수 없는 패역한 짓을 하는 그들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아버지가 되고 그리고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 곧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는가?  이것은 그 어떤 사랑으로도 안 됩니다.

남편의 아내를 향한 사랑은 다정다감하고 애정 어린 사랑이지만 그들을 남편의 사랑으로는 그 아내에 대한

사랑이 일편단심으로 남편만을 추종하고 남편만을 의지하며 남편만을 사랑할 수 있는 그 사랑은 부족하고

안됩니다. 그러면 어머니의 돌보는 사랑은 연약한 그 아이를  뭔가 부족하고 결함이 있고 모자라는 그 아이를

돌보고 품에 안고 생명의 젖으로 그를 자라고 성장하게 하는 그것 또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하나님과 똑같은 자들 예수님과 똑같은 자들인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양을 가진

자로 만들 수 없습니다.

 

왜? 그 사랑은 인간의 그 죄악된 본성, 차돌과 같은 딱딱한 마음을 가진 그들의 그 마음을 뚫고 사랑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비한 사랑이 되어야 되고 뛰어난 사랑이 되어야 되고 놀라운 사랑이 되어야 됩니다.

이 세상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하늘에 속한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정말 생명 안에서의 사랑만이

우리들을 새롭게 하고 우리들을 변화시켜주고 우리를 거룩케 할수 있습니다.

 

바로 이 하나님이신 아버지만을 섬기고 사랑하고 경외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아버지가 아들에게 대하는

그 사랑만이 우리들을 새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들을 향한 그 사랑을 이 선민 이스라엘에게 애굽에 있을

때부터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생명에 속한 사랑을 마치 돌보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광야에서는 마치 남편의

사랑으로 십계명을 줌으로 말미암아 마치 정혼한 신부에게 커다란 선물인 십계명을 주어서 내가 영원히

너희를 사랑하는삶의 동반자가 되겠다 라고 정말 좋은 신혼의 그런 사랑의 마음으로 40년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여정을 함께 지나가는 그러나 어리고 연약한 선민 이스라엘은 그렇게 이 42곳이라는

이 민수기 33장에 나오는 라암셋부터 마라를 거쳐 시내산 맨 아래 바로 하락하는 삶인 시내산을 거쳐 위로

올라가는 모압평원에 이르기까지 바로 태양신의 아들 우상의 아들 사단의 아들로 태어난 선민 이스라엘이

400년 동안 종살이하고 노예로 삶으로 말미암아 사단의 아들로 태어난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42곳이라는 장소를 경유하면서 아버지께서 그때마다 어떻게 나타나셔서 어떻게 취급하시고 어떻게 변화를

주어서 어떻게 조성하여 주셔서 아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모압에 대한 얘기입니다. 모압은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성하고도 거룩한 그리스도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그제서야 들어가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자 이 생명 안에서의 사랑 생명에 속한 사랑인 정말 이 세상에는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의 살을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고 자신의 피를 생명의 음료로 나누어 주어서 공급해 줌으로

말미암아 저들을 살린다 라는 이 기가 막힌 사랑에 대한 얘기 그러한 생명에 속한 사랑 생명 안에서의 그

신비하고도 놀라운 뛰어난 하나님 만이 가지고 계신 영원한 아버지의 사랑을 맛본 자가 바로

우리 아버지입니다 라고 고백할 수가 있다는 것이 호세아 성경 말씀의 마지막 결론에 대한 얘기인 것입니다.

호세아:14:3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찌니라

14:8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찌라 내가 저를 돌아 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여러분 이게 얼마나 놀라운 얘기입니까 자기들 손으로 만든 우상들에게 남편으로 지금까지 섬기고 마음과

몸을 준 것을 이렇게 아버지의 생명 안에 속한 그 사랑을 맛본 자들은 다시는 그 우상을 향하여 하나님이라고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첫 번째 우리가 버린 그 여호와 하나님만이 진정한 우리의 남편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며 그때 비로서 사랑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어진다라는 것이 호세아서 이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14장 1절부터 9절까지는 이스라엘이 그전에 간음을 하고 그리고 변절한 고멜과 같은 창기의 짓을 하고

부정하게 되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슬픔 가운데 빠지게 하였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생명 안에서의 사랑 자신의 살과 피를 내주어서 그들을 살리겠다라는 이러한 일념을 가진 이 세상에 도무지 맛볼 수 없는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그동안의 잘못된 길을 가고 죄악된 삶을 살고 말할 수 없는 부정한 삶을 살았던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남편에게 되돌아옴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회복된다 라는 소생케 된다는 말씀이 호세아서 14장 1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인 것입니다.

 

14:1 〔이스라엘을 향한 호세아의 호소〕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14:2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 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14:3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찌니라

14:4 〔여호와의 진노가 떠나다〕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

14:5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14:6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14:7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찌라 저희는 곡식 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14:8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찌라 내가 저를 돌아 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14:9 〔여호와의 도〕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제가 전편에서 한 말씀을 다시 한번 다루고 있는데요.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베푸는 생명에 속한 그런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느냐 하면 바로 신성한 사랑으로 그분이 이 세상에 성육신 하시기 전에는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으로서

신성한 사랑으로 우리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사랑하시길 원하셨지만 그때 당시에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리고 지금 오늘날의 교회 성도들과의 그 간격과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신성의 수준이 아닌 인성의

수준에서 사랑하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래야 접촉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호세아서 11장 4절이죠

11: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저희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저희 앞에 먹을 것을 두었었노라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선민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있을 때부터 종살이하고 400년 동안 노예살이를 하고 있던 그들에게 멍에

목에 걸고 있던 그 멍에를 벗겨주신 것도 바로 이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베푸는 사랑으로

