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곳에서 세겜으로 다시 벧엘로 2부
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숙곳에서 세겜으로 다시 벧엘로 전편에 이어서 2부 교제의 말씀 시작 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자신이 성전이 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집이 반석이신 그리스도 자신
위에 돌인 우리들 믿는 이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집 곧 하나님의 처소를 만들기 위해서
성전인 하나님의 교회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이 건축되기 위해서는 벧엘로 그를 먼저
일어나서 올라가라고 얘기를 합니다.
일어나서 벧엘로 올라가서 그곳에 거주 하여라 라고 이 세 가지를 당부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참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 곧 하나님을 그 하나님의 집이 대체하고 있는데
참되신 하나님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건축하기 위해서는 더러운 세상적 이고도 세속적인
모든 우상들은 다 버려야 됩니다.
그래서35장 1절부터 한 4절까지 한번 읽어볼까요.
중요한 얘기를 좀 해야 되는데 지금부터 중요한 얘기를 좀 할게요
35:1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에서 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 라 야곱이 그것들 을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하나님의 참 진실하시고 참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집을 만든다 라는 것은 거룩하시고
참되시고 진실되신 하나님을 보여주고 표현하고 나타내주는 똑같은 일이에요.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 그 자체를 표현하고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은 다름 아닌 하나님 그 자신이고 자체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의 집이 하나님이세요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 우상이 있어서도
안 되고요 그래서 우상은 반드시 제거 되어야 되고 더럽고 냄새나고 불순하고 불결하고
더러워진 모든 것이 깨끗하게 돼야 됩니다.
하나님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고 나타내는 그 하나님의 거룩한 집이 조성되기 위해서는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낡은 옷으로 상징된
2절에 보면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너희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목욕하라는 얘기죠
왜 낡은 옷으로 상징된 이 옷을 왜 바꾸라고 했죠.
이건 뭐냐면 옛 사람의 생활 방식대로 우리가 살면 안 된다는 얘기고 이 옷을 바꾸라는
얘기는 옛 사람을 청산하라는 얘기 옛 삶의 그 정신이 있잖아요.
죄악된 속에서 살았던 나의 그러한 죄악된 본성으로 부터 나오는 모든 일생을 모두 다
바꾸라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거스리고 하나님을 부인하게 하는 모든 그 옛 생활
방식을 버리고 새 생활의 방식 곧 세 사람을 입어야 된다라는 얘기예요.
지금 이것이 전편을 혹시 안 보신 분들은 지금 왜 일어나서 벧엘로 올라가라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야곱 스스로가 이것을 하려고 얘기한 것입니다.
창세기 35장 2절부터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이방 신들을 버리고 정결하게 하고 옷을 바꾸고
제단을 쌓고 이방 신상과 귀에 걸고 있던 귀걸이 입니다.
귀걸이는 아주 나쁜 것이에요 굉장히 이게 우상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엘리에셀 이라는 종이 이삭의 아내될 사람 리브가 에게 주었던 것도
귀걸이가 아닌 손 가락지 하고 그리고 코걸이였었지 귀걸이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제가 설명을 드릴게요 전편을 혹시 안 들으신분이 있을까 생각하여
제가 이 얘기를 잠깐 하는데 하나님의 집을 야곱은 만들 준비가 안 돼 있었어요
하나님의 집은 벧엘 에서만 벧엘 이라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신성한 칭호가 있는 그곳에서만
조성이 되고 건축이 되어져야 됩니다.
그런데 야곱은 숙곳과 이 세겜 이라는 곳에 숙곳 에서 한동안 자신의 안위와 안주한 삶을 살다가
세겜 성에 도착해서 그 성 앞에 천막을 치고 있었습니다.
천막은 집이 안 되는 전의 단계예요.
하나님의 집이 되기 위해서는 그 천막이 장막이 돼야 되고 장막이 하나님의 집으로 변화가 되어야 돼요
이 변화되는 삶을 35장에서 볼 수가 있다 라는 얘기예요.
하나님께서 35장 1절에서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디나 사건을 통해서
세겜의 숙곳 이라는 곳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세겜 이라는 곳을 통해서 자신이 그곳에서
성 앞에서 천막을 치고 성 안이 아니라 성 앞입니다.
세상과는 분리된 삶을 살고 있었지만 이는 하나님의 집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디나 사건을 통해서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라고 나타나셔서 말씀을 친히 해주십니다.
그래서 이 야곱은 자기의 하나님의 집을 조성할 수 있는 이 벧엘 이라는 곳에서 하나님이
그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고 나타내 보여지는 그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더러워졌던 불결하게 됐던 부정하게 됐던 정결치 못하였던 모든 우상의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고 말씀을 하신 거예요.
벧엘에 올라가는 목적이 뭡니까? 하나님의 집을 조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한 것이에요 우리들의 지금 신앙생활의 꿈이 뭐예요.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집은 누가 있는 곳이에요. 하나님이 있고 내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있는 곳에 내가 있고 내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셔요
그러면 그곳이 만들어지고 조성되기 위해서 모든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집에 거하여서
살 사람들을 깨끗하게 정결하게 해야 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바로 야곱은 자신의 모든 가족들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그런 말씀을 따라서 이방 신들을 제하고 부정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청결하게
하고 의복을 빨아서 또 목욕을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는 이런 것을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집에 대한 조성하고 건축되어지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야곱 스스로가 이런 일을
선제적으로 스스로 하였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 일을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야곱 스스로가 벧엘에서 하나님의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것이 필요하겠구나 라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정결하게 하는 삶 자신의 더러움과 게으름과 마음가짐 옷차림 행동까지
이런 것을 다 제거하고 하나님 앞에 바른 자로서 그 하나님의 집에 거할 자의 어떤 마음의 상태에
합당한 자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 모두를 그렇게 정결한 자들로 꾸미기 위해서 야곱은 식구들에게
이방 신들을 없애고 정결케 하고 의복들을 바꾸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아까 의복을 바꾸는 것이 뭐라고요
옛 생활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생활 방식을 따르는 새로운 마음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언어 새로운 행동 이것을 제가 체험을 해봐서 압니다.
우리 성령님께서 저에게 하나님의 집을 조성함에 있어 건축함에 있어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 입으로 표출됩니다 말로 언어로 나옵니다.
