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방

고린도전서15장26절/죄와 사망을 무력화 시킨 십자가 나무 1편

스불론의 배 2023. 7. 14. 07:12

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제가 한 일주일 전부터 이 영과 혼과 몸에 대한 말씀을 좀 묵상을 하면서 이런 말씀을

묵상을 할 때 사단이 결코 이 문제에 대해서 간과하지 않고 굉장히 아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공격을 해올 것이라는 그런 생각을 한 10일 전부터 하면서 굉장히 사단의 공격에

만반의 준비를 마음속으로 대비하면서 있었어요.

 

사람들이 죄에 대한 문제는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죄와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연결되어진

사망에 대해서는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이 그리 많이 중요성과 깊은 관심과 거기에 대한 깊은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은연 중에 알 수가 있어요.

 

죄에 대한 문제는 아주 많이 그리스도인들이 관심을 두고 있지만 그 죽음에 대한 사망에 대한 관념에

대해서는 그리 크게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라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그런데 동전의 양면처럼 죄와 사망은 사실은 하나로 연결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6절에 사도 바울을 통해서 성령님의 말씀을 기록하신 그 내용이 뭐냐면

우리의 마지막 내가 지금도 그걸 한 두 번 정도 읽었는데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있어서

없어져야 될 영원히 없어져야 될 원수는 죽음 곧 사망입니다.

26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예수님께서도 이 사망에 대한 문제를 성경에서 은연 중에 그렇게 많이 강조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죄에 대한 것을 한 90% 갖고 있다면 사망에 대한 것은 그냥 은연 중에 성경 말씀을

보고 듣는 것  정도로 이렇게 하고 끝나는 것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직접적으로 이것이 우리들과 상관된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이 얘기를 언젠가 한번 해야 되겠다라고 어저께 내가 그 생각을 하면서

기회가 되면 이  문제를 반드시 한 번은 다루어야 되는 문제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망을 이기는 그 체험은 우리 주 예수님을 신뢰하고 믿고 따르고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라면 누구든지 우리 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3일 만에 사망을 이기신 체험 곧 부활하시는 사건을 통하여 사망을 이기시는 체험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의 삶 속에 그 사망을 이기는 체험 부활의 삶의 경험이 이 생존의 삶 속에서 반드시 반드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잘 묵상 하게 되시면 성령님의 빛을 따라 조명하는 가운데

깊은 성령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 문제를 10일 전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묵상을 하면서 로마서 5장 17절에 보면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죄가 우리를 다스리고 사망 곧 죽음이 우리 몸에서 왕노릇 했었지만 과거 일이지 왜냐면

아담 한 사람이 불순종 함으로 말미암아 이 사망이 우리 몸에서 왕 노릇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지만 2천년 전에 오신 주 예수님의 공생애와 그 십자가 사건과 부활하심을 통해서

이미 그 죽음 안에서 우리가 주 예수님의 죽음 안에서 함께 죽음으로써 죄에

대해서 죽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게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

 

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은 믿는 자들은 보통 예수님

혼자만 달려 죽은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이 특별한 진리로 기억하게 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우리도 함께 달려서 죽게 하셨다라는 것이에요.

 

우리들과 같이 함께 이걸 인식하고 이걸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죄에 대해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게 되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이 3일 후에

부활 하신 것처럼 의와 생명 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살게 하여 주신 것이 바로 방금 전에 읽은

것처럼 사망이 왕노를 한 것처럼 이제 의와 생명이 우리 안에서 왕 노릇하는

또 하나의 것이 있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 선생님은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이런 말씀을 통해서 이게 상당히

상당히 라고 얘기하면 그렇고 그 깨달음 그 어떤 계시의 정신이 정말 빛으로 완전히 충만함을 받은

자로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게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준 소유하게 된 값 없는

그 의 그 칭의 그 값 없는 의를 얻은 그리스도인 들은 죽음과 사망이 아무리 첫 사람 아담을

불순종하여 죽게 하는 그 힘이 말할 수 없는 파워와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그 사망의

무덤의 문을 이렇게 파헤치고 파쇄시키고 사망의 문을 활짝 열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사망의 힘보다도 더 말할 수 없이 큰 힘과 파워가 의와 생명의 힘이 있음을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이거든요.

 

제가 지금 이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죄의 문제를 거의 90% 관심가지고 있고 집중하고 있고 주의하고는 있는데 사망에 대한

이 문제 이 태도에 대해서 우리 관점에 대해서 소홀히 하고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갖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뭔가 부족한 모자라는 그러한 일들을 가져오기 때문에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를 우리가 깊게 중요하게 다루고 아주 그것에 대해서 집중하고

 

그 문제를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진리를 통해서 이기는 삶을 살려고 하도록 이렇게 노력을 하지만서도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사망을 이겨야 되는 이 문제가 해결되어져야만이 이 죄를 이기는 것이 저절로

이렇게 마치 줄을 잡아당기면 저기 저 끝에서  개나 고양이가 끌려 나에게 다가오듯이 서로 보충적이고

서로 상호 보완적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집중해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로마서 5장에서부터 8장까지는 이 죄의 문제를 이기는 문제 이 사망에 대한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언급하고 있는데 특별히 로마서 6장 23절 대표적인 말씀을 내가 얘기하고 있는거에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왜냐하면 죄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먼저 사망의 이야기를 함으로 말미암아

사망을 이기는 문제를 통해서 죄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어져야 된다 라는 그 차원에서

이 사도바울 선생님이 죄 자체를 해결하고 이기고 제거하는 문제는 너무나 중요하지만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죄의 결과인 죽음이 반드시 필요하다.

