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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복음15장12~31/ 돌아온 탕자이야기에 비취진 우리의 신앙의 모습 1부
    말씀 나눔방 2023. 9. 17. 17:42

    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여러분 성경 속에서 이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고통을 겪으시는 아들 예수님을 보면서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을 당한 것을 성경 속에서 어떤 인물이 가장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이 누구일까요. 아브라함이죠 네 맞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드리라는 그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자기 아들을 제단에 바친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았고 둘째는 그분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면 상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알았기 때문에  

    자신이 아들을 죽이고자 했을 때 그 찢어지는 마음이 곧 먼 훗날에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보고 기뻐하였던 그 아브라함의

    그 마음이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대조하면서 아버지 하나님의 찢어지는 그 마음의 고통을 가장 크게 이해한 자가 아브라함이었기 때문에 야고보서 2장 23절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친구라고 하나님의 벗이라는 영광스러운 명칭을 세상 모든 인류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23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만약에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러한 찢어지는 고통 아들을 보내시면서 너무나 마음 아프셨던 것을

    아브라함이 느꼈던 것처럼  우리가 그 고통의 느낌을 하나님 아버지의 그 마음 아프심을 체험하고

    경험하게 된다면 우리 또한 하나님의 벗이라 얘기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그리고 이제 두 번째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제가 요즘에 어저께도 탕자의 비유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가복음15장 12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4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25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천국은 마치 두아들을 가진 아버지와 같다. 둘째 아들이 나를 없는 것 처럼 생각하시고

    나를 내버려 두세요 했던  이 탕자의 이야기를 오늘 여러분과 나누려 합니다.

     

    여러분 요즘 시대에 탕자는 어떤 사람 일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탕자 일까요?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고 있으나 아버지의 가족이었으나 아버지의 아들들이었으나 뭔가 정결하지 못한 듯한

    그런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 들일까요?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아버지 집에 함께 거하고 있으나 아버지의 마음과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살고 있는 첫째 아들에 속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밖으로 나갔다가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아버지집으로 되돌아온 둘째 아들에 속하는

    사람인가요 여러분들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자기 자신을 볼때 어느 정도로 아버지와 관계를 유지 하고 있다고 생각들

    하고 계신가요? 여러분들 이 둘중에 누가 아버지의 온전한 아들일까요?

     

    곰곰이 이 말씀을 생각하시고 되새김 하시다 보면은 아~ 내가 이정도로 탕자였구나

    이정도로 아버지와 온전한 마음이 하나가 되는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산 자였구나 라는 생각이 드실것입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살지 않은 탕자도 탕자이고 맏아들도 실제는 아버지를 모르면서 외형적으로 살고 있지만 나중에

    둘째 아들이 돌아와 보니까 그 마음이 드러나기를 그 첫째 아들도 또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하나가 되지 못한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많은 질문들을 했는데요 이 탕자란 어떤 사람인가 하면요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닌 자신 마음대로 자신 뜻대로 세상을 향해서 세속을 향해서 욕심을 위해서 번성 번영 성공을 위해서

    이름을 나타내기 위해서 세상을 쫓아 사는 모든 사람들이 탕자인 것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사탄은 영원한 탕자 돌아올 수 없는 기약이 없는 처음과 나중이 똑같은 영원한 탕자이기 때문에

    그는 버림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에 이러한 탐욕의 마음을 가진 상태에서 교회에 그냥 앉아 있다면 그 사람도 바로 탕자일 것입니다.

    아버지가 있으나 아버지 없이 살고자 하는 그 사람도 탕자일 것입니다.

    역시 아버지가 없는 것처럼 내가 주인이 되어서  살고자 하는  자도 탕자 일것입니다.

    여러분 아버지가  없는 자리가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마치 내 머리 위에 감시카메라가 달려 있는 것처럼 일거수 일투족을 다 조사하고 보고 감찰하고

    감시하는 그것 때문에 불안해서 마음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감시를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탕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아버지가 원래 가지고 있던 아버지의 재산 아버지의 분깃인데 그 분깃을 마치 내것이다 하고

    내 분깃 내 소유라고 여겨서 아버지 재산 저에게 주세요 라고 하고

    나의  건강 내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시간, 재능 좋은 것들 품성들을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탕자일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도 탕자 일 것입니다.

