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방

창세기14장19/히7장7절/ 하늘의 복을 전해 주는자(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갈망)

스불론의 배 2023. 7. 9. 11:56

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성경에 나타나 있는 이 축복에 대해서 우리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

우리 하늘소리 선교회 봉사자님들과 함께 교제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창세기 1장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후에

첫 번째로 말씀해 주신 것이 창세기 1장 28절 말씀입니다.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라는 복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신약 성경의 마태복음 5장 3절부터 12절까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국 백성의 헌법을 반포하시면서

복에 대한 말씀을 마태복음 5장 3절부터 12절까지 9가지 복에 대한 천국 백성의 본성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9가지 복에 한 가지를 채우면 열가지 일 텐데 그 한 가지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바로 천년 왕국에서

주님과 함께 이루어질 복 때문에 아홉 가지 복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영 안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또 지금의 처해진 상황에 대해서 심히 슬퍼하고 애통하는 자들에게 또는 주님으로 인하여

상당히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아니하는 반대와 거절을 당할 때 온유한 것에 대한 복에 대한 것을 또 말씀해 주시고 의에

굶주리는 자들에게는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는 복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것에

대해서 마음이 순수한 것에 대해서 화평한 것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박해를 받는 자들에게 그리고 주님 때문에 심한

비난이나 악한  말들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아홉 가지 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후에 처음으로 창세기 1장 28절 말씀을 통해서 복을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라고

하시는데 그러면 성경에 나타나 있는  가장 외형적으로 크게 보이는 축복의 첫 사례는 어디에서부터 펼쳐질까요.

바로  창세기 14장 18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18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그분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을 축복하며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소유주이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 이시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십시오 이렇게 복에 대한 얘기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물론 이 창세기 14장 전에 창세기 12장 2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 내가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며 너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 라고 복을 베푸는 장면을  자세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만 복을 공급해 주실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 외에 복을 우리들에게 이 세상 만유와 만물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해주고 공급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 14장 18절 19절 20절에 나온 멜기세덱에게 대한 축복은 이 멜기세덱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영원한 반차를 가지신 분으로서 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멜기세덱은 그 살렘의 왕의 신분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높으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히브리서 7장 1절 2절 3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1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 멜기세덱이 어느 시점에 나타났죠 아브라함이  포로로 잡혀갔던 조카 롯을 다시 되찾아 오기 위하여 사로잡힌 조카

롯을 데리고 오기 위하여 집에서 길리운 자 318명과 함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후에 나타나신 분이 바로 멜기세덱입니다.

이 멜기세덱은 이 영원한 반차를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승리를 한 아브라함에게 친히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제자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인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왔듯이 이 대제사장인 살렘 왕이며 의의 왕으로

 표현되고 있는 이 멜기세덱 또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지고 승리한 아브라함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멜기세덱은 의외 왕이며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아브라함에게 찾아왔듯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영원한 대제사장 의의 왕이며 살렘 왕이었던 멜기세덱의영원한 반차를 쫓는 제사장이 되셔서 오셨다 라고

히브리서 5장 6절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6또한 이와 같이 다른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7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11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이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라는 것은 아론이 제사장이 된 그 시대나 그 계통보다도

훨씬  전에 더 높은 상태에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론이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서 선택한 그 아론의 계통은 단지 인성 안에 있었던

제사장 직분을 위한 것이지만 멜기세덱의 계통은 인성과 신성 그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 있는 제사장 직분을 위한 것입니다.

이 의미가 상당히 중요한데요.여기서 중점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멜기세덱의 영원한 반차를 쫓는

대제사장이 되신 분으로서 예수님을 예표하고 상징하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제사장은 어떤 일을 하죠.

제사장이 하는 일을 많은 분들이 단편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많은 부분이 있습니다.

제사장은 자신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물론입니다.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제사장의 역할이죠.

 

왜냐하면 그 사람들을 축복을 받게 하려면 축복이 임하게 하려면 하나님께로 당연히 데리고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해서 하나님께로 데려가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그 임무를 가진 자들이

하나님의 제사장님들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제사장들에게 자신의 백성들을 축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그 의무와 임무와 역할을 하게 하기 위해서 제사장들을 세워주신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신령한 하늘의 축복들은 우리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우리가 받을 수 없는 것이기에

제사장이라는 중간 역할을 하는  중재자를 통해서  하나님 자신의 백성들 또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들을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충만한 복들을  사람들에게 전해줄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다가옴에 있어서 제사장을 통해서 이 일이 이루어진다 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께 가야 되는데 실제적으로  개인 스스로 어떤 자의적인 마음을 가지고서는

누구도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구별되고 거룩한  특별히 하나님께서 성별시켜 주신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 라는 의미에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중재자인 제사장들이 있어야만 하나님께서 가지신 신령한 모든 좋은 것들 충만한 축복들을 받을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1:3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령한 복〕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아무리 사로잡힌 그 조카 롯을 해방시키고 자유를 주기 위해서

전쟁 가운데에서 승리를 경험하고 왔다 하더라도 그 승리한 자를 위해서 복을 베풀메 

있어서 반드시 제사장이 존재해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그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받을 수 없을 때 중재자인 이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 가운데에 있는 중재자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제사장의 직분인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높이 계시고 인간은  하늘 아래 땅에 있는 너무나 낮은 땅에 있기에

가장 높은 하늘 위에 계신 하나님과의 그 사이와 간격과 거리는 너무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사이를 메꿔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사닥다리를 상징하고 있는   대제사장이신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 곧 여기에

나오는 멜기세덱이라는 그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사람들을 멜기세덱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닥다리 라는  중재의 다리를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아론의 대제사장에 백성들을 위해서 제물을 드리고 예배를 드리고

어떤 특별한 그러한 일을 할 때는 대제사장의 옷을 입고 하나님이 계신 성소와 지성소를 들어가게 되는데.

 

그 들어갈 때에  대제사장이 견대와 함께 옷을 입게 되는데 옷에는 그 앞부분에 흉패가 붙어 있고 흉패 위에는

그 열두 지파의 이름이 첫 번째  르우벤부터 베냐민까지 그중에서도 순서적으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데요.