 

죽음은 죄의 결말이기 때문에 죄의 절정이 마지막 표현의 모습이기 때문에

이 사망과 죽음에 대해서  이해하고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가 있어요11절에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 말씀을 내가 조금 접했을 때 야~ 이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구나

그래서 성경은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구나 지금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별로 좀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저의 얘기를 하면서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아마 이해가 되고 나중에 이 사망에 대한 문제 사망을 이기는 체험이 이 세상에

살면서 나중에 주님이 오실 때 재림 하실때 우리가 주님의 능력에 의해서 성령님의 신성한

능력과 영원한 생명의 힘에 의해서 우리가 들림 받는 그런 일 말고 살아있는 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생존의 문제에 있어서 이기는 경험 이기는 체험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이것의 연속적이고도

계속적이고도 지속적인 그러한 다룸을 경험한 자들이 그 끝에 주님께서 오시는 날 또는 살아서

혹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원히 죽지 않고 주님을 뵐 수 있는 그런 특권이 우리에게만 부여된 특권이거든요

 

과거 믿음의 선진자들이 지금의 이 시대에 아직도 우리에게 도래되지 아니한 우리 살아서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 라는 그런 막연한 어쩌면 있을 수 있는 그런 희망과 기대와 고대와 갈망, 앙망 이것이

우리 세대에 또는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다 라는 것 때문에 이 문제를 내가 아주 중요시 하게 생각하고

다룰 때 제가 딱 느껴지는 것이 이거 원수가 굉장히 역사하겠다.

 

생각을 해 봐요 중요한 문제를 다룰 때는 원수가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얘기를

계속하시거든요 하나님의 영이 있지만 세상에 영도 있다고 얘기하고 있거든요

사단이 사단을 통하여 세상에 악한 영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그 영에 대해 이 세상 영에 대해서 그렇게 관심과 집중과 그렇게 주의를 두지 않고 있어요

이게 문제입니다.그래서 제가 이 문제를 고심하고 있을 때 이거 참 조심해야겠는 생각이들었죠

 

그러면 이런 진리의 말씀을 전함에 있어서 이 세상의 악한 영이 결코 가만히 있지를 않겠죠

제가 지난번에 얘기를 했잖아요 악한 영 타락한 이 사단을 뒤따라 함께 역심을 품고 하나님을 배도한

자들이 뱀으로 성경에 나타나고 있고 전갈들은 귀신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라는 세상에 악한 영들이

이렇게 진리의 말씀이 전해지고 나타내지고 표현되어지고 증거되어졌을 때 이 말씀을 통해서 생명을

소유하는 자들이 있다니까요.

 

지난번 카페에 영과 혼과 육을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올렸을때

순식간에 그 많은 독자들이 접속하는 것을 봤을때 다는 아니겠지만 거기에서 단 몇 명이라도 생

명을 소유했는 자들이 있었으리라 생각되어지거든요

 

예전에 교제나누었던 말씀들이 얼마나 소소하고 영적으로 얕은 물론 그런 것들이 어떤 과정의

디딤돌로서 필요하지만도 이제는 굉장히 좀 더 깊이 있게 좀 더 주님과 성령님이 원하시는

그런 방면으로 이 일들이 만들어져 나가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은 원수가 알고 이 악한 세상의 영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는 생각

속에서 내가 노심초사하고 만반의 무장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제 내가 시간까지 적어놓고 기억을 하는데 2022년도 오늘이 4월 21일인데

어제 4월 20일 오후 저녁 7시경부터 아침 한 7시까지 12시간 정도를 이 죽음이 사망이 나에게

엄습해 오는데 제가 나이가 지금 66세 반이에요 정확하게 55년 12월 6일생이니까

 

그런데 제가 죽음이 실제적으로 나에게 이렇게 다가오고 마주하고 정면으로 마주친 것은

처음이에요 지금 나의 목소리가 아마 힘이 없게 느껴질거에요

 

지금이 12시니까 한 15시간 전인데 그때 갑작스럽게 그런 것을 조금씩 은연 중에 조금씩

이거 사단이 이 세상의 악한 영이 뱀과 전갈을 통해서 뱀은 악한 영이요

전갈은 귀신 육체를 덧입기를 원하는 그 귀신의 역사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조심해야겠다. 이걸 조심해야 되는 것을 사람들에게도 좀 전해줘야 되겠다.

왜냐하면 참 진리의 말씀을 경험하고 맛보고 마시면 마실수록 사단은 그런 자들에게

강력하게 공격을 하고 역사를 하거든 왜냐하면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아니한 것을 알고

결코 간과하고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 사단이거든요.

 

물귀신 작전으로 너 죽고 나 죽자 그래서 어저께 내가 갑작스럽게 이 죽음이 사망이 나에게

무섭게 다가오는데 갑자기 뭐 세상이 깜깜해진다 라는 표현을 하면 여러분이 알수 있을까요

제가 그냥 느끼는 경험한 것은 세상이 깜깜해지는 경험 하늘이 그냥 서 있는데 서 있을 수가 없어요

하늘과 땅이 뒤집어지는 거에요 지금 이 표현이 이해가 되나요

 

하늘과 땅이 뒤집어지고 이런 역사가 있을 것이다.

이 사망의 문제 사망을 이기는 체험 이것을 전하면 반드시 역사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전하기 전에 이 사람을 통해서 내가 지금 베트남에 있으니까 

이러한 전반적인 환경 쓰디쓴 환경 이게 지금 마라 얘기고 엘림의 얘기란 말이에요

 

마라의 다툼에 대한 얘기이고 쓴 환경에 대해서 그럴 때 막상 다가오면 내가 조심하면 되겠지 했는데

그 얘기를 하기도 전에 그러고 나서 이제 제가 그것을 극복하고 이기니까

오늘 바로 이게 하루가 지나지 않아서 지선교사와 이 교제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어떤 시작 점의 연결 고리가 된 거에요

 

이 죽음을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나니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진리의 빛이 전해질 수 있는

통로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을 내가 또 한편 다른 방면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되고 뒤집어지더라고 앉아 있어도 앉아 있을 수가 없어요

누워 있어도 누워 있을 수가 없어 그런 경험이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내 생각이 딱 드는 것이