그들의 명에를 벗겨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민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적합한 삶을 살지 않고,

그 성품이 아버지의 그 성품과 조화가 되고 일치된 성품을 갖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림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가 됐기 때문에

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금 만들어 나가시고 조성해 나가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못된 짓을 하는 선민 이스라엘이 세상과 하나된 애굽에서 부터 아버지의 사랑으로 걸음마를

뛸 때부터,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친히 돌보고 가르치고, 가슴에 품고, 아버지의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머니가 선민 이스라엘을 돌보는 것처럼 이 가슴의 유방을 통하여 생명의 양식과 생명의 음료를 공급해

주었다고 성경은 출애굽기에서 그 말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생명 안에서의 사랑인 생명에 속한 사랑으로 그 선민 이스라엘을 아들로 삼기 위하여

그들이 이것만 깨닫기만 하면 이것만 알기만 하면 아들들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정말 그 아주

어린 앳된 아이 때부터 친히 손을 붙잡고 걸음마를 가르쳐주시고 그분의 팔로 친히 안으시고 돌봄으로

말미암아 양육하여 주시고, 그리고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동행 하심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고 다함이 없는 그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해서

차근차근하게, 아주 성급하지 않고 아주 조급하지 않게, 매우 천천히 이 일을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속한

 

여호와 하나님이 가진 그 사랑이 무엇인지를 이 세상 모두에게,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자들에게 보이기를

간절히 원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시면 이 모든 일들이

적나라하게 표현이 되고, 증거가 되고, 간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의 중심이신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한 일을 이 선민 이스라엘과 함께 이루기 위해서 그들을 만들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들 된 것처럼 그 아들을 통하여 선민 이스라엘 그리고 오늘날의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바로 이러한 생명에 속한 사랑을 알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그 극진하시고 지극하시고 정말 놀라우신 사랑을 맛봄으로 말미암은 우리들을 아들들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갈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것을 이루시겠다 라는 열망을 가지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독생자를 방문토록 하나님의 안배 속에서 만세 전에 작정하신 계획 가운데에서 이 세상에 오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신성하고 또 영원한 놀라운 아버지의 생명에 속한 그 사랑은 이 사람의 수준으로는 그 신성한

사랑을 맛볼 수 있는 자격과 맛볼 수 있는 수준에 우리가 도달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신성한 사랑은

사람의 줄로 곧 사랑의 끈으로 이 세상에 이끌어 와야 그 사랑의 마디 마디 줄로 말미암아 그 사랑의 마디를

통해서 줄로 우리가 이끌림 받아 차근차근 하게 우리가 올라가는 삶을 살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신성한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긴 부어줘야 되는데 죄악된 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신성한 사랑을 맛볼 수도 없고, 접촉할 수도 없는 그러한 상태와 그러한 위치에 존재한 고로 하나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있는 사람과 같은 모습 피와 살을 가진 육체의 모습을 가진

성육신하신 모습을 통하여 사람의 수준으로 내려오신 것이 바로 이 이스라엘을 사람의 줄, 곧 사랑의 끈으로

이끄셨다 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이 이러한 하나님의 너희는 사랑을 추구하라 하나님의 은사를 간절히 사모하되 예언을 말하기를

힘써라. 그 예언은 이러한 바로 이런 사람의 줄들과 사랑의 끈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하고도 변치

아니하는 생명에 속한 사랑인 그 신비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해주는 그 사랑만을

우리가 접촉하고 맛볼 때 우리가 변화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을 알기 위한 것을 전해주는 것이 여러분

신언의 말인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지금 선지자로 신언자로서 이 말씀을 선포하고 있죠 여기서 뭐라고 말합니까?

사람의 줄들로 사랑의 끈들로 이렇게 선포한 것처럼 바로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말하고 주님을 위하여

말해냄으로 말미암아 그 영원하고도 변치 아니하는 그 생명에 속한 사랑이신 아버지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공급해 주기 위해서 교제를 나누는 것 그게 여러분 신언자의 얘기입니다.

 

우리가 신언자죠?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들 성전을 돌보는 자들만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그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주고 바로 백성들을

돌볼 수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로서 바로 주님을 위하여 말하고 주님을 위하여 말해냄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그 사랑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해주고 공급해 줌으로

말미암아 그 신성한 생명, 생명에 속한 사랑, 생명 안에서의 그 사랑, 영원한 사랑, 다함이 없는 사랑,

변함이 없는 사랑 이 사랑을 전달해 주어서 실제적으로 체험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은사가 아닌

사랑을 통하여 전달해 주어야 됩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런 은사가 자꾸 나타나지면 하나님을 말하고 주님을 말해내는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전달해주고 공급해주는 일이 삭감이 되고 훼손이 되기 때문에 이제 오늘날은 이적과 표적과 기사가 아닌

은사가 아닌 사랑을 가지고 이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을 머금은 자들이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말해냄으로

말미암아 이 생명 안에서의 사랑, 생명에 속한 사랑, 아버지의 사랑을 높이는 일에 우리가 앞장서게 되는 것이

오늘날 교회와 선교회들이 해야 되는 일들과 복음의 목표가 바로 이러한 일들이 되어야 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애굽이라는 나라에서 종살이하고 노예살이 한 그들은 영적으로 지금 아주 어린 나이에 걸음마 밖에

할 수 없는 걷지도 못하는 그런 연약한 자들이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친히 목에서 멍에를 벗겨주는 아버지 사랑을 보여주시고 또 광야에서 친히 만나와 생수를 반석을 깨치시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를 통하여 실제적으로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막대기에서 때림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생명수가 나왔다고 그랬죠.