12지파의 이름이 흉패 위에 보석들이 박혀 있는 것이 출애굽기28장9절 부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4그들의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으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할찌며

5그들의 쓸 것은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이니라

6그들이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에봇을 짓되

7그것에 견대 둘을 달아 그 두 끝을 연하게 하고

8에봇 위에 매는 띠는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에 공교히 붙여 짤찌며

9호마노 두개를 취하여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10그들의 연치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11보석을 새기는 자가 인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테에 물리고

12그 두 보석을 에봇 두 견대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어서 기념이 되게 할찌며 13너는 금으로 테를 만들고

14정금으로 노끈처럼 두 사슬을 땋고 그 땋은 사슬을 그 테에 달찌니라

15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만들되

16장광이 한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17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18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19세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20네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테에 물릴찌니 21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 둘이라 매

보석에 열 두 지파의 한 이름씩 인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22정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23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위 곧 흉패 두 끝에 그 두 고리를 달고 24땋은 두 금사슬로 흉패 두 끝 두 고리에 꿰어 매고

25두 땋은 사슬의 다른 두 끝을 에봇 앞 두 견대의 금테에 매고

26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아래 양편 가 안쪽 곧 에봇에 닿은 곳에 달고

27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에봇 앞 두 견대 아래 매는 자리 가까운 편 곧 공교히 짠 띠 윗편에 달고

28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공교히 짠 에봇 띠 위에 붙여 떠나지 않게 하라

29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 30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 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찌니라

 

그리고 견대에도 마찬가지로 두 개의 대제사장의 그 양 어깨 위에 힘을 상징하고 있죠

강한 힘을 상징하고 있는 그 어깨 위에 두 개의 호마노가 있는데 거기에 각각 여섯 지파의 이름들인 그

12지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다 라는 것이 출애굽기28장 15절부터 21절까지 이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이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때는 반드시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상징하고 있는 총체적인 어떤 단체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그 견대와 흉패를 착용한 후에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가는데 그 의미가 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제사장을 통하여 인도받는다 라는 그런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대제사장은 두 개의

호마노와 그리고 흉패와 그리고 견대 위에 새겨진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견대와 흉패 그 옷들을 반드시 입고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을 성경은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거룩하신 엄위하신 하나님을 뵙기 위해서 사람은 제사장을 반드시 중간 다리로 중재자로

세워야 되고 삼아야만 된다.

중재자가 없이는 그 넓고 먼 간격을 결코 가까이 하나로 다리를 놓을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인도받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바로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를 없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신령하고도 충만한 축복을 받는 그 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제사장을 통해서 우리 백성들이

또는 개인의 삶들이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인도되고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게 된다 라고 해서

창세기 14장 19절에 그런 말씀이 써 있는 것입니다.

 

그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하며 말하였습니다.

하늘과 땅의 소유주이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십시오

지극히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 복을 달라 라는 그 말씀을 바로 이 대제사장 살렘왕이며 의외왕인 영원한 반차를

가진 아론보다 훨씬 전에 언제부터 존재했었는지 살펴볼 수 없는 그렇게 표현된 멜기세덱을 통하여 인간에게

인간이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대제사장을 통하여 하늘의 신령한 축복들 하늘 이슬들을 우리가 공급받을 수 있다 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이 멜기세덱을  통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아주 가까이 다가섰다 라는 것입니다.

참 이게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그  신령한 복을 받기 위해서는 대제사장이 필요하다 이런 말씀입니다.

이 복에 대한 원론적인 얘기를 했는데요. 조금씩  자세하게 좀 더 들어가 보기로 하겠습니다.

 

제가 한 서너달 전에 이 축복에 대해서 여러분들과 함께 교제를 나눈 시간이 있었는데요.

이 축복이라는 것이 구약 시대 때는 대제사장이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이 가능했고 신약시대에는 바로

대제사장이시며 왕이시며 선지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우리가 축복을 나눠받을 수 있다 라는

것을 아까 마태복음 5장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과 함께 알아 봤습니다.

 

그런데 그럼 구약시대 때는 대제장을 통해서 신약시대 때는 대제장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이 일이 이렇게 공급이 되었는데 꼭 대제사장을 통해서만 그렇게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을수 있을까요?

성경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창세기 47장에 보면 참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요. 그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바로 인간을 통해서 대제사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통해서

공급해 주는 그러한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창세기 47장 7절 말씀인데요.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왕 앞에 서게 합니다.

그때 야곱이 이집트의 왕인 바로 왕을 축복을 합니다.

7요셉이 자기 아비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대제사장만이 하늘에 신령한 복을 대신해서 인간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바로 야곱이 이 일을 합니다.

이 창세기 47장은  야곱이 완전히 변화된 자로서 성숙하여서 하나님의 생명이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의

생명의 영을 충만히 받은 상태에 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신기하게 야곱이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이 탈취하고 속이고 빼앗는 이 야곱이 변화되어서 성숙되어졌을 때 성경은 이스라엘이라고 불렀는데 이 이스라엘을 여기서

성경은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자 야곱이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하였다.

 

창세기47: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이 내용이 참 중요합니다.

아까 7절을 통해서 축복을 하였던 그가 야곱이  바로를 축복하고 나서 그 앞에서 나왔다 라는 얘기를 합니다.

두 번 복을  하나님께 바로를 위해서 복을 비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이 곧 이스라엘이  이 제국의 왕으로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한 나라의 왕을 축복하는 것 그 사람들을 그 나라를

축복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축복한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것은 성숙된 자가 아니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애굽에 야곱이 최초로 도착을 해서 처음으로 한 일이 무엇이냐면 바로 왕을 그 세상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는

바로 왕을 축복하는 일이 야곱이 애굽에 도착해서 첫 번째로 한  일입니다.

이것은  탈취하고 속이는 야곱이라는 사람이 완전히 생명의 충만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씨름하여서 환도뼈가 위골되는

그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돼서 자라고 성장하고 점점 그것이 온전하여져서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던 때가 바로 이 47장의 말씀입니다.