     

    아버지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나를 향해서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것임을 자세히 가만히 생각하고 묵상하면 알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내가 깊이 생각하면 나에게 요구할 부분이 부담이 되고 내가 감당할 수 없어서 아직까지 내가 세상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이 너무 좋아서 어렴풋하게 자기에게 들려오는 아버지의 그 소리를 청종하지 않고 약간 나몰라라 하면서

    간과하는 그것이 탕자일 것입니다.

     

    조금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고 눈을 열어 볼려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아버지의 부름과 요청에

    내가 그것을 거절하고 부인하는 것도 탕자일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말씀대로 따르지 않는 순종하지 않는 그 자가 탕자일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 분별력과 선택력을 가지고 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살기보다는

    임의로 내가 사용하고 주관하고 내가 주님보다 앞장서서 살고 있는 그 사람이 바로 탕자일 것입니다.

    이 탕자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예수님 위에 떨어져서 깨어지지 않으면 죽어지지 않으면

    아버지의 마음을 절대 헤아릴 수 없는 그 사람이 탕자일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이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깨어졌을 때입니다.

    죽게 되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람들에게 책임과 어려움과 고통들을

    주어서 하나님 아버지를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통의 문제가 없고 시련의 문제가 없고 어려움의 문제가 없는 모든 것이 잘 되어 있는 환경이나 분위기

    그런 성공 명예가 있고 지위가 있는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온 것을 여러분 들은 적이 있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나도 가장 어려운 절망 가운데 빠졌을 때 하나님을 찾게 되었거든요.

     

    영혼을 가장 사랑하고 사모하고 끌림을 당하게 될 때는 내가 죽을 만큼의 위기에 처했거나  나락으로 빠졌을때 

    우리는 하나님을  영적 으로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때가 될 때까지  죽게 되는 그 위기와 죽음의 순간에까지 다다르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는 내버려 두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기다려 주었던 거예요.

     

    왜냐하면 그전에 아무리 아버지가 불러도 호소해도 절규해도 그 아들은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눈을 들어서

    아버지를 보려고 하거나 아버지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라는 것을

    이 아버지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아픈 마음을 가지고 기다려주었던 것입니다.

    이 기다려주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을 대함에 있어서 어떤 사람들과의  대인 관계에 있어서 기다릴 줄 아셔야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원래 우리 것이 아닌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일을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선용 되어질 것을 전제로 한 분복으로 각자 모든 사람들에게 다른 방법 다른 유형의 종류별로 부여해 주신 것들입니다.

     

    돈이 많이 있는 반면에 건강이 또 안 좋은 사람도 있고 건강이 좋은 반면에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세상에 별별 유형의 모든 사람들이 건강과 여러 가지 좋은

    재능들과 그리고 인간에게 주어진 그 생명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런 질문을 또 한번 해볼까요?

    여러분 어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당했다 칩시다.

    또는 어떤 아이를 출산을 했는데 그 아이가 정신적인 지력이 전혀 없고 완전 바보입니다.

    완전 정신적으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알지 못해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기도 전에 병들어 뇌사 상태로 있다가 죽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처리하실까요.

    하나님을 만날 기회 조차도 없이 죽어버렸어요

    뱃속에 있던 아이가 죽을 수도 있어요.

    태어나자마자 어떤 원인모를 이유로 아이가 죽을 수도 있어요.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취급하실까요?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십니까 이럴 경우

    제가 알고 있는 제가 이 하나님에 대한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자비와 은혜를

    가지신 그분께서 어떻게 취급하실 것인가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런지 또는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어떤 도전이 될런지는 모르지만

    정말 그렇게 지력이 없는 상태에서 정말 하나님을 알래야 알 수 없는 그러한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릴수 조차도 없는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아예

    그 사람이 그 아이가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간주하신다는 겁니다.

    그게 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예 없었던 것처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없었던 것처럼 그가 태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보아주실 것이라는 생각은

    내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알고부터 이러한 답을 내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쏟아낸 이 답이 공감이 가시나요.

    제가 그렇게 답을 얘기 한것은 본래부터 태어난 그 자체가 하나님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조차도 그 지력을 가지지 못한 자를 취급하심에 있어서

    저는 그렇게 사랑과 관용 왜냐하면 내가 성경을 읽어보니까 하나님은 바로 그러하신 분이시더라 이겁니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깊이 헤아리시는 분이에요.