언어가 행동으로 나오죠 이 마음가짐과 말과 행동을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사람 앞에 바르게 하라고
마음가짐과 옷차림을 이렇게 새롭게 하라고 우리들에게 주의시키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더러워진 옛 생활 방식을 가지고서는 하나님의 집을 우리가 꾸밀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영원한 거룩하시고 정하시고 진실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집을 만들기 위해서
그 하나님의 집 안에는 우리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끗하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이방신들을 버려라 우상들을 버려라 첫 번째로 2장에 보면 너희에게 있는 이방 신들
이방 신상들을 버려라 왜냐하면 이방 신상들을 버리라는 것은 그 라헬이 아버지로부터 가지고 있었던
자기들의 집안에서 신으로 섬겼던 드라빔이라는 그것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1장 34절 한번 우리 읽어볼까요.
34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약대 안장 아래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얻지 못하매
35라헬이 그 아비에게 이르되 마침 경수가 나므로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얻지 못한지라
야곱이 자신의 부인들과 가족들 모두가 라반 삼촌에게서부터 탈출하고 나왔을 때
라헬이 자기 아버지의 것인 드라빔을 훔쳐서 나왔습니다.
그때 당시에 그러한 어떤 우상 신상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집은 정결한 것만 있어야 되는데 정결치 못한 우상에 대한 어떤 잔재들이나
이방 신들에 대한 그런 모든 것들은 흔적조차도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림자조차 있어서는 아니 돼요.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정결하시고 진리이시고 우리가 거하게 될 곳은 물론 우리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집을 위해서 첫째로 제거해야 되는 것이 바로 이방 신들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집에 발걸음을
디디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습관들 그런 관념들 생각들 그런 모든 하나님보다도 더 사랑하는 그것들이
우상이라는 거에요 여러분 이 말씀을 잘 기억하셔야 될 거예요
여러분 삶에 있어서 하나님보다도 혹시 더 귀하게 여기거나 가치 있게 여기거나 사랑하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 귀하게 여기고 가치 있게 여기고 사랑하고 관심을 갖는 그것이 우상입니다.
다른게 우상이 아니에요 요즘에 우상 단지 놓고서 거기 절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어요.
여러분의 돈일 수도 있고요 직장일 수도 있고요 아내 남편 가족 부모 모든 것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집을 위해 없애야 되는 그것이 우리의 우상들입니다.
우상은 하나님의 집에 절대적으로 있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을 표현하고 나타내는 것인데 우상은 하나님과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상을 버리라고
그러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그동안에 배웠던 그런 것들 옛날에 가졌던 직장 지금 가지고 있는 그러한 사업성의 어떤 터전들
여러분의 어떤 지위 어떤 삶의 목적을 위해서 사는 모든 그런 거 여러분들이 하나님보다도
더 추구하는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들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한번 찾아보세요.
하나님께 관심을 쏟고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께 갈망하는 것 대신에 다른 어떤 것이
분명히 한두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게 우상이에요.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여러분 자신일 수도 있어요.
여러분 자신의 부모나 자식이나 돈이나 뭐 이런 건 아닌데 내가 나를 사랑하는 거
사랑 愛 자 내가 나를 관심 두고 나를 집중하고 갈망하고 나를 가꾸려 하고
여러분 이것이 우상일 수 있어요 이런 모든 것이 지나치면 안 됩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좋은데 운동이 지나치면 그게 우상이
될 수가 있다는 얘기 부모, 자녀, 돈 이런 것들도 관심 이상을 쏟으면
그것이 여러분들의 우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나이가 드니까 오십견도 있고 당뇨도 있고 고지혈증 이런 것들 혈압도 있고 이런 질병들이 생겨 납니다
그래서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시간을 조금씩 늘려 가면서 산에 오르는데 결코 2시간 이상을 지나치는 법이 없어요. 왜냐하면 나의 건강을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한 것이지 그런 것으로 말미암아 행복을 얻기 위한 일들이 지나치면 그것이 우상들이 되어서 우상을 그 건강을 도모 한다 라는 그러한 핑계를 대고 변명을 하면서
우상으로 그것이 대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 조심하셔야돼요.
사단은 우리에게 그러한 것들을 계속 주의하고 관심 갖고 소유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너의 장수가 되고 건강이 되고 행복이 되고 유쾌함이 되고 기쁨이 될 것이라고 속삭이면서
우리들을 조금씩 조금씩 우상의 길로 이끌고 위협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쁘고 행복하고 삶의 편의를 주는 모든 것들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마 돈일 것입니다.
돈과 건강 그렇죠 또 가족들 이런 모든 것들이 가장 가까이 하고 있는 그런 것들을 통해서 이 사단이 묘한
속삭임으로 여러분들을 이렇게 은근히 붙잡고 여러분들의 발목을 붙잡고 가장 약한 부분인 아킬레스
부분을 붙잡고 그곳에 발꿈치를 물어버리면은 독성을 가진 사단이기 때문에 조심하셔야 됩니다.
건강하기 위해서 욕심 내는 거 이게 우상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은 좋은데 돈을 버는 것을
욕심내는 거 그게 우상입니다 욕심, 탐욕 그것이 우상 덩어리입니다.
건강해지는 것은 좋으나 건강해지는 것이 도가 지나쳐서 탐욕을 갖고 욕심을 덧붙이게 되면
그것이 우상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결국 우상으로 내가 소유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내가 하나님보다도 오히려 그 건강이라는 욕심이 지나친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바꿔버리는 대체하게 되는 반하는 그러한 일들이 생기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야곱에게는 당시에는 이 드라빔 이라는 우상이 라반 자기 삼촌으로부터
취해진 그 우상이 있었지만 우상이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라헬로 부터 그 드라빔이 취해진바 되었기 때문에
야곱에게도 그것이 전가가 되고 전이가 되어서 그 우상이 야곱의 마음속에 부분적으로 하나의 요소로서
기능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모조리 다 끊어버리라고 하나님께서는 다 이방신을 철저하게 우상들을 버리라고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하고, 기쁘고, 즐겁고, 정말 유쾌하게 사는 모든 삶의 형태가 인간에게는 다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나쳐서 욕심이 되면 안 됩니다. 왜 욕심이 되면 안 되냐면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과
장수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에 대한 욕심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어버릴까 봐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행동이 나올까 봐
그래서 이방신 드라빔 에게 손을 모아 간구하는 것이 뭐죠 욕심입니다.
우리 행복하게 해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자식들 우리 가족 남편 아내 오래 살게 해주세요. 사고 없게 해 주세요.