하늘에서 떨어지는 그 생명의 만나는 여러분 이 생명의 만나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질까요?

하나님이기 때문에 자 너희들 먹고 육체의 생명을 보존하고 유지해라 여러분 단순히 그런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명을 친히 떼어준 것입니다.  그것이 요한복음 6장 53절 말씀이에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통하여 선민 이스라엘에게 반석이 되어 주시고 만나가 되어 주셔서

그들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먹고 마시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삼일 하나님을 누리게

하여서 아버지의 사랑을 맛보게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선민 이스라엘이 먹은 만나는 그냥 단순하게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 생명에 속한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생명 안에서의 사랑이에요. 영원한 사랑이며 변함이 없는 사랑이고 영원 무궁한 사랑이며 다함이 없는

사랑입니다. 자신을 내놓고 자신은 안 먹고 자신은 먹어야 사는데 제가 자꾸 벨벳 거미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데 그와 같은 자기 새끼들을 생명을 주어서 생명을 보존케 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다하는 자신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생명 모두를 자신의 몸속에 있는 새끼들이 자신의 살을 파먹게 하고 입으로

체액으로 분비되어진 그 생명의 음료를 마시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엄마 것을 먹고 일정 기간을 통해서

태어나서 부화됨으로 말미암아 속에서 나온 그 거미들이 바로 이 죽은 생명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음을

통하여 수많은 밀알들을 산출하실 수 있었던 요한복음 12장 24절의 말씀과 같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가지고 바로의 멍에를 벗겨주시고 광야에서 만나를 생명에 속한 자신의 사랑을 쪼개서

오병이어 처럼 잘게 잘게 고운 가루가 되기 까지 쪼개지고 빻아지져서 우리들에게 양식이 생명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아버지 하나님은 전지전능 하시니까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고 생각지 마세요.

그분은 그렇다면 의로우신 분이 아닙니다. 이 죽어 있는 우리들을 생명에 속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에 속한 그 사랑을 나누어 주어서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가진 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어우러지는 조화가 되고 일치가 되는 적합한 부합되는 영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그 똑같은 생명의 양식과

생명의 음료를 마심으로 말미암아 그 신성한 생명의 요소들을 분배받음으로 말미암아 동질의 요소들을

소유받고 그래서 어우러지는 영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원하는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신부로서, 아내로서의 합법적인 자격을 갖춘 자가 되어서 그제서야 하나님의 아들들이될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지고 그 멍에를 벗기시고 광야로 이끌어서 아침마다

만나를  먹이셨다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명에 속한 그 사랑 하나님의 그 생명을 다한 생명 안에서의 사랑을 이 땅에 내려줌으로 이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생명의 양식인 만나를 먹고 살았듯이  생명의 만나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머금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그 일을 통하여 우리가 생명에 속한 그 사랑을 소유 받아 아버지의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는 사랑 때문에 영생을 얻게 되었다 라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냥 던져준 것이 아닙니다.

생명에 속한 사랑 생명 안에서의 사랑 자신의 생명을 내놓고 그 만나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생명에 속한

그 사랑 자체를 생명을 나눠준 것입니다.  나눠준 것이니까 여러분 생각에 하나님께서 조금 남겨놓고 주신것

아닌가! 여러분 그런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서 아주 온전하게 먹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배부르게 할 수 있도록 하게 된 것이 바로 광야의 마른 땅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친히 관여해 주셔서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이 모든 것이 생명에 속한 사랑으로 인하여 푸른 초장으로 여러분 그래서

선한 목자는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쉴만한 물가 생수의 강을 터뜨려주기 위하여 부활을 통하여 요한복음 19장 34절 말씀이죠 .

로마 병정에 의하여 옆구리에 창에 찔림 받음으로 말미암아 피와 물이 나오므로 말미암아 그 양식과

음료를 통하여 우리가 생명의 요소들을 소유 받아  영생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영생을 소유하는 일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복잡하고 그 하나님께서 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천국 백성이 되게 하여서

영생을 누리는 가운데 영원한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친히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생명에 속한 사랑을 부여해 주시기 위하여 걸음마를 떼는 순간부터 손을 잡고 걸어가시고

또 만나를 통해서 그들을 배부르게 먹이시고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아버지의 사랑이 영원무궁하고 변함이

없고 다함이 없는 영원한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음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멜과 같은 창기 짓을 하여서 첫 남편 여호와 하나님 버리고 다른 우상들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다른 남편들을 따라가는 일을 할 때 하나님의 마음은 찢어졌던 것입니다.

왜 찢어졌어요? 참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참 아버지의 생명에 속한 사랑을 그들에게 나눠주어서 자신의 아들들이 되게 하려는 그러한 의도,

그러한 뜻 과 그런 경륜을 알지 못하고 헛되고 공허한 삶을 사는 그들을 볼 때 하나님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져서 그래서 피와 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무궁하고도 정말 변함이 없는 그 아버지의 그 생명 안에서의 생명에 속한 사랑이기 때문에 이 사랑을 전해주는데도 그들이 패역한 짓을 하고 부정하게 되고 간음을 하고 그리고 변절한 마음을 갖고 그랬을 때 이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한 상태와 그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바로 호세아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될 때 그것을 알고 돌이키라고 권면함에도 불구하고 돌이키기는커녕 그들이 더 우상들을 따라서 더 활동적으로 거짓 남편이요 잘못된 남편인 잘못된 아버지인 그들을 따라가는게 더욱더 능동적이고도 활동적으로 역사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찢어졌겠습니까?