 

바로 왕을 축복할 때는 완전히 야곱이 변하여서 이스라엘로 성숙한 상태로 생명의 흐름이 충만한 가운데 사람들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하늘의 신령한 복들을 하나님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자로 그가 변화된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애초에 이는 누구의 복을 비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자가 아니었어요.

라반에게 나타났나요. 에서에게 나타났나요.

야곱이 에서나 라반을 위해서 기도했다 라는 것이 성경에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야곱이 남들을 위해서 기도한 것은 여기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바로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의 대표자로 그가 군림하고 있지만 야곱은

그 모든 사람을 대표하고 있는 왕 위에 그가 축복하는 높은 자로 군림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가 누구입니까

아까 창세기 14장 18절에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는데 그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가장 높은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이 바로를 야곱이  변화된 이스라엘 성숙된 이스라엘이  그를 축복한 것은 바로 땅 위에서 가장 높은

왕을 축복했다는 것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그 일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히브리서 7장 6~7 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어떤 자가 복을 빌 수가 있죠.

제가 여러분들에게 늘 언급하는 말씀인데요. 복을 비는 것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6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빎을 받느니라

 

레위의 족보에 들지도 않는 멜기세덱 영원한 반차를 가지신 분이죠.

아브라함에게서 십에 일조를 취하였고 약속을 받은 거를 축복하였습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다는 사실은 그가 아브라함보다도 더 위대하다 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보다도 더 위대한 복을 비는 자 아브라함을 위해서 멜기세덱  대제사장이

살렘 왕이 의의 왕이 복을 빌었다 라는 것은 아브라함보다도 말할 수 없이 높고 말할 수 없이 위대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그 다음 말씀 7절입니다.

 

히브리서 7장 7절 두 말할 필요 없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서 축복을 받습니다.

아랫사람은 누구죠 아랫사람은 그보다 못한 사람 덜한 사람 열등한 사람

그러면  나은 사람은  그보다 더 높은 사람 우월한 사람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복을 빌어 줄 수 있나요. 그 어린아이는 아직도 변화되기 직전에 있는 유약한 자이기 때문에 성숙한 장년의 사람이나 할아버지들한테 복을 빌어줄 수가 없어요.

장년이나 노인은 성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복을 빌어 줄 수 있지만 그 어린아이들이

장년인 할아버지들한테 절대 복을 빌어 줄 수 없는 것은 변화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성숙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삶의 시간들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경험들이 없기 때문에 복을 결코 빌어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스라엘 야곱이 이 세상의 왕인 바로를 축복하였다는 사실은

바로 왕보다 훨씬 월등하며 훨씬 높은 사람이라는 바로 그러한 것을 간접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애굽에 도착하자마자 바로에게 가서 바로를 위해서 기도한 후에 모든 사람들이 기도한 것과 마찬가지죠

그리고 또 바로 앞을 떠날 때도 그를 다시 두 번째로 축복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제가 간혹 가다 하늘 이슬에 대해서 얘기를 한 것을 거억을 하시는지요

하늘 이슬 기도를 할 때 보면은 여러분 이 복에 대해서 얘기할 때 꼭 하늘 이슬을 얘기하고 있는데

이것이 복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제가 하늘 이슬을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하늘 이슬이다 라는 얘기를 여러분들에게 합니다.

 

이 구약 성경에 보면은 계속 하늘 이슬에 대한 그 믿음의 조상들이 자기의 아들이나 후손들에게 하늘 이슬에 대한

축복의 말씀을 전할 때는 신령한 하나님의 그 충만한 생명의 복을 전달해줌에 있어서 반드시 하늘 이슬을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어요. 어디든지 그렇습니다. 하늘 이슬이 뭘까요.

창세기 27장28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28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곡식과 포도주를 주기를 바란다는 얘기가 세 번째예요.

땅을 기름지게 해달라는 것은 두 번째입니다.

하늘에서 이슬을 내려 달라는 말씀이 첫 번째예요.

여러분 하늘 이슬에 대한 말씀을 39절에도 또 기록되어 있는데 창세기 27장 39절에도 한번 볼까요.

 

39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것이며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거주할 곳은 땅이 기름지고 위로부터 하늘에서 이슬이 내리는 곳이 될 것이다.

 

내가 거주하는 곳 가나안 땅이죠. 젖과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아주 좋은 땅입니다.

이 좋은 땅은 제가 항상 그리스도의 임재를 나타내고 예표하고 상징하고 있다고 했죠.

바로 이 가나안 땅이 그리스도의 임재를 가리키는 이 땅이 하늘 이슬이 내리는 곳이 될 것이다.

그냥 하늘 이슬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출애굽기 16장 13절에도 하늘에서 만나가 새벽에 이른 아침에 깜깜한

가장 온도가 낮은 그 순간에 사람들이 피곤하여 잠자리에 있는 그 시점에 만나를 떨어뜨리는데

이슬과 함께 만나를 내려주신다.

 

그래서 아침에는 출애굽기 16장 13절에

13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더니

14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세미한 것이 있는지라

15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아침에 이슬이 진 사면에 덮여져 있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임재는 반드시 아침 이슬과 함께 내리게 됩니다.

그럼 아침 이슬이라는 것이 뭘까요. 제가 이 성경 말씀한 수십 개를 이렇게 요약을 해서 기록해 놓은 것이 있는데요.

 

예를 들자면 여러분들 사사 기드온이 하나님께 기도를 할 때 이슬이 양털에만 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 표적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용사로 만들어줬다는 것을 제가 신뢰하겠습니다 라고

사사기 6장 37절에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37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는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입니다 라고 26장 이사야서 26장 19절에 또 말씀하고 있고요

19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

 

또 신명기 아까 제가 믿음의 사람 가운데서 이삭 얘기만 했었는데

33장 12절부터 이 말씀을 여러분 기억해 놓으시면 참 좋습니다.

이 말씀이 모세가 축복하는 장면인데요 베냐민에 대한 얘기도 12절에 나오고요

13절에 요셉을 두고서 그 야곱이 이렇게 복을 비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2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맟도록 보호하시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로다

13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컨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 저장한 물과

14태양이 결실케 하는 보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보물과

15 옛산의 상품물과 영원한 작은 산의 보물과 16땅의 보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의 은혜로 인하여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찌로다

그가 요셉을 두고서 말하였습니다.