이거 그 드라빔 에게 비는 이 문제 왜 드라빔에게 빕니까 하나님에게 빌어야죠
이방신들 대신에 하나님께 그것을 우리의 행복과 즐거움이 하나님께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바라봐야 되는데 이방신이 있으면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당신들의 욕심을 그런
소원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일들로 인하여 행복을 추구하고 장수를 원하고 기쁨을 추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버리고 그것이 없는 대신에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행복이고 영원한 기쁨이고 영원한
도피성이고 영원한 건강의 근원이신 장수의 근원이 되시므로 우상을 버리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아닌 우상들을 이방 신들이 어떤 보여지는 모습들 또는 보여지지 않고
취해지는 건강해지고픈 욕심 때문에 추구하는 그런 어떤 보이지 아니하는 그런 우상 덩어리들
그것은 다 자신의 탐욕 때문에 그렇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며 행복 때문에 자기가 건강해야 행복이 있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목표가
자신의 행복이기 때문에 그 행복은 탐욕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 목표와 목적이 바뀌어져야 됩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우리의 목표와 목적이 바뀌어 지지 않으면 우리는 탐욕과 욕심과 도를
지나치는 그런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세겜에서 야곱은 모든 것을 소유했어요.
창세기33장 17~18절에 보면 17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고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18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러 성 앞에 그 장막을 치고
세겜성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 17절에 보면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오두막 초막 숙곳이라 하였다.
우리의 목표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어야 되는데 자기 자신을 위해서 집을
지으면안 된다는 얘기예요.
이게 여러분 가만히 은연 중에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목표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기의 주위에 있는 가족들이나 이웃들이나 가축들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을 위한 목표와 목적이 바꿔지지 않는 이상
여러분들은 숙곳에서 부터 세겜 에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거 여러분 굉장히 깊은 얘기에요 숙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삶으로 바꿔줘야 돼요 세겜 에서 벗어나려면 무사히 도착하였는데 여기 보면
자기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도움과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에 의해서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 수많은 종들
약대들 가축때들 또 4명의 부인들 또 11명의 아들들 이 모든 것을 소유한 그가 모든 것을 자기가
소유하고 있다 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한 세겜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을 하고 그것을 관념과 생각과 그것을 버릴 때 세겜을 떠날 수가 있어요
그래서 디나 사건을 준 거예요 디나 사건을 여러분 잘 생각을 해보세요.
세겜에서 야곱은 모든 것을 소유했지만 그 레위와 시므온 그 11명의 아들들 중에서 특별히
그 레위와 시므온이 그 할례를 핑계로 세겜성에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이고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반하는 그런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야곱은 세겜에서 안전하지 못했고 평안을 얻지 못했습니다.
여기 18절에 보면 세겜 성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라고 해서 모든 것을 소유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디나 사건 때문에 아들들이 그 부족의 모든 사람들을 멸종시키는 이 일로 인하여
평안함과 기쁨과 안전 이 모두를 다 빼앗겨 버렸어요.
여러분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갖지를 못했어요.
이것은 왜 그러냐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했어야 되는데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됐어야하는데 자신을 위해 집을 짓고
가축을 위해 초막을 지었네요 그리고 무사히 도착했는데 그것이 무사히 도착해서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 자기 것인 줄 알았네요 그래서 평안 잃어버린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올라가라 35장 1절 말씀이죠.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거기에 안정과 평안이 있다는 얘기예요.
거기에 기쁨이 있다는 얘기에요 하나님의 집안에만 안전과 평안이 있지 너 지금 디나 사건 때문에
부족들에게 냄새나게 하는 일로 말미암아 너희들을 쳐죽일까 봐
너 지금 걱정되고 무섭고 두렵고 마음속에 근심과 걱정이 이루말할 수 없지
평안이 없지 맞아 벧엘이 야곱 너의 목표가 되지 않는한 숙곳이 너의 목표가 되고 세겜이 너의
삶의 목적이 되는한 너는 평안할 수 없다. 이것을 가르쳐준 거예요.
그다음에 숙곳이 야곱의 삶의 목표가 되면 안 됩니다.
세겜에 모든 것을 소유한 그것들로 인하여 안주하여서 그 성 앞에 천막을 치면 안 됩니다.
창세기 33장 17절 18절 다시한번 읽어 볼까요
야곱은 숙곳으로 여행하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만들더라
그러므로 그곳의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야곱이 밧단 아람으로부터 와서 가나안 땅에
있는 세겜 성읍 살렘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다 장막을 쳤더라
자신을 위해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숙곳이라는 곳이 자신의 삶에 안주를 위한 목표가 되면 안전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세겜이라는 곳에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소유하였다 라고
해서 그것이 세겜이 자신의 삶에 안주의 목적이 되면 안전과 평안이 없습니다.
안전과 평안은 벧엘이 야곱이 가지고 있는 삶의 목표와 목적이 될 때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향해서 갈 때만이 안정과 평안과 기쁨이 도모되어서 병행하게 된다 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집인 벧엘이 목표가 되어야 돼요
그곳이 거룩한 곳이고 그것은 세속적인 것과 분리된 곳이고 성별된 곳입니다.
그곳은 우상도 없고 더러운 옛 생활 방식도 벗어버린 바 되고 몸이 정결해야 되고 마음도 정결해야 되고
모든 것이 깨끗하게 되어진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그곳이 우리들의 삶에 야곱의 삶의 목표와 목적이
되지 않는 이상 잠시 안전하고 평안을 누리는 것 같지만 그 안전함과 평안함은 일시적으로 모래 위에
지어진 집과 같아서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면 흔들리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에
마태복음7: 23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하나님께서는 35장 바로 그 디나 사건 후에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라고 벧엘로 급히
올라가서 안전과 평화를 도모하라고 이 말씀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35:1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창18:19, 창31:19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우리가 우리의 심령 속에 그리스도를 임재하게 하여서 하나님의 거처가 되지 않는 이상
안전과 평안은 영원히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우리의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바로 벧엘 이라는 하나님의 집에서 모든 우상들을버리고
우리들을 정결하게 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얘기하고 있는 것이 뭐예요.
정결하게 하라 그 2절에 보면 너희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 그다음에 이제 모습을 바꾸라는 얘기가 있는데
우리의 전 존재와 마음속에 생각 생활 방식이 바뀌어져야 된다는 겁니다.
바깥으로 드러나기 위해서 깨끗한 모습으로 변화를 가져야 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생활 속에서 이 삶 속에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에 있어서
일상적인 삶에 조그마한 변화만이 아닙니다.
거듭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온전한 전체적인 변화에요.
자신들을 정결케 하라는 것은 전체적인 온전한 변화이지 어떤 부분적인 그러한 변화가 아닙니다.
35장에서 일어나 너 벧엘로 올라가라는 이 말씀에서 야곱은 변화되기 시작해요.