    그냥 이렇게 우리 인간들처럼 그렇게 치우쳐서 평가하거나 재판하거나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속에는

    공정하심과 공평하신 치우치지 아니하는 마음이 있는 것임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그런 문제는 성경을 통해서 주님을 개인들이 알아 가면서 느껴지는

    하나님의 인간들을 취급하심에 있어서 만약에 그런 자들을 너는 나를 몰랐으니까 라고 심판대 위에 올려놓고

    영원히 소멸시키는 일에 가담시킨다 라면 그 사람은 얼마나 억울하고 왜 하나님 그렇게 나를 우리를 만들어주셨습니까

    라고 할 때 그 변명에 대해서 또 하나의 또 답을 내놔야 되는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또 딜레마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 할 수 없는 그러한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는 우리에게도 그런 것이 있잖아요.

    아이들이 지금 14이나15살짜리 아이들이 의도적으로 일부러 나쁜 짓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안 됐다고 해서

    촉법소년법에 의해 벌을 주지 못하고 그러는데 정말 어쩔 수 없이 그 어린아이들 그 두 살 세 살 네 살짜리

    이런 아이들이 뭘 압니까

     

    그리고 또 나이가 40살 50살 됐는데도 정신연령은 마치 한 살 두 살짜리 같은 그런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취급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두 가지를 다 보여주시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제가 하나님을 만나면서 아~ 그렇구나 제가 그래서 하나님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질문을 자꾸 드리는 것은 여러분들 스스로가 묵상과 되새김질을 많이 많이

    하라고 제가 이런 질문들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장차 하늘나라가 우리의 기업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동의하십니까 그러면 그 기업이 여러분들 개인의 것입니까?

    아니면 우주 거민들과 거룩한 천사들과 우리 구원받은 모든 자들의 공동 소유일까요.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개인의 것입니까  아니면 이 모든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그 기업의 모든 것들이 공동 소유일까요? 공동 소유라고 생각합니다 예 공동 소유라고 우리 봉사자 님이 대답하셨는데

    그 대답 확실 한 것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그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고  누리게 하실 그 축복의 땅

    그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이라고 칭하는 그런 곳에서 우리가 삶을 영위할 때

     

    서로가 서로를 소유함에 있는 그 기업이 상대방들에게 함께하고 있는 천사들에게 또 같이 구원받은 자들에게

    또 우리의 주인 되시는 주님 앞에서 해를 끼치지 않고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됐습니까?

    여러분 답해보세요?

     

    예를 들어 여러분 스스로가 주인이에요.

    모든 것을 마음대로 치리 할 수 있는 그런 집에 마음을 같이 하는 이웃들이 함께 들어와서 산다고 칩시다

    그 사람들을 포용할 마음이 있습니까? 유무상통할 수 있는 그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피해를 주고 돈을 한 푼도 가지고

    오지 않고 와서 그 어려운 형편에 있는 여러분에게 와가지고 해를 끼치고물질적인 손해를 주고 여러 가지 굉장히 어떤

    시간적으로 손실을 주면서 함께 부딪히며 살 때 그들을 진정으로 그들이 주인인 것처럼 그들을 대할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 만약에 예수님이나 혹시 예수님이 아닐지라도 박찬덕 선교사가 여러분이 마음대로 치리할 수 있는

    주인으로 있는 공간이나 장소에 들어갔다라면 그것이 가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강도를 만난 그런 자처럼 모르는 어떤 그러한 자들이 여러분에게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눈으로 직시하고 보고 그 환경 속에 들어왔을 때 과연 그를

    예수님처럼 또는 박찬덕 선교사처럼 정말 온전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한번 답해보세요.

     

    우리는 이 땅에서 이 탕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깊이 들어가 보면 어떤 말씀을 가르쳐주고 있느냐면

    여러분 장차 우리는 하늘의 기업을 물려받고 모든 우주 거민들과 천사들과 함께 그리고 구원받은 의인들과 함께

    그 기업을 함께 누리고 그 영생 복락을 함께 소유하고 누릴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유무상통해야 되는 법을 배우지 않는 자들이 이 땅에서 그렇게 살고 있지 않는 자들이

    그곳에 간다고 했을 때 과연 지켜 질까요 여러분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이 땅에서는 안 되는데 저 땅에서는 그게 가능한가요 그러면 그 땅에서 또 한 번 이 땅에서 여러분들을 훈련하는 것처럼

    하늘에서 또 예수님께서 여러분들 가르치고 연단하고 풀무불에 용광로에 들어가서 유무상통하는 법을 정말 니것 내것 없이

    살 수 있는 마음의 훈련이 되도록 가르쳐야 되는 일이 필요할까요? 어떨까요?