죽음이 이런 거구나 사단이 이렇게 역사하는구나 와~ 이걸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내 입에서 나온 한마디가 뭔였는지 알아요?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 그때 제가 느낀 것이 나에게 다가온 것이 성경 전체에서 나오는 사망을 이기는

체험에 대한 성경의 이야기가 생각이 나는 거에요 사망을 이기는 체험은 주님의 그 십자가와 삼일 후에

부활하신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 성령님

 

그러한 성령님을 내 몸에 성전 삼아 모시게 된 자들에게는 반드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데

사단은 어떻게 교회 안에 들어가서 역사를 해놓고 어떻게 혼잡하게 뒤집어 놓았는지 사망에 대한

문제를 아주 귀중하고 아주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임을 간과해 버리도록 유야무야 죄에 대한 문제만

생각이 나고 사망에 대한 문제를 결코 드러내게 하거나 그것을 이렇게 끄집어내는 일을 감춰놓고 있어요.

 

제가 어제 막 그냥 앉아 있어도 일어서 있어도 하늘과 땅이 뒤집어지고 앉아 있어도  돌아 누워 있어도

내 자신의 몸이 야~ 이게 순간적으로 이 모든 깜깜함과 어두움과 사망과 죽음이 몰려오면서 이게 죽음이구나 이런 것이구나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이 하나님 나 살려주세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아~ 제가 그 말씀을 토해내는 순간에 예수님께서 왜 도망을 가셨는지 돌을 들고 죽이려

하고 또 낭떠러지에서 밀었을 때 왜 도망을 가고 왜 유대인들이 그 예수님을 잡으려 했을 때

왜 피해 다녔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예수님은 골고다에서만 죽으셔야 돼요 골고다가

아닌 다른 곳에서 죽으시면 안 돼요

 

제가 지금까지 잘 깔아 놨는데 잘 보세요 지금부터가 아주 중요합니다.

죄를 제거하는 문제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듯이 사망을 이기는 체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반드시 동전의 양면처럼 반드시 함께 구르는 이런 경험과 체험들이 우리에게 동반이 되어야

죄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의 천사가 하나님의 천사가 죽음을 가지고 애굽의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는 장자들 첫 사람과 첫 아들과 그리고 짐승의 첫 새끼들을 쳐서

죽이려고 했던 그때 그 죽음의 천사의 손에서 구출되어진 것이 뭐죠

내가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에요

 

사망을 이기는 체험을 해야 되는데 사람들이 그걸 모르고 있는 거에요

제가 어저께 하나님 나 살려주세요. 제발 나를 살려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그 얘기 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죽음의 천사의 손에서 구출되어진 것은 뭐죠 "어린 양의 피

십자가” 출애굽기 12장 23절 말씀을 제가 하고 있는 거에요

23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을 이겨나갔죠

제가 지금 죽음을 이기는 그 경험과 체험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죽음의 천사의 손에서 구출된 것은 십자가를 상징하고 있는 어린양의 피 그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드락 메삭 아벤느고는 강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도 죽음을 당하지 않았어요.

성경은 그것을 해를 입지 않았다고 써 있어요 지금 다니엘서 3장 17절을지금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물론 다니엘서 그 전에 16절부터 쭉 말씀이 있는데 17절에 그 얘기가 나옵니다

 

14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15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16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19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낯빛을 변하고 명하여 이르되 그 풀무를 뜨겁게 하기를 평일보다 칠배나 뜨겁게 하라하고

20군대 중 용사 몇 사람을 명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지라 하니 21이 사람들을 고의와 속옷과 겉옷과 별다른 옷을 입은채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질 때에 22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가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23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채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떨어졌더라 24때에 느부갓네살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옳소이다 25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네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26느부갓네살이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온지라

27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28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사탄은  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우상을 숭배하는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 외에는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라고 얘기를 했을 때 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죽음의 체험을 경험하지 않았는데

살았을 때 얘기입니다. 그것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경외함 때문입니다.

 

아까는 뭐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의 천사로부터 어린 양의 피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가장 높으신 하늘과 땅에 가장 존귀하시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경외하는 믿음 때문에

다니엘이 내가 지금 사람들을 비유로 얘기하고 있는 거에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살아있을 때 사망을 이기는 체험을 통해서 죽음 후에도 주님께서 이러한 자들을 찾고

부르실 때 우리가 그와 편승하여서 주님의 손에 이끌림 당하여서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이 부활의 경험이

연속적인 것이 되어질 수 있도록 이 땅에서 살아 있는 우리들이 성경의 믿음의 선진자를 통해서 그들은

어떻게 이겨나갔는가를 지금 제가 예를들어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6장 23절에 보면 1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 이십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에 하나이라 이는 방백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함이었더라 3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5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6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7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8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9이에 다리오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10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1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12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어인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적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대로 된 것이니라 13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번씩 기도하나이다 14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 내려고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매 15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씀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의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변개하지 못할 것이니이다 16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17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함이었더라 18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맟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니라

19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20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21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22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23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다니엘이 기도하는 문제를 통해서 고의로 시험하는 그 시기하고 질투하고 사단의 악한 그러한 본성에

이끌린 사단의 도구가 되어진 사람들에 의해서 다니엘이 그런 상황이 있을것을 알면서 잡혀가서 죽음을

당할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창문을 열어가면서 동쪽의 예루살렘을 향하여 세 번씩 경배하고 세 번씩 아침과

점심과 저녁에 기도하는 삶을 통해서 한 일이 죽음의 그 사자 굴에 들어가는데 하나님께서 그 죽음의 사자

굴에 다니엘이 사자의 입속에 들어가는 것을 강제로 막으시는 사건이 다니엘서 6장 23절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다니엘이 죽음을 사망을 이긴 체험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한 전적인 믿음 때문에

다니엘이 죽음과 사망을 경험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에 하늘로 승천한 엘리야와 에녹도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고 죽음을 맛볼 수밖에 없는