스스로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신 것이지만 2절부터 이방신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옷을 바꾸는 일은 야곱 스스로 행한 일입니다.
여러분 이것에서부터 하나님의 집이 조성된다 라는거
제가 아주 간단하지만 아주 깊은 얘기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전 존재를 온전케 하고 정결케 한다는 것은 우리를 모든 것으로부터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부정하게 된 것으로부터 깨끗해진다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7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러한 약속을 가졌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제가 5년 전에 이 말씀을 읽고 얼마나 이 은혜가 됐던지 제가 크게 기록해서 이 벽에 붙여놓고
날마다 묵상했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벧엘 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집을 뜻하는 말씀인데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에는 더러운 하나님과 반하는 우상들 사이에서는 전혀 하나도 일치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에 계속 이 말씀을 얘기하고 하나님의 성전이 우리들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전이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어떤 부분적인 그러한 더러움으로부터 깨끗함으로 옮겨가는 그런 생활이 아니라
전 존재가 완전히 온전히 바뀌어지는 변화된 전체적인 변화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뭐죠 혼적인 삶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혼이 뭐라 그랬죠 제가 전편에서 생각과 감정과 의지 몸이 혼을 담는 그릇이고 혼은 영을 우리의 하나님과의 접촉 기관인 영을 담는 용기 그릇 그러한 그릇으로 혼이라는 것을 만들어놨는데 혼이 우리들의 자아이고 우리들의 인격이고 나 자신을 살아있는 생명체의 나를 표현하는 것인데 그 표현하는 것이 우리가 표현할 때 생각과 감정과 의지이다.
근데 그것이 깨끗해지지 않으면 정결하게 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라 라고 얘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마찬가지로 하나님 자신이 가졌던
그런 열망을 깨끗하고 정결한 그 열망 하나님이 지금 그런 불순적인 것이 있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에
야곱에게도 그러한 마음을 갈망을 갖게 하여 주셔서 자신들을 정결케 하게 하였다 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보면 33장 17절 18절에서 보면 숙곳에서 삶이 있고 세겜 성 앞에
천막을 치는 삶이 있었지만 아직도 벧엘이라는 곳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갈망하지 않고
집중하지 않고 거기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 성숙되지 않은 야곱의 혼을 보시고 야곱의
성숙되지 않은 그 실체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벧엘로 올라가라는 이 말씀을 지켜 준행할 수 있도록
디나 사건을 허락해 주십니다.
디나 사건을 허락해 주셔서 그 벧엘로 일어나서 올라가라는 얘기를 통해서 순종을 했을 때
야곱은 성숙하지는 않았지만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거예요.
그전에는 숙곳에서 삶이 있었다니까요.
그전에는 세겜에서 눌러 앉는 삶이 있었다니까요.
그러니 하나님이 디나 사건을 허용하셔서 그 엄청난 사건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평생에
마지막에도 그 말씀을 가지고 레위와 시므온에게 축복의 기도를 하는 장면을 통해서
우리는 얼마나 이 야곱이 그 문제 때문에 고통스웠고 얼마나 그것이 마음에 상처를 입고
흔적이 되었는지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아직도 야곱이 하나님 앞에 온전한 하나님의 집으로 성숙되는 일을 조성함에 있어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디나 사건이라는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그를 벧엘로 올라가시게
상황을 환경을 설정해 놓으시고 보내시는 거예요.
그 사건이 없었다면 일어나서 가려고 하는 마음이 없었겠죠.
그리고 벧엘이라는 곳에 가서 이방 신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옷을 바꾸는 그런
일들이 실제적으로 스스로 자의적으로 있었겠어요 없었을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주님께서는 그곳에서부터 시작되고 그곳에서 부터 그러한 변화된 삶을 가졌을 때
35장 10절을 읽어보세요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이름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하십니다.
10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은 야곱이나 내 이름이 더 이상 야곱이라 불리지 아니할 것이오
이스라엘이 내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며 11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다산하고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32장 창세기 32장 27절에 보면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 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브니엘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브니엘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하나님의 왕자라는 전혀 다른 어떤 신비한
삶의 세계로 바꿔주셨어요. 이게 여러분 비밀입니다.
이게 참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이러한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얘기에요
저는 이것을 요즘에 얼마나 경험하고 얼마나 체험하고 있는지 몰라요
야곱이 두 번째 이름에 대한 체험이 있기 전까지는 그렇게 많은 경험이 없었어요.
그러나 실질적으로 야곱이 완전히 변화가 되고 새롭게 되고 새로운 삶으로 변화가
된 것은 바로 이 벧엘 에서의 삶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삶이 너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라고 하면서 이방신들을 버리고 정결하게 하고 옷을 깨끗하게
바꿔입는 이러한 예전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나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 이 삶의
변화를 갖는 이 벧엘이라는 이곳 이곳에서만 이름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이름은 인격입니다.
그 사람 자체입니다.
바로 야곱이라는 이 사람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다시 기억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성도들 주님 안에서 만들어진 이 교회 이 하나하나의 성도들이 완전한 세상을 이기고
변화된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삶을 그리스도 안에 바로 하나님의 집인 이 하나님의 집 안에 조성되어진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런 모든 일들이 벌어진다라는 것을 우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로 말씀하시는 것이 뭐냐면 예전에 얘기했던 엘샤다이 말씀이에요.
창세기35:11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다산하고 번성하라
민족과 민족들의 무리가 내게서 나올 것이며 왕들이 내 허리에서 나오리라
이게 주님이 주님의 집을 만들기 위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살아가시는
이런 일들이 있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정들이 필요해요
벧엘 에서의 꿈을 가졌죠 수많은 역경의 삶을 가졌죠 밧단 아람에서 말할 수 없는 20년이라는
그 7년 7년 14년간 또 6년 동안에 양치기 생활한 20년이라는 20년 이라는 숫자를 기억하세요.
그 생활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기구한 생활을 거쳤습니까
그리고 나서 돌아돌아 숙곳에서 세겜으로 세겜에서 벧엘이라는 곳에 오기까지
그리고 야곱이라는 이름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주시고 그리고 엘샤다이
너에게 나는 모든 것이다 이겁니다.
너에게 있어서 나는 모든 것인데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내가 모든 것을 공급해 줄 수 있다 충족해 줄 수 있다 지급해 줄 수 있다.
35장11절에 나오죠 그러고 나서 사람의 이름이 그전에 바로
10절에 야곱이 이스라엘 이름으로 바뀌는 것을 보여줍니다.
