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2:36/히:12:2/히2:9/계:22:1/히:2:14/승천하신 그리스도의 놀라운 신분 1편
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은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한 계시의 말씀과 사람으로 오신 구주에 대한 계시의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신약 성경을 통하여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될 것은 예수님의 33년 반 동안의
사람으로서의 생활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 특별히 3년 반 동안의 공생애 기간은 매우 중요하다 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3년 반 동안의 공생애 기간은 구속을 위한 죽음 앞에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친히 자신을 드리는 일을
직간접적으로 계시해 주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그렇습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성육신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일을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것처럼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류를 위한 특별히 하나님께 택함을 받고 주님을 따르는 믿는
자들을 위하여 구속을 위한 죽음 앞에 친히 자신을 내어 놓으시는 장면을 직,간접적으로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사람의 형태와 사람의 모양을 입고 성육신 하신 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 만들어졌고 창조되어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와 그리고 3년 반 동안의 공생애의 생활의 삶과 그리고 십자가 위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하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희년의 삶을 맛보게 하기 위한 이런 일들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하시고 제3일 날에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친히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장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성육신과 그분의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과 그리고 그 희년을 위하여 구주께서 친히
제 3일에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생명주는 영으로서 변화되고 변형되어진 영화롭게 되어진 그 인성을 신성 안에 하나로
부합되어지는 자신의 삶을 통하여 구주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자신이 그러한 놀라운 신분을 소유한 자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50일째 된 오순절 날에 구주께서 생명주는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으로 믿는 자들에게 임재하시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그리고 제3일 후에 부활하심과 부활하시고 난 40일 후에 승천하신 모습을 500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문도들에게 보여주시고 그리고 전체적으로 부활하신 후에 50일째 된 날 바로 이 승천하신 구주께서는 놀라운 신분을
하나님께 부여 받으시고 영화롭게 되어진 영의 몸을 지니신 보혜사 성령님으로 믿는 자들 안으로 들어가시는 장면을 우리가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1 〔성령이 임하시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2:3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지금까지 여러분들과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는데요.
그럼 부활하신 뒤에 40일째 되는 날 승천하신 그 승천하신 사람으로오신 구주의 승천은 무엇을 의미하고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있는가를 우리가 교제를 통해서 아는 일은 얼마나 주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을 당하시고 제3일에 부활하신 일에 대해서는 그동안
교제를 통하여 몇 번에 걸쳐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승천은 성육신 하셔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 십자가 사건보다는 아주 소홀히 여겨지고
간과되어지는 정도로 그분의 승천에 대해서는 많은 교제를 나누고 있지 않는 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가 처한 안타까운
현실임을 말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승천보다는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좀 더 많이 교제를 나누게 되고 주님의 부활에 대한 것보다는 주님의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는 그 죽으심에 대해서 많은 교제의 말씀을 나누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아는 일에 있어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승천하신 그 주님의 승천에 관한 묘사를 우리가 자세하게
알지 않으면 그 생명주는 영과 부합되어 하나 되는 삶을 사는 일에 있어서 무언가 부족한 것을 우리가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어떤 종류의 신분으로 승천하신 분이신지를 안다면 정말 큰 놀라움으로 기쁨 가운데
주님을 찬양하며 기뻐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승천하신 분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정말 놀라운 자질을 가지시고 놀라운 종류의 신분을 소유하시고 승천하셔서 주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합당하게 인정받고 놀라운 권위를 바로 영광과 면류관을 쓰시고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에 의하여 하나님의
행정을 위하여 보좌에 앉으셔서 만유를 소유하시는 주님으로서 하나님의 위임을 직접적으로 아버지 하나님 대신 친히
수행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우리가 자세히 이 말씀을 통해서 알 때 우리는 놀라움과 기쁨과 정말 구주에 대한
아~ 우리가 흐릿하게 알았던 그리스도를 확연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주님과 아주 놀라운 친분의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33년 반 동안에 인생의 삶을 사시고 특별히 3년 반 동안의 공생애의 삶을 사신 후에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제3일날에 부활하시고 난 후에 제 40일째 되는 날 승천하심을 통하여 그 승천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오늘 이 교제의 말씀을 통해서 자세하게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으로오신 구주의 승천은 어떤 의미에서 승천하시는 것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것은 바로 놀라운 신분을 소유하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만유를 소유하시는 주님으로서 하나님의
위임을 친히 직접적으로 수행하시는 그리스도로서 승천하셨는데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그 놀라운 신분으로 승천하셨다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승천하신 것은 하나님으로서 승천하시고 또한 사람의 인성을 가지고 오신 사람의 삶을
사신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승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자세하게 우리가 곱씹어 보면 하나님과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승천하셨다는 것을 통해서 하늘과 땅 사이보다 큰 간격을 가진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로서 승천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으로서 승천하신 것뿐입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승천하신 것은 또한 창조주와 피조물로서 승천 하신 것입니다.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로 승천하셨는데 그분은 하나님과 사람으로서 승천하셨을 뿐만 아니라
창조주께서 친히 지으시고 만드신 피조물로서 승천하신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로 승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승천하신 것이 하나님과 사람으로서 승천하신 것입니까? 예 맞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로서 승천하셨습니까? 예 맞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는 인류의 죄를
제거하시고 사하시는 구속주로서 승천하셨고 또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로서 구주로서 승천하신
이런 놀라운 신분을 가지셨다 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 모든 것 하나님이자 사람으로서 승천하셨고 창조주이자 피조물로서 승천하셨고 또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구속주와
죄인을 위한 구속주로서 또한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주로서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부활을 통하여 부활 안에서 바로 육의
몸을 지니신 그분께서 생명주는 영으로 영화롭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모든 우주적인 행정을 친히 집행하는
그러한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냥 단순하게 어떤 한 가지만을 가지고 그 한 가지만의 신분을 소유하고 승천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서 승천하시고
또한 사람으로서 승천하시고, 창조주로서 승천하시고 피조물로서 승천하시고 그 구속주로서 승천하시고 구주로서 승천하셔서 생명주는 영으로서 친히 하나님의 전 우주적인 모든 행정을 집행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수행하기 위하여
창조와 그리고 성육신과 인생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과 부활의 전 과정을 통과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님께서 사람의 몸을 빌어서 인성의 몸을 가지고 오셔서 또한 성령님으로 잉태하셔서 신성을 지니시고
사람의 인성을 지니신 사람의 본성을 가지신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 그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러한
창조하신 하나님으로서 그리고 세상의 사람으로 오신 성육신 하신 사람으로서, 그리고 인생의 33년 반 동안의 삶을 사신
분으로서 그리고 십자가 위에 못 박혀 죽으시는 그런 체험과 경험을 친히 하신 분으로서 그리고 3일 후에 부활의 과정을
정말 이런 모든 복잡한 과정을 통과하심으로 말미암아 바로 승천하신 구주께서는 만유를 소유하시는 주로서 하나님의
위임을 수행하시는 그리스도로서 취임식을 하신 것이 승천하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예 그러므로 승천은 무엇입니까? 아버지께로부여받은 하늘에 속한 모든 직무를 행하기 위하여 취임식을 갖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40일째 되는 날에 500의 문도 앞에서 하늘로 이끌림 받아 아버지께로 승천하시는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통령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고 해서 바로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그날에 행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일정 기간을 두고 대통령으로서 합당하고 국민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취임식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그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에 속한 모든 직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취임식인 것입니다.