 

그의 땅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바라니 지금 제가 복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이 복에 대한 의미를 잘 이해하고 깨닫고 여러분들이 복을 나누어주는 성숙한 자가 되는 것을 하나님이 바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지읍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합시다

이 땅에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는 그 일이 우리가 야곱처럼 복을 주는 자 그 복을 상대방에게 전달해 주고

복을 빌어 주고 복의 말씀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충만한 넘쳐 흐르는 그 복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준다 라는 것은

성숙한 자가 아니면 절대 발생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말년에 창세기 47장에 얘기했던 그 복을 빌어주는 말씀을 모세가 다시 한 번  언급을 하는데요.

그의 땅이 여호와께 복받기를 바라니 하면서 복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이 하늘에 가장 좋은 것인 이슬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이슬이 무슨 말씀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이슬이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임재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함께 반드시 만나가 무엇과 함께 온다고요

바로 그리스도께서 베풀어주신 그 생명의 양식은 말씀으로 내려온다 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쭉 여러분들에게 언급했는데 신명기 32장 워낙 중요하니까 제가 이것을 한번 이렇게 더듬고 간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32장 2절에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이 말씀은 여러분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나의 가르침은 비처럼 내리나니 나의 말은 이슬처럼 맺치며 여러분 다시 한 번요 나의 가르침은 비처럼 내리나니

하나님의 말씀이 비라고 얘기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제가 항상 임 한다고 그랬죠

성령님의 역사 또한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고서는 임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임재하는 그 영은 거의가 잘못된 영일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반드시 거룩한 영이신 성령님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함께 이렇게 임하십니다.

그래서 신명기 32장 2절에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여러분들 꼭 기억하고 이렇게 넘어가야 됩니다.

창세기 12장 2절에 하나님은 복의 근원으로서 내가 너에게 복을 주며 라고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축복의 근원 되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제

어느 정도 이렇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복을 빌어주는 자가 높다는 것이고 복을 비는 그 상대방에 의해서 받는 자는 수동적인

사람  낮은 자 열등한 사람 이라는 것을 아실수가 있습니다

 

열등한 사람이 아무리 권세가 있고 높은 왕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높은 권세와 지위와 높은 명예와 부가 있을지라도

그 사람은 복을 빌어주는 자보다는 낮은 상태에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충만한 생명을 소유한 자 이기 때문에 이가 낫다는 것이 어떤 대상과 비교하는

상태에서 발생되어진 일이 아닙니다.

 

축복은 하나님의 그 넘쳐 흐르는 생명의 충만함을 받은 자들만이 흘러서 넘쳐 나오는 것을 전달해 주는 것이

바로 변화되어서 변화라는 것은 여러분 자라고 성장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변화되어 자라고 성장하여서 완전히 온전히 성숙된 자만이 그 생명의 넘쳐 흐른 것을 통해서 그 생명 안에서

충만한 흐름을 가진 자가 곧 성숙한 사람을 통해서 남들에게 부어서 공급해 주는 것이 바로 복을 빌어주는 행동입니다.

 

복을 빌어준다 라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가 생명의 영으로서 충만히 내 안에 계시면 임하시면

거주하시면 내 안에 오시면 그 생명의 영으로 오신 하나님이 너무나 충만하기 때문에 넘쳐 흐르는 그것을 축복해 주는

그 축복의 잔여물로 주는 것이 그게 바로 신약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역사가 예수님께서 다섯 개 보리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자신이 생명의 양식이 되어 제공해주고 공급해 준다 라는 의미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으로 가득차 계신 분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왕들을 이웃들을 내 가족들을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곧 내 안에 살아 계신 이 생명의 영인 그리스도로 충만이 넘치고 흘러서  생명의 차고 넘친 것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축복을 베풀어주는 데 있어서 너무 미약하고 연약하며 결핍이 되고 부족하여 모자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충만한 생명의 영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하여 성숙되어진 나의 생명의 영으로 그리스도의 말씀과

하나된  그 생명으로 흘러넘친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복을 빌어준다 라는 의미입니다.

 

창세기47장에는 야곱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지만 실제적으로 성숙한 이스라엘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성숙한 이스라엘은 이 속이고 탈취하고 빼앗고 했던 그 자가 벧엘의 꿈을 통해서 밧단아람 에서 라반 삼촌으로부터

아내들로부터 거기에 라반의 아들들로부터 여러 가지 삶의 애환과 시련과 문제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친히 다루심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변화돼야 되기 때문에 그 다루심을 받아가지고 쪼개지고 잘라지고 제거되고 누르고 압축하여서 어느 날

그가 변화하기 시작하는 부분이 바로 얍복강가에서의 환도뼈를 치시는 사건입니다.

뼈를 쳐야 뼈에서 새로운 뼈가 생성이 되어서 새로운 살이 붙고 새로운 살을 통해서 근육이 붙고 근육이 붙어서 성장하여서

성숙한 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바로 그 얍복강가에서 환도뼈를 치는 사건은 야곱의 새로운 변화 성숙하기 위한 새로운

첫 단계 변화의 시작이 바로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이신 영원한 사랑, 변함이 없는 사랑, 다함이 없는 사랑,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랑, 그 사랑을 맛보게 한자를 참으로 굴복 시키는 사랑,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어서라도 야곱의 생명을 살리고픈 아버지의 사랑으로 야곱을 얍복강가에서 마주한 것입니다. 그곳에서 시작된 그가 많은 시련과 애환을 지났죠

얼마나 많은 애환을 지납니까 모든 것을 그때부터 뺏기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그전에는 계속 탈취하고 소유하고 계략을 이용해서 지혜를 펼쳐서 얻고 소유하고 심지어는 아내까지도 얻고

심지어는 라반의 재산까지도 자기가 소유하게 되고 안 가진 것 없이 라반 삼촌으로부터 밧단아람에서 떠나올 때는

너무나 많은 소유를 가지고 나왔지만 그 일정한 시점 이후부터 얍복강가에서 그 힘줄이 끊어진 그 장애자가 되는

그 이후부터는 계속적으로 이제 뻬앗기는 삶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계속 탈취하고 소유하고 가지게 된 것이 너무나 꽉 차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들어가서

역사할 부분이 없어요. 그가 깨끗해지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고통을 주어서 고통을 가하면

가할수록 그 야곱 안에 있었던 천연적인 힘이 제거가 되는 것입니다.