    여러분 이 땅에서 우리의 생애가 존재하는한 정말 배우고 날마다 경험해야 됩니다

    물론 그렇게 경험하는 가운데서 죽음을 당하는 자들도 있을 거예요.

    이제  시작은 해 놨는데 어떤 질병이나 어떤 일상적인 삶의 문제로 인하여

    죽음을 당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나님은 다 그것들을 감안하실 것입니다.

     

    그런데요. 정말 유무상통 이 초대교회에서 그 성령님 안에서 잠깐 그 일을 시도했었으나

    실패한 그 삶이 온전히 성공되기 위해서 이 탕자의 말씀은 굉장히 무섭고 두렵고 떨리는말씀입니다.

     

    여러분 탕자에 비유에서 아버지가 얘기하는 것이 무엇이죠.

    바로 이 말씀입니다. 얘야 나의 것은 다 네 것이란다

     

    아버지는 얘 너는 네 것이라고 가지고 나간 것조차도 사실은 내 것이었는데 그것조차도 다 네 것이야

    그런데 사용함에 있어서 아버지를 위해서 사용해야 될 문제가 아직 남아 있죠

    러나 말씀은 그렇게 하십니다. 얘야 나의 것은 다 네 것이야

     

    네가 마음대로 쓰려므나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는 탕자는 어떤 마음으로

    나갔을까요. 어떤 말을 했을까요. 아버지 당연히 우리의 것  내 것이라 여겼죠

    얘야 내 것은 다 네 것이란다 라고 말을 했을 때 탕자는 당연하죠. 내 것인데 주세요.

    나의 분깃 나의 소유 당연히 내 것이잖아요.

     

    이 탕자와 같은 마음을 가지면 유무 상통의 법칙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 두려운 말씀이에요.

    많이 묵상하고 계속 되새김질 하지 않으면 이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 탕자가 다 죽게 된 그 죽음의 순간까지 들어갔을 때 아버지가 어떠한 분이라는 것을 알고 아버지께 가고자

    할 때 어떤 마음을 갖느냐면 아버지 지금부터는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일컫는 것을 나는 감당할 수 없겠습니다 라는

    마음의 생각을 하고 실질적으로 아버지를 만났을 때 그러한 고백을 했을 것입니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일컫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전에 아버지는 얘야 내 것은 다 네 것이야 그런데 철이들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린

    그 탕자는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다 라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여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그런 아들이에요.

    원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인데 그는 생각하고 고백하기를

    나를 아버지의 종으로 여겨주세요. 여러분들 이게 누가복음 15장 19절 말씀입니다.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22절을 통해서 내 것은 다 너의 것이다 라고 마지막 그 질문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을 아버지로 상징되고 있는

    하나님의 입에서 예수님의 입에서 내 것은 다 네 것이란다.

     

    그런데 그 아들이 철이 들고 아버지의 이 마음을 헤아려서 일치가 되었을 때 하나가 되었을 때 아버지를 진짜 사랑하는

    순종의 마음을 가졌을 때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품꾼 중에 하나로 보소서라고 자기 마음을 자기의 권리를

    다 내려놓는 그 순간에 아버지는 다 내 것이 네것이다 라고 얘기했지만  아들은

    아버지가 주신 그 분깃 그 소유를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라고 하면서

    주인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 누구도 자기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상태

    여러분 뭐 좀 느껴지십니까? 이해가 되십니까?

     

    누구도 아버지도 믿는 사람도 본인도 누구도 그 물건의 주인이 없어요.

    서로가 양보합니다. 내 것은 다 네 것이야 아닙니다 저의 것이 아니에요.

    아버지라 일컫기도 내가 감당할 수 없는데 종이 어떻게 주인의 분깃을 소유를 가질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나요.

     

    종은 그냥 무익한 종으로서 일만 하는 자 아버지는 그 분깃이 아들의 것이라고 그렇게

    인정을 하고 아들 또한 다 내려놓고 아니에요 나는 그 분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라고

    아버지가 자기에게 부여해 준 그 소유를 내려놓는 누구도 그 앞에 떨어져 있는그 소유 분깃을

    주인 이라고 하지 않고 권리를 주장하는 자가 없고 의무만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버지로서의 의무로 네 것이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 아들은 아닙니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봐주십시오 라고 그 의무에 대한 것만

    내어놓는 순간에 유무상통의 저의 것도 아버지 것이고 아버지의 것도 아버지 것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실려고 하는 이 모든 기업의 전체적인 그 것도 다 아버지 것입니다 라는

    이런 돌아온 아들의 마음을 갖지 않는 한 유무상통의 법은 이 땅에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꾸 그 얘기를 하신 거예요.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나를 아는 일이 영생을 얻는 길이다.