대통령의 취임식을 통하여 그 시간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직무를 행할 수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곧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승천하심을 통하여 바로 하늘에 속한 가장 존귀한 분으로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셔서 하나님의 행정을 위하여
친히 하나님 우편이라는 그 보좌에 앉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만유를 소유하시는
분으로서 하나님의 모든 위임들과 공무들을 수행하시는 그리스도로서 본격적으로 직무를 행할 수 있는 것이 승천인 것입니다.
승천은 바로 하늘의 대통령으로서 모든 아버지 하나님께 속한 그 모든 직무를 행하게 하기 위한 취임식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인 것입니다. 그 승천은 성육신 하신 사건과 그리고 33년 반 동안의 인생의 생활을 하신 삶과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친히 못 박혀 고통당하면서 죽으시는 것과 깜깜함과 어둠 가운데 가두어지는 그러한 무덤 가운데 장사가
되어지는 과정을 거치신후에 제3일날 부활의 과정을 통과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놀라운 신분을 소유하여서
취임식인 승천하심을 통하여 하늘 아버지에 속한 그러한 모든 공무와 직무를 행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승천은 바로 참 구주가 되시기 위한 곧 참 그리스도가 되시기 위한 아버지 하나님께 속한 모든 직무를 행하기 위한 취임식과
같은 것이 승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승천에 대해서 우리가 올바로 알게 되면 그분께서 부활하신 이 일이 얼마나 위대한 사건인지 우리가 경악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에 속한 그 모든 공무와 직무를 행하기 위하여 승천을 하셨는데 이 승천은 곧 하늘 아버지께
부여받은 하늘의 대통령으로서 취임식을 갖는다라는 의미를 갖는 것인데 이것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승천하시고
또한 성육신한 사람으로서 승천하시고 또한 골로새서 1장 15절에 말씀하신 것처럼 이 아들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모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가장 먼저 나신 분이 무슨 뜻이죠? 가장 먼저 나신 분은 모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분은 사람으로 오신 영과 혼과 육을 지니신 바로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피조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하나님으로서 사람으로서 창조주로서 또한 피조물로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셔서 죄를 사해주시는
구속주로서 그리고 인류의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구주로서 바로 부활하심을 통하여 생명주는 영으로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를 내포하고 승천하신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을 통하여 하늘 대통령으로서 취임식을 공개적으로 그 500여 문도 앞에서 갖고 그 모든 하늘에
속한 천사들 앞에서 자신의 그 승천하시는 사건을 내 보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행정을 이제는 집행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승천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인 오른편 보좌에 앉으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2장 9절에 기록한 것처럼 놀라운 신분을 소유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존귀로 관쓰게
되셨다라고 성경은 그래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여러분 이 히브리서 2장 9절에 보면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되셨다고 하셨는데
왜 천사들보다도 주님께서 조금 못하게 되셨죠?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서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 되셨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는 사실 창조주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이유를 먼저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리스도는 영원 안에서 무한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정말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 무소부재 하신 정말 영원무궁하신 하나님께서 시간 안에서 사람의 모양을 입고 사람의
형체로 사람이 되셨을 때 곧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수태되셔서 출생하심을 통하여 사람의 삶을 사심으로 말미암아 제한을
받으셨다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셨을 때 곧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성육신하심을 통하여 사람이 되심으로 제한을 받게
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원안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
제한이 없는 분이십니다. 제한을 받지 아니하시는 분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과 공간 안에서 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없는 제한적인 육체를 가진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지 못하는 제한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그러한 제한을 받으시는 그 육의 몸을 가진 그분께서 변형되어진 영의 몸을 가지심으로 말미암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그러한 생명주는 영이 되어 주시기 위하여 2천년전 그 어느 날 바로 골고다 언덕위 십자가
위로 가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죽음의 고난을 친히 체험하심으로 말미암아 친히 죽음과 맞닥뜨려서 죽음 안으로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친히 깨뜨리시고 그 죽음을 무효화시킴으로 말미암아 죄를 무력화시키고 죽음을 무효화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하나님이신 창조주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성육신 하신 사람이 되시므로 제한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되시는
일이 필연적으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한적으로 일시적으로 그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무소부재하신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일시적으로 자유를
잠시 잃으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유를 잃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무소부재하시고 영원 안에서 무한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정말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고 모든 것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람이 되시어서 33년 반 동안에 생활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일시적으로 제한받는 자유를 잃으시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 33년 반 동안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기간에는 오히려 천사보다도
조금 못하게 되셨다는 말씀이 히브리서 2장 9절 중반절의 말씀입니다.
그분은 죽음의 고난을 받으시려고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 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33년 반 동안에 인생의 삶을 사신 다음에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친히 경험하시고 제3일날에 부활하심을
통하여 그분은 천사보다도 잠시 못하게 되신 것을 완전하고도 온전하게 벗어버리시고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제는 모든 천사보다도 월등하게 훨씬 모든 천사들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신
분으로서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시기 전에 사람의 몸을 지니신 그분은 일시적으로 자유를 잃으셔서 제한적인 삶을 사셨기 때문에 천사들보다도
조금 못하게 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을 입으신 그 사람이신 예수님께서 죽음을 당하시고 제 3일 만에 부활하심을
통하여 천사들보다도 뛰어나신 분이 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과 제3일 후에 발생되어진 부활의 사건은 모든 인류를 위해서 일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으로 인하여 타락되어진 모든 생명체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일이 십자가 위에서의 구속하심과 제3일 후에 부활하신 사건을 통해서 성취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7장 13절부터 23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7:13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7:14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
곧 각양의 새가 그 종류대로
7:15 무릇 기식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7:16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 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7:17 홍수가 땅에 사십일을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 올랐고
7:18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하매 방주가 물위에 떠 다녔으며
7:19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7:20 물이 불어서 십 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7:21 땅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7:22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7:23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그렇습니다. 주님의 그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과 제3일 후에 부활하심과 40일 후에 승천하신 일들은 이런 주님으로 하여금
바로 히브리서 2장 9절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영광과 존귀로 친히 관 쓰게 하는 일을 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바로 이 승천하신 일을 통하여 우리는 이 승천을 하늘에 속한 직무로의 취임식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에 40일째 된 날 승천하심을 통하여 바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은 하나님의 행정을 친히 집행하기 위한 일 때문에 구주께서 승천하셨던 것입니다.