당연한 그 사망과 죽음은 자기들 것이라고 인간들의 것이라고 인류에게 보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에녹과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주님께서 친히 하늘로 들림 받게 함으로

말미암아 사망을 이긴 자들이 그러한 자들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때가 이르기까지는 우리는 결코 죽음의 해를 의도적으로 그런 죽음의 해를 받을 수 있는 사건에 처해졌을 때 이것을 하나님의 뜻이려니 하고 수동적으로 피동적으로 그걸 받고 죽음의 길로 가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그전에 계시의 어떤 정신에 따라서 특별한 사람에 한해서 미리 그런 죽음의 경험을

맛보게 할 것이라는 그런 사람들 외에는 의도적으로 죽음이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예를들면 어제 나에게 다가온 문제를 봤을 때 하늘과 땅이 뒤집어지면서 죽음이 엄습해와요.

아니 도무지 사물을 분별할 수 없다니까 이건 뭐 고혈압으로 쓰러지는 것도 아니에요

내가 당이 있어서 갑자기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멀쩡하게 있다가 하늘과 땅이 뒤집어지고 온 세상이

깜깜해지고 누워 있어도 내가 누워 있는 것이 아니고 순간적으로 죽음이 나에게 강력하게 온 동서남북

사방 팔방 하늘과 땅의 모든 것에서 집중 공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제가 무슨 얘기를 했냐면 사람이 마치 이 사드락, 메삭, 아벤느고 처럼 에녹과 엘리야가

하나님의 이름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것처럼 동행하였던 삶을 기억하였던 것처럼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한 전적인 과거의 믿음을 가지고 사자의 입 속에 과감하게 뛰어 들어가는

것처럼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내가 하나님 나 살려주세요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순간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고 기대를 했었어요.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정신은 있었어요 야 ~그런 상황에서도 내 혼이 영과 결합이 되어서

그런 가운데서도 하늘이 뒤집어 지고 깜깜해지고 온세상이 앉아 있어도 앉아 있는 것이 아니고

누워 있어도 누워 있는 것이 아닌 그런 상황에서도 내가 그렇게 하나님 살려주세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늘 과 땅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십니다.

생명의 소유주 이십니다 라고 제가 외쳤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기대하고 고대하고

나 자신을 쳐다봤는데 확연히 변화되는 것은 없더라고요

 

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내가 부르짖어 외쳐 기도했을 때 순간적으로 나에게 사방 팔방 하늘과 땅 앞뒤전후

사방 팔방에서 공격해 오던 그 공격의 불 화살들이 순간적으로 멈춰진 것 그러나 그전에 그 기도하기 전에

들어왔던 그런 것들은 계속적으로 내 안에서 잠정적으로 존재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사그러지면서

그래서 내가 실험을 해봤어요.

 

일어나 가지고 앉아 있을 수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앉아 있을수가 없더라구요

얼마나 강하게 역사를 했는지 그리고 걸어봤는데 도무지 걸을 수가 없어요 의식은 또렷해요

보통 일반적인 병으로 인하여 넘어지고 이게 고혈압이나 이런 심장발작이나 이런경우는

의식조차도 없다는데 나는 의식이 분명해요 의식이 분명히 있더라고요

그런데 내 몸이 육신이 말을 안 듣는 거예요.

 

보세요.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할게요 사망을 이기는 체험들이 성경에서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에

예수님이 그렇게 숱하게 가르쳐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별로 간과하고 가볍게 여기고

집중하지 않고 주의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사망을 이기는 체험이 예수님에게만 해당되고 주의 사람들

주의 종들에게 선지자들에게 믿음의 사람들에게만 성경에 기록된 그런 특별한 주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지 그게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이겠지 라고 그렇게 취급하고 그렇게 여겨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미혹에 의하여 속임 당하고 있다라는 얘기에요.

 

다윗은 골리앗과의 문제에서 어떻게 싸워 이겼는냐 골리앗과 싸우는 것은 죽음의 구덩이로 스스로가

들어가는 것이에요 어떻게 사자와 곰과 날 짐승 하이에나와 특별히 곰의 발톱과 날카로운 그 사자의

입속에서 어떻게 다윗이 구원을 받았느냐 만군의 이름이신 여호와 하나님 만군의 이름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아주 여기에 보면은 지금까지 제가 대여섯 가지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거기에서 

공통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만군의 가장 높으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름

그것을 신뢰하고 경외한 자들 이것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를 하면

열왕기하 4장 38절부터 42절까지 한번 읽어 보세요.

 

38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생도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39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서 야등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 외를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서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저희는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40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외쳐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41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가로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해독이 없어지니라 42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물 곧 보리떡 이십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내가 어저께 경험한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면 열왕기하 4장 19절 읽어봐요

그것을 제가 경험을 했어요 19그 아비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 아비가 사환에게 명하여 그 어미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그리고 이 아이가 죽어버렸어요.

 

이 죽은 사람을 부활시킨 다음에 야생의 들판에 어떤 박이라고 그러나 그걸 뭐라고 그러나

호박이라고 그러나 하여튼 야생 호박이라고 그럽시다

 

야생 호박을 이렇게 먹는 과정에서 독성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가져오게 하는

40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이시여 솥에 죽음이 들어 있습니다.

사망이 들어 있는 이것을 먹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쓰디쓴 이 환경 속에서 어떻게 이것을 해결해 나가느냐 그전에 이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아이고 내 머리야 아이고 내 머리야

아이가 죽게 되었다고 그렇게 제가 어저께 똑같은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니까요

 

갑작스럽게 그냥 머리가 좀 이상해 그래서 내가 주위에 있는 사람들한테

내가 지금 이게 죽음이 임박해 왔네 내가 그 얘기를 했다니까요

내가 죽게 되면은 당신들은 이렇게 이렇게 하십시오라고 한 일곱 여덟 가지 말을 해주고..