    여러분 권리는 남에게 의무만 나에게 이러한 마음을 갖는 자들만이

    하늘을 모두가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 하늘 나라는 서로가 주인으로 여기지 않는 자들이 모인 장소입니다.

     

    여러분들의 어떤 탐욕과 욕심이 있다면 매일매일 삶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셔야만 합니다.

    그러니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천국을 침노하는 것이

    자신을 예수님 반석 위에 완전히 깨어뜨리지 않으면 깨어버리는 그 삶의 체험이 없이는

    여러분들 불가능한 일입니다.

    낙타가 마치 바늘 구멍에 들어간다라는 것처럼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 가지 재앙 그 마지막 또 열 번째 재앙에서 장자를 죽이는 그 하나님의

    그 심판과 죽음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그 능력으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죄를 없이 하는 문제

     권리는 하나님께 그리고 의무만 나 자신에게 있게 한다 라는 이러한 삶을 살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애굽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통해서만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어서 홍해 바다를 지나서 젖과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듯이

     

     

    계시록 15장 2~3절 말씀에

    2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10가지 제앙을 피한 자들 하나님의 능력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과 성령님의 친히 역사하시는 인도하시는

    그 은혜 속에서 홍해 바다를 건넌 자들이 누구도 도무지 부를 수 없는 그 노래를 이 땅에서 그러한 삶의 환란을 무사히

    주님의 은혜와 주님의 피의 능력으로 우리 성령님의 은혜로 환란을 통과한 자들이 그 하늘 시온산에 서서 미리 보여주듯

    새 노래를 불러 말하기를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우리를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구속의 계획을 세우시고 그 사랑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보내시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있어서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가 이 유무 상통에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게 되는 이 마음을 갖게 하는 일이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일이라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들의 노래 속에는 하나님 아버지 전능하시며 하시는 일이 어찌  그리 크고 귀하시는지요 하고 정말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새노래 아무도 부를 수 없는 천사들도 부를 수 없는 새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주의 길은 의롭고 참되십니다. 오직 주님만 거룩하시고 주님의 의로우신 일들이 나타났으니

    세상 모든 만국이 와서 주님께 경배할 것입니다 라고 노래를 마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그 마음 하나님이 만약에 세상에

    우리를 지으셨다고 해서 우리를 만드셨다고 해서 출산케 하고 생명을 주셨다고 해서 마음대로 독재자처럼

    우리를 주관하고 마음대로 우리를 지배하고 임의로 우리를 대하셨다 라면 한 사람도 하나님의

    그 무서운 손길 아래서 피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늘의 도 하늘의 법칙 이러한 것을 하나님의 능력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의 능력과

    성령님의 크신 인도하심으로 깨달은 자들 이런 자들은 하늘에서 하나님 우리의 기업을 주십시오 라고

    그 기업을 주장할 수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성령님이 우리의 기업에 대한 보증이 되십니다.

     

    계약금과 같아요 우리가 10억짜리 아파트를 구입한다 그러면 계약금으로 1억이나 2억 이렇게 보증금을 내죠.

    마치 그런 보증금과 같아요. 그 2억이라는 보증금의 계약금을 낸 사람이 아파트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 커다란 액수를 낸 사람이 포기할리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을 쳐주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런 유무상통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모든 분깃을 주셨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하는 이것을 사탄 원수 마귀는 그 모든 영광을 가로채어서 자기 것으로 자기를

    위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그는 영원히 버림 받게 된 것입니다.

    혹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서 혹 어느 때 우리가 우리 것이라고 생각할 때는 있지 않는지 늘 체크를 해보셔야 됩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따라서 성령님이 우리에게 날마다 제가 어저께 도장 얘기를 했는데

    도장을 날마다 날마다 날마다 파가지고 우리 이 땅에서 사는 삶은 그 도장이 다 이루어진 삶이 아니라

    그 도장을 만들기 위해서 끝까지 끝까지 점점점점 온전해지고 점점점점 완전해지고 점점점점 완성에 이르기까지

    주님 오실 때까지 그리고 주님 만난 다음에 주님을 또 보면서 성장해야 될 일들이 계속적으로 영원히

    우리 앞에 존재할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의 삶을 통해서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오늘 깨어지고 굴복하고

    순종하고 희생이 따르고 고통이 따르고 어려움이 따르고 하기 싫고 손실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말씀대로 따라

    사는 삶을 살 때 성령님은 우리를 인을 쳐주시는 것입니다. 계속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날마다 성령님께서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떤 환경에서 죄를 범할 수 있는

    그러한 곳에서 죄를 깨닫게 해줄 때마다 내가 그 죄를 없애기 위해서 굴복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인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레오나르드 다빈치 하고 미켈란젤로 라는 사람을 잘 알 것입니다.