이 승천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아버지 하나님께 속한 하늘 대통령으로서의 공무와 직무를 집행할 수 있는 권위와 자격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승천하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날 승천에 대한 이런 교제의 말씀은 그렇게 많이 나누지 못하는 것을 저는 매우 안타깝게 여겨집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라는 말씀처럼 그분은 자기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견디시고 수치를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이 말씀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왜 그리스도께서 잠시의 그 십자가를 견디시고 수치를 아주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자신의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그 기쁨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40일째 된 날 승천하심을 통하여 그 승천 안에서 하나님 보좌 오른편에 앉아 계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의 인격을 지니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셨던 것입니다.
합법적으로 정말 그분의 그 사람으로 사신 인간의 본성을 지니신 인성을 지니신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과 제3일날
부활하심을 통하여 하나님께 입증받고 증거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의 인격을 지니시고 하늘 보좌 우편에
하나님과 함께 앉아 계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바로 하나님과 사람의 인격을 지니시고 하늘에 앉아 계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받으신
분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줌과 동시에 그분은 히브리서 1장 9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으신 분으로서
모든 것을 이루신 분이라는 것을 또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9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 하였고 그분께서는 구원의 창시자이십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항상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때를 맞추어 우리를 염려해 주셔서 항상 생명의 길로 도움을 주시고 이끌어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하나님에게서 오신 이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시며 하나님과 사람의 인격을 가지시고 3년 반 동안에 뛰어난 공생애
사역을 가지신 이분은 우리에게 그 모든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더 좋은 언약의 보증과 중보자 곧 새 언약의 집행자로서
양들의 큰 목자이신 분으로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믿는 자들을 위해서 주님을 따르는 자들을 위해서
하늘에 오늘날 앉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실 뿐만 아니라 믿는 자들 심령 안에 들어오셔서 하나가 되는 삶을 오늘날 살고 계시다라는
것입니다.이런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가 바로 승천하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이러한 자신의 승천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시게 되었고 하나님의 행정을 위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게 된 후부터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소유한 그리스도 모든 만물과 우주를 소유하는 주가 되게
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36절에서는 이런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 뭐죠? 주와 그리스도가 되도록 하나님 아버지께서 승천을 통하여 인정하셨다
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승천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 사람으로 오신 구주를 주가 되게 하셨고 또한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되게 하셨다는 것은 바로 하늘 대통령으로서 취임시켜서 본격적으로 하늘에 속한
곧 하나님 아버지에 속한 모든 그 위임들을 직접적으로 친히 하나님 아버지 대신 직접적으로 친히 수행하는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곧 취임식을 가지셨다라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36절에는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아두십시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지만 이 일은 35절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너의 발 받침대로 둘 때까지 나의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이것은 바로 주님의 승천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로 그 사람으로 오신 구주를 주가 되게 하셨고
또한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지만 승천이 없다면 주와 그리스도로서 하늘
대통령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그런 공적인 위임들을 친히 집행하시고 수행하시는
그리스도가 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승천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승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으로오신 구주를 주가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곧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지만 본격적으로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행하게 하신 것이 취임식을 통하여 일을 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통하여 이런 일을 주님께 부여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그 승천 안에서 놀라운 신분이죠.
하나님으로서 승천하셨고 사람으로서 승천하셨고 창조주와 피조물로서 승천하셨고 또한 십자가에 의해서 죽으신
구속주로서 인류를 구원하는 구주로서 생명주는 영으로서 모든 하나님의 행정을 집행하기 위하여 승천하셨지만
이 승천은 성육신 하시고 33년 반 동안의 인생을 사시고 십자가 위에서 친히 못 박혀 죽으시는 그런 경험을 가지시고
3일 후에 부활하시는 그런 놀라운 부활의 복합적인 그런 과정들을 거치시고 통과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속한
직무로의 취임식을 가질 수가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6절에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라는 것은 그냥 주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냥 저절로
주와 그리스도가 된 것이 아니라 이런 복합적인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가 되시는 그러한 여러 과정들을 거치셔서 하나님으로서
사람으로서 창조주로서 피조물로서 구속주로서 구주로서 생명주는 영으로서 모든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그 합당하고도
온전한 그리스도로서 하늘 아버지의 위임을 수행하시는 합당하고도 합법적인 그리스도가 되게 하기 위하여
이렇게 놀라운 과정들을 거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 성육신하신 그 하나님의 아들은 성육신하기 전에 영원무궁 안에서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을 입은 성육신 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잠시 동안 빼앗기고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늘의 대통령으로서 본격적으로 하늘에 속한 모든 일들 아버지 하나님께 속한 모든 하나님의 위임들을 친히
집행하고 공무를 수행하는 그리스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활하신 뒤에 40일이라는 인간을 위한 4라는 숫자와
10이라는 4 곱하기 10이죠.예 40이라는 그러한 숫자의 과정을 통하여 합법적으로 하늘 대통령으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그리고 인류에게 공개적인 취임식을 가진 것이 바로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승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 승천이 없다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는 일로 부족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3일 날에 부활하시지만 그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분을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실 수 없습니다. 승천을 통하여서만 그분을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라고 히브리서 2장 9절과 12장 2절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분은 죽음의 고난을 받으시려고 천사들보다도 조금 못하게 되셨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의 고난을 통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2절에서는 잠시 자기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견디시고 수치를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기시고 그래서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위임을 수행하는 그 합당한 그리스도가 되게 하기 위하여 바로 승천하는 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오신 구주께서는 하늘에 속한 직무로의 취임식을 갖기 위하여 승천하셨던 것입니다.
이 승천은 모든 인류와 모든 하늘에 속한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모든 생명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합당하게 내보이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승천하신 분이신 사람으로오신 주께서 승천을 통하여 얼마나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로서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는지를 우리에게 계시해 줌으로 말미암아 우리 교회 안에 믿는 성도들이 지금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믿는 자들이 얼마나 놀라운 구주를 얼마나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모시고 사는 삶인지를 우리에게 성경은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승천을 통하여 하늘에 속한 그 아버지 하나님께 속한 모든 공무와 직무에 합당한 분으로서 취임하신 분이신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놀라운 신분을 소유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승천이 아니었다면 놀라운 신분을 소유하신 그분이 어떠한 신분을 소유하였는지를 우리가 알 수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승천을 통하여 놀라운 신분을 소유하셨는데 무슨 신분으로 승천하셨습니까? 하나님이셨던 그분이 성육신을
통하여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자 사람으로서의 승천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으로서 원래 영원무궁하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으로서 사신 그분이 제한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자 사람으로서 승천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승천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고 또한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피조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거의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이신 그분이 피조물로서 세상에 오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이 있지 않습니다.