창세기35:10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사람의 존재가 변화되었다 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 시작된겁니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왔을 때 시작된 거지 숙곳 세겜 에서는 그런 이름을 준 적이 없어요.
신성한 칭호를 공급해 준 적이 없어요.
벧엘 이라는 하나님의 집은 모든 것을 버려야
사람이 자기 자신의 육적인 생명 사람의 존재를 버리고 하나님의 것을 조성했을 때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때 그리스도의 임재가 있을 때 야곱의 존재가 이스라엘로 변화된
것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35장 10절 말씀 너의 이름을 더 이상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고 할 것이다.
이거는 전에도 한번 해주신 말씀이에요.
그런데 전에 그 말씀을 주시면 뭐해요 변화가 되지 않았는데
여기서부터 변화되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약속을 합니다.
너희 민족과 여러 민족과 여러 왕이 너의 허리에서 나오고 번성하게 될 것이다.
이 세 가지 약속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공급해 충족해 주시는 지급해 주시는 엘샤다이 하나님이
그분이 엘샤다이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야곱을 변화시키는 분 그분이 자녀를 많이주고 번성하게 해주고 이름도 바꿔주고
하나님의 집을 나타내고 있는 벧엘을 건축하는 재료가될 변화될 사람들을 산출시키기
위해서 이거를 만들어가는 것이 엘샤다이 하나님 이 뒤에 보면 또 계속 나와요
계속 엘벧엘 이라는 것이 또 나옵니다. 거기서 한 차원 넘어서 엘벧엘로 가야 되는데
그것을 내가 설명하려고 지금 이 얘기들을 지금 이게 깔아놓고 있는 겁니다.
이게 한 4편 5편 나가야 그 얘기가 나올 수 있어요.
이 얘기를 이해하지 않으면 그 얘기가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그래서 20년이라는 밧단아람 에서
기나긴 야곱의 삶이 있었지만 가기전에 벧엘에서의 꿈이 먼저 있었죠.
벧엘에서 그 사닥다리 꿈을 통해서 돌베개 하고 있는 그 돌이 사닥다리 꿈 이상을 통해서 놀라운 계시를 받고 그 돌을 세워가지고 기름을 붓고 하나님의 집을 내가 세우겠습니다 라고 이렇게 약속을 했지만
그가 변화되기까지는 밧단아람에서 20년이란 기나긴 세월이 있었지만 아직도 안 됐다니까요.
그게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에요.
죽을 때까지 우리는 변화가 되는 과정 중에 있어요.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안에서 지금 변화되고 있음을 우리가 인정을 해야 됩니다.
누가 우리를 변화시킵니까 자신이 밧단아람에서 스스로 또 리브가와 이삭 아비 앞에서
그 에서를 속이고 하는 야곱 스스로는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밧단아람 이라는 곳에
뚝 떨어뜨려놔서 거기서부터 그를 손을 대고 있는데 그를 다루시고 있는데 그를 잘라내고 있는데
쉽사리 잘라지지 않는 것이 야곱의 품성이에요
.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얘기에요 우리들이 그렇게 끈질겨요.
밤새도록 씨름해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끈질김
우리 인간의 육적인 힘 그 본래적인 힘 그것이 있는 한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을 건축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집인 벧엘을 건축하는 재료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가면서
변화된 사람들을 만들 수 있는 집인 하나님의 집 벧엘로 들어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집이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의 나눔을 위한 목욕탕과 같은 곳이에요.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집 안에서 교제를 갖는 삶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정결하게 하고 커다란 거울 앞에 놓여 있어서 거울이 되어서 우리의 옷 매무새를 단장하고 헝크러진 머리를 빗으로 깨끗하게 빗고 옷매무새를 깨끗이 단장하여서 천국 잔치 신랑 되시는 그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 입장을 해야 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처지에 빠져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삶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정결하게 돼야 됩니다.
하나님의 집인 벧엘을 주의하고 집중하고 생각하고 관심을 가질 때 하나님 안에 있는
신성한 손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통해서 우리를 깨끗게 하시고 정결케 하십니다. 그 약속이에요.
그 세 번째 뭐라고 써 있냐면 옷을 바꿔 입으라고 써져 있어요.
이 옷을 바꿔입으라는 이유는 옛 생활 방식을 다 버리고 옛 생활 방식이 뭐예요.
마음속의 생각들이 얼마나 추하고 냄새나고 더럽고 악합니까
마음속의 생각들이 입으로 표현됩니다.
말의 방식을 바꾸고 말이 행동으로 손으로 발로 나타납니다.
육체적인 정욕적인 이기적인 탐욕적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더러움을 다 갖게 하는 예전의 생활 방식을 다 제거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22·24절부터 나오는데 한번 읽어볼까요.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왜 옛 생활 방식을 없애고 바꾸라고 그러냐면 그게 옛 생활 방식은 육의 힘에서 육체의 힘에서 나온
타락한 인성에 속한 생활이기 때문이에요.
그게 야곱이 가진 것이기 때문에 야곱이 가진 것은 타락한 인성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새 생활 방식 지금 이방 신들을 버리고 정결하게 하고 옷들을 깨끗이 하라 라는 얘기는 새 생활 방식인
바로 이 타락한 인성에 속한 것이 아니라 정결한 인성으로 오신 인자로 오신 그리스도의 새 생활 방식을
따른 것이기 때문에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옛 생활 방식을 버리고 새 생활로 이렇게 바꾸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로 돌이킨다 라는 것은 거듭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피로 인하여 독으로 독소가 된 타락한 인성을 갖게 한 그러한 피를 다 제거하고 새로운 피로
공급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렇게 취해지는 거듭난 다시 태어나는
새 창조를 얘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는 어떤 자들이냐 이런 자들 옛 생활 방식을 버린자들 신성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수혈받아 다시 태어난 새 창조함을 입은 자들 그러나 성도가 아닌 일반 사람들
아담에 속한 자들은 타락한 옛창조 생활 방식을 아직도 버리지 않은 자들이기 때문에
옛 사람 아담에 속한 자들은 타락한 옛 창조에 속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속한 자들은 거듭난 새 창조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거듭나지 아니하면 너 하나님 땅을 들어갈 수가
없다 라고 못 박은 거죠.
타락한 옛 창조에 속한 생활 방식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 새 창조를 우리가 부여받음으로
말미암아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어야 됩니다.
그것을 옛 사람을 버리는 것을 낡은 의복을 바꾸라고 옷을 바꾸라고 해요.