삭제가 되는 것입니다. 빼앗겨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통을 주면 줄수록 그 야곱의 속은 비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비어지는 공간에 그걸 통해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 위하여 계속적인 빼앗기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거기서도 계속 빼앗깁니다.

 

숙곳에서 오두막을 지으면 오두막을 빼앗아버리고

또 세겜 에서 뭔가 이렇게 눌러서 편안한 삶을 살게 되면 일어나 벧엘로 빨리 가서

거기서 제단을 쌓고 나를 만나라 라고 벧엘로 가라고 명령하시고 가지고 있던 장신구들

우상신들 다 내버리게 하고 귀고리까지도 다 내버리게 하고 그렇게 하기까지 안 떠나니까

세겜에서 눌러 앉아 있고 안 떠나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외동 딸 디나를 겁탈당하게 하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가지고 있는  그곳에서 안주하는 삶까지도 빼앗아버려요.

 

그리고 유모 그 성경을 가만히 처음부터 쭉 읽어보면 유모 드보라를 또

가장 소중하고 가장 자기 자신이 의지하고 가장 자기 자신이 왜냐면 어머니 리브가가 이미 죽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어머니 대신한 가장 소중한 존재의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유모 드보라입니다.

가장 소중한 엄마와 같은 선생님과 같은 또는 유모와 같은 또는 심부름꾼과 같은 그 자를 데리고 가십니다.

 

그것뿐인가요 그와 더불어 바로 그냥 곧 이어서 자기의 가장 사랑하는 라헬을 또 취해가십니다.

계속 빼앗깁니다. 계속 그 야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나씩 제거하게 만듭니다

그 안에 그러한 것들이 존재하는 한 그런 소중하게 여기고 자기가 의지하고 의존적이었던 그 천연적인 힘을

육체의 힘을 자꾸 관계하려는 그런 것이 있는 한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그를 성장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를 성숙시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어떤 그런 존재자로 거룩한 자로 성숙한 자로 장성한 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좋은 것들을 다 뺏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창세기 37장에서 보면 야곱에게 가장 봐요 어머니 리브가도 죽었어요.

유모 드보라도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이른 나이에  도 데려가십니다.

그러니 야곱은 그 순간부터 이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게 되는데요.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라 더 이상 하지 말고 이제는 이스라엘이라 하라 라고 그 이름을 그 시점부터 주게 되는데

그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어머니였는데 어머니도 사라지고 라헬이라는 그 아내도 죽어서 장사 지낸 바 되고 그 대신해서 남아있는 존재가 보물 같은 자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기며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존재자가 요셉입니다.

 

그래서 37장에는 요셉마저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빼앗아 갈 때 야곱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통해서 그를 비워나가는 그가 없어져야 그가 사라져야

그가 제거돼야 그 천연적인 힘 육체적인 힘 자아 라고 여기는 그 실체가 사라져야만 생명의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안에 임재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그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사라져서 삭제해서

아무것도 없는 그 안에 하나님 자신을 임재케 하여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드러낼 수 있도록 증거할 수 있도록

간증할 수 있도록 증거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계속 뺏어가는 삶을 여러분 우리의 삶 주위에 뺏어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훈련시키고자 하는 변화되는 과정에서 멈춰져서는 안 됩니다.

거기서 정지되어서는 안 돼요 더 전진해 나가야 되고

더 발전돼야 되고 자라고 성장해야 되는데 그것이 성숙한 단계입니다.

성숙한 단계로 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충만해져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 속에 있는 이 인간적인 육체의 모든 것을 제하여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만약에 그가 변화되어서 성숙하고 성숙한 과정에서 그 생명의 영이신 하나님 곧 그리스도의 임재로

충만히 넘쳐 흘러나지 아니하면 어떤 일이 발생 하냐면 이삭과 같은 일이 발생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그렇게 두들겨 패고 용광로에 들어가게 하고 풀무불에 들어가게 하는 뜨겁게 했다 차갑게 했다

물속에 불속에 왔다 갔다 하게 해서 불순물들 더러운 것들 냄새 나는 것들 인간적인 것들 천연적인 것들

땅에 속한 모든 불순물을 제거해서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어져야 됩니다.

 

여러분 보석이 왜 아름다운가요 불순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이렇게 눈으로 보여지는 어떤 티나 주름이나 불순물과 같은 그런 것들이 있으면

안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계속 야곱을 고통스럽게 관여하시고 간섭한 것입니다.

고통을 주어서까지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는 할렐루야

감사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만들어지지 않아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티끌로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돌이 되고 벧엘에서 야곱이 돌베개를 하고 잤죠.

그가 그 돌배개를 했던 돌로 기둥을 세워서 기름을 붓고 또 나중에는 포도주인 전제물을 붓고 기름을 부었죠

하나님의 집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단련과 얼마나 많은 연단과

얼마나 많은 두드림이 필요한지 몰라요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통과 문제를 주어서 그 가운데서 그가 다 비운 상태에서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위하여 살고 하나님만을 살아나게 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에게 축복 기도를 해주고 아들들에게

기도를 해주고 요셉의 아들들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기도를 해주어서 그 이스라엘이 그냥 하나님 마음이 되어서 표현하고

전달해 줄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가장 기뻐하시고 가장 만족해 하십니다.

 

만약에 그러한 성숙함이 없는 상태가 되면 이삭과 같은 자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통을 주고 시련을 주고 빼앗아가는 일을 계속적으로 이제 그만하면 됐지 라고 하면 또 하나 있고

이건 끝일 거야 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되고 또 그 사건 뒤에 또 하나의 사건이 생기고 끝이 없어요.