성육신하신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성육신 하신 그 사람이 영과 육과 혼을 지닌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오직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골로새서 1장 15절 말씀이 없었다면 우리는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 모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얘기할 때 의아해하고 의혹을 가지고 의심할 수밖에 없고 오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가장 먼저 나신 분 피조물이라고 우리에게 계시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승천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는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시며 창조주이시며 피조물이시며
구속주와 구주와 생명주는 영으로서 승천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믿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믿고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말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그분이 성육신 하셔서 사람으로 오신 것은 동의하지만 그분이
피조물이라는 사실에는 마치 그분을 격하시키고 마치 끌어내리는 것처럼 여겨짐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사람으로 오신
분이라는 것은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논할 때 그것을 내 마음속에 합당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주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피조물임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하늘 보좌에 승천하신 분이신 그분 께서는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인
피조물로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행정을 집행하시고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수행하시는 그러한 만유를 소유하시는
주가 되셨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피조물이라는 것은 그분을 격하시키는 일이 아닙니다.
놀라우리만치 하늘보다도 더 높게 그분을 격상시키고 그분이 가지신 승천하시는 그분이 피조물로서의 승천하심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로서의 인격과 아들 사람으로서의 인격을 가진 분으로서 오늘날 하나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다는 것을 통하여
그분께서 우리와 얼마나 지대한 관심 가지고 얼마나 직접적인 연관과 관계와 친밀감을 우리에게 소유케 하셨는지를 안다면
우리의 영이 정말 놀랍게 감동이 되고 그 기쁨에 취하여 정말 땅이여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 춤춰라 이런 찬양을
하지 않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 49: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성육신 하셔서 사람의 삶을 사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자이심을 바로 골로새서 1장 15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보편적으로 이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들이나 또는 교사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성육신 하신 사람이라는 것은 믿고 합당하게 인정하지만 그리스도가 모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분이라는 것은 주저하고 뭔가 꺼림직하게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피조물이라는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바로 승천하셨다는 사실을 통하여 우리에게 합당한
하나님 보좌 오른편에 앉아 계셔서 하나님과 사람의 인격을 지니시고 오늘날 우리를 다스리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 안에
오셔서 역사하시는 놀라운 정말 가장 친밀한 분이심을 우리가 인정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또한 마리아라는 사람 여인의 몸을 통해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수태되어 출생하셔서 피조물들 중에 가장 먼저 나신
자라는 것을 우리는 이 골로새서 1장 15절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이 골로새서 1장 15절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 성육신하신 사람이십니다 라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모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피조물 이라고
교제를 나누는 말씀을 할 때 주저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창조주이심과 동시에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피조물이라는 것을
우리가 앎으로 말미암아 피조물은 결코 그분을 격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장 지대하고 하늘처럼 높은 그분의 놀라운
신분을 격상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피조물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히브리서 2장 14절 말씀을 통하여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이렇듯 주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 오신 피와 살을 가진 사람 피조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피와 살을 가졌으므로 그분 자신도 같은 모양으로 여러분이 그분 자신과 다른 모양입니까? 아닙니다.
그분 자신과 같은 모양으로 자녀들이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의 본성 사람의 형태 피와 살을 가진 자들이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자녀들이기 때문에 그분 자신도 똑같은 피와 살을 지닌 피와 살에 참여하셨습니다 라고 히브리서
2장 14절은 기록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혈과 육을 지닌 참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하는 것은 그분을 격상시키는 일이요. 그 놀라운 신분을 우리가 표현하고 증거할 일이지
그분을 결코 깎아내리거나 격하시키거나 하찮게 여기는 그런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립니다. 혈과 육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형태와 사람의 모양을 지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이라는 것입니다. 혈과 욕은 피조물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오신 혈과 육을 지닌 피조물이심을 부인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혈과 육을 지니고
세상에 우리와 똑같이 참여한 자로 오시지 않았음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무엇이라고 얘기합니까? 요한일서 4장 2절에 하나님의 영을 이렇게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영입니다.
여러분 이 요한일서 4장 2절, 3절 말씀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4: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4: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여러분 여기서 적 그리스도의 영이 뭐라고요? 예수님을 시인하지 않는 영 마다 예수님의 무엇을 시인하지 않는 영 마다
예 육체로 오심을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영이 아닙니다. 이것은 적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요한일서 4장 2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육체로 오신 것 이게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본래 성령님으로 잉태하신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이셨습니다.마태복음 1장 18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인 마리아의 몸인 여인의 몸을 통하여 육체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인성을 가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것은 그분께서 신성하게 잉태되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신 것을
시인한 것과 똑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인 여자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육체로 출생되어졌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성령님으로 잉태되셨다는 것을 시인하는 일과 똑같은 일로 간주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분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게 되면 그분께서 성령님으로 잉태되시어 육체를 가지시고 태어나신 것을 부인하는 일들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유일하게 인류 가운데 단 유일하게 신성과 인성 두 종류의 본성을 가지고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인격과 사람의 인격을 가지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의 인격과 하나님의 신격을 가지고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그분이 바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은 요한일서 4장 2절 3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적그리스도의
영을 지닌 이단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혈과 육을 지니고 오신 사람이신 것입니다 .
사람으로 오셔서 승천을 통하여 그 놀라운 창조주이신 그분이 피조물이 되셔서 피조물의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신분의 소 유자로서 승천하심을 통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셔서 영광과 존귀로 관 쓰셔서 바로 하나님의
그 보좌에 앉아 계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위임을 친히 수행하시고 공무를 집행하시는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며 사건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하나님이셨지만 만약에 혈과 육을 지닌 사람이 되지 않으셨다면 그분이 승천하셨다 하더라도 그분이 피조물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서 앉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와 그렇게 친밀하지도 가깝지도 않은
것입니다. 너무나 친밀한 것을 강조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부활하심을 통하여 생명주는 영이 되셔서 바로 우리의 심령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영 안에서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하나가 되어 사는 삶을 사실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피조물로서의 사람이 되셨고 또한 사람이 되셔서 33년 반 동안의 삶을 사셨고 승천을 통하여 사람의 그 놀라운 피조물로서의
그 신분을 가지시고 승천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지니신
사람의 인격을 가지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서 우리를 치리하시고 인도하시고 우리를 이끄시기 때문에 우리를
보다더 이해하시고 우리를 더욱더 주님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으로 우리를 이끄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지금 이런 형편에 처해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지 않고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십니까라고
이렇게 간혹 간구를 할 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누구보다도 나 자신보다도 더 나 자신을 더 잘 아시는
분이 바로 사람이 되셔서 피조물이 되신 그분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되셨으므로 그분께서는 또한 피조물이 되셨습니다.