왜요 그 옷은 낡은 옷이기 때문에 낡은 옷을 바꿔라 옛 생활 방식을 벗어라
그걸 옷을 바꾸라니까 진짜 어떤 사람들은 옷을 바꾸는 물론 옷도 바꾸는 게 중요하죠
근데 그것은 옛 아담에게 속한 타락한 옛 창조에 속한 모든 생활 습관들 말,행동, 마음속의 생각들,
표현하는 것들, 그런 육적이고도 경욕적이고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로 인한 새 창조로 거듭난 새 사람을 입는 것은 곧 그것이 그리스도인이고 성도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집 교회를 만드는 일 가운데 하나다 이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순서가 그렇다 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야곱이 벧엘 하나님의 집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이런 세 가지 이방 신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옷을 바꾸는 일이 있었던
그리고 네 번째 4절을 한번 읽어 보세요.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이 귀걸이에 대한 얘기가 이게 많이 나오는데 이 귀걸이는
성경에 귀걸이를 그렇게 나쁘게 얘기하고 있어요.
이 귀걸이에 대해서 의미도 모르고 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죠
이 귀걸이는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데 치장하는 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귀걸이들을 이 이방 신상들과 우상들과 함께 땅에 묻었어요.
이 얘기는 뭐예요. 귀걸이가 우상만큼이나 가증스럽다는 얘기예요.
출애굽기 32장 2절 3절 4절 한번 읽어보세요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야곱은 그들은 그들 전체입니다. 야곱의 식구들 모두예요.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이방 신상과 이방 신상입니다. 우상입니다.
그리고 귀에 걸고 있던 귀걸이들을 야곱에게 건네주었을 때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야곱은
그것을 다 깊이 묻어서 감춰버렸습니다 없애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이 귀걸이를 우상 신상만큼이나 아주 가증스럽고 나쁜 것으로 여겼다 라는 것이에요.
이게 참 여기 무슨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그죠 이상하죠.
우상들이 묻혔을 뿐만 아니라 귀걸이도 묻혔어요
귀걸이들은 자기 자신들을 미화하고 예쁘게 보이고 예쁘게 치장하는 겁니다.
이 얘기는 뭐냐면 귀걸이들이 자기들의 부족한 것 자기들의 수치 자기들의 부정한 냄새
나는 거 이런 것들을 인위적으로 가려놓는 행위가 귀걸이에요.
하나님 앞에 가증스럽습니다 벌거벗은 것을 인위적으로 치장을해서 가려놓는 것은
하나님을 상실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상실했을 때 자신들에게 처해졌던 부끄러운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고 다른 것으로 대체시키고자 하는 우상 같은것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귀걸이들은 자기 자신들을 감추는 행위입니다.
자기 자신들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행위의 일종의 것들이에요.
왜 아름답게 보이려 하죠 아름답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예요.
뭔가 거기를 돋보이게 해서 자기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들을 그 귀걸이를 보게 함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더러운 것들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에요.
이러한 것들은 우상들과 동일하게 처리되었어요
하나님 보시기에 이 귀걸이들은 이 장신구들은 우상들과 똑같으게 하나님은 보고 계시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방신들만큼 가증스럽게 보고 계신 거예요.
이거는 중요합니다.
이 얘기는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이건 하나님의 집과 관계가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집은 있는 그대로 미화되지 않고 감춰지지 않고 그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신 것을 통해서 조성되어지고 건축되어 져야 되는데 귀걸이를 했다 라는 것은
도덕성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과 관계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가증스러운 귀걸이 장식구를 버리게 한 거예요.
도덕성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집과 관계가 있는 것이에요.
아~ 이게 중요합니다.
이 귀걸이 들은 자신들을 바꿔버리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 보여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것을 다른 형태의 것을
대체함으로 말미암아 다르게 보여지게 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집은 그리스도 그 자신이 우리 안에 거해서 그 자신을 통해서 조성되어지고 건축되어져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집은 야곱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에요. 야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하나님의 집은 이스라엘 집이에요.
야곱의 집은 야곱의 이름일 때만 하나가 돼요
그런데 너 이름을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할 때는 이스라엘 전체예요.
하나가 아니에요 이스라엘이 집이 돼야 되기 때문에 야곱에게 너 개인의 국한된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전체 집이 돼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을 이렇게 명령하시지 않았지만
야곱은 이것을 정말 계시의 정신으로 받아들여서 이것을 정말 이 이방신들을 버리고 정결케 하고 옷을 바꾸고 그다음에 귀에 걸고 있는 귀걸이들을 야곱이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 밑에 완전히 감추어서 버려지는 일을하게 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야곱 혼자만 대표로 어떤 제사장 일처럼 혼자 하면 될 텐데
왜 전체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다 끄집어냈죠.
그것은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 야곱 한 사람에게만 제한되고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은 이스라엘 전체의 집이 되어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잘못된 것이 있으면
우리 선교회 봉사자님들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라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그 문제 때문에 하나님의 집이 원활하게 온전하게 조성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합심해서 연합되어 하나가 되고 일체가 돼서 한몸으로 깨끗해지고 정결하고
거룩해지는 삶을 살아야 되기 때문에 이 교제 생활이 하나님의 집 안에서 온전한 교제 생활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우리는 이런 시간들을 할 수 만 있다면 매일 매일 지속적으로 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여러분들이 저에게 전화를 해도 2시간 3시간씩 통화를 해도 저는 한번도 귀찮아 해본적이 없어요
왜냐면 여러분들의 문제가 저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잘 되고 내가 기쁘고 만족하면 그도 기쁘고 만족하고 행복하다는 걸 알아요.
그리고 그가 문제가 있으면 나에게도 그 문제가 이렇게 그 사람만의 문제가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우리는 지체로서 연결되어 있다 라는 하나님의 집이 전체로 조성된 것임을
나는 알기 때문에 한 번도 귀찮아 해보거나 왜 전화했냐고 바쁘다고 거절해 본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개인의 집이 아니라 이 하나님의 교회 생활 하나님의 집이 조성되는 것은
전체가 조성되어서 그 집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완성되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의 문제는
내 문제고 나의 문제는 여러분의 문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위해서 기도하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 혹시 하나님 살펴주세요.
하나님 우리 하나님의 건축을 이룸에 있어서 이러한 부정한 것들이 귀걸이가 혹시 있지
않나요? 혹시 낡은 옷이 있지 않나요? 우리 몸에 냄새가 나고 있지는 않나요.