 

내가 왜 죽음이 엄습해 오는걸 알게 되었냐면 아이고 내 머리야 아이고 내 머리야 순식간에

그것이 느껴지더라고 그러면 봐봐요 지금 그 죽은 사람을 부활시킨 이 얘기는 뭐냐 하면

죽은 사람에게 그 죽은 아이에게 생명을 준 일인데 그렇죠 생명을 준 일 야생박의 독성을 하나님의

사람이시여 이 가마솥에 야생박으로 인하여 죽음 사망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 40절에 뭐라고 얘기해요. 그들은 죽을 결코 먹을 수가 없었다 라는 얘기에요

잘 들으세요 요 말씀 전에 죽은 아이를 부활시키는 이 선지자에 대한 얘기가 나와요 그렇죠

그리고 여기에 야생박의 독성으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환경에 처해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일 똑같은 얘기 이게 예수님에 대한 얘기예요.

 

이게 지금 예수님에 대한 얘기라니까요 육신적인 면에서 이 아이가 죽은 것이나

또는 어떤 야생박으로 인하여 그 독성이 들어가 있어서 사람들이 먹으면 죽게 되는 이런

어떤 육신적인 면 또는 영적인 면에서 모든 일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과 동일한데 생각나나요

 

누가 복음 7장의 얘기 11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쌔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더니 12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16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나인성 과부에게 외동아들이 있었는데 죽었죠.

예수님이 죽은 외동 아들을 보고 살리신 것이 아니라 나인성 과부가 불쌍해서 왜냐하면

그 과부의 모든 삶의 소망은 아들에게 가 있기 때문에 그 과부를 쳐다봤을 때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결코 그것을 간과하시고 그것을 소홀히 여길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하나님의 사랑이라니까요

 

그래서 그걸 살리신거지 누가 복음 7장의 얘기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 지금 죽은 아이를

부활시킨 일 똑같은 얘기예요.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말씀 무슨 얘기가 나오죠

11장 40절부터 44절까지 나오는데 무슨 얘기가 나와요

 

40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41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나사로의 죽음에 대한 얘기가 나와요 그렇죠 그런데 주 예수님께서 뭐라고 얘기해요.

나사로야 분명히 그 사람 죽은 자에 대해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만약에 나사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나와라 살아 나와라 했다면 나사로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라는 생각을 했을 때 조그마한 웃음들이 막 이렇게 지나가게 되더라고요

과거에 내 생각에 나사로 이름을 지칭하지 않고 죽은 자여 나오라 했다면 아마 나사로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있던 무덤 가운데 그 음성을 들은 모든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지 않았을까 라는

그런 생각을 한번 해본 적이 있습니다.

 

예 그래요 하나님의 음성을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 라고 생명의 말씀을 전했을 때

그 나사로가 살았다 라는 얘기예요.

그리고 지금 이 얘기는 지금 이 죽은 아이를 부활시킨 살리신 이야기나 야생 박의 독성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솥에 그 음식을 그 음식이 아니면 결코 살 수 없었던 그들에게

하나밖에 없는 당면된 그 솥에 포함되어 있는 그 양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 그런 절대절명의

순간에 이 일들의 결과물들은 사망과 죽음인데 그들이 말하기를 결코 죽을 우리가 먹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라는 얘기는 예수님께서 무엇을 얘기해 주시려고

이 성경 말씀을 성령님을 통해서 기록해 놓았냐면 바로 예수님 자신 십자가를 통하여 치료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임마누엘 되셔서 세상에 오신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것이 41절 말씀에 기록돼 있어요. 41절만 다시 읽어보세요

41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가로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해독이 없어지니라

 

이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사가 죽음과 사망을 가져오게 하는 들판에 야생 호박에

어떤 독성을 단순한 그냥 가루예요. 가루로 제거했다 라는거 뭐 생각나는 거 없습니까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누룩에 물든 제자들에게 조심하라 너희가 지금 바리새인들의

죄의 누룩에 지금 물들었고 전염이 되었고 퍼져 있구나 라고 얘기하면서 조심을 시키셨는데

 

마가8:14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바로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지금 말씀하고 계시냐면 신성한 생명이신 영원한 생명이신

참 생명의 고운 가루로 오신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걸 가르쳐주면서 그 여호와

하나님만 치료할 수 있다 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말씀이에요.

그래서 마태복음 16장6절에서 쭉 보면요

 

마태16: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7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8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바로 예수님께서 갈기갈기 조각조각 자신을 쪼개어서 나누어준

생명의 양식으로 나중에 10절에 보면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자신이 그렇게 여러 조각으로 얼마나

많은 조각으로 만들어 졌을까요

 

생각을 해보세요 한광주리 아주 큰 광주리 일텐데 한광주리가 아니라  말할 수 없이

큰 광주리에 담았다면 이건 가루로 만들어졌다는 표현이 맞을 거에요.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십자가를 통해서 치료하시는 분이심을 이렇게 알려주고 계시고

이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말씀이 어떤 것이가 하면

출애굽기 15장 22절 ~27절 말씀입니다 한번 읽어볼까요.

 

22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쌔

26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27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 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여기 보세요 22절에 보면 그들은 광야를 아니! 광야를 걷긴 걸었는데 그게 10일 걸렸는지

20일 걸렸는지 한 달이 걸렸는지 하루 걸렸는지 모르는데 분명히 성경은 3일 동안 걸었으나

물을 찾지 못하였다. 3일 뭐 생각나는 거 없어요

 

마태복음 16장 21절에 보면  21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이말씀은 부활을 상징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백성이 왜 광야를 3일 동안 걸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냐면 이집트 애굽이라는

이 세상의 죽음에.. 애굽은 누구의 땅이고 누구의 장소입니까?

세상 신 원수 마귀가 자기 것으로 통치하고 있는 땅입니다.