    이탈리아에 제가 그저께인가 3일 전에 이 미켈란젤로에 대해서 유튜브 동영상을 쭉 봤어요.

    1475년에 태어났더라고요 550년 전입니다. 90세에 삶을 마감했어요.

     

    그가 수많은 조각과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던 그 미켈란 젤로라는 사람은 부모가

    그때 당시에 천박한 직업으로 여겼던 조각을 좋아하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진흙으로 뭐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런 유복하고 높은 지위에 속해 있던 그 부모는  염려가 돼서 혼내면서 때려가면서 그 일을 그만두도록

    그렇게 강요를 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그 일을 버리지 못하고 그는 끝까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각 하는 일을 했는데  그 유명한 바티칸 성당의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은

    다 미켈란 젤로의 작품이더라고요  다비드상(다윗상) 또 모세 상 이런 것들도 그가  만들어 놨습니다.

     

    자기를 따르는 그 제자들과 함께 커다란 돌을 운반해 와가지고 그것을 작업함에 있어서

    어떤 외형적인 커다란 부분은 일하는 석공들에게 맡겼지만 중요한 부분은 자기가 비밀문을 만들어서 비밀문을

    완전히 잠궈놓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한 후에 그 작업을 식음도 전폐하다시피 해서 많은 병에 걸려가면서

    그 조각상 다윗상 모세상을 만들어 나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긴 6 , 7개월이 지난 후에 드디어 자신을 위해서 일을 했던 석공들을 불러 놓고 그 자신이 만든

    그 조각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때 이 석공들은 놀라워 합니다.

     

    아니 커다란 하나의 흉측한 돌이었을 뿐인데 그 미켈란 젤로 라는 이 석공이 수개월 동안에 돌을 다듬고

    망치로 깨고 하는  망치 소리 정 소리는 들려서 그가 일을 하고 있는가 보다 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웅장하고 멋있고 아름답고 생생하고 마치 살아있는 듯한 그런 훌륭한

    마치 사람이 꿈틀거리고 내 앞에 서 있는 것처럼 훌륭한 모습으로 등장된 그 석상을 보면서 물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스승님 어떻게 이러한 것이 도대체 이런 큰 돌들로 이러한 것을 만들 수가 있나요라고 얘기했을 때

    이 미켈란젤로가 단 한마디를 했는데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 나는 다윗상을 만들 때 다윗에게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다 깎아냈어

    모세상을 만들 때 모세가 가져서는 아니 될 불필요한 부분들을 정으로 다 깨어서 제거했을 뿐이야

    모세가 가지고 있어서는 아니 될 불필요한 부분들을 나는 없앤 것뿐이야 나는 다른 거 한 거 없어 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라고 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님을 보내서 어떤 목적으로 예수님을 보내셨나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서 우리의 마음속에 마귀의 일을 멸하게 하기 위해

    마귀를 멸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고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령님의 형상을 담아

    있지 못하게 하는 그런 불필요한 악한 요소들과 어둠의 것들과 불법의 것들과 죄와 악의

    요소들을 다 없애고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을 만들어주시고자 하신 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삶에서 도장을 새겨야 됩니다

     

    조각칼로 그 망치로 미켈란젤로가 다윗상과 모세상을 만든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을 만들어 나가는 일을 매일매일

    내 자신이 때려서 제거하여 잘라내어서 없애줘야 됩니다.

    없애주는 그것들은 다 마귀의 것입니다.

     

    죄악을 좋아하고 탐닉하고 냄새 맡기를 눈을 돌리기를 원하고 코를 벌렁거리며 귀로  달콤한 그 좋은 소리를 듣기를 원하는

    그러한 것을 다 잘라버리고 위에 계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그 마음으로 나에게 붙어 있는 불필요한 모든

    죄악된 것들을 잘라지는 수고를 한 자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와 말씀으로 날마다 날마다 인도함을 받고 따르고 계속해서 순종해 나가면 어려움이 있죠.

    어려움이 있고 싫어지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 마음이 죄악을 탐하기를 너무 좋아해요.