 

생명을 다한 사랑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만나를 통해서 반석의 생수를 통해서 멍에를 벗겨주는 일을 통하여

멍에를 벗겨주는 일이 이 사단의 포로가 된 애굽의 바로 왕에게 사로잡힘바된 자들을 풀어주기 위해서 유월절

어린 양이 피를 흘리고 그 고기가 불에 태워져서 먹게 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로서 영원한 사랑이 생명 안에서의 사랑이며, 생명에 속한 사랑을 주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려는 꿈을 가지고

그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어긋난 길을 갔을 때 하나님은 얼마나 마음이 찢어졌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결코 이 사랑을 후회하지 않으셨다 라고 호세아서 13장 14절에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버지 대한 사랑인 것입니다.

13:14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차라리 내가 너가 요구하는 그러한 멸망이 되고 죽음을 내가 당할 터이니 내 아들을 건드리지 말아라.

나는 저들에게 생명에 속한 사랑을 주어서 내가 멸망당함으로 생명에 속한 사랑을 주고 내가 사망을 당함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의 사랑을 주어서 나는 죽고 나는 멸망당하고 저들은 생명을 영생을 얻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나는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을 후회치 않을 것이다 라고 말씀 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분이 우리의 참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 이십니다.

 

그 아버지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끝까지 책임을 다한 사랑 끝까지 추격하여 굴복시키는 사랑

그것이 야곱에게 하신 사랑이며 요나에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가진 그 사랑만이 이 선민 이스라엘을 생명에 대한 갈망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에 대한 갈망을 가진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그런 자들에게 생명에 속한 사랑, 생명 안에서의 사랑인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을 부여해 줌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새로운 자들로 회복시켜주는 회복되는 자들로, 거듭나는 자들로 변화된 자들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불의한 자들을 의로운 자들로 어둠 가운데 있던 그들을 바로 이 빛의 세계 속으로 죄와 사망의 영역

안에 있는 그들을 생명과 성령님의 법과 영역 안에 들어오게 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영생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케 하신다 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들이 이런 아버지의 생명 안에서의 사랑과 생명에 속한 사랑 이러한 말씀이 호세아서 3장 5절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 주 자기들의 하나님과 자기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들에 주와

그분의 선하심을 두려워할 것이기 때문이라.  여러분 이 아버지의 사랑을 맛본 자들 생명에 속한 영원 하고도

무궁하며 변치 아니하고 다함이 없는 그 사랑을 맛보기만 하면 이들이 마지막 날들에는 경외하는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만이 자신들의 남편이요 그리고 영원한 그분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에 감동되어서 변치 아니하는 마음으로 그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여 온전히 굴복함으로 말미암아 그 입술을 통해서 아버지라 부르고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들, 곧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일컫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영원한 십자가를 통한 그 생명에 속한 사랑만이 이 세상의 모든 죄악된 본성을 가진

그들을 정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복할 수 있는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이에요.

사단과 함께 하나가 된 그것까지도 이 아버지의 생명에 속한 사랑과 이 우주를 관장하시는

그 여호와 하나님 만유의 하나님께서는 이런 생명 안에서의 사랑을 이 만물들뿐만 아니라 인간들까지도

관장하신다 라는 것을 통하여 만물이 이 생명 안에서의 그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는 사랑을 알게 됨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신 아버지의 사랑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들 모든 만물이

굴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버지의 사랑은 자신의 생명을 내주어서 생명을 소유하게 하는 이 놀라운 사랑은 굴복케 하는

사랑입니다.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는 굴복케 하는 사랑이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는 그 아버지의

사랑은 정복케 하는 사랑이에요.  왜 그런가 하면 모든 죄악된 자들, 간음하고 변절된 마음을 가지고 첩된

우상들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거짓 남편을 따르는 그 거짓 남편 우상들을 자신들의 아버지라고 따르고,

쫓고, 섬기고 경배하는 일을 통하여 바로 이 아버지의 참된 이 세상에는 전혀 볼 수 없는 신비하고도 놀랍고도

뛰어난 사랑을 보임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사단과 죄와 마귀까지도 포함한 모두를

정복케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야곱을 얍복강가에서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은 이 사랑을 맛보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로 예표 되고 있는 그 신성한 땅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승리한 자, 정복한 사랑, 이 육적이고도 천연적인 사랑을 정복할 수 있는

아버지의 사랑, 그리고 야곱을 굴복케 하여서 이 참사랑  생명에 속한 사랑을 야곱에게 부여해 주어서 하나님이

정말 한 번도 변치 않고 영원토록 이 사랑을 가지고 나를 아들로 만들어주기 위하여 평생을 함께하신 하나님께

저는 굴복합니다 라고 야곱에게 여호와의 천사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씨름을 통하여 이것을 알게 함으로

말미암아 승리하신 정복케 하는 사랑, 아버지의 그 영원한 생명에 속한 그 사랑을 알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가 깨닫게 됐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승리하셨지만 그 승리한 사랑이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 안에서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무릎 꿇고 굴복했을 때 항복을 했을 때 바로 그를 이긴자라고 여호와 하나님의 천사이신

그리스도께서 새 이름인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없이는 젖과 꿀이 흐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그 땅에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

그 땅에 입성 할 수도 없습니다. 세상과 마귀와 죄 그 가나안 일곱 족속을 통하여 사단과 하나가 된 사단의 모든

요소들로 구성된 그곳에서 승리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승리하는 자,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생명에 속한

여호와 하나님의 아버지의 사랑 탕자를 돌아오게 한 그 사랑을 우리가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생명 안에서의 사랑 제가 이 사랑에 대한 얘기를 지금 오늘 수백 번을 하네요.

이것이 바로 너희가 예언 하기를 힘쓰라. 이 예언은 사사로이 당신 남편이 출세 할 것입니다.