사람은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또한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그분이 모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피조물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 속한 하늘에 속한 모든 그 직무를 집행하심에
있어서 결코 실수하시거나 결코 간과하시거나 결코 소홀히하시거나 결코 지나치지 않으시고 매우 관념하시고 집중하셔서
우리를 보고 계시고 항상 합당하게 항상 옳은 길로 항상 선한 길로 우리를 이끄심에도 그 선한 길이 우리가 잠시 잠깐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는 그것이 섭섭해 보이고 때로는 뭔가 오해케 되고 의혹을 갖게 되는 삶의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우리 형편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피조물이 되셔서 우리를 용납하시고 우리를
받아들이시고 우리를 위해서 인내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시는 그러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눈물이 없으신 분이십니까? 아닙니다.하나님은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피조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신 분입니다.더 잘 이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모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피조물로서 승천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십자가 위에서 그것을 증거해 주기 위하여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위에서 친히 못 박혀 죽음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죄를 모든 부정적인 사탄으로 기인되어진 모든 죄들을 제거해 주시고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구주가 되신 분으로서
이런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로서 승천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분은 그리스도로서 합당한 자격과 합당한 기질을 가지고 우리를 이끄실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만은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어떤 자로서 어떤 종류의 신분을 가지신 분이신지
명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40일째 되는 날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이 어떤 종류의 신분을 가지신
분이신지 그리고 어떤 자질과 어떤 사람의 인격을 가지시는지를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고 인식하게 하고 알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람으로오신 구주의 승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이러한 피조물로서 특별히 구속주와
구주로서의 신분도 가지셨고 창조주 하나님으로서의 그리고 생명 주는 영으로서의 신분을 가지시기도 하셨지만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피조물로서의 모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피조물로서의 신분을 가지신 분이 승천하셔서 바로
하나님 보좌에 앉아 계셔서 우리의 영과 하나 되어 사는 삶을 사는 그분이 이러한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알 때 우리의 영은 머리끝에서 부터 발끝까지 그 영에 의하여 감전되어서 그 기쁨이 얼마나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49장에 기록된 말씀처럼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라는 이런 찬양이 절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49: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49: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49: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49:17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 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49: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몸에 차며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49:19 대저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거민이 많으므로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여러 복잡한 과정들을 통해서 하늘에 속한 하늘의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가지기 위하여
승천하신 분은 단순히 하나님의 한 아들로서 속한 그 한 부분이 아니라 하나님 전체를 아버지와 그 아들과 그 영 모든
것을 포함하고 내포한 분으로서 승천하셔서 바로 하나님 보좌의 우편에 앉아 계셔서 하나님 전체로서 지금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계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까지는 우리 외면적인 관점에서 볼 때 단순히
하나님의 그 아들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위에 죽으셔서 자신의 신성한 그 생명을 해방시킨 것을 부활을 통하여 바로 유출시킴으로 말미암아
육의 몸을 지니신 그분이 영의 몸을 지니신 그 생명주는 영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육체 안에 가두어지고 감추어져 있었던
아버지 하나님과 그 영께서 이제는 그 생명주는 영이신 그 영을 통하여 바로 하나님 전체로 사람들에게 인류에게
나타나셔서 계시해 주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 전에 성육신 하시고 33년 반 동안의 생애를 사셨을 때는 하나님의 한 부분으로서 보였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심을 통하여 하나님 전체를 계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승천하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 죽기 전까지는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승천하시기 전까지는 마치 하나님의 일부분인 하나님의 아들로서
보였지만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전부입니다.세 분 하나님이십니다. 셋이면서 하나이시고 세 분이시면서 한 분이신
바로 그분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을 통하여 세상에 이렇게 우리 가운데 오늘날 교회에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역사하시는 바로 보혜사 성령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께서는 본래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그 영 하나님 세 부분으로서 삼위일체 세 부분으로서의
하나님으로서 삶을 사셨지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그 세 부문으로 사신 하나님이 이제 영과 육과 혼을
지닌 세 부문으로 된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난 피조물로서의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 하나님과 그리고 세 분 하나님이신 세 분으로 된 영과 육과 혼을 지닌
참 사람으로서 이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고 지금 그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대신해서
모든 우주 안에 있는 모든 하나님께 속한 행정들을 친히 집행하시고 공무를 수행하셔서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수행하시는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섬기고 믿고 따르고 그분을 위해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가 되신 그분을 우리가
모시고 사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창조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무소부재하시고 영원무궁하신 정말 제약과 제한을 전혀 받지 아니하시는 그분이 제약을 받고 제한을 받고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오시기 위하여 성육신 하셔서 사람의 모양과 형체를 가셔서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피조물이 되셨던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피조물로서 사신 그분의 그 사람이신 구주께서는 이러한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합당하게 하나님 앞에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심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속한 하나님
아버지께 속한 모든 공적인 그 직무와 임무에 취임하시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승천 사건을 통하여 500여 문도에게
5라는 숫자는 참으로 중요한 숫자입니다.
하나라는 하나님의 숫자와 넷이라는 피조물의 숫자가 합쳐진 것이 다섯이라는 숫자죠.
5 곱하기 100이라는 완전하고도 온전한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 앞에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온 우주를
관리하시고 모든 직무들을 집행하기 위하여 관리하시기 위하여 이러한 여러 복잡한 과정들을 통과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 때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일들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이건 뭐 하늘의 별들을 따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과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신 것을 알 때 우리의 영혼은 정말 감전되어져서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주님께서 우리를 간과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잊어버리지 아니하시고 손바닥에 인을 새긴 것처럼 기억하시고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구나.찬양하라 노래하라 찬미하라.
구원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 하나님이신데 성육신 하신 사람으로서 구속주이신데 또한 구원자로서 생명을 주는 영으로서 세상에 오시기 위하여 승천하심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유일한 하나님께 속한 모든 일들, 모든 위임들 공무들을 집행하시는 행정관이시고 통치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유의 주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이 땅의 모든 정사들과 권세들과 모든 통치자들은 그분 아래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통치자들은 이제 그분의 제약 아래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하늘의 대통령으로서 승천을 통하여 하나님께 합당하게 위임받은 하나님의 행정을 집행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그러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분으로서 이제 오늘날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친히 수행하시는 행정관과 통치자로서 우리를
통하여 일을 하고 계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이 그냥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이
아닙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승천하심을 통하여 하나님께 합당하게 인정받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심으로 말미암아
우주에 관계되어 있는 모든 일들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수행하시는 모든 일들 장차 다가오는 천년 왕국의 일들, 영원한 도성인
하나님의 새 예루살렘에서 산출된 그분의 몸인 온전한 교회를 건축하는 그분의 그 교회를 위한 재 산출을 위하여 그분 자신을
번식시키고 증가시키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이런 복잡한 과정들을 거치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히브리서 2장 9절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라는 이 말씀은 그분께서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을 위하여 죽음을 친히 맛보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왜 죽음을 맛보시는 일이 중요했습니까? 히브리서 12장 2절은 말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그분은 원래 믿음의 창시자, 완성자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주목하여 가만히 봅시다.