 

근데 하나님의 백성이 이 죽음의 땅 이 마귀의 땅에서 구별되어져서 선별되어져서 분별되어져서

나오는 것이 부활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은근하게 이렇게 보여 나타내주고 있어요

.

광야는 원래가 부정적인 죽음의 장소를 얘기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긍정적으로 부활에

대한 것과 연결되어지면서 특별히 구별되고 분별된 그런 특별한 장소를 이렇게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애굽에서 탈출한 이 히브리민족들 그 이스라엘 백성 모세를 따라 인도 함

받은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 홍해라는 바다에서 침례를 받게 하고

곧 하나님의 백성을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세상 밖으로 이끌어 나오시겠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물속을 통과하고 저들은 죽고 이들은 살아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구별된 분별된 영역의 장소인 광야로 이끕니다.

 

그 광야는 구별된 자들 성별된 자들 분별된 자들이 발을 딛는 곳이 광야예요.

그곳에서  몸은 세상에서 이미 구별되어져서 나왔지만(홍해 바다의 침례) 몸이 아닌

 "나" "자아"의  문제 생각과  감정과 의지의 문제가 아직 연단 받아지지 않고 훈련받아 지지

않았기 때문에 단련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원망과 불평이 그 혼의 가장 나쁜 독소로 침투해서

실족하게 하는 그 독소를 없애게 완전히 제거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오직 만나와 하늘 이슬로

대표되는 그 만나와 생명의 음식 만나와 반석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 간헐적으로 메추라기 고기들을

먹게 하셨지만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라는 하나님 외에는 절대적으로 광야에 아무것도 없이 존재하지

않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삶이 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라는 것을 은연 중에

가르쳐주면서  요단강을 지나가게 합니다.

 

요단강은 혼의 문제를 해결한 자들 제거한 자들 자아를 버린 자들 자아를 죽인 자들 자아를 하나님의

것으로 탈바꿈한 자들 그런 자들이 들어갈 때 그 가나안 땅이 거룩한 땅으로 변모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예요.

 

이게 참으로 아무 얘기도 아니지만 서도 굉장히 중요해요

그러니까 광야는 세상에서 분별된 장소이나 애굽은 세상과 하나된 장소입니다.

그런데 이 가나안 땅은 세상과 나와의 문제에서 더 구별돼서 정말 성령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을 수 있는 그 혼의 문제가 해결돼서  성령님을 모신 그 영이 완전히 하나님께  말씀과 계명들을

순종하고 준행하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일곱 가나안 족속들을 완전히 멸하여서 그곳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온전히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바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그들을 구원시키셨고

광야라는 곳에서 특별히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게 하기 위해서 40년 가까이 그렇게 훈련의  기나긴

여정을 보내게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삶이 똑같아요.아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어요.

제가  삶을 살아가면 갈수록 하나님께서 긴 터널 죽음의 터널 어둠의 터널이 있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너무나 그것이 괴롭고 너무나 지루하고 기다리기가 좀 어렵지만 서도 지나고 나면

얼마나 모든 것이 감사한지 마치 야곱에게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게 하시고 요셉을 통해서 그 기나긴

고난과  삶의 과정들을 통해서 요셉을 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 애굽의 통치자로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그런 자들을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러니까 홍해 바다라는 그 침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세상 밖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특별히 구별되고 선별되고 분별된 영역인 광야로 이끄신

그게 로마서 6장 3절 말씀이에요.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부활 안에서 이끄신 그 광야의 삶이 굉장히 좋은 거예요.

그것이 구원의 삶을 체험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4절5절도 게속 읽어 볼까요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그러면 보세요. 왜? 애굽에 멀쩡히 살아있는 그들을 광야로 보냈을까

여러분들 뭔가 의문이 안 듭니까?

애굽은 애굽의 왕 사단이 통치하고 있는 사단이 주는 나일강의 물과

그리고 그곳에서 공급해 주는 그런 양식들을 먹고 사는 곳입니다.

그런데 광야는 그런 천연적인 공급이 전혀 없는 곳이에요.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절대 살 수 없는 곳 그게 광야예요.

그러니 혼의 문제가 해결될 수밖에요.

 

출애굽기15장 23~ 25절 함 보세요

22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쌔

마라가 무슨 뜻이라고 했죠? 쓴물 마라의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다투다 너무 쓰니까 하나님과 다투는 겁니다.

아니 이런 곳에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 그리고 물이 있는데 아니! 쓴 물을 주어서

우리가 결코 살 수 없도록 진행할 수 없도록 더 나갈 수 없도록 하나님과 이 물 때문에

여기서 분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다툰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이런 쓰디쓴 환경을 연단시키기 위해서 주어졌을 때

우리는 계속 하나님 앞에 대적하고 다투고 분쟁하고 하나님이 왜요? 왜? 왜? 오해를 하게 한 겁니다.

 

사단이 옆에서 또 곁들여서 “그래 맞아 니 말이 맞아” 라고 막 속삭이고 미혹하는 겁니다.

그 속삭임에 결코 넘어가면 안 되는데 그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모든 자들이

그 쓰디쓴 환경이 주어지면 여기 쓴맛이라는 것이 뭐냐면 마라가 왜 쓴맛 쓴물이라고 얘기했을까요.

하나님의 백성이 직면하는 환경이 쓰다는 얘기예요.

 

하나님이 주는 환경이 왜 쓸까요 애굽에서 나오게 했잖아요.

하나님이 하신 것이지 저기 히브리 민족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만히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 저기 가서 나가서 살까“ 그들이 나가서 산 게 아니라 하나님이 강제로

이끌어서 잡아 빼신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환경 그게 쓰디쓴 환경 그게 광야의 삶인데 그게 마라인데 하나님은

마라를 어떻게 했어요. 죽음의 환경 사망의 환경을 변화시켰다는 얘기예요.