     

    내가 왜 그런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지  아십니까 내가 그 기도를 하면 그것을 따르고 지켜야 되는데

    많은 손실과 고통과 희생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따라가는 일은 둘째 치고 아예 기도도 하지 않아요

    왜죠 그 기도를 하게 되면 내가 따르는 일(육신적인 능력을 잘라내는 일 천연적인 힘을 제거 하는일)이

    있을까 봐 내 자신이 내 자신을 겁내하는 것입니다.

    그 말인즉  죄를 좋아하는 마음이 우리 속에 있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부합되지 않은 모든 것들을 다 제거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자신의 그 언약궤 증거궤 법궤안에 십계명을

    두고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은 꽉 차신 분이에요.

    전체가 아버지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십계명 하나님의 법은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마음의 생각들이에요

    .

    그분의 공의와 사랑과 은혜와 자비와 모든 신실하심이 그 법들 안에 다 알알이 석류알처럼 새겨져 있는 거예요.

    알알이 알알이 수백 수천 개가 빨갛게 탐스럽게 예수님의 마음속에 진리만을 아버지의 말씀만을 머금고 있었기 때문에

    세상을 상대로 마귀를 상대로 죄를 상대로 혼자 당당하게 싸워서 이기고 나서 우리에게 그 삶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희도 이렇게 하면 이긴다라는 겁니다.

     

    우리는 진리에 맞지 않는 아버지의 뜻에 맞지 않는 오류와 잘못된 것과

    그릇된 것을 순간적으로 알게 되면 버리기가 너무 힘이 힘들어요.

     

    왜냐면 지금까지 편견이 있었고 고집이 있었고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알고 있었는데 이것을 없이하는 것은

    마치  내 모든  자존심과 내 자아와 영혼을 포기하는 것과 같아요.

    바로 그때 그것이 여러분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마귀가 그것을 끝까지 붙잡고 놓아주질 않아요. 마귀는 그것을 놓아 주면은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품에 들어가는 순간에 자기 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마귀는 기절 초풍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끝까지

    그것을 놓지 않고 분주하게 만들고 자기의 생각을 그가 마음 먹고 있는 생각을 없애지 않도록 아니야 니 생각이 맞아

    너 그거 버리면 안돼 라고 끊임없이 그렇게 유혹을 하고 끊임없이 우리를 속이려고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교만함이 드러날 때 이기적인 것들 욕심들 특별히 내 속에 있는 우상들 나를 사랑하는 것들 이게 가장 큰 문제예요.

    내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머금고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대하며 이웃을 바라볼 때 진정한 성령님의 열매들이 들어온다 라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성령님께서 그때마다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고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과 전혀 맞지 않는 그런 것을 잘라내고 버릴 때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아요.

    제가 기도 제목이 한 30가지 정도 되는데 특별히 그 가운데 흠과 점이 없고 책망 받을 것이 없는 하나님 앞에

    대면하여 섰을 때 정말 온전한 자로 설 수 있도록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내가 온전하니 너희도 온전하라 라는

    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내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 날마다 씨름을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내가 지금은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장래에 내가 예수님이 나타나시게 되면

    내가 예수님처럼 모습이 형상이 돼 있다라는 것을 알 때

    깜짝 놀라게 될 수 있는 그때를 내가 갖기 위해서 주의 성품에 참여하고자 매일매일 나

    자신을 잘라내고 이런 일이 있고자 저는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7~15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7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12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13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15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죄가 뭡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이 죄입니다.(아담이 범한 죄에 대해서)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의 계명들 하나님의 말씀들이 꽉 차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그 계명을 따르지 않는 것을 말하는 거죠.

    그런데 이 죄가 죄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누가 그것을 깨닫게 해주느냐면 바로 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예수님를 믿지 아니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요즘에서야 알고 깨닫게 됐죠.

    그 전에는 제가 이 말씀을 예수님을 37년 동안 믿었으면서도 몰랐어요

     

    아~ 성령님께서 이 죄에 대해서 깨닫게 해주시는 구나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내가 짓는

    죄가 죄라는 것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무덤덤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거죠.

     

    사단은 똑같은 죄에 우리가 들어갔을 때 죄책감을 주어 빠져나올 수 없도록 물속에 들어가서

    허우적거리고 결국 수장 되어서 죽을 수밖에 없도록 절망에 빠지게 합니다 낙담하게 합니다.