그분은 자기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견디시고 수치를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기 위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특별한 신분의 소유자는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피조물로서의 놀라운 신분의 피조물이 되셔서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피조물로서 사신 그분은 누구보다도 사람을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사람을 너무나 잘 용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을 잘 알지 못하고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조금 결격 사항이
있어서 좀 세상의 통치자들처럼 세상의 재판관들처럼 함부로 결정하게 된다면 인내하지 않으신다면 사람은
구원받기가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또한 창조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피조물이라는
이 사실 피조물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경악스럽게 하고 그분이 나와 함께 지금 이 시간에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자지러지게 합니다.아~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라고 히브리서 2장 9절 서두에 우리는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님을
봅니다. 하나님으로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것이 아닙니다.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피조물이 되셔서 삶을 사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천사들보다도 잠깐 못하게 되시는 제한을 받으시는 천사는 제약과 제한을 받지 아니합니다.
천사는 육의 몸이 아닌 영의 몸을 가진 존재입니다.그러나 창조주이신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피와 살을 가진 사람으로
오신 피조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도 못하게 되심으로 말미암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없는
제한적인 삶을 제약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죽음의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을 통하여 생명주는 영이 되시고 승천하심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그 예수님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그 피조물로서의 사람이 되신 인격을 가지신 그분이 우리의 그 삶을 체험하고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의 부족함과 우리의 빈약함과 실패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인내하고 자비로 긍휼로 사랑으로 대하셔서 끝까지 우리를 손에서 놓지 않고 끝까지 우리를 보다듬고 구원의 길로 이끄신 그 자들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이며 뽕나무 위에 올라가서 구원받은 삭개오이며 세금 징수원인 세리 마태이며 뭐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자들이 그분의 긍휼과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구원길로 이끌림 받았죠.
그분이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피조물로서의 사람의 인격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누구보다도 우리의
인격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영광은 예수님의 사람으로서의 인격에 관계된 광채가 영광인 것입니다.
여러분 변화 선상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앞에서 변화된 예수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인격에 관계된 광채가 영광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으로서의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피조물로서의 인격에
관계된 광체입니다. 하나님은 원래 영광이십니다.
원래의 영광이셨던 그분이 성육신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영광을 내보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공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예수님의 인격에 관계된 광채를 보임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우리에게
나타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영광은 영화롭게 되는 삶입니다. 코스모스의 그 작은 씨가 자라서 꽃이 피어서 빨간 꽃,
하얀 꽃, 분홍꽃 그런 변화되고 변형되어진 코스모스의 그 꽃 자체가 바로 영화롭게 되는 영광인 것입니다.
한알의 밀알이 수많은 밀알들로 산출되어진 것이 바로 영화롭게 되는 영광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변화와 변형을 가지셔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것처럼 우리도 인생의 삶을 사는 동안에 영화롭게
되기 위하여 주님의 길을 따라야 될 것입니다. 존귀는 예수님의 가치에 관계된 귀중함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7절에 존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2: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모퉁에 머릿돌이 된 돌들을 유대의 백성들과 유대 지도자들은 하찮게 여겼습니다.그들은 내동댕이 쳤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변화되어지는 이런 변화된 삶과 승천을 통하여 변형되어짐을 통하여
보배로운 그 존귀한 신분을 소유하신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피조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가장 놀라운 종교의 신분을 소유하신 분이 바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승천하신 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날 영광의 상태에 계시기도 하시며 또한 존귀의 신분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습니다. 영광은 뭐고 존귀는 뭘까요? 영광은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피조물로서의 삶을 사셔서 그 나타내신 아름다운 미덕들 최고의 아름다운 도덕성을 지닌 그분의
인격에 관계된 광채가 바로 다름 아닌 변형되어진 것이 바로 예수님의 광채인 영광인 것입니다.
존귀는 예수님의 가치에 관계된 귀중한 것입니다. 보배죠
그래서 주님의 위엄인 주님의 지위와 관계가 있고 예수님의 인격을 통하여는 그 영광이 나타내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장 17절은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라고
하는 음성이 들려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의 위엄이 그분의 지위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관을 쓰셨는데 그 관은 하나는 영광이요, 하나는 존귀인 것입니다.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승천하신 분이신 그리스도는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안에서 영광의 상태에 계시고
존귀의 신분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 저는 예전에는 아무것도 아닌 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베트남에서는 제가 선교사로서 여러 교회와 집들을 다니면서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선교사로서의 일을 하고 있을 때 바로 나는 높은 신분을 소유한 것입니다.
캄보디아 에서는 제가 6살부터 14살까지의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곳의 학교가 있는데 거기서는
제가 교장 선생님입니다. 그곳에 부교장 선생님이 또 한 분 계십니다.
그 학교의 교장 선생님과 부교장 선생님은 높은 신분을 소유한 자인 것입니다.
교장 선생님이 아닐 때는 저는 그냥 보통 일반 세상에 속한 신분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이라는 이러한 캄보디아의 청소년 쉼터 학교를 운영하면서 교장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때 나는 높은 신분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습니다.
베트남에서 선교사로서 활동을 하기 때문에 믿는 성도들로부터 존경을 받습니다.
나의 신분은 선교사며. 또 한편으로는 교장 선생님입니다.바로 나의 신분이 나의 존귀인 것입니다.
높은 신분인 교장 선생님과 선교사라는 신분은 존귀인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교장 선생님이 아니고 선교사가 아닌 일반적인 삶을 살 때는 나는 아무런 신분이 없기 때문에
어떤 높은 등급이나 높은 존귀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는 왕들과 주관자들 위에 계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존귀인 것입니다.
그분이 참 유대인의 왕으로서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 그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이 써져
기록되어져 있었습니다. 그분은 모든 세상 인류들을 대표하는 유대인의 왕이기 때문에 왕이라는 신분의 소유자는
세상의 왕들과 주관자 위에 군림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존귀인 것입니다.
그분은 이런 존귀를 가지심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셔서 존귀 안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존귀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높은 신분을 소유한 것이 바로 존귀이고 그 존귀한 자가 계속되어지는 지속되어지는 영광의 상태에 있는 것이
바로 영광을 소유한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모든 왕들과 주관자들 위에 우뚝 서 계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은 존귀하신 분이고
그 존귀를 계속 받고 계심으로 말미암아 영광의 상태에 계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광은 예수님의 그 참 사람의 인격과 하나님의 인격에 관계된 모든 광채를 어우르는 그 단어가 영광이라면
존귀는 예수님의 참 가치 신분을 통해서 나타내신 가치를 통해서 보여지는 귀중함에 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계속되어지는 그 왕들 이 세상에 믿는 자들 가운데 참 왕이 되시고 우주를 다스리는 집행자이시고,
통치자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세상의 왕들과 주관자들을 위에 계심으로 말미암아 존귀한 분이십니다.
또한 그분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통해서 계속되어지는 존귀를 소유받음으로 말미암아 영광 가운데 계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은 존귀 안으로 계속 들어가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광과 존귀는 함께하는 단어이지만 존귀를 통하여 영광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존귀를 통해서 영광이 나타나지고 결국에 표현이 영광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존귀한 것은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바로 영광의 상태에 계시다 라는 것이기 때문에 승천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영광과 존귀 이 두 가지를 통하여 그분이 친히 쓰신 관이라는 것을 여러분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승천을 통하여 하나님의 어떤 행정을 위하여 하나님께 속한 하늘에 속한 모든 위임을 공적으로
집행하고 공적으로 수행하는 그리스도가 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 보좌에 앉아 계셔야 됩니다.