 

부활의 능력으로 3일 동안 걸었으나 물을 찾지 못한 그 3일 안에 해결의 방법 제거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들은 애굽에서 처럼 천연적인것 이 천연적인 양식과 천연적인 물 이런

공급이 없는 것으로 알고 정말 원망과 불평 쓰디쓴 환경에 직면하게 된 거예요.

이런 것들이 우리들의 삶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몰라요

 

그런데 25절에 뭐라고 써 있냐면 그에게 나무 하나를 보여줬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쌔

 

이 나무 하나가 제가 한 달 전에 이 나무에 대해서 깨닫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이 나무 하나 이 나무가 베드로전서 2장 24절 말씀이에요.

이 나무에 예수님이 왜 나무에 달렸는지 사람들이 그걸 몰라요 나무에 대해서 한 사람도

관심을 갖고 거기에 집중하고 주의하고 이 나무에 달린 그 나무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까

은혜가 안 되고 그 내피를 받아 마셔라 내 살을 받아먹어라 그것이 체감이 안 돼요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베드로전서 2장 24절 말씀에 그분은 주 예수님은 그분이라고 왜 얘기했냐면요

예수님을 강조 하면은 나무가 집중되지 않고 귀중하게 우리의 심령으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얘기를 빼고 그냥 그분이라고 얘기했어요.

왜냐면 나무가 중요하기 때문에 나무에 관심을 가지라는 얘기예요.

 

그분은 우리의 죄들을 직접 자기의 몸에 이 성경 한 말씀 한말씀이 그런 의미가 있어요.

주 예수님께서 그렇다면 주 예수님이 어떤 주체가 되고 강조점이 되지만

그분은 마치 어떤 제3자가 얘기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 이분은 주 예수님이시죠

우리 죄들을 직접 자기 몸에 짊어지시고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나무” “나무” ‘이 나무“ 이 나무를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데 이것은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 구약의 예언된 말씀이에요. 신명기 21장 23절 한번 읽어보세요.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날에 장사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시체를 뭐라고 그랬어요. 시체를 나무위에 밤새 두지 말고

왜? 이게 가장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그런 범죄자들을 사형시킬 때 사용된 그때 당시에

가장 악독한 가장 악랄한 최고의 사형 도구가 바로 십자가형이에요

 

그때 당시에는 로마가 통치했던 시대니까 로마의 가장 무서운 범죄자들을 처형시키고

사형시킬 때 그 도구를 사용하였다 라고 구약에 이미 이 나무가 예언되어져 있어요.

 

그런데 이 나무를 예수님이 뭐라고 했어요.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뭐라고 쓰여 있죠 나무에 달렸어요.

몸에 짊어 지시고 죄들을 그 나무에  자신의 몸에 다 짊어지시고 나무에 달리셨다.

 

“나무” 나무를 통하여 우리의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였기 때문이에요.

 이게 선악과 지혜의 열매 이 선악과 나무를 짊어졌다는 얘기에요

선악과 나무 열매 그것 때문에 인간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선악과 나무를 대신 짊어졌다는 거에요

 

온 인류가 그 나무 때문에 범죄하고 범법하고 그리고 그 죄의 삯으로 사망에 하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친히 생명나무 되어주신 그분이 이 선악의 나무의 열매를 친히 짊어 지고

우리를 의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와~ 내가 이 말씀을 언뜻 깨닫고 얼마나 얼마나 가슴이 저미어졌는지

그래서 선악과 나무가 없어졌나 봐요 그렇죠

존재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 가장한 것 같으나 실제로 주 예수님께서 나무에 짊어지고

달리심으로 말미암아 이미 그 모든 독소가 모든 것이 무효화되고 무력화되고 완전하게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만들어 변화시켜 주셨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25절에 보면은 나무 하나 그 나무가 아카시아 나무인지 참나무인지

소나무인지 안 써있고 그냥 나무 하나 그 나무 하나가 쓴물을 달게 만든 

지금 출애굽기25절 말씀을 내가 지금 얘기하는 거예요.

이 얘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선악과 나무를 우리 대신에 짊어지시고 달리셨기 때문에 그 나무가 사라진 것처럼

되었기 때문에 치료하는 십자가가 된 거란 이말입니다. 치료가 됐다 이 말이에요

없어져야 치료가 되는거죠 그냥 존재하면 치료가 안된거겠죠

 

그러니까 모든 것들은 선악과 열매 지식의 열매 선악과를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게

할만큼 그것에 마음이 가고 손이 가고 발이 가고 입이 가고 먹고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근육이 됨으로 말미암아 그 죄의 독소가 퍼져가지고 사망과 죽음을 가져오게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을 처리하시고 모든 것을 제거하시고 모든 것을 해결하신 분이 바로 십자가에

그 나무를 짊어지신 거에요

 

이 십자가의 그 길을 가셨을 때 예수님 자신이 짊어지고 가신 그 나무에 예수님이

달리셨다는 얘기에요 다른 나무가 아닙니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슬픔의 길", "고난의 길," "고통의 길" 또는 "고통스러운 길")

심판받으신 장소로부터 골고다 언덕에 가기까지 800M 예수님은 너무나 무거운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후 그 골고다의 언덕에 가기 까지 세 번을 쓰러지셨고 침뱉음과 온갖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그 나무 그 나무가 인간 첫 사람 아담 허리에서 나온 모든 인류 존재 곧 첫 번째 사람 아담이

그 나무에 미혹되어서 범죄하여 사망케 된 그 근원적인 문제를 예수님께서 대신 손으로 빼앗아서

아담에게 취하여서 아담에게 강제로 그것을 이렇게 건네받아서

그래서 우리를 구원시키고 해결시키신 것이기 때문에 이 쓴물을 달게 만든 이 이름 모를

이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그 골고다 언덕길을 가면서 넘어지면서

피투성이가 된채 너무나 무거운 그 나무였고 십자가에 달려서 고통과 죽음을 갖고 오게 한 그 당사자의

그 나무인데 그것을 아담에게서부터 빼앗아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없애버렸기 때문에 그것이 치유하는