당신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겠네. 당신은 좋은 사람과 결혼할 것이다. 이런 것이 아니라  바로 생명 안에서의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초림과 재림에 대한 말씀들을 전해 주는 것이  왕 같은 제사장들인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말하는 것이 예언 하기를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예 우리는 바로 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통하여 나타나신 아버지의 그 영원한 사랑인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신 아버지의 그 변함이 없는 사랑, 생명 안에 있는 사랑, 생명에 속한 사랑들을 사람들에게 말해 줌으로

말미암아 공급하여 주셔서 그들이 그것을 맛보아서 이런 사랑으로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이런 사랑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준 것입니다.

 

여러분 그때 무슨 생각이 들겠습니까? 이건 구원에 대한 문제 이거 아니에요.

그것은 아주 최하의 가장 낮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한 아들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을 맛본 자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 여기게

됨으로 말미암아 선민 이스라엘에게 아침이슬과 같다라는 얘기를 호세아서 14장 5절에 말씀 하고 있죠

14:5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여러분 새벽 이른 첫 시간에 내리는 이 아침 이슬은 모든 생명을 산출시킬 수 있는 통로의 시작점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버지의 사랑을 이스라엘에게 베푼 것이고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십자가를 통하여 공급해

줌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에게 이슬과 같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이스라엘이 아침 이슬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백합화 같이 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백합을 본 적 있습니까? 동남아시아에 가면 그 백합이 얼마나 향기가 있고 꽃 중에서 가장 오래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하여서 거의 2주~ 3주가 지나도 그 밑에 부분만 잘라 주면은 계속 그 신선함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 백합화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아버지의 그러한 생명에 속한 영원하고도 신비하며 변함이 없으신 사랑을 맛보게 되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버지 사랑이 이슬이 되어서 그 이스라엘에게 내려지면 이스라엘이

백합화 같이 피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면에 있어서 아주

순결하고 깨끗한 여러분 백합화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 하얀색의 순결함과 향기는 또 얼마나 그윽한가요

이런 심령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인 생명에 속한 사랑을 맛보게 되면 이슬과 같은 사랑 이슬과 같은 사랑의 요소들을 우리에게 부여해 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신뢰함에 있어서 순결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된다고 써 있죠. 여기서 보면 그의 뿌리들은 레바논 같이 박힐 것이다.

여러분 백향목은 이 세상에 그 유대 땅에서 가장 키가 높고 잔가지가 없는 아주 훌륭한 목재입니다.

향도 있죠, 아주 단단하죠, 벌레들이 먹지 못하죠, 왕궁을 짓는 일에 있어서 가장 으뜸이며 가장 가치가 있고

가장 고가의 나무가 바로 이 백향목인 것입니다. 이 백향목은 얼마나 높은지 수십 미터까지 자란다고 그러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높여진 위상 안에서 견고하게 서 있다 라는 것입니다.

백향목 나무 뿌리는 높이 올라간 만큼 뿌리가 그렇게 옆으로 땅을 헤집고 들어가 기틀을 잡기 때문에

얼마나 견고하게 세워져 있는지 모릅니다.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힌다 라는 얘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여호와 하나님의 그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으로 나타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서 견고하게 서 있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그렇게 예수님과 같은 품성을 가진 자로 만들어줄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가지가 퍼지고 아름다운 감람나무와 같고 여기서 이 감람나무는 기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람나무의 헤아릴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푸르른 이파리가 있겠죠. 신실한 가운데 영광을 상징하고 있는

그 감람나무의  이파리는 얼마나 무성하여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그 아버지의 생명에 속한 영원한 사랑을 맛보게 된 성도들과 교회들은 하나님을

신뢰함에 있어서 순결한 백합화 같이 높여진 인성 안에서 정말 높은 품성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레바논의

백향목 처럼 굳건하게 뿌리가 박혀지고 감람나무의 잎처럼 신실한 가운데 영광을 드러내서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푸르름을 이렇게 보여주고 표현해 주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백향목 나무를 베게 되면 그 향기는 이루 말할수 없이 그윽하여 그 주변을 가득 채울 정도라고 합니다.

높여진 예수 그리스도의 그 거룩해지고 영화로워진 그 인성에 속한 것을 바로 아버지의 그 생명에 속한 사랑을

맛보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높여진 인성에 어우러지는 인성의 품성을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 가운데 세상에서 나를 만나는 모든 자들에게 달콤한 향기를 품어낼 수가 있다라는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뭐라고 쓰여 있어요?

호세아:14:6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14:7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찌라 저희는 곡식 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14:8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찌라

내가 저를 돌아 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14:9 〔여호와의 도〕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예 여기에 보면은 아름다운 올리브 나무 같고 냄새는 레바논 나무의 백향목의 향기 같이 되리라.

그리고 곡식같이 되살아나고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풍요로운 소산물을 산출함으로 말미암아 그 풍요로운 소산물은 그 음식을 통해서

나타내지는 것은 생명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죠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포도나무같이 꽃이 핀다는 얘기는 뭡니까?

14장7절에 보면 포도나무 같이 자라고 그 향기가 레바논의 포도주같이 되리라.

여러분 포도나무의 그 즙을 통하여 기쁨과 즐거움의 잔치에는 항상 포도주가 진설되어 있는 것처럼

포도주는 바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전제물의 대표적인 것이죠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음료로 아울러 그 남은 것들을 또 백성들이 나누어 마심으로 말미암아

음료는 원기를 산출해주고 기운을 나게 하는 이 포도나무에 꽃이 필 것이다 라는 꽃이 뭐죠?