    용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우리 죄를 깨닫게 해주시면 회개하게 하고 마음을 찢고 죄를 미워하게 하고

    말씀대로 살게 하고 죄를 미워하고 슬퍼하고 하나님께 자꾸 나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똑같은 죄책감을 인데 마귀가 주는 죄책감은 우리를 멸망의 길로 마음을 인도하는 것이라면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의 말씀을 대하여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도록 우리를 만들어주신다라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깨달음을 주시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마음의 슬픔을 가지고 아~ 내가 오늘 또 잘못했는데 왜 내가 이 모습일까 그때

    못된 부분을 제거하기 위해서 내가 무릎 꿇고 하나님 다시는 이런 일이 있지 않도록

    나도 노력할 테니 하나님 좀 도와주세요. 성령님 도와주세요라고 할 때 그때 역사하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죄를 깨닫고 알고 인식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바로 죄에 대하여는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라고 얘기를 한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백번 천번 만번 십만 번을 십자가에 달려도 나를 위해서 죽으셨을지라도 성령님 보혜사 나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그분이 안 오시면 죄를 깨닫게 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죄에 대해서 책망 받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가 없습니다.

     

    이 놀라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날마다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의에 대하여라(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함은 10절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라  이 의미가 뭐예요

     

    여러분 하나님 만이 옳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죽으시고 부활 승천한 후에는 예수님이 안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요.

     

    제자들과 함께 있었던 그 예수님 의로우신 예수님이 있었을 때는 가르침으로 교훈으로 진리로 의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갑자기 없어진 것입니다.

    의로운 교과서 의로운 모범자가 사라져 버리니 이 땅에 사는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무엇이 의로운 것인가를 알고 따르고 믿고 살아야 될까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마음먹고 어떻게 사람들을 취급하며 강도만난 사람을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치료한 것처럼

    어떻게 진리가 의인지를 어떻게 알까요.

     

    예수님이 없어지는 대신에 사라져 가버린 대신에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주셔서

    성령님께서 순종하고 굴복할 때마다 의가 무엇인지 옳은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의로운 삶 의로운 생애를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점점점점 가깝게 하나가 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또 심판에 대하여 이 세상의 임금이(뱀 곧 사탄) 심판을 받았다 라고 얘기하죠

    이 세상의 임금이죠. 어둠의 영입니다. 불법을 행한 죽은 자입니다.

     

    한동안 그가 권세를 가진 것처럼 속이는 자로 지금 나타나고 있습니다.

    십자가 이후에 사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려고 마음 먹을 때 작정하셨을 때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을 고대하고 기대하시고 마음에 그것을 간직하셨을 때 사단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예수님이 보았다라고

    제자들에게 얘기를 하셨습니다. 마귀가 이때  심판을 받았습니다.(실제적으로는 십자가에 높이 들려 죽으심으로)

    요한복음 3장14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의로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불법한 자 불의한 자가 바로 하나님 앞에 예수님 앞에

    심판받는 자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제야 죄를 정하셨던 것입니다. 마귀가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우리 속에 오셔서 마귀가 가졌던 그 생각 우리에게 지금 주어서 품게하는 그 생각을 없이하고자

    성령님이 오신 것입니다.

     

    마귀처럼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시고 마귀처럼 사는 것을 살지 못하게 하시고 마귀처럼 계획하는 것은

    계획을 도말 하시고 마귀처럼 사람들을 악하게 대하는 그 취급하는 것들을 선함과 자비와 은혜로 대하도록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바꿔주신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사라져 버리셨을지라도 성령님께서는 우리 마음 가운데 오셔서 무엇이

    죄이며 무엇이 옳은 것이며 무엇이 이 세상 임금 곧 너희를 심판하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을 성령님이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순간순간마다 어쩌다 어쩌다 하나님을 잃어버릴 때마다 찾아오는 이 마귀의 영이 있다 라는 것을 알게

    해 주신 분이 거룩하신 성령님이십니다 .

     

    우리가 이렇게 잘 주님을 따르다가도 갑작스럽게 이상한 생각들이

    이상한 마음들이 들어올 때마다 거룩하신 성결케 하시는 성령님께서 그 때마다 이것은 죄다 네가

    이것을 버려야만 된다 라고 우리를 꾸짖어주시고 경책하시고 옆에서 격려하시고 용기를 주시고 위로하시는

    보혜사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이 성령님을 늘 의지하는 여러분이 되셔야만 여러분 속에 있는 불필요한 필요 없는 악한 것들 마귀의 정신들

    마귀의 영들 이것 들을 다 제거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같은 형상으로 만들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 오늘 교제는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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