십자가이다 라고 베드로전서 2장 24절은 얘기하고 있는 거에요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분은 우리의 죄들을 직접 자기의 몸에 짊어지시고 그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아~ “그 나무 그 나무”그것은 우리가 죄들에 대하여 죽음으로써 의에 대하여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쓴물 죽음과 사망을 가져오게 하는 쓴 마라를 통해서 이 하나님의 백성들

믿는 자들 그리스도인들 거듭난 자들이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자기 것으로 만드셔서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대신 첫 사람 아담과 그 후손들이 받아야 될

모든 고통과 그런 모든 아픔과 그런 눈물과 그러한 슬픔과 그런 죽음과 사망 모두를 다 자신이 취하시는거

자신이 끌어안는 거 자신이 담당하는 거 아~ 이걸 누가 알겠어요

 

모세가 이 나무에 이 나무 하나라고 했어요 나무 둘이 아니에요

나무 하나 그 십자가에 그 예수님께서 짊어지시고 그리고 그 십자가 나무에 달린

이상을 모세가 봤다라는 얘기입니다.

모세가 이 나무 하나를 집어넣었는데 보여주고 그것을 물에 던졌는데

물에 던진 것은 사망이에요 물은 나중에 우리가 교제를 통해서 알겠지만 또 사망을

상징하고 있는 물속에 던졌는데 이 모세가 이 나무 하나를 보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여주셨어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보내 주셨어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볼 수가 있었겠어요.

 

그 나무를 쓴물에 사망이 있는 그 물에 아까 호박 그 들판에 야생 박 솥에 들어 있는

이 박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이 양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우리가 죽게 됩니다.

우리는 결코 그 양식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쓴 물에 이 죽음의 사망에 던졌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바꾸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 나무에 대한 이상을 보고 우리가 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그리고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그 골고다 해골이라는 그 죽음을 상징하고 있는

그 언덕 위에서 나무에 달리신 것은 우리가 짊어져야 될 선악과 나무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그 나무를 먹게 해서 인류를 범죄케 하여 사망과 죽음을 갖고 오게 한 그 사단에게

그 나무를 통해서 직격탄으로 내리 꽂음으로 말미암아 그 사단의 해골이 머리가 바로

창세기 3장 15절 말씀입니다.

또한 내가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씨도 여자의 씨와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씨는 그리스도를 얘기하고 있죠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나무 그 십자가 나무는 자기가 그 하나님의 아들들을 죽게 한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사람을 죽게 한 그것으로 자기가 죽어요.

하나님의 방법이 이렇게 철저하고 완벽하고 이렇게 신비한 거에요

그것으로 모든 사람을 죽게 했는데 그것으로 자기가 죽을 줄이야 꿈에라도 생각했겠어요.

꿈도 못 꿨겠지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나무 이 선악과 나무를 짊어지시고 인류가 짊어져야 되고 인류가 담당해야 될

그 나무를 대신 끌어안고 담당하시고 대신 자기 자신이 취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당하여서 나쁜 것은 다 예수님이 감당하시고 좋은 것은 우리에게 넘겨주시기 위하여

3일 만에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체험하는 자에게는 부활의 경험 이 쓴 경험

이 쓴 환경을 통해서 죽음과 사망을 갖고 오게 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지만

이것이 이기는 것이 있음을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15:53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55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사망의 법이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사망의 법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십자가를 통하여 있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 이 이스라엘 백성이 마라와 엘림에서 겪은 그리고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서 죽게 된 그  야생 박의 양식을 가루로 산산이 산산이 쪼개져서

일곱광주리 12광주리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산산이 산산이 베들레헴에서 생명의 양식으로 탄생하신

그분이 오병이어의 떡처럼 다섯 개 보리 떡으로 누구든지 먹을 수 있도록 우리는 죽음이라는 사망이라는

쓰디쓴 마라처럼 다툴 수밖에 없는 그런 씁쓸한 쓰디쓴 환경에서 살아나가고 있고 살고 있고 지금 그런

삶의 장소에서 무거운 세상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의 짐을 지고 가셨다는

것을 통해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8:32) 그 십자가를 통하여 체험하게 하시고 경험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죽음에서 사망에서 이기는 것이 있음을 가르쳐준 것이 지금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죽음을 맛보지 않았다는 거 바울이 독사가 불에서 나와서 자기를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 28장 말씀입니다.

사도행전28:3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모든 사람들이 저는 정말 여기까지 살아왔으나 정말 재수없는 인간이구나 죽게 되었구나 했는데

멀쩡히 살아나진 거 에녹과 엘리야가 죽음을 맛보지 않은 거 다윗이 곰과 사자의 무서운 죽음의

발톱과 입에서 구원받은 거 골리앗의 손에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이겨나가는 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의 천사의 손에서 건너 뛰어서 유월절 넘어가 가지고 어린양의 피로서 구원받은 거

이것은 사망을 이기는 자들의 그 믿음이 무엇인지를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라와 엘림에서 겪은 그 체험을 통하여 또 쓴물을 달게 만든 그 십자가를 상징하고

있는 모세가 나무의 이상을 봄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 곧 임마누엘 하시는 그 예수님께서는

치료하는 하나님이시다.

 

사망을 물러하게 하고 죽음을 이기게 하는 놀라운 치료 무엇을 치료 하죠

죄의 삯은 사망 죄는 처음의 시작점이요 사망은 죄의 끝점인데 그 시작과 종말의

중간에 있는 것이 질병이라는 쓰디쓴 환경이라는 거에요

 

우리를 연약하게 하는 그런 것이란 말이죠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해결하는 거 죽음을 해결하는 것은 그 중간에 있는 연약한 질병을 해결하는거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가장 많이 행하신 것이 뭐냐하면 병든 자들을 고치신 일입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여기까지 얘기하면 뭔가 알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여러분들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므로 2부에서 좀더 구체적인 얘기로 교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