음료를 산출할 수 있는 포도가 나기 전에 꽃이 피는 것을 포도나무에서 꽃이 핌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통해서

음료를 산출할 수 있는 포도의 열매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유대 땅에서 가장 좋은 아주 옥토의 땅이 바로 레바논에 나는 백향목과 레바논에 나는 포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나는 가장 유명하고도 가장 명성이 높은 감미로운 포도주가 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세상 사람들 앞에 존중의 대상이 되고 으뜸이 되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어떨 때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가 아들에게만 주는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는 그런 생명에 속한 사랑을 맛본

자들은 이와 같이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존중함을 받고 우월함을 당하고 우러러봄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버지의 그 변치 아니하고 다함이 없는 바로 생명에 속한 사랑을 탕자가

느꼈던 집을 나가서 고생을 하고 했던, 고통을 당하고 있던 그가 갑자기 이 아버지의 생명 안에서의 사랑 자신의 생명을 주어서라도 탕자의 생명을 대체하고자 하는 그 마음의 사랑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그가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사랑인 생명에 속한 사랑을 맛본 자들은 이 뒤집지 않은 전병 뒤집지 않은 전병은 새카맣게

타서 못 먹게 되죠. 또 어리석은 비둘기처럼 속이는 활 하나님을 위해서 대적자들과 원수들과 싸워야 되는 그

활을 엉뚱하게 떨어뜨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속이는 활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뒤집지 않은 전병이 새까맣게 타는 전병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비둘기 같은 존재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백합화와 레바논의 백향목과 감람나무와 꽃피는 포도나무 기쁘게 향기를 내는

포도나무의 꽃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서 14장 4절부터 백합화 얘기 6절에서 아름다운 감람나무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곡식에 대한

얘기 7절에 포도나무꽃 레바논의 포도주 예 8절에서 푸른 전나무 이런 얘기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향한

아들에게만 베풀어줄 수 있는 아들에게 느끼는 그 사랑을 가지고 바로 이 생명에 속한 사랑을 선민 이스라엘

또는 교회들 또는 오늘날 성도들에게 이렇게 공급해 주면 그는 반드시 변화를 받고 새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 아버지의 사랑이 아닌, 아버지의 영원하고도 다함이 없는 생명 안에서의 사랑이 아닌 다른 사랑

예를 들자면 남편이 아내에게 주는 사랑 또는 어머니가 자식을 양육하기 위해서 품어주는 그 사랑으로서는

사람을 절대적으로 바꾸게 할 수도 없고 새롭게 할 수도 없고 영화롭게 할 수도 없고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을

가진 자로 만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 우리가 하나님과 똑같은 자, 곧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진 예수님과 똑같은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는

이 생명 안에서의 자신의 생명을 내줘서 그 생명을 살리고자 자신의 살과 피를 흘러내리게 한 그 일들

생명의 양식이 되시고 생명의 음료가 되시기 위해서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시고자 하는 이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가 맛볼 때 바로 이스라엘이 간음을 하고 변절된 마음을 가지고 고멜과 같은 창기짓을 하여서

부정하게 된 그것조차도 바꿀 수가 있고 변화를 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새 사람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새 피조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옛 창조 안에 있는 우리가 새 창조 영역 안에 죄와 사망의 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어떻게 생명과 성령님의

법안의 영역으로 옮길 수가 있습니까? 예 아버지의 사랑, 생명 안에 속한, 생명 안에서의 사랑, 영원한 사랑,

생명에 속한 사랑을 맛보기만 하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노력을 해도 안된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건 제가 경험한 사실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왜 40년 동안 왜 방황을 하고 왜 이것 때문에 정말 죽지 못해서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육체와 혼과 영이 완전히 죽은 자가 되어서 일어날 기력도 없었습니다.

그냥 누워져서 입술도 움직여지지 않아요. 정말 하나님!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습니까 라는 마지막 죽기 직전이 아니에요. 죽음 가운데 제가 있었습니다.

 

완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입도 움직일 수 없는 그 상태에서 제가 목숨을 다한 최후의 한 마디를

하나님께 내쏟았습니다. 단 한 마디에요. 그것이 두 마디도 아닙니다. 단 한 마디 내가 죽을 지경에 처한

정도가 아니라 죽음 안에 놓여져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완전히 육체와 혼과 영이 죽어져 있었을 때 내 입술을 통해서 마지막 쏟아져 나온 말이 예수님 제발 예수님 제발 나 살려주세요. 이 한마디 였습니다.

 

예수님 그 외에 더 이상 내가 기력을 내서 목소리로 내가 토해낼 수가 없기 때문에  눈물도 안 나옵니다.

목소리도 안 나옵니다. 죽어져서 이제 죽음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내가 최후에 뱉은 마지막 호소가

예수님 나 살려주세요. 이 살려주세요라는 이 말을 하기까지 내가 40년 가까이 돌고 도는 인생을 살았는데

이 생명에 속한 사랑, 생명 안에서의 그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 그 아버지의 사랑, 탕자를 돌이키게 할 수 있는

사랑, 야곱을 이스라엘로 변화되어진 사랑, 사울을 바울로 만들어진 사랑,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의 이름을 게바라 하라 이 베드로로 만들게 해준 사랑은 생명 안에서의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고 다함이 없는 이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랑을 맛본 자는 변화가 있어서 새롭게 되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애정 어린 남편의 사랑은 그 아내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어요. 호세아가 아무리 그 창기의 짓을 하는

고멜을 돈을 주고 그 값을 치루어서 되찾아 오고 또 좋은 말로 아무리 그를 권면 해도 고멜이 남편인

세아만을 의존하고 한 마음 한 뜻이 되게 하고 사랑의 마음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이 남편이 가지고 있는 아내를 대하는 애정 어린 사랑은 절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모자라고 부족하고 결함이 있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 품에 안고 양육하는

그 어머니의 사랑을 가지고서도 절대 부정한 죄악된 본성을 가진 자들 이 선민 이스라엘과 같은

그런 존재자들을 절대 바꿀 수가 없습니다.