그게 야곱의 삶에 가장 크게 나타난 삶에 10가지 그런 일들이 있어요.

 

10가지라는 것은 완전하고도 완전한 인간의 삶의 가운데서 더할 수 없는 그런 숫자

그렇지 않으면 이삭처럼 야곱이 에서 인것처럼 변장하고 축복을 받으려고 했을때 아버지 나에게 축복 해 주세요.

그렇게 했을지라도 목소리는 속일 수 없어요.

아무리 그가 염소털로 가장해서 에서의 육체와 같은 것으로 꾸몄다 할지라도 목소리는 변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두 번째 부분이 첫 번째 부분을 점령하고 지배하는 삶 그것이 천연적인 삶이에요.

그게 육체의 삶입니다. 육체의 삶이 있기 때문에

야곱의 아버지 이삭은 눈이 먼 채로 축복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눈이 멀었으면 영적인 통찰력이라도 있어서 바른 분별력으로 그것을 왜 네가 에서라면 목소리가 왜 야곱의 목소리냐 하고

따져서 분별하여서 바른 기도를 해줬어야 되는데 그는 눈이 먼 채로 영적인 소경이 되어서 그릇된 축복 기도를 해준 거예요.

 

그러나 야곱 보세요. 그 창세기 48장 15절에 이스라엘이 요셉을 축복하며 말하였다.

이런 것이 나오죠 그다음에 오른손은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또 왼손은 므낫세 머리로 이런 얘기가 쭉 나옵니다.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히11:21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여러분 지금 이 야곱은 눈이 잘 안 보이는 상태예요. 창세기 48장 10절에 뭐라고 쓰여 있냐면 이스라엘은 나이가 많았으므로 이스라엘이라고 써 있습니다.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였다.

눈이 어두워서 요셉이 아들들을 가까이 데려가자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입맞춤하고 그들을 끌어안아서 기도를 해줍니다.

요셉을 축복하면서 기도해주고 그다음에 아이들에게 기도해줍니다. 15절 이스라엘이 요셉을 축복하며 말하였다.

 

저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온갖 악에서 저를 구속하신 천사시여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십시오 이 복 비는 얘기가 나와요 여러분 이게 한 분 하나님이 안에 계신

아들과 영과 천부 하나님에 의한 세 분 삼위 일체되시는 삼위 하나님에 대한 이 축복의

기도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놀라운 기도를 하고 있어요.

눈이 안 보이고 육적으로 완전히 감겨진 상태에서도 영적인 영안이 통찰력이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복을 끌어다가 줍니다.

여러분 아까 제가 뭐라고 그랬어요. 제사장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이끌고 간다고 그랬죠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사람을 하나님께 이끌고 가는 것이 제사장인데 이 야곱이 하는 일은 뭐예요.

하나님을 이끌고 사람에게 전달해 준다라는 겁니다 반대 현상이 일어나요.

 

이것이 신약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사람을 하나님께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충만하고 신령한 하늘의 생명의 영이신

하나님을 그 사람에게 인도해서 그 사람에게 전달해 주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들이에요.

 

여러분 여기 15절에 보면 저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다음에 오늘까지 일생 동안 저를 기르신 하나님 목자 여러분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돌아온 탕자 얘기가 있죠.

동전인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얘기인 영의 활동인 성령님에 대한 얘기를 지난 시간에 해드렸는데 잃어버린 양을 찾는

얘기는 아들 하나님에 대한 얘기라면 여인이 동전을 찾는 그 여인은 영이신 성령 하나님에 대한 얘기예요.

 

여기에서 일생 동안 저를 목양하신 하나님 이렇게 야곱의 삶 전체를

직접적으로 간섭하시고 친히 함께 목양하신 하나님은 바로 영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다음에 온갖 악에서 저를 구속하신 천사시요 그 천사가 하나님이세요

여기는 천사라고 했지만 천사가 곧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천사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람의 모습으로 보여졌기 때문에

16절에 보면 온갖 악에서 저를 구속하신 천사시요 그분은 바로 아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바로 여기에 아브라함과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고

야곱이 일생 동안 목양하신 하나님을 통해서 영의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고 온갖 악에서

구속하신 그 야곱의 삶을 전반적으로서 시련과 문제와 죄악 가운데서 구속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보살펴 주신 분이

바로 아들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신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어요.

이 세 분 하나님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중요한 얘기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5장에는 바로 그것을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한 그다음에 동전 하나를 찾기까지 등불을 켜고

빗자루로 쓸며 그렇게 역사하시고 활동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돌아온 탕자를 기쁨으로 영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천부에 대한 얘기를 항상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게 다 복받는 얘기입니다. 복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었었고

우리의 삶을 전체적으로 지배하셔서 관찰하시는 분이 영 하나님이시고 직접적인 삶에서

하나하나 우리를 챙겨주시는 그 분이 아들 하나님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얘기는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제가 시간을 두고서 자세하게 여러분에게 다시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보세요 성숙되지 않으면 충만한 생명의 영 하늘의 신령한 축복이 넘쳐서 흘러나오지 않으면 상대방들에게

축복도 해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통찰력이 생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잘못된 기도를 하여서 이삭처럼

영적으로 소경이 되어서 눈 먼 채 잘못된 축복을 할 수 있어요.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축복 기도를 해주는 그러나 야곱은 요셉과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대한 축복을 할 때 아까

10절에서 읽은 것처럼 나이가 많아서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육체적으로는 아주 나이가

많아 연로하였으나 육신적으로는 정말 말할 수 없이 깜깜하게 두 눈은 흐렸지만 영적인 통찰력은 소생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얼마나 빛이 충만한 자였는지 바른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인간은 오른손은 장자에게 왼손은 차자에게 평상적으로 10명에게 기도를 시킨다면 10명 다 오른손으로는

장자 왼손으로는 둘째 아들 이렇게 기도를 해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당연히 그런 줄 알고 그렇게 기도를 받길 원했으나 바로 이 야곱이 그 자식들을 요셉을 대신해서

축복 기도를 해주는 이 에브라임과 므낫세 에게 기도했을 때 자신의 과거에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것을

그 짧은 시간에 아마 그냥 주마등처럼 싹 지나갔을 거예요.