건강해지려는 이 욕심으로 인하여 우상으로 우리가 취하고 있고 내 자신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는 벧엘로 가야 되고 벧엘 안에 있기 때문에 정결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귀걸이들 우상신들 정결치 못한 것들 낡은 옷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
앞에 정결해지기 위하여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는 삶이 필요합니다.
이방 신들을 버린다 라는 것은 하나님보다도 더 생각하고 주의하고 집중하고 관심 두는
모든 그런 대상들을 다 버릴 것을 의미해요 그게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도 여러분 더 혹시 건강을 더 생각하고 있습니까
건강 중요하죠 저는 건강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몰라요 건강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해요 몸이 건강할 때 혼도 영도 건강하게 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보다도 더 관심을 두고 하나님보다도 더 우선하고 그래서 성경에
나를 저들보다도 더 미워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너를 미워해야 한다 그걸 미워해야 된다라는 말이 가족들을
자녀들을 부모들을 미워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나보다 더 우선하지 않아야 된다 라는 의미지
그걸 미워하라는 얘기가 아니거든요.
미워 하면은 그들과 대적되어서 원수가 되어서 하나님만을 아니요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님 보다도 우선하고 더 생각하고 더 치중하고 거기에 집중하고 중요한 것이 있으면
그것이 하나님을 소외한 채 그들이 부각됨으로 말미암아 우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라는
표현으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지 그들을 미워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님보다도 더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게 여러분들 요즘 세상에서는 재물이고
직업이고 권세고 명예고 학벌이고 자기 부모고 그럴 수 있어요.
다 생각해 보십시오 있어요 자기 자신이 특출할 수가 있어요.
조심하셔야 됩니다.
우리의 이런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의 존재를 완전하게 안과 밖을 깨끗하고 정결하고 정말 거룩하게
조성해야 만이 벧엘 하나님의 집을 우리가 가꿀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35장 5절에 보면은 너희는 너희 가운데 주께 드릴 예물을 취하되
누구나 자원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드릴지니
특히 아들들 가운데 레위와 시므온이 디나가 겁탈 당하는 일로 말미암아
34장을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 일로 말미암아 그 부족에 그 세겜 족속의 사람들을
죽인 일로 말미암아 모든 자 짐승까지도 다 죽여버렸죠.
그렇기 때문에 그 주위에 있는 부족들 족속들 이방 나라들로부터 죽음을 당할까 봐
굉장히 두려워한 것이 야곱입니다.
자기의 아들들이 이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 하에서 허용되어짐으로 말미암아 디나가 겁탈되어지는
사건을 하나님께서 허용하심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야곱 한 사람을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전적인 손길이었습니다.
이걸 누가 알았겠어요. 이것을 지나고 나면 감사하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두렵고 얼마나 공포 스러웠을까요.
그런데 그들이 원수들이 오히려 방금 읽은 것처럼 아무도 하나님께서 내리신 공포에
휩싸여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야곱의 아들들을 뒤쫓지 못하였다.
이 얘기는 뭐예요 왜 이런 일이 벌어졌어요.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게 됐죠.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 그곳에 거주하여라 라는 그 말씀을 지키고 준행하기 위해서 모든
일들을 스스로 하나님이 명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하고 의복을 버리고 이 귀걸이를 버리는 이 일들은
이 야곱이 전 가족들 모든 사람들에게 다 명한 사건이에요.
이랬을 때 원수들이 하나님의 집을 조성하기 위해서 그 일의 발걸음을 시작한 자들을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을 두려워할까요.
하나님의 사람들을 어떨 때 두려움을 느끼고 함부로 대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집을 조성하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조성하기 위해서 이러한 삶의 방식을 바꾸고 우상들을 버리고 정결케 하고 의복을
버리는 이러한 일을 할 때 원수들이 사단이 뱀과 전갈들이 전갈들은 귀신을 나타내고 뱀은
사단의 악한 영들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 사단과 악한 영들과 귀신들이 두려움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세상이 함부로 우리를 어찌하지 못하죠.
이게 방법이에요 다른 방법으로 원수들을 세상 사람들을 어떻게 두렵게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집을 조성하기 위하여 건축하기 위하여 이방신들 세상에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하나님보다 더 우선되었던 또 자기를 아름답게 치장하고자 가꾸었던 그 더러운 것들과 잘못된
것은 다 덮어 버리고 예쁘고 비싼 귀걸이를 딱 보이게 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감추어버린
벌거벗은 것을 무화과 나무 잎으로 감춰버린 그리스도가 상실되면 하나님이 상실되면
벌거 벗은 몸 그대로 드러나야 됩니다. 드러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금 찾아서 조성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자기를 아름답게 보이려고 치장 할 려는 아름답게 보여 지게 하는 그런 장신구들
귀걸이들 버리고 목욕을 하고 의복들을 바꿀 때 마귀와 사단의 영들이 역사하지 못하고
아무리 세상 유혹과 죄의 충동이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지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공포심을 느끼고 스스로 쫓아오지 못해요.
이게 얼마나 신나는 얘기인지 몰라요 하나님께서 그 주변 사람들을
내리신 그 공포에 의하여 그들이 공포에 휩싸여서 아무도 한 사람도 쫓아오지 않잖아요
야~ 우리들은 마귀와 싸울 필요가 전혀 없어요 우리들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해서 우리가 모든 하나님이 우리에게 친히 말씀해 주지 않아도
그러한 이방신들을 버리고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고 귀걸이들을 미화시키는 그런 것들을 버리는
이 정결케 하는 삶을 새 생활 방식 그리스도로 인하여 발생되어질 그 거듭나는 새 창조의 삶을 소유하기
위해서 그러한 삶의 과정이 있을 때 마귀가 역사하지 않고 마귀는 악한 영들 원수는 우리를 두려워하고
우리는 당연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쫓아오지 않은 걸로 말미암아 이거는 싸우지 않고도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하셔야 돼요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어둠의 영에 사로잡힌 자가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될수있습니다
그런 자가 이 나라의 대통령 권한을 잡게 되면 절대 안되요
정말 하나님의 정신을 과연 받은 자들인가 여러분들 잘 살펴 보시고 투표에 임해야 합니다
아~ 정말 이방신들을 버리지 않는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통치되는 나라는 하나님의
집을 제대로 온전히 가꿀 수가 없기 때문에 이 문제만큼은 기도하기를 좀 부탁을 좀 드립니다.
우리가 이방신들을 버리지 않고 정결케 하지 않고 의복들을 바꾸지 않고 귀걸이를 하고
있는 한 우리들에게는 이 뱀들과 전갈들 이런 것들이 우리 주위에 산발적으로 다가와서 우리의
아킬레스 뒷발꿈치를 물어서 우리를 죄의 독소라는 것을 퍼뜨리게 할 것입니다.