 

누구도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느끼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그러한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고 다함이 없는 생명에 속한 사랑 요한복음 6장 53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  예~ 자신의 그 살을 떼어줘서 자신의 피를 흘려주어서 자신은 죽고 자신의 생명을

대신해서 저들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그 사랑을 맛본 자들만이 생명 안에 있는 사랑만이, 생명

사랑만이, 생명 안에서의 사랑만이 염낭거미처럼 자신의 살을 파먹게 하여서 저 새끼들을 살리고 자신은

서서히 죽어가는 그러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신비하고도 놀랍고도 뛰어난 생명 안에 있는 사랑만이

죄인들을 변화시켜서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고, 그 하나님의

아들들의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그런 다정다감한 남편의 사랑으로는 그녀를 오히려 손상시키고 성질을

더 나쁘게 만들어서 망쳐버릴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아이가 더 삐뚤어지게 할 수 있는 사랑이에요.

그러나 아버지가 아들에게 베풀어주는 그 사랑은 생명에 속한 사랑이기 때문에, 자신을 내놓고 저를 구하고자

하는 저를 얻고자 하는, 저를 취하고자 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생명을 저에게 그 생명을 부여해 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아들들로 만들기 위한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에 변함이 없는 사랑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여호와 하나님의 아버지의 사랑은 결코 아들을 망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애정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아내를 망칠 수가 있어요.

헛된 그 마음을 부풀어놓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생명에 속한 사랑, 생명 안에서의 사랑이신 바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보여준 그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을 맛보기만 하면 그 아들이 아무리 죄악된 본성을 가지고

타락의 길을 간다 할지라도 그 누구도 그를 변화시킬 수 없는 그런 불가능한 존재자 일지라도

여러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을 자신 있게 제가 드립니다.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 생명 안에 속한 사랑을 지니신 그 아버지는 결코 자기 아들을 망치기 위해서 사랑을

부여해주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부여해서 저들의 생명을 공급해주고자 하는 그 아버지의

사랑은 절대 아들을 망칠 수 있는 그러한 변절된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그 아들은 이런 사랑을 계속 맛볼 때

점점 자라고 성장하고 성숙하여져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선민 이스라엘의 이 관계가 호세아 선지자와 고멜에 대한 얘기를 통해서 보여주는 이 사랑은

바로 무슨 사랑입니까? 예 여호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 영원한 사랑 그러나 이스라엘은 완악하고

부정하고 간음을 하고 변절된 마음을 가지고 헛된 남편들을 찾아다니는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에 속한 사랑을 부여해 주기만 하면 이 신성하고도 영원한 아버지 하나님의 생명으로

인하여 그 생명 안에 있는 사랑을 통하여 바로 변화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가 가진 그 생명에 속한 사랑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할 수 있어요.

이 생명에 속한 사랑, 생명 안에서의 사랑만이 고멜과 같은 창기 짓을 한 우리의 마음을 되돌이킬 수가 있습니다.

왜? 그 사랑이 너무나 초월적이고, 너무나 고상하고, 너무나 지고하고, 너무나 깊고, 너무나 높은, 너무나 넓은

이 세상에서 도무지 맛볼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에 이 사랑을 맛본 자는 되돌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우상에게 사로잡혀 있던 자라 할지라도 참 남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발걸음을 되돌리고

그 탕자처럼 아버지의 품에 들어오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생명 안에서의 사랑인 자신의 생명을 내놓아서 이들의 생명을 살리기를 원하는

그러한 뛰어난, 놀라운, 신비한 이 사랑만이 우리를 살릴 수가 있고 우리를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품상으로도 거룩하게 할 수 있고, 정말 상태적으로도 우리를 의롭게 해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 의롭게 됨을 얻고자 하거나 거룩하게 함을 입고자 하는 그런 모든 하고자 하는

수고와 모든 노력하는 일들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만 오시면 이 아버지의 사랑을 가진 그 생명 안에서의 사랑을 가지고 계신 그리스도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의 그 아버지의 사랑을 맛보기만 하면 누구도 거룩하게 되고, 누구도 의롭게 되고, 누구도 새롭게

되고, 누구도 변화되고,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을 본받게 됨으로 말미암아 영화로운 구속을 이루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바로 하나님의 그 아버지의 영원하고도 다함이 없는 사랑인 생명에 속한 사랑과

그 생명을 소유받게 되면 본성과 생명과 모양 면에서 영광에서 하나님과 똑같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지신 그 생명에 속한 아버지의 사랑 안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과 본성과 형상이 있어요. 그 형상은 우리를 자신과 똑같은 자들로 만들기 위한 생명과 본성과 형상이기 때문에 이 아버지의 사랑을 맛본

자는 그러한 면에서 생명 면에서, 본성 면에서, 형상 면에서, 영광 면에서 하나님과 똑같이 만들어짐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양을 가진 자가 되어서 예수님의 인성을 통하여 예수님과 같은 자들로 우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1 할렐루야! 할렐루야!

그래서 호세아에서 처음서부터 기록하고 있는 것이 뭡니까? 1장 2절에 보면 창녀였다는 것입니다.