 

잘못된 기도 아비가 눈이 어두워서 잘못된 기도를 해서 자기가 얼마든지 속일 수가 있었고 자기는 에서 대신에

그 장자권에 대한 축복을 대신 받을 수 있었다 라는 것을 느끼고 얼마나 영적으로 이렇게 충만해졌을까요.

 

영적으로 충만한 생명의 영의 소생으로 말미암아 명확해진 상태에서 이 반대 오른손을 둘째 아들에게 왼손을  첫째 아들인

그 므낫세 에게 주었을 때 요셉이 아니에요. 아버지 잘못됐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죠 지금 오른손을 첫째 아들에게 왼손을 둘째 아들에게 머리에 얹지셔서 축복 기도를 해 주십시오라고 할 때 내가 안다 내가 알아 라고 여기서 얘기를 하고 있어요. 48장 19절에 그러나 그의 아버지 야곱은 거절하며 말하였습니다.

 

나도 안다 아들아 나도 알아 그도 한 백성을 이루고 크게 될 것이야

그러나 그의 동생 에브라임이죠. 그보다 더 크게 되고 그의 씨가 더 많은 민족을 이룰 것이다.

나도 알아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된 이 이스라엘은 곧 야곱은 의도적으로 바로 두 손의 방향을 다르게 정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바로 영이 소생한 상태에서 축복 기도를 해줬던 것입니다.

이삭처럼 그냥 그렇게 사람의 얘기만 듣고 사랑하는 아들 요셉의 말만 듣고 이 사람의 말대로 하지 않고 바로 자기가

성숙되어져서 그 생명력으로 충만히 그 넘쳐 흐르는 영적인 통찰력과 바로 하나님의 그 마음 그대로 전하고자 했을 때

방향을 달리 설정하여서 그렇게 기도를 해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된 것은 그가 변화된 자를 뛰어넘어서 완전히 성숙해졌고 성숙한 정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성숙함이

넘쳐서 살과 뼈가 환도뼈가 내려침을 받는 순간부터 야곱은 쩔뚝거리는 장애 자가 되어서 사람들 앞에 그러한 모습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그는 계속적으로 자라기 시작하고 성장하기 시작해서 살을 이루고 근육을 이루어서 온전한 상태의

형상으로 온전한 형질로 형체로 그가 드러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듭시다 했을 때 이 아담이 범죄하여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형상이 훼손되고 파괴되고 망가지고 완전히 짓밟혀져서 구겨지고 말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그 간섭과 다루심과 하나님이 그렇게 빼앗는 그런 고통스러운 삶의 과정을 통해서 그의 찌그러진 형상이 

펴지고 파괴되었던 것이 온전해지고 그리고 훼손되었던 것이 수선이 되어서 완전히 재창조가 되어서 누구의 일입니까?

 

세 분 하나님에 의해서 한 분 안에 계신 그 아들과 영과 천부 아버지 하나님의 그 실제적인 간섭과 도우심과 은혜 가운데서

그가 성숙하여져서 충만해졌던 것이며 성숙하여지고 충만해지지 않으면 축복의  기도는 더이상 축복의 기도가 될수가 없어요

 

성숙한 자 특별히 충만함을 입은 자 생명의 영으로 흘러넘치는 그러한 삶의 경험과 체험을 가진 야곱과 같은 이스라엘과

같은 그 야곱은 탈취하고 빼앗고 속이는 자 이지만 그 야곱의 이름에서 벗어난 자들 새 이름을 받은 자들 그 말인즉 그 야곱이

빼앗는 자가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이 10번의 그 말할 수 없는 그 태산과 같은 산을 넘었다니까요.

 

그 태산을 넘은 그러한 삶에 개인만 아는 그 체험 그게 새 이름이에요.

새 이름 그건 제가 나중에 설명을 해드릴게요

새 이름에 대해서 야곱과 같은 경험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없이는 우리는 남들을 위해서 축복해 줄 수가 없어요.

 

충만한 생명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통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그렇게 그 하나님이 가지신 것을 그대로 넘쳐 흘러

서 그 생명의 영 안에서 전달해 줄 때 바로 그 전달받은 자는 하나님의 임재 그리스도의 임재를 영의 임재를 그대로

소유 받아 놀라운 하늘의 그 생명의 영을 소유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므낫세 보다도 에브라임을 먼저 그렇게 오른손으로 기도해 주는 일을 통하여 그것이 영적인 분별력과

생명의 영으로 충만한 그와 과거의 아비 이삭이 자기에게 해 줬던 잘못된 기도는 그 하나님의 온전한 복을 전달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분명한 뜻 안에서 분명한 축복 기도를 해준 것이

특별히 요셉의 아들 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온갖 악에서 저를 구속하신 천사시여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십시오

창세기 48장 16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뿐만이 아니에요 바로를 기도하고 또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기도해 준

이스라엘은 바로 49장에 이어서 자신의 열두 아들을 축복하는 일이 어쩌면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나타내서 그대로 축복 기도해 주는 그 기도로 계시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자로

이렇게 통로가 되어서 전달해 주는 그러니까 야곱은 성숙된 자로 변화된 자를 넘어서 초월하여서 성숙된 자가 되고

성숙함이 넘쳐 생명의 영이신 그리스도로 가득 참으로 말미암아 넘쳐 흐르는 것을 통해서 바로 열두 아들들을

축복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열두 아들들에게 기도하고 있는 창세기 49장 말씀은 바로 12지파의 운명과 관련된 예언들에 대한 말씀이에요.

여러분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죽을 때도 아주 탁월한 방식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가 영적인 통찰력이 이렇게 생명의 영으로 충만하기 때문에 유언으로 아들들한테 나를 헷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동굴에 장사해다오 야곱이 이스라엘이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창세기 49장 29절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요.