보좌에 앉은 자만이 왕으로서 치리자로서 통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보좌는 왕의 신분과 왕의 존귀와 왕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셨어야만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2장 9절에 잠시 천사들보다도 조금 못하게 되셨다.죽음의 고난을 받으시려고 왜? 히브리서 12장 2절은
수치를 잠시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기고 자기 앞에 있는 기쁨 그 기쁨은 하나님 보좌 오른편에 앉으시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은 그분의 존귀함을 드러내는 그분의 신분이 어떠하심과 그 신분의 계속됨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심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로 그분이 쓰셨던 관을 표현하기 위해서 보좌에 앉으시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승천이라는 일들을 이루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2절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분은 원래 믿음의 창시자요,
믿음의 완성자인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자기 앞에 있는 그 커다란 기쁨, 세상 모든 왕들과 통치자들을 치리하고 통치하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모든 위임들과 행정들을 집행하기 위하여 하나님 보좌에 친히 앉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22장 1절과 3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22: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어린 양을 위하여 하나의 보좌가 있다는 것입니다.
두 개의 보좌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두 개의 보좌가 있었다면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와
이렇게 말씀을 기록했어야 됩니다.
그런데 계시록 22장 1절에 그 강은 하나님과 그리고 어린 양의 보좌 하나님과 어린 양을 위하여 하나의 보좌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과 어린 양 하나님 아버지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분이시라는 것을 여기서 계시해 주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속하시는 하나님과 바로 이 구속을 위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은 한 분이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시고 구속자이신 분은 어린 양이십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와 구속자 어린 양은 한 분이신데
육체 안에 있으셨을 때는 감추어 계셔서 사람들 앞에서 그것이 계시되어 나타나지 않으셨던 그것을 계시하여서
나타내기 위하여 반드시 죽음을 경험했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2절에 자기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 죽음을 견디시고 수치를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기시고
그분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야 되는 일 때문에 천사들보다도 조금 못하게 되셨습니다.
그래서 영원 안에서 보좌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바로 우리를 구속해 주시기 위하여 성육신 하셔서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 예수로 오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영원 안에서 보좌에 앉아 계신 영원무궁하며 무소부재하신 분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성육신 하셔서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피조물이 되신 분이 바로 사람으로 오신 구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보좌에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공급과 영원한 심령의 만족을 위한 생명수 강이 그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 보혜사 성령님을 통하여 흘러나와서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그 영 하나님 곧 하나님과 어린 양이신 예수님과
생명수로 상징된 보혜사 성령님께서 영원토록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머리의 권위 아래서 바로
아들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이들에게 분배하시는 것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
그 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그래서 계시록 21장 23절 말씀은 이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에 대한 계시록 22장 1절 말씀을 더욱더 보충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여러분 해와 달이 필요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그 성을 밝게 하며 그 성의 등이 어린 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빛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입니다.그 성은 해와 달의 비침이 쓸데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님으로 상징되어진 기름을 통하여 등이신 어린 양께서 신성한 빛의 표현인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등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기름으로 상징된 성령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 계시록 22장 21장 23절 말씀을 통하여 등이신 어린 양 그리스도께서 영원하고도 신성한 빛의 표현인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는 그 성을 비추는 빛이신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죠? 등은 등이고 빛은 빛이고 기름은 기름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양 그리스도는 등으로 표현되어 있고, 하나님은 등 안에 있는 빛으로 표현되어 있고, 그 등 안에 있는 빛이
비춰주기 위해서는 기름이 촉촉히 적셔져야만 되는 것입니다.기름으로 상징된 성령님과 등으로 상징되어진 어린 양
그리스도와 빛으로 표현된 하나님 이 세 분이신 하나님이 빛과 등과 등안에는 반드시 기름이 있겠죠.
왜냐하면 기름이 있어야 빛이 비춰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빛과 등과 기름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등과 등 안에 있는 빛과 그 기름은 동시에 셋이면서 하나인 것입니다.빛은 어디에 있습니까? 등 안에 있습니다.
빛은 등 안에 있기 때문에 등으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 없고, 그 등은 심지에서 촉촉히 적셔지고 흘러나오는 그 심지를
통해서 빛이 비춰지기 때문에 빛과 등과 기름 곧 성령님으로 상징된 기름과 바로 이 등으로 상징된 어린 양 그리스도와
빛으로 표현된 하나님은 결코 분리되거나 나뉘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2장 1절에 그 강은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가 각각 달리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보좌에서 하나님과 어린 양의 한 보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22장 5절에도 더 이상 밤이 없겠고 그들에게 등불과 햇빛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는데 빛으로 비추는 대표적으로 상징되는 아버지 하나님이 등 안에 있기 때문에 빛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지만 빛은 등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고 등은 심지인 기름으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름이 흘려져서 등을 통하여 빛이 비춰지기 때문에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선 그 등이라는 그 하나를 통하여
등과 등 안에 있는 빛과 기름으로 표현된 그 성령을 통하여 한 보좌에 앉아 계시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등 안에 셋이 하나가 함께 있습니까? 하나만으로 빛을 표현할 수 있습니까? 절대 표현할 수 없습니다.
등으로 빛을 표현할 수 있습니까? 절대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등만으로는 빛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기름으로 빛을 표현할 수 있습니까? 못합니다. 빛이 등 안에 있고 등은 이 심지를 통하여 기름으로 적셔져서 흘러나와져서
빛이 표현되어져야 빛이 온전히 표현되는 것처럼 빛이신 하나님께서는 등이신 그리스도 안에 계시고 등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기름으로 상징된 성령님과 결코 나뉘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빛은 곧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요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는 곧 성령님으로 상징된 기름이기 때문에
바로 이 셋은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동시에 셋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셋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이면서 셋인 등에는 기름을 흘러내린 심지가 있고 그 전체를 담고 있는 등이 있고 그 등에서 비쳐 나오는 빛이
존재하여져서 하나의 등을 통하여 빛이 나타내지고 유출되어지고 표현된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날 보좌에 앉아 계시는
그리스도위에 앉아 계시고 보좌에 앉아 계시는 그리스도께서는 그 영 성령님을 통하여 흘러나와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신 하나님과 등이신 그리스도는 오늘날 기름으로 상징된 성령님을 통하여 하늘에 있는 한 보좌에 앉아 계시다라는
것을 계시록 21장 23절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그 보좌 위에 앉아 계십니다. 마치 빛이 등 안으로부터 비춰지는 것처럼 등을 통하여 빛이 비춰지는
것처럼 빛이신 하나님께서는 등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안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안에 계심으로 말미암아 빛이
비춰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성령님으로 상징된 바로 기름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계셔서 삼위일체
셋이면서 하나 세 분이시면서 한 분 한분 이시면서 세 분이신 하나님을 우리가 이렇게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이 세 분이시면서 한 분이신 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얼마나 난해한지 모릅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얼마나 여러분이 높은 그 주님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우리가 간접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보좌에 계십니다.