1:2 〔호세아의 아내와 자식들〕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 함이니라

 

남편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거짓된 남편을 따라 사는 삶의 모습인 이스라엘 백성을 지금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수치스러운 아내 선민 이스라엘이 이렇게 간음하고 부정하여 버림받았다가

다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은 바로 아버지의 그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는 생명에 속한 사랑을 맛보게 될 때

이들이 회복되어져서 다시 하나님의 온전한 관계 속에서 아들들이 되고 백성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그들의 입술을 통해서 아버지 라고 부르게 되고 그 아버지라 부른 그들은 하나님께서

나의 백성들 나의 자녀들아 나의 아들들아라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취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2절에서 음녀는 무엇입니까? 첫 남편인 여호와를 완전히 버리고 자기 마음에 드는 헛된 우상들을 쫓아

섬김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남편들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는 얘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음녀 고멜과 같은 창기의 부정한 자 바로 아내죠.

우리들은 어떤 면에서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아내들이며 신부들이에요.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우리들이 어떻게 아들이 될 수 있습니까?

음녀가 선민 이스라엘은 처음의 시작점에서도 고멜과 같은 이 우상을 쫓음으로 말미암아 몸과 마음을

우상에게 내준 음녀 였어요. 이 음녀가 여러분 바로 호세아서 14장 5절 부터 어떻게 백합화가 되고

백향목 나무가 되고 올리브 나무와 같이 빛이 나고 레바논 나무의 향기가 나고 곡식이 소생되고

포도나무에서 꽃이피고 레바논의 포도주가 되고 예 그리고 8절에서 기가 막힌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기가 막힌 얘기가 무엇입니까? 14장 8절에서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내가 우상들과 더 이상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 우상들을 아버지라 여기고 그들을 쫓았는데 이제 나하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그를 듣고 그를 주시하였으니 나는 푸른 전나무 같도다. 나에게서 내 열매가 얻어지는 도다.

 

여러분 어떻게 에브라임 이 선민 이스라엘이 헛되고 공허한 우상들을 쫓음으로 말미암아 참된 첫 번째

남편을 버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우상들을 쫓음으로 말미암아 우상과 간음을 하고 행음을 함으로

말미암아 그들과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그들이 이러한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인 생명에 속한 사랑, 생명

안에서의 사랑인 생명을 내줘서 너희들의 생명을 내 것으로 너희들에게 공급해줌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에게

영생을 주겠다라는 이런 갈망을 가진 그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에 속한 사랑을 맛본 자들은 내가 우상을 내가

아버지로 모신 것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8절에서 얘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이제부터

열매를 얻으리라.여러분, 이게 얼마나 놀라운 얘기입니까? 돌아온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비록 내가

너희들과 상관이 없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야! 너희들에게 내가 용서나 자비나 긍휼을 베풀 이유가 없어라고

매몰차게 얘기를 했어도 실제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하고도 다함이 없는 변함이 없는 사랑을 가지신 생명의

소유자인 것입니다. 사랑의 화신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러한 사랑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만유의 신이 되실 수가 있었고

우리들을 구원시킬 수 있는 구원의 주가 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선민 이스라엘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열매를 맺는다라는 것이 뭡니까?

예 여기에서 8절에서 나는 푸른 전나무 같으니 나에게서 내 열매를 맺으리라.

그들이 돌아오니까 아버지의 그 영원한 생명에 속한 사랑을 맛보니까 내가 지금까지 우상들을 쫓음으로

말미암아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남편을 두었는데 이제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라고

그들이 응답을 하고 고백을 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푸른 전나무와 같이 나에게서 내 열매를 얻으리라 라고

전나무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 선민 이스라엘 에브라임이 바로 이 전나무를 통해서

열매를 맺는다라는 것은 이 선민 이스라엘인 에브라임이 여호와와 하나로 연결되어졌다는 것을 말하고있습니다.

 

왜 연결됐습니까? 아버지의 그 생명에 속한 사랑을 맛봤기 때문에 이것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이것만이

사람을 새롭게 하고, 이것만이 사람을 거룩하게 하고,  이것만이 주의 형상을 갖게 하고, 이것만이 사람을

성숙시키고, 이것만이 사람을 영화롭게 하고 이것만이 사람을 하나님과 똑같이 만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과 이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에 속한 사랑을 맛보는 순간에 그들이 더 이상 우상을

나의 하나님, 나의 신, 나의 주인, 나의 남편이 아닙니다 라고 고백함으로 말미암아 에브라임이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열매를 맺는다 라는 얘기입니다.

예 생명 안에 사랑에 근거하여 생명에 속한 사랑을 맛봄으로 생명 안에서의 사랑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앎으로 말미암아 이 선민 이스라엘이 음녀의 상태에 빠졌던 이가 놀랍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내가

아버지로, 내가 나의 남편으로 나는 모시겠습니다 라는 이러한 놀라운 고백과 함께 놀라운 변화를 갖게

된 것은 여러분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께서만 가질 수 있는 영원하면서도 다함이 없고 변함이 없는 영원한

사랑인 생명에 속한 사랑 그것을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부여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살을 베어서 우리에게 주고 피를 흘려서 우리를 살림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돌아가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늘푸른 전나무가 된다고

전나무는 늘 푸른나무죠 예 우리들은 바로 이 늘 푸른 전나무이신 그분의 가지가 되어서 그 전나무의

가지로서 이 아버지의 그 생명의 사랑을 맛봄으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열매를 맺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 선민 이스라엘이 곧 에브라임이 여호와 하나님과 바로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로 연결되어짐으로 말미암아 그 연결되어진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아들들이요

그리고 그 하나님의 아들들의 입술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생명에 속한 사랑을 맛본 자들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십니다 라고 고백을 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버지의 참 아들들이 되었습니다 라고 갈라디아서 4장 6절에 기록돼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여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속한 사랑 2부(사람의 줄 사랑의 끈 전편) 말씀을 마치고 연이어

후편 말씀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