그리고 자기의 생각과 달리 자기의 가장 사랑하는 라헬 대신에 자기가 좋아하지 않았던 자신이 천연적인

어떤 선택으로 라헬을 선택을 하였지만 하나님의 선택은 레아 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방법에 의해서 레아를 본의 아니게 이렇게 첫날 밤을 치르게 하시고

그리고 아브라함 자기의 조상이 있는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이삭 그리고 자기 자신이

죽게 되면 바로 헷사람 그 땅 마무레앞 막벨라 밭에 동굴에 장사해달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29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30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그리고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다 라고 여기 써 있습니다.

 

31절에 보면 그곳에 아브라함과 그분의 아내 사라가 장사가 되셨고 또 이삭과 그분의 아내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장사되셨다.

그리고 나도 레아를 그곳에서 장사하였다. 나도 여기서 보십시오 31절에 야곱이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다.

성숙한 상태에서 이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다 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축복에 대해서 복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야곱이 처음에 빼앗는 자로 어미 뱃 속에 있을 때부터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올 정도

왜냐하면 먼저 나오기 위해서 생명의 그 장자권에 대한 어떤 영원을 사모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나오려고 애썼으나 하나님은 에서가 가진 그 천연적인 육적인 힘만큼은 야곱에게 주지를 않았습니다.

 

두 가지 다 주는 법이 없어요. 부족한 것을 어떤 이에게는 다른 것으로 대체하게 하고

다른 것이 없는 자에게는 그 대신 이 야곱에게는 육체적인 힘은 없었으나 영리한 생각들

아주 영리한 생각들 그런 것들 나쁘게 쓰면 이게 나쁘게 사용될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을 줬어요.

 

그 대신 에서에게는 야곱이 소유하고 있었던 영리한 생각들은 없었지만 육체적인 힘은 강건했기 때문에 그가 어머니

뱃 속에 있을 때부터 육체적인 힘을 자기가 대신 내세울 수 있는 그 힘을 가지고 먼저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에서가 아닌 야곱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이 선택에 대한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이 복음에 대해서 굉장히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제가 계속적으로 이제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하여튼 야곱이 어미 뱃 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에 의해서 친히 다루심을 받았습니다.

 

친히 다루심을 받았지만 그가 완전히 하나님을 대신해서 드러내 보이고 증거되고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기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고 자기의 방식으로 계획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그런 마음이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들어가서 역사하실 수가 없기 때문에 야곱의 속에 있는 그 잘못된 천연적인 힘과 육체적인 일들과 그의 생각과 계획들 모든 관념들 그런 사고들 방식들 모든 그런 계획들을 다 제거시키기 위해서 밧단 아람에서 20년 또 지나서 그 후에도 몇십 년이라는 세월을 거쳐가지고 계속 용광로 풀무불에 집어넣었다. 빼는 이런 일이 있게 하는 것은 하나님 대신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입니다.

야곱이라는 한사람을 변화시켜서 온전한 하늘의 사람인 이스라엘로 조성시키기 위하여 아버지,어머니,에서형,라반 삼촌까지 그리고 그 아내들과 열두아들들과 유모 드보라의 죽음까지 이모든 야곱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총동원하여 야곱을

새롭게 만드신분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역사 (예수그리스도의 영)인 것입니다.  경륜이 뭡니까 하나님의 꿈이에요.

하나님의 포부 한마디로 경륜이라는 것은 여러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의 포부 하나님의 목표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꿈은 하나님 소원 하나님의 의도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경륜이에요.

 

경륜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대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성경 전체는 그 한마디로 다 말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하나님의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흘러 넘쳐 전달해 주기 위해서는 충만해야

돼요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것이 뭡니까 생명과 빛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의도 있고 거룩도 있고 여러 가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들이 많이 있지만 빛과 생명으로 대변이 될 수 있어요

 

그 빛이 생명이 되어서 나타내줄 때 형상이 드러나고 통치자로서 사람들을 땅 위에서 사람들을 만유를 다스리는 자

통치하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는 이 48장 8절부터 20절까지 말씀을 했는데요.

 

이렇게 바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리고 48장에서 요셉과 요셉의 두 아들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위해서 기도하고

49장에서 자신의 열두 아들들을 위해서 축복해 주고 그리고  49장 마지막에 막벨라 그 동굴에 나를 장사해 달라 라고

유언 했다 라는 것은 축복과 함께 마지막으로 육체는 노세하여 기능이 저하 되었을 지라도 연로하여서 완전히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침상에서 지팡이를 의지한 채로 존재하는 그이지만 그가 그렇게 축복 기도를 하고 그리고

유언을 했다 라는 것은 그 야곱의 생명이 너무나 충만하다는 것을 너무나 변화를 뛰어넘어 하나님에 의해서 친히

다루심을 받고 만져 진 바 되고 빚어진 바 되어서 완전히 하나님이 원하는 자로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이라 불렀고 우리는 바로 그 이스라엘의 영적인 후손이 되어서 그와 같이 생명으로 충만한 자가 되어서 세상을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양식을 공급하는 요셉을 통해서 요셉은 누굽니까 이스라엘의 아들 아닙니까 이스라엘의 아들이 요셉이에요.

요셉이 통치자가 됐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통치자가 됐다는 거예요.

그 요셉과 이스라엘은 하나입니다. 그 하나의 존재 안에서 이스라엘이 요셉을 통해서 바로 생명의 양식을 나눠주고 세상을

다스리는 자가 되기 위한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 목적은 성숙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이 그 안에 충만해졌기 때문인데 하나님의 생명이 충만하게 되는 이 과정을

친히 간섭하시고 역사하신 분이 한 분 하나님 안에 계신 아들 하나님과 영 하나님과 천부 아버지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거예요.

 

지금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똑같은 야곱에게 펼치셨던 그 삶의 간섭들이 우리 삶속에 개인의 삶속에도 역사하셔서

하나의 단체 교회를 이루어서 바로 그러한 교회 생활을 통해서 우리가 성숙되어짐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에게 하늘의

신령한 생명들과 빛과  하늘의 신령한 복들을 마음껏 펼쳐주기를 원한다 라는 것이 바로 복에 대한 얘기인데 제가 이 복에

대한 얘기를 너무나 길기 때문에 계속해서 몇편에 걸쳐서 말씀 드리려 합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고  2부에서  다시 교제의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