창세기 35장 5절 말씀은 참 신나는 말씀인데요.
하나님께서 그 주변 성 사람들을 공포를 이렇게 주셔서 하나님께서 내리신 그 공포에
휩싸여 아무도 야곱의 가족들 야곱의 아들들이라고 써 있죠 야곱의 아들들을 뒤쫓지 못하였다.
순조롭게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가게 함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디나 사건을 통해서 그 부족 주변에 있는 부족의 사람들 이웃 나라들 주변에 성 사람들이죠.
주변에 성 사람들이 누구도 사단의 정신을 소유 받아서 그들을 이 해코지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들을 뒤쫓지 못하였다 라는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은 순조롭게 하나님의 집으로 그들을 올라가게 하셨는데
그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집을 조성하기 위해서 그 새로운 신성한 생명의 피이신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듭나는 새 생활의 방식을 따랐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뱀들도 전갈들도 역사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벧엘로 무사히 올라갈 수가 있었다.
야곱은 자기와 함께한 모든 사람과 더불어 가나안땅 루스 벧엘 루스가 과거의 옛 이름입니다.
벧엘에 이르렀다.
거기서 야곱은 하나님이 그 벧엘에서 그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라고 말씀하시고 자기가 행한
그리스도의 신성한 피로 거듭나는 삶의 새 생활 방식을 따르기 위해서 몸과 마음과 행동의 일치를
가지고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부정하고 냄새나고 더러운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보였을 때
창세기35장 7절 한번 읽어보세요. 여기에 진짜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35:7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 벧엘이라 불렀으니 그가 그의 형 에서를
피하여 도주하였을 때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단을 세웠다고 그랬어요.
제단은 뭐죠 헌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세겜에서도 제단을 세웠어요.
여러분 잘 보세요. 창세기 33장 20절을 한번 보세요.
거기서도 제단을 쌓았다니까요.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이스라엘의 집이에요. 그건 자신의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이 아닌 자기 자신이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해서
자기 임의로 스스로 하나님의 이름을 그렇게 부른 것이에요.
그런데 35장 7절은 정말 하나님의 신성한 칭호를 계시의 정신을 받고 부릅니다.
제단을 쌓고 불러요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 벧엘이라 불렀으니
그가 그의 형의 얼굴을 피하여 도주했을 때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3장 20절에서 야곱이 그곳에서 어디서요? 세겜 성 이에요
이건 벧엘에 오기 전에 얘기예요 세겜 성 그 성 앞에 천막을 치고 제단을 세웠는데
자기 이름을 하나님의 신성한 칭호를 엘엘로헤이스라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을
제단을 세우고 이름을 취했어요.
이거는 야곱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에요 이 헌신은
제단은 뭐에요 헌신이에요 드리는 거에요.
드리는 것인데 이 드림 엘엘로헤이스라엘 이라고 하나님의 집이라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엘엘로헤이스라엘은 뜻이 엘도 하나님이고 맨 앞에 있는 엘도 하나님인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하나님이라는 뜻인데 이건 자기 임의로 자기가 헌신하고 하나님께 드림에 있어서 자기에게 자기가
스스로 그렇게 만족한 삶을 세겜 성에서 무사히 도착한 것에 대해서 모든 소유를 다 가지고 왔죠
그것에 대해서 감사해서 자기 임의로 자기 개인적으로 자기의 기쁨과 만족을 어떤 의미에서 자기 만족과
기쁨을 위해서 하나님께 드린 것이에요.
그건 자기 자신을 위해서 드린 거예요.
하나님께서 받으실 리가 없죠.
그러나 지가 지금 35장 7절에서 나오는 것은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 드리고 거기서
신성한 칭호의 엘 벧엘이라는 이름을 다시 한 번 드립니다.
이것은 뭐예요. 하나님의 집을 위한 것이에요 엘 벧엘이라는 뜻이 뭐예요?
아까 33장 20절에도 엘엘로헤이스라엘 앞에도 하나님 뒤에도 하나님이 있어요.
근데 앞에도 뒤에도 하나님의 전적인 돌보심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엘엘로헤이스라엘 이라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헌신을
드렸지만 이 벧엘에서 드린 이 똑같은 엘벧엘 이거는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 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 저는 이것을 말씀을 깨닫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이 말씀이 이런 것이구나 하나님의 집에 안에 있는 또 하나님 벧엘에서의 하나님은 더 이상 잘 보세요
이걸 이해하려면 조금 아까 33장 20절에 세겜에서 무사히 도착해서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을 때 감사하고 고마워서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이름을 칭호를 자기가 불렀어요.
근데 이것은 실제는 그 헌신은 야곱 자기 자신을 위한 헌신이에요
하나님과는 무관해요 하나님의 참 기쁨과 만족을 드리기 위해서는 이 벧엘에서 35장 7절에서 처럼
모두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그리고 모든 것을 다 부정한 것 더러운 것을 다 버리고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자기들을 뒤쫓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보호하셨을 때 진정한 헌신으로 하나님께
드렸는데 이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드린 헌신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을 위한 헌신이에요.
아까 그거는 자기 자신을 위한 헌신이라면 이거는 진짜 하나님의 참 하나님의 집을 위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하나님의 마음의 꿈 마음의 소원 마음의 갈망을
이루기 위해서 그게 뭐예요? 벧엘! 하나님의 집 그리고 앞에 있는 엘엘 벧엘이니까 하나님의 집에 있는
또 하나의 하나님 이거는 뭐냐면 엘 벧엘이라는 뜻은 무슨 뜻이냐면 엘이 앞뒤로 있음으로 말미암아
아까 엘엘로헤이스라엘 그것과 대조했을 때 하나님의 집안의 집 하나님의 집에 있는 또 하나의 하나님이라고 얘기함으로 말미암아 벧엘에서의 이 엘벧엘이라는 하나님은 더 이상 야곱 한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다.
야곱 한 사람을 위한 하나님이었다면 아까 33장 2절에 나온 것처럼 야곱은 그곳 세겜이에요.
제단을 세우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이렇게 얘기했죠.
그런데 엘 벧엘 이라고 한 것은 전체적인 이 야곱이 4명의 부인과 또 11명의 아들들과
또 종들 모든 속해 있는 이 전체적인 무리의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이라는 뜻이에요.
이게 그런 뜻이에요.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 모든 것의 하나님 이게 그런 뜻이에요.
지금 시간 관계상 여기에서 끊고 3편에 이어서 다시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