그 보좌에 앉아 계신 이 빛으로 상징되어진 이 하나님은 바로 등으로 상징된 사람으로 오신 구주 안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으로 오신 구주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이 모든 일들이 이렇게 표현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21장 23절 말씀을 통하여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보좌에 앉으신 것이 바로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그 영 하나님의 다 이렇게 삼위일체를 이루어서 셋이면서 한 분이시고 하나이면서 세 분이신
것을 우리가 특별히 계시록 21장 23절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승천으로 말미암아 승천 안에서 바로 하나님의 보좌 우편 곧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하나님 보좌에 앉으셨다니까 하나님 보좌가 따로 있고 또 하나님이
중앙에 있고 또 왼쪽에는 성령님이 계시고 그런 보좌가 셋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계시록 22장 1절에서 분명히
그 강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 한 보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날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인 승천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성령님을 통하여 보좌에 앉으셔서 세상에
빛을 비추고 계시다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피조물이 되신 그 신분을 가지시고 승천하심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셔서 보좌에 앉으심을 통하여
하나님께 속한 모든 공적인 위임들을 집행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좌에 함께 앉아 계신 그것을 우리는 보좌 오른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 예수님이 오른편에 앉아 계시고 하나님이 왼편에 앉아 계시고 또 그 왼편에 성령님이 앉아 계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보좌 오른편이라는 표현을 바로 한 분이면서 세 분이시고 세 분이시면서 한 분이신 그분께서 바로 빛이 등 안에
있고 등은 심지를 통하여 유출되어져서 빛을 나타내기 때문에 빛과 등과 기름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님께서는 바로 그 한 보좌에 앉아 계셔서 역사하신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로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놀라운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되신 피조물로서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보좌에 앉으시기
위하여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셔서 우리에게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속한 모든 위임된 일들, 모든 우주 안에 속한 행정들을 집행하는 자로
보좌에 앉으셔서 만유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고 치리하셔서 만유를 소유하시는 주로서 오늘날 하나님의 위임을
수행하시는 그리스도로서 계신 다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승천하신 분이신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고 오늘날 믿는 자들, 특별히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기 위하여 보좌에 앉으셔서 치리하시고 통치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바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등이신 등이 보이는 거죠.예 빛은 등 안에 있는 것입니다.
등은 외형적인 것입니다. 심지 또한 속에 포함돼 있는 것이기 때문에 외형적으로 가장 가깝게 보여지는 것이 등은
우리 사람이 만질 수 있고 손으로 접촉할 수 있고 등을 열어서 심지를 다룰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지금 오늘날
하나님을 대신해서 역사하시고 집행하시고 위임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인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셔서 피조물로서 사람이 되신 그분이 하신 승천을 통하여
오른편 보좌로 상징되어진 하나님과 함께 이 하나님의 위임을 대신해서 외형적으로 다스리고 집행하시고 행정을 집행하시는
그리스도를 하늘의 대통령이신 그분을 우리가 오늘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승천 안에서 사람으로 지금 구주께서는 만유를 소유하시는 주가 되셨다라고 사도행전 2장 36절은 우리에게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어떻게? 승천하심을 통하여 놀라운 신분을 소유하신 곧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셔서 하나님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의
행정을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신 이분을 위하여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이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뿐만 아니라 온 우주 안에 있는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들 특별히 그중에서도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들인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인 믿는 이들과 관계되어 있는 자들을 위해서 역사하시고 일들을
하시는 그러한 것을 소유하시는 주시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들을 소유하심으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 있는 성도를 도우시고 모든 사람들을 소유하심으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을 만나면서 부딪히는 이런 사건들, 안 좋은 일들, 뭐 크고 작은 일들 이 모든 것들은 만유를 소유하시는
주로 인하여 발생되어지는 일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의 주권에 맡기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시잠깐 우리에게 좀 나빠 보이고 좀 뭔가 안 좋아 보이고 손해를 보는
일들이라 할지라도 긴 시간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선한 방법으로 선하게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때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인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뿐만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 이시고
또는 선한 천사들에게도 "주" 이시고 악한 천사들, 여기는 마귀까지도 포함하죠. 모든 세상의 불신자들과 믿는 자들, 악한 천사들, 선한 천사들, 천년 왕국, 또 장차 오는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인 새 하늘과 새 땅에 있을 모든 것들에 대한 모든 것들을 소유하신
모든 사람들과 모든 일들과 모든 천사들을 소유하시는 만유를 소유하시는 "주"시라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이 모든 만유를 소유하시는 주로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냥 우리의 인류만을 위해서 죽으신 분이 아니십니다.모든 것들, 모든 일들, 모든 사람들, 모든 천사들, 모든 악한 것들,
천년 왕국과 새 하늘에 속한 것들까지도 포함한 모든 것들을 소유하신 주로서 하늘과 땅의 주시요.하늘에 속한 것들에 주시요,
땅에 속한 것들에 주시요.장차 다가올 천년 왕국과 영원한 새 예루살렘 도성에서의 모든 것들에 대해 주시요.과거에 아담을
창조한 그때부터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모든 구속하신 만물과 모든 것들에 대한 만인의 주가 바로 부활 후 40일 만에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36절 특별히 승천을 통하여 승천으로 말미암아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주가 되셨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되신 것을 강조하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아~ 승천이 바로 하나님의 위임을 수행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그리스도가 되게 하기 위하여 공개적인 취임식이라는 것을 히브리서 1장 9절 말씀이 통해서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 하였고
바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피조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속한 직무로서의 취임식을 승천을 통하여 가져오셨고, 승천하신 분께서는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이신 피조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로서 승천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수행하신 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모든 행정들을 집행하셔서 모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일하고 계신다 라는 것을 승천을 통하여 알려주고 있습니다.
승천은 주님께서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정을 위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계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행정을 위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는 것입니다.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것은 하나님의 행정을 위한 일이고 하나님의 행정을 하기 위하여 보좌에 앉으시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에 히브리서 12장 2절은 그래서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던 것입니다.
자기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 죽음을 견디시고 수치를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기시고, 히브리서 2장 9절에서는
천사들보다도 조금 못하게 되신 이유는 하나님의 행정을 위하여 믿는 자들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셔서
보좌에 앉아 계심으로 말미암아 만유를 소유하셔야 우리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과 모든 만물들을 구속하실 수 있기 때문에그런 것입니다.
구주께서는 이와 같이 주가 되셨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되셨음을 사도행전 2장 36절은 하나님의 위임을 수행하시기
위하여 승천하셨다는 것을 알려줌으로 말미암아 승천이 얼마나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놀라운 주님의 계시인지를
우리가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한 1부의 